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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31화 (31/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31화>

    *  *  *

    "오, 최종혁 선수 몸이……."

    국내에서 중계를 하던 해설가들의 눈이 동그랗게 뜨이고, 여성 스태프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다.

    하지만 정말 놀랄 일은 뒤에 있었다.

    -도핑은 씨발! 야 이 겁쟁이 새끼들아! 다 덤벼!

    "……."

    ‘도핑?’ 중계석, 관계자, 그리고 TV를 지켜보던 모든 이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고 기자들이 눈을 부라리며 움직였다.

    고약한 냄새가 나고 있었다.

    *  *  *

    한국 국민들의 눈이 뒤집어진 걸 모르는 유도 국가대표의 버스 안.

    "야 이 자식아. 내가 진짜! 어후!"

    종혁은 죽도를 들었다 내렸다 하는 신성일 감독의 모습에 툴툴거렸다.

    "아니, 열 받으면 그럴 수도 있는 거죠."

    "뭐, 인마? 하마터면 몰수패 당할 뻔했는데, 뭐?"

    주최 측에서 경고를 받았다.

    온갖 이유를 달았지만, 그 진의는 도핑 검사를 받은 걸 왜 공개적으로 말했냐는 거다.

    "막말로 지들도 찔리니까 이러는 거잖아요!"

    "그건 맞지! 이 개새끼들! 진짜 어떤 새끼들이지? 일본? 중국?"

    중국은 이기기 위해선 뭐든지 하는 놈들이다. 일본은 말할 것도 없다. 태국이 개최국이라 의심되기는 하지만, 지금도 함께 밥을 먹기에 제외다.

    그 둘 중 종혁의 촉은 일본 쪽으로 향하고 있다.

    그는 현재 각국 본선 진출 상황과 본선 경기 내용을 정리한 자료를 훑었다.

    ‘엎치락뒤치락이야.’

    원래 발목은 비슷한 놈들끼리 잡는 거고, 반일 감정은 한국만의 것이 아니다. 일본도 만만치 않게 한국을 싫어하고 라이벌로 생각한다.

    "……잘했어."

    "흐. 그렇죠?"

    "그래. 덕분에 애들이 정신 차렸다."

    도핑 검사는 한껏 고양되던 유도 대표들의 멘탈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그걸 종혁이 겁쟁이들의 수작이라 비하하면서 되돌려 놓았다.

    수석 코치 겸 비공식 주장다운 대처였다.

    ‘이놈이 스물세 살만 됐어도.’

    그랬다면 비공식이 아니라 정말 주장이 됐을 거다.

    ‘한국은 이놈의 나이가 문제야. 쯧.’

    "그렇다고 해도 자중하고. 여기서 더 사고 치면 진짜 몰수패다."

    "걱정 마세요. 그 정도 생각은 있으니까."

    ‘지금쯤이면 방콕 아시안게임 주최 위원들도 똥줄이 타겠지.’ 본디 아시안게임은 올림픽에 비해 주목도가 낮다.

    그러나 이번 방콕 아시안게임은 IMF에 시달리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주기 위해 집중 조명되고 있다.

    아마 지금쯤 ‘특종’을 떠올린 기자들이 조사를 시작했을 거고, 한국에 있는 아시안게임 위원들도 움직이고 있을 거다.

    선수 개인이라면 모르되 유도 대표 전체의 도핑 검사다.

    이는 어떻게 봐도 불공정한 일이었고, 누가 봐도 지독한 악의로 행해진 일이다.

    이걸 못 본 척 넘어간다?

    기자든, 올림픽 위원이든 자격 미달이다.

    금메달 따 오라고 압박한 정부부터 참지 않을 것이다.

    ‘인마들아, 내가 경찰 짬밥이 몇 년인데 이 정도 일로 흔들릴 것 같아? 등짝에 칼 한두 번 꽂혀 봐?’

    같은 조직에 있지만, 다른 집 식구인 감사팀.

    거물들을 제법 잡아 처넣다 보니, 별 되지도 않는 이유로 감사를 받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거의 대부분은 참았지만, 정말 아니다 싶을 땐 그 사실을 공론화시켜 버렸다.

    그렇게 날려 버린 감사팀 식구가 수두룩.

    그렇기에 당시 대한민국 모든 경찰들 가운데 감사팀이 가장 싫어하는 경찰이 바로 종혁이었다.

    ‘너희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사람 잘못 건드렸어. 태국이 압박에 못 이겨 사과를 하면…….’

    그때부터가 반격 시작이다.

    살벌하게 눈을 빛낸 종혁은 몸을 일으켰다.

    "바람 좀 쐬고 올게요."

    "멀리 가지 마라. 사고 치지 마."

    "제가요?"

    "그래요, 니가요. 아오, 진짜 아까만 생각하면."

    지금도 목 뒤에서 식은땀이 좔좔 흐른다.

    잘한 건 잘한 거지만, 식겁한 건 식겁한 거다.

    입맛을 다신 종혁은 순순히 대답하며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 밖에서 대기하던 유도 선수들이 우르르 몰렸다.

    럭비, 조정 등 도움을 받은 선수들도 있었다.

    "감독님이 뭐래? 징계 받는데?"

    걱정이 가득한 시선들.

    이 커다란 주차장을 왔다 갔다 하던 타국 선수들도 무슨 일인가 하고 쳐다봤다.

    ‘내가 잘 살았구나.’

    이렇게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모습을 보니 지난 1년여의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종혁은 씩 웃었다.

    "설마 감독님이 절 혼내겠어요? 걱정 마시고 들어가서 쉬세요."

    선수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며 존경심이 가득한 눈으로 종혁을 보았다.

    솔직히 도핑 검사로 멘탈이 흔들렸을 땐 암담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역시 네가 우리 주장이다.’

    ‘개새끼들, 다 죽여 버리겠어.’

    그들은 다시 한번 전의를 다졌다.

    "넌 어디가 게?"

    "잠시 바람 좀 쐬러요."

    "……같이 가 줄까?"

    "아뇨. 엄마한테 전화해야 돼서요."

    "아아."

    수긍한 선수들은 버스에 올라탔다. 다른 종목 선수들도 각자 버스에 올라서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버스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동한 종혁은 핸드폰을 들었다.

    "응. 엄마. 아니. 이 아들이, 형, 누나들이 너무 잘나니까 시기한 거야. 그러니까 걱정 말고, 장사 잘해요."

    -……알았어. 끊어. 전화비 많이 나와. 추울 텐데 옷 단단히 챙겨 입고.

    "넵!"

    전화가 끊기자 종혁은 입맛을 다셨다.

    "걱정 많이 했나 보네."

    떠나기 전 태국이 더운 나라라고 설명했음에도 옷을 챙겨 입으라고 한다. 그만큼 놀랐다는 반증이다.

    소영, 수호, 권아영과도 통화를 마친 종혁의 눈빛이 돌변했다.

    "흠. 그럼 누구부터 찾아가야 할까."

    종혁은 본인이 도핑 검사를 받을 때만해도 그럴 만하다 생각했다.

    전 경기 초살. 그 본인이라도 도핑 의혹을 제시했을 거다.

    그런데 다른 선수들까지 차례대로 도핑 검사를 받았다. 그제야 아차 싶었지만, 그땐 이미 검사관이 철수한 이후라서 이 지독한 악의의 배후가 누군지 떠볼 수도 없었다.

    "그래, 검사관이 맞겠지."

    마음 같아선 촉이 향하는 일본 위원들을 찾아가 떠보고 싶지만, 약속조차 잡지 못할 게 분명했다.

    이쪽은 고작 선수이고, 그쪽은 타국의 위원이니 말이다.

    그러니 드러난 검사관을 찾아야 한다.

    종혁은 거기서부터 더듬어 가기로 했다.

    ‘쯥. 늦어도 모레 안에는 끝내야 되니 바쁘겠구먼.’

    삼 일 후에는 4강전이고, 일주일 후면 폐막식이다.

    "자, 이놈은 지금 어디에……."

    "풋. そこ麻?中毒者ができる(저기 마약 중독자 있다.)."

    순간 싸늘하게 굳은 종혁의 눈이 한쪽으로 돌아갔다.

    가슴에 일장기를 단 일본 유도 대표들.

    "그렇게 쳐다보면 어쩔 건데, 조선인?"

    떼거리 숫자를 믿어선지 가슴을 쭉 펴며 위협하는 그들.

    종혁의 입술이 삐뚜름하게 비틀렸다.

    "하, 귀여운 새끼들."

    종혁은 이놈들을 어떻게 요리해야 될까 깊이 고민했다.

    분위기가 살벌해졌다.

    "야야, 됐어. 가자."

    "그래. 마약 옮을라. 우웩!"

    "푸하하하핫!"

    종혁은 떠나는 그들을 보며 혀를 찼다.

    어린놈들이 싹수가 노랬다.

    "쯥. 고약한 놈들. 그러니 뒤통수에 땜빵이…… 응?"

    종혁은 멀어지는 그들을 보며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한량처럼 어슬렁 걸으며 목 주위를 벅벅 긁는 몇 명.

    종혁의 고개는 더욱 기울어졌다.

    "저거 분명……."

    입가에 어이없는 미소가 번질 때였다.

    띠리링! 띠리링!

    "음? 누구지? 박 기자님인가?"

    회귀 후에도 인연이 깊어진 사회부 기자 박영일.

    전화할 사람에게는 다 전화했기에 당장 떠오르는 인물은 그 정도였다.

    "사회부 기자가 왜 스포츠 특종을 신경 쓴데? 욕심 참 많아."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저은 종혁은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상대가 의외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괜찮나요, 친구?

    "나탈리아?"

    종혁은 자신도 모르게 웃어 버렸다.

    ‘정말 친구처럼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계산이 빠른 건지.’

    둘 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결코 불편하지 않은 전화였다.

    아니, 지금 상황에선 너무 기꺼운 전화였다.

    "당연히 괜찮지 않아요, 친구."

    -저런. 도와줄까요? 우린 친구잖아요.

    종혁의 눈이 빛났다.

    그녀가 전화한 순간 기다린 말이었다.

    ‘떠보자.’

    그 KGB가 이렇게 도와준다 말할 정도라면 이미 전후 사정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냥 도움을 받으면 앞으로 계속 끌려다니게 될 터.

    최소한 이쪽이 만만치 않다는 건 알려야 한다.

    종혁은 가장 미심쩍은 국가를 떠올렸다.

    "음. 친구의 호의는 거부하지 않아야겠죠. 그러면 일본에게 돈 먹은 그 개자식과 면담 좀 잡아 줄 수 있을까요?"

    -…….

    종혁은 수화기 너머 침묵하는 나탈리아의 반응에 입꼬리를 비틀었다.

    ‘역시 일본이구나.’

    *  *  *

    이번 방콕 아시안게임의 개최 위원 짜뚜악. 본래 이름은 엄청나게 긴 50대 태국 장년인이 호텔 커피숍에 앉아 다리를 떨고 있다.

    ‘KGB라니!’

    방금 전 그 악명 높은 KGB에서 한번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찔리는 게 많은 그는 응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날 왜? ……설마?’

    그는 자신의 형을 떠올렸다.

    군부 장성인 형.

    "허. 큰형님과 연결을 시켜 달라는 건가?"

    러시아가 태국 군부에 무슨 볼일이 있는지 모르지만, 당장 생각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그렇다면 이쪽이 우위였다.

    "허허허."

    초조해지던 그는 어깨를 펴며 느릿하게 커피 잔을 들었다.

    그런 그의 앞에 한 사내, 종혁이 섰다.

    ‘왔나?!’

    고개를 돌린 짜뚜악은 의아했다.

    "당신, 아니, 너는……."

    종혁이 귀에 걸린 이어폰을 빼며 고개를 숙였다.

    "반갑습니다. 한국 유도 국가대표 최종혁입니다."

    짜뚜악은 종혁의 태국어에 살짝 놀랐다가 이내 손을 저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지금 바쁘니……."

    종혁은 털썩 맞은편에 앉았다.

    "……이게 무슨 무례인지 모르겠군요."

    "죄송합니다. 만나기 워낙 어려운 분이라 부득이 친구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움찔!

    ‘친구? 설마?!’

    종혁은 놀라는 그를 보며 씩 웃었다.

    짜뚜악의 두 눈이 파르르 떨렸다.

    "흠. 한국 대표가 내게 무슨 용무가 있는지 모르겠군요."

    있다. 당장 오늘 한국이 대사관을 통해 항의를 해 와서 위원회가 뒤집어졌었다.

    "난 할 이야기 없으니 이만 일어나도록 하겠습니다."

    엉덩이를 떼는 그의 모습에 종혁의 눈썹이 하늘로 솟았다.

    ‘왜 뇌물받은 새끼들은 하나같이 뻔뻔하지?’

    이럴 땐 상대하는 방법이 있다.

    ‘이건 네가 자초한 거다.’

    종혁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어이. 앉아."

    "뭐? 이 어린……."

    종혁은 주머니에서 테이프 하나를 꺼내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입이 가벼운 부하를 두셨어."

    "……!"

    후다닥!?

    테이프를 낚아챈 그는 바닥에 던져 콱콱 밟았다.

    "헉. 헉. 중요한 증거는 잘 챙겨야지."

    만족이 가득한 얼굴.

    종혁은 피식 웃으며 다른 주머니에서 테이프를 꺼냈다.

    "그거 복사본이야. 이것도."

    ……까득!

    "원하는 게 뭐지? 일개 선수인 네놈 따위가 날……."

    짜뚜악은 본인으로 하여금 이 자리에 나오게 만든 단체를 떠올렸다.

    "흥! 그렇다고 해도 너희가 얻을 건 하나도 없을 거다! 이깟 자리가 아쉬울 것 같아?!"

    너무도 당당한 모습. 조사한 바에 따르면 허세가 아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군 최고 장성을 큰형으로 두었기에, 그에게 있어 아시안게임 개최 위원 자리는 그저 취미 생활 수준의 가치를 지닐 뿐이다.

    하지만.

    "아쉬워지겠지. 이게 국왕의 손에 들어가면."

    "……뭐?!"

    종혁은 일순 하얗게 질리는 그를 보며 코웃음을 쳤다.

    ‘내가 너희 태국 사람들의 사상을 모를 줄 알아?’

    태국은 세계에 몇 없는 강력한 왕권 국가이다.

    왕이 곧 신이고, 살아 있는 활불이다.

    1998년 현재로선 대부분이 군부와 왕권이 권력 투쟁을 하고 있다고 알고 있지만, 아니다.

    이 나라의 왕이 겉으로 그렇게 보이게끔 하라고 명령한 거다.

    이건 미래의 태국인들 대부분이 아는 사실이고, 종혁은 태국 불법 노동자들과 이야기를 하다 알게 됐다.

    "푸미폰 국왕께선 활불로 불리신다지. 그런데 말이야. 그런 그분이라도 본인의 치적이자 외세 공격에 힘든 국민들에게 희망을 불어넣고 있는 이 방콕 아시안게임을 네놈이 망쳤다는 걸 알아도 부처님처럼 반응하실까? 아, 이 경우엔 국왕모독죄인가, 이거?"

    "헉!"

    하얗게 질린 그의 낯빛이 검게 죽었다.

    최고 15년 형의 왕실모독죄, 국왕모독죄.

    태국 모든 권력의 정점인 국왕이 분노하면 군부 최고 장성인 큰형님이라고 해도 실각할 수밖에 없다.

    ‘그, 그렇게 되면?!’

    당장 큰형님이 총살당할지도 모른다.

    ‘이 청년이 고작 십 대가 맞는 건가!’

    아니다. 눈앞의 청년은 괴물이다.

    "내, 내가 뭘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끝났네.’ 역시 뇌물받은 놈은 이렇게 목에 칼이 들어와야 정신을 차린다. 종혁은 싱긋 웃으며 자세를 바로 했다. 그러며 뒷주머니에서 테이프를 꺼내어 내밀었다.

    짜뚜악의 눈이 한번 더 파르르 떨렸다.

    "도핑테스트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저흰 당당하니까요."

    혹여 누군가 도핑을 했다면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게 순리이다.

    "그럼?"

    짜뚜악은 당황했다.

    "괜히 그런 행동을 했다가 귀국에 큰 도움을 주는 어떤 나라가 반발하면 어떡합니까. 전 짜뚜악 위원님이 난처해지는 걸 원치 않습니다."

    짜뚜악은 터져 나오려는 화를 겨우 눌렀다.

    ‘나보고 뭘 어쩌란 거냐!’

    "경청하겠습니다."

    "그러니 위원님을 협박한 일본이 반발할 수 없도록 만들면서도 명예도 쟁취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협박?’ 그는 단숨에 알아차렸다.

    ‘명분을 주는구나!’

    그렇지 않아도 종혁이 무슨 말을 하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 그는 본인이 다치지 않을 것 같은 방법이 생기자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전수조사 말입니다. 마침 단체로 도핑테스트를 받은 한국 유도 국대라는 선례도 있지 않습니까?"

    "헛?!"

    짜뚜악의 입장에선 걸리면 좋고, 걸리지 않아도 나쁘지 않다.

    욕은 먹을지언정 누구 하나 차별하지 않는 거니까.

    하지만 종혁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다.

    ‘땜빵. 목 긁는 알러지 반응. 그거 분명 스테로이드 부작용이다!’

    어디 한두 번 보는 모습일까.

    종혁은 확신했다.

    ‘이 개새끼들. 지들이 도핑을 해 놓고 우리보고 지랄해? 하여튼 이 일본 새끼들은.’

    종혁은 속으로 이를 갈았고, 짜뚜악은 주먹을 쥐었다.

    ‘이거라면?’

    짜뚜악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  *  *

    "대단해."

    어느 차 안, 이어폰을 뺀 나탈리아는 혀를 내둘렀다.

    아무런 정보가 없었을 텐데도 바로 배후를 지목한 것도 모자라 정치인을 너무도 능숙하게 어르고 달랬다.

    그것도 블러핑 그 자체인, 아무것도 없는 공테이프를 가지고.

    종혁은 짜뚜악의 부하, 검사관을 만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그걸 단어 선정으로 커버했다.

    ‘입이 가벼운 부하를 뒀다.’

    후에 부하 직원이 종혁과 만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고 하더라도 짜뚜악은 화를 내지 못할 거다.

    ‘KGB의 이름으로 불러냈으니까.’

    악명 높은 KGB. 도청 따윈 아무것도 아닌 KGB가 부하 직원이 누군가와 이야기 나누는 걸 도청했다고 받아들일 것이다.

    그녀가 직접 나섰어도 이렇게 깔끔하게 마무리지었을까 의심될 정도였다.

    -최가 일어섰습니다. 짜뚜악이 테이프를 폐기합니다.

    ‘호. 짜뚜악이 바로 폐기시킬 걸 알았을까?’

    왜인지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확신이었다.

    "대체 이런 걸 어디서 배웠…… 음?"

    -아, 권 PB. 납니다.

    그는 부하가 실시간 통역하는 것에 귀를 기울였다.

    -일본에 아는 변호사 있습니까? 일본 아시안게임 위원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게요. 아니, 반대 파벌에 이걸 던져야 하나?

    -최가 워크맨을 꺼냈습니다, 동지.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감시자의 보고.

    ‘워크맨? 녹음?’

    "……Браво(브라보)."

    나탈리아는 박수를 쳤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어? 도, 동지. 최가 그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나탈리아와 안에 있던 요원들이 재빨리 숨을 멈췄다.

    그 순간.

    쿵쿵쿵! 덜컹 덜컹!

    "에이, 이거 왜 안 열려?"

    ‘대체 어떻게?’ 그녀는 종혁이 얼마나 많이 잠복 수사를 했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중엔 다른 서에서 협조 요청 없이 같은 놈을 잡기 위해 잠복 수사하는 경우도 많아서 어딜 가든 수상한 차량이나 다른 서 형사들부터 찾게 된다는 것도.

    다시 노크한 종혁이 러시아어로 외쳤다.

    "나탈리아! 안에 있는 거 압니다. 당신 같은 사람이 이런 걸 놓칠 리 없잖아요. 일이 일찍 끝나서 그런데 밥이나 먹읍시다!"

    침묵이 내려앉은 차 안.

    "역시 이 청년은……."

    그녀의 눈이 뜨겁게 빛났다.

    재빨리 립스틱을 빠르게 바른 그녀는 매혹적으로 웃으며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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