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40화 (40/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40화>

    *  *  *

    아쉽게도 정영탁은 곧바로 투자 제의를 수락하지 않았다.

    종혁은 그의 신중한 모습 때문에 더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종혁은 그가 수락할 걸 알고 있었다.

    그의 촉이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그 사람이라면 이 형들을 원래 자리로 되돌려놓겠지.’

    다른 건 몰라도 이들이 JYK와 얽히고 육아 예능을 한 건 안다.

    바다로 나갈 때 선장의 능력이 부족하면 빈손으로 들어오듯 이들의 능력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키를 잡은 사장의 능력이 부족하면 죽을 쓸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정영탁은 능력이 좋은 선장 같았다.

    선원까지 위하는 능력 좋은 선장.

    ‘어쩌면 전생보다 더 성공할 수 있겠어.’

    이들의 성공이 종혁에게는 곧 돈이었다.

    그렇기에 그런 거액의 투자를 결심했던 거다.

    "요, 브로. 오늘 우리 때문에 고생했어. 하지만 이제 오지 않아도 돼."

    "음?"

    "너 돈 많은 거 알아. 고마워. 하지만 우리가 해야 될 일이야. 앞으론 우리가 할게."

    "어휴, 형. 종혁이 섭섭하게 왜 그런 식으로 말해?"

    정혁이 나섰다. 그는 힐끔 변호사를 봤다.

    "종혁아.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은……."

    "아뇨. 충분히 알아들었어요. 절 걱정하는 거잖아요."

    "음. 결과만 말하면 그렇지. 네가 부담스럽다는 건 아니야. 넌 우리 은인이야. 그리고…… 가족이야. 아, 그렇게 생각해도 될까?"

    조심스러운 그들의 모습에, 보는 종혁의 입가가 떨렸다.

    이제 날아오르려는 모습을 보니 시원섭섭했다.

    하지만 너무 보기 좋아서 웃음이 나왔다.

    "어우. 가족이야…… 내 손발이 다 오그라드네!"

    종혁은 눈에 띄게 실망하는 그들의 모습에 장난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래요. 가족 합시다, 해."

    "……우악!"

    "억?!"

    종혁은 안기는 그들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손을 흔들며 버스를 타는 다섯 명을 흐뭇하게 보던 종혁은 변호사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돈을 받고 하는 일인 걸요. 그리고 좋은 모습도 봤고요."

    "하하."

    쑥스러워 머리를 긁던 종혁은 이내 표정을 달리했다.

    차갑게 가라앉은 종혁의 눈에 현승엽 변호사도 신색을 바로 했다.

    "변호사님, 한 가지 의뢰를 하고 싶습니다만."

    "……무슨 의뢰인지 알 것 같군요. 알겠습니다. 이 건은 무료로 해 드리겠습니다."

    "예?"

    "법대 진학을 희망한다지요? 연희대 법대도 참 좋습니다."

    ‘이런 사람이 내 후배가 돼 준다면 든든하겠지.’ 재력, 성격, 두뇌 모두 빼어난 인재.

    연희대 법대 라인인 그로서는 욕심이 났다.

    "허허. 그럼 의뢰인도 수고하십시오."

    종혁은 멀어지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다 이내 낯빛을 굳혔다.

    그의 눈이 사납게 빛났다.

    "협조해 준다니 다행이군. 그래. 저분도 생각하는 것처럼 적이 될 놈을 놔둘 이유는 없지."

    크게 당한 정영주로선 단단히 벼르고 있을 터.

    오늘 본 노예 계약서가 그의 손에 수갑을 채울 테고, 더 이상 형들을 신경 쓰지 못하게 될 것이다.

    종혁은 이제 정영주에게서 신경을 끄기로 했다.

    "그럼 이제 강철선 검사, 아버님만 남은 건가?"

    종혁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발을 뗐다.

    *  *  *

    해가 어스름히 저물어 가는 늦은 오후.

    올해 중학교 3학년이 되는 강현석이 터벅터벅 골목을 걷다, 어디선가 풍겨 오는 기름 냄새에 팔을 들어 얼굴을 묻었다.

    "냄새 뱄네."

    니기미.

    욕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래도 웃을 수 있는 건 손에 들린 검은 봉지 때문이다.

    휘발유 기름 냄새가 아닌 고소한 콩기름 냄새.

    현석은 골목 끝 커다란 집의 쪽문을 열고 들어가 2층으로 향했다.

    "내 왔다."

    "오빠야!"

    "행님아!"

    우르르 몰려오는 동생들을 향해 검은 봉지를 던졌다.

    "오는 길에 주웠다. 무라."

    부스럭!

    "우왓! 튀김이랑 떡볶이, 순대 아이가?"

    "뭐꼬! 오늘 누구 생일이가?"

    후다닥 부엌으로 달려가 작은 상을 낑낑거리며 들고 오는 넷째와 다섯째, 튀김을 가위로 자르는 둘째와 셋째.

    아직은 추운 늦겨울, 냉골이 따로 없는 집에서 구멍 뚫린 내복만 입은 채 신이 난 동생들을 보니 현석은 울컥했다.

    "그리 좋나."

    서울에 와서 처음 알게 된 햄버거, 치킨, 피자란 존재.

    시장 통닭이 아닌 치킨.

    학교에서 급식을 주는 것도 놀라운데 반찬으로 탕수육이 나오는 것에 현석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한 장에 몇 만 원짜리 티셔츠는 어떻던가.

    ‘아버지가 중앙의 검사면 뭐하노. 이리 지지리 궁상인데.’

    어머니도 식당에서 일을 하는데 살림이 나아지지 않는다.

    서울의 살인적인 물가 때문이다.

    ‘콜라 한 병에 오백 원이 말이 되나?’

    "행님아! 얼른 씻어라! 식으면 맛없데이."

    "됐다. 난 사면서 뭇으니까 느그 마이 무라. 공부할 끼다."

    "그래도 행님이 사 왔는데……."

    "아싸! 그럼 고추튀김 내 꺼!"

    "야 이 가시나야! 닌 위아래도 없나!"

    또 싸우려는 동생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보던 현석은 화장실로 향했다.

    띵동! 띵동!

    "누구지? 올 사람 없는데? 고추튀김 손 대지 마라! 쥑일 거다!"

    "저저, 가시나가 말하는 거 봐라!"

    "네! 누구세요! 네?"

    초등학교 5학년인 셋째의 고개가 현석을 향해 돌아간다.

    "큰오빠야. 누가 큰오빠야 찾는데?"

    현석은 눈을 껌뻑였다.

    ‘누꼬’ 하며 인터폰을 넘겨받은 그는 이내 눈을 부릅뜨며 집을 박차고 나갔다.

    "오빠야!"

    깜짝 놀라는 셋째의 외침을 뒤로한 채 후다닥 계단을 내려온 그는 덩치 큰 청년을 발견하곤 환하게 웃었다.

    "행님!"

    종혁은 여전히 작은 현석을 향해 손을 들었다.

    "여-. 잘 있었냐?"

    종혁은 얼마나 급했는지 헉헉거리는 현석을 보며 피식 웃었다.

    현석은 그런 종혁을 보며 안도했다.

    ‘내를 안 잊었구나!’

    설움도 솟구쳤다.

    "내가 얼마나 찾았는지 압니꺼? 전화번호부엔 행님 이름도 안 나와 있제, 행님 학교에 찾아가도 전화번호 못 알려 준다 카제!"

    우상인 종혁.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종혁부터 찾았더랬다.

    "그래. 형 학교에 연락했다며? 오랜만에 학교에 갔다가 너 서울 왔다는 소식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그, 그랬십니꺼?"

    "그 사투리는 여전하네."

    "뭐, 뭐랍니꺼! 나 이제 서울말 잘 씁니다!"

    "그래, 그렇다 치자."

    현석의 사투리는 종혁이 죽기 직전까지 고쳐지지 않았다.

    "그런데 어머님은?"

    "……일 갔심더."

    ‘역시 그랬군.’

    "그보다, 와 이리 연락이 안 된 겁니꺼?"

    "선수촌에 있었잖아. 그리고 지금은 방학이고."

    "아."

    그건 몰랐다는 듯 얼굴을 붉히는 현석의 머리를 헤집은 종혁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저녁은 먹었어?"

    "저녁밥이요? 아직 안 먹었는데요?"

    "그래? 잘됐네. 형이 밥 살 테니까 네 동생들도 같이 가자."

    "예?"

    "저기 쟤들. 네 동생들 아냐?"

    종혁의 손끝을 따라 고개를 돌린 현석은 난간에 매달려 이쪽을 초롱초롱 바라보는 동생들을 발견하곤 얼굴을 붉혔다.

    구멍 뚫린 내복 때문이었다.

    ‘씨이.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은데.’

    아무리 맏이라지만, 이제 겨우 16살.

    그는 동생들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안녕하십니까! 허니 피자입니다!"

    "아, 안녕하십니꺼!"

    중학교 3학년, 16살 강현석은 허니 피자에서 ‘안녕하세요’를 크게 외쳤다.

    *  *  *

    "크크크크크."

    "키키키. 우리보고 쪽팔리게 행동하지 말라 카드만은 행님이 쪽팔리게 하나?"

    종혁도 웃고, 동생들도 웃었다.

    "씨이……."

    종혁은 웃음을 참고 있는 종업원을 보았다.

    "불고기 피자랑 콤비네이션 피자 한 판씩 가져다주시고, 사이드 메뉴도 종류별로 가져다주세요. 콜라랑 사이다도요."

    주문을 확인한 종업원이 웃음을 흘리며 가자 종혁은 현석을 보았다.

    "왜?"

    "아니 너무 자연스러워가. 이, 이런 데 많이 오셨습니꺼?"

    난생처음 본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친구들에게 말로만 들었던 햄버거, 치킨, 피자 중 피자, 그것도 허니 피자였다. 사방에 양복같이 좋은 옷을 차려입은 사람들만 있다 보니 절로 위축이 됐다.

    "아니? 처음일걸?"

    회귀 전에도 피자는 먹지 못했다.

    위를 거의 들어내면서 밀을 소화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에? 그런데 우째 그리 자연스럽게……."

    "여기나 식당이나. 조금 고급스러울 뿐 다를 건 없지."

    ‘역시 이 행님은!’ 다른 사람들과 뭔가 달랐다. 그래서 더 빛나 보였다.

    "그보다 학교생활은 좀 어때? 공부는 잘하고 있어?"

    "아, 그게."

    "우리 큰오빠야 공부 음청 잘합니더! 반에서 1등입니더!"

    "이 가시나가 쓸데없는 말을……."

    "와? 내가 없는 말 했나?"

    "그래? 대단한데?"

    "해, 행님과 비교하믄 아무것도 아입니더. 행님은 금메달 따믄서 전교 5등도 했잖아요."

    "아니야. 내가 잘났다고 네가 못난 건 아니지. 너도 충분히 잘한 거야."

    흠칫!

    부모님에게 칭찬을 받았을 때와는 또 다른 기쁨.

    ‘역시 이 행님이 내 롤모델이다!’

    현석의 몸이 배배 꼬였다.

    "가, 감사합니더."

    "막히는 건 없고? 과외 받고 싶으면 도와줄까?"

    "아, 아입니더! 제가 우찌 행님 시간을!"

    "기특해서 그래. 서울에 와서도 공부 열심히 하는 게. 아, 그런데 서울엔 어떻게 오게 된 거야? 설마 그 양아치 새끼들 때문에……."

    "아입니더! 아부지 때문임더! 아부지가 서울로 발령이 나가."

    "아버지? 아…… 아버님은 뭐 하시는데?"

    "검사예!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이 가스나가! 입 안 다무나!"

    "응? 와? 말하믄 안 되나?"

    종혁은 놀란 얼굴이 되었다.

    "오, 검사님. 나도 거기 계신 검사님 한 분 아는데."

    "그 검사님이……!"

    현석은 얼른 셋째의 입을 막았다.

    검사라지만, 부끄러운 아버지.

    종혁에겐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었다.

    종혁은 그런 그의 반응에 낯빛을 굳혔다.

    ‘그런 거였군. 이래서였나.’

    맞벌이임에도 허름한 아이들의 옷차림.

    경찰에도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눈앞의 딱한 사정을 외면하지 못하는 부류. 필연적으로 그 가족이 고생한다. 종혁은 그제야 현석이 왜 그렇게 아버지를 싫어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청렴결백하고 대쪽 같은 성격 때문이 아니었어.’

    솔직히 아버님이 실망스러웠다.

    "그, 그런데 행님은 절 우예 찾아온 겁니꺼? 행님이랑 저는 어판장에서 만난 게 전부인데?"

    종혁은 눈을 빛냈다.

    ‘이때도 촉이 날카로웠나.’

    그가 기억하는 현석다웠다.

    "나야 신기해서 와 봤지. 마산에서 만난 귀여웠던 중학생이 서울로 전학을 왔다니까 인연이 이렇게 이어지나 해서."

    "귀여…… 내 안 귀여운데요?"

    "키가 몇?"

    "끄응."

    동생들은 언제나 무섭고 아빠 같던 큰형, 큰오빠를 아이 취급하는 종혁을 신기하다는 듯 보았다.

    그러는 사이 피자가 나왔다.

    "잘 먹겠십니더!"

    "그래. 많이 먹어."

    종혁은 우물쭈물 눈치를 보다 피자를 먹곤 크게 놀라는 현석을 보며 따뜻하게 웃었다.

    ‘그래. 이번엔 골고루 잘 먹고 키 좀만 더 크자, 현석아.’

    다 좋은데 키가 좀 작은 현석.

    종혁은 현석이 얼른 커서 한 사람 몫을 해 줬으면 싶었다.

    *  *  *

    "이, 이렇게 안 해 주셔도 되는데……."

    현석은 큰 인형, 레고, 자동차 등을 품에 꼭 끌어안은 동생들을 보고 안절부절못했다.

    "동생들이 귀여워서 그래. 내가 외동이라 언제나 동생들이 있으면 했거든. 특히 우리 현희가 제일 귀엽네?"

    종혁은 그러며 한 팔로 엉덩이를 받치고 안아 든 현희의 볼을 꼬집었다.

    "응? 히이. 내 귀엽나? 오빠야, 내가 시집가 줄까?"

    앞니가 빠진 치열을 드러낸 채 웃는 셋째의 모습에 현석은 충격을 받았다.

    ‘저, 저 가스나가?’

    "그럴까? 우리 현희 오빠한테 시집 올래?"

    "십 년만 기다리 도. 내 스위티 미진처럼 예쁜 아가씨 될게. 그때까지는 바람 피도 된다. 내가 허락할게."

    눈이 동그래진 종혁은 이내 배꼽을 잡고 웃었고, 현석은 난생처음 본 동생의 잔망스러운 모습에 눈을 가렸다.

    "야 이 가스나야! 내가 어무이랑 드라마 그만 보라 켔제!"

    "와? 이럴 때 이런 말 하는 거 아이가?"

    종혁은 웃음을 겨우 참았다.

    그 순간.

    저벅저벅!?

    해가 완전히 저문 저녁 9시, 어스름한 가로등 불빛 하나만이 전부인 골목 입구에서 누군가 걸어 들어왔다.

    "동네 시끄럽게 와 싸우고 있노."

    흠칫 놀라 고개를 돌린 현석은 눈을 질끈 감았다.

    ‘하필이면!’

    "다녀오셨습니꺼, 아부지."

    "그래. 밥 뭇나? 옆에는 누……."

    시선이 마주친 강철선은 딱딱하게 굳었다.

    종혁은 당황했다. 정말로 당황했다.

    계획은 이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저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강철선의 귀에 들어가면 족했던 계획. 동시에 현석을 완벽한 아군으로 만들려고 했을 뿐이다.

    1시간 같은 찰나의 시간이 흐른 후, 종혁은 현희를 내려놓곤 볼을 긁었다.

    "이거 상황이 이상하게 됐군요."

    강철선의 눈이 사납게 뜨였다.

    "아니라는 기가? 니 지금 선 넘은 거 알제?"

    가족을 건드렸다. 종혁은 선을 넘었다.

    "본의는 아니었지만, 결례를 범한 점 깊이 사과드립니다. 제가 했던 권유는 못 들은 걸로 해 주십시오."

    꾸벅 고개를 숙인 종혁은 또 보자며 현석과 현희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강철선을 지나쳤다.

    현석은 그 등을 보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다시 보지 못할 것 같은 막연한 느낌.

    "해, 행님!"

    "오빠야!"

    그 미련 없는 모습에 강철선의 눈이 흔들렸다.

    ‘……우연이라꼬?’

    그는 장난감을 품에 안고 있는 아이들을 보다 흠칫했다.

    이를 악물며 원망을 가득 담아 노려보는 장남 현석.

    "아부지요. 내 처맞는다 캐도 이 말은 해야겠심더."

    ‘하지 마라. 닌 지금 상황을 모른다.’

    "국가에 이바지하는 거 좋심더. 월급? 후배들, 피해자들 다 나눠 주는 것도 좋심더. 남들 다 있는 컴퓨터, 겜보이 없어도, 이리 지지리 궁상으로 살아도 다 좋단 말입니더. 하지만."

    "니……."

    "최소한 아부지 새끼들 입에서 웃음은 뺏지 말아야 하는 거 아입니꺼? 오늘 태어나가 처음으로 피자란 걸 먹어 봤심더. 참 맛있데예."

    "안 다무나! 상황을 모르면!"

    "아부지요. 현희한테 언제 선물 사 줬는지 기억합니꺼?"

    "……."

    "아부지. 정말 우리 아부지 맞습니꺼?"

    쿵 충격을 받은 강철선은 눈을 부릅떴고, 현석은 눈치를 보는 아이들을 잡아끌며 집으로 들어갔다.

    "가자! 안 오나!"

    문이 닫히자 강철선은 옆의 벽을 짚었다.

    "그, 그래 생각했던 기가?"

    좋은 일을 하면 알아줄 거라고 생각했다.

    말은 안 해도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눈치를 보면서도 장남을 따라간 아이들.

    그는 자신이 여태껏 뭘 위해서 그렇게 힘들게 일했는지 모르게 되어 버렸다.

    강철선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들었다.

    "최 선수. 니 지금 어디고?"

    *  *  *

    "음. 역시 제가 분란을 일으켰나 보군요."

    북적했던 예전과 달리 사람 몇 명 없는 포장마차.

    당근과 오이, 어묵 국물만이 있는 테이블 위에, 그 짧은 사이 절반이나 비워진 소주병이 있다.

    ‘현석이가 터트렸나 보군.’

    회귀 전 명절에 인사 갈 때도 매번 싸웠던 둘이다.

    강철선은 경찰이 된 아들이 못마땅해서.

    현석은 아버지가 싫어서.

    회귀 전엔 터지지 않았던 게 터져서 마음이 좀 무거웠다.

    하지만 기회다.

    "하나 묻자. 정말 아닌 기가?"

    "전 여태껏 현석이가 편모 가정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젠 제가 실망스럽고 짜증이 나네요."

    종혁은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러며 남은 소주를 단숨에 비웠다.

    텅!?

    소주병을 내려놓는 종혁의 눈이 차가워졌다.

    움찔!

    "강 검사님. 이젠 제가 말할까요? 이런 사정을 미리 알았다면 전 당신 같은 사람에게 투자를 권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이건 아버님 잘못이 맞다.’ 아무리 일이 좋아도 가정을 소홀히 하는 건 변명의 여지가 없다. 종혁 본인도 그래서 얼마나 후회했던가.

    강철선은 까마득히 어린 사람의 독설에 울컥했지만, 말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다른 것도 깨달았다.

    ‘정말 호의였구나.’

    내로라하는 법조인들이 재산을 맡긴 권&박 홀딩스이다. 아무리 서울지방검찰청의 검사, 한국대 라인이라지만 일개 평검사가 필요한 이들이 아니다.

    그래도 내가 스타 검사가 될 기질이 보여 제의했던 거다, 종혁이 한국대 검사 라인을 잡으려 했던 거다 라는, 마지막까지 쥐고 있던 그의 자존감이 산산이 깨졌다.

    "맞네. 가정도 못 지키는 게 검사는 무슨 검사고."

    소주를 시킨 강철선은 피식 웃었다.

    종혁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포기하는 겁니까?"

    "포기는 무슨. 이젠 내가 매달려야 하는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

    하지만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도 포기하기 힘들다.

    "그 전에 하나만 묻자. 아버지 때문이가?"

    자존심이 깨지면서 든 생각. 왜 하필 나였나.

    ‘아버지?’

    종혁은 뜬금없이 돌아가신 아버지가 나오자 낯빛을 굳혔다.

    "맞네. 아이고, 인마야. 그기 그리 한이 된 기가?"

    흉악범을 쫓다 죽었음에도 순직 처리되지 않은 종혁의 아버지.

    범인은 고작 2년 살다 출소. 어떤 커넥션이 있는 게 분명했다.

    종혁은 그것에 분노해 그런 법조계를 바꾸려는 거다.

    경찰이 온전히 범인만 잡을 수 있게, 검사가 사심 없이 구형할 수 있게, 판사가 법대로 판결할 수 있게.

    그래서 강철선 본인 같은 평검사에게도 손을 내미는 거다.

    아래서부터 위까지 깨끗한 법조계가 되도록.

    최소한 돈에는 흔들리지 않게 만들려는 거다.

    ‘우얄꼬. 어린놈의 한이 와 이리 깊노.’

    반면, 종혁은 자신의 복수에 기억도 나지 않는 아버지가 나오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니……."

    "알았다. 내 니가 만들려는 깨끗한 법조계, 한 손 거들게. 좋은 아빠도. 미안테이. 괜히 오해해가 내 복을 내가 걷어찼데이. 진짜 미안한데, 그 제의 다시 해 줄 수 있나?"

    종혁은 떨떠름한 눈으로 강철선을 보았다.

    끝나긴 끝났는데, 약간 찝찝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