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36화>
* * *
80년대, 90년대를 주름잡은 개그맨 김경규.
양심냉장고로 국민들에게 정지선 지키기를 알린 그의 대표 프로그램인, 몰래카메라임이 분명했다.
허허 웃은 종혁은 겁먹은, 아니, 겁먹은 연기를 하고 있는 친구 둘과 꼽사리 둘을 보며 이를 갈았다.
‘너희는 좀 있다가 보자. 특히 준형이 형! 내가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알아요?!’
분노를 참는 정혁의 연기가 깜빡 속게 만들었다.
종혁은 훗날 역시 시상식에서 여러 상을 휩쓴 연기자답다며 혀를 내둘렀다.
"뭔 말이고? 속다니?"
강철선의 눈이 파르르 떨린다.
"아니요. 혼잣말이에요."
‘인마?’ 종혁은 느긋이 고개를 돌리며 카메라를 찾았다.
‘아, 저거 좀 이상한데? 저기도?’
뭔가 이상한 느낌. 상황을 깨닫자 카메라가 모두 보였다.
‘맞네. 맞아. 자, 그럼 이제 이걸 어떻게 할까?’
이대로 깨 버릴까. 아니면 속아 주는 척 계속할까.
아니면, 역으로 몰래카메라를 할까.
종혁의 마음에 갈등이 생겼다.
아주 짓궂고 즐거운 갈등이.
* * *
카페 안 작은 창고.
몸을 구기다시피 한 김경규는 작은 모니터 속을 보며 웃었다.
"이야. 최종혁 선수 배짱이 정말 대단한데요?"
하지만 좀 걸리는 부분이 있다.
검사를 너무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말이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재밌다.
무서움의 상징인 검사가 당하니 속이 좀 후련했다.
그러다 종혁이 딱딱하게 굳은 눈으로 카페를 둘러보자 혹여 들킬까 목을 움츠렸다.
"씁. 이거……."
그로서는 아주 익숙한 반응이다.
"설마 들켰나? 들킨 거예요, 경규 씨?"
"……일단 지켜보죠."
‘혹시 모르니까!’ 그런 그의 바람은 곧 깨져 버렸다.
-와. 진짜 이러니까 속는구나.
"악!"
작은 공간이 뒤집어졌다.
"뭐야, 진짜야? 아니 어디서 들킨 거야?!"
"우리 몰카 이대로 끝나는 거예요? 이게 몇 년 만에 부활한 건데!"
김경규의 낯빛도 흐려진다.
몰래카메라, 양심냉장고가 끝난 이후 성적이 부진했던 그.
이 몰카가 다시 부활의 신호탄이 될 수 있기에 김경규는 이대로 끝낼 수가 없었다.
‘아니겠지. 그냥 뭔가 이상함만 느낀 거…….’
-뭔 말이고? 속다니?
-아뇨. 그냥 혼잣말이에요.
김경규는 이마를 짚었다.
부활의 신호탄은 불발로 끝났다.
"아, 이거 들켰네. 어쩌지?"
"어쩌긴. 시마이지. 거참, 눈치 진짜 빠르네. 이 정도면 역대 가장 빠른 거 아니야?"
제작진이 철수 준비를 하자 김경규는 이를 악물었다.
"일단 더 지켜보지? 아직은 완전히 들킨 게 아니잖아."
"들키긴 뭐가 안 들켜. 경규 씨, 우리 질척대지 말……."
김경규는 손가락을 까딱였다.
"방금 강 검사님이 말했잖아. 그 영장 진·짜·라고."
"……아. 그렇지 참?"
‘그래. 이거라면?’ 꺼져 가던 불씨에 장작이 얹어졌다.
김경규와 제작진은 모니터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렇게 30분이 흐른 후 카페 팩스로 영장이 도착했다.
"자, 봐라."
"네에. 어디…… 응?"
종혁은 어이없다는 듯 강철선을 보았다.
폭력, 그리고 폭력 조직 결성 혐의.
속이려고 이렇게까지 하나 싶었는데, 양식과 도장이 진짜이다.
"니 그걸로 고소 들어온 거 몰랐제?"
"아."
누가 고소한 건지 떠오른 종혁은 뒷목을 잡았다.
‘이 개 같은 일진 새끼들!’
하지만 고맙다. 이게 어떤 악한 검사 손에 들려 잠자고 있던 상태였다면 훗날 큰일이 생길 뻔했다.
가끔은 의혹만으로도 사람이 죽을 수 있다.
종혁은 신색을 정리했다.
"아닙니다만."
"안다. 우리 검사들이 그런 거 모르겠나? 증거도 증인도 없어서 곧 혐의 없음으로 사건 반송될 테니까 걱정 마라. 그러니까……."
"예, 은행 가시죠."
종혁은 일단 어울려 주기로 했다.
‘내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준형이 형 당신과 경규 아저씨는 물먹인다!’
아까 얼마나 놀랐던가.
이대로 끝내기에는 너무 괘씸했다.
사람 마음을 가지고 노는 사람은 당해 봐야 안다.
이미 계획도 다 짜 놓았다.
그렇게 종혁이 순순히 일어서자 강철선은 허탈해졌다.
‘진짜 들켰네. 와, 내가 고작 열여덟 살 얼라한테 지뿐 기가?’
한국대 출신으로서 한국대 라인을 잡고 중앙에 입성했다지만, 지방에 와서 그런지 따돌림이 심했다.
맡는 사건도 상대적으로 급이 떨어졌다.
높은 곳으로 향할 야심이 있기에 서울지방검찰청, 중앙지검에 왔던 그로서는 중앙지검이라는 타이틀만 있을 뿐 조직의 일개 부품이 되는 걸 원치 않았다.
최소 지검장 정도는 하고 싶었다.
사내로 태어나 중앙지검까지 왔으니 그 정도는 노려봐야 했다.
그래서 제의가 들어오자마자 덥석 물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방송에 출연하여 스타 검사가 되기 위해서이다.
‘여기서 이미지 제대로 잡아서 검찰의 위신을 세우면?’
그러면 대검의 꽃이라 불리는 부서로 옮길 수 있다.
여러 개 있지만 그중 제일은 특별수사부, 통칭 특수부.
나는 비행기도 떨어트린다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와 비견되는 조직이다.
어쩌면 쉰다섯 전에 지검장이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랬는데…….’
안 나오니만 못한 꼴이 됐다.
괜히 폭주해서 영장을 발부했나 싶었다.
‘그래도 미리 알아서 다행이제. 나중에 이 잘난 놈 발목 잡히면 우짤 뻔했노.’
마침 이걸 들고 있던 검사가 잘 아는 후배라서 다행이었다.
"아, 제가 이렇게 협조해 주니까 검사님도 나중에 협조해 주시는 겁니다?"
종혁은 그러며 손의 모양을 바꿨다.
"음?"
‘저건?’ 수화이다. 그것도 경찰이나 수사관들이 쓰는.
‘저건 또 어떻게…… 잠깐. 망신. 뒤. 하나. 카메라?’
그의 머릿속에서 단어들이 빠르게 조합됐다.
‘그러니까 뒤쪽 놈과 카메라, 방송국 사람들을 망신시키자? 어떻게?’
강철선은 믿어 달라는 종혁의 눈빛에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하나의 선택지만 있을 뿐이었다.
‘그래. 얼라한테 속았다는 이미지가 씌워질 바에는 차라리 역으로 지랄하는 게 낫다!’
그는 생각을 정리했다.
"잘 생각했다. 이 아저씨가 닐 우째 할라고 이라는 기 아이다이. 이 아저씨가 후배 될 사람 못 믿겠나? 그저 니 통장이 니도 모르게 범죄에 이용된 것 같아서 협조 좀 부탁했던 기야."
종혁은 씩 웃었다.
"후배요?"
"법대 진학한다메? 법대 하믄 한국대 아니겠나? 그리고 한국대 법대 하믄 검사고."
순간 웃음이 터질 뻔한 종혁은 겨우 눌렀다.
"음. 경찰대도 생각하고 있어요. 가시죠."
그렇게 앞장섰지만, 종혁은 통장 내역을 떠올렸다.
어머니 고정숙을 안심시켜 드리기 위해 통장에 거액이 오간 흔적. 종혁은 이걸 이용할 생각이었다.
‘아버님이 의심해도 설명할 수 있고!’
거액이라지만, 출처가 분명하고 현재 구입하려는 10층 빌딩의 반 가격에 불과했다. 주식은 언제든 백배당이 터질 수 있다 설명했지만, 고정숙이 의심하지 않을 마지노선의 액수.
검사로서 수많은 사건을 맡거나 들었을 강철선이라도 이해할 액수이다.
나머지는 대출을 받기로 합의했다.
‘어디 소설로 꾸며 놓은 대본이 진짜가 됐을 때 어떻게 반응하나 봅시다. 특히 준형이 형, 각오해요.’
종혁과 강철선은 방송국 내에 있는 은행으로 향했다.
방송국 내에는 놀랍게도 24시간 ATM기가 아니라 지점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도 한국 대표 은행들이 작은 부스로 말이다.
‘뭐 폰뱅킹이나 인터넷뱅킹이 활성화되지 않은 시기니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지. 방송국은 연예인 출연료까지 해서 엄청난 액수의 돈이 움직이는 곳이니까.’
오전 10시 30분, 시간이 애매해서 그런지 은행 내에는 손님이 없었다.
은행 직원이 종혁을 반갑게 맞이했다.
"예, 거래 내역 좀 확인……."
띠리링! 띠리링!
‘음? 누구지?’
"받아라."
"감사합니다."
종혁은 고개를 모로 기울이며 전화를 받았다.
-보스!
"권 PB?"
의아해졌던 종혁은 이내 뭔가를 깨닫곤 식겁했다.
‘자, 잠깐!’
-부탁한 거 모두 조사했는데, 다행히 담보나 신용 대출은 있지만, 사채 빚은 없더라고요. 그 사람 건물도 몇 채라서 개인 빚이 있다고 해도 괜찮고요. 그래서 방금 돈 모두 부쳤어요.
"……예? 모두요?"
-네. 제가 조사한 시세요. 엄청 싸던데요?
‘억?! 아니 왜!’
종혁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타이밍이 나빠도 이렇게 나쁠까.
쓸데없이 능력이 좋은 사람이 왜 쓸데없는 짓을 했을까.
방금 이해할 수 있는 액수를 넘어섰다.
종혁은 생각했다.
망했다.
-아, 그리고 보스나 제 입장에선 싸다지만, 너무 큰 액수라서 오늘내일 내로 금감원에서 연락이 갈 거예요. 그 부분은 제게 맡기…… 보스? 여보세요?
‘금감원? 미치겠네!’
종혁은 머리를 잡고 뒹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어서 식은땀만 뻘뻘 흘렸다.
딱딱하게 굳은 종혁의 모습에 강철선은 의아해했다.
‘……히야. 이놈 봐라? 지가 탈랜트가?’
알고도 속을 만큼 연기를 잘한다.
강철선은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어울려 주기로 했다.
"잠깐. 그 전화 좀……."
"네. 알겠습니다. 끊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종혁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도주? 아니, 하책이다. 도망치면 끝이야.’
그 순간 다시 전화가 울렸다.
‘평소엔 그렇게 눈치 빠르더니 왜 이럴 땐!’
종혁은 전화를 받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강철선이 손을 내밀었다.
"줘 봐라."
‘망했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여기서 핸드폰을 박살 내어 버리면, 수습 불가다.
‘진짜 망했어. 나도, 방송도. 그냥 아까 끝낼걸!’
종혁은 결국 핸드폰을 내밀 수밖에 없었고, 강철선은 전화를 받았다.
"예, 여보세요?"
-최종혁 씨? 여기 금감원 조사실입니다.
순간 눈을 동그랗게 뜬 강철선은 다급히 종혁을 봤고, 김경규도 마이크를 통해 들어온 음성에 경악했다.
"이건 또 뭐야?"
아시안게임 영웅들을 위한 특집으로 부활한 몰래카메라.
이야기가 산으로 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바로 이어지는 말에 뒤집어졌다.
"미안해, 형!"
모두의 시선이 준형을 보고 있는 종혁에게 모였다.
시선이 다시 준형에게 옮겨 갔다.
‘미안해, 형. 일단 살고 봐야지!’
역시나 의심을 머금어 가던 강철선의 눈이 감탄을 머금으며 준형을 노려본다.
"나? what?"
"형, 다 들켰어. 이제 그만 관두자."
"뭘……."
"죄송합니다, 검사님. 하지만 저도 몰랐어요! 그냥 한국에 있는 친구들을 위해서인데, 자기는 통장을 만들 수 없으니까 용돈벌이로 생각하라고 해서! 검사님도 저희 집안 사정 아시잖아요!"
나쁜 형사, 좋은 형사, 잠입 근무.
그렇게 쌓인 연기 내공이 열연으로 빛을 발했다.
"흐음."
강철선은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았지만, 준형은 뭔가 심상치 않은 걸 느꼈다. 그건 정혁도 마찬가지였다.
매서운 검사의 눈빛과 이해하지 못할 종혁의 말.
온몸이 오싹해졌다.
"종혁? ……왜, 왜 그래. 나 무서워, 종혁."
"형이 시킨 거잖아! 은행원님. 일단 통장 거래 내역 세 달치 뽑아 주세요! 여기 신분증이요!"
"네? 아, 네네!"
"종혁! 맨! 그게 무슨 말이야!"
종혁은 필사적으로 시선을 외면했다.
이윽고 통장 거래 내역이 뽑혔다.
종혁은 거래내역을 보며 ‘히익!’ 하고 식겁하는 은행원에게서 통장을 빼앗아 강철선에게 내밀었다.
"여기요!"
"……!"
강철선은 액수에 식겁해 종혁을 봤다.
"무슨?!"
종혁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강철선은 입을 벌렸다.
‘설마…… 진짜? 아니 PB?’
PB는 그도 아는 단어다.
정신이 몽롱해지는 가운데 종혁의 수신호를 다시 본 강철선은 눈빛을 가라앉혔다.
"김 수사관, 최 수사관! 그 새끼 제압해!"
"예?"
"얼른! 뭐 해!"
"……예!"
정말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 우리 검사님 연기 잘하네 하고 시시덕거리던 수사관들은 이를 악물며 준형을 덮쳤다.
붕- 쿵!?
업어치기를 당한 준형이 발버둥을 쳤다.
"노우!"
"억! 경찰 아저씨들, 잠시만!"
"……허. 검찰 이미지를 개선시킬 겸 나왔다가 진짜 범죄자 놈을 잡네. 박준형 씨? 당신을 폭력조직가담 혐의와 범죄수익은닉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긴급체포합니다. 당신은……."
순간 은행이 조용해졌다.
"……으허억! 노우! 아임 낫 어 갱! 나 갱 아니야! 이거 몰래카메라잖아!"
"몰래카메라는 무슨. 더 이상 몰래카메라 아니다, 이 범죄자 새끼야. 그리고 최종혁 선수?"
"예……."
"아아악!"
"형! 왜 이래요, 검사님들! 종혁아!"
은행이 난장판이 됐다.
그건 카페 안 김경규와 제작진도 마찬가지였다.
종혁을 속이기 위해 지인을 끌어들였는데, 그 지인이 정말 범죄자고 종혁이 자금책이었다?
김경규와 제작진의 온몸에서 피가 빠져나갔다.
"이, 일단 진정시켜! 김경규 씨도 얼른 가서 말리고!"
"예!"
그들은 은행을 향해 달렸다.
쿠당탕!?
은행에 도착한 그들은 아찔해졌다.
수갑이 뒤로 채워진 채 눈물 흘리며 발악하는 준형과, 앞으로 수갑을 찬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종혁.
‘망했다.’
그리고 종혁이 이대로 끌려가면 정말 망한다.
그들은 반사적으로 막아섰다.
"어이구, 검사님!"
"비키십시오."
"어이구, 잠시만요! 잠시만!"
"뭘 잠시만. 지금 이 범죄자들 비호합니꺼? 아, 설마?"
"아, 아니요! 그럴 리가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진정하시고……."
나가려는 강철선과 막아서는 제작진. 넋을 놓은 김경규.
혼란의 도가니였다.
그 순간이었다.
"푸흐흐!"
모두의 시선이 종혁에게로 모였다.
"검사님, 이 정도면 될 것 같은데요?"
"아, 글나?"
이번엔 강철선 검사에게로 시선이 모였다.
"이야. 연기자 하셔도 될 것 같아요."
"흐흐. 나도 그 소리 많이 들어 봤다. 근데 우야겠노, 검사가 천직인데. 어떻노, 검사도 재밌지 않나? 검사라고 막 무서운 사람만 있는 거 아니데이."
이해하지 못할 말.
그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러나 몰래카메라를 하며 이 꼴 저 꼴 다 본 김경규는 달랐다.
"지, 지금 두 분이서 무슨 말을 하시는 거, 겁니까? 서, 설마……."
종혁이 활짝 웃었다.
"네! 역몰래카메라!"
종혁은 강철선을 향해 수갑 채워진 손을 들었고.
짜악!
"성공!"
"으자아!"
사람들은 하이파이브 하는 둘을 망연히 쳐다보았다.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준형의 얼굴은 가관이었다.
* * *
정혁, 소영, 수호의 눈물 가득한 얼굴을 잡던 카메라가 마무리 인터뷰를 하는 종혁과 김경규를 잡았다.
"아니, 대체 언제?"
"음. 알아차린 건 여기 강 검사님께서 영장을 발부한다고 했을 때예요."
"맞아! 그랬죠.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던 겁니까?"
"아아! 그기 동티였던 기가? 와, 인마야. 진짜 그 형사 삼촌들한테 제대로 배웠네."
사람들이 강철선을 봤다.
"허헛. 이놈아는 이미 들어올 때부터 카페 안 사람들이 연기자란 거 눈치 깠을 낍니더."
"예?"
"정확히는 그때까지만 해도 수사관이라고 생각했었죠. 저 한 명 잡으러 참 많이 오셨다고. 한 열여덟 명이었나요? 오는 길에 다섯 명, 안에 열세 명."
김경규와 피디는 입을 떡 벌렸다.
그들이 동원한 연기자 수와 스태프 수, 그리고 수사관 숫자와 정확히 일치했다.
"그런데 그게 왜?"
"그렇게 수사관을 많이 데려왔는데, 영장이 없으시더라고요?"
종혁은 이후 의심하고 결론을 내었던 의식의 흐름을 알려 주었고, 김경규는 헛웃음을 지었다.
"박 작가! 그러니까 내가 연기자 숫자 좀 줄이자고 했잖아!"
"네?"
"큼. 그럼 언제 둘이 한배를 타신 겁니까."
종혁은 그 부분도 설명했고, 김경규는 원망 어린 시선으로 강철선을 보았다. 강철선은 씩 웃었다.
"이 편이 더 재밌을 것 같아서……."
"이거 계약 위반입니다, 검사님!"
"고소장 넣으소, 마. 내가 담당해 드릴게."
"와."
입을 뻐끔거리던 김경규는 카메라를 보며 손을 들었다.
"전국에 계시는 시청자 여러분. 여기 두 사기꾼들 때문에 최종혁 선수 편 몰래카메라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몰래카메라…… 실패!"
"흐흐. 수고하셨습니다!"
"아, 재밌다!"
"재미없어요!"
그렇게 마무리가 되자 수갑이 풀린 준형이 달려왔다.
"요- 맨! 종혁! 나 진짜 속았어! 너 나빠!"
"종혁이 너어!"
소영도 눈물을 그렁거리며 종혁의 등을 때렸다.
정혁과 수호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악! 악! 흐흐. 그러게 누가 속이래요?"
지은 죄가 있는 그들은 입을 뻐끔거릴 뿐 말을 하지 못했다.
"이야. 최종혁 선수 정말 센스 좋네."
"아, 경규 아저씨! 저희 어머니가 진짜 팬이신데. 사인 좀 해 주실래요?"
"그럼. 그럼요, 당연히 해 드려야지. 최 선수도 사인 한 장 해 줘요. 나도 경기 정말 잘 봤어요."
그렇게 사인을 주고받고 사진까지 찍은 후, 둘은 헤어졌다.
"나중에 또 봅시다."
"예, 들어가세요."
카메라까지 모두 철수하자 종혁은 강철선을 보며 손을 들었다.
"이제 이거 풀어 주셔야죠?"
철컥!?
양 손목에 채워진 은색 수갑이 흔들렸다.
방금까지 웃으며 제작진을 배웅한 강철선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건…… 이걸 설명한 이후가 되지 않긋나?"
강철선의 손에 들려 흔들리는 통장 거래 내역.
"카페로 가까? 아님 이 아저씨 사무실 가까?"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준형 일행과 친구들이 입을 다물었고, 종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줄 알았지.’
이미 예상한 일이다.
가끔 자존심을 못 이겨 폭주하지만, 결코 본인이 검사임을 잊지 않는 사람이다. 혐의가 있다면, 그게 남녀노소 누구든 끝까지 매달리는 진짜 검사. 그래서 남자라면 지검장 정도는 해 봐야지 않겠냐고 입에 달고 살면서도 결국 만년 부장으로 퇴직했다.
그래도 지방으로 좌천되지 않고 서울을 전전한 만년 부장.
실력은 좋았다.
‘이런 사람이라면…….’
종혁은 싱긋 웃었다.
"청렴결백한데 돈 걱정은 없는 검사가 돼 보실 생각 있으십니까?"
강철선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 * *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방송국을 빠져나오는 길. 소영이 흘겨본다.
"그러는 나는? 할 말은 없으신가?"
"……미안."
다른 이들도 사과를 했다.
"오냐, 받았다. 그리고 나도 미안. 가자."
소영의 머리를 헝클은 종혁은 성큼 발을 내디뎠고, 소영은 넓은 등을 멍하니 보았다.
수호가 씩 웃으며 종혁에게 다가섰다.
"종혁아. 너 혹시 번개팅이라고 알아?"
"번개팅?"
"오옷?! 나 알아. 번개팅!"
"아앗! 종혁아, 저 채팅 마귀 말 듣지 마!"
웃음 가득한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