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32화>
10. 금감원과 검사
방콕 아시안게임에 도핑테스트 폭풍이 불었다.
대놓고 한국 유도 국가대표 전원을 조사했는데도 아무런 성과가 없자, 화가 난 건지 마치 뭐라도 잡으려는 기세에 각국 위원들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원래 어떤 나라 어떤 선수건 지면 제일 먼저 걸고넘어지는 게 이긴 선수에 대한 도핑 유무지만, 이렇게 개최 측이 나선 적은 처음이기에 반사적으로 반발했다. 그러나 거부하면 몰수패라는 강력한 카드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놀라운 결과가 발표되었다.
"중국 야구 박살 났다며? 햐, 박찬오가 그렇게 무서웠나?"
"수영도 몰수패당했대. 수영은 누가 있지?"
"이란은 또 어떻고?"
아시아 최강국 중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에서 금지 약물을 썼다는 게 밝혀졌고, 그에 방콕 아시안게임은 엉망이 되었다.
약물의 아시안게임이라는 오욕이 태국을 뒤덮으려고 했다.
그러자 태국은 단호하게 모든 경기, 모든 선수의 경기 출전 자격을 박탈하고 그간의 성적을 무로 되돌렸다.
이 단호한 대처에, 일찍이 떨어졌다가 다시 경쟁을 하게 된 나라들이 환호하며 태국의 단호한 대처를 칭찬했고, 그에 IOC에서도 태국을 두둔하며 금지 약물을 쓴 선수와 그런 선수를 두둔하려는 나라들을 성토했다.
국제사회가 태국의 단호한 결단을 응원하며 최고로 깨끗한 대회라는 프레임을 씌워 주었다.
그리고.
종혁은 저 멀리 낯빛이 똥색인 일본 감독과 선수들을 보았다. 대망의 결승전답게 경기장의 열기가 뜨겁지만, 종혁은 못마땅해 하고 있었다.
‘겨우 한 놈.’
겨우 - 67킬로그램의 남자 선수.
부작용 반응을 일으킨 사람을 네 명 본 것 같았는데, 아무래도 몸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고 알러지 반응을 일으킨 것 같았다.
"아쉬워라. 다 보내 버릴 수 있었는데."
"보내긴 뭘 보내. 그만 중얼거리고 집중해. 결승전이야. 네 목에 금메달을 걸지, 은메달을 걸지가 달린 경기라고!"
"뭘 걱정하세요. 무조건 금메달이지."
따악!
"윽!"
"집중 안 하지? 저 미친놈이 그냥 미친놈인 줄 알아?"
결국 생각한 선수가 결승 상대가 되었다.
혀를 찬 종혁은 결승 상대인 태국 선수를 보며 표정을 굳혔다.
유도 불모지인 태국에 갑작스레 나타난 혜성.
한국, 이란, 일본.
아시아 유도의 삼 대 국가 외에서 태어난 변종.
이런 대회 경력만 4년 차.
그중 금메달을 2개나 목에 건 만만치 않은 상대이고, 이런 대회에서 맥을 못 추는 태국의 희망이다.
‘프랑스계 혼혈이랬던가? 몸이 엄청나네.’
마치 통나무 같은 허리와 상대적으로 짧은 도복에 드러난 굵은 팔뚝, 야생마 같은 근육이 역동한다.
신장 192센티미터에 체중 136킬로그램.
결코 태국인답지 않은 몸이다.
‘반사 신경도 엄청났지.’
그 환상의 되치기.
업어치기 한판으로 끝났다 싶은 상황에서 벼락처럼 나온 되치기는 종혁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아마 경기 출전 이후 처음으로 치열한 접전을 벌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럼에도 시선이 다시 돌아간다.
옆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경기가 한일전이기 때문이다.
‘출전 쿼터 제한이 없었더라면 한 번 더 일본을 뭉개 버릴 수 있었을 텐데. 쯧.’
출전 쿼터 제한만 없었더라면 일본은 아마 꽤 많은 선수를 본선에 올렸을 거다. 그러나 유도는 국가별로 전 체급에 한 명씩만 출전할 수 있기에 아쉬울 수밖에 없다.
"전 괜찮으니까 동익이 형에게 가 보세요, 감독님. 지금 감독님이 가장 필요할 거예요."
"야, 인마."
"정말 괜찮아요."
종혁은 단호하게 말했고, 그 눈을 응시하던 신성일 감독은 이를 악물었다.
"괜찮겠냐?"
"감독님."
"왜."
"저 종혁이에요, 최종혁."
‘으.’ 손발이 오그라들었지만, 종혁은 꿋꿋이 신성일을 봤다.
"……금메달 단상 앞에서 보자."
신성일 감독은 떼어지지 않는 걸음을 억지로 뗐고, 곧 주최 측의 협의하에 설동익을 돕던 부감독이 왔다.
"에휴, 이 미친놈. 결승전이라면 욕심 좀 부리지."
"흐흐. 금메달은 신 감독님 목에 걸어 드릴 겁니다."
"나도 안 바란다, 이놈아. 대신 꼭 금메달 따라."
불안 가득한 눈으로 태국의 라차논 선수를 본 부감독.
마침 라차논 선수와 종혁의 눈이 마주쳤다.
‘눈 크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눈에서 시선을 돌린 종혁은 눈을 감았다.
"걱정 마세요. 그럴 테니까."
‘후우.’ 이래저래 참 많은 일이 있었지만, 드디어 결승이다.
금메달이 눈앞에 아른거리자 종혁은 모든 번뇌와 상념을 지웠다.
‘내가 할 일은 다했어. 이렇게까지 해 줬는데도 삽질하면 어쩔 수 없는 거지.’
이제부터는 종혁 본인만을 생각해야 된다.
모든 경기가 그렇지만, 매트 위에서는 상대 선수와 본인뿐이다.
그렇기에 언제나 이 시간부터 고독해진다.
세상에서 홀로 동떨어진 것 같은 고독함.
‘그저 진학을 위한 스펙 쌓기였던 행위가 결국 여기까지 이어졌네.’
이젠 마냥 진학만을 위한다고 생각할 수 없다.
온갖 인종들이 모인 신기한 광경이 하나의 생각만 하게 만든다.
‘여기서 이기면 내가 아시아 최고다.’
그렇게 생각하자 울컥 뜨거운 게 솟는다.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 승리에 대한 열망.
최고가 되고 싶은 욕망.
"양 선수 입장!"
종혁은 눈빛을 굳히며 몸을 일으키며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아자아!"
‘이번에도 빨리 끝내자!’ 이왕 이길 거면 압도적으로.
남들과는 다른 시간 속에 사는 자신을 믿은 종혁은 매트 위로 발을 크게 내디뎠다.
삐익!
경기가 시작됐다.
그리고.
"흡!"
종혁은 여태까지와 달리 상대를 향해 뛰어들었다.
그에 라차논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상대에게 먼저 달려든 적이 없는 종혁.
이는 이날을 위해 종혁이 꽁꽁 숨겨 둔 투사의 본능이 드러나자 라차논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게 종혁이 노린 것이었다.
종혁은 빠르게 팔을 뻗었다.
파바박!?
라차논이 재빨리 그 손들을 쳐 냈지만.
‘걸렸어!’
물속 세상보다 훨씬 느려진 시간.
느릿한 라차논의 손이 움직이는 궤적이 훤히 보였다.
덥석 소매를 잡은 종혁은 어깨까지 휘감으며 주저앉았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앉아 한팔 업어치기.
투둑!?
어깨 부위가 소음을 내며 몸이 딸려 오는 게 느껴졌다.
"끝났……."
"흐읍?!"
퍼억!?
라차논의 양 무릎이 종혁의 어깨를 짓누르고 상체가 뒤로 빠졌다.
‘막아?’
눈이 서늘해진 종혁은 중심이 뒤로 간 라차논을 밀며 다리를 쭉 뻗었다.
"으핫!"
타다닥!?
억지로 팔을 잡아 뺀 라차논이 빠르게 멀어졌다.
종혁은 그런 그를 멍하니 바라봤다.
"진짜 막았네?"
그간 강력한 승리의 패턴이었던 앉아 한팔 업어치기 후 안뒤축후리기.
그간 누구도 막지 못한 승리 패턴을 유도 불모지에 있는 선수가 막아 냈다. 그것도 이렇게 쉽게.
"너……."
"우아아아아아!"
순식간에 일어난 수준 높은 공방에 돔 경기장이 후끈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건 종혁의 귀에 닿지 않았다.
‘설마?’
눈을 가늘게 뜬 종혁은 다시 라차논에게 달려들었다.
타다닥! 퍼버벅!
‘역시!’
따라온다. 느려진 시간 속에서 이쪽의 속도에 반응하다 못해 사각에서 기술을 걸어온다. 인프라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이 태국에서 왜 이런 괴물이 나왔나 이제야 이해가 된다.
재능. 압도적인 동체 시력.
퍼버벅!
종혁은 황급히 팔을 떼어 내고 물러나는 라차논을 보며 사납게 웃으며 입술을 핥았다.
"그래. 이래야 국제 대회 결승답지!"
* * *
오싹!
물러난 라차논은 이를 드러내는 종혁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휘유."
그에게도, 태국인에게도 너무도 중요한 이 대회. 그것도 결승전이 순식간에 끝날 뻔했다.
"라차논! 뭐 하는 거야! 긴장해!"
‘알아요, 감독님.’ 라차논이 낯빛을 굳혔다.
‘최.’
운명의 장난이 이럴까.
메달에 간절한 태국 대표들에게 흔쾌히 음식을 베푼 그. 이 나라, 자신이 사랑하는 태국을 도운 은인을 결승에서 만나게 됐다.
그래서 가볍게 인사한 후 빠르게 끝내 줄 생각이었다.
그는 그렇게 할 자신이 있었다.
농락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예의.
그런데.
"휘둘리지 마! 너의 시간은 무적이야!"
‘안다고요!’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가진 남들과 다른 시간 속에서 살았다.
세상 모든 게 느릿한 세상.
후에 메디컬 테스트를 받고 나서야 그게 극한의 동체 시력 때문임을 알게 됐다.
이후 우연한 기회에 유도를 시작했고, 그를 막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그게 지금 이 순간.
올림픽보다 중요한 이 경기에서, 힘들어할 태국에 희망이 되어 줄 이 경기 결승전에서 막혀 버리게 됐다.
이러니 운명의 장난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기뻤다.
"너도 나랑 같은 시간에 사는구나?"
점점 이긴다는 행위 자체에서 흥미가 떨어지던 와중에 나타난 동류.
라차논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맺혔다.
* * *
"……아, 최종혁 선수. 30초가 지났습니다."
초살 불발. 중계석 해설자들의 엉덩이가 들썩였다.
"이게 어떻게 된 걸까요? 컨디션 조절에 실패한 걸까요?"
"아닙니다! 이건 태국의 라차논 선수가 뛰어난 겁니…… 그 순간 최종혁 허벅다리후리기! 라차논 먼저 몸을 날려…… 억! 라차논 빗당겨치기! 조심! 헛! 최종혁 선수 뒤로 훌쩍 물러나며 피합니다! 그러며 잡아당깁니다! 아, 돌아가다 만 허리! 허리를 잡은 라차논! 미쳤어요! 이게 정말로 십 대 후반, 이십 대 초반 선수들의 경기입니까!"
그동안 종혁을 돋보이게 만든 초살이 불발로 끝났지만, TV 앞에 앉은 그 누구도 시선을 떼지 못했다.
현란하고 살벌한 일진일퇴의 공방.
누구 한 명 물러서지 않고 어떻게든 기술을 집어넣기 위해 굶주린 짐승처럼 달려든다.
"심판! 넋 놓고 바라만 보고 있어요!"
오직 공격 일변도다 보니 주의도 경고도 나오지 않는다.
그 순간.
삐익!
심판이 둘 사이에 뛰어들며 갈라놓았다.
"뭐야! 지금 뭐…… 어? 시간이 벌써?"
3분이 지났다.
"억! 연장전 돌입이다!"
관객들의 낯빛이 흐려진다.
여태껏 그 어떤 경기도 1분을 넘긴 적 없는 종혁.
헉헉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 모습에 사람들의 낯빛이 흐려진다.
"이, 이러다 지는 거 아냐?"
"거 맥 빠지는 소리 하지 마쇼! 지긴 누가 져!"
"맞아! 최종혁은 절대 안 지지! 최종혁! 파이팅!"
파이팅!?
관객석에 앉은 사람들 모두 한마음 한뜻이 되어 응원했다.
딴 한 명만 제외하고 말이다.
그녀,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태국으로 날아온 고정숙은 종혁의 얼굴에 한가득 피어난 미소만 보고 있었다.
‘아들. 즐거워?’
고등학교에 올라온 이후 어느 순간 철이 들더니 단 한 번도 보이지 않게 된 즐기는 모습.
국가대표가 됐다고 외칠 때에도 기뻐하긴 했지만, 즐기는 것과 기뻐하는 건 엄연히 다른 의미였다.
‘그래, 그걸로 된 거야. 이 엄마 걱정, 집안일 걱정, 여타 걱정은 하지 말고 이 순간을 즐기렴.’
그녀는 주먹을 쥐며 조용히 응원했다.
삑!
"주의!"
양 선수가 서로 떨어진다.
"훅! 훅!"
다리가 떨린다.
팔이 떨리고, 허리와 발목에 감각이 없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라차논은 그걸 느끼지 못하는지 입가엔 미소가 한가득 맺혀 있다.
‘대단해!’
솔직히 1분이 넘어가자 라차논은 승리를 생각했다.
종혁을 상대한 모든 이들처럼 일정 이상의 시간이 지나면 종혁의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저 경기를 길게 끌 이유가 없었던 거였다.
느린 세계, 자신보다 느린 상대의 빈틈을 포착해 넘겨 버리면 끝이니까.
마치 라차논 본인처럼.
‘즐거워! 이게 라이벌인가?’
그래서 아쉽다. 너무도 지쳐 이 시간을 더 즐길 수 없다는 게.
"너도 그렇지, 최? 너도 나와 같은 생각…… 음?"
종혁을 본 라차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저, 저건?’
"후우우."
길게 숨을 내쉰 종혁은 기지개를 펴듯 양팔을 뻗었다.
뚜둑, 뚜두둑!
"어, 이제야 몸이 좀 풀리는 것 같네."
이제야 관절들이 묵은 때를 벗는 것 같다.
여태까지 경기가 빨리 끝나서 얼마나 불만스러웠던가.
그렇다고 억지로 경기 시간을 늘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언제나 불만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회장기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 승리의 기쁨을 느꼈을 뿐. 미련을 털어냈을 뿐.
안 그래도 미친 피지컬을 괜히 더 미치게 만들었나 하는 후회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종혁은 얼이 빠진 라차논을 보며 씩 웃었다.
"고마워, 젊은 친구. 아니, 라차논. 덕분에 완전연소 할 수 있게 됐다."
같은 시간에 산다?
그게 어떻단 말인가.
종혁은 이 순간이 그저 즐거웠을 뿐이다.
‘그래도 딱 죽을 것 같지만.’
지난 형사 생활에서 터득한 본능적인 체력 분배가 아니라면 벌써 뻗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해체시킨 달건이, 뽕쟁이 조직이 몇 갠데.’
여차하면 죽을 수도 있는 피 튀기는 소탕 작전들.
종혁이 이렇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건 그런 실전 덕분이다.
"헉! 헉! 너……."
"그러면 이제 끝내자."
어느덧 시간은 5분 37초.
종혁은 주의 1개, 라차논은 주의 0개.
방금 전 받은 주의 1개, 개최국의 편파 판정 때문이라도 더 이상 즐길 수 없다.
이렇게 허세 아닌 허세로 도발한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다.
"……으아아아아!"
지독한 배신감.
라차논은 눈을 뒤집으며 달려들었다.
퍼벅!
강렬하게 부딪치며 몸을 붙인 라차논. 그와 동시에 더 깊이 파고들어 허리를 뒤틀며 발을 드는 그의 행동에 종혁의 눈빛이 착 가라앉았다.
허벅다리걸기.
"읏챠."
반사적으로 한 발 앞으로 나선 종혁은 그의 깃을 잡아당기고 밀며 몸을 숙였다.
그러자 찌릿 허리에서 전율이 흘렀다.
그건.
부웅. 쿠우웅!
……삐이익!
"으아아아아아아!"
온전히 즐긴 전투에서 승리한 기쁨이었다.
마지막까지 온전히, 그리고 너무도 즐겁게 즐긴 종혁의 포효가 경기장을 뒤흔들었다.
"우아아아아아아!"
"한판이다! 금메달!"
"최종혁! 종혁아!"
허벅다리비껴되치기.
허벅다리 걸기의 원심력을 이용한 되치기.
약속 대련에서도 나오지 않은 환상의 기술이 작렬하자 중계석, 관객석, TV 앞에 앉은 사람들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그렇게 방콕 아시안게임의 유도 무제한급 경기가 끝났다.
"야 이 자식아! 이 미친 자식아! 이걸로 또!"
지금은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간 윤성오. 동일고 유도부의 오점. 박상묵 전 코치의 아이였던 윤성오를 넘긴 기술이자, 이전까지 힘만 맹신하던 종혁이 드디어 기술도 쓰게 됐다고 기뻐하게 만든 그 기술로 금메달을 땄다.
어화둥둥 종혁을 안아 올린 신성일 감독은 형언할 수 없는 감정에 결국 눈물을 흘렸다.
"감독님이 왜 울어요?"
"몰라, 인마! 이 예쁜 새끼야! 어이구, 보석 같은 내 새끼!"
‘난 우리 엄마 아들인데요…….’ 사회생활을 물리도록 한 종혁은 굳이 그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대신 늘어트린 어깨를 들썩이며 퇴장하는 라차논의 뒷모습을 응시할 뿐이었다.
"최종혁 선수! 최종혁 선수!"
"아."
종혁의 입 앞으로 마이크가 드밀어졌다.
"접전 끝에 결국 금메달을 목에 걸게 되셨습니다! 지금 심정이 어떠신가요?! 저번 회장기 때처럼 국민들에게 하실 말이 있으신가요?!"
‘심정.’ 당연히 기쁘다.
아시아 최강이다.
기쁘지 않을 리가 없다.
하지만 그걸 그대로 표현하기엔 벌려 놓은 일들이 참 많고, 앞으로 할 일들도 많다.
"기쁩니다. 그간 흘린 피와 땀, 여기 신성일 감독님의 섬세한 지도와 우리 유도 국대 선후배님들의 배려, 그리고 먼 한국에서 날아온 우리 한국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응원 덕분에 우승할 수…… 응?"
한국인들이 앉은 객석을 손으로 훑던 종혁은 순간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최종혁 선수?"
그러다 이내 눈을 부릅뜨며 몸을 날렸다.
"어? 최종혁 선수! 어디 가세요?!"
다급한 아나운서의 말은 귀에 닿지도 않았다.
종혁은 온몸에 힘을 짜내며 객석을 향해 달렸다.
"어? 어어?"
"헛! 최종혁 선수가 여길 왜?"
종혁은 한 여성, 모자를 눌러쓴 여성, 어머니 고정숙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뭐야. 언제 왔어요?"
"어제."
"왔으면 왔다고 말하지."
"뭘 굳이 말해. 그냥 보면 되는 거지. 그러다 가려고 했는데……."
종혁의 몸에서 열기가 후끈 느껴지자 고정숙은 입술을 깨물었다.
"하여튼 지 아빠 닮아서 눈은 좋아 가지고. 쯧."
"흐흐. 봤어? 나 금메달 땄어."
"그래. 봤어."
"이 아들이 금메달 땄다고요."
"그래. 수고했다니까? 수고했어."
찌리릿!
참 담담한 말이었지만, 그 속에 숨은 떨림이, 어머니의 마음속에서 폭풍처럼 흔들리는 격정이 절절히 전해져 왔다.
그 어떤 순간보다 더 치솟는 기쁨. 뿌듯함.
종혁은 울컥 솟는 감정을 더 이상 참지 못했다.
번쩍!?
종혁은 어머니를 안아 올렸다.
"악! 야! 내려놔! 안 내려놔?!"
"여러분! 저 금메달 땄습니다!"
"……우아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