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8화>
* * *
장부에도 없던 여성들 발견.
무려 37명.
그건 서울지방검찰청 강력범죄형사부를 뒤집어 놓기에 충분했다.
‘그년들만 안 들키면 돼. 그년들만.’
그곳에 있을 이중 장부도.
유치장에서 불려 온 석동출은 애써 태연을 가장했다.
‘문제는 우리 애들 전원이 잡혔다는 건데…….’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웨이터나 삐끼로 위장시킨 조직원도 모두 잡혔다.
아직 잡히지 않은, 끌고 온 여성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 놈이 없다.
석동출을 불안하게 만드는 건 바로 그 부분이었다.
석동출은 혹여 그들이 잡히지 않았어도 여성들이 도망쳤을 거란 걸 모르고 있었다. 회귀 전 유흥업소 입구와 뒷문을 지키는 경찰들 때문에 접근조차 못한 그들은 그냥 잠수를 타 버렸다.
"……병신 같은 년들. 그냥 콱 굶어 죽어 버리라지."
‘아님 장부 건드리지 말고 그냥 도망치든가.’ 도망쳐 봐야 어차피 손바닥 안이다.
출소한 이후 다시 잡으면 됐다.
"제발 도망쳐라. 그리고 내가 찾으러 갈 때까지……."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는 강철선을 본 석동출은 드러냈던 이를 감추며 어깨를 으쓱였다.
"정말 이중 장부는 없……."
뻐어억!
"크헉!"
턱을 얻어맞은 석동출은 땅바닥을 굴렀다.
벌떡 일어나 뭐 하는 짓이냐 소리치려던 그는 어느새 코앞에 드리워진 강철선의 얼굴에 입을 다물었다.
산 채로 씹어 먹을 것처럼 살의로 일그러진 눈.
"37명이래메. 씨발놈아."
"헉! 어, 어떻게?!"
"와? 끝까지 모를 줄 알았나? 안 되겠다. 닌 좀 맞자."
강철선은 방금까지 석동출이 앉아 있던 철제 의자를 들어 온 힘을 다해 내려쳤다.
퍼어억!
* * *
‘올 때까지 기다려라.’
그 한마디였다.
37명의 여성이 그 비좁고 어두운 공간에 갇혀 있게 만든 건.
"야이 씨."
깜빡이는 노란 전등 아래, 습하고 좁은 시멘트 복도에 놓인 닭장처럼 상체만 겨우 일으킬 수 있는 5층 침대 여덟 개.
가장 깊은 곳에 칸막이 없이 설치된 화변기 하나.
그게 전부였다.
부모가 진 빚, 어쩌다 진 빚 때문에 끌려 온 37명의 여성들은 그런 곳에 갇혀 있었다.
찾아올 누군가를 기다리며.
1월 이 추운 날, 냉동 창고나 다름없는 그 추운 곳에서 거지도 안 입을 얇고 허름한 옷만 입은 채 전기장판 위에서 서로의 체온에 기대어.
찾아올 사람이 다시 지옥을 이어 가게 만들 게 분명한데도.
"이게 사람이 할 짓이냐? 이게? 어? 아니, 당신들은 왜 도망칠 생각은 안 했는데요?! 당신들이 노예야?!"
3일 전 샅샅이 수색했는데도 이들을 찾지 못한 자신에 대한 분노. 아무리 동출이파가 무섭다지만 신호 한 번 보내지 않은 여성들의 바보 같은 모습에 대한 분노.
서정호의 분노에, 대기실에 옹기종기 모여 종혁이 사 온 빵과 우유를 먹고 있던 여성들이 힉 비명을 지르며 움츠렸다.
종혁은 그녀들의 반응과, 신체에 난 멍이나 흉터를 보며 눈을 감았다.
‘도망칠 생각을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거야.’
폭력과 억압.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 데 훌륭한 수단이다.
이제 겨우 23살을 넘기지 못했다면 더욱더.
이들 중 23살을 넘긴 여성은 한 명도 없었다.
회귀 전에는 그러다 도저히 참지 못해, 굶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저 공간에서 빠져나온 게 분명했다.
"자자, 본인이 일 못 한 걸로 화내지 맙시다. 가서 따끈한 국물이라도 사 오세요. 저런 빵 쪼가리는 응급처치일 뿐이잖아요."
종혁이 카드를 내밀며 눈을 깜빡였다.
"……후, 아가씨들에게 화낸 거 아닙니다."
무언가 더 말하려던 서정호는 본인에 대한 환멸만 더 치솟아 입을 다물며 돌아섰다.
종혁은 그런 서정호를 보다가 슬그머니 다음 빵을 향해 손을 뻗는 여성들을 향해 허리를 깊이 숙였다.
"죄송합니다."
여성들의 시선이 종혁의 넓은 등으로 향한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움찔!?
그녀들의 눈이 흔들린다.
담백하지만 진심이 가득한 그 말에, 폭력과 억압으로 부서져 얼어붙은 그녀들의 마음이 녹아내린다.
바라고도 바라던 그 순간.
매일 새벽 서로를 끌어안고 잘 때마다 기다리던 그날.
"……흑!"
"왜 늦었어요, 왜! 내가, 우리가 얼마나……."
"흐어엉!"
"엄마!"
뺨을 때려도 괜찮건만 땅만 치며 우는 그녀들의 모습이 칼이 되어 심장을 후볐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흐어어어엉!"
그녀들은 그 지옥 같은 시간을 겨우 견딜 수 있게 했던 옆 사람을 끌어안으며 그동안 쌓인 설움과 공포, 울분을 모두 쏟아 냈다. 펑펑 울었다.
"훌쩍!"
종혁은 옆에 앉아 빵을 먹고 있는 여성을 보며 난처해했다.
그녀는 종혁이 어디 가지 못하게 옷깃을 잡고 있었다.
"콜록! 콜록!"
종혁은 얼른 그녀의 등을 두드렸다.
고맙다는 눈빛을 보낸 그녀는 그 힘든 시간을 함께 보낸 친구들을 봤다.
"원래…… 딱 모레까지만 참으려고 했어요."
"음?"
"이대로 있다간 굶어 죽을 거 같아서. 굶어 죽나, 맞아 죽나 똑같으니 반항이라도 하려고 했어요."
햄스터처럼 빵을 먹던 36명의 여성들이 종혁의 옆에 있는 여성을 보았다.
‘이 아가씨가 리더구나.’?
그 지옥 같았을 시간, 서로 뭉치고 버티게 만든 리더.
"왜 그때 도움을 청하지 않은 겁니까?"
"그날 저희를 저 개미굴에 밀어 넣던 그 삼촌, 아니, 저희를 관리하던 그 새끼가 말했어요."
"그 씹새끼가 뭐라고요?"
뜬금없는 욕에 멍해졌던 여성과 다른 여성들이 풋 웃음을 터트렸다. 종혁은 그 반응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기는 웨이터라고. 단순 가담자니까 금방 풀려나 저희를 찾을 거라고…… 길어야 이틀이라고. 저희가 불어서 잡혀도 자신같이 위장한 다른 사람이 저희를 찾을 거라고."
그 말과 음성을 떠올린 여성들의 몸이 딱딱하게 굳는다.
‘그래서였구나.’
그 협박이 그녀들의 목에 올가미를 걸어 버렸다.
끝이 닭장 침대에 박힌 올가미를.
욕지거리가 턱밑까지 치솟았다.
지독하단 말로도 부족한 놈들이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도 찾아오지 않으니까 빠져나오려고 했던 겁니까?"
여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종혁은 눈을 빛냈다.
"그 이후에는요?"
"만약…… 정말 만약에 저희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저 박스들을 경찰에 넘기려고 했어요."
"더 처벌받을 수 있게?"
"아예 못 나오게. 그리고 우리 차용증이랑 신체포기각서만 챙겨서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곳으로 숨으려고 했어요."
석동출이 흔들며 채운 족쇄.
도망치면 가족과 지인이 힘들 거라던 시퍼런 칼날.
"엄마도 아빠도 친구들도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곳으로. 우리는 더럽혀……."
그제야 모든 상황을 이해한 종혁은 재빨리 그녀의 입을 막았다.
"아주 잠시 악몽을 꾼 것뿐입니다. 힘들고 괴로웠던 그 순간은 그저 눈을 뜨면 깨어날 악몽이었을 뿐입니다."
여성들의 눈이 흔들렸다.
"악…… 몽?"
"여러분이 스스로 말하지만 않으면 그 누구도 모를 꿈이죠."
종혁을 멍하니 보던 여성들의 눈에서 또르륵 눈물이 흘렀다.
숨죽여 흐느끼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에이 씨부랄.’
왜 언제나 피해자만 괴로워하고 숨어야 할까.
종혁은 급격하게 몰리는 담배를 물기 위해 일어섰다.
아까 룸들을 뒤지던 중 담배를 본 기억이 있었다.
"흑. 고마워요."
"아닙니다. 그럼 전 잠시. 아,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그 순간이었다.
타다닥!
"종혁아!"
"왜 이렇게 늦었어요? 음식은요?"
"지금 그게 문제가 아냐! 기자가! 기자들이! 호송차를 따라왔어! 씨발, 대체 어디서 샌 거야!"
‘기자?’ 종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종혁은 새파랗게 질리는 여성들을, 스스로를 더럽다 여겨 아무도 찾지 못할 곳으로 숨으려고 했던 그녀들의 옷차림을 보곤 다급히 외쳤다.
"모두 저기 있는 옷들 챙겨요!"
종혁은 홀복이 아닌 일반 옷들을 가리켰다.
"하, 하지만 저 옷들은……."
마담이나 새끼 마담들이 데려온 아가씨들이 마이깡을 쓰면서까지 산 고가의 명품들이다. 어쩌다 스치기라도 했다간 그날 하루 난리가 날 만큼 애지중지 아끼던 명품들.
"당신들에 대해 입도 뻥긋 안 한 사람들을 왜 신경 씁니까! 어차피 범죄 방조로 반년 이상은 썩을 테니 다 버려야 합니다!"
여기 있는 옷들은 증거품도 안 된다. 어차피 나중에 청소하는 사람이 가져갈 거, 줍는 사람이 임자였다.
‘점유물 이탈은 니미.’
여성들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형님, 뭐 해요! 얼른 지원 요청해서 기자들 막으세요! 그리고 아가씨들 숙소가 근처랬죠? 거기서 문 따서 옷, 백, 화장품, 선글라스 싹 다 가져오세요! 마스크랑 벙거지 모자도! 얼른!"
"어? 어!"
"자 얼른 챙깁니다, 실시!"
"시, 실시!"
* * *
우글우글!
"아, 거 밀지 맙시다!"
"연차 낮은 애들은 알아서 뒤로 빠져라!"
서울지방검찰청 입구, 이십여 명의 기자들이 몰려 있다.
그곳에 섞여 있는 박영일 기자는 먹이를 기다리는 개떼처럼 눈을 붉히는 기자들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어, 그래 여긴 나한테 맡겨라."
전화를 끊은 박영일 기자는 카메라를 번쩍 들어 팽개쳤다.
"씨발!"
퍼억!?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모이자 박영일 기자는 담배를 물었다.
"그 지옥 속에서 발버둥 치다가 이제 막 구출된 사람들이다. 고작 열여덟 살, 스물세 살이야. 막냇동생, 딸뻘 아가씨들한테까지 이러고 싶냐? 박 선배, 김 선배. 이러고 싶어요?"
"……."
"특종도 좋은데…… 적당히들 하자, 적당히."
숙연해진 기자들은 카메라를 내리며 하늘을 향해 한숨을 쉬거나 담배를 물었다.
"짜식. 이제 좀 베테랑 티 난다? 뭔 일이야?"
바른 기사만 쓰지만,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살아온 박영일.
"아니, 그렇잖아요. 애새끼들이 밀레니엄이다 뭐다 염색하고 귀코 뚫고 껄렁거린다고 기자들도 미쳐야겠습니까? 군사정권 때 남산에 끌려가면서도 바른 소리 내뱉던 사람들은 전부 어디 간 겁니까?"
"그땐 어떻게든 이겨 내는 게 전부였고."
"그때랑 지금이랑 뭐가 다른데요? 어차피 먹고살기 더러워요."
"워워. 진정해, 인마."
"내 지인이 그럽디다. 이번엔 제발 물어뜯지 말아 달라고. 팩트만 전해야 하는 기자한테 들개 새끼처럼 물어뜯지 말랍니다."
"……끙."
"기자란 새끼들이 쪽팔린 줄 알아야지, 씨발."
그의 일갈에 얼굴이 붉어진 기자들은 고개를 돌렸다.
"다 알아들었으니까 적당히 해. 버스 들어온다."
안에서 청원경찰들도 빠르게 뛰어나와 기자들 앞을 막았다.
끼이익! 푸쉬이!
괴로운 소리를 내며 문을 여는 파란색 버스.
"아."
기자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
목이 다 늘어난 반팔이나 구멍 난 바지.
서울역 노숙자조차 덮지 않을 더럽고 냄새나는 군용 모포를 두른 여성들의 가느다란 팔과 다리에 멍이 있다.
대체 뭐가 그리 무섭고 두려운지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가린 것도 모자라, 군밤 장수 모자를 눌러쓴 여성들. 그 안에서 쓰던 것들을 담은 건지 저마다 커다란 포대를 들고 있다.
입을 꾹 다문 기자들은 카메라를 들어 셔터만 눌렀다.
이 처참한 모습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만 가진 채.
찰칵! 찰칵! 찰칵!
그런 기자들의 모습에 그녀들을 마중 나온 강철선을 비롯한 검사들은 경악했고, 모자를 푹 눌러쓴 채 그녀들을 인도하던 종혁과 눈을 마주친 박영일은 윙크를 했다.
종혁도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짝짝!?
"간단한 신원 조회만 하고 인터뷰할 거니까네 밥 묵고 사우나 가고 한 세 시간 뒤에 여기서 보입시더! 아시겠지요? 해산!"
기자들은 머뭇거리다 뿔뿔이 흩어졌고, 돌아선 강철선은 대검 로비에 모여 있는 여성들에게 다가가 허리를 숙였다.
"여타 변명은 안 하겠심니더. 늦어서 죄송합니더."
강력범죄형사부 조직범죄수사과 검사들 모두 허리를 숙였다.
"아, 아니!"
당황하는 그녀들의 모습에 죄책감이 담긴 눈으로 푸근히 웃은 검사들이 그녀들을 인도했고, 종혁도 리더 여성의 등을 밀었다.
"금방 끝날 거예요. 대면도 없을 거고요. 그 후에 예쁘게 화장하고 명품 옷 쫙 빼입고 나가면 기자들도 알아차리지 못할 거예요."
그래서 명품을 챙기라고 했던 거다.
혹시라도 파파라치처럼 대기하고 있을지 모를 기자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극과 극.
그가 형사 시절 피해자들을 보호하고자 자주 썼던 방법이다.
"……끝까지 고마워요. 정말로."
"이제 다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세요."
"네. 네에……."
이를 악문 그녀는 종혁에게 꾸벅 허리를 숙이곤 돌아섰다.
"아, 제 이름은 이현지예요! 이현지!"
"음?"
고개를 모로 기울이던 종혁은 이내 혀를 찼다.
"에이. 이현지란 이름이 희귀한 것도 아니고."
고개를 젓는 그에게 강철선이 다가섰다.
와락!
"욕봤데이. 저 아가씨들은 종혁이 니가 살렸다!"
후속 조치도 절로 감탄이 나온다.
여성들의 얼굴을 꽁꽁 가린 것도, 구해졌을 때 옷차림을 날것 그대로 데려온 것도 너무 잘해 주었다. 그 옷차림을 봤으니 기자들은 물어뜯지 않을 테고, 피해 여성들은 아무도 신변이 들키지 않은 채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다.
‘역시 이놈아는!’
"우리 셋째가 니 좋아한데메? 이참에 약혼할까?"
"그거 범죄입니다."
"일곱 살밖에 차이 안 난다! 니가 서른이 돼도 꽃다운 스물셋! 장인이라꼬 함 불러 봐라."
"무슨 소릴! 찬물도 위아래가 있지!"
로비를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종혁과 강철선은 기겁했다.
"부, 부장검사님? 차장검사님? ……중수부장니임?!"
지검장 바로 아래 대검의 실세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중엔 대검의 꽃 중 꽃, 모든 권력가들의 저승사자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부장도 있었다.
검찰총장의 명령만 받는 직계 수사기관 중수부.
종혁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중수부장이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