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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16화 (16/837)
  •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16화>

    *  *  *

    혈기 넘치는 십대 남자를 진정시키는 법은 뭘까.

    답은 하나다.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로 굴리면 된다.

    하지만 그런 신성일의 의도는 의미가 없었다.

    다음날.

    끝없이 펼쳐진 동해 바다에 아침 해가 어스름히 빛나 오는 이른 시간.

    삑! 삑!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남자들과 여자들이 해변의 모래 위에서 교차한다.

    깜빡, 깜빡 윙크하는 남자들.

    꺄르르 웃는 여자들.

    "예쁘다! 어디 학교냐!"

    "우리? 선화여고 태권도부!"

    "양궁부도 있지롱! 너흰?"

    "동일고 유도부!"

    "오오오!"

    "야! 삐삐 번호 뭐야!"

    선화여고.

    강남에 있는 제법 명문 소리 듣는 여고다.

    이대, 숙대 진학률이 높은 아가씨 학교. 그런 학교의 아가씨들이 반응해 주자 유도부원들의 눈이 뒤집혔다.

    ‘그렇게도 좋을까.’

    솔직히 종혁도 좋다.

    다만 이들과 다른 의미다.

    조카처럼 귀여운 꼬마들. 후에 나올 틴트 하나만 발라도 세상 예쁠 나이다.

    ‘참 좋을 나이지…… 음?’

    같은 시대에 같은 나이로 살아가지만 이 괴리감은 어쩔 수 없었다.

    종혁은 너무 외진 곳이라 동네 사람 말고는 모르는 50미터 해변의 반환점을 돌아 감독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탄식했다.

    ‘어이구야.’

    도깨비처럼 일그러진 감독의 얼굴.

    "그만-!"

    헉헉!

    가쁜 숨을 몰아쉬는 유도부원들을 향한 신성일의 눈빛이 살벌하다.

    "이 자식들 아주 즐겁지? 곧 안 즐겁게 해 줄게. 가져와!"

    "음?"

    우르르!

    종혁은 무언가를 들고 달려오는 코칭스태프들과 용돈 벌이로 이번 합숙을 위해 합류한 졸업한 선배들을 보곤 눈을 부릅떴다.

    모래주머니.

    그것도 스포츠용품점에서 산 게 아니라 포대 같은 걸 이용해 수제로 직접 만든 주머니다.

    코칭스태프들은 그걸 직접 묶어 주었고, 곳곳에서 억 소리가 났다.

    "억?!"

    배에 찬 복대까지 못해도 족히 30킬로그램은 될 듯한 무게.

    가벼운 뜀박질에 따뜻하게 달아오른 상쾌한 몸이 단숨에 무거워졌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뭘, 그런데 너 몸 좋다? 물살이 아닌데?"

    그런데 감독은 여기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암 러닝 준비!"

    천천히 걷는 암 워킹에서 한 단계 나아간 암 러닝.

    "으악!"

    "감독님!

    종혁도 식겁했다.

    "시끄러워, 이 자식들아! 선착순이다. 뛰어!"

    종혁의 눈이 매섭게 떠졌다.

    선착순은 경쟁, 레귤러 선발 경쟁 시작이었다.

    ‘뭐든 첫인상이 좌우하지!’

    첫인상이 좋으면 반은 먹고 들어간다.

    이런 경쟁에서 절반을 먹는다?

    ‘뛴다!’

    생각이 섰으면 곧바로.

    첫날부터 너무 빡세다며 반항하거나, 네발로 기는 모습을 여자들에게 보이기 쪽팔려 머뭇거리던 부원들과 달리 양손으로 모래를 움켜쥔 종혁이 해변을 박찼다.

    파바바바박!

    "어머?"

    "저게 뭐야! 호호호!"

    암 러닝이 뭔지 몰랐던 여고생들은 해변을 질주하기 시작한 한 마리의 곰을 보며 자지러졌고, 스태프들은 오? 하며 눈이 동그래졌다.

    "저게 곰이야, 사람이야?"

    힐끔 뒤를 본 종혁이 크게 외쳤다.

    "선착순 1번은 제 차지입니다!"

    "이런, 씨! 우리도 뛰어!"

    우르르르르!

    곰과 멧돼지들은 곧 멀어졌고, 신성일의 입가엔 흐뭇한 미소가 맴돌았다.

    "음음, 역시 저놈이 보물이라니까."

    그렇게 말한 신성일은 눈을 빛내며 기록을 시작했다.

    당연히 종혁은 만점.

    낯빛이 어두워진 박상묵 코치가 종혁을 노려보았다.

    ‘쯧.’

    *  *  *

    아침의 가벼운(?) 러닝 후 근력 단련이 시작됐다.

    넓은 체육관에 들어선 유도부원들은 감독이 빌린 전문적인 기구에 동요를 보였다.

    ‘저거 헬스클럽에나 있는 거 아냐?’

    그동안 대부분 맨몸 운동이 다였던 유도부 훈련.

    좀 더 훈련하고 싶으면 집에서 10kg 이상 고중량 아령이나 고무줄을 잡아당기며 근육을 강화한 그들에게 있어 이런 전문적인 기구들은 좀 낯선 물건이었다.

    "역시 낯선가……."

    80년대부터 육체미체육관이라는 이름으로 점차 생긴 헬스클럽.

    하지만 아직까지 헬스클럽은 좀 낯선 시설이다.

    거기에 문제도 있었다.

    "직접 해 보니까 사람 잡겠던데……."

    관절에 엄청난 부하가 걸렸다.

    하지만 NFL 훈련 자료에 이 기구를 이용한 운동이 있었다.

    신성일은 기구를 가져온 이 순간까지도 관절을 포기하면서까지 근육을 얻어야 하나 깊은 고민에 빠졌다.

    "확실히……."

    "이거 하다 관절 나가는 애들 많죠."

    대학이나 선수촌에 가며 최신식 훈련법을 배운 졸업생들도 약간 난색을 보였다.

    그러다 기구 앞에 서는 종혁의 모습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철컹철컹!

    "저! 저!"

    바에 꽂히는 고중량의 디스크.

    총합이 160kg이다.

    감독은 질겁했다.

    듣기로 초보자는 바에서부터 무게를 조금씩 늘리라고 했었다. 그러다 숙련됐을 때 자기 몸무게로 운동을 하고.

    "야, 인마! 처음부터 그렇게 무겁게 하면…… 어?"

    스태프를 비롯해 부원들까지 입을 떡 벌렸다.

    ‘오, 드디어 쇠질을 하는 건가?’

    돈을 모두 박태규에게 맡겼기에 등록하지 못한 헬스클럽.

    몇 달 만에 보는 웨이트 기구에 눈이 뒤집힌 종혁은 후다닥 자세를 잡고 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다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어? 다들 이거 어떻게 하는 줄 모르나?’

    표정을 죽 훑어보니 자신만만해 보이는 이들의 숫자가 소수다. 그것도 거의 3학년.

    대부분은 꺼리거나 어리둥절해하고 있다.

    ‘뭐야? 관절 나갈까 봐 겁먹은 건가?’

    원래 세상에서 가장 겁이 많은 게 운동선수다.

    대부분 몸이 재산의 전부이자 미래이기에 함부로 굴릴 수 없는 게 운동선수.

    ‘이거 잘하면?’

    생각이 선 종혁은 냉큼 앞으로 나서며 디스크를 들어 바에 꽂았다.

    "흡!"

    묵직하게 어깨를 짓누르는 헬스 바.

    종혁은 허리를 편 상태에서 허벅지가 무릎과 수평을 이룰 때까지 무릎을 굽혔다가 밀듯 폈고, 사람들은 멍하니 쳐다봤다.

    "파!"

    종혁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가벼운데?’

    160킬로그램의 중량이 너무나도 가볍게 느껴졌다.

    겨우 90킬로그램에 불과했던 회귀 전의 중량.

    피지컬을 믿고 70킬로그램을 더 추가했는데, 거뜬했다. 60킬로그램은 더 올려도 거뜬할 듯했다.

    철컹!

    종혁이 역기를 내려놓자 묵직한 무게에 기구가 약간 미동을 보였다.

    ‘조금만 더 올려 보자.’

    본래 바벨 스쿼트는 이렇게 급격하게 무게를 늘리면 안 된다. 초심자는 자기 몸무게의 절반, 숙련자는 자기 몸무게가 가장 적당하다.

    그 이상은 보디빌더나 선수의 영역.

    하지만 선수라 할지라도 이렇게 급격하게 무게를 늘리면 몸이 놀라 다칠 수 있기에 조금씩 중량을 추가해야 한다.

    그러나 미친 피지컬을 보유한 종혁에겐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종혁은 중량을 추가하기 위해 디스크를 잡아갔다.

    그 순간 거친 손바닥이 종혁의 팔목을 잡았다.

    "뭐 해, 인마!"

    "예?"

    "처음부터 이렇게 무겁게 하면 무릎 작살나, 이 자식아!"

    종혁은 침을 튀기는 신성일 감독에게 고마워하며 손을 저었다.

    "에이, 안 무거워요. 그리고 자세만 바로잡으면 관절 작살 안 납니다. 방금 제 자세 보셨죠?"

    "응?"

    종혁은 한발 물러서 스쿼트 자세를 취했다.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이렇게 허벅지가 무릎과 수평이 되게. 부하가 걸리니까 무릎은 앞으로 내밀지 말고 직각으로. 엉덩이 쭉 빼고 척추는 최대한 펴서 허벅지로만. 후욱-."

    굉장히 불편해 보이지만 아름답다고도 느껴지는 자세.

    사람들은 이제 넋을 놨다.

    "허벅지와 허벅지에 고무줄도 묶으면 허벅지 바깥쪽도 단련됩니다."

    "……너 이 기구 다룰 줄 아는 거냐?"

    종혁은 의아해했다.

    "번역한 자료에도 이렇게 하라고 나와 있을 텐데요?"

    "……박 코치!"

    박상묵이 다급히 종혁이 번역한 자료를 들고 왔다.

    종혁은 그중 스쿼트 자세의 그림을 가리켰다.

    "보세요. 똑같죠?"

    신성일은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이내 곧 얼굴을 구겼다.

    "종혁아, 미안한데……."

    신성일은 미안해하며 부원들의 자세를 잡아 달라고 부탁했다.

    "네, 그렇게 할게요."

    "정말이냐!"

    종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운동은 몸 안 다치고 해야죠. 거기다 같은 부원이잖아요."

    "이 자식아……."

    이런 천사가 있을까.

    이 합숙은 레귤러 선발을 위한 합숙이다. 여기서 누군가 몸을 다쳐 탈락할수록 종혁이 레귤러가 될 확률이 높아진다.

    그걸 알고 있을 영특한 놈이 욕심 하나 부리지 않는 모습에 신성일은 감동하고 말았다.

    "모두 기구 하나씩 잡아! 종혁이가 자세 잡아 줄 거다!"

    "예!"

    종혁은 후다닥 기구로 뛰어가는 선배들과 울상이 된 감독의 얼굴을 보며 조용히 주먹을 쥐었다.

    ‘됐다!’

    종혁은 재빨리 움직였다.

    "아, 선배. 그 기구는 견갑골을 비롯한……."

    "그래? 이렇게 하면 돼?"

    "좀 더 허리를 펴세요. 아, 주장! 벤치 프레스 할 때는 허리를 활처럼! 벤치 프레스는 팔만 단련하는 운동이 아니에요!"

    종혁은 날아다니며 자세를 교정시켜 줬고, 신성일 감독과 코칭스태프는 그런 종혁의 뒤를 졸졸 쫓으며 교정된 자세를 기억하기 위해 노력했다.

    체육관은 후끈 달아올랐다.

    딱 한 명만 제외하고.

    ‘이 자식을 어떻게 하지 않으면…….’

    모두가 감화되어 하나 되는 분위기.

    위기감을 느낀 박상묵은 이를 악물었고, 이를 힐끔 본 종혁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  *  *

    덜덜덜덜!

    숟가락에 지진이 일어난 듯 음식이 흘러내린다.

    "미치겠네. 벌써 15일이 흘렀는데 왜 여전히 힘들지?"

    "지금 그게 문제야? 옆 숙소에 꽃들이 있는데 콜라 한 잔 마시지 못한 게 중요하지?!"

    일어나서 잘 때까지 훈련의 연속이다. 훈련이 끝나면 그대로 곯아떨어지기 바쁘다.

    여기에 식사 공간도 다르다 보니 아침 러닝 시간에 같이 뛰는 거 말고는 말 한마디 붙여 보지 못했다.

    "왜 우린 행복할 수 없는 거야!"

    "야, 그래도 작년이랑 비교하면 얼마나 낫냐. 운동다운 운동하는 것 같잖아."

    유도부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팔과 등 근육을 발달시킨다고 드럼통을 머리 위로 넘겼다가 내리거나, 손목을 강화한다고 고무줄을 잡아당겼다. 농구공을 짚으며 팔굽혀펴기도 했다.

    대강 어디가 단련된다는 두루뭉술한 개념만 있던 원시적인 훈련법.

    "그랬지. 참 헝그리 정신이었지."

    있는 걸 가지고 어떻게든 훈련하려고 했던 작년까지와 비교하면 상전벽해라 할 수 있다.

    똑같이 자전거 타이어 고무줄을 잡아당겨도 어디가 어떻게 단련되는지 세밀하고 확실하게 알고 있다. 그렇다 보니 부족한 부분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솔직히 얌전히 훈련하는 것 같아 걱정이 들었는데, 훈련 결과가 이야기해 주고 있다.

    좋은 운동선수가 되기 위해선 좋은 기구와 수치화된 훈련법을 써야 한다.

    그들은 이걸 깨우쳐 준 종혁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감독과 박상묵 코치, 졸업한 선배들, 주장 사이에 끼어 밥을 퍼먹고 있는 종혁.

    ‘세 명은 확정인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모든 훈련에서 언제나 선두에 있는 괴물 같은 피지컬을 자랑하고, 지식을 아낌없이 베풀었다. 아직 합숙이 끝날 때까지 보름이나 더 남았지만 세 번째 레귤러 멤버가 될 만했다.

    하지만.

    ‘빌어먹을! 박 코치님은 뭐 하는 거야!’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경쟁은 경쟁이다.

    ‘어설픈 놈이면 나이로 찍어 누르기라도 할 텐데!’

    모두가 어화둥둥 감싸고 있어서 그런 짓을 할 틈이 없다.

    그들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흠, 슬슬 독기가 올라오는구만."

    예년과 비슷한 페이스인데 몸 상태가 훨씬 좋다.

    근육 증가량이나 지방 감소량도 예년보다 나은 수준.

    번역 자료를 받은 이후 새로운 훈련법을 많이 적용했지만, 그래도 운동선수는 헝그리 정신이라 생각했던 신성일 감독도 이번 합숙으로 인해 많은 걸 깨우쳤다.

    그중 대표적인 건 도구를 갖춰도 헝그리 정신만큼 악바리로 만들 수 있다는 것과 알고 걷는 지옥은 더 힘들다였다.

    ‘아이고, 저 보물! 평생 가자, 종혁아!’

    "이제 피치를 올려도 될 것 같아."

    "예, 그런 것 같습니다."

    박상묵은 윤성오나 다른 부원들의 시선을 피하며 답했고, 빠르게 눈을 돌려 면면을 확인한 종혁은 촉이 서는 걸 느꼈다.

    ‘애들 반응 보니까 돈 받아 처먹는 거 맞나 보네?’

    아까부터 박상묵 코치를 신경 쓰는 무리가 있었고, 박상묵 또한 일부러 그 시선을 피한다.

    척하면 척이다.

    대충 숫자는 50명 중 약 30명.

    그중엔 상반기 레귤러 멤버와 백업 멤버도 8명 포함되어 있다. 주장, 부주장을 제외한 전원인 셈.

    훈련이 중반을 넘어가면서 초조해질 이들의 반응을 기다렸던 종혁은 입술을 깨물었다.

    ‘씨벌, 많이도 처먹었다.’

    스캔들 규모가 크다. 증거를 모아 터트리면 유도부도 함께 날아간다.

    다만 그러면 대회 출전도 날아가는 거다.

    ‘골치 아프게 됐는데…….’

    결국 생각했던 대로 실력으로 찍어 눌러야 하나 싶었다.

    ‘이래도 문제는…….’

    선후배 문화다.

    종혁은 눈빛이 예사롭지 않은 선배들의 모습에 짜증이 났다.

    ‘이 배은망덕한 것들!’

    엎어 버리고 싶은데 엎을 수가 없어서 화가 났다.

    "종혁아, 이것 좀 봐 줄래?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봐도 잘 모르겠거든?"

    "아, 그건……."

    졸업한 선배 스태프가 내미는 자료를 본 종혁은 이쪽을 주시하며 귀를 여는 졸업생 전원의 모습에 입을 다물었다.

    이번 합숙에 합류해 배운 게 많고, 생각이 많아졌는지 부쩍 스포츠 의학, 그중에서도 재활 치료나 스포츠 마사지에 관해 물어보는 그들.

    종혁의 입가에 푸근한 미소가 맺혔다.

    "허벅지 근육의 결을 따라 젖산을 풀어내면서 마지막으로 혈 자리를 풀어 혈류 순환을 돕는다는 거예요. 하지만 강하게 압박하면 도리어 근육에 손상을 줄 수 있으니까 힘 조절이 필요하죠."

    "아아, 그런 의미였구나. 고마워, 땡큐."

    "더 궁금한 거 없으세요? 다른 선배님은요?"

    "나! 이 부분 좀 설명해 줄래?"

    "아, 그 부분은요."

    "나도, 나도!"

    어느새 몰려든 졸업생들.

    종혁은 구김살 하나 없이 세심하게 설명을 했고, 감독과 주장 설동익, 부주장은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3번째가 되기에 충분하죠?’

    ‘음음, 충분하다 못해 넘치지!’

    지식만 뽐냈으면 모르겠지만 몸뚱이가 미쳤다.

    아직 마지막 일주일과 대련 토너먼트가 남았지만, 그들은 이미 종혁을 3번째 레귤러로 생각하고 있었다.

    "허허, 이놈들아. 밥은 먹고 물어봐라."

    드륵!

    "음? 벌써 다 먹었나, 박 코치?"

    "예, 저는 자료 정리 좀 하겠습니다."

    힐끔 종혁을 본 박상묵은 식판을 들고 떠났고, 종혁은 그런 그를 가만히 바라봤다.

    "종혁아."

    "아, 네!"

    "허허, 밥 먹고 물어보라니까."

    테이블이 화기애애해졌다.

    *  *  *

    식사 후 간단한 커피 타임.

    식당에 있는 믹스 커피를 타서 밖으로 향하는 종혁의 어깨를 누군가가 툭 치곤 지나갔다.

    "적당히 하자."

    같은 무제한 체급의 2학년 선배, 윤성오였다.

    "하아."

    그래도 선배라 대우해 주려고 했는데 그 마음이 쏙 들어간다.

    체육관 뒤로 온 종혁은 바깥의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쌓이는 울화를 풀어냈다.

    검은 고양이 네로! 네로!

    귀에 꽂은 워크맨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합의금을 받자마자 산 워크맨.

    하지만 쌓인 울화는 도통 풀어지지 않았다.

    "……확 제쳐 버려?"

    ‘그럼 신 감독님이 엄청 슬퍼하실 텐데.’

    "누굴 제쳐? 날?"

    "아, 주장."

    언제 왔는지 옆에서 히죽거리는 주장을 본 종혁은 눈을 가늘게 떴다가 이내 이마를 잡았다.

    저벅 저벅!

    ‘이런 씨부랄.’

    박상묵 코치가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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