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3화>
* * *
암울한 시대가 만든 범죄자, 한상원.
한편에서 말하길 부잣집만 터는 의적.
그는 국민학교 시절 선생에게 촌지를 주지 않아 아이들 앞에서 큰 망신을 당한 이후 악마가 되어 버렸다고 밝혔다.
"지랄."
범죄자는 무슨 변명을 해도 범죄자였다.
그보다 힘들게 살았는데도 선하게 자란 사람이 천배 만 배 많다.
물론 어쩌다 엇나가 범죄자가 된 케이스라도 회개를 한다면 사람 취급을 해 줄 수 있지만, 한상원은 그런 놈이 아니다.
자서전을 쓰는 그 순간까지도 변명만 늘어놓던 그.
-다녀올게요. 필요한 거 있어요?
커다란 헤드셋을 낀 채 창문 옆 침대에 누워 도청기기 본체를 배 위에 올려놨던 종혁이 몸을 일으켰다.
안방이 아니라 다른 곳에 놔둔 듯 감도가 약하던 도청기.
박살이 나진 않은 것 같았지만,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미래, 범인의 가족을 감시하거나 수사에 협조하는 사람들에게 들려 보내는 도청 장치. 말하는 인형의 보이스 기기에 이중으로 숨겨 두는 거라서 매사에 조심스러운 사람이라도 속을 수밖에 없다.
보이스 기기를 열어 보지 않는 이상 말이다.
이는 종혁이 직접 청계천 뒷골목에 오더를 한 거다.
종혁은 숨을 죽였다.
-아니. 오늘은 답답해서 잠깐 나갔다 오려고.
끕!?
종혁은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겨우 참았다.
오늘 안에 한상원의 목소리를 들을 거라 예상했지만, 정말 들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집 안이라고 방심한 건가?"
그는 얼른 음역을 키웠다.
-괜찮겠어요?
-새벽에 잠깐 나갔다 올 건데, 뭐.
"나간다고?"
순간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여차하면 튀는 촉을 가졌기에 잡지 못한 한상원.
종혁은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계속 일 시켜서 미안해.
‘인형을 신발장 근처에 뒀군. 쓰레기통에 버린 건가?’
소리가 천둥처럼 들린다.
-또, 또 그런 소리 한다. 상원 씨는 떳떳하게 돌아다닐 수 없잖아요. 제가 좋아서 하는 거예요.
-……미안하다. 그리고 사랑한다.
쪽쪽, 버드 키스 소리는 구역질을 하느라 듣지 못했다.
"가지가지 한다. 찌질한 새끼가 변명은."
훗날 여러 영화들로 인해 나쁜 남자로 미화되는 기둥서방.
그저 돈 벌기는 싫어 여자를 업소에 보내는 찌질이일 뿐이다.
헤드셋을 벗은 종혁은 책 한 권을 들고 창가로 걸어가 이제 막 맨션 입구로 걸어 나오는 유미를 눈에 담았다.
슈퍼로 다가간 그녀는 슈퍼 아주머니와 어떤 대화를 나눴다.
둘의 손짓과 발짓, 그리고 입술의 움직임을 보면 대충 이랬다.
‘저기 원룸에 이사 온 청년에 대해 아냐.’
‘좋은 청년이다. 넘보지 마라.’
뭐 이런 대화였다.
도청기를 설치할 수 없는 상황에서 범죄자들의 대화를 엿들어야 되기에 자연스레 익히게 된 독순법.
"의심하고 있군."
슈퍼 아주머니의 말이 마음의 상처가 됐는지 발을 동동 구르며 돌아선 그녀는 휴대전화를 들었다.
입술 움직임을 보면 대충 ‘정말 이사 온 거다’라는 뜻이었다.
누구에게 전화를 걸었는지 바로 예상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러다 종혁과 눈을 마주친 그녀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종혁은 머뭇거리다 책을 든 손을 들어 흔들었다.
꺄르르 웃은 그녀는 발걸음 가볍게 떠났고, 돌아선 종혁의 눈빛은 차가워졌다.
"저 여자…… 흠."
띵동띵동!
다급히 이불을 던져 도청기를 감춘 종혁은 현관문을 열었다.
알싸한 냄새를 풍기는 작은 통이 내밀어졌다.
"총각, 파김치 좋아해?"
"사랑합니다!"
안쪽을 스윽 둘러보던 슈퍼 아주머니는 뜬금없는 고백에 웃음을 터트렸다.
짜파게티 열 봉지에 계란 프라이를 몽땅 넣어서 파김치에 야무지게 싸먹은 종혁은 새벽 2시 불 꺼진 방에서 졸음과 싸우다 눈을 번쩍 떴다.
-탁탁.
신발을 신는 소리.
-……남은 장물 정리하고 돌아오는 길에 인형을 구해야겠군. 옆 동에서 인형 파는 리어카를 본 것 같은데.
강도살인 및 치사. 본래 강도였던 놈답게 사상부터 불순했다.
"정말 산책인가?"
이렇게 숨어 지내는 와중에 도둑질을 한 게 놀랍다.
"하긴 이런 이유 때문에 여러 고위 간부 목이 날아갔지."
도주하는 동안에도 절도 및 강도 행각을 벌인 한상원.
종혁은 암막 커튼 사이로 살짝 드러낸 카메라에 다가갔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한상원이 맨션 입구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대담한 한상원답게 터벅터벅, 한량처럼 느긋이 걷고 있었다.
모두가 잠들어 고요한 새벽녘, 뭔가로 가득 찬 가방을 들고 있어서 그런지, 열어 놓은 화장실 창문으로 달각달각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본디 출근할 때 미련이 남은 듯 뒤를 돌아보거나, 퇴근할 때 집에 누군가 기다리고 있는 듯 장 본 것을 바리바리 싸들고 다급히 들어가는 업소 여성 등 용의 선상을 좁히기 위해 구매한 카메라.
도청기의 안전한 침투로 인해 구매한 의미가 없어졌지만, 종혁은 그를 찍었다.
플래시 없고, 소리 없는 셔터가 눌렸다.
청계천에서 개조된 초고가의 물건. 성능은 확실했다.
그 순간 한상원이 창문을 쳐다봤다.
"……!"
카메라를 통해 서로를 쳐다보는 둘.
종혁은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설마? 설마?’
"……휴."
종혁은 곧 고개를 돌려 사라지는 한상원의 모습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미행 준비를 했다. 그렇게 모자를 잡아 가던 종혁은 갑자기 찌릿 하고 촉이 선 탓에, 모든 행동을 멈추며 귀를 기울였다.
숨소리조차 조절한 약 20여 분이 흐른 후.
……터벅터벅!?
누군가 원룸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종혁은 헛웃음을 지었다.
"이 개새끼."
아무래도 미행은 무리일 것 같았다.
갈등하던 종혁은 매트리스에 엉덩이를 붙였다.
"……튀는 건 아니야."
점퍼의 후드는커녕 모자나 마스크조차 쓰지 않았다.
누군가를 피하기 위해 도망치는 사람은 본능적으로 얼굴을 가리려 하는데, 이는 무의식적인 행동이라서 인식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지금 시대의 형사는 이걸 경험을 통해 알고 있지만, 가까운 미래엔 심리학이 기반이 된 수사 기법 중 하나로 정리된다.
역시나 이런 종혁의 생각이 맞는 듯 아직 누구도 깨어나지 않은 새벽 3시 반이 되자 한상원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한 손엔 제 몸의 반 만한 곰 인형을 들고.
"절도죄 추가, 씨방새야."
한상원이 맨션으로 들어갔다. 이후 7시에 유미가 퇴근하고, 둘이 머무는 방에서 꺅 비명 소리가 터진 이후 커튼조차 걷히지 않자 종혁은 휴대전화를 들었다.
-어으. 여보세요…….
"반장님, 저 아무래도 한상원을 본 것 같은데요. 사진도 찍었어요."
지금 당장이라도 혼자서 한상원을 잡을 수는 있다.
하지만 만에 하나 도주를 한다면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그래서 종혁은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기로 했다.
-쿠당탕! ……뭐, 뭣?! 어디서? 거기가 어딘데!
"여기가……."
* * *
눈을 번쩍 뜬 한상원은 커튼을 살짝 열었다가 헛웃음을 지었다.
"그놈인가……."
아니다. 종혁은 깨끗한 신발장만 보고 돌아갔다.
거기다 팬티를 드러낸 여자를 봤는데, 그런 남자가 다른 걸 생각할 수 없을 터.
‘베테랑 짜바리면 몰라도.’
그는 다시 바깥을 봤다.
모르는 차 두 대에, 처음 본 사람 다수.
이 짧은 시간에 벌써 한 명이 맨션 입구를 두 번이나 지나쳤고, 고작 10시밖에 안 됐는데 붕어빵 천막이 펼쳐져 있다.
종혁이 밀고자가 아니라도 역시 감을 따랐어야 된다고 자책한 한상원은 유미와 그 옆에 놓인 곰 인형을 보았다.
‘저것만 아니었다면!’
모두 유미 때문이다. 작은 미련이 이렇게 만들었다.
죽일까 생각했던 한상원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럴 시간이 없다.’
반항이라도 했다가는 귀찮아지는 것도 있지만, 지금부터는 그녀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는 유미를 흔들어 깨웠다.
"우웅. 왜요……."
"이거 가지고 얼른 아래층에 같이 일하는 애들 집으로 가. 그리고 내일 거기로 와."
한상원이 내민 가방의 싸늘하고 묵직한 촉감에 유미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건 종혁도 마찬가지였다.
"씨불?!"
그는 다급히 창문 밖을 봤다.
그리고 이마를 잡았다.
"이 개…… 아니, 잠복의 기본도 모르나?!"
왜 들켰나 싶었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한상원이 동정을 감시하기 위해 먼저 보낸 인원을 알아차린 것이다.
감시를 할 때 목표물 근처에 다가가지 말아야 한다는 점, 평소와 같은 풍경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을 어긴 형사들의 행동에 짜증이 났다.
딴에는 잘해 보려고 한 것일 테지만.
"이러니 그렇게 잘 도망쳤지!"
형사들의 잘못이 크지만, 난 놈은 난 놈이다 싶었다.
아직 공식 매뉴얼조차 없는 시기라지만, 변명의 여지는 없다.
종혁은 숨을 죽여 다음 말을 기다렸다.
"거, 거기라면 우리 동네 얼마 전 죽은 그 영감님 댁 맞죠? 137번지."
"오늘 오후 5시 30분까지 와."
전처럼 도시의 모든 출입구가 봉쇄됐을 터.
경계가 풀릴 때까지 숨죽여 있어야 했다.
"……흑!"
옷을 입은 그녀는 가방을 꼭 끌어안고 현관으로 향했다.
"꼭 연락해요."
"가."
그녀는 머뭇거리다 이내 현관을 나섰고, 바깥의 동정을 살핀 한상원은 다른 가방을 들고 화장대 앞에 섰다.
지익!
하얀 머리의 가발을 보는 한상원의 눈이 번들거렸다.
그리고 잠시 후.
딱! 딱!
한 손엔 가방을, 다른 손엔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맨션 입구를 빠져나왔다.
굽은 등, 털 고무신, 검은색 점퍼에서 나는 묘한 악취.
하얀 수염도 덥수룩한, 추레한 노인이었다.
슈퍼 안에서 의아해하는 여주인을 일견한 그는 붕어빵 장사를 하고 있는 40대 중년인을 보았다.
그런 그의 옆으로 종혁이 지나쳤다.
"아저씨, 붕어빵 만 원어치요."
"어이구, 그렇게 나요?"
"제 덩치를 보세요. 음? 안녕하세요?"
눈이 마주친 둘.
1초의 짧은 시간, 서로를 탐색하던 둘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한상원은 지팡이를 짚으며 골목을 따라 걸었다.
그의 등 뒤로 종혁의 말이 울렸다.
"쩝, 말이 없으신 분인가 보네. 그런데 아주머니는 어디 가시고 남편분이 나오셨어요?"
"감기에 걸려서요."
"아아. 일단 구워진 것부터 주세요. 어묵 국물이랑 먹게."
"예!"
한상원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따뜻한 붕어빵을 입에 문 종혁은 한상원의 굽은 등을 보며 허허롭게 웃었다.
‘모르고 만났으면 깜빡 속았겠네.’
위화감이 거의 없다.
도청기가 아니었다면, 허망하게 놓쳤을 거다.
그래도 유미가 있지만, 그녀를 구속해 입을 열게 만들 때쯤이면 한상원은 이상함을 눈치채고 도망친 후일 터.
‘잡을까?’
눈이 마주친 순간 분명 튈 준비를 마쳤던 한상원.
지금도 이쪽에 모든 신경을 기울이고 있는 게 훤히 보여 뒷덜미를 낚아채고 싶지만, 그러다 놓치면 골치 아파진다.
전국의 난다 긴다 하는 형사들에게서도 도망친 경이로운 주력과 담을 훌쩍훌쩍 뛰어넘는 운동신경.
지금 어설프게 잠복하고 있는 형사들이 오히려 검거에 방해가 될 거다.
종혁은 아쉬움을 접었다.
‘좀 있다가 보자, 새끼야.’
"아, 잘 구웠네. 맛있네요."
"하하, 감사합니다."
따악! 딱!?
지팡이 소리가 느릿하게 멀어졌다.
* * *
137번지. 일반적인 2층 주택의 쪽문을 열쇠로 열고 들어간 한상원은 흠칫 몸을 굳혔다.
그건 좁은 마당에 나와 있던 한 50대 장년인도 마찬가지였다.
"누구?"
한상원은 말없이 지팡이로 2층을 가리켰다.
"아. 얼마 전 2층에 사글세 들어오셨다는 어르신이시군요. 말을 못 하신다고요?"
한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가방에서 필기구를 꺼내 끄적끄적 몇 글자를 적었다.
-서울 아둘 집에 가다 와서요. 혀님 안에 있쏘?
초등학생보다 악필인 글씨.
그러나 장년인의 낯빛이 흐려진다.
"아버지는…… 후. 잠시 먼 곳에 가셨어요. 그보다 동네가 어수선하니까 밖에 나오지 마세요. 한상원 그 새끼가 저기 맨션에 숨어 있대요. 경찰이 쫙 깔렸어요."
억지로 돌리는 화제에 고개를 끄덕인 한상원은 2층 문을 열고 들어갔다.
유미와 함께 살게 된 이후 오늘 같은 사태를 대비해 만든 안가.
가득 낀 먼지 냄새가 그의 콧속으로 훅 풍겨 왔지만, 그는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옷을 벗은 그는 화장실로 향했다.
쏴아아!
쏟아지는 물줄기에 절로 나오는 웃음.
"백날 찾아봐라. 내가 잡히나."
맨션 근처에 경찰들이 쫙 깔렸다고 하지 않나.
등잔 밑이 어둡다는 건 언제나 통하는 진리였다.
"멍청한 짭새들."
경찰을 비웃으며 씻은 그는 여유롭게 라면 물도 올리고 청소도 했다. 경계가 풀릴 때까지 앞으로 최소 일주일은 살아야 하는 곳이라 청소는 필수였다.
"음. 맛있는 냄새."
하지만 김치가 없는 게 아쉬웠다.
유미에게 김치를 사 오라고 해야겠다 생각하며 양은 냄비 뚜껑에 라면을 옮기던 그 순간이었다.
멈칫!
온몸을 엄습하는 싸늘한 공기.
부산스러운데, 조용하다.
냄비를 다시 덮은 그는 모든 창문에 쳐져 있는 커튼 중 하나를 살짝 열었다. 그리고 눈을 부릅떴다.
‘어, 어떻게?’
뒷집 2층과 1층에 형사 수십 명이 숨죽인 채 이쪽을 보고 있다.
그 옆집에도 있다.
그는 다급히 좁은 골목 쪽으로 난 화장실 창문을 열었다.
"이거 너무……."
"너무해도…… 야지. 어차피 독 안에 든 쥐새끼."
알싸하게 올라오는 담배 냄새와 섬뜩한 말.
모든 커튼을 들어 본 그는 깨달았다.
어떻게 알게 된 건지는 둘째 문제.
도망칠 구멍이 없었다.
"……끝났나."
지난 2년여간 숨어 지냈던 시간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이대로 허망하게 끝낼 순 없었다.
자신은 한상원이었다.
대한민국의 밤을 무섭게 만든.
그는 부엌의 식칼을 꺼내 들었다.
"갈 때 가더라도 절대 혼자 가지 않아."
그는 현관을 향해 발을 옮겼다.
그와 동시에.
우르르!
여러 사람이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띵동! 띵동!
"상원아! 가자! 안에 있는 거 다 알아! ……기동대 앞에 서!"
"제기랄."
한상원은 다급히 물러섰다.
"부숴!"
쾅! 쾅! 꽝!
거칠게 열리는 현관문. 경찰들이 파도처럼 밀려 들어오는 걸 본 한상원은 식칼을 휘둘렀다.
"다 덤벼. 이 개새끼들아-!"
주춤.
시퍼런 칼날에 경찰들은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하, 새끼."
담배를 문 김종두 반장은 옆에 놓인 쓰레기통을 들어 던졌다.
퍼억!?
"윽!"
"지금이야, 덮쳐!"
우르르르르! 쿠당탕!
"으아아악! 놔! 놔아-!"
칼을 쥔 손과 온몸을 누르는 경찰들.
그 밑에 깔린 한상원은 짐승처럼 울었다.
* * *
"한상원이다!"
밖에 모여 있던 기자들이 외치며 카메라를 들이밀고, 경찰들은 비키라며 손을 저었다.
촤라라라!?
셔터가 울리고, 기자들이 온갖 질문을 쏟아 냈다.
그에 무려 여덟 명의 형사들에게 들려 질질 끌리는 한상원은 고개를 들어 무심히 그들을 쳐다봤고, 그걸 지켜보던 사람들은 ‘와아!’ 하고 양손을 들어 환호했다.
드디어 대한민국의 밤을 무섭게 했던 한상원이 검거 된 것이다.
"어이구, 총각이 복덩이네, 복덩이야! 저 흉악범이 우리 동네에 숨어 있는지도 몰랐지만, 어떻게 총각이 오자마자 잡혀?!"
"하하. 우연인 거죠. 그래도 잡혔으니까 다행이네요."
"그럼! 그럼!"
종혁은 순간 눈이 마주치자 이를 가는 한상원을 향해 주먹 감자를 날렸다.
"좃까, 새끼야."
움찔!
놀리는 듯한 미소 속에 후련함이 있다.
마치 주위 형사들처럼.
‘서, 설마 저놈이?’
어떻게 자신을 찾았는지 모르지만, 느낌이 왔다.
저놈이다. 저놈이 신고를 했다.
뚝.
머릿속의 이성이 끊겨 버렸다.
"으아아악! 죽여 버린다! 죽여 버리겠어!"
"갑자기 왜 이래?! 눌러!"
"으아아아악!"
‘그럼 안녕히 잘 가시고.’ 도주의 달인인 한상원도 이제 옛말이 될 터였다.
손을 흔들어 인사한 종혁은 경찰들이 막고 있는데도 화들짝 놀라 물러서는 주민들 사이를 빠져나가 한상원을 보며 눈물을 그렁거리는 한 여성, 유미의 등 뒤에 섰다.
"당신을 이용만 한 저런 범죄자는 잊는 게 좋을 겁니다."
흠칫!
"너! ……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속초 최 모 양, 대전 김 모 마담……."
종혁은 한상원이 일기에 적어 놓은 여성의 성들을 빠르게 말했다.
"그리고 모르죠? 이 동네에 오기 전에 만난 여자와 아기를 가졌는데, 낙태시킨 거?"
"무슨! 거짓말하지 마!"
"내가요? 왜요? 무슨 영양가가 있어서? 한상원이 맡긴 그 영치금? 그거 천만 원은 돼요?"
종혁은 손목을 걷어 롤렉스를 보였다.
유미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저, 정말이야?"
"그건 나중에 저 새끼가 쓸 옥중일기 보고 믿으시고."
너무 확신하는 모습에 그녀는 흔들렸다.
종혁은 쐐기를 박았다.
"그거 영치금입니다. 범죄자 새끼들이 교도소 안에서 음식 사 먹을 돈. 어차피 교도소 밖으로 못 나올 걸 자기도 아니까 장물 판 돈을 맡긴 거예요. 그거 아가씨 위해 쓰라고 했어요?"
"……아니."
그녀의 눈 속에서 여러 감정이 복잡하게 섞인다.
"그랬겠죠. 혹여 들고 나르면 안에서 콩밥만 먹어야 하거든. 못 믿겠으면 전 여자들을 만나게 해 줄 수 있어요. 서로 만나서 ‘아니야, 한상원이는 날 제일 사랑한다고 했어.’ 하면서 머리끄덩이 잡고 싸우면 볼만하겠다, 그죠?"
"……정말이구나. 정말로 날……."
"이용한 겁니다. 당신은 바보처럼 당한 거고. 제비에게 꺾인 노류장화처럼."
"하지만!"
"범죄자는 무슨 변명을 해도 범죄자예요. 의적? 노가다 판에서 힘들게 벽돌 나르는 사람은 죄다 병신입니까?"
이렇게 말하는데 어떻게 믿지 않을까.
주르륵,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자, 그럼 이제 이해한 것 같으니……."
트드득!?
그녀의 양 손목이 어떤 줄에 의해 하나로 모였다.
"으응? 이, 이거 뭐야?"
"뭐긴 뭐야. 범죄자를 은닉한 사람 도망 못 치게 만드는 케이블 타이지."
한상원이 꼬드겨서 숨겨 줬다?
개소리이다. 다 알고 숨겨 준 순간, 유미도 범죄자이다.
다시 한번 잡아당겨 손목을 묶은 종혁은 막 울리기 시작한 휴대전화를 들었다.
-어디냐. 이 사랑스러운 놈아-!
종혁 덕분에 한상원의 위치를 파악했는데, 이쪽의 실수로 놓칠 뻔했다가 다시 종혁의 도움을 받아 검거했다.
심장이 멈췄다 다시 뛰었다.
무조건 2계급 특진, 본청 영전이었다.
"그러는 반장님은요? 지금 한상원 숨겨 준 여자 잡았는데."
-……거기 딱 기다리고 있어! 이 보물아-!?
실실 웃은 종혁은 이제야 상황을 깨닫고 도망치려는 유미의 머리를 한 손으로 잡아챘다.
목이 꺾인 그녀는 허공에 붕 떴다가 떨어졌다.
"아악! 놔! 놔아악-! 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