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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8화 (8/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8화>

*  *  *

그저 동체 시력과 연륜으로 인한 기술에 의한 것이지만 갑작스런 스타일 변화에 대해 숨기려고 하다가 일이 커져 버렸다.

종혁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YAHOO. That`s right. Thank you, Sir. God bless you."

전화를 끊은 종혁이 신성일을 보았다.

"후우, 곧 메일이 올 겁니다, 감독님."

종혁은 진땀을 닦으며 헛웃음을 지었다.

너무 옛날이라 기억도 나지 않는 천리안, 나우누리.

이걸 통해 야후에 접속해 NFL(내셔널 풋볼 리그) 사무국 전화번호를 찾고, NFL 사무국이 쓰는 이메일을 확인했다.

그리고 거기에 맞춰 이메일을 만들고, 파일첨부 되냐, 되면 보내 달라 물어보는 등 아주 난리를 피웠다.

1997년, 정말 많은 게 부족하고 번거로운 시기였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어? 어……."

멍해 있던 그가 헛웃음을 지었다.

그건 하도 감독이 나오지 않기에 들어온 사십대 초반 중년인도 마찬가지였다.

종혁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박상묵 코치.’

부원들이 다쳤을 때 치료를 해 주는 메디컬 닥터이자 기술 보조 코치이며, 유도부 총무.

유도부 만능 살림꾼.

‘하지만 돈을 받는다는 소리가 있었지.’

신성일 감독이 직접 스카우트한 종혁으로선 첫 대회전에 손가락과 팔꿈치 인대가 끊어지면서 탈퇴를 했기에 잘 모르는 인물이다.

그런데 훗날 우연히 만난 유도부 선배에게 박상묵 코치가 뒷돈을 받았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선 이 사람의 동의가 있어야 하기에 의심을 해 볼 만 했다.

이 시기 운동이 다 그랬고, 스포츠 비리는 미래에도 일상다반사였다.

"너 영어 잘한다?"

종혁은 싱긋 웃었다.

"곧 글로벌 시대인데 이 정도는 기본으로 해야죠."

아니다. 경찰대 출신 엘리트 간부들에게 지지 않기 위해, 다른 형사들과 차별을 두기 위해 정말 죽어라 익혔다.

영어뿐만이 아니라 일어, 중국어, 러시아어, 태국어, 베트남어 등 한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외국인 범죄자나 피해자의 국적에 따른 언어를 익혔다.

단 한 번이라도 일어난 사건이 있다면 그 나라 언어는 무조건 익혔다. 하나의 사건이라도 더 가져오기 위해 말이다.

‘너 베트남어 못하잖아. 사건 넘겨 봐, 밥 살게.’ 이렇게.

"이젠 영어 못하면 취직 못 할걸요?"

"허, 딸내미도 영어 학원에 보내야 하나."

대기업들이 도산하는 사회 분위기.

지갑 사정을 생각한 신성일은 울상이 되었다. 박상묵 코치의 얼굴도 어두워졌다.

"그런데 훈련법 같은 자료를 이렇게 쉽게 알려 줘도 되는 거냐?"

"그럼요. 훈련법이 극비도 아니고."

극비로 할 만큼 위험하거나 검증되지 않은 훈련은 애초부터 허락하지 않는다. 선수들 몸값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렇게 흔쾌히 줄지는 몰랐지만.’

한국의 무슨 학교 운동선수인데 운동법을 참고하고 싶다고 하니, NFL 사무국 측은 멀리 있는 나라의 학생이 진취적이고 귀엽다면서 바로 보내 주기로 했다.

"역시 미국, 마음 씀씀이가 다르네. 그렇지 않아, 박 코치?"

"예, 역시 선진국은 뭐가 달라도 다르네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선진국은 마인드부터 달랐다.

"아, 혹시 미국에서 유도로 유명한 대학교나 고등학교가 어딘지 아세요? 아니면 일본이나."

"거, 거기도 물어보려고?!"

"일본어도 할 줄 아냐?!"

"글로벌 시대니까요. 이왕 할 거 한 번에 해치워야죠."

그렇지 않으면 찝찝해서 버틸 수가 없다.

"아니면 IOC(국제 올림픽 위원회)에 물어보고요."

신성일 감독과 박상묵 코치는 IOC란 말에 뜨악했다.

"어…… 미국은 모르지만 일본은…… 자, 잠깐만 있어 봐. 내가 확실히 알아볼 테니까."

"저도 알아보겠습니다!"

선진국의 훈련법.

혹여 안 되면 어쩔 수 없지만, 되면 대박이다.

몸이 후끈 달아오른 둘은 올해 나온 작은 신형 핸드폰을 들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 신성일은 아차 했다.

"짜장면 시켜 줄 테니까 여기 있다가 그 뭐냐 메, 메일? 그거 콤퓨타로 온다며. 그거까지 해 봐! 어디 가지 말고!"

"짬뽕이랑 볶음밥, 울면도 곱빼기로요. 탕수육도 대짜로."

"알았어, 인마! 누가 유도 선수 아니랄까 봐. 쯧."

오늘도 가벼워지는 주머니에 울상이 된 그는 일단 중국집에 전화를 걸었다. 일을 시키려고 해도 밥은 먹여야 했다.

"예, 왕자관이죠? 여기 유도부인데 짜장면 곱빼기 쉰 개……."

종혁은 놀라 감독을 봤다.

"너만 입이냐?"

"오."

종혁은 엄지를 치켜들며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밖으로 뛰쳐나갔고, 주문을 끝낸 감독은 울상을 지으며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네, 여보님. 전데요……."

와아아아!

환호성이 그의 쓰린 속을 달래 주었다.

*  *  *

어쩌면 당연하게도 일본은 알려 주지 않았다.

반면 미국은 달랐다. 미국은 국가대표 선수단의 피지컬뿐만 아니라, 기술 훈련 방법까지 알려 주기로 했다.

IOC를 통해 미국 국가대표 유도 코치에게 연락이 닿아서 알 수 있게 되었다.

놀랍게도 말이다.

그런데 신성일 감독과 박상묵 코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본 놈 쉬키들은 음흉한 놈들이라서 알려 주지 않을 줄 알았고, 미국은 영 맹탕이라서 그래. 작년 올림픽에서 동메달 하나 겨우 땄잖아. 그런 애들인데 유도 최강인 우리나라 학생이 훈련법을 알려 달라 하니 뭐라도 된 듯했겠지."

"허, 이런 거 보면 코쟁이 놈들도 칭찬에 약하긴 하나 봅니다. 아니, 호구인가?"

"아."

일찍 유도를 그만뒀기에 그건 몰랐던, 혹여 알았어도 이젠 상관없는 일이라고 까먹었던 종혁은 의아해하며 감독을 보았다.

감독과 코치는 피식 웃었다.

"아까 종혁이 네가 한 말처럼 0.1초의 찰나, 그 찰나의 찰나라도 빨라질 수 있다면 뭐든지 해야지. 내가 명색이 감독인데, 당연히 연구해야 하는 거 아니겠냐? 모르면 몰랐겠지만 말이야."

"암, 그럼. 우리가 있는 이유가 그거지."

‘맞아, 이런 분이셨지.’

"존경합니다, 감독님."

따악!

죽도가 종혁의 머리를 쳤다. 상처도 나았기에 거침없었다.

"아부하지 마, 이 자식아. 돈 없어."

"윽."

머리를 문지를 종혁은 싱긋 웃으며 컴퓨터를 보았다.

마침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그것도 첨부 용량에 한계가 있어서 몇 십 개로 나눠서.

종혁은 그걸 하나하나 다 다운받기 시작했고, 신성일 감독은 그걸 지켜보다 박상묵 코치를 툭 치며 밖으로 나갔다.

건물을 빠져나온 둘은 담배를 물었다.

"상묵아."

"예, 형님."

"저 자식 공부시켜야 될까?"

박상묵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최종혁.’

눈앞의 신성일이 직접 스카우트해서 데려온 학생.

기술을 영 쓰지 못하는 게 선수가 되려면 멀었다고 생각돼서 신경조차 안 썼는데, 한 달 반 만에 다시 본 모습은 달랐다. 마치 환골탈태한 것처럼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가 밀고 있는 2학년, 오늘 종혁과 붙은 윤성오의 앞길을 막는 장애물이 될 것 같았다.

"글쎄요."

그는 속으로 혀를 찼다.

‘그놈이 방금 그런 모습만 안 보였어도.’

영어와 일본어가 마치 미국인과 일본인 같았다.

그렇다고 윤성오를 생각해 그냥 공부를 시키자고 말하자니 오늘 기술이 너무 깔끔했다. 신성일도 지금 그것 때문에 고민하는 것일 터였다.

"일단은 합숙까지 지켜보시죠? 기술 쓰잖습니까."

전반기 큰 대회 중 하나인 청풍기가 얼마 전에 끝났다.

그 대회에서 윤성오는 아쉽게도 6위.

이제 큰 대회는 모두 8월 이후로 몰려 있었다.

"그렇지?"

신성일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그래, 공부보다 유도를 더 잘할 수 있잖아?"

기술까지 쓰게 된 종혁은 무조건 전국 체전에서 활약할 재목이었다. 어쩌면 회장기에서 입상해 상비군이 될 수 있었다.

"오케이, 일단은 합숙까지 지켜보자. 그때까지 종혁이 메디컬 체크 좀 자주 하고."

"예, 알겠습니다."

신성일은 담배를 던지며 안으로 들어갔고, 남은 박상묵은 담배를 질겅질겅 씹었다.

"사고를 치거나 다치기만을 바라야 하나. 아니면……."

눈빛이 서늘해졌던 그는 이내 고개를 털었다.

"쯧, 돈 벌기 어렵구만."

그도 곧 담배를 던지며 안으로 들어갔다.

종혁 왈, 피지컬 괴물이라는 미식축구 선수들의 훈련법이 그도 썩 궁금했다.

*  *  *

찌직! 찌직!

"이야, 저것도 쓸데가 있네."

여태껏 책상의 자리만 차지했던 컴퓨터와 프린터.

학교에서 쓰라고 해서 가져다 놓긴 했지만, 지뢰찾기나 카드게임 말곤 애물단지나 다름없던 컴퓨터가 드디어 컴퓨터답게 쓰이고 있었다.

그보다 더 놀랍고 경악스러운 건 보기만 해도 눈앞이 아찔해지는 영어를 종혁이 번역했다는 점이다.

이제 겨우 17살인 종혁이 이렇게까지 번역을 잘한다는 건, 결국 이 정도는 기본으로 깔고 가야 앞으로 취직이든 뭐든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딸이 영어 문제집을 샀다는 소리를 들어 본 기억이 없는 그는 입맛을 다셨다.

‘정말 영어 학원에 보내야겠네…….’

종혁이 특별한 것이었지만 그로선 알 리가 없었다.

"일단 10장만 번역했는데, 한 달 안에 다 번역해 놓겠습니다."

"분량이 많아?"

"612페이지요."

"뭐?"

신성일 감독과 박상묵 코치는 질겁했다.

‘이 정도면 거의 논문을 보낸 수준인데?’

더 놀라운 점은 이 중 200페이지가 재활과 응급 처치 등 메디컬, 스포츠 의학에 관한 자료라는 것이다.

"뭣?! 재활? 응급 처치? 진짜냐!"

"예. 여기 보시면 테이핑도……."

"오오오! 뭐야, 어떻게 읽는 거야?"

박상묵은 종혁을 보았고, 그는 볼을 긁었다.

"받아 보시려면 한 달 뒤에나……."

"무슨! 이것부터 해야지! 이것부터 해야 합니다, 감독님!"

신성일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훈련이야 여름 합숙 때 적용해도 되지만, 메디컬은 하루라도 빨리 적용하는 게 낫지."

‘흠…… 맞는 말이긴 한데.’ 엄청난 투자를 밑바탕으로 만들어진 선진 기술이라고는 하나, 이건 어디까지나 1997년도의 이야기.

종혁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많이 보였다.

‘적당히 개선해서 써 볼까?’

종혁은 형사 생활을 하며 스포츠 의학에 대해서도 공부했었다. 특히 재활에.

범인을 쫓다 보면 온갖 부상을 입곤 했는데, 그때마다 한시라도 빨리 현장에 복귀하기 위해서였다.

"예, 알겠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걸릴 거예요."

유도에 맞춰 개선하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했다.

종혁은 메디컬 자료를 펼쳐 서둘러 번역을 시작했고, 둘은 그런 그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이놈이 보물이네, 보물이야. 역시 스카우트하길 잘했지!’

‘흠, 코치로 키워 볼까? 보니까 돈에도 욕심이 있는 것 같던데…….’

둘은 동상이몽을 꿈꿨다.

*  *  *

9시 늦은 밤, 퀴퀴한 반지하지만 두 모자의 소중한 보금자리로 돌아온 종혁은 코를 벌름거렸다.

고기 냄새와 매콤달달한 해물 냄새가 강하게 풍기고 있었다.

부엌으로 향한 그는 경악했다.

"갈비찜? 해물찜? 엄마, 복권 당첨됐어?!"

"당첨되긴, 곗돈 탔어."

"곗돈?"

"응, 천만 원."

종혁의 눈이 동그래졌다.

‘센데?’

이 시절 천만 원은 결코 작은 돈이 아니다. 이래서 곗돈이 목돈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예숙 언니 투자 잘되면, 너 합의금이랑 합쳐서 이사 가자. 씻고 나와, 다 됐어."

"오오!"

계획을 세워 둔 어머니의 모습에 돌아서던 종혁은 멈칫했다.

"투자?"

"응, 세상이 시끄럽잖아. 이때 달러랑 금을 사 놔야…… 아니, 넌 신경 쓸 거 없으니까 얼른 씻고 나와."

순간 종혁의 피가 거꾸로 솟았다.

‘하, 송양자 이 쌍년 봐라? 돈 냄새 맡았다 이거냐?’

종혁은 원래 2001년까지 가만 놔두려고 했다. 제 살을 깎아 먹는지는 모르지만, 2001년까지 곗돈을 꼬박꼬박 잘 지급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기꾼은 제 목표 액수를 채우기 전까진 결코 이빨을 드러내지 않는다. 물론 언제든 튈 준비를 해 놓지만, 턱밑에 칼이 들어오지 않는 이상 사기꾼만큼 세상 착한 놈들도 없다.

‘아, 설마?’

"엄마."

"또 왜?!"

얼른 그 시큼한 땀 냄새를 씻어 내지 않으면 ‘등짝을 작살내겠다’라는 어머니의 강렬한 눈빛에 종혁은 찔끔했지만 가슴을 폈다.

"혹시 계원들에게 아버지 이야기했어요?"

"했는데?"

"나 합의한 것도?"

순간 귀찮아진 얼굴로 손을 저었지만, 그걸로 답은 됐다.

‘이년 튀려는 거구나! 김종두 반장과 아버지의 인연을 엄마가 말한 거야!’

턱밑에 김종두 반장이라는 칼이 들어왔다.

혹시라도 김종두 반장이 엄마 노점에 들렀다 송양자를 본다? 그녀가 짠 30억짜리 판이 엎어지는 거다.

송양자는 그 전에 튀려는 거다.

‘하, 이년을 어떻게 죽여야 할까.’

종혁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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