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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20화 (20/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20화>

    *  *  *

    두 개 경찰서의 강력반 형사들이 작정하고 움직였다.

    파란 양말 범인들은 단 하루 만에 검거됐고, 청계천과 남대문 일대에서 암약하던 비디오 판매책들이 일망타진됐다.

    이들을 검거하기 위해 골목 깊숙한 곳까지 쳐들어가다 보니 부수적으로 마약 판매책들까지 검거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졌다.

    박창도 소장은 남대문 시장 내에서 불법적인 물건을 유통하는 이들을 대대적으로 단속했다.

    두 개의 경찰서와 한 개의 파출소가 범죄자들로 우글거렸다.

    ‘나무는 숲에 숨겨라.’

    "머리 좀 쓰셨네."

    "아, 먹고살자고 비디오 좀 판 거 가지고 너무하네!"

    "아가리 싸물어! 어디 범죄자 새끼가!"

    몇 개의 팀으로 나뉜 강력반 형사들 전체가 매달리고 있다.

    "어, 왔냐?"

    김종두 반장이 손을 흔든다.

    "그놈들은요?"

    우연히 마약 조직을 검거하게 되자, 남대문 경찰서의 이철호 반장은 이놈들을 김종두에게 토스했다.

    마약 조직뿐만 아니라 여타 판매책들도 모조리 검거해서 유치장마저 부족한 상황. 먹다 배 터지기 싫다며 양보했다.

    때문에 남대문 경찰서는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쪽도 강력 1반, 2반은 마약 조직을 상대하고 있었다.

    "검찰에 넘겼지."

    "벌써요?"

    "증거나 증인이 확실한 상황이잖냐. 재대로 엮어서 넣었으니까 걱정 마라."

    아쉬웠다.

    ‘있으면 뒤통수를 후려 버리기 위해 왔는데.’?

    "그런데 그때 그 코쟁이, 아니 소련 사람은 잘 데려다줬어?"

    ‘허. 언제 적 소련이야.’

    "그렇지 않아도 고맙다고 오늘 서울 안내 부탁하더라고요. 돈 준다고."

    그렇지 않아도 할 이야기가 있던 종혁은 흔쾌히 허락했고, 그를 만나기 전 상황이 어떻게 됐나 직접 확인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그런데 그 아이는요? 집엔 잘 돌아갔어요?"

    탁! 치익!

    종혁은 대답 대신 담배를 무는 김종두의 모습에 이마를 잡았다.

    "혹시 언론에 샜어요?"

    "아니, 그건 아냐. 내일부터 헤드라인은 청계천 남대문 일대 마약 조직에 관한 내용이니까."

    ‘다행이다!’ 김종두 반장이 철저하게 보안을 지킨 것 같다.

    강력 1반과 2반에 마약 조직을 넘긴 그. 엄청난 실적을 버려 가며 지킨 보안이었다.

    ‘정말 걱정했는데.’

    소녀가 망가진 이유가 뭐였던가.

    미성년자인 피해자를 배려하지 않고 물어뜯은 일부 기레기들 때문이다. 신념도 없고, 팩트도 없이 오로지 자극만 추구하는 쓰레기들로 인해 한국이 뒤집혔다.

    그걸 막은 거다.

    무척이나 감사했다.

    하지만 그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종혁은 김종두가 가리킨 곳, 강력반 한쪽 유치장에 있는 소녀를 발견하곤 굳어 버렸다.

    "뭐야, 쟤가 왜 아직도 여기 있어?"

    이미 부모에게 인계되었어야 할 소녀.

    김종두의 입에서 답답한 가슴처럼 뿌연 담배 연기가 흩어졌다.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어. 슈퍼 유리창 깨고."

    "예?"

    "자기도 소년원 보내 달란다."

    "아니, 왜? ……쟤 설마 그 새끼를 아직도 좋아합니까? 그래서 같이 소년원 들어가려고?"

    "뭔 필름도 안 돌릴 영화 시나리오냐고 묻고 싶지만."

    의외로 범죄자를 두둔하는 피해자가 많다.

    종혁은 씁쓸히 웃었다.

    ‘스톡홀름 증후군.’

    하지만 반장의 얼굴을 보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알아보니까 어디로 이사 갈 돈도 없는 집안이더라."

    그 말에 종혁은 모든 걸 파악할 수 있었다.

    "학교에 못 가는구나."

    자신을 알아보고 매도할 학교에 갈 수 없는 거다. 다른 학교도. 비디오가 어디까지 퍼졌을지 모르니까.

    그보다 처참한 건 부모를 믿지 못하는 거다.

    부모가 싫어서, 집이 싫어서 가출했으니까.

    친구도, 일가친척도, 이웃사촌도, 아무도 믿을 수 없는 거다.

    어디 먼 곳으로 떠나면 좋으련만 그럴 수도 없다.

    지긋지긋한 돈.

    그래서 세상에서 도망치려는 거다.

    고작 15살짜리가, 피해자인데도 세상과 단절된 곳으로.

    다녀오면 혹여 잊혀질까 범죄자들 사이에서 살려는 거다.

    범죄자보다 세상의 손가락질이 더 무서우니까.

    이런 선택만이 소녀가 바라보는, 알고 있는 세상에서 내릴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이었다.

    "에이, 니미럴 좆같은 세상. 에이, 씨부럴."

    쾅!

    김종두는 책상을 걷어찼고, 종혁은 입맛이 썼다.

    피해자임에도 죄인이 되어야 하는 세상.

    피해자가 더 세상에서 멀어져야 하는 세상.

    종혁은 이럴 때마다 안타까워 미칠 것 같다.

    ‘개씨부럴! 세상 진짜 왜 이러냐!’

    "차라리 돈이라도 있으면 성형하고, 해외에 나가 살……."

    종혁은 소녀를 봤다.

    ‘해외. 빅토르. 십대 소녀.’

    머리에 선 촉이 여러 단서들을 조합한다.

    ‘……!’

    "쟤 부모는요?"

    "뭐 가자, 안 간다 대판 싸우다가……."

    더 이상 말 안 해도 종혁은 알아들었다.

    숨 막히는 집, 숨 막히게 한 부모를 믿지 못해 슈퍼 유리창을 깬 소녀다. 아마 부모는 생각할 시간을 가지도록 잠시 물러선 것일 터다.

    "그럼 제가 오늘 하루 데려가도 돼요?"

    "뭐, 인마?"

    "아시잖아요. 쟤 저렇게 두면……."

    김종두는 눈을 질끈 감았다.

    말을 더 듣지 않아도 안다.

    소년원이나 교도소가서 사람이 바뀌는 건 극히 드물다. 도리어 그들에게 물들어 버리고 만다.

    태어나길 범죄자로 태어난 소수의 악질들에게.

    "뭘 어쩌려고?"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만이 전부가 아니란 걸 알려 주려고요."

    지금의 선택이 소녀가 바라보고 알고 있는 세상에서 내릴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이라면, 그 세상을 넓혀 주면 된다.

    이후의 일이 뻔히 보이는데, 언론을 막아 줬으니 할 일은 다 했다며 외면할 수는 없었다.

    ‘씨발. 내가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오직 실적만 바라며, 높은 곳만 보며 살아왔던 회귀 전의 삶.

    이렇게 돌아와 얼마나 후회했던가.

    종혁은 이제 발 뻗고 자고 싶었다.

    "설마 그 소련 남자?"

    "한국 제품을 사러 온 바이오예요. 이름은 빅토르 로마노프."

    "성은 쥑이네. 로마노프 왕가야?"

    "그런 것도 아세요?"

    "쓰브럴. 몇 년 전까지 소련이었다, 이놈아. 소련 빨갱이를 모르는…… 철상아!"

    "예, 반장님!"

    ‘감사합니다, 반장님.’ 종혁은 대충 이럴 거라 생각했다.

    김종두 반장은 저 나이 또래의 딸이 있는 형사다.

    반장이 되기까지 참 안타까운 사건들을 많이 봐 왔을 그에게 이런 권유를 쳐 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사정만 된다면 도와줄 텐데, 박봉의 형사들이 모두 가슴에 품는 측은지심이다.

    종혁은 그들을 뒤로하며 유치장 철창 앞에 섰다.

    끌어안은 무릎에 이마를 묻은 소녀.

    "미진이지?"

    많은 것을 내려놓은 탁한 눈동자가 바라본다.

    과거엔 밝게 빛났을 눈을 생각하니 뜨거운 게 울컥 솟는다.

    종혁은 전혀 내색하지 않은 채 태연한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반갑다. 나 최종혁이다. 그 새끼들 신고한 사람이지."

    "……!"

    *  *  *

    "오, 최!"

    "빅토르!"

    둘은 뜨거운 악수를 했다.

    "일은 잘 보고 왔습니까?"

    일이 있다고 점심으로 약속을 잡은 종혁.

    그놈들을 잡았다는 말에 빅토르는 흔쾌히 이해했다.

    "그놈들은 아주 큰 죄목으로 처벌받을 겁니다."

    "잘됐군요! 정말 잘됐습니다! 한국도 정의가 살아 있는 나라군요! 음, 그런데 뒤에 둘은?"

    미진과 이철상 경위.

    미진의 두 눈은 여전히 탁하다.

    "여성 쪽 상품을, 십대를 공략할 상품을 조언해 줄 사람입니다."

    "예? 음……."

    종혁은 미심쩍어하는 그를 보며 활짝 웃었다.

    "요 며칠 돌아다니셔서 알 테지만, 한국 십대, 이십대의 패션이 참 유니크하죠?"

    이 시기엔 그랬다.

    비슷한 디자인의 옷을 입고 다니면 쪽팔렸던 시기. 옷과 헤어스타일은 자신의 색깔을 나타내는 아이덴티티였다.

    "거슬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음. 좋습니다. 최의 말이니 믿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상품의 종류에 제한을 두지 않으려던 그다.

    십대 일반인 소녀. 나쁘지 않았다.

    "그럼 갈까요? 최가 날 어디로 데려갈지 무척이나 기대됩니다!"

    정의로우면서 책임감 있던 종혁이다.

    그날 상황이 어렵게 변하자 세심하게 설명해 줬던 그 자상함과 세심함.

    그는 이런 종혁이 보여 줄 한국의 상품들이 궁금했다.

    하지만 종혁은 그런 그를 잡아 세웠다.

    "로마노프,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예, 뭐죠?"

    "당신은 컨설턴트를 원하는 겁니까, 가이드를 원하는 겁니까?"

    빅토르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고, 종혁의 눈이 빛났다.

    ‘이런.’

    한 대 맞았다.

    ‘똑똑하다 싶더니만 컨설팅의 개념도 알 줄이야!’

    실책이었다.

    빅토르는 진지해졌다.

    "컨설팅을 원한다면요?"

    "일단 렛츠비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할 겁니다."

    움찔!

    "렛츠비요? 그건 이미……."

    "그걸 과연 러시아 사람들이 먹을까요? 차가운 음료는 넘치도록 많은데? 그리고 겨울이 되면 몇 분 만에 얼어 버리겠죠."

    "……빌어먹을. 최, 당신은 정말 똑똑하군요!"

    "과찬입니다. 5퍼센트 어떻습니까?"

    "그건 너무 많습니다! 내 예산이 얼만지 압니까? 천만 달러입니다! 0.1퍼센트!"

    ‘루블이 아니라 달러라고?’ 이때는 소련 해체에서 이어진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루블의 값어치가 굉장히 하락할 때다.

    ‘이 양반 이 정도로 부자였어?’

    그냥 부자가 아니다. 그 러시아에서 달러를 확보한 부자다.

    ‘진짜 그 사라진 로마노프 왕가의 자손인가? 에이, 아니겠지. 그래도…….’

    달러를 확보할 수 있는 부자인 건 확실하다.

    종혁의 눈이 빛났다.

    "3퍼센트로 하죠. 순이익의."

    빅토르의 머릿속이 맹렬하게 움직였다.

    ‘이런 사람을 또 구할 수 있을까?’

    이렇게 눈치 좋고 똑똑하며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사람.

    더욱이 홀딱 반한 상품 렛츠비에 대한 해결책도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어쩔 수 없나.’

    "좋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해결책을 제시해야 될 겁니다."

    "사인하시죠."

    종혁은 가져온 가방에서 서류철을 꺼내어 컨설팅 계약서를 꺼냈다. 그 양식은 미래 사기꾼들이 하는 짓을 보고 배운 거였다.

    물론 사기꾼들의 사기가 아니라 당시 업계 표준 계약서고, 러시아어로 되어 있다.

    "허, 철저하군요."

    "돈이 얽혀 있다면 이보다 더 한 것이라도 해야죠."

    "더 믿음이 가는군요."

    꺼낸 만년필로 사인을 한 빅토르는 이제 해결책을 내놓으라며 종혁을 봤다.

    "그 서류 맨 뒷장을 보세요."

    사락!

    "음?"

    "온장고. 음료나 음식을 따뜻하게 보관하는 기계를 만드는 회사입니다. 곧 렛츠비를 만드는 기업에 합병될 회사죠."

    박태규와 권아영을 통해 겨우 찾은 회사다.

    "헉!"

    "계약도 도와 드리죠."

    "……으하핫!"

    그랬다. 차가워서 경쟁력이 적어진다면 따뜻하게 팔면 그만이다.

    한겨울, 딱딱하게 얼어붙을 손끝을 녹일 달콤하고 진한 따뜻한 커피.

    실제 렛츠비를 만든 회사도 그런 식으로 마케팅을 하여 러시아 캔 커피 시장을 휘어잡았다.

    "벌써부터 컨설팅 비용이 아깝지 않군요! 다음은 뭡니까?"

    "옷이죠."

    회귀 전 종혁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러시아에서 한국 의류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했다.

    종혁은 미진을 가리켰다.

    "대한민국 길거리 패션 1번지로 데려가 드리겠습니다."

    "……?"

    *  *  *

    "어서 와요! 좋은 옷 있어요!"

    "쌉니다! 싸!"

    거미줄처럼 복잡한 곳, 수많은 옷 상인들이 손을 흔들며 호객 행위를 하고 있다.

    ‘난 여기 왜 있는 걸까.’

    소녀 미진은 덩치가 엄청 큰 서양 아저씨와 함께 걷는 종혁을 보았다.

    ‘최종혁 오빠.’

    불량한 애들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이름이다.

    경찰을 끌어들여 동일고 일진을 해체시킨 또라이.

    조폭 7명을 때려눕힌 최강주먹.

    그리고…… 그 지옥에서 꺼내 준 은인.

    그리고 그 눈빛.

    종혁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연민도, 혐오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따라나섰다.

    다른 사람과 다른 것 같아서.

    이 사람만큼은 아무것도 상관없이 김미진이라는 한 사람을 바라봐 주는 것 같아서.

    ‘그런데 내가 뭘 도와줄 수 있다는 거지?’

    종혁이 도움을 요구해서 따라나서긴 했으나, 도대체 자신이 뭘 도와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지금까지 서양 남자와 쏼라쏼라 떠들 뿐, 자신에겐 아직 아무런 이야기도 해 주지 않았다.

    "미진아."

    움찔!

    "……네."

    "넌 여기서 어떤 옷을 사고 싶어?"

    "네?"

    종혁은 당황하는 그녀를 보며 웃었다.

    "네가 저 사람을 위해…… 아니지, 러시아 십대 소녀들을 위해 옷을 고르는 거야."

    "러, 러시아요?"

    "아, 내가 제대로 설명 안 했구나."

    아니다. 지금까지 일부러 안 한 거다.

    괜히 미리 설명해 봤자 생각만 많아지고, 생각이 많아지면 구멍을 파는 법이다. 특히 미진처럼 암울한 상황이면 백 퍼센트다.

    종혁은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그, 그러니까 저 서양아저씨가 자기 나라에서 팔 옷을 제가 고르는 거라고요? 제가요?"

    "난 여자 옷을 볼 줄 모르거든."

    미진뿐만 아니라 보호자로 따라나선 형사도 어이없어했다.

    ‘미친 오빠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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