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7화 (7/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7화>

3. 유도 천재

4월 첫 번째 쪽지 시험, 반에서 15등.

4월 두 번째 쪽지 시험, 반에서 6등.

5월 첫 번째 쪽지 시험, 반에서 3등.

최종 전교 25등.

이 놀라운 결과에 동일고는 한 달 반 전에 있었던 학교 폭력 사건 이후로 다시 한번 뒤집힐 수밖에 없었다.

이른바 운동부의 반란.

일반 학생들의 엉덩이와 손바닥에 불이 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이것도 종혁이 성적을 제어했다는 걸 말이다.

"머리는 좀 어때?"

"이제 다시 운동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신성일 감독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계속 공부 안 해도 되겠어?"

여태껏 수업을 제대로 듣지 않은 운동부가 반에서 3등을 했다.

교장이 은근히 압박을 넣고 있었고, 신성일도 종혁의 재능이 어쩌면 공부가 아닐까 생각했다.

종혁은 그런 감독의 마음을 안다는 듯 가슴을 쳤다.

"유도와 공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습니다!"

도 대회에서 입상만 해도 엄청난 가산점이 붙는다. 유도는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그냥 입상이 아니라 우승을 노린다!’

이왕이면 다홍치마. 입상보다는 금메달이었다.

따악!

죽도가 종혁의 허벅지를 때렸다.

신성일이 웃는 얼굴로 유도부실을 가리켰다.

"뭐해? 뛰어!"

"예!"

드륵.

문을 열고 들어간 종혁은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똑땡, 왔어?!"

똑똑한 뚱땡이.

운동부임에도 성적이 전교에서 노는 것과 한 달 반 전 사건으로 인해 달라진 유도부 위상 덕분에 이런 별명이 붙었다.

예전엔 일진처럼 경원시했다면, 지금은 든든한 버팀목으로 여기는 수준.

괴롭힘을 당했던 여학생에게 러브레터를 받은 유도부원이 몇 명 있기에 종혁의 주가는 굉장히 올라간 상태였다.

종혁은 탈의실에서 유도복으로 갈아입었다.

"흠."

새것처럼 뻣뻣하면서도 두꺼운 유도복.

마흔이 넘어서부터 허리와 등 관절이 나빠져 더 집중하게 된 유도.

옛 스타일의 유도복이 추억을 자극했다.

"그래, 다시 시작이다."

무제한급 유망주.

17살 온전한 몸으로 다시 시작이다.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심장이 뛸 수밖에 없었다.

냉큼 갈아입고 나온 종혁은 걸레를 쥐곤 엎드렸다.

대걸레는 선배들의 몫.

1학년은 그냥 걸레다.

우다다다다!

종혁은 끝에서 끝까지 빠르게 달렸다.

삑! 삑!

"핫, 둘, 셋, 넷!"

청소가 끝나기 무섭게 시작된 뜀박질.

5바퀴, 10바퀴.

몸이 달아오르고,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한다.

그러나…….

‘뭐지?’

종혁은 아직도 배에 머물러 있는 숨에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큰 덩치 때문에 이쯤 되면 숨이 목까지 차올라 뒤처지던 과거의 그. 뜀박질이 끝날 땐 1등인 주장과 두 바퀴 이상 차이가 났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남들보다 앞에서 달리고 있었다.

뒤처지는 아이들은 놀라 종혁을 보았다.

하지만 더 놀랄 일은 인터벌 때 벌어졌다.

삑! 후다닥!

끝에서 끝까지 15미터 전속력으로 왕복.

꼴등은 죽도로 엉덩이를 맞는다.

쫘악!

몸이 엉덩이를 기준으로 둘로 나뉘는 듯한 고통.

한 대 맞은 유도부원이나 그걸 지켜본 유도부원들 모두 이를 악물며 달리고, 그 경쟁에 숨은 금세 턱 끝까지 차오른다.

분명 그래야 했다.

‘뭐지? 뭐야?’

하지만 종혁의 발은 아무리 뛰어도 속도가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속도를 더 높일 수 있을 거 같았다.

‘이런 씨!’

‘똑땡한테 지면 안 돼!’

다른 유도부원들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더 뒤처지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달렸고, 죽도로 어깨를 두드리던 감독은 입을 헤 벌렸다.

‘저! 저!’

한 달 반을 쉰 종혁이 훈련을 따라오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던 그는 부들부들 떨었다.

"최종혁."

"예?"

"엎드려."

"예, 옙!"

왜인지 모르지만, 일단 엎드린 종혁의 엉덩이에 죽도가 작렬했다.

짜아악!

"야, 이 자식아! 누가 대가리 터졌는데도 운동하래! 아주, 달리기 연습만 했구만, 이거!"

‘안 했습니다만!’ 형사 생활을 하며 그가 익힌 게 있다.

다치면 일단 다 나을 때까지 휴식. 안 그러면 훗날 형사의 가장 큰 무기인 몸뚱이가 망가진다.

정말 억울했지만 종혁 본인도 몸 상태에 혼란스러워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네가 왜 일자로 찢어지냐."

마무리 및 낙법 훈련 전 스트레칭.

180도 찢어진 것도 모자라 아주 여유만만인 다리.

땅에 닿다 못해 잘 수도 있을 듯 바닥에 닿은 뺨에 종혁은 넋을 잃으면서도 깨달았다.

‘몸이 좋아졌다!’

안 그래도 미쳤던 이 당시의 피지컬이 더 미쳐 버렸다.

종혁뿐만 아니라 감독, 다른 유도부원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깃 싸움에선 기절초풍했다.

털썩!

깃 싸움을 하다 발목이 걸려 허무하게 쓰러진 상대.

"어?"

…….

유도부실이 조용해졌다.

*  *  *

유도에는 깃 싸움이라는 게 있다.

정확히는 잡기.

소매나 목깃 등을 잡아서 당기거나 밀다가 기술을 집어넣기에, 이 깃 싸움에서 패하면 낭패를 당하기 쉽다.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건 바로 그 깃 싸움이었다.

"잘 부탁한다."

"잘 부탁드립니다."

하앗! 핫! 텅!

온갖 소음이 울리는 부실 안.

서로 마주 본 종혁과 2학년 120킬로 무제한급 부원이 마주 보고 허리를 숙였다 펴며 자세를 잡았다.

묘하게 짜증 섞인 얼굴이 좀 거슬렸지만, 지금은 신성한 매트 위다. 상념은 접어야 했다.

"하!"

"하앗!"

당김 손, 낚음 손.

선수들은 치열하게 교차하는 손으로 많은 이야기를 한다.

그와 동시에 종혁의 시간이 느려졌다.

‘또!’

회귀한 순간 인식한 극한의 동체 시력.

후웅.

느릿하게 뻗어진 손이 소매 깃을 잡는 순간 종혁의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뿌리칠까 말까.

이 각도면 단숨에 뿌리칠 수 있을 거 같은데.

종혁이 생각에 잠긴 사이, 상대가 잡은 소매를 내리며 파고들었다. 그리고 종혁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다리를 집어넣었다.

‘메치기? 대련이 아닌데?’

깃 싸움은 어찌 보면 약속 대련.

균형이 무너지지 않는 이상 기술을 이렇게까지 깊게 걸지 않는다.

그 생각과 동시에 종혁의 발바닥이 뻗어져 상대의 발목을 걸어 버렸다.

이건 28년 형사 생활, 범인이라면 일단 엎어트리고 보는 본능에서 나온 반사적인 기술이었다.

후웅!

마치 빈 바닥을 쓸 듯 감촉도 없는 발목 후리기.

반사적으로 뻗은 왼손이 옷깃을 잡아 2학년 선배의 손을 잡아떼고, 오른손이 팔을 잡아당기자 그 몸은 그대로 무너졌다.

쿠웅!

"어?"

엉덩방아를 찍은 2학년은 종혁을 멍하니 바라봤고, 반사적으로 무릎을 뻗으려고 했다가 멈춘 종혁도 멍하니 그를 보았다.

신성일도 눈을 비볐다.

"아, 죄송합니다. 반사적으로 그만."

2학년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요새 주가가 많이 올라가서 꼴 보기 싫어진 종혁.

선배로서 콧대도 누를 겸 군기를 잡기 위해 기술을 걸어 넘어트린 후 방심하지 말라고 혼내려 했는데, 도리어 당해 버렸다.

"모, 몸이 풀렸나 보다? 다시 해 보자."

"예."

인사를 한 둘은 다시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고, 종혁의 시간은 다시 느려졌다.

‘아, 또 기술을? 이 선배 왜 이래?’

"어라?"

쿠웅!

이번엔 주위 부원들 모두 종혁과 2학년을 보았다.

그들도 감독처럼 눈을 비볐다.

고급 기술인 되치기 중에서도 고급인 허벅다리비껴되치기. 허벅다리걸기의 원심력을 이용한 되치기다.

신성일은 기함했다.

"저, 저 자식?"

우연이 아니다.

힘, 오직 힘.

우격다짐으로 업어 치는 게 스타일이었던 종혁.

근육의 질이 다르기에 그동안은 통했다. 중학생까지야 체중으로 짓누르면 되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약속 대련처럼 마치 서로가 짠 듯 완벽한 되치기였다. 아니, 허벅다리비껴되치기는 약속 대련이 아니고서야 쉽사리 나올 수 없는 기술이다.

그걸 종혁이 해냈다.

스타일이 바뀌었다.

우월한 피지컬만으로 밀어붙이던 이전에서, 테크닉까지 갖추게 된 것이다. 그것도 수만 번을 연습한 것처럼 완벽한 테크닉을.

"이 개자식이……."

어느새 달려온 신성일이 2학년을 밀어냈다.

"너, 이 자식! 이 자식! 너, 뭐야. 이 자식아!"

후다닥 달려온 그는 머릿속에서 엉킨 단어를 뱉지 못했고, 종혁도 이 상황이 썩 이해되지 않아 머리를 긁적였다.

‘이 동체 시력이 같은 선수한테도 통한다고?’

다리걸기가 일품으로 평가받는 2학년 선배다. 자기 몸에 휘둘리기나 하는 일진 양아치들과 다른 진짜 선수.

무제한급에선 빠른 축에 속했기에 대회에 나가면 동메달은 땄던 선배다.

실제로 올해 열릴 회장기에서 동메달 입상을 하며 상비군 발탁이 되는 선배.

종혁은 그런 그에게 기술을 성공시킨 거다. 누구도 이의 없이 깔끔하게.

감독과 유도부원들은 이전과는 다른 종혁의 움직임에 입을 벌렸지만, 종혁에게는 그다지 낯설지 않은 움직임이었다.

위의 3분의 2를 도려 낸 이후, 더 이상 피지컬만으로 범인을 누를 수가 없어서 익힌 테크닉.

적은 힘으로 상대방을 제압해야 했던 악바리의 산물, 그것이었으니까.

‘와, 그러니까 달건이, 뽕쟁이 등을 상대로 피 튀기는 실전에서 갈고닦은 테크닉에 이 미친 피지컬과 말도 안 되는 동체 시력이 추가됐다고?’

종혁은 깨달았다.

오싹!

‘미쳤다!’

"그래, 이거야. 이 자식아! 아이고 예쁜 내 새끼! 운동하지 말라니까 왜 했어-!"

신성일은 종혁을 들어 올려 어화둥둥 했고, 종혁은 온몸을 내달리는 전율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서도 하나의 빛을 보았다.

‘이거 단순히 전국대회 메달로 끝날 일이 아니야!’

태릉, 국가대표 선수촌.

검지와 팔꿈치 인대가 끊어지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갔을 그곳으로 향할 길이 열렸다.

이리 오라며 저 멀리서 환한 빛이 나고 있었다.

전율이 다시 한번 종혁의 온몸을 내달렸다.

*  *  *

종혁은 바로 감독실로 불려갔다.

"잡아당겨 봐, 전력으로."

신성일이 한쪽 끝을 잡은 고무 타이어를 내밀었다.

"흡!"

꾸드득!

"윽?!"

순간 휘청거리는 몸과 끊어질 것 같은 팔 근육.

눈이 동그래진 신성일이 타이어를 놓았다.

"억?!"

신성일은 균형을 잡는 종혁을 다시 끌어안았다.

"이 자식…… 정말 연습 많이 했구나!"

이전에는 팔과 허리만 썼는데, 이젠 전신을 쓴다.

순식간에 전신을 사용한 그 모습은 너무 자연스러웠다.

"운동하지 말라니까!"

종혁은 눈을 데구루루 굴렸다.

그러다 히죽 웃었다.

"절 그렇게 믿어 주셨는데 안 할 수가 있나요."

종혁이 합의를 한 이후 선생들의 눈빛이 나빠졌다.

배신자, 학교 일을 경찰에게 알린 앞잡이.

담임은 아예 대놓고 못마땅해 했다.

종혁을 흠잡을 곳이 없어 말은 안 했지만.

그걸 신성일 감독이 ‘우리 애는 그런 애 아니다, 형사가 물어보는데 어떻게 말 안 하냐, 그럼 일진들을 먼저 조지든가!’라고 커버했다.

그에 성실히 수업을 받는 종혁의 모습을 본 다른 과목 선생들이 합세하며 여론을 뒤집어 놓았다.

운동도 공부도 성실히 하는 모범생으로.

이는 감독이 걱정하지 말고 학교 다니라며 배려한 것이었다.

"짜식이……."

코를 쓱 문지르던 감독의 눈빛이 돌변했다.

"그래서 어떤 훈련을 했는데?"

전신을 썼다지만 분명 근력이 늘었다.

순발력, 손목 힘, 악력 등 모두.

그동안 신체를 제대로 활용 못 하는 종혁이 답답했기에 잘 알고 있다.

"어, 버핏 테스트나 암 워킹, 크로스핏이요?"

"버피, 크로스 뭐?"

종혁은 아차 했다.

크로스핏 등은 2010년 이후에나 유명해지는 운동들이다.

게다가…가….

"감독님의 훈련법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매트가 없는 곳에서 훈련하려다 보니 찾아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단 넘어가고, 그것들이 뭔데?"

그가 짠 훈련 커리큘럼이 아닌 운동을 해서 화가 났지만, 이름이 꽤 전문적이었다.

그는 일단 들어 보기로 했다.

잠시 고민했던 종혁은 뻔뻔히 밀고 나가기로 했다.

"유산소와 근력 운동을 함께할 수 있는 운동인데,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기에 딱 좋죠. 미국에서 하는 운동이에요."

"미, 미국?"

신성일은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미국 어디? 미국 유도하는 애들? 걔들 맹탕인데?"

"유도가 아니라 미식축구요. 모든 스포츠 선수 중에서 가장 피지컬이 뛰어난 미식축구."

"……그 공 들고 뛰는 운동을 말하는 거냐? 레슬링이 아니라?"

종혁은 고개를 저었다.

"저도 그렇게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110kg이 약 40m를 뛰는 데 평균적으로 4.1초.

손가락 하나로 110kg 거구를 자빠트리고, 190cm 상대 선수를 뛰어넘는 압도적인 피지컬.

미식축구는 태클로 죽기도 하기에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스포츠임과 동시에 가장 과학적인 스포츠다.

0.1초, 0.1cm를 위해 수백, 수천억을 쏟아 붓는 스포츠.

몸이 쪼그라든 종혁은 어떻게든 근육을 알차게 만들고 쓰기 위해 이런 과학적인 방법을 조사해서 훈련했다.

이런 종혁의 말에 신성일 감독은 기함했다.

"어마어마하네."

특히 4.1초와 손가락이란 단어가 귀에 쏙 들어왔다.

순발력과 악력.

유도에선 빼놓을 수 없는 것이었다.

"괜히 수백억대 연봉을 받는 게 아니죠."

"허, 박찬오 선수가 미국 갔다고 마냥 생각 없이 좋아할 게 아니었네."

"우리나라랑 쏟아 붓는 돈의 단위가 다르니까요."

"흠……."

종혁은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뭐랄까, 신이 회귀시켜 준 김에 동체 시력과 몸도 더 좋아지라 한 듯 미쳐 버린 몸뚱이의 출처를 숨길 수 있게 됐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으시면 전 이만……."

"종혁아."

"예?"

"그거 어떻게 하는 거냐?"

"……네?"

종혁은 갑자기 두 눈이 불타는 신성일을 보며 눈을 껌뻑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