<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9화>
* * *
"으하핫! 최 선수가 우릴 살렸어요, 살렸어."
끌려와서 갇혀 있던 여성이 무려 37명이었다.
일이 잘못되어 그중 한 명이라도 다치거나 죽었다면 검찰의 위상에 흠집이 날 뻔했다.
그랬다면 그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치진 못했을 거다.
후속 조치는 또 어떻던가.
"아니, 수사관 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런 실적을 올리나? 최 선수, 검사가 천직 아니에요?"
"넘보지 마소, 차장검사님. 내 껍니더."
"강 프로. 원래 좋은 건 나눠 쓰는 거야."
"도동놈 심보임니꺼!"
"응. 그러니까 사투리 쓸 거면 좀 제대로 써라. 이건 뭐 경남, 경북 사투리가 다 섞였네."
"내가 이러고 싶어서 이랍니까!"
경북에서 태어난 그는 부산지검에서 짧게 일하고 창원으로 갔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은 그의 성격이 그렇게 만들었다.
"정말 제대로 사투리 써 볼까요!"
"아니, 하지 마. 말은 알아듣게 하자."
"와."
말을 하고 싶은데 말을 할 수가 없는 강철선은 엉덩이를 들썩였고, 차장검사는 낄낄거리다 한쪽에서 오늘 증거물로 찾은 장부를 살피고 있는 중수부장을 봤다.
서울지방검찰청이 아니라 대검찰청 소속임에도 이 자리에 있는 중수부장.
"찾았어?"
대답은 그의 입가에 피어난 미소였다.
그의 날카로운 눈매가 칼날처럼 서늘해졌다.
마른 몸매에 차가운 인상을 지닌 그.
탁 소리가 나도록 장부를 덮은 중수부장이 종혁을 봤다.
"덕분에 중요한 증거를 찾았습니다, 최 선수."
종혁의 눈이 크게 뜨였다.
‘중수부, 그것도 부장이 직접 나설 만큼 거물이 이번 일에 연관됐다? 설마 시의원?’
구의원이 배후이다 보니 가장 먼저 그쪽이 떠오른다.
‘그런데 왜 중수부가 아니라 서울지검에서…… 아, 설마 그건가?’
중수부나 대검, 서울지검의 특수부가 움직이면 너무 눈에 띄니까 평검사에게 수사를 시킨 거다. 작은 단서라도 나오길 바라며.
회귀 전 초임검사에게 이 일을 시킨 것도 그런 의미다. 넘쳐흐르는 의욕에 여기저기 찔러 보도록.
아마 이 일의 개요에 대해 아는 존재는 부장 검사 이상일 거다.
그러니 부장검사와 차장검사가 나온 거다.
이제야 아귀가 맞는다.
"너무 감사해서 소원이라도 하나 들어주고 싶은 심정인데. 바라는 거 있어요? 기브 앤 테이크. 도와줬으니 나도 보답을 해야죠."
이 방에 앉은 모두가 놀랐다.
그들은 기대감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종혁을 봤다.
종혁도 심장이 크게 뛰었다.
‘중수부 보물 창고를 보여 달라고 할까?’
그런 루머가 있다.
중수부 깊은 곳에 숨겨진 공간에는 이 대한민국을 뒤집을 초대형 사건들이 수없이 잠들어 있다는.
일각에서 말하길, 권력자들의 비리는 국정원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 말하는 중수부.
종혁이 파악하지 못한 그 조직에 관한 정보가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아니야. 그곳을 보여 달라기엔 명분이 부족해.’
종혁은 욕심을 내려놨다.
"아니요. 없습니다."
"호, 그래요?"
단호히 거절하는 종혁의 모습에 중수부장은 눈을 빛냈다.
"아, 있다면 대한민국이 어디든 안심하고 돌아다닐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합니다. 경기도 안산이든, 서울 신림이든, 가령 전라도의 신안까지도요."
훗날 범죄의 온상처럼 취급을 받는 장소들.
그중에서도 종혁이 신안을 지적하자, 그들의 미소가 미묘해졌다.
"하핫! 역시 검사가 될 인재네요. 알았어요. 노력해 보죠."
‘정말?’ 회귀 전이 떠올라 그냥 내뱉었던 종혁으로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용무가 끝난 중수부장은 몸을 일으켰다.
"대학이 꼭 한국대만 있는 게 아니에요."
툭툭!
종혁의 어깨를 두드린 중수부장은 차장검사실을 빠져나갔고, 종혁은 그런 그의 등을 멍하니 보았다.
그리고 강철선을 제외한 남은 검사들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그렇지! 대학이 꼭 한국대만 있는 게 아니지!"
"암. 그렇고말고. 우리 대학도 참 좋지!"
"조, 종혁아, 저 사람들 말 듣지 마래이! 대학은 한국대가 최고인 기라! 알았제?!"
"뭐? 야! 강 프로!"
"와요!"
종혁은 마치 애처럼 싸우기 시작한 다 큰 어른들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안산, 대림…… 아, 이 두 곳이나 가리봉동은 이제 자리 잡아 가지, 참.’
최초는 가리봉동이라고 할 수 있었다. 부산과 인천 차이나타운을 제외한다면.
작은 오류가 있었다.
‘그렇다면 그 신안을 건드릴 만한 거물이 연관됐다는 건데…….’
"이거 궁금해지네."
하지만 중수부장이 장부를 가져갔으니 알 길이 없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장부를 외워 둘 걸 하며 종혁은 아쉬워했다. 그랬다면 요구하는 게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씨는 뿌렸다.’
종혁은 눈을 빛냈다.
한편.
"다녀오셨습니까!"
대검 복도를 지나던 중수부 검사들이 허리를 깊이 숙인다.
"꼬리 잡았으니까 김 의원 압수수색 들어가."
중수부장은 그중 한 명에게 장부를 던지곤 생각에 잠겼다.
"맹랑한 놈."
꽤 재밌는 말을 해 주었다.
예의상 말한 것뿐인데, 제법 묵직한 짐을 안겨 주었다. 중수부장 체면에 들어주지 않을 수도 없었다.
다만.
‘신안이라…….’
아직은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알게 모르게 많은 범죄가 일어나고 있는 안산과 신림.
다소 무리를 한다면 이곳들을 정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신안만큼은 달랐다.
지역 경찰들의 유착이 포착되는 이곳을 건드린다는 건, 경찰에 메스를 댄다는 의미나 다를 바 없었다.
중수부장직까지 걸어야 할지도 모르는 사항.
신중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신안을 직접 언급했다는 건 대충 상황을 알고 있다는 건데…… 그런데도 나에게 부탁을 했다?’
잠시 고민에 잠겼던 그는 이내 종혁이 부탁하고자 했던 바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푸하핫!"
중수부 검사들의 눈이 부릅뜨였다.
‘부, 부장님이 웃으시다니!’
‘서울지검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거의 천지가 개벽할 수준. 그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나 아직 놀라기는 일렀다.
"이놈 봐라? 나보고 경고를 하라는 거냐?"
그 말을 들은 중수부 검사들은 기함했다.
‘부장님을 움직인다고? 누, 누가? 총장님이신가?!’
"그래.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지."
아니, 다르게 생각하니 좋은 기회이다.
‘내 경고로 움직일 그놈들의 뒤를 쫓는다면?’
스케치만 잘하면 썩 볼만한 그림이 나올 것 같다.
‘어쩌면 검찰의 오랜 골칫덩이인 신안을 통째로 도려 낼…….’
그는 고개를 저었다.
뒤를 쫓아 친다고 해도 아마 한 귀퉁이만 잘라 내고 말 터.
통째로 도려내기 위해선 갖춰야 할 게 많다.
‘경고로 끝내야겠군.’
그리고 뒤를 쫓아 증거를 확보한다.
지금은 거기서 만족하기로 했다. 그 정도로도 여럿의 명줄을 쥘 테니.
"흠."
‘좀 모자라군.’ 경고 후 중수부가 쥘 걸 생각하니 저울의 추가 다시 기운다.
"누가 안산과 대림의 공통점을 말해 봐."
중수부 검사들의 머리가 맹렬하게 돌아갔다.
"……아, 중국 조선족들이 조금씩 유입되는데 일부가 분탕을 친다고 합니다."
"분탕?"
"조선족들의 숫자는 각기 삼십 명도 안 된다지만, 이대로 방치하면 부산이나 인천 차이나타운처럼 그들만의 구역이 형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고 합니다. 가리봉동도 그런데, 현재 상주 인원이 쉰 명을 넘겼다고 합니다."
‘그거였군.’ 이제야 일어나기 시작한 일을 어떻게 알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놀러 가서 봤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들었을 수 있다.
그저 한번 뱉은 말을 지킬 수 있게 된 게 중요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얼추 맞겠군.’
그렇다면 이젠 움직여야 했다.
그는 명령을 내렸다.
"쓸어."
"예!"
그렇게 대한민국에 은밀히 숨어 들려던 조선족 조직에 철퇴가 내려지는 순간이었다.
중수부 검사들이 흩어지자 그는 느긋이 걸음을 옮겼다.
그러며 미소를 지었다.
"검찰에 꼴통이 들어오겠어."
그것도 제법 귀여워할 만한 꼴통이.
그 순간이었다.
지이잉! 지이잉!
"예. 전화 받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중수부장님! 저 권아영이에요!
"오, 권 이사. 무슨 일입니까?"
얼마 전 누군가의 추천으로 알게 된 권&박 홀딩스.
돈을 맡긴 기간은 짧았는데, 칠팔십 년대 은행 이자 수준의 수익을 내고 있다. 그로 인해 털어 낸 오물이 제법 됐다.
-한국에도 닷컴의 바람이 불려는 움직임이 있어서 연락드렸어요. 혹시 통화 괜찮으신가요?
"……그럼요. 그런 내용이라면 총장님과 면담 중이더라도 받아야죠."
그의 입가에 방금 전과 다른 의미의 미소가 번졌다.
* * *
강력범죄형사부가 있는 층의 휴게실.
싱글벙글 웃는 강철선의 모습에 종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부장검사와 차장검사에게 칭찬을 배 터지게 들었다지만, 눈빛이 너무 부담스럽다.
"피해자 조사 안 하세요?"
"그 아가씨들 밥 묵고 있다. 그동안 제대로 묵도 못했을 낀데 집에 돌아가기 전에 든든하게 채우고 보내야 하지 않긋나? 집에 가서 어무이가 채리 준 밥 묵다가 울어가 부모 걱정 안 시킬라모. 그래서 짱개부터 치킨, 보쌈까지 쫙 시킸다."
"오."
‘역시 아버님답네.’ 이래서 언제나 집안에 돈이 없어 현석이 그렇게 싫어했던 거지만, 종혁으로선 존중할 수밖에 없는 자세였다.
이제는 전과 달리 사정도 나아졌으니 이 부분도 이전처럼 문제가 되지 않을 터였다.
‘그래요. 그렇게 계속 웃으세요.’
더 이상 누군가의 희생 없이 본인의 신념을 지키는 모습을 보니 참 기꺼웠다.
"아."
뭔가 떠오른 종혁이 작년에 TV에서 한창 떠들어 댄 손바닥만 한 크기의 포켓 PC를 열어 무언가를 보여 줬다.
전화로 인터넷을 연결하기에 1분만 써도 혈압이 오를 통화료가 부과되는 포켓 PC.
강철선은 세상 참 빨리 변한다고 혀를 내둘렀지만, 종혁이 하는 말에 곧 관심을 거뒀다.
"현재까지 올린 수익이에요."
"아, 글나…… 음?"
강철선은 눈을 비볐다.
말도 안 되는 액수가 눈에 박혔기 때문이다.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맞는데?"
생활비 빼고 바닥까지 긁어모아 맡긴 돈 5백만 원.
그게 2주도 안 되어 6백만 원이 되었다.
"니 사기 쳤나?"
"미국 닷컴 열풍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거죠. 아마 이번 달 말엔 2백 정도 더 버실 수 있을 거예요."
"와, 역시 큰 나라답게 판이 크네. 이러다 내년에 집 사는 거 아이가?"
"일반 2층짜리 주택은 여름 되기 전에 사실걸요? 1, 2층 합해서 방 여섯 개짜리로."
"에이."
농담으로 말했던지라 손을 저었던 그는 이내 딱딱하게 굳었다.
"……진짜로?"
"정말로요."
……후다닥!?
휴대전화를 꺼내 든 그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현석이 엄마."
-와예? 식사는 하셨어예?
"됐고. 여름에 이사할 준비해라. 이사 갈 집도 알아보고. 매매로. 앞으로 우리가 살 집이니 꼼꼼하게 살피래이."
-설마…… 아니지예?
"어허! 내가 그런 놈으로 보이나!"
-아니라믄 돈이 어데서 나서…….
"그런 줄 알고만 있으라이! 끊는데이."
-현석이 아부지!
강철선은 종혁의 손을 꼭 잡았다.
"고맙데이. 진짜 고맙데이."
"제가 한 게 있나요. 저한테 고마워 마시고 지금까지 버텨 준 가족들에게 고마워하세요."
"하모. 그래야제. 당연하제."
결혼하고 나서 처음이었다.
집을 사자고 당당히 말한 건.
종혁은 바르르 떨리는 그의 손을 보며 푸근히 웃었다.
‘이젠 현석이랑 잘 지내세요, 아버님.’
"그건 그거고. 이 장인한테 바라는 거 없나?"
"하아. 범죄라니까요……."
종혁은 고개를 저었다.
"흐흐. 아랐다. 말해 봐라."
안 것 같지 않지만, 더 말하기는 싫었다.
"없어요."
"또 읎나? 하이고. 괘안타. 말해 봐라."
끝까지 물을 것 같은 기세에 종혁은 잠시 생각하다 눈을 빛냈다.
"그럼 대검과 이곳의 자료실을 구경할 수 있을까요?"
정확히는 대검과 특수부 자료실이다.
"자료실?"
"네. 다이렉트로 꽂힌 사건들만 모은 자료실."
강철선은 의아해했지만, 종혁은 눈을 빛냈다.
‘중수부는 못 봤지만, 대검과 특수부 자료실에는 단서가 있을 수도 있어.’
검찰, 그것도 대검과 특수부에 직접 고소되어 경찰도 모를 사건 파일들.
그 안에 종혁이 찾는 단서가 있을 수 있다.
"와?"
"궁금해서요. 서울지검 특수부나 대검이 어떤 사건을 다루는지."
"그래? 흠."
종혁은 고민하는 그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 * *
"후우."
어두운 밤, 하얀 입김이 흩어진다.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 우글우글 주위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어젯밤 쌓여 다 치워지지 않은 눈 때문에 걸음이 조심스럽다.
"호떡 2만 원어치요."
뜨거운 호떡을 산 종혁은 이제 곧 있으면 떠날 반지하방으로 향했다.
띵동!
문이 열리며 종혁을 맞이한 건 어머니와 후끈한 보일러 열기, 그리고 TV 소리였다.
"왔니? 어땠어? 폐는 끼치지 않았어?"
뭐가 그리 궁금한지 여러 가지를 묻는 어머니.
종혁은 배시시 웃었다.
"네. 왔고요. 재밌었고요. 폐는 끼치지 않았어요."
……꼬집.
"악!"
"흥. 씻어."
종혁은 돌아서는 어머니를 꼭 껴안았다.
"다녀왔습니다."
"……그래. 얼른 씻어. 피곤하겠다."
"네."
호떡을 어머니 품에 안긴 종혁은 샤워기 앞에 섰다.
쏴아아!
"더럽게 컸지."
이 대한민국에 대검찰청이 생긴 이래 발생한 모든 사건이 모여 있던 공간. 본청의 그것을 보는 듯했다. 다 살피자면 한두 달로는 어림도 없을 것 같았다.
강철선은 결국 종혁의 부탁을 허락했다.
"흠."
종혁은 그 방대한 공간을 떠올리며 샤워를 마쳤다.
마침 9시 뉴스에서 2:8 가르마를 탄 남자 아나운서가 오늘 일을 말하고 있었다.
"저런 씨부랄 새끼들!"
팬티만 입은 종혁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어, 엄마?"
"뭐?! 하여튼 저런 놈들은 아주 거기를 뽑아 버려야 돼! 너도 명심해! 여자를 함부로 대했다간 너 죽고 나 죽는 거야! 호떡이나 처먹어!"
"옙!"
종혁은 얌전히 고정숙 옆에 앉아 호떡을 입에 물었고, 특별할 것 없는 모자의 하루는 그렇게 저물어 갔다.
다음 날.
"헉?!"
기겁하며 일어난 종혁은 시간을 확인하곤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제는 일이 제법 있어서 자신도 모르게 피곤했는지 30분 늦게 일어났지만, 출근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깨우지."
작게 투덜거린 그는 방을 나섰다가 굳었다.
싸늘한 공기와 적막한 집.
회귀한 이후 처음 느끼는 감각이다.
-피곤해 보여서 안 깨우고 먼저 가. 미래도 좋지만 건강은 챙겨. 파이팅.
"이런."
거실, 덮개가 덮인 밥상에 놓인 쪽지 한 장.
종혁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언제나 함께했던 아침 식사.
별다른 대화는 없어도 함께한다는 게 좋았던 시간.
피곤해 보여 차마 깨우지 못하고 아들이 언제 깨어날까 하염없이 기다리다 쪽지를 쓰고 떠났을 어머니를 떠올리니 가슴이 쓰렸다.
"이 병신 새끼."
회귀한 이후 어머니께 잘하겠다, 그 무엇보다 어머니가 먼저다, 하고 다짐했던 마음이 고작 3년도 되지 않아 흐트러졌다. 한상원을 잡으러 가기 전 아쉬워하던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후우."
덮개를 젖힌 밥상엔 한 상 가득 차려져 있었다.
평소보다 더 힘이 들어간 차림.
명예 수사관. 수사관 인턴이지만 그래도 아들이 일을 한다고 공들였을 어머니의 마음이 전해져 와서 더 괴로웠다.
쓰린 가슴을 쓸어내리며 밥상에 앉은 종혁은 숟가락을 들었다.
"맛있네."
종혁은 답답한 속을 외면하고자 TV를 켰다.
-하늘을 봐! 하얗게 눈이 내려와!
겨울이라고 TV 아침 예능에서 겨울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숟가락을 입에 문 종혁은 눈을 빛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