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30화>
* * *
한국 유도 대표 전원, 전 체급 예선 통과.
아시안게임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그런데 그건.
"대한민국 파이팅!"
"읏샤! 읏샤!"
"우오오오오! 달려! 더 노를 저어!"
촤악! 촤악!
재와 황토를 섞은 듯 탁한 강.
길쭉한 보트들이 나아간다.
앞서거나 뒤처지거나.
치열한 접전이 짜오프라야 강 위에서 펼쳐진다.
두두둥!
"한국!"
두둥!
"한국!"
룰 따윈 모른다.
하지만 한국인이다. 한국 대표다.
조정 경기장을 찾은 한인들, 한국에서 온 응원단은 한마음 한뜻으로 구슬땀을 흘리며 노를 젓는 태극전사들을 향해 목이 터져라 응원했다.
아침, TV로 경기를 지켜보는 국민들도 주먹을 꽉 쥐며 응원한다.
태극전사들도 몸이 터져라 노를 저었다.
"하나둘! 하나둘!"
비인기 종목이기에 사라지지 않으려 더 악착같이 노를 젓는 조수 선수들.
그들을 마주 보며 방향을 조율하는 타수 선수도 배에 힘을 주며 구령을 넣었다.
그런데 너무 악을 질러서일까.
예선 마지막 경기 전 긴장감에 물을 너무 많이 마셔 일까.
울컥, 시큰한 물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온다.
사고다.
‘어, 얼른 눌러야!’
구령이 흐트러지면, 경기도 흐트러진다.
‘예선 마지막인데!’
조수 선수들도 흐트러진 리듬에 당황했고, 보트의 속도는 느려졌다. 다급해지던 타수 선수는 콧속에서 느껴지는 전라도 김치의 쿰쿰한 젓갈 맛에 멈칫했다.
뒤이어 진한 사골 국과 밥알, 다대기 맛도 느껴졌다.
오늘 아침, 유도 대표들이 반갑게 맞이하며 나누어 준 한국 음식들.
어디 맛집에 가야, 엄마가 새벽부터 차려야 먹을 수 있는 집밥.
옆 배들이 스쳐 나아가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씨발! 한국 음식도 먹었는데! 이렇게 끝낼 수 없어!’
"씨바알! 켈로옥! 김치!"
움찔!?
조수 선수들이 저 새끼가 미쳤나 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타수 선수는 시큰한 위액을 침 튀기듯 터트리며 외쳤다.
"김 켁 치!"
……피식.
허공을 날아오르는 밥알이 웃음을 불어넣어 준다.
‘아오. 저 또라이!’
"그래, 씨발. 김치! 한국인은 김치!"
"가즈아!"
노를 잡은 그들의 팔이 다시 힘을 강하게 주었다.
웃음과 함께 찾아온 힘.
배 속 깊은 곳에서부터 치민 힘이 전신에서 솟았다.
그와 함께 그들의 배가 짜오프라야 강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벌떡 일어난 한인들과 응원단, TV를 보던 국민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외쳤다.
"가자! 가자! 가자!"
"본선 가자!"
어느 회사 최 부장도, 어느 회사 박 사원도, 라디오 이어폰을 낀 거리의 환경미화원도 모두 엉덩이를 들썩이며 외쳤다.
그리고…….
촤악!?
결국 태극마크가 첫 번째로 결승선을 넘었다.
"그렇지이!"
"본선 진출이다!"
"대한민국 파이팅!"
유도뿐만 아니라 비인기 종목들에서도 이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 * *
끔뻑. 끔뻑.
"우리나라가 이렇게 강했나?"
"그러게?"
아시안게임, 동계 하계 올림픽.
그 어디에서도 단 한번도 전체 1등을 해 본 적이 없는 나라, 대한민국.
그런데 올해는 뭔가가 달랐다.
생각지도 않았던 비인기 종목들이 선방을 하고 있었다.
조정, 정구, 럭비, 카누, 핸드볼 등.
각 종목, 각 경기장에서 이변이 일어나고 있다.
대세라는, 강국이라는 나라들이 하나둘씩 떨어지는 반면, 한국은 예선을 통과하고 있다.
그에 종혁도 얼떨떨했다.
"설마 이거 우리가 차려 준 한국 음식 때문인가?"
신성일 감독의 말에 종혁의 입꼬리가 떨렸다.
"설마요."
하지만 그럴 수도 있을 법하다는 생각이 든다.
음식이란 사람에게 가장 민감한 문제다.
단순히 빵만 놓고 봐도 소화를 하지 못해 더부룩해하는 사람이 많다. 태생적으로 밀을 잘 소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타국에 가서 배앓이나 물갈이를 하는 사람도 많다.
이렇듯 음식은 컨디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렇기에 종혁도 개막식이 열리고 나서야 한국 음식을 먹이지 않았던가.
‘즉, 그동안 입맛에도 맞지 않는 타국 음식 때문에 불완전연소를 한 거라면…….’
이번엔 익숙한 한국 음식을 먹으며 완전연소를 한 거다.
그 차이가 이런 결과를 불러왔다.
‘진짜 사람이 전부인 나라, 한국답네.’
환경만 제대로 조성해 주면 미쳐 날뛰는 인간들만 가득한 나라, 한국.
이렇게 환경을 조성해 주니 미쳐 날뛰고 있다.
두두두두두두!
"크허헝!"
어디서 짐승이 떼로 달리며 울부짖고 있다.
"뭐여? 이게 뭔 소리여?"
"신 감도옥!"
"감독님!"
고개를 휙 돌린 유도 대표들은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럭비 선수들을 보며 하얗게 질렸다.
소 떼다.
대관령에나 가야 볼 수 있는 젖소 떼가 달려오는 것 같다.
이쪽도 몸집으론 꿀릴 것 없지만, 눈물콧물 다 흘리며 달려오는 다 큰 사내들의 모습에 모두 식겁해서 물러났다.
하지만 그렇게 달려온 럭비 선수들은 그들의 앞에 서며 허리를 깊이 숙였다.
"크흑! 덕분에 처음으로 본선 진출을 했습니다! 무려 그 일본을 꺾고! 소처럼 동그래지는 그놈들 눈을 봤어야 하는데! 진짜 신 감독 덕분입니다!"
"흐어엉!"
"감사합니다, 신 감독님!"
스포츠 인프라가 잘 발달되어 있는 일본.
일본 역시 미식축구나 럭비 모두 비인기 종목이지만, 그래도 한국보다는 리그 활성화가 잘되어 있다.
거기서 오는 전술과 선수 레벨 차이는 결코 무시할 수가 없다.
아니, 그게 벽이다.
‘일본을 꺾었다고?’
단순히 오줌 싸는 것도 지면 안 되는 일본.
비록 다른 종목이지만, 같은 한국인으로서, 한국 대표로서 기쁠 수밖에 없었다.
"허허. 그게 어디 저 때문이겠습니까. 모두 박 감독의 뛰어난 전술과 선수들의 기량……."
"아닙니다! 우리 새끼들 그동안 김치 한 쪼가리 먹지 못해 빌빌거렸던 거 신 감독도 잘 알지 않습니까! 만날 한 끼에 김치 반 통은 가볍게 해치우던 놈들인데! 예산이 없어서 김치만 먹었던 놈들인데!"
"맞습니다! 진짜 마지막 공격 때 김치찌개 냄새가 혀끝을 스치는데! 힘이 막!"
신성일 감독은 종혁을 봤다.
‘진짜 밥 잘 먹어서 본선 진출을 했다고?’
종혁은 머리를 긁었다.
집밥 파워, 김치 파워가 생각보다 강했다.
"……허허. 그런 말 마십시오. 선수들이 열심히 한 결과 아닙니까."
"신 감도옥."
"앉으세요. 왔으니 식사도 하시고요. 홍삼도 좀 드시고."
‘아이고. 그렇다면 밥 먹고 메달 땁시다, 라는 말 정도는 하시지!’ 그래도 이래서 좋아한다.
종혁은 활짝 웃으며 나섰다.
"자자, 얼른 앉으세요, 형들. 오느라 목마르실 텐데 홍삼부터 드시고요."
"큭. 고맙다, 종혁아. 내 유도 국대한테 받은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게."
"흐흐. 메달만 따시면 됩니다. 금의환향해야죠."
장난하듯 스치는 말에 럭비 대표들은 울컥했다.
"크흐응. 같은 한국인인데 축구랑 야구는……."
"몰라. 신경 쓰지 마. 마음을 그따위로 쓰니까 죽 쓰는 거잖아."
이상하게도 야구와 축구가 죽을 쓰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리그가 활성화되어 있는 두 스포츠가.
자료까지 줬는데도.
이후 조정이나 핸드볼 등 대표 선수들이 본선 진출 확정이라는 선물을 들고 합류하면서, 유도 대표들이 차려 놓은 식사 공간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들 모두 신성일 감독을 찬양했고, 부러지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어깨를 편 그는 세상 모든 애정을 담아 종혁을 보았다.
사정을 알고 있는 대표 선수들도 가슴을 쭉 펴며 종혁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크흠흠.’
종혁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떠들다 보니 한 사람당 기본 4인분씩은 먹는지라, 준비한 엄청난 양의 음식도 점점 바닥을 드러냈다.
웅성웅성.
그들 사이에 껴서 웃던 종혁은 뭔가를 발견하곤 의아해했다.
"음?"
종혁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선수들도 의아해했다.
"어? 쟤들은?"
외국인 선수들. 그들이 몇 개의 무리를 이뤄 이쪽을 힐끔힐끔 보고 있다. 바로 근처에 식당 건물이 있는데도 그들은 이쪽만 보고 있었다.
"쟤들 우즈벡 애들 아냐?"
"그 옆에는…… 태국인가? 필리핀도 있네?"
가슴팍에 박힌 국기로 알아볼 수 있다.
"와, 예쁘다. 쟤는 김혜선보다 예뻐. 쟤들은 대체 뭘 먹었기에 저렇게 살벌하게 예쁘지?"
운동만 해 온 소심한 선수들, 미남미녀들이 이쪽을 쳐다보니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어어? 오, 온다?"
몇 명의 사람들이 다가온다.
왜인지 간절함이 옅게 담긴 눈빛.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종혁이 움직였다.
"무슨 일입니까?"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태국어에 사람들이 놀랐다.
태국 감독은 순간 얼굴이 밝아졌다가 이내 입맛을 다셨다.
말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힐끔 뒤를 본 감독은 자신을 응원하는 선수들, 자신의 새끼들을 보곤 결국 눈을 질끈 감았다.
"정말 실례되는 말이지만, 우리에게도 한국 음식을 나눠 줄 수 있겠습니까?"
"……예?"
종혁은 귀를 후볐다.
그런데 진심인 것 같았다.
"왜요?"
태국 감독은 종혁을 봤다.
‘가장 어린 선수면서도 수석 코치. 명장 신성일의 오른팔로, 그가 끔찍하게 아끼는 세기의 천재. 초살 최종혁. 이 선수의 발언이 가장 강하다.’
경기 시간이 30초를 넘기지 않는 선수.
전 종목 통틀어 가장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 주고 있고, 어린 나이 때문인지 한국 레슬링의 레전드 신권호나 야구의 박찬오보다 뛰어나다 평가받는 선수.
이 정도는 이미 조사한 후다.
"후. 나는 개최국의 감독입니다. 메달을 따기 위해선 뭐든 해야 합니다. 그래서……."
"설마 우리 한국의 선전이 한식 때문이라고 생각하신 겁니까?"
‘얘들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종혁은 뒤통수를 맞은 듯 멍해졌다.
"홍삼은 유명하지 않습니까."
문제는 그 홍삼은 태국 선수들도 이미 많이 먹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적이 너무 차이가 난다.
태국 감독으로서는 이건 분명 훈련도 훈련이지만, 평소 먹는 음식에서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무, 물론 그냥 달라는 게 아닙니다. 저희도 이렇게 음식을!"
종혁은 태국 감독 뒤, 다른 나라 선수들과 감독의 손에 들린 비닐봉지를 보곤 웃음을 겨우 삼켰다.
‘귀엽네.’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종혁은 이쪽을 의아하게 쳐다보는 신성일 감독을 큰 소리로 불렀다.
‘복마전이나 다름없는 아시안게임.’
오늘로써 거의 모든 종목의 예선이 끝났다.
이제부터가 진짜다.
이제부터 선수, 감독, 위원들은 상대를 떨어트리고 메달을 거머쥐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터였다.
‘이런 상황에서 내 편이 하나라도 생기면 좋지.’
이건 거의 굴러 온 호박이다.
"감독님, 한식 좀 같이 먹을 수 있냐는데요?"
"뭐?"
종혁은 멍해지는 감독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어떡하실래요?"
"……허. 저 양반들도 어지간히 간절한가 보구먼."
라이벌이라 꺼림칙해지던 그의 머릿속에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의 아픔이 스쳐 지나갔다.
‘태국 유도에 그 괴물 놈이 있긴 하지만.’
거의 종혁에 버금가는 괴물. 유도 변방국에서 엄청난 선수가 탄생했다. 그러나 이들은 유도팀이 아니라 그런지 짠한 마음이 앞선다.
"그래. 6.25 때 생판 모르는 우리나라를 위해 젊은 피를 흘려 준 나라인데, 밥 한 끼 대접하는 게 대수일까. 오시라고 해!"
‘역시.’ 종혁은 웃으며 양손을 내밀었다.
"Welcome."
* * *
"……."
무거운 침묵이 일본 위원들의 입을 짓누른다.
뻐끔뻐끔 피우는 담배. 뿌연 공기가 그들의 가슴을 더 답답하게 만든다.
그러다 결국 한 명의 위원이 침묵을 깼다.
쾅!?
담배를 쥔 주먹이 테이블을 때렸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대체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겁니까!"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음식을 공식 음식에서 빼 버렸고, 숙소도 아래층이나 물이 잘 안 나오는 곳에 배치하도록 했다.
여태껏 태국에 많이 투자를 했던 일본이기에 이런 일은 썩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멘탈과 컨디션을 흔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출전한 전 종목 본선 진출.
몇몇 종목에서 예선 탈락한 일본으로선 미치고 팔딱 뛸 일이다.
영원한 라이벌, 한국.
영원한 1위인 중국은 선수 숫자로 밀어붙이는 곳이라 어쩔 수 없다고 쳐도 한국만큼은 무조건 이겨야 했다.
더 적은 인구수에 더 적은 선수 수, 스포츠 인프라.
진다면 엄청난 망신이다.
그렇기에 꽤 물밑 작업을 펼쳤는데, 허사가 되어 버렸다.
벌써부터 본국에 있는 올림픽 위원들이 성토를 하고 있다.
‘같은 홍삼을 먹는데도 왜 이런 결과가 나오냐고!’
스포츠 선수들에겐 기적의 음료로 꼽히는 홍삼. 올림픽에서 지정하는 약물 성분은 하나도 없는데 기력을 높이는 보조 식품.
일찍부터 한국의 약진이 이 홍삼과 산삼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 그들은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시즌만 되면 홍삼과 산삼 액기스부터 확보했다.
‘역시 김치인가!’
"한국인들 김치 못 먹으면 힘 못 쓰는 거 아니었습니까?"
"……그 김치를 한국 유도 대표가 베풀었잖아요. 들어 보니 항공기로 매일매일 공수한답니다."
"이 김치에 미친놈들!"
그들의 얼굴이 동시에 구겨졌다.
그러고 보면 유도 대표들만 일본 위층에 숙소를 잡았다.
"일본에서 유도를 배워 간 거지들이……."
"가마쿠라 위원! 말조심하세요!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댄데!"
질책을 받은 위원은 입을 꾹 다물었고, 위원들은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더 흡입했다.
"저 그런데……."
"왜 그러지, 하카노 위원."
"정말 한국의 약진에 영향을 끼친 게 김치뿐일까요?"
"……무슨 말입니까?"
안경을 쓴 위원은 무언가 쓰인 A4 용지를 내밀었다.
"태국, 우즈벡, 말레이, 홍콩, 파키스탄, 필리핀이 몇몇 종목에서 약진하고 있습니다."
"……뜬금없군. 하고 싶은 말이 뭔가?"
"모두 유도 대표들을 찾아가서 한식을 얻어먹은 이들입니다. 지금 그 때문에 방콕 내 한식당이 미어터지고, 한식을 이번 아시안게임의 공식 음식으로 선정해 달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모두의 입이 다시 다물어졌다.
‘홍삼, 김치 말고도 힘을 내는 다른 음식이 있다고?’
그 나라 선수들이 그 매운 김치를 먹었을 리 없으니 분명 어떤 음식을 공통으로 먹은 거다.
거의 홍삼 같은 힘을 낼 수 있는 어떤 음식을.
‘홍삼도 먹었을 테지! 한국 놈들 베풀기를 좋아하니까!’
사람들은 심각해졌다.
이러다간 한국에 지는 것도 모자라 생각지도 않았던 놈들에게 발목이 잡히게 생겼다.
"……이거 아예 한식을 못 먹게 해야 되나."
"그러면 큰일 납니다. 지금도 아슬아슬해요."
식사, 숙소, 교통편 모두 수작을 부렸다.
여기서 외부 음식 반입까지 금지한다?
검사까지 철저히 하는데?
지금까지 꾹 참고 있던 한국이 폭발할지 모른다.
혹여라도 기사가 났다가는 국제적 망신.
"그럼 이렇게 하는 게 어떻습니까? 어차피 이 모든 일의 주범인 유도 대표들만 어떻게 하면 되는 거잖습니까?"
위원들은 한 위원을 보았고,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떠오른 생각을 입 밖으로 뱉어 냈다.
일본 위원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 * *
"대체 어떤 개새끼들이야?!"
신성일 감독의 외침이 종혁의 생각이었다.
16강을 돌파하자마자 도핑 검사를 받았다.
종혁뿐만 아니라 유도 대표 전원.
그 때문에 지금 분위기가 말이 아니었다.
종혁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씨부럴. 이건 예상 못 했네.’
발목을 잡아 올 거라 생각은 했는데, 그게 도핑 검사일 줄은 몰랐다. 스테로이드의 ‘스’ 자라도 찍어 먹어 봤다면 이렇게 억울하지라도 않았다.
‘내가 어떻게 굴리고, 어떻게 훈련시키고, 어떻게 훈련했는데!’
어떤 놈들인지 몰라도 별 지랄을 다 하고 있다.
‘내가 이런다고…….’
"질 것 같냐!"
종혁은 깃을 밀며 허벅다리를 걸었다.
땀 냄새가 지독한 성인이 함께 넘어갔다.
"该死的(젠장!)."
콰앙! 삐익!
한판.
대만의 무제한급 희망이 종혁을 넘지 못하고 무너졌다.
벌떡 일어난 종혁은 도복 상의를 찢듯 벗었다.
마치 신이 빚은 듯 아름답고 위협적인 역삼각형의 몸이 세상을 향해 드러났다.
‘이게 약물로 만들 수 있는 몸이냐! 내가 이 몸을 만든다고 뭔 지랄을 했는데!’
가진 바 모든 지식을 총동원하고, 남들 쉴 때 뼈를 깎는 고통을 참으며 더 운동을 했다.
순수 네추럴.
그런데 도핑이란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약물을 했다고 한다.
마약, 스테로이드, 술.
정확히는 심신미약이라는 거지같은 이유를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을 증오하는 종혁에게 이보다 더한 모욕은 없었다.
종혁은 본인과 선수들이 그동안 흘린 피와 땀을 폄하하는 세력들을 향해 모든 분노를 담아 크게 외쳤다.
"도핑은 씨발! 야 이 겁쟁이 새끼들아! 다 덤벼!"
경기장을 무너트릴 듯 울리는 커다란 포효에 눈이 동그래졌던 유도 대표들이 이를 악물었다.
관중석에 앉은 그들이 벌떡 일어났다.
"그래, 씨발! 다 덤벼!"
"들어와, 이 새끼들아!"
짐승들이 폭주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