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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23화 (23/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3화>

    *  *  *

    4강전, 16초.

    결승 진출.

    결승은 다음 날로 미뤄졌다.

    결승인 만큼 선수들의 컨디션 조절을 위한 것도 있지만, 서울의 약진이 도드라져서 경기가 일찍 끝나 시간이 남았기 때문이다.

    호텔에서 자고, 밥 먹고, 운동하고, 사우나 하고.

    컨디션 만전인 서울 선수들은 예년보다 경기를 빨리 끝냈고, 덕분에 상위권 진출은 거의 서울과 경기, 경상도 차지가 되었다.

    "올해 우승은 경기도인가?"

    유도는 분전했는데, 다른 종목이 죽을 썼다.

    다른 도시나 도들도 마찬가지다.

    경상도와 울산의 물밑 수작에 모두가 당한 것이다.

    그런데 경기도는 직접 내려와서 숙소와 식당을 수배했다고 한다.

    경상도와 울산은 죽 쒀서 개 준 거나 다름없게 됐다.

    "누굴까?"

    일 처리가 꼼꼼한 사람을 보니 스카우트 의욕이 솟구쳤다.

    "동일고로 데려오면 좋을 것 같은데."

    감독이나 임원이면 어쩔 수 없지만, 그 밑의 코치나 스태프라면 거금을 들여서라도 데려오고 싶었다.

    "안 그래요?"

    "유도부에 남은 돈 있어?"

    고개를 끄덕이던 설동익의 낯빛이 흐려졌다.

    "없죠."

    여름 합숙 때 운동기구를 빌리면서 운영자금이 바닥을 드러냈다.

    "하지만 뭐, 일단 레귤러 전원 동메달, 은메달은 확정이니까 다시 채워지겠죠."

    이번 고등부 유도에서 역사가 새로 쓰였다.

    학교 한 곳에서 메달을 독식한 것이다.

    그에 전국 모든 유도부에서 그 비법을 알아내기 위해 난리가 났고, 종혁과 설동익은 무작정 찾아와 떠드는 사람들을 피해 잠시 외출을 나왔다.

    "덕분이다, 종혁아. 고맙다."

    종혁이 NFL 자료를 번역하지 않고, 합숙 때 성실히 코칭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성과를 냈을까?

    무리였다.

    그립, 팔꿈치 등 감독과 열정적으로 토의하며 기술적인 면도 다 알려 줬다.

    ‘겨드랑이를 닫아요!

    ‘팔꿈치를 들지 마세요!’

    ‘정석은 없다! 다치지 않는 게 최고다!’

    그들이 여태껏 배워 온 것과 달랐던 코칭.

    알지만 왜 하는지 모른 채 무작정 따라 했던 기술.

    하지만 종혁의 말이 옳았다.

    "우리도 고맙게 생각한다, 종혁아!"

    같이 나온 동일고 선배들이 크게 외치자 종혁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은 것 같아서 참 뿌듯했다.

    "뭘요. 다 열심히 해 줘서죠."

    ‘멋진 놈.’ 충분히 자랑할 수도 있는데, 겸손히 숙이고 있다.

    나이를 떠나 멋져 보였다.

    ‘올해도 회장기에서 좋은 성적을 내서 선수촌에 들어간다면…….’

    그땐 종혁의 방패가 되어 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어디 가냐? 이렇게 버스까지 타고."

    "창원까지 왔는데, 마산 앞바다는 보고 가야죠. 돝섬도 가 보고."

    아니다. 내일 결승전을 치르고 나면 곧바로 폐막식이라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데, 그 전에 후배 현석의 얼굴이라도 보려는 것이다.

    "바다는 합숙 때 질리도록 봤는데……."

    보기만 했을까, 다신 가고 싶지 않을 만큼 흠뻑 느끼기까지 했다.

    "대신 합숙 때는 못 먹은 것들이 있죠. 이를테면 회라든지, 소라라든지, 전복이라든지."

    "회! 소라! 전복!"

    "설마 문어도 파나?"

    꿀꺽.

    먹깨비 일곱 명이 입맛을 다시기 시작했다.

    "어시장이 있다더라고요."

    "오오! ……근데 어시장이 뭐냐?"

    종혁은 이마를 잡았다.

    다른 선배들까지 어리둥절하고 있다.

    ‘진짜 운동부도 상식은 필수로 가르쳐야 한다니까!’

    "해산물을 전문으로 파는 시장입니다. 물고기 어라는 한자를 쓰죠."

    "그래서 어시장이었어? 오, 써먹어야겠다."

    "나도, 나도!"

    ‘에라이.’ 고개를 저은 종혁은 진한 비린내를 쫓아 고개를 돌렸다.

    시야가 탁 트이지는 않았지만, 푸른빛의 바다가 철썩철썩거리며, 가슴을 누르는 무언가를 녹이는 것 같았다.

    "와! 배다, 배!"

    "오오오!"

    흥분하는 선배들을 보니 서울 촌놈이란 단어가 절로 떠올랐다.

    "자, 하나둘!"

    찰칵!

    그들은 오는 길에 산 1회용 사진기로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남겼다.

    이후 도착한 어시장.

    "학생들! 일로 온나! 싸게 해 주꾸마!"

    광어, 도미, 숭어, 새우, 전복, 해삼, 멍게, 소라, 이름 모를 생선까지……. 온갖 해산물의 향연에 모두의 눈이 돌아갔다.

    "아씨. 다 먹고 싶은데 돈이……."

    해산물은 맛있다. 하지만 비싸다.

    가족끼리 횟집에 가도 기본이 30만 원. 그렇기에 생일이나 메달을 땄을 때나 겨우 간다.

    작년까지만 해도 잘 먹었던 꼬막이나 소라도 올해부턴 거의 먹지 못했다.

    "일단 다들 돈 꺼내 봐."

    설동익의 말에 지갑을 꺼낸 그들의 낯빛은 흐려졌다.

    "입맛만 버릴 것 같은데."

    종혁은 낙담하는 그들의 지갑에서 2만 원씩 뺐다.

    "이 정도면 충분해요."

    "어? 정말?"

    "나만 믿고 따라와요."

    종혁은 바로 걸음을 옮겼고, 크디큰 유도부원들이 어미를 따르는 병아리처럼 졸졸 뒤를 쫓았다.

    ‘13번이라고 했는데…… 아, 저기다.’

    높은 천장에서 길게 늘어뜨린 줄에 걸린 하얀 플라스틱 판.

    13번, ‘현석이네’란 이름이 적혀 있다.

    현석은 창원 토박이지만, 그의 어머니는 마산 사람으로 여기 마산 어시장에서 장사를 했었다.

    "조사해 봤더니 저기가 제일 잘…… 뭐야, 저 익숙한 시추에이션은?"

    종혁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선배들도 일제히 시선이 일그러졌다.

    하, 씨발.

    종혁은 성큼 발을 뗐다.

    "아, 돈을 빌리 갔으모 갚아야 할 거 아니가!"

    "누가 안 준댔나! 오늘은 공쳤으니까 내일 오라 안 카나! 내가 띠묵나!"

    "그라다 돈 띠묵는 거 내 모르나! 오데서 장난질이고!"

    정미자는 얼굴을 구기는 하와이안 셔츠 덩어리 두 명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야 이 개자슥들아!"

    어시장을 쩌렁쩌렁 울리는 외침.

    고개를 돌리는 그들에게로 작은 키에 피부가 검은, 밤송이 같은 소년이 책가방을 벗어던지며 뛰어왔다. 정미자는 식겁했다.

    "닌 또 만다 왔노! 얼른 집에 안 가나!"

    "내가 어무이 안 도우면 누가 돕는데?"

    소년이 정미자의 앞을 막아서자 덩어리 둘은 비실 웃었다.

    "어, 현석이 왔나?"

    "이름 부르지 마라, 이 양아치 새끼들아!"

    빠직!

    "하 따 마. 고놈 고슴도치가 따로 없네. 근데 이 자슥아…… 내가 니 친구가?"

    묵직하게 깔리는 목소리.

    철렁 내려앉는 심장에 이를 악문 현석의 다리가 흔들렸다.

    그 순간이었다.

    "아주머니. 광어랑 소라, 전복 좀 사고 싶은데요."

    그들은 스윽 사이로 끼어드는 사람, 종혁을 멍하니 보았다.

    덩어리들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뭐꼬? 니 지금 바쁜 거 안 비나?"

    위협하며 내쫓으려는 그 모습에 시장 상인들이 발을 동동 굴렀다. 정미자도 다급히 나섰다.

    "학생, 지금 일이 있어가 쪼매 바쁘거든? 다음에 다시 오면 싸게 해 줄게."

    "아, 다음엔 올 일이 없어서요. 문어도 팔아요?"

    "니 뭐냐고!"

    어깨를 휙 잡아당기는 손에 종혁의 눈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일수?"

    "하, 이놈의 자슥이. 어데 어르신이……."

    짜악!?

    어시장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뺨을 얻어맞은 덩어리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이 씨벌놈이?!"

    빠악!

    "악?!"

    접힌 팔이 다급히 종아리로 향했다.

    종혁은 무심한 눈으로 그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빡! 빡! 빡!

    "야. 어이. 야."

    사람을 때리는데도 흔들림 하나 없는 눈동자.

    아니, 경멸하고 가소롭게 쳐다본다.

    ‘저, 저 눈깔은?’

    그들로선 감히 쳐다볼 수 없는 부류의 사람이 짓던 눈빛.

    위협적인 덩치를 가진 일곱 명도 뒤에 있지 않은가.

    다들 외모는 앳되지만, 덩어리는 잘못 걸렸다는 걸 깨달았다.

    "형이 묻잖아. 대답 안 해?"

    "억! 예, 예!"

    "일수?"

    "예에! 여, 여기 어시장에서 돈놀이 쪼매 하고 있는 박호대입니더! 어, 어디서 오신 분인지……."

    "너 따위가 그건 알 거 없고. 대충 일 봤으면 가라."

    "아니 그래도……."

    "아니면 둘이 사이좋게 드럼통 안에서 공구리 마실래?"

    "……편히 놀다 가십쇼!"

    꽁지에 불붙은 망아지처럼 후다닥 도망을 치자, 시장 상인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동안 저승사자나 다름없던 박호대에게도 천적이 있었다니.

    피식 웃던 종혁이 현석을 보았다.

    ‘이 자식은 이때도 작았네. 어머님은 미인이시고.’

    그래서 별명이 차돌이었다.

    하지만 키는 작아도 그 주먹과 눈치, 제 몸 망가지는지도 모르고 달려드는 똘끼는 종혁이 아는 형사들 중 최고였다.

    지금처럼 말이다.

    "아재요, 건달입니꺼?"

    "야야!"

    정미자가 식겁했다.

    종혁과 유도부원들이 웃었다.

    "왜? 그렇게 보여? 그리고 아재 아니고 형이다."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낀데요? 건달 맞십니꺼? 서울 사투리를 쓰는 기……."

    "야. 건달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놈들 중 하나야."

    "……아인데. 방금 딱 건달이었는데."

    ‘하여튼 이 또라이 새끼.’ 현석은 다 좋은데 제멋대로 나불대는 입이 가장 큰 문제다.

    "그건 네 맘대로 생각하시고."

    "그럼 뭔데요?"

    "나는 음……."

    ‘뭐라고 설명해야 될까. 그냥 고등학생?’ 맞는 말이지만, 뭔가 좀 미진하다 싶었다.

    눈빛이 초롱초롱한 게 너무 귀여워서 실망시킬 수가 없었다.

    ‘아!’

    "알고 싶으면 11월 달에 TV를 봐. 그럼 알게 될 거다."

    "예?"

    싱긋 웃은 종혁은 정미자를 보았다.

    잘 사는 거 보았으니 충분했다.

    ‘어차피 내가 나서지 않았어도 잘 살았던 놈이지.’

    어머님 정미자가 왜 이런 치욕을 당하는지 알 수 없을 만큼 현석의 아버지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흠이 있다면 너무 청렴결백했다는 점.

    그래서 현석은 반항심에 순경 시험을 치르고 경찰이 된다.

    "그러니 그때까지 공부 잘하고. 아주머니, 광어 큰 거 얼마예요?"

    종혁은 빛나는 눈으로 쳐다보는 현석을 외면하며 활짝 웃었다.

    ‘다음에 보자, 현석아.’

    *  *  *

    "꺼흑! 잘 먹었다."

    "와, 16만 원으로 이렇게 배부르게 먹을 줄 몰랐어. 숭어도 먹을 만하네."

    많이 먹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그들이 16만 원으로 해산물을 배 터지게 먹었다. 광어, 농어, 전복, 새우, 소라.

    서울에선 비싸서 밥상에 나오지 않는 해산물들.

    종혁이 아니었다면 이런 경험을 하지 못했을 거다.

    "근데 아까 좀 치더라, 똑땡이?"

    "올. 우리 똑땡. 건달이라고 해도 믿겠던데?"

    솔직히 놀랐다.

    조폭을 그렇게 쉽게 제압할 줄은 몰랐다.

    그들이 아무리 운동부라지만, 그래도 조폭은 무서울 수밖에 없는 존재. 하지만 종혁은 그런 조폭을 너무도 쉽게, 아니, 하찮게 여겼다.

    그런데 그게 통했다. 그 모습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 없었다.

    종혁을 믿기에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여도 나서지 않았던 그들은 역시 믿음을 배신하지 않았다며 흐흐 웃었다.

    ‘욕이야, 칭찬이야?’

    종혁은 따뜻한 밥 먹고 신소리한다고 입술을 이죽거렸다.

    "종혁아."

    "예, 주장."

    "아까 그 꼬맹이한테 TV를 보면 알 거라고 했잖아. 그거 무슨 말이야? 너 TV 나와?"

    "아. 푸핫핫!"

    종혁은 웃었다.

    "회장기 TV중계하잖아요."

    아무리 국가대표 선발전이라지만, 올해는 왜인지 회장기를 TV로 중계한다고 했다. 종혁은 그 이유가 뭔지 알아차렸다.

    ‘국민들 눈을 돌리겠다는 거지.’

    곳곳에서 파국이 일어나고 있기에 정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이다.

    "아아! 그거였어?"

    그랬다. 할 말이 없어서 그렇게 넘긴 것도 있지만, 다른 의미도 있다.

    ‘현석이가 경찰대 나와서 날 도우면 좋을 텐데.’

    순경 시험이 아니라 경찰대.

    반항심 때문이 아니라 작정하고 공부를 하길 바랐다.

    그놈들을 쫓기 위해선 믿고 함께할 동료가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선.

    ‘인터뷰 잘해야겠네.’

    종혁의 눈이 빛났다.

    *  *  *

    -드디어 대망의 결승전입니다.

    TV에서 앵커들이 신명나게 떠든다.

    아들이 쉬는 시간에 보라며 가져다 놓은 작은 TV.

    "조, 종혁이다!"

    "와!"

    주위 상인들의 호들갑에 고정숙은 이를 앙다물며 TV를 응시했다.

    -청색의 최종혁 선수. 이 선수 이력이 굉장히 특이한데요.

    -그렇죠. 겨우 열일곱 살인데 일반부에 출전한 것도 모자라, 한 게임당 경기 시간이 20초를 넘기지 않았죠!

    대학생 실업팀 선수까지 모두 20초를 넘기지 않았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초살! 초살의 최종혁! 한국은 약세인 무제한급에 혜성처럼 등장한 최종 병기! 대한민국 유도를 완전체로 만들 인재가 나타났습니다!

    -학교 성적도 대단하다 하지 않았나요?

    -그럼요! 2학기 중간고사에서 전교 7등을 했다는군요. 모의고사는 전국 상위 1퍼센트! 문무 겸비! 이야, 열일곱 살 자식을 가진 부모님들은 최종혁 선수 어머님께 배워야 하는 게 아닌가 몰라요.

    모두의 시선이 모이자 고정숙은 어깨를 으쓱였다.

    "지가 알아서 한 거예요."

    성의 없는 말이었지만, 상인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결승전 시작합니다!

    "시작한다!"

    사람들 모두 TV를 집중하자 고정숙은 허벅지 위에서 양손을 모아 잡았다.

    ‘아들. 파이팅.’

    "와아아아아!"

    "최종혁! 최종혁!"

    회장기가 열리는 체육관이 터져 나갈 듯한 응원.

    전국체전부터 어떤 경기든 20초를 넘기지 않는 그 압도적인 퍼포먼스에 유도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흠뻑 빠지게 되었다.

    ‘기분 째지네, 이거.’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부터 지금까지.

    연예인이 왜 그렇게 힘든 일을 하면서도 연예인을 그만두지 못하는지 알 것 같았다.

    삐익!

    "시작!"

    종혁은 상념을 접으며 상대 선수를 보았다.

    ‘20초만 버티면 된다. 20초만!’

    상대 선수의 생각은 이러했다.

    종혁이 왜 모든 경기를 20초 만에 끝냈겠는가. 바로 그 이상 경기를 지속할 체력이 없기 때문일 터.

    ‘소매나 깃만 안 잡히면 돼!’

    이를 악문 선수는 "으자쟈!" 하고 크게 외치며 종혁에게 다가섰다.

    ‘요놈 이상한 생각하네?’

    눈을 가늘게 뜬 종혁은 탐색을 하고자 그 소매를 향해 손을 뻗었다.

    퍼억!

    "흠?"

    다급히 쳐 내는 손길이 참 많은 걸 말한다.

    ‘도망치네? 결승에서?’

    헛 웃은 종혁은 이래도 도망칠 수 있나 하며 달려들었다.

    "흡!"

    타닥! 퍼퍼퍽!

    "와아아아!"

    그들의 양손과 다리가 빠르게 교차했다.

    지이익!?

    둘의 다리가 앞뒤로 찢어지며 잠시 교착상태가 되었다.

    "돼, 됐다. 20초."

    너무도 뜬금없는 말.

    의아해하던 종혁은 이내 곧 그 뜻을 알아차렸다.

    ‘뭐야, 그걸 노리는 거였어?’

    어이없어하는 종혁의 모습에 상대 선수는 본인의 생각이 맞다는 걸 깨닫고는 환하게 웃었다.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지? 자. 이제 제대로 붙어 보자!"

    선수는 갑자기 굽혀지는 몸에 의아해하며 종혁을 보았다.

    둘 모두 무릎과 허리를 굽힌 상태에서 서로를 보게 됐다.

    ‘어?’

    "누가 20초 지나면 체력이 떨어진다는데? 누굴 조루로 보나!"

    그의 멱살을 잡은 종혁은 그대로 일어섰고 선수의 몸도 강제적으로 일으켜졌다.

    그게 시작이었다.

    ‘간다, 이 자식아!’

    위, 아래.

    번개처럼 접혔다 펴지는 몸에 그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몸무게가 같은데도, 마치 자신의 몸이 아닌 것 같은 경험.

    ‘뿌, 뿌리쳐야……!’

    그 생각에 멱살을 잡은 종혁의 양손을 잡으며 허리에 힘을 주는 순간이었다.

    ‘왔다!’

    종혁은 허리를 돌리며 상대 선수의 발바닥에 자신의 발바닥을 넣어 위로 높이 쳐 올렸다.

    부우웅! 터엉!

    순간 정적이 내려앉은 경기장.

    "……한파안!"

    심판의 콜이 얼어붙은 시간을 깨웠다.

    "와아아아아아!"

    "저 자식이 해냈어!"

    "최종혁! 최종혁!"

    온몸을 부숴 버릴 듯한 함성.

    종혁은 그제야 자신이 이겼다는 걸 온전히 깨달을 수 있었다.

    ‘진짜 가네. 선수촌.’

    방금까진 경기에 집중하느라 생각하지 않았던 메달, 선수촌.

    그저 스펙을 위해 출전했을 뿐인데 왜인지 가슴속에서 뜨거운 게 솟구쳤다.

    회귀 전 유도를 그만두며 포기한 꿈을, 꿈속에서나 그렸던 장면을 이뤄 내서 그런지도 몰랐다.

    종혁도 모르게 그의 가슴엔 작은 미련이 남아 있었다.

    "으아……."

    "종혁아! 이 자식아!"

    달려 나와 종혁을 끌어안고 높이 쳐드는 신성일 감독.

    그의 눈에 눈물이 서려 있다.

    고작 17살이 고등부도 아닌 일반부에 출전해 금메달을 땄다.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이 미친놈이 해냈어! 해냈다고!’

    감독의 눈물을 보며 웃은 종혁은 카메라를 보며 주먹을 높이 쳐들었다.

    "엄마아! 아들 국가대표 됩니다!"

    종혁의 우렁찬 외침이 카메라를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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