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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37화 (37/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37화>

11. 사람에게 투자를 하다

몰래카메라가 끝나고 며칠 후, 어느 기획사.

-알잖아. 나 방치된 거.

"푸우웃!"

50대 초반의 중년인은 TV에서 나오는 준형을 보곤 마시던 음료를 뱉었다. 그건 오랜만에 몰래카메라가 부활했다기에 TV를 시청하던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뭐, 뭐야. 쟤 미국에 안 돌아갔어?! 용준이도 있잖아?"

회사의 사정이 안 좋아지면서 잊어버린 존재들.

"……그럼 설마 걔들도 아직?"

잊어버린 지 무려 2년 하고도 몇 개월이다.

‘만약 지금까지 남아 있다면, 만약 기다리고 있다면…….’

중년인은 죄책감에 욱신거리는 심장을 움켜쥐었다.

약 2년 전 사세 확장을 위해 종금사에서 돈을 빌렸는데, IMF가 터지면서 종금사는 매정하게 돈을 회수하였고 결국 회사는 주저앉게 되었다. 그 종금사는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

덕분에 있던 배우와 직원들도 거의 다 내보내게 되었다.

그때 저들을 담당하는 관리자도 퇴사를 하였는데, 인수인계하던 와중에 많은 게 누락이 되어 버렸고, 그는 어떻게든 회사를 살리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그 사실을 몰랐다.

그러다 최근에서야 계속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이상한 돈을 발견하게 됐고, 그 숙소의 존재를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미련한 놈들. 다 살길 찾아 떠났을 줄 알았는데……."

그랬을 거라 생각하였기에 조만간 회수하려고 했다.

"후. 작년에 그분께 돈을 빌렸다면, 그래서 사정이 나아졌다면……."

지금은 은퇴한 누군가를 떠올리던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조금 잘나간다고 해서 섣불리 확장을 하려 했던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그래. 음반 내자, 이놈들아. 내 줘야지, 암."

그는 전화기를 들었다.

"박 부장님."

-사장님! 준형이랑 용준이가 지금 TV에!

같은 걸 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지금 당장 숙소로 가 보세요. 지금 당장."

*  *  *

다음 날 아침, 서울지방검찰청의 복도.

출근하는 그에게 축하 인사가 쏟아진다.

"검사님, 잘 봤어요!"

"어제 재밌던데요? 스타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예?"

꿈틀.

그의 입가가 놀라서 움직인다.

"에이, 모른 척하신다. 몰래카메라 말이에요, 몰래카메라! 지금 얼마나 떠들썩한지 모르시죠?"

‘됐구나!’ 그는 온몸에 전율이 흘렀지만, 경상도 남자 체면에 드러낼 순 없었다. 너무 고마워 김경규와 PD에게 전화를 했어도 말이다.

"쯧. 그딴 거 볼 시간 있으면 사건이나 보소, 마!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시간 뺏기가 사건이 얼마나 밀렸는데!"

"악! 아무리 경상도 남자라지만!"

"흥."

치솟는 어깨를 누르며 개인 사무실에 들어선 그를 맞이한 건 하얗게 질린 사무원이었다.

"거, 검사님. 지검장님께서 출근하시는 대로 올라오시랍니다."

강철선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지검장님도 보셨구나!’

"알겠습니다."

강철선은 치솟는 기쁨의 비명을 참고자 이를 악물며 돌아섰다.

"룰루."

아무도 없는 계단에 들어서자 그제야 그의 코에서 노래가 흘러나온다.

터벅 터벅! 위에서 누군가 내려오자 그의 눈이 호선을 그렸다.

"오, 박 프로! 아침은 든든히 묵었나? 최 프로는?"

또래의 중년 검사들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거 중앙 검사가 너무 경박한 거 아뇨?"

"검사라면 체면을 지켜야지. 어디 딴따라처럼……."

"와? 부럽나?"

"……."

입을 꾹 다문 그들의 모습에 강철선은 그동안 따돌림 당하며 쌓인 울화가 쑥 내려가는 걸 느꼈다.

‘그래. 느그 서울 깍쟁이들도 배는 아픈갑제?’

"흐흐. 일들 보래이. 난 지검장님이 불러서."

지검장이란 말에 몸이 굳는 그들의 어깨를 두드린 강철선은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 지검장실 앞에 섰다.

똑똑똑!

문을 열고 들어간 그는 허리를 숙였다.

"부르심 받잡고 왔심더."

"부르심은 무슨."

50대 후반, 날카로운 인상의 지검장이 코웃음을 쳤다.

"강 프로. 아니, 철선아."

나지막한 부름에 머리에 올랐던 열이 빠르게 식었다.

‘뭐꼬? 설마 동티 난 기가?’

"……예, 선배님."

"잘했어."

"예?"

고개를 든 그는 히죽 웃고 있는 지검장을 발견하곤 순간 무릎이 풀렸다.

"어제 총장님이 전화하셨다. 이렇게 재밌는 놈이 우리 검찰에 있었냐고."

"흡!"

검찰총장.

강철선은 기절할 뻔했다.

"그 순간에도 인재를 영입하려는 게 훌륭했다고. 확실히 최 선수 정도라면 우리 검사가 어울리지."

강철선이 은근히 스카우트하는 것도 전파를 탔다.

방금 전 사무실에서 느낀 전율과는 비교도 안 될 전율이 몸을 내달렸다. 그는 피가 나도록 볼을 깨물었다.

"덕분에 너 힘들게 끌어올린 거 면피했다. 우리 한국대 라인이 얼마나 애썼는지 알고 있지?"

강철선은 눈을 빛냈다.

종혁의 장난에 어울리기로 했을 때 듣고 싶었던 말.

어필할 기회가 찾아오자 그는 배를 쭉 내밀었다.

"허쭈?"

"설마 제가 은혜도 모르는 개새끼겠습니꺼? 제 의도대로 됐다니까 잘됐습니더."

"의도?"

지검장이 그냥 네 성격대로 한 거 아니냐며 미간을 좁혔다.

"검찰이 광대 꼴이 될지도 모르는데, 제가 미쳤다고 그 지랄을 했겠습니꺼? 다 우리 검사들 이미지를 개선시킬라고 한 겁니더."

일개 평검사가 검찰 이미지를 말한다.

귀여운 짓을 했다고 용납할 사안이 아니다.

지검장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읊어 봐."

차가운 음성이 퍼지자 강철선은 다시 무릎에 힘이 빠졌지만, 억지로 배에 힘을 주었다. 여기서 물러서면 나가리다.

그는 폭탄을 던지기로 했다.

"선배님. 지금 사법연수원, 법대 후배들이 선호하는 게 뭔지 압니꺼? 변호사랍니더, 변호사."

"……그게 뭔 개소리야! 판사면 모를까, 변호사가 어떻게 검사를 앞질러!"

검사와 변호사.

서로의 가치관 차이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앙숙이다.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게 하라는 대명제 아래 죄를 벌하는 데 중점을 두냐, 사람을 변호하는 데 중점을 두냐로 갈린다.

심할 땐 서로 좋지 못한 말로 매도할 정도다.

"설마 정식 프로 된 것도 아닌 애새끼들이 벌써부터 돈을 찾는다는 거냐? 정말 그런 거야?"

지검장은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변호사가 돈을 많이 번다지만, 검사는 신분 상승의 상징이었다.

"하이고. 이 행님 이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모른다. 요즘 얼라들에게는 돈이 입신양명이고, 돈이 신분이고 명예입니더! 지랄 맞은 IMF가 그렇게 만들었다고예!"

"아니, 검사도 돈을! ……험. 그래서."

지검장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래서는 뭔 그래섭니꺼. 계속 이렇게……."

"결국 네가 총대 메고 우리 조직도 유연하다는 걸 알리는 대신, 좋은 곳에 꽂아 달라는 거 아니야? 바깥에 예쁘게 보이도록."

움찔!?

강철선은 일부러 반응을 꾸며 냈다.

대가 없는 선의는 없다는 걸 가장 잘 아는 게 그들이었다.

"대의에 소의가 따라오는 건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꺼? VIP도 친국민적이니까네……."

"에라이."

손을 확 들었던 지검장은 생각에 잠겼다. 뭔가 더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지만, 친국민적이란 말이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정권이 바뀌었으면 검찰도 그에 맞춰 움직여야 했다.

그는 여전히 배를 쭉 내밀고 있는 강철선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담배를 내밀었다.

탁! 치익!

"괜찮겠냐? 너 방송에 얼굴 비추면 뽀찌 같은 거 생각 못 한다. 걸리면 나부터 팽할 거야."

움찔!?

강철선은 터지려는 비명을 겨우 참았다.

"저도 중앙에 입성했는데, 지검장 자리는 해 봐야지 않겠습니꺼? 선배님은 총장 하시고."

야심이 가득 들어찬 눈에 지검장은 피식 웃었다.

"말 잘한다 싶더니 결국 그거였구먼."

그는 모든 의심을 버렸다.

"그런데 되겠어? 지검장 되려면 똥밭도 굴러 봐야 한다."

강철선의 낯빛이 굳었다.

그는 여기서 말을 잘해야 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순백의 옷을 입고 뒤를 바치겠슴니더. 선배님에게 의심암귀의 오물이 묻어도 절 보고 아니라 할 수 있게!"

지검장의 눈이 커졌다.

‘청렴결백 대쪽 같은 놈인데도 야욕이 있다라…….’

그가 강철선을 콜한 건 강철선에게 잡음이 없어서다. IMF 이후 검찰 내부에서도 말이 많아지던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왜인지 제대로 된 놈을 올린 것 같았다.

순백의 옷을 입고 뒤를 바치겠다는 말이 그의 가슴에 닿았다.

‘이렇게 똘똘한 놈이었나?’

"그래도 이 자식아, 가족은 생각해야지. 자식만 다섯이라며."

강철선은 뒤로 돌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완전히 끝났다.

그는 일부러 헤벌쭉 웃었다.

"부장 달면 월급 오르지 않습니꺼. 이왕이면 차장도 빨리 달아 주이소."

"미친 새끼. 차장이 뉘집 애 이름이냐."

그러나 강철선의 말처럼 지랄맞은 세상이니 강철선 같은 검사가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래. 어디 한번 재롱부려 봐. 네가 삐끗하지만 않으면 최소한 버리진 않을 테니까."

이 말만 기다렸던 강철선은 뒤로 두 발 물러서 고개를 숙였다.

"사냥개, 나팔수가 아니라 사리분간 잘하는 똘똘한 심장 같은 놈으로 생각해 주이소."

"……나가 봐."

꾸벅 허리를 숙인 강철선이 나가자 지검장은 눈을 가늘게 떴다.

"순백처럼 깨끗한 심장이라……."

어차피 더 높은 곳으로 향하기 위해선 몸에 묻은 오물을 털어 내고 새 옷을 입어야 한다.

"나쁘지 않군."

덕분에 총장에게서 좋은 부하를 뒀다고 전화도 받지 않았던가.

고개를 주억거린 지검장은 전화기를 들었다.

"예, 총장님. 접니다. 어제 칭찬하신 그놈이 뭔 말을 했는데……."

계속 청렴결백을 유지하면서도 지검장이 될 수 있을지는 지켜보면 알 터. 지검장은 주사위를 던졌다.

한편, 사무실로 돌아와 몸을 힘주어 떨며 기쁨을 만끽하던 강철선은 숨을 길게 내쉬며 정신을 차렸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문제는 앞으로도 오물을 뒤집어쓰지 않을 수 있냐는 건데……."

수천 명의 검사들 가운데 고작 20명도 안 되는 지검장.

수많은 유혹과 협박이 그를 시험할 거다.

그걸 이겨 낼 수 있을까, 강철선은 걱정이 들었다.

그중 가장 큰 약점은 아무래도 가족이다.

못난 아비 만나 빌빌거리며 사는 마누라와 자식들.

누군가 그들을 건드린다면, 끝까지 버틸 자신이 없다.

고민하던 그는 지갑에서 두 장의 명함을 꺼내 들었다.

"권&박 홀딩스 CEO 권아영. ……투자 고문 최종혁."

권&박 홀딩스. 정재계, 법조계 인사들의 자산을 관리하는 숨겨진 투자회사. 중앙의 검사인 그도 겨우 알아낸 곳이다.

"그런 곳의 투자 고문이 최 선수라꼬?"

믿기지 않지만, 통장에 이체된 수십 억을 보면 믿지 않을 수 없다. 그 어떤 투자사도 수십 배 수익이 났다고 그 돈 모두를 주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진짜라는 긴데…… 음."

지난 며칠 계속되었던 고민을 다시 이어 가던 그는 결론을 내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는 전화기를 들었다.

"최 선수, 지금 어디고?"

*  *  *

"아뇨. 지금은 일이 있어 힘들고, 이번 주 일요일 어떠십니까? 예,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종혁은 미소를 지었다.

"일단 판에는 앉혔네."

이제 남은 건 종혁 본인의 조력자로 만드는 거다.

"그 개자식들을 잡으려면 외압에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 필요해."

그냥 돈만 벌게 해 준다면, 몇 번의 도움을 받는 걸로 끝이다.

이름도 모를 그 조직을 수사하다 압력이 들어오면 손을 뗄 확률이 높다. 대쪽 같은 그의 성격을 생각하면 그럴 확률이 없다시피 하지만, 좌천되면 끝이다.

경찰청장도 움직이는데 검찰이라고 움직이지 못할까.

그렇기에 지금부터라도 검찰 내에 세력을 만들어 둬야 했다.

정확히는 흔들리지 않게 굳건하면서도, 종혁 본인의 뜻에 동조해 줄 세력.

그 리더로서 강철선이 제격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KGB밖에 모르는 비밀을 오픈한 것이다.

"내가 경찰이 되어 그놈들을 잡았는데, 검사가 아니라면 나가리지. 흠. 이런 걸 생각하면 검사가 끌리긴 하는데……."

이래서 법대도 생각한 거다.

하지만 더 깊이 생각해 보면 검사가 어울려 줘도 판결권을 가진 판사가 아니라고 하면 풀어 줘야 한다.

하지만 판사가 되면 사건에 치이기에 그놈들을 쫓기가 힘들다.

"후. 도돌이표구먼. 차라리 국정원에……."

종혁은 고개를 저었다.

범인에게 총을 마음껏 쏠 수 있다는 메리트가 있지만, 스파이 영화처럼 팔자에도 없는 행동을 할 수 있다.

암살이나 납치, 혹은 폭파.

형사로서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다.

회귀 전 형사였다는 메리트도 크게 감소한다.

그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뭐, 진학까진 아직 일 년 남았으니까."

종혁은 천천히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은 이 일이 더 우선이었다.

"자, 그럼 이제 판에도 앉혔으니 선수 입장해 볼까?"

핸드폰을 드는 종혁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번졌다.

"뭘 그렇게 꿍얼거려? 전화받는 척 다 쉬었으면 타일 날라! 이제 여기가 우리 집이야, 우리 집!"

"끙."

핸드폰을 내린 종혁은 앞치마를 한 어머니 고정숙을 보았다.

쿵덕, 쿵덕!

내외부 인테리어가 한참인 10층 빌딩.

주인이 건설 현장에 없으면 소위 가라로 공사한다며, 1월 이 추운 날에 나와서 인부들에게 밥과 간식을 해 주시는 현명한 어머니.

어마어마하게 대출을 받았으니 한 푼이라도 줄여야 한다고, 아들에게 벽돌을 짊어지게 만든 자린고비 어머니.

얼른 꼭대기 층, 이제 둘만의 보금자리가 될 곳까지 올라가지 못하겠냐며 눈을 부라리는 어머니를 본 종혁은 한숨을 푹 뱉으며 더러워진 노가다용 점퍼의 지퍼를 올렸다.

"네에……."

‘진짜 내가 왜! 인부를 더 쓰면 되는 걸!’ 하지만 지엄한 어머니의 명령이라 거부할 수가 없었다.

"허허. 아드님이 참 착합니다. 이렇게 엄마도 돕고. TV에서 봤을 땐 그렇게 영특하더니. 아들을 이렇게 잘 키우셨으니 이런 복이 생기는 거 아니겠습니까."

10층 빌딩은 6층까지는 상업 시설, 7층부터는 오피스텔인 주상복합으로 꾸미기로 했다. 빌딩이 대로변에 위치했다지만, 지하철역이 코앞인 데다가 근처에 대학교가 있다.

수익을 최대한 극대화시킨 거다.

매연과 소음 문제는 공기청정기와 이중창, 방음 새시로 해결했다.

고작 노점상을 하던 고정숙에게는 너무 큰 복.

그동안 한 투자가 잘되어 이런 건물을 샀다지만, 고정숙이 힘들게 아들을 키우지 않았다면 하늘이 이런 선물을 줄 리가 없었다. 그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호호, 뭘요."

‘호호, 뭘요. 하여튼 우리 엄마 내숭은…….’ 집 안에선 대장군이 따로 없지만, 바깥에선 세상 고상한 여자, 어머니 고정숙. 그래도 어깨가 한껏 으쓱해 있는 걸 보니 웃음이 나온 종혁은 고개를 저으며 타일 박스를 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띠리링! 띠리링!

"예, 최종혁입니다."

"야, 최종혁!"

"이크!"

종혁은 재빨리 걸음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누구십니까?"

-헤이, 요. 맨…….

"준형이 형?"

-우리…… 회사에서 우릴…….

목소리와 내용이 심상치 않다.

종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설마?’

-어제 회사에서 우리 데리러 왔어, 맨! 몰래카메라 봤다고! 미안하다고! 계약하쟤!

-고마워, 종혁아!?

준형의 목소리 너머로 희망과 물기가 찬 외침이 들렸다. 종혁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몰래카메라가 큰일을 했구나.’

1997년부터 지금까지 지난 2년간 방치되어 온갖 고생을 한 그들. 그 고생 끝에 낙이 왔음에 종혁은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축하해요.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일 테니까 꽃길만 걷는 겁니다, 형들!"

흐어엉 울음이 터졌다.

-흑! 진짜 브로 덕분이야! 네가 아니었으면…….

어젯밤 찾아온 박 부장의 말에 얼마나 울었던가.

올올이 풀어지는 설움에 울다 지쳐 잠든 후, 깨어나서 종혁에게 바로 전화한 것이다.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모두 잘 견뎌 줘서 된 거죠. 그런데……."

종혁은 눈을 빛냈다.

"계약은 어떻게 하기로 했어요?"

-어? 계, 계약?

준형을 비롯한 이들을 후원한 이유가 뭐였던가.

씨앗을 뿌렸으니 이제 추수를 할 시간이었다.

"하, 이 사람들, 계약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네. 지금 어디예요? 내가 갈게요."

-어? 지, 지금 똥간에서 씻고 회사 가려는 길인데…….

"알았어요. 그럼 두 시간 뒤에 그 회사 앞에서 봐요."

-어? 어?

타일 박스를 내려놓은 종혁은 점퍼를 벗으며 밖으로 나갔다.

"엄마, 나 약속 생겨서 잠시 나갔다 올게요! 택시!"

"뭐? 이게 어디서…… 야, 최종혁!"

후다닥 택시에 오른 그는 크게 외쳤다.

"아저씨, 근처 사우나로 가 주세요! 빨리요!"

종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저녁은 찜질방에서 자야겠구나.’

그래도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럼 이쪽도 선수 입장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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