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2화>
7. 선수촌으로
합숙 이후 출전한 서울 대표 2차 선발전에서 무난히 통과한 종혁은 올해 전국체전이 벌어지는 경상남도 창원시로 향했다.
원래는 7월에 선발전이 치러졌지만, 그렇게 선발된 선수 중 일부가 집안 사정 등으로 인해 선수 자격을 내려놓게 되자 부랴부랴 2차 선발을 치르게 됐다.
이는 전국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이었다.
종혁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정확히는 회귀 전 검지와 팔꿈치 인대가 끊어진 이후, 신성일 감독이 이게 기회라고 말한 적이 있기에 7월 대표 선발에 나서지 않았다.
일단 그 전에 몸부터 만드는 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방에서 무너지는데 정부는…… 에휴."
"응? 뭐가?"
창원으로 향하는 버스 안.
종혁은 주장 설동익을 보았다.
3센티미터 겨우 될 머리에서 가득 풍기는 젤 냄새와 향수 냄새에 코가 아팠다.
설동익뿐만이 아니다.
동일고 유도부 레귤러 전원과 백업 일부를 포함해 이 버스에 탄 서울시 고등부 유도 대표 남학생들 모두 머리에 젤을 바르고, 향수를 뿌렸다.
이유는 단순했다.
전국체전은 전국 고등학교, 대학교, 일반인들이 모여 기량을 겨루는 대회이기 때문이다.
남녀 고등학교와 대학교가.
당장 옆에도 유도 대표 여학생들이 있다.
‘에라이, 이 열정적인 것들.’
"자리나 바꿔 줘요. 토할 것 같아."
"그럼 안 되지! 참아!"
그들이 앉은 자리는 가장 뒷자리.
자리를 바꾼 종혁은 버스의 작은 창문을 열며 시원한 바람을 깊게 마셨다.
"하, 이제야 좀 살겠네."
굳어진 몸이 풀어진 종혁은 창틀에 팔을 올리며 밖을 보았다.
‘현석이 이 자식 고향이 창원인데…….’
경상도 사투리가 심했던, 지능범죄수사대 팀원이자 후배이며 동생이었던 강현석.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통화한, 10년을 같이한 후배.
종혁은 우연이라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 *
부르릉!
버스가 모텔 앞에 서자 모두 우르르 내렸다.
몸이 좋은 30여 명의 고등부 남녀 유도 선수들.
버스 앞에 줄을 서던 그들은 맨 마지막에 느긋이 내리는 동일고 유도부원들을 보며 눈빛을 가라앉혔다.
‘역시 상반기보다 몸이 얇아졌어.’
하지만 더 단단하고 위협적으로 변했다.
‘대체 무슨 훈련을 한 거지?’
그리고 그중 2차 선발전에서 처음으로 본 최종혁.
‘1학년 쟤는 동일고 백업 멤버인가?’
2차전에 참가해 뽑힌 네 명을 제외하면 모두 종혁을 처음 본다.
"내년부터 쟤가 동일고 레귤러인가?"
"쯧. 몸이 튼실한 게 내년부터 무제한급들은 좀 고생……."
"야, 최종혁! 점퍼 입으라니까!"
종혁은 설동익이 던진 점퍼를 캐치해 펼쳤다.
하늘을 향해 포효하는 백호가 새겨진 검은색 트레이닝 상의.
"……!"
"레, 레귤러? 1학년이?"
유도 명문. 전국체전 등 큰 대회에는 주전 멤버 다섯을 무조건 진출시키는 강적 동일고 유도부의 레귤러가 고작 1학년이라니.
충격과 공포가 그들을 짓눌렀다.
그러나 종혁은 숙소인 모텔을 보며 충격을 느낄 뿐이다.
"허름하네."
외관이 마치 시골의 러브호텔 같다.
아니, 여관방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라 물이나 제대로 나오면 다행일 듯싶었다.
‘2010년 이후부턴 이런 곳에서 안 잤는데…….’
미래 어느 순간부터 우후죽순 생겨난 호텔급 모텔들.
아무리 예산이 없어도 잠은 그런 곳에서 잤다.
"숙소 못 옮기나?"
"못 옮기지. 서울시에서 잡아 준 거니까."
"아, 주장."
"모두 주목!"
서울특별시 대표 고등부 남녀 유도 선수 30명, 아니, 뒤이어 도착해 내린 대학부 및 일반부까지 합 70명이 인솔자를 보았다.
"모두 들어서 알겠지만, 이번 전국체전 개막식은 저녁에 이뤄진다. 그러니 그 전까지 외출 없이 숙소에서 대기하도록. 이상!"
"아아!"
"사고 치면 선수 자격 박탈시킬 거니까 나갈 거면 나가 보든가!"
입을 다문 그들은 결국 양옆에 있는 모텔까지 세 군데의 모텔에 나뉘어 들어갔다.
"야, 올해 칠선녀는 누구였어? 예뻐?"
"몰라. 못 봤어."
전국체전 때마다 성화 채화를 맡는 인천 강화여고의 여학생들.
역시 남학생들의 주된 관심사는 그것밖에 없었다.
"허쭈?"
네 명이서 잘 수 있는 온돌방.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찌른다.
코딱지만 한 화장실에 물은 졸졸 흐르는 수준이라 샤워하다 화딱지 나서 돌아가실 판이다.
"경비가 얼만데!"
신경질적으로 모텔 방 안에 비치된 전화번호부를 뒤지던 종혁은 몸을 돌렸다.
"종혁아, 어디 가?!"
종혁은 씩씩거리며 로비로 향했다.
"이거 경상도 애들이 장난친 게 분명합니다!"
"아니 쓰벌! 똥 싸고 물 내리다 변기 막히겠네! 우리 애들 얼마나 잘 먹고 푸짐하게 잘 싸는데!"
"문제는 지금 방을 구할 수 있느냐죠! 이 작은 도시에 전국에서 만 명이 넘게 모였는데, 방이 있겠습니까? 또 예산은요?!"
"하. 올해부터 울산이 경상남도에서 승격 분리됐다고 지랄 염병을 하는구먼."
올해부터 광역시 자격으로 참가하는 울산에서 로비한 게 분명하다. 고등부, 대학부, 일반부 감독 및 스태프들의 표정이 어둡다.
그 말을 들은 종혁도 혈압이 올랐다.
‘이 씨벌놈들이?’
어른이라는 양반들이, 그것도 운동선수였던 이들이 참 나쁜 짓을 하고 있다.
‘이래 놓고 금메달 따라고 하지!’
이런 짓을 한 경상도 관계자도, 숙소를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서울 관계자도 다 한심했다.
"어? 종혁아, 왜? 동익이 넌?"
신성일 감독이 의아해한다.
서울시 고등부 남자 대표 15명 중 7명을 선발시켜 인솔자로 참가한 그. 종혁은 대답 대신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예, 수고하십니다. 1박에 얼마나 하는지 물어도 될까요? 아, 그래요? 80명이 묵을 건데. 40개면 될 겁니다. 5박이요. 예, 알겠습니다. 금방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몇 군데 전화를 걸었다 끊은 종혁은 신성일 감독을 향해 입을 열었다.
"호텔들 모두 가을 나들이 시즌이기는 한데, 단체니까 60퍼센트에 해 준답니다. 저를 후원해 주는 곳에서 후원한다니까 숙소를 호텔로 옮기시죠."
"……뭐? 후, 후원?"
종혁은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예, 권 PB님. 저 후원해 주신다는 거 있잖아요."
-아하.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을 맞춰 달라는 거죠?
역시 권아영이다. 눈치가 빨랐다.
마음 같아선 종혁 본인의 이름으로 돈을 내놓고 싶지만, 그래서는 위화감만 조성할 뿐이다.
"네, 숙박 상태가 이상하면 천오백까지 후원해 주시겠다는 거. 네네. 바꿔 드릴게요."
종혁은 신성일에게 핸드폰을 넘겼다.
"예, 예! 안녕하십니까! 동일고 유도부…… 예예예. 어이구, 감사합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예,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전화를 끊은 신성일은 멍하니 종혁을 보았다.
"숙박에 조식, 석식 포함이라니까 식당 예약도 해지하시죠. 솔직히 숙소도 이렇게 장난쳐 놨는데, 그 식당에 무슨 수작을 부렸을지 누가 압니까?"
사람들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고, 듣고 있던 모텔 주인은 식겁했다.
"어? 어? 자, 잠깐!"
모텔 주인이 다급히 뛰쳐나왔다.
"지금 뭐 하는 깁니까!"
종혁이 나섰다.
"우리가 숙소 예약할 때 수압이 낮거나 방에 곰팡이가 있다는 점 설명했으요? 단체라 카니까 그냥 예 했지요?"
"……."
"몬났다, 몬났다. 얼라들 자는 곳인데…… 이거 사기에 해당되는 거 압니꺼? 갱찰서 가서 다 불어뿌기 전에 다물고 계시이소! 확 마 백지를 다 뜯아 뿔라!"
"니, 니 어디 사람이고?!"
"마산 사람임더, 와예!"
"……이 이 어린 늠의 자슥이! 마! 니 애비가 그리……."
종혁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아재요, 그라다 뼈 뿌아지모 안 붙습니더."
"……."
종혁은 이쪽을 멍하니 보는 사람들에 아차했다.
"죄송합니다. 어머니가 마산분이라."
아니다. 현석이가 진퉁 경상도 싸나이라서 입에 붙은 거다.
게다가 잠입 수사를 할 땐 사투리를 써야 할 때도 있기에 일부러 배운 것도 있다.
"어떻게 하실래요?"
종혁은 싱긋 웃었다.
* * *
유도부 숙소는 호텔로 옮겨졌다.
호텔이라고 해도 훗날 호텔급 모텔보다 못한 옛날식 호텔이지만, 방금 전 숙소보다는 백배 천배 나았다.
로비부터 말이다.
반달 모양 작은 창만 난 좁은 모텔 프런트와 달리, 입구부터 깔끔하고 밝은 호텔의 로비.
"와, 여기가 호텔이구나……."
"와아."
서울 유도 대표들은 구경하느라 바빴다.
"아, 종혁아, 고맙다!"
"고마워, 종혁아!"
‘그래. 잘 자고, 잘 먹어라. 그래서 메달 휩쓸자!’ 박태규에게 넘기고 남은 돈 중 대부분이 오늘 일로 사라졌지만, 종혁은 돈 잘 썼다 생각하며 흐뭇해했다.
그런 그에게 신성일 감독이 다가섰다.
"정말 괜찮은 거 맞아?"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절 개인적으로 후원해 주시는 젊은 자산가라고요."
"그게 말이 돼? 그 아가씨는 돈이 썩어 나서 길바닥에 뿌리는 거냐?"
천오백만 원.
개인이 후원하기에는 너무 큰 액수다.
옆에서 간절히 바라기에 어쩔 수 없이 허락했던 신성일 감독은 이를 악물었다.
그는 후원해 주는 곳에 아쉬운 소리를 한 종혁이 고맙기도 하면서도 미안하고, 먼저 나서지 못한 스스로에게 환멸마저 느꼈다.
‘이 천오백 때문에 종혁이 미래가 붙잡힐 수 있다!’
신성일 감독의 눈앞이 아찔해졌다.
그런 마음이 느껴진 종혁은 속으로 혀를 찼다.
‘그냥 길바닥에 뿌리는 게 아닙니다, 감독님.’
오늘 여기 있는 선수들 중 일부가 회장기를 거쳐 선수촌으로 간다. 감독이나 코치들도 마찬가지다.
종혁은 그때를 위해, 선수촌에 합류한 이후 차별을 받지 않고 내 편을 만들기 위해 로비를 한 것이다.
박상묵 코치처럼 뒷돈을 받을 일부 선수촌 스태프들.
어리다고 무시할 나이 많은 선수들.
촌지를 주는 것보다 훨씬 돈이 들더라도 이 편이 떳떳할 수 있었다.
‘내가 돈이 많은 게 아니라 후원받는 입장이란 걸 알면, 촌지를 요구하기도 힘들지. 갑작스레 돈을 요구했다가 어찌 될지 모르니까.’
하지만 이런 마음을 밝힐 수 없는 종혁은 일단 신성일의 오해부터 풀기로 했다.
"감독님, 권 PB님이 한 달에 얼마나 버는지 아세요?"
"그 말이 여기서 왜……."
종혁이 그의 귀에 대고 액수를 말하자, 신성일 감독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저, 정말 자산가 맞으시네."
"그러니 걱정 마세요.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후원해 주시는 거니까."
"으, 응 그래. ……그런데 그 사람은 너의 뭘 보고 후원하는 거냐?"
"글쎄요……."
의뭉스레 웃으며 돌아선 종혁은 방으로 향했다.
"그래, 이게 사람이 자는 방이지."
방에 들어선 종혁은 헤벌쭉 웃으며 창가에 섰다.
가을의 높고 푸른 하늘, 창원 시내의 정경이 눈에 확 들어왔다.
‘내일부터 시작인가?’
가슴이 두근거렸다.
* * *
야간 개막식이 성황리에 끝나고, 다음 날 전국체전에 참가하는 유도 선수들이 진해공설운동장의 한 체육관에 모였다.
수백 명의 남녀 유도 선수들이 내뿜는 열기가 공기를 뜨겁게 했다.
"후우우."
"하아."
종혁은 파란색과 하얀색 유도복에 서울시와 이름이 적힌 천을 바느질하는 동일고 유도부원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경직된 그들의 손이 떨리고 있다.
엄한 곳에 바늘을 찔러 넣는 부원도 있다.
"대한민국 수도인 서울특별시의 대표나 되는 양반들이 뭐 무섭다고 긴장을 합니까. 쪽팔리게 시리."
움찔!
쪽팔리지 말자.
누군가는 이를 악물고, 누군가는 생각에 잠겼다.
고작 고등학교 1학년이 하는 말이라서 더 크게 다가왔다.
"저쪽은 잘해도 광역시. 이쪽은 특별시. 특별하니까 특별시. 우승합시다."
"……."
우승.
전국체전에 나온 이상 노려야 할 최종 목표인데 종혁이 말하니 뭔가 다르게 느껴졌다.
특별하니까 특별시.
생각해 보면 그랬다.
다른 도시나 도보다 몇 배 많은 인구, 몇 배 높은 경쟁률을 뚫고 이 자리에서 섰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지고, 어깨에 힘이 빠졌다.
그 순간.
‘호, 저놈?’
‘고작 1학년이 말 잘하네. 타고났나?’
후원자까지 있는 범상치 않은 놈.
이미 고등학교 때 주전이나 주장을 거치고, 지금의 자리를 쟁취해 출전한 대학부와 일반부 선수들이 기묘한 눈으로 종혁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후원자에, 말빨에…… 실력도 뛰어날까?’
종혁은 그 시선을 느끼며 옅게 웃었다.
삐익!
전국체전, 전국체육대회 유도 예선전이 시작되었다.
"와아! 서울 파이팅!"
"강원도 이기자!"
"마! 부산! 부산!"
도 또는 광역시 단위로 출전하는 전국체전.
학교 단위로 출전하는 여타 다른 대회들과 응원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어제의 경쟁자라도 오늘은 동료.
그들은 목이 터져라 외쳤다.
종혁도 마찬가지였다.
"주장! 지면 똥꼬에 땡초 백 개 처박아 버린다! 파이팅!"
터엉!
"그렇지!"
두 번의 절반. 합이 한판.
겨우 예선이지만, 몇 달 함께해서 그런지 종혁은 깊게 몰입했다.
"후욱. 훅. 이 썩을 자식아. 하마터면 질 뻔했잖아."
"흐흐. 이겼으면 된 거죠."
갈수록 뺀질이가 되어 간다며 설동익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부터 유도 무제한급 예선전을 시작하겠습니다. 서울특별시 최종혁.
드디어 차례다.
퍼억!?
등에 불이 터졌다.
"윽!"
"다녀와. 한판 못 따면 죽는다."
피식 웃으며 걸음을 옮긴 종혁은 경기 매트 한 발 앞에 서며 옷매무새를 다시 점검했고, 서울 대학부, 일반부 대표들의 시선이 따라붙었다.
‘뜨겁구먼.’
머리 위 높은 곳에서 내리쬐는 조명과 함께 머리통이 뚫릴 것 같다.
팡팡!?
질긴 검은 띠를 마지막으로 매만진 종혁은 신호에 맞춰 매트로 들어서며 사방에 인사를 했다.
감독, 심판, 관객 등.
유도는 예절의 스포츠다. 정중히 숙여야 했다.
그 이후 종혁은 약 4미터 거리를 두고 서는 상대 선수를 보았다.
‘부산의…… 이창현?’
회귀 전에는 대회에 출전하지 않아서 그런지 딱히 들어 본 적은 없는 이름이다.
삐익!
"시작!"
"으랴압!"
크게 소리친 상대 선수가 다가왔다.
"마. 서울 깍쟁이. 눈 깔아라. 죽고 싶나?"
덩치의 부리부리한 눈을 본 종혁은 속으로 한숨을 내뱉었다.
‘빨리 끝내자.’
길게 끌 생각이 사라졌다.
"흐흐. 그래. 내가 금방 넘겨……."
퍽! 퍽!
종혁은 느려진 시간 속, 옷깃과 소매 깃을 잡아 오는 손을 쳐 내며 번개처럼 쳐들어가 양손으로 상대 선수의 오른쪽 옷깃을 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몸을 비틀며 주저앉았다.
하지만.
"이런 씨!"
덜컥!?
종혁의 무릎은 다 굽혀지지 못했다.
‘어? 불발?’
당황한 종혁은 이내 마음을 가라앉혔다.
‘역시 전국체전인가.’
어쩐지 그 느려진 시간 속 옷깃을 다잡았을 때, 상대 선수의 눈이 밑을 본다 싶었다.
‘하지만 아직 미숙해!’
정확히는 힘과 대처가 약하다.
새삼 합숙 훈련의 효과에 감탄한 종혁은 팔을 잡아떼려는 듯 팔목을 잡는 그의 행동에, 그의 배를 부딪치듯 밀며 그 발목에 발을 걸었다.
쿠웅!
……삐익!
"하, 한판!"
"헉!"
"뭐, 뭐야! 뭐가 이렇게 빨라! 며, 몇 초야!"
"오, 오 초다!"
경기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기겁하며 일어났다.
‘동체 시력. 진짜 반칙이네.’
종혁의 초살 신화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 * *
3차례 예선전 통합 21초.
8강전 17초.
드디어 4강전. 그가 호명되자 체육관은 침묵에 휩싸였다.
"이 자식아! 이 미친 자식아!"
눈치가 보이는지 목소리를 작게 줄인 신성일 감독.
종혁은 그런 그를 보며 입을 열었다.
"감독님."
"왜, 인마? 이번엔 10초 안에 끝내려고?"
"아뇨. 저 회장기에서는 일반부로 출전한다고요."
"뭐?"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고등학생부터 일반 실업 선수까지 나이 제한 없이 출전할 수 있는 무제한 경기.
‘고등부는 좀 약하네.’
종혁은 목과 등을 풀며 매트로 향했다.
그리고 상대 선수를 보며 자세를 잡았다.
‘빨리빨리 끝내자.’
"으라압!"
종혁이 상대 선수를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