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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19화 (19/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19화>

    *  *  *

    완장이란 참 신기한 물건이다. 그저 차기만 했을 뿐인데 가슴이 펴지고, 눈이 매섭게 떠진다.

    하지만…….

    "양말 한 장에 백 원! 속옷 오백 원!"

    마음과는 다르게 너무도 싼 가격이 그들의 귀를 붙잡고, 분식집과 식당에서 흘러나오는 맛있는 냄새가 그들의 코를 유혹한다.

    "남대문 시장은 만두가 맛있는데."

    골목에 있는 식당의 갈치조림도 맛있고, 닭곰탕 국물은 한 수저만 먹어도 바로 속이 풀린다.

    꼬록 꼬르륵!

    밥을 먹은 지 겨우 2시간이 지났을 뿐인데도 배가 음식을 달라고 요동을 쳤다.

    "정말? 남대문 시장은 만두가 맛있어?"

    "그렇지. 어, 마침 저기……."

    가메골 손왕만두, 통칭 가메골.

    와글와글.

    사람들이 만두집 앞에 줄을 서 있었다.

    얼굴을 훅 스쳐 지나가는 만두 찐 냄새에 종혁은 볼을 씹었다.

    "아오, 못 참겠다! 애들아, 일단 먹자!"

    "그래! 아, 근데……."

    소영이 서성찬 순경의 눈치를 봤다.

    그들의 인솔자로서 나선 서성찬 순경.

    그 시선을 따라 서성찬을 본 종혁은 피식 웃었다.

    ‘눈 돌아가는 거 봐라.’

    딱 봐도 많아야 스물셋이다.

    만두를 보는 눈을 보니 침을 안 흘린 게 다행이다.

    하지만 근무 시간이라 한눈을 팔 수도 없고, 봉사를 하는 학생들 앞에서 모범도 보여야 한다는 초년 순경의 복잡한 마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뭘 걱정해! 순찰 가는 건데. 저런 가게에 무슨 애환이 있는지도 순찰할 때 확인해야 하는 거야. 그렇죠?"

    수호와 소영이 서성찬을 보았다.

    "어? 어어! 그렇지! 종혁이 네가 잘 아는구나? 따라와!"

    피식 웃는 종혁까지 쪼르르 줄을 섰다.

    *  *  *

    "어흐, 끅!"

    "잘 먹었습니다!"

    "호호, 또 와!"

    손맛이 죽이는 아주머니의 배웅을 받으며 2평이나 겨우 될 법한 좁은 가게를 나선 종혁에게 낯빛이 어두운 서성찬이 다가왔다.

    "내가 계산해도 됐는데……."

    "괜찮아요. 아주머니가 기특하다고 만 원만 받았잖아요."

    만두를 100개나 먹었지만, 학생이나 순경이 뭔 돈이 있냐, 봉사 활동을 하러 온 게 기특하다고 만 원만 받았다.

    그 마음 씀씀이가 고맙고도 미안해 돈을 다 계산하려 했지만 끝끝내 거부했다.

    1997년, 아직까진 이런 정이 남아 있는 시대였다.

    "그래도……."

    ‘이놈 호군가?’ 만두 100개 중 60개를 종혁이 먹었다.

    수호, 소영은 15개씩. 가장 적게 먹어 놓고 미안해하는 모습을 보니 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음, 정 미안하시면 음료수나 사주세요. 겨우 하루 이틀 오고 말 저희를 위해서 귀한 월급 쓰지 마시고."

    "고맙다. 파출소에서 가는 슈퍼 있어. 거기로 가자!"

    ‘호구 맞네, 이 양반.’

    "Положить(놔)."

    ‘응? 러시아어?’ 바쁘고 활기찬 사람들이 내는 소음을 뚫고 들려오는 소리에 옆 골목을 향해 고개를 돌린 종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남자 네 명에게 둘러싸인 거구의 러시아인.

    그들을 본 종혁은 재빨리 나섰다.

    "어? 양아치다."

    "응?"

    종혁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린 일행은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어떤 새끼가?!"

    화를 내며 몸을 돌린 남자 네 놈도 종혁이 입은 경찰 조끼를 보곤 굳어 버렸다.

    종혁은 그중 한 명이 슬그머니 내리는 상의…… 아니, 바지춤 속에 쑤셔진 무언가를 발견하곤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저 새끼 배때기에…… 비디오?’

    경찰 조끼를 보고 저렇게 숨기려고 한다면 백이면 백 포르노 같은 불법 유통 비디오다.

    ‘실적이다!’

    순찰만 해도 서로 윈윈인데, 실적까지 안겨 준다?

    기사가 한 줄이라도 더 예쁘게 써질 수 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

    종혁의 입에서 장군의 호령 같은 외침이 터져 나왔다.

    "서 순경! 저 새끼들 잡아!"

    "예, 옛!"

    서성찬이 반사적으로 튀어 나갈 때, 종혁은 이미 먼저 출발해 달리고 있었다.

    목표는 비디오 가진 놈.

    "이런, 씨! 튀어!"

    "어딜!"

    종혁은 한 박자 늦게 몸을 돌리는 놈의 목에 있는 소매에 아슬아슬하게 손가락을 걸며 그대로 잡아당겼다.

    푸드득!

    단추가 뜯어지며 사람이 허공을 날아 추락했다.

    쿠웅!

    "켁?!"

    ‘오, 이게 되네?’ 손가락으로 사람을 제압했다.

    원래도 말도 안 되는 피지컬이었지만 합숙 훈련 이후 그 피지컬이 더 괴물 같아졌다.

    놈의 배에서 비디오를 꺼낸 종혁은 그 몸을 뒤집어 깔고 앉았다. 증거물은 소중하게 다뤄야 하는 법이다.

    "악! 씨발! 나와!"

    빠악!

    솥뚜껑 같은 손바닥이 뒤통수를 때리고 다른 손으로 놈의 목을 짓눌렀다.

    "어허이, 가만있어. 모가지 꺾어 버리기 전에."

    덤덤한 말투지만 그 속에 숨어 있는 사나움은 분명 많이 느껴 보던 것이었다.

    형사.

    그는 반항을 포기했다.

    "……씨발."

    포기한 모습에 습관적으로 수갑을 찾던 종혁은 멈칫했다.

    ‘아…… 아직 경찰 아니지.’

    경찰이 아닌 이상 수갑이 있다고 한들 함부로 채울 수 없다.

    결국 서성찬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 듯싶었다.

    이쪽을 멍하니 바라보다 다가오려는 소영과 수호에게 오지 말라고 손을 저은 종혁은 엉덩이를 뒤로 빼는 빅토르를 보았다.

    "стоп(멈춰요)."

    눈이 동그래진 빅토르가 종혁을 보았다.

    "러시아어를 할 줄 압니까? 다행이군요. 난 저들과 일행이 아니라 피해자입니다."

    다다다 쏟아 내는 말에 종혁은 진정하라고 손을 저었다.

    "그렇다고 해도 피해자 진술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남아 주세요."

    "그런……."

    "시간을 많이 빼앗진 않을 겁니다."

    그 말에 안도가 되면서도 어쩌다 이렇게 됐나 짜증이 났던 빅토르는 신기하다는 듯 종혁을 보았다.

    덩치는 크지만 앳돼 보이는, 외견상 나이가 많아 봐야 십대인데 러시아어를 마치 러시아 사람처럼 한다.

    ‘그것도 한국인이.’

    저벅저벅.

    "미안, 종혁아. 놓쳤다."

    "뭘요, 일단 한 놈 잡았으니까 됐죠. 이 자식 수갑이나 채우세요."

    "어? 네가…… 아, 어. 그렇지. 내가 경찰이지."

    얼굴이 달아오른 서성찬은 놈의 팔을 꺾으며 수갑을 채웠다.

    종혁은 한숨을 쉬었다.

    ‘진짜 초짜 순경인 거 티 내나.’

    "미란다 원칙은 안 하세요? 일단 협박죄로 체포하면 될 겁니다."

    "아, 미란다 원칙! 다, 당신을 협박 현행범으로 현장 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뭐야, 너 짭새 아니야?"

    종혁은 놈의 뒤통수를 강하게 후렸다.

    빠아악!

    "그래. 짭새 아니다, 새꺄."

    ‘기사 한 줄 더 확보!’ 절로 웃음이 나왔다.

    *  *  *

    박창도 소장은 헛웃음을 지었다.

    봉사 활동으로 순찰을 보냈더니 범죄자를 잡아 왔다. 그것도 17살 학생이.

    ‘이놈 뭐지?’

    박창도뿐만 아니라 남대문 파출소의 경찰 모두 종혁을 보며 어이없어했다.

    "불법 포르노 파는 놈들 같으니까 음란물 유통…… 아, 이게 지금 있는 법이던가? 아무튼 그쪽으로 처벌하면 될 겁니다. 그리고 저쪽은 러시아분이신데, 저놈들한테 강매를 당한……."

    ‘어? 잠깐?’ 종혁은 앞에 놓인 증거물, 제목 없는 비디오를 보곤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이거 혹시?’

    이 당시, 전국을 뒤집은 엄청난 사건이 있었다.

    너무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고, 경찰이라면 무조건 공부하는 사건.

    종혁의 눈이 사납게 떠졌다.

    "소장님! 이거 확인해 보는 게 어떨까요? 포르노가 아니라면 저 새끼…… 저 범죄자 풀어 줘야 하니까요!"

    "……그냥 네가 경찰 해라."

    ‘뭔지 몰라도 범상치는 않은 놈이네.’ 고작 17살이 경찰 매뉴얼을 잘 알고 있다.

    ‘김종두 그놈이 가르쳤나.’

    어쩐지 잘해 달라고 하더라니. 이 똘똘한 놈을 경찰로 만들려는 것 같다.

    박창도는 종혁의 뜨거운 눈빛에 헛웃음을 터트렸다.

    "왜, 확인하고 싶냐?"

    "그렇게 해 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짜식, 꼬추에 털도 안 났을 놈이 꼴에 남자라고…… 따라와."

    17살이면 알 거 다 아는 나이다.

    파출소 한구석 TV 앞에 데려간 박창도는 비디오 플레이어에 비디오를 집어넣었다.

    일명 빨간 비디오.

    박창도는 피어오르는 흥미를 감추며 TV를 봤고, 침을 꼴깍 삼키며 슬그머니 접근하는 수호와 소영에게 손을 저은 종혁은 곧 재생되는 영상을 보곤 얼굴을 와락 구겼다.

    "개씨부랄! 맞잖아!"

    ‘파란 양말!’ 모두가 화들짝 놀라 종혁을 봤지만, 그는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

    "예, 반장님. 저 종혁인데요. 이쪽으로 좀 오실 수 있으세요? 아무래도 대형 사건 하나 터진 것 같습니다. 미성년자 포르노인 것 같아요."

    -뭣?!

    "뭐?!"

    박창도도 벌떡 일어났다.

    전국을 뒤집은 파란 양말 사건.

    이건 종혁이 어찌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다.

    공권력이 해결해야 하는 일.

    그래서 김종두 반장을 불렀다.

    "이 자식은 기껏 봉사 활동 보냈더니 사건을 물어 오고 있네?"

    "하하."

    "그래서 뭔데? 미성년자 포르노는 또 무슨 말이야?"

    지금까지 종혁이 개입한 사건들 중 무엇 하나 작다고 말할 수 있는 이들이 없지만, 미성년자 포르노는 그것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사회적 이슈를 일으킬 수 있는 대형 사건이다.

    "일단 보시면 알 겁니다."

    딱딱한 종혁의 얼굴에 덩달아 신중해진 김종두는 박창도 소장과 그 옆에 사복 차림으로 선 사십대 후반 중년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오랜만이야, 박 소장. 철호도 오랜만이고. 남대문서에 있었어?"

    "오랜만입니다, 형님."

    "그동안 쌓인 이야기는 일단 증거부터 보고 이야기하자고. 심각하면 밥그릇 좀 나눠 주고."

    남대문 시장에서 범인과 증거를 확보했으니 남대문서의 사건이다.

    남대문 파출소의 박창도 소장은 남대문서에 연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만난 셋이 소장실로 들어가자 종혁은 소영과 수호에게 다가갔다.

    "어떻게 된 일이야? 미성년자 포르노라니?"

    금방이라도 토악질을 할 듯 하얗게 질린 얼굴의 소영.

    종혁은 수호를 보았다.

    "파란 양말 알지?"

    "……그, 그게 이렇게 큰일이었어?!"

    "야, 밤톨! 너 저거 알아?!"

    "으응. 요새 떠도는 건데 남자들 중에 안 본 애는 거의 없으니까…… 무, 물론 난 못 봤지! 껴 주지 않으니까!"

    ‘안 봤다고 해야지, 인마.’

    "……더러워. 불결해."

    "못 봤다고! 진짜야!"

    소영의 일그러진 눈이 종혁에게로 향했다.

    "봤으면 벌써 신고했겠지."

    "……응, 종혁이는 성실하니까 믿어. 절대 저런 거 보지 마."

    그러며 종혁의 새끼손가락을 잡는 소영의 손이 떨리고 있다.

    ‘많이 놀랐나 보네.’

    그럴 만했다. 눈앞에서 범죄자를 잡았고, 이런 일로 번졌다.

    그 긴박하고 살벌한 상황은 보기만 해도 사람을 움츠리게 만든다. 아마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걱정 마. 그런 일은 절대 없을 테니까."

    "응, 믿을게."

    소영의 머리를 토닥인 종혁은 의자에 앉아 얼굴을 구기고 있는 빅토르에게 다가갔다.

    "아, 최!"

    "미안합니다. 아무래도 좀 더 계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난 바쁜……."

    "아동 포르노입니다."

    빅토르의 얼굴이 구겨졌다.

    "이런 개 같은! 이 나라에도 그런 개 같은 게 있다는 겁니까!"

    아동 포르노를 찍는 놈들은 거시기를 잘라 곰 먹이로 줘야 한다는 게 빅토르의 생각이다.

    러시아의 온갖 욕을 토해 내던 빅토르는 자리에 앉았다.

    소영과 수호가 서로 붙어 구석에 숨으며 빅토르의 눈치를 살폈다. 다른 경찰들도 슬그머니 몸을 뒤로 뺐다.

    "쯧, 알겠습니다. 그런 일이라면 억울해도 참아 보겠습니다."

    "이해해 줘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한국엔 어떤 일로 오신 겁니까?"

    종혁은 그를 달래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

    빅토르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한국 사람이면 한국에 대해 잘 알겠지.’

    "다쉬락 같은 좋은 상품을 찾으러 왔습니다."

    "다쉬락? 상품?"

    빅토르는 사정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아, 팔도 도시락?"

    "바로 그겁니다!"

    ‘워, 그게 벌써 러시아에 풀렸던가?’ 한류가 별거일까.

    언젠가 한국에서는 사라져서 단종 된 건가 아쉬워했던 도시락 라면이 러시아에선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그 소식에 신기해하면서도 같은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낀 적 있던 종혁.

    "커피는요?"

    "커피 말입니까?"

    "네, 렛츠비 커피도 러시아에서……."

    ‘아, 이건 아직 진출 안 했나?’ 도시락과 함께 시장을 점유했다는 캔 커피.

    이 외에도 미래엔 꽤 많은 한국 제품이 러시아의 일상을 파고든 것으로 안다.

    한 번 찍으면 끝장을 보는 성격 때문에 조사해 봐서 알고 있다.

    ‘요거 잘하면?’

    왠지 땅 짚고 헤엄칠 것 같다는 촉이 선다.

    촉이 섰으면 바로 움직여야 했다.

    종혁은 파출소 안쪽 탕비실 냉장고에서 캔 커피를 꺼내와 내밀었다.

    "아마 이게 입맛에 맞을 겁니다."

    파란색 캔 커피에 의아해하던 그는 이내 입에 가져갔다. 그리고 눈을 부릅떴다.

    "헉! 이건 뭔가요?!"

    입안에 풍부하게 퍼지는 진한 단맛. 홍차 따윈 비교도 안 되는 천상의 맛이다.

    "이게 진짜 커피인 겁니까?! 어느 회사에서 파는 겁니까!"

    이건 통한다. 무조건 통한다.

    "아마 롯……."

    "종혁아!"

    벌컥 소장실의 문을 열고 나오는 셋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다. 종혁은 그들에게 다가갔다.

    김종두가 이를 갈았다.

    "저거 뭐냐. 저거 뭐냐고!"

    딸 뻘인 소녀가 파란 양말만 신은 채…….

    "십대의 탈을 쓴 그 범죄자 새끼들이 외국 포르노를 따라 한 성 착취 영상입니다."

    잠시 파출소 안의 시간이 멈췄다.

    "……십대가 십대를? 단체로?"

    그걸 비디오로 만들었다.

    온갖 범죄를 접하는 형사인 그들로서도 접해 본 적 없는 이야기.

    아니,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이야기.

    김종두와 다른 두 경찰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너 설마 저 새끼들 누군지 아는 거냐?"

    안다. 배웠는데 왜 모를까.

    "송파공고 일진 새끼들입니다. 아마 학교를 관뒀을지도 모르죠. 그리고 피해 여학생은 15살일 겁니다. 그쪽 가출 패거리에 중학생이 꼈다는 소릴 들은 적 있습니다."

    쿵!

    "……뭐?"

    고등학생도 아닌 중학생.

    "끅!"

    세 고위 경찰은 치솟는 혈압에 뒷목을 주물렀다.

    "……이런 개좆같은!"

    "씨발-!"

    보는 눈이 많기에 체면을 지키려 했지만 실패다.

    콰앙! 우당탕!

    소파나 쓰레기통이 그들의 발길질에 박살났다.

    "종혁아! 인간이 인간에게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씨발!"

    고등학생이 중학생을 단체로.

    학생이 아니라 사람이 해선 안 될 짓을 즐기며 했다.

    울 듯한 김종두를 보며 종혁 또한 이를 악물었다.

    배울 때도 혈압이 올랐는데, 직접 영상을 보고 나자 돌아 버릴 것 같다. 범인들이 눈앞에 있으면 맨손으로 찢어 버릴지도 몰랐다.

    종혁은 김종두의 손을 꽉 잡았다.

    "그러니 이 개새끼들 꼭 잡아 주세요. 음란물 제작 유포 따위가 아니라 집단 성폭행, 강간! 이런 죄로 콩밥 먹여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반장님!"

    종혁은 허리를 깊이 숙였다.

    아직 경찰이 아니라서, 검사가 아니라서 이 새끼들을 손수 처단할 수가 없다.

    그게 너무 화나고 치가 떨렸다.

    그렇기에 믿을 만한 사람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다.

    그 절절한 마음은 김종두를 비롯한 파출소 안 모든 경찰에게 전해졌다.

    ‘허, 이 녀석.’

    "……그래, 꼭 잡아서 콩밥 먹이마. 이 반장 삼촌 해낼 테니까 믿어 봐. 철호야, 애들 불러라. 출발하자."

    "형님은 빠지십시오. 이 새끼들은 내가 찢어 버릴……."

    "그리고!"

    셋은 종혁을 보았다.

    종혁의 얼굴은 방금 전보다 더 굳어 있었다.

    파란 양말 사건 이후의 이야기가 종혁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피해자 신변 보호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제 겨우 15살 여자아이입니다. 세상 물정도 모를 그 아이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나 제대로 알겠습니까."

    범인 검거 이후 세상은, 이 나라 언론은 그 사건을 지속적으로 언급하며 피해자를 두 번 죽였다.

    안타까운 길을 걸은 피해자를 떠올린 종혁은 다시 한 번 허리를 숙였다.

    "반장님, 그리고 여기 계신 경찰 여러분. 부디 피해자는 세상 그 누구도 알 수 없게, 혹여 기자들이 알아도 물어뜯지 못하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정말 부탁드리겠습니다."

    "……."

    경찰이라면 당연히 생각해야 할 일.

    그런데 그걸 17살 꼬마가 저렇게 강조하고 있다.

    경찰에 대한 신뢰가 이렇게 떨어진 건가.

    아니면 유난을 떠는 건가.

    하지만 종혁의 진심만은 그들의 가슴에 화인처럼 새겨졌다.

    그들은 흔들리는 눈으로 종혁의 넓은 등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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