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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41화 (41/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1화>

    *  *  *

    지하의 커다란 단란주점 안.

    빨간 조명 때문인지, 아니면 흐르는 피 때문인지 눈앞이 시뻘겋다.

    "허억! 헉!"

    구석으로 몰린 종혁은 각목이나 쇠파이프, 사시미 칼 등을 들고 있는 이십여 명의 덩치들을 노려보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칼이 박혔다가 빠져나간 배와 팔, 다리가 뜨겁다.

    "이야. 저승사자 최 형사도 쪽수에는 안 되나 보네?"

    뺀질거리는 키 작은 선글라스.

    강남 마약 조직 해머파의 두목, 망치 도현철.

    퇴근길, 쩌리 판매책 한 놈이 이 단란주점에서 마약 거래를 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급히 달려왔는데, 함정이었다.

    ‘어쩐지 들어오기 싫더라니.’

    취객의 노랫소리가 많이 흘러나오기에 무시하고 들어왔더랬다. 종혁은 머리에서 흐르는 피를 닦으며 사납게 웃었다.

    "야. 너희 애들 사료 좀 더 먹여야겠더라. 어떻게 나 같은 말라깽이 하나한테 열다섯 명이 따이냐?"

    "킥! 곧 죽을 새끼가 허세는. 왜? 아까처럼 전화해 보지? 혹시 알아? 지원 올지? 아, 핸드폰 박살 났지. 빌려 줘?"

    움찔!

    종혁은 자신도 모르게 바지 주머니에 손을 가져가려다가 멈췄다.

    아까 룸에 숨어 전화를 하려다가 몸싸움 끝에 박살 난 핸드폰.

    ‘현석이.’

    벌써 2년째 본청 마약반 파트너.

    처음 봤을 때부터 행님, 행님 하던 되바라진 놈.

    검사 부친을 뒀으면서도 순경 시험을 치르고, 진급에 전혀 관심이 없는데도 실적이 알아서 달라붙는 운까지 좋은 개새끼. 하나부터 열까지 맞지 않는 놈이다.

    ‘반장님이 아니라 왜 그놈한테 전화했는지.’

    참 모를 일이다.

    하지만.

    ‘어머니 생신날이 아들 제삿날이 되게 할 순 없지.’

    오늘 어머님 생신이라고 일찍 퇴근한 현석.

    그래도 2년간 함께 숙식해서 그런지 전화하기가 힘들다.

    다른 동료들은 더욱더.

    종혁의 머릿속에 죽음이 떠올랐다.

    ‘최소한 본청 계장은 되고 싶었는데…….’

    "됐다. 뽕쟁이 새끼들 때려눕히는 게 뭐 힘들다고."

    아니, 힘들다. 몇 대 맞으면 겁먹는 조폭들과 달리, 마약하는 놈들은 약발 때문인지 겁이 없다. 제 몸뚱이 박살 나는 줄도 모르고 달려들기에 상대하기가 까다롭다.

    "후우. 다 쉬었으니까 들어와 봐. 그런데 알지? 나한테 함부로 사시미 휘두르면 죽는다는 거?"

    안다. 그래서 저승사자라 불린다.

    칼을 든 순간 은퇴시켜 버린다고 해서 저승사자.

    오늘도 칼을 든 조직원들 모두 은퇴할 정도의 상처를 입었다.

    "……쳐!"

    "우아아아아아!"

    눈이 뒤집힌 스무 명이 달려들던 그 순간이었다.

    취이이이이익!

    "으악! 뭐야?!"

    "저 새끼 막아! 소화기 뺏어!"

    종혁은 보지 못하는 복도에서 퍼지는 혼란.

    "행님! 살아 있나?!"

    종혁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왜 왔냐, 썩을 놈아!"

    저 죽을지도 모를 자리를 찾아온 미련한 놈.

    "왜 오긴! 우리 고슴도치 행님이랑 친해지려고 왔지! 얼른 끝내고 술 한잔 찐하게 합시다! 이제 생리는 그만 싸고!"

    "미친 새끼. ……하여튼 마음에 안 드는 새끼."

    그러나 눈빛이 살아난 종혁은 이리저리 찢겨 거추장스러운 점퍼를 벗어 한 팔에 감았다.

    "그럼 오케이 한 줄 알고 나 들어간데이! 뭐하노! 안 비키나, 뽕쟁이 새끼들아!"

    떠엉!

    "으아악!"

    "쳐!"

    저 먼 곳에서부터 시작된 혼란에, 종혁은 당황하는 망치 도현철을 보며 목을 꺾었다.

    "상황이 바뀌었지? 그럼 이제 수갑 차자, 이 씨벌놈아!"

    종혁은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  *  *

    "훅?!"

    이불을 박차고 깨어난 종혁은 몸 이곳저곳을 살피다 한숨을 내뱉었다. 화인처럼 남은 칼 맞은 자리들.

    그러다 정신을 차린 그는 피식 웃었다.

    "현석이 이놈을 만나서 그런지 옛날 꿈을 꿨네."

    이때부터였다.

    현석을 가족처럼 생각하게 된 게.

    "미친놈."

    제 죽을 자리라도 한번 마음 준 사람을 위해서라면 서슴없이 뛰어드는 미친놈.

    솔직히 현석보다 능력이 있는 사람을 포섭하는 건 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생이란 긴 시간에 있어서 현석만큼 신뢰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을 얻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렇게 돈과 시간을 들이는 거다.

    "그러니까 얼른 커라, 이놈아."

    웃음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종혁은 강철선이 투자를 받아들인 상황을 떠올렸다.

    "……그래.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결코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신의는 무조건 지키는 강철선.

    그와 함께하게 된 게 중요했다.

    고개를 끄덕인 종혁은 방에 놓인 팩스로 다가가 보자기 천을 걷었다. 어제 늦게 들어오는 바람에 확인하지 못한 것들이 제법 쌓여 있었다.

    권&박 홀딩스 새 사옥 후보부터 국내 및 해외 증시 상황 등 족히 수십 장의 자료.

    "흠. 역시 부동산이 부실하네."

    닷컴 버블에 투자를 하고 남은 액수를 국내 부동산에 투자한다고 하는데, 미래에 대박 나는 부동산들이 없다.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 전국을 누비며 ‘햐, 저걸 샀어야 했는데.’ 했던 부동산들. 새 사옥 후보들도 썩 마음에 드는 게 없다.

    "확실히 권 PB나 태규 씨가 이쪽에 소질이 없긴 하지."

    이는 종혁도 마찬가지이다.

    증시야 재능이 있다는 걸로 위장을 할 수 있지만, 부동산은 아니다. 사 놓으면 뜨는 게 부동산이라지만, 거기엔 온갖 요소와 막대한 운이 포함되어 있다.

    "정 안 되면 부동산에도 재능이 있다고 꾸미거나…… 흠. 그 여자가 딱이긴 한데."

    2010년도 이후 우리나라 최고의 부동산 투자가.

    2013년 소유한 부동산만 1307채. 개중 3억 미만의 부동산은 단 한 채도 없다. 주로 경매를 통해 부동산을 매입했다.

    "지금쯤 뭘 하려나."

    지방 출신인 건 알지만, 워낙 비밀스러운 사람이라 그 이상은 모른다. 범죄를 저지른 게 아니어서 그렇다.

    입맛을 다신 종혁은 나머지 자료를 살피고는 거실로 나갔다.

    치이이이익!

    어머니 고정숙이 인부들을 위한 아침 새참으로 부침개를 만들고 있었다.

    종혁은 수십 장 쌓인 부침개 중 하나를 집었다.

    "음. 맛있는 냄새."

    "북엇국 끓여 줘?"

    "응? 아니, 됐어. 아들 술 안마셨다니까."

    "그런데 왜 그렇게 늦게 왔어?"

    "나랑 같이 몰래카메라 출연하신 검사님 있지? 그분이 검사 되라고 밥 사 주셨어."

    "검사?"

    고정숙의 눈이 반짝였다.

    "왜? 아들 검사 될까?"

    "……검사도 나쁘지는 않지."

    종혁의 아버지가 범인을 쫓다 죽었기에 안전하게 책상에서 일하는 검사가 끌리기는 하지만, 그녀가 반한 게 박력 넘치게 범인을 검거하던 모습이었기에 갈등이 생긴다.

    "오케이. 검사도 후보로 등록."

    고정숙은 아들의 자신 있는 모습에 웃음을 흘렸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더니 공부뿐만 아니라 금메달까지 딴 아들. 계속 이렇게만 커 줬으면 싶었다.

    "오늘부터는 공사장에 나오지 마. 쉬면서 친구들이라도 만나."

    정말 인부 값을 아끼고자 종혁을 공사장에서 일을 시킨 게 아니다. 돈을 버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려 주기 위해서였다.

    궁핍한 삶을 당연하게 살아오다 맞은 돈벼락.

    알아서 척척 잘하는 아들이지만, 돈에 취할까 무서웠다.

    못난 어미로서 알려 줄 거라곤 이런 것밖에 없는 게 한스러웠다.

    "웬일?"

    ……짜악!

    "으따따따따!"

    "얼른 씻기나 해. 엄마도 일 가야니까!"

    등을 긁던 종혁은 피식 웃으며 화장실로 향했다.

    ‘참 귀엽다니까.’

    솔직하지 못한 어머니는 언제나 귀여웠다.

    *  *  *

    점심이 되자 종혁은 어머니의 말처럼 움직였다.

    다만 친구들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여기다! 여기!"

    환하게 웃으며 손을 바삐 흔드는 김종두 반장과 냄비 위에서 끓는 신당동 떡볶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강력 3반 형사들.

    험악한 인상들에, 주위에 앉은 10대, 20대 여성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는데도 떡볶이 냄비만 빤히 응시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이때나 그때나 변함이 없네.’

    범인 잡느라 바빠서 밥을 잘 못 챙겨 먹기에 언제나 맛있는 것, 새로운 것에 눈이 팔리는 형사들.

    사탕 주면 따라오는 5살 꼬맹이와 똑같다.

    "어쩐 일이세요?"

    "어쩐 일은! 우리 종혁이가 금메달 땄는데, 삼촌이 돼서 축하 정도는 해 줘야 하지 않겠어? 이제 축하해서 미안. 자, 박수!"

    "종혁아, 금메달 축하한다!"

    짝짝짝 박수 소리가 울렸다.

    "그것뿐이에요?"

    "그럼?"

    종혁은 형사들을 봤고, 그들은 어깨를 으쓱였다.

    ‘뭐가 있는데…….’

    그렇지 않으면 여성들이 가득한 이런 곳에서 약속을 잡을 리가 없다. 국밥집이나 곱창집, 삼겹살집이라면 모를까.

    "흠. 아, 일단 이것들 받으세요. 방콕에서 산 거예요."

    "뭐하러 이런 걸 사 와."

    열쇠고리나 핸드폰줄, 향 비누 등 방콕 길거리에서 파는 관광 상품들이다.

    "향 비누는 책상에 놔두시면 돼요."

    "잘 쓸게, 종혁아."

    종혁은 공예품에 담긴 향 비누를 신기하게 바라보거나 향을 맡고 놀라는 형사들의 모습에 절로 흐뭇해졌다.

    사람의 관계는 이렇게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자리에 앉은 종혁은 냉큼 국자를 잡았다.

    "어이구, 뭘 네가 해? 이 강력반 반장 삼촌이 하면 되는데."

    멈칫!?

    종혁의 눈이 가늘게 뜨였다.

    "진짜 뭔데요?"

    "없어. 없다니까?"

    "있는데요?"

    "어허. 이 삼촌의 호의를 이렇게 무시할 거야?"

    종혁의 미간이 찌푸려지자 형사 중 한 명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너 영감님 만난 거 보고 놀라서 저런다. 혹시라도 네가 검사 될까 봐."

    "예?"

    반장을 본 종혁은 웃음을 겨우 참았다.

    ‘아이고, 정말 그거였어?’

    어쩐지 애들이 좋아하는 떡볶이를 산다 했다.

    "철순이 이 자식이…… 허흠. 그래서 진로는 결정했냐?"

    종혁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이요."

    "그래. 사건이 너-무 많아서 집에 잘 들어가지도 못하는 검사보다는 출퇴근이 자유로운 우리 형사가 최고야. 그래야 연애도 하고. 어?"

    ‘이분이 어디서 약을 파시나.’ 형사들도 어이없어하고 있다.

    "거 순진한 애 그만 꼬시고 얼른 밥이나 먹죠? 맛있는 거 앞두고 제사 지낼 겁니까? 벌 받아요!"

    "이놈의 자식들이 그래도! 야, 먹지 마. 먹지 마, 이놈들아!"

    "으학! 야, 얼른 먹어!"

    "잘 먹겠습니다!"

    "먹지 말라니까!"

    종혁은 가족처럼 아옹다옹하는 그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래. 이게 형사지.’

    출생지, 학교, 살아온 삶들이 모두 다르지만, 산전수전을 겪으며 피를 나눈 형제보다 더 끈끈한 정을 가지는 게 형사이다.

    오랜만에 보는 정 넘치는 모습에 종혁은 아련한 추억에 젖었다.

    "맛있네."

    애들이나 먹는 떡볶이가 참 달달하게 느껴졌다.

    "저, 최종혁…… 선수? 맞으세요?"

    베이비로션 냄새를 풍기며 다가온 여고생들.

    종혁은 놀라고, 형사들의 눈은 ‘오-.’ 하며 음흉해졌다.

    "절 아세요?"

    "꺅! 진짜 최종혁이야! 안녕하세요, 팬이에요. 오빠!"

    "패, 팬이요? ……저를요?"

    ‘왜’라는 의문이 생겨났다.

    1세대 아이돌이 넘쳐 나는 1999년. 여고생이 아이돌도 아니고, 운동선수를 좋아한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네! 저희 야사모 회원이에요!"

    "야수 같지만 알고 보면 지적인 종혁을 사랑하는 모임이에요!"

    "풉!"

    종혁의 얼굴이 확 달아오르고, 형사들은 웃음을 참았다.

    "아, 아니 절 왜……."

    "귀엽게 생겨서요!"

    "얼굴도 진짜 작아요!"

    "귀, 귀엽."

    "푸흐흐흐흐."

    종혁은 웃음을 겨우 참는 반장과 형사들을 째려봤고, 그들은 ‘아, 뜨거라!’ 하며 얼른 떡볶이에 집중했다. 누군가는 TV를 켰다.

    -오늘로써 도주한 지 740일이 넘은 한상원…….

    모두의 시선이 한쪽 벽에 걸린 TV로 향했다.

    한상원.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탈옥수.

    현재 대한민국 밤거리를 조용하게 만드는 주범이다.

    "……에이."

    "쯥."

    탁, 거칠게 숟가락을 내려놓는 형사들의 암울하고 사나운 기운에, 여고생들은 목을 움츠렸다.

    ‘맞아. 아직 안 잡혔을 시기구나.’

    화성연쇄살인 사건 이후, 경찰관의 진급 정체를 해소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만큼 여러 고위 경찰의 목을 날린 탈옥수 한상원.

    ‘화성연쇄살인 사건. 그 개새끼도 있지.’

    한상원과 마찬가지로 진범을 알고 있다.

    그러나 현재 기술로는 놈을 잡을 수가 없다.

    그런데 이뿐만이 아니다.

    현재 대학민국에는 수많은 미제 사건이 있고, 기술이 없어 잡지 못하는 범죄자들도 한가득이다.

    ‘그래. 그 개새끼들뿐만이 아니야.’

    정체 모를 조직.

    종혁은 다시 한번 자신이 왜 회귀를 하게 됐나 생각해 봤다.

    그 답은 곧 나왔다.

    종혁은 반장이 끄는 TV를 노려봤다.

    ‘저런 새끼들을 잡기 위해서 회귀한 거다.’

    죄를 저질렀음에도 당당히 활보하는 놈들을 잡아 처넣기 위해서.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힘들어하는 유족들을 달래기 위해서.

    ‘복수 말고도 이런 일을 하라고 하늘이 돌려보낸 것일 테지.’

    주먹을 꽉 쥐며 뜻을 세운 종혁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억지로 펴며 여고생들에게 사인을 하고 돌려보냈다.

    반장이 입을 열었다.

    "종혁아, 네가 경찰이 될 때쯤에는 아마 기술도 많이 발전해서 저런 새끼들을 팍팍 잡을 수 있을 거야. 그러니 잘 생각해 봐. 형사도 나쁘지 않다."

    맞는 말이다.

    기술의 발전에 의해 수많은 미제 사건들이 해결된다.

    하지만 그래선 늦는다.

    ‘늦지. 많이 늦어. 그러니…….’

    "뭐 해? 맛난 음식 앞에 두고 제사 지낼 거야?!"

    "옛!"

    "아이고, 맛있다. 이게 요새 애들이 먹는 떡볶이 인가?"

    형사들에게 시선을 돌린 종혁은 꺼진 TV를 다시 봤다.

    ‘일단 저놈부터 잡는다!’

    강도살인 및 치사, 탈옥수 한상원.

    그의 눈이 불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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