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7화>
14. 개구멍
"저희 검사님께서 인동파 보강해 달라고 하십니다."
"김형진이 보강 자료 어떻게 됐습니꺼! 아직 멀었습니꺼?"
"네! 지금 가요!"
오전 9시 땡.
업무가 시작되자 사무관들이 바빠졌다.
종혁은 전화기를 붙잡고, 자료실에서 자료나 판례를 가져오는 등 바쁜 그 모습에서 아주 익숙한 향기를 느꼈다.
"이게 사건 파일이라는 건데, 이렇게 정리하는 거야."
여성 사무관 서 양이 10센티미터 두께의 자료를 풀어 다시 정리한다.
종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
혹여 반려될까 공들여 정리한 어느 형사의 노고가 풀어헤쳐지니 형사였던 사람으로서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왜? 경찰에서 애써 정리해서 보낸 건데 다시 정리하는 게 이상해?"
"……아뇨. 검사님들의 성향이 저마다 다르잖아요."
어떤 검사는 기승전결로 정리된 걸 원하고, 어떤 검사는 목차를 만들어 정리하길 원한다.
"하루에 수십 건의 사건을 살펴야 하는데, 원하는 걸 한 번에 찾을 수 있게 하는 건 당연하죠. 그게 누나의 일이잖아요."
서포터. 이들은 검사가 오직 사건만 살필 수 있게, 보다 빨리 해결할 수 있게 모든 걸 지원하는 서포터다.
"어머?"
맞은편 전화기를 붙들고 있던 계장도, 15센티미터의 두꺼운 사건 자료를 살피던 강철선도 눈을 크게 떠 종혁을 보았다.
종혁은 어깨를 으쓱였다.
"예습은 기본이죠."
"……푸하하핫!"
"호호호!"
종혁은 웃는 그들을 보며 콧방귀를 꼈다.
‘내가 이 짓을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사무관은 아예 ‘우리 검사님은 이렇게 정리하시는 걸 좋아합니다.’라고 자기 일을 떠넘긴 적도 수두룩하다.
물론 그런 사무관은 얼마 못 가서 잘리지만.
"그럼 수사관이 하는 일이 뭔지 아나?"
"검사의 명을 받은 수사에 관한 사무, 형사 기록의 작성과 보존, 검사의 소송 업무 보좌, 그 밖에 검찰 행정에 관한 사무를 총괄하는 존재요."
검사의 손과 발이 여기에 있는 이들이다.
"허어."
질문을 했던 강철선은 씩 웃었다.
"흐흐. 짜슥. 그리 검사가 되고 싶었나?"
"네?"
"안다. 내가 니 맘 다 안다. 니도 검사가 좋으니까 거기까지 조사했긋제. 서 양아, 잘 갈치라. 미래의 검사님이시다! 혹시 아나? 나중에 쟈 밑에서 일할지?"
"호호! 전 끝까지 검사님과 함께할 건데요?"
"치아라, 마. 어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오해를 하는 것 같지만, 종혁은 굳이 정정해 주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돌려 사건 파일을 보았다.
‘이게 얼마 만에 보는 거야?’
사건 파일들을 보니 입과 손이 근질거린다.
"호호. 한번 보면서 정리해 볼래? 도와줄게."
"그래도 돼요?"
"괜찮아. 밖에 말하지만 않으면 돼."
그러며 그녀는 하나의 사건 파일을 내밀었다.
‘동출이파’라는 글자가 종혁의 눈에 훅 들어왔다.
‘어? 이거 그건데?’
일명 동출이파 사건.
바깥으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무려 검찰의 위상에 작은 흠집을 낸 사건이다.
주로 유흥업소 주류 공급과 운영, 성매매 알선이나 하던 작은 조직 동출이파. 그런 작은 조직이 검찰을 농락했으니, 이 당시 담당 검사는 지방으로 좌천되기까지 했다.
후에 서울지방검찰청도 아니고 대검 창고에 처박혀서 열람은 하지 못했지만, 대충 얼개는 알고 있다.
"우리 검사님은 기승전결로 정리하시는 걸 원하거든? 그러니까 이게 다음에 오도록……."
"아."
줄을 풀어 파일을 모두 풀어헤친 종혁은 동출이 파 같은 작은 조직의 사건이 왜 이곳에 왔는지 알 수 있었다.
보통 이런 사건은 경찰에서 모두 수사한 후 보내기만 하는데, 검찰에서 직접 보강 수사를 하고 있다.
경찰에 보강 수사를 해 달라고 돌려보내면 되는데 말이다.
"이거 대검에 다이렉트로 꽂힌 사건이구나."
‘그러니 서울지검이 수사했지.’ 대검에 직접 고소되어 서울지방검찰청으로 내려온 사건이다.
자료를 보니 동출이파는 사채도 했는데, 빚을 못 갚은 일반 여성을 자신이 직접 운영하는 유흥업소에서 일하게 만들었다. 그 숫자는 다섯 명뿐이지만, 거길 이용한 자들의 목록을 보니 헛웃음이 나온다.
구의원에, 구청 고위 공무원.
누가 대검에 찌른 거다. 무마시키지 못하게.
그런 종혁의 중얼거림에 서 양의 눈이 크게 뜨였다.
강철선의 몸도 약간 흔들렸다.
‘어떻게?!’
어느새 모두가 종혁을 집중했다.
"어? 조직원 숫자가 24명?"
직접 운영하는 업소가 네 개에 24명의 조직원.
마담이나 새끼들까지 모두 합하니 서른 명을 가볍게 넘긴다.
‘이거 뭐가 어떻게 된 거야?’
회귀 전 동출이파 조직원은 겨우 16명으로 알려졌는데, 후에 조직원이 더 있다고 밝혀졌다.
‘설마 아버님이 맡아서?’
성격이 대쪽 같아 위로 가지 못했을 뿐이지, 실력 하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강철선.
기분이 묘해진 종혁은 실실 웃으며 자료를 살폈다.
그러자 어떤 부분에서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흠?"
종혁은 장부 복사본을 보며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뭐지? 왜 이렇게 잘 들어맞지? 왜?’
장부만 보면 숫제 일반인 운영하는 유흥업소의 장부를 보는 듯 깨끗하다.
‘조폭 새끼들이 이렇게 깔끔하게 셈을 한다고?’
말이 안 됐다.
그런 그를 본 강철선이 몸을 일으켰다.
"와? 뭐가 까리하나? 남자라꼬 그란 데 관심 있는 게 아이고?"
"예?"
종혁의 손에 유흥업소 내부 사진이 들려 있다.
업소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찾은 사진.
"아, 아니."
이상한 오해를 받기 싫은 종혁은 사진을 내려놨고, 사람들은 웃음을 흘렸다.
"끄응."
"크크. 니가 봐도 뭐가 이상하제?"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너무 정직하게 장사한 것 같아서요."
강철선과 다른 이들의 눈이 빛났다.
"와 그래 생각하는데?"
"마담들이 죄다 30대 후반이잖아요."
화류계에서 30대 후반이면, 산전수전 단맛 쓴맛 똥맛 다 아는 나이다. 매출을 속이려면 얼마든지 속인다. 반장 삼촌에게 들었다는 걸 덧붙인 종혁의 말에 강철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햐아. 최 선수 니는 진짜 검사 해야긋다."
"예?"
"나도 그게 이상타 싶었거든. 마이킹 쓴 아가씨야 데꼬온 마담이 관리하는 거라지만, 나머지는?"
업소 여성들이 선불로 빌리는 돈, 마이킹.
선이자를 떼는데도 이자가 살인적으로 높아서 한번 마이킹을 쓴 순간 화류계를 벗어날 수가 없게 된다.
강철선은 빚을 못 갚아 끌려온 일반 여성 5명을 가리켰다.
"이 아가씨들이 올린 매출이 와 이리 정직하게 잡힌 기고?"
‘내 말이 바로 그겁니다!’ 5명이 올리는 매출은 공돈이다.
기록만 하지 않으면 빚진 돈을 차감할 일도 없으니 평생 노예로 데리고 있을 수 있는데, 장부에 기록을 한다?
조폭은 그렇게 친절한 존재가 아니다.
"그거 아나? 원래 밝혀진 조직원 숫자는 겨우 16명이었데이. 근데 그 숫자로 업장을 네 개나 운영한다꼬? 유흥업소만? 제아무리 수금만 한다 캐도 말이 되나?"
종혁은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고작 16명이 업소를 네 개나 직접 운영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 사이즈를 감당하지 못한다.
"뭐 백번 천번 이해해서 그렇다 치더라도, 주류 창고 지키고 돈 받으러 다닐라모 최소 저기서 반절은 빠져야 되거든. 그럼 대가리는 누가 지키는 기고?"
다 맞는 말이었다.
"그런 거였군요."
‘역시 아버님!’
"그렇다면……."
"이중 장부가 있는 기제. 뭐 대가리 동출이를 족치고 있은께 금방 불지 않겄나? ……여기 끌려온 아가씨들 숙소 위치도."
‘그래, 이거였지.’ 검찰이 망신을 당한 이유.
동출이파를 일망타진한 지 일주일 후, 경찰에 웬 아가씨가 찾아와 장부를 넘기고는 ‘자신들을 찾지 말라’라는 말을 남기곤 사라진다. 곧바로 대검에서 날아와 낚아채어 가서 경찰엔 짤막한 기록만 있을 뿐이었다.
‘끝내 끌려온 아가씨들 위치는 발각되지 않았지.’
그녀들의 신분을 알 수 있는 차용증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찰이나 검찰은 이들이 그냥 도망쳤다는 걸로 결론을 짓게 됐다.
‘이번에도 그러려나…….’
강철선이 종혁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건 뭐 가르칠 기 없노. 좀 부족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 거 아이가? 너무 그렇게 잘나면 인간미 없데이."
"하하하."
"뭐 꼬라지를 보니 기본 사무는 이쯤에서 쫑내면 될 것 같고…… 최 선수야, 현장 함 가 볼래?"
종혁의 눈이 번쩍 뜨였다.
강철선은 그런 종혁의 반응에 슬그머니 주먹을 쥐었다.
"검사도 여차하면 발로 뛴다 아이가. 어이, 뺀질이. 자나?"
"예, 검사님!"
"최 선수, 아니, 종혁이 데꼬 여기 한번 구경시켜 봐라. 우리 종혁이도 성인되기 전에 이런 데 한번 가 봐야 하지 않긋나?"
"푸핫!"
종혁은 강철선이 가리키는 유흥업소 내부 사진을 보곤 이마를 잡았고, 사람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종혁의 외출이 결정되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종혁과 서정호 수사관이 나가자 계장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제대로 키우시려나 봐요, 검사님. 재밌는 것만 보여 주시려고 하고."
컴퓨터 앞보다는 현장을 둘러보는 게 더 재밌다.
"방금 맥락을 따박따박 짚어 내는 거 못 봤습니꺼?"
단숨에 중앙에 맞지 않는 사이즈라 판단하더니 그 속사정을 짚어 냈다. 그런 후 보인 모습은 또 어떤가.
전후 사정을 모두 파악해 포인트를 짚어 냈다.
"쟈는 검사가 되기 위해 태어난 놈입니더. 그러니까 재밌는 것만 보여 줘야지요."
"하하. 확실히 범상치 않은 청년이긴 하더군요. 이러다 저희도 찾지 못한 장부를 가져오는 거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계장을 본 강철선의 눈이 가늘게 뜨였다.
"벌써부터 설날 떡값 걱정합니꺼?"
맞장구가 좀 과했다.
"어이쿠, 들켰습니까?"
"들켰으요."
"하하."
참 능글맞다고 고개를 저은 강철선은 종혁이 나간 문을 바라보다 머리를 긁으며 돌아섰다.
‘에이, 무슨.’
"동출이나 불러오이소. 오늘은 그 아가리를 열어야겠으니까네."
분명 숨기는 게 있는데 끝까지 말을 않고 있는 동출이파 보스 석동출. 오늘은 어떻게든 그 입을 찢어 끝까지 함구하려는 비밀을 끄집어내야 했다.
* * *
"이야. 이게 며칠 만에 나오는 바깥이냐."
부아앙.
차를 모는 서정호가 룰루 콧노래를 부른다.
눈부신 햇빛에 선글라스를 낀 모습이 딱 한량 같았다.
"그렇게 좋으세요?"
"요새 사무국 수사과 분위기가 영 아니라서 놀러도 못 갔거든. 뭐 언제는 안 그랬냐마는…… 아, 내일모레 수사과 예쁜 언냐들과 한잔 꺾을 건데 올래?"
종혁은 왜 강철선이 서정호를 보며 뺀질이라 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하하. 그런데 분위기가 안 좋다니요? 무슨 일 있어요?"
"무슨. 수사과야 언제나 분위기 안 좋지. 사건이 넘쳐 나니까. 그래서 내가 검사님 밑으로 들어간 거잖아."
일을 덜하기 위해서라는 말은 묵음 처리였다.
종혁은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바깥까지 나왔는데 뭐 먹을래? 형이 다 사 줄게! 만 원 안으로!"
"하핫."
뺀질거리지만 얄밉지는 않은 타입.
종혁도 싫어하지 않는 타입이었다.
"흐흐흐."
서정호는 카세트 플레이어를 틀었다.
쿵쾅쾅, 시끄러운 헤비메탈 노래가 차 안을 가득 울렸다.
그렇게 달린 차는 이내 곧 지하로 향하는 입구에 폴리스 라인이 쳐진 5층 건물 앞에 섰다.
"충성."
"어이, 수고합니다."
아직 모든 걸 토설하지 않은 석동출 때문에 혹여 증거나 단서가 인멸될까 봐 경찰이 유흥업소를 지키고 있던 차였다. 입구를 지키고 있던 경찰의 어깨를 두드린 서정호는 지하로 내려갔다.
"호오."
푸른 계열의 전등에, 대리석 바닥과 벽.
약 120평의 공간을 깔끔하고 고급스럽게 꾸며 놨다.
텐프로는 아니라도 그 밑은 될 수준이다.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 숫자로 운영할 만한 사이즈가 아니야. 이러니 아버님도 의심을 했지.’
회귀 전 검사가 의심하지 못한 건 ‘수금만 한다’라는 대목 때문일 것이다. 수금만 한다면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그 검사, 초임이랬지.’
연수원 성적이 좋고 빽도 좋아 서울지방검찰청에 왔을 초임 검사. 의심할 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크. 며칠 전 금요일 저녁에 박 터지게 싸운 게 기억나네. 여기서 네 놈을 쓸어 재끼면서 동출이파 넘버 2를 잡았는데."
"오. 몇 명이서요?"
"우린 열 명이었지!"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 안 웃네?"
"웨이터도 조직원일 수 있으니까요."
"……쩝. 정답."
종혁이 웃으면 정색하고 가르쳐 주려고 했던 서정호로서는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강 검사님이 검사로 만들 놈.’
즉, 언젠가 종혁은 검사가 될 것이고, 그땐 종혁도 서정호 본인과 같은 수사관을 쓰게 될 것이다.
그때 수사관을 부품 취급하지 말라고 가르치려고 했다.
"에이, 재미없어…… 응, 뭐 하냐?"
갑자기 1번 룸의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간 종혁이 소파를 눌러 보거나 벽을 두드린다.
"음? 아."
‘아차.’ 습관대로 행동했던 종혁은 다급히 머리를 굴렸다.
"영화 같은 곳을 보면 이런 데 뭘 숨기잖아요."
"크크. 짜식. 아주 열정적이셔? 그러다 검사 되겠다, 인마."
"하하."
"그래, 한번 해 봐. 이쪽 일 할 거면 직성이 풀릴 때까지 덤벼 봐야지."
‘오?’ 꽤 좋은 말을 한다.
"그렇죠. 자기가 본 게 아니면 믿지 말아야죠."
"캬. 그거 명언이네. 너 이 자식…… 최고!"
하하 웃은 종혁은 고삐도 풀렸겠다 1번 룸, 주로 마담이 머물며 쉬는 룸을 샅샅이 뒤졌다.
대부분 뭔가 숨긴다면 여기나 카운터에 숨긴다.
‘장부가 어디 있으려나…….’
그렇게 얼마나 뒤졌을까. 아쉽게도 나오는 건 없었다.
소파를 해체하듯 뒤집고, 노래 기기나 화장실까지 샅샅이 뒤져도.
"흐음."
‘이거 오기 생기게 만드네.’ 미간을 좁힌 종혁은 룸을 다 뒤지기 시작했고, 서정호는 혀를 내두르며 뒤를 따랐다.
그러다.
"스톱!"
종혁은 팔을 내밀어 막은 그를 의아해하며 보았다.
서정호는 그런 그를 보며 음흉하게 웃었다.
"여기부터는 미성년자 관람불가인데 괜찮겠어?"
"딱 봐도 대기실인데요?"
"그러니까. 여기에서 예쁜 언냐들이 옷을 갈아입고 어? 속옷 차림으로 어? 어후으. 속옷도 어?"
한숨을 내쉰 종혁은 그를 지나쳐 대기실을 열었다.
"어? 야! 야!"
바깥과 달리 대기실은 참 허름하게 꾸며져 있었다.
누런 장판에 시멘트 벽, 화장대 몇 개.
반대편 벽에는 옷장 세 개가 있었고, 바닥엔 당시 검거가 얼마나 기습적으로 이뤄졌는지 알 수 있을 만큼 옷가지가 널려 있었다. 일명 홀복과 일반 옷들이 장판처럼 수북하게 깔려 있다.
그리고 어디선가 나는 지린내.
전형적인 도우미 대기실이었지만, 종혁은 왠지 위화감이 느꼈다.
"왜지?"
죽 훑어본 종혁은 그제야 위화감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여기서 일한 아가씨가 몇 명이랬죠?"
"열두 명?"
‘역시!’ 종혁은 코웃음을 쳤다.
"이 큰 곳을 열두 명이서 커버해요? 만약 그렇다 쳐도 홀복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바닥에 깔린 것만 못해도 50벌이다. 문이 열린 옷장 속에 걸린 것까지 합하면 거의 백 벌이 넘는다.
"그야 물론 출근하지 않은 애들이 있다고……."
서정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런 곳에서 일하는 여성들에겐 벌금이란 게 있다.
지각 벌금, 무단결근 벌금.
그런데 급습했을 때가 금요일이다.
진짜 피크인 토요일보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피크인 금요일에 출근하지 않는다?
말이 안 됐다.
"설마 숨겨진 뒷문이?"
급습할 때 입구뿐만 아니라 뒷문까지 확인했다.
그런데 뒷문이 하나 더 있는 것 같았다.
눈에 불똥이 튄 그는 다급히 근처부터 살피기 시작했고, 종혁도 눈빛을 굳히며 그의 맞은편 옷장으로 향했다.
‘여기에 없다면 대체 어디에…….’
쿵쿵!?
세 개의 옷장 벽을 차례대로 두드리던 순간이었다.
텅!
"어?"
뒤에 빈 공간이 있지 않으면 나지 않을 소리.
우습게도 바닥엔 손잡이까지 달려 있다.
날듯이 달려온 서정호는 종혁을 밀어내며 귀를 기울였다.
희미한 바람 소리만 나는 벽.
마른침을 삼킨 그는 손잡이를 잡아 밀었다.
끼이익!
그 순간 코를 확 찌르는 지린내와 가계부, 차용증 등이 가득 든 박스 세 개가 눈에 들어왔다.
‘이중 장부다!’
서정호와 그의 어깨로 머리를 내민 종혁은 기함했다.
옆으로 난 복도 같은 공간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하지만 아직 경악하기엔 일렀다.
부스럭!?
옆으로 난 좁고 어두운 복도에서 난 인기척.
"사, 삼촌? 저, 저희 나가면 돼요?"
피죽도 못 먹은 듯한 희미한 목소리와, 최소 열 명은 될 법한 기척에 종혁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런 곳에 갇혀 있었다니……."
표정이 딱딱하게 굳은 서정호도 휴대전화를 들었다.
"예, 서정홉니다, 검사님. 대기실에서 숨겨진 공간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여자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