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3화>
2. 학교
"아이고, 같은 반 학생인지 몰랐네. 어젠 미안했어요. 많이 시끄러웠죠?"
종혁은 어색함을 떨치기 위해 먼저 말을 걸었다.
‘에이, 이놈의 말버릇.’
민원인을 상대할 일이 많다 보니 생긴 버릇이다.
종혁의 존댓말에 눈이 동그래졌던 소녀 김소영은 고개를 붕붕 저었다.
"아니? 바로 신고해서 금방 괜찮아졌어."
종혁의 눈이 빛났다.
"신고를 했어? 몇 시에? 어떻게?"
"너 그렇게 도망친 이후에 바로. 아, 네가 우리 집 담 넘었다는 건 말 안 했어!"
"에고, 말하지."
‘그래야 더 제대로 된 증거가 남았을 텐데.’ 1997년, 미래엔 너무 흔한 CCTV나 블랙박스가 아예 없었다.
그래도 112상황실에 증거가 생겼다. 일진들을 날려 버릴 증거가.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지.’
형사인 그에겐 너무도 당연한 논리였다.
종혁은 푸근히 웃었다.
"아무튼 잘했어. 무서웠을 텐데 용감하게 행동했네."
종혁은 습관적으로 머리를 쓰다듬었다가 아차 했다.
"아, 미안."
"응, 앞으론 조심해 줘. 그런데 머리는 괜찮아?"
"괜찮아."
"음…… 응."
고개를 끄덕인 소녀, 김소영은 자리로 향했고 종혁은 웃었다.
‘애가 당차네.’
자리에 앉은 종혁은 책상 서랍 속에 있는 연습장을 꺼내 방금 전 증거, 아니 신고 내역을 기록했다.
이런 건 잊기 전에 기록해야 했다. 이는 습관이었다.
"그런데 이건 뭔 노트인지……."
국어, 수학, 영어, 낙서 그림 등이 한꺼번에 적혀 있는 연습장. 필기도구도 달랑 모나미 볼펜 한 자루뿐이다.
이 시절에 ‘공부를 참 안 했구나’라는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경찰대 혹은 한국대 법대.
그곳에 가려면 지금부터 빡세게 공부해야 했다.
그런 그의 귀로 희미한 노랫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린 종혁의 눈을 사로잡는 게 있었다.
김소영의 귀에 꽂힌 하얀색 이어폰과 책상에 놓인 네모난 상자.
"마이마이?"
큼지막하게 SONY가 적힌 게 정품 같았다.
"캬-!"
종혁의 머릿속에 하나의 기억이 떠올랐다.
이 시절 제법 부러워했던 마이마이, 워크맨.
그래서인지 20살 때 순경이 되자마자 샀었다. 진짜는 너무 비싸서 가짜로.
남들은 다 CD 플레이어, MP3 플레이어를 들고 다닐 때 그는 마이마이를 들고 다녔다.
그러다 3개월 만에 고장이 나서 버렸지만 말이다.
"역시 잘사는 집이었구만……."
이 시절 마이마이는 중산층 이상 사는 아이들의 전유물이었다.
그 순간 뭔가가 떠오른 그는 소영에게 다가갔다.
"이봐, 학생. 아니, 소영아."
소영이 이어폰을 빼며 의아하게 쳐다보자 종혁은 마이마이를 가리켰다.
"그거 녹음 기능도 있냐?"
종혁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 * *
쿵!
"학생주임 선생님."
대머리 학생주임 52살의 박강필은 표정이 심상치 않은 신성길에 의아해했다.
"왜 그러십니까, 신 감독?"
"그 양아치들 계속 지켜볼 겁니까?"
"……일진 놈들이요?"
"그래요! 그 양아치 새끼들! 학생주임이나 되면서 그런 놈들 계도할 생각 안 하고 뭐하는 겁니까! 월급 도둑질합니까!"
학생주임의 얼굴이 굳고, 수업을 준비하던 선생들이 기겁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예의를 지키세요. 선생들 다 있는데 이게 무슨 무례한 짓입니까!"
신성길이 유도부 감독이 아니라 일반 교사였으면 쌍욕이 날아갔을 터였다.
"예의는 지킬 게 지켜졌을 때 챙기는 거고!"
"뭐야?! 너 몇 살이야!"
신성길은 교장을 보았다.
"교장 선생님! 선생님이 저 데려올 때 뭐라고 하셨습니까! 애들 운동시키는 것만 신경 써라. 그 외엔 신경 쓰지 않도록 하겠다. 그러셨잖습니까!"
교장의 낯빛이 굳었다.
"무슨 일입니까?"
"무슨 일이요? 어떤 분이 할 일을 하지 않아서 동일고의 소중한 선수가 다쳤습니다! 머리를 무려 25바늘이나 꿰맸단 말입니다! 내가 그놈을 어떻게 달래서 데려왔는데!"
종혁은 한국엔 흔하지 않은 진짜배기 무제한급 선수다.
살만 뒤룩뒤룩 찌운 게 아니라 근육이 옹골찬 재목이었고, 그 때문에 경쟁이 무척 치열했다.
타고난 신체에 힘으로만 해결하려고 해서 골치가 아프지만, 그건 차차 고쳐 나가면 될 일이었다.
"삥 뜯는 거 말리는 데 각목을 휘둘렀답니다! 무려 열 명이! 이게 학생이 할 짓입니까? 나, 이런 놈들 있는 곳에선 감독 못 합니다! 차라리 애들 다 데리고 딴 학교 가고 말지!"
매해 전국 대회 우승 메달을 한 개 이상씩은 따는 명장, 신성길.
교장은 다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이고, 신 감독. 잠깐 이야기 좀 합시다."
그는 신성길의 팔을 잡으며 학생주임을 노려봤다.
"교문이든 개구멍이든 1교시 수업 시작하기 전에 그놈들 싹 다 잡으세요. 알겠습니까?"
학생주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예."
‘이 개자식들!’ 학생주임은 이를 뿌득뿌득 갈았다.
한편 유도부 주장은 일진 대장인 김강헌에게 연락했다.
"야, 이 개새끼야! 내가 작작 나대랬지. 진짜 전쟁 한번 할까? 저번처럼 입원해 볼래? 어?!"
학교를 제 세상처럼 휘젓고 다니던 일진 무리에 횡액이 들이닥치는 순간이었다.
* * *
"좋아, 완벽해."
계획에 빈틈이 없다. 26년 형사 생활 짬밥을 걸 수 있을 정도다.
그렇게 공책을 덮을 때였다.
"담탱이 떴다!"
우당탕!
학생들은 자리에 앉았고, 종혁도 자세를 바로 했다.
드르륵! 쿵!
"자, 자! 얼른 앉아!"
8시 55분.
평소보다 늦게 교실 앞문을 열고 들어온 담임은 종혁을 보고 혀를 찼고, 종혁은 의아했다.
"차렷! 경례!"
"안녕하세요!"
"그래, 안녕하다. 내일 쪽지 시험 있는 거 알지?"
"아아아!"
종혁의 눈도 크게 떠졌다.
"아, 그랬지. 참."
동일고등학교는 유도 명문임과 동시에 공부로도 제법 유명한 학교다.
그래서인지 2주마다 한 번씩 쪽지 시험을 치른다.
그 때문에 유도부를 그만둔 이후 꽤 골치가 아팠다.
유도 선수가 아닌 최종혁은 그저 일개 학생이었고, 학생은 성적이 전부였다.
그래서 방황을 관둔 19살부터 머리 터지게 공부했는데, 그때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됐다.
자신의 머리가 굉장히 좋다는 걸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순경 출신이 고작 48살에 경정을 달 수 있을 리 없었다.
일반적으로 순경 출신의 한계는 경위인데, 그것도 퇴직 전 예우 차원에서 달아 주는 거다.
정말 빼어났던 두뇌.
그랬음에도 그가 경정밖에 못 올라간 건 라이벌이 경찰대 출신 간부들이었기 때문이다.
종혁이 10의 실적을 올려도 고작 2, 3의 실적으로 진급하는 경찰대 출신 간부들.
회귀 전에는 먹고살기 위해 급한 대로 순경을 지원했지만, 뒤늦게 재수를 하더라도 경찰대에 갈 걸 그랬다며 자책하곤 했다.
같은 후회를 반복할 생각은 없었다.
"오늘 수업 잘 듣고, 졸지 말고! 반장!"
"차렷! 경례!"
"안녕히 가세요!"
종혁은 이쪽을 힐끔 보곤 나가는 담임의 모습에 미간을 좁혔다.
"아무런 말을 안 하네?"
반 학생이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는데 아무런 말 한마디 없다. 아무래도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갸웃하던 종혁은 이내 자신을 보고 혀를 차던 담임의 모습을 떠올렸다.
"설마 일진 새끼들과 같은 취급을 받는…… 그럴 수 있겠네."
운동부는 무식하고 다혈질이란 이미지를 가진다.
굉장히 억울한 굴레지만, 적어도 동일고에서는 무식하다는 건 팩트다.
운동부 중엔 제 이름 석 자를 한자나 영어로 쓰지 못하는 놈들이 부지기수다.
더욱이 중학교 때부터 일진들과 마찰을 자주 일으켰다.
불의를 참지 못했기 때문이지만,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결국 똑같은 부류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일도 그저 똑같은 놈이 맞았다고 징징거린 걸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쓰읍, 밑바닥부터 바꿔야겠네."
이런 이미지를 가진 채 전교 1등을 한다?
무조건 커닝 의혹이 생긴다. 옆에서 드르렁 코를 골며 자고 있는 짝꿍도 믿지 않을 이야기.
그땐 신성길 감독도 보호해 주지 못할 수 있다.
재시험을 쳐서 의혹이 해소된다고 해도 감시의 시선은 계속 붙을 터였다.
종혁은 앞으로 한 달 반, 총 세 번의 쪽지 시험을 통해 이미지부터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은 머리 좋은 운동부원이다.’
학생의 본분은 결국 공부다. 공부만 잘하면 뭐든지 용서가 된다.
이 시절이면 더더욱 그랬다.
공부를 잘하는 데 양아치일 리가 없다는 편견.
아직은 공부와 인성을 따로 구분하지 못하는 시기다.
‘그러면 전교 1등을 목표로 해 볼까.’
종혁은 학교생활에 대한 계획을 세워 갔다.
드륵! 쾅!
바지통을 줄인 소년 둘이 어기적거리며 들어왔다.
허벅지가 붉다 못해 검게 물든 둘.
반 아이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시발시발거리다 종혁을 발견한 둘은 이를 갈았다.
"비겁한 새끼, 몇 대 맞았다고 선생하고 선배들한테 일러?"
‘아하.’ 종혁은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신성길 감독이 교무실을 뒤집어서 선생들이 움직인 것 같았다.
‘빠른데?’
"겁쟁이 새끼."
종혁은 어이가 없었다.
"비겁하고 겁쟁이인 건 한 놈 패는 데 우르르 몰려온 너희들이고. 여기 안 보여? 너희들 사람 죽일 뻔했어, 알아?"
"그냥 차라리 뒤져 버리지 그랬냐."
종혁은 눈을 껌뻑였다.
‘이 새끼들 구제 불능이네?’
그렇다면 학생으로 대접해 줄 필요가 없었다.
종혁은 그의 멱살을 잡아당겼다.
"흑?!"
"어이."
오싹.
순간 일진들의 등골을 타고 소름이 내달렸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눈동자.
그 눈빛과 마주한 순간, 마치 사자 우리에 갇힌 것처럼 숨이 턱 막혔다.
"내가 그렇게 안 일렀으면 어떻게 됐을 것 같냐? 내가 정말 너희 새끼들이 무서워서 이렇게 한 것 같아? 어?"
……꿀꺽!
종혁은 사시나무처럼 흔들리는 눈동자에 끓어올랐던 열이 팍 식는 걸 느꼈다.
‘에휴, 고삐리 데리고 뭐 하는 짓인지.’
종혁은 멱살을 풀며 밀쳤다.
"윽!"
"너희들이 비겁한 짓을 해서 처맞은 거 가지고 화풀이하지 마라. 확 접어 버릴 수 있으니까."
일진들은 억울했지만 반박할 수가 없었다. 사실이었고, 그 때문에 맞았으니까.
그리고 점심시간엔 3학년 일진들에게도 맞아야 했다. 선생한테 맞은 것도 맞은 거지만, 유도부와 전쟁이 날 뻔했다고.
이를 갈던 선배들과 방금 전 종혁의 눈빛을 떠올린 그들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시발놈."
그들은 몸을 돌렸고, 풋 웃은 종혁은 그 등에 대고 크게 외쳤다.
"마지막으로 경고하는데, 한 번만 더 애들 삥 뜯고 때리면 진짜 죽는다!"
‘그리고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겨우 여기서 끝내기엔 그동안 당한 아이들이 너무 많았다.
쾅!
"뭘 봐, 씨발!"
책상을 걷어찬 일진들이 나가자 종혁은 코웃음을 쳤다.
약자에게만 강한 양아치.
화를 낼 가치도 없는 놈들이었다. 이런 놈들이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게 우스울 뿐이었다.
‘응?’
종혁을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던 학생들은 재빨리 시선을 돌렸고, 교실은 곧 시끄러워졌다.
꽤 가벼워진 교실 분위기에 피식 웃은 종혁은 이내 1교시 교과서를 꺼내어 처음부터 읽기 시작했다.
‘그래, 너희들도 이제부터 어깨 펴고 살아…….’
"음?"
책을 읽던 종혁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쉬운데?"
뭔가 쉬웠다.
이해도 빨리 됐고, 심지어 외워지기까지 했다.
"……진짜 쉬운데?"
1997년 이 당시는 21세기와 비교하면 교육의 질이 떨어진다지만 이건 뭔가 이상했다.
‘뇌는 십대에 가장 쌩쌩하다더니!’
"씨부럴, 담배 조금만 필걸."
선수 생활이 끝나면서 배우기 시작한 담배.
한 달도 안 되어 하루에 3갑씩 폈다.
"그러니까 뇌를 니코틴으로 절여 놨는데도, 하자가 생긴 대가리로도 그 지랄 맞은 진급 시험을 한 번에 통과했단 말이지?"
경찰대와 한국대 법대가 코앞까지 다가온 느낌이었다.
헛웃음을 터트린 종혁은 눈을 빛냈고, 김소영은 그런 종혁을 빤히 응시했다.
* * *
‘잠을 안 자네?’
안 자는 대신 멍 때리는 게 아니라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필기를 하고 있다.
눈 한 번 깜빡이면 큰일이라도 나는 듯 집중하는 게 훤히 보였다.
소름이 돋을 만큼 열정적인 모습.
허리도 꼿꼿이 세운 바른 자세였다.
신성길 감독이 아침부터 교무실을 뒤집어 놓기에 얼마나 대단한 놈인가 싶었는데, 운동부임에도 공부를 할 줄 아는 성실한 학생이었다.
‘전에는 잤던 것 같은데…… 운동이 고되어서 그랬나?’
차라리 자는 게 나은 일진과 운동부.
굳어 버린 편견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자던 종혁이 집중해서 그런지 다른 학생들도 덩달아 수업에 집중하는 것 같았다.
‘허.’
선생들은 그 변화가 썩 기껍게 다가왔다.
‘이 일진 놈의 쉐키들.’
이렇게 성실한 학생을 다치게 한 일진들이 더 싫어지는 순간이었다.
반면 종혁은 너무 쉽게 이해되는 수업에 전율을 느꼈다.
‘아무리 복습하는 것에 가깝다지만! 이건 된다!’
경찰대와 한국대 법대가 정말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렇게 찾아온 점심시간.
1교시부터 4교시까지 반 학생들을 살핀 종혁이 움직였다.
"박수호?"
종혁은 쪼그려 앉아 시선을 마주쳤다.
"어? 으응."
작은 키, 왜소한 체구의 소년은 딱딱하게 굳었다.
도시락을 꺼내 들던 학생들이 멈추며 둘을 쳐다봤다.
"혹시 내일 있을 쪽지 시험 범위 좀 알려 줄 수 있을까? 노트도 빌려 주면 떡볶이랑 튀김 사 줄게."
"……응?"
일진들보다는 덜 무섭지만, 그래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종혁이 이름을 부르자 겁을 먹었던 박수호는 눈을 껌뻑였다.
그건 지켜보던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시험 범위?’
‘쟤가 공부를?’
‘아까 쉬는 시간에도 공부하긴 했는데…….’
예수님이 불경을 읊는 것만큼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박수호는 군침을 삼켰다.
돌아서면 배고플 나이. 잠깐 가르쳐 주고 떡볶이와 튀김을 얻는다면 엄청 남는 장사였다.
거기다 종혁은 삥을 뜯기는 아이들을 위해서 나섰다가 다쳤기에 그렇게 무섭지도 않았다.
솔직히 친해지고 싶었다.
"알겠……."
"나!"
아이들의 시선이 김소영에게로 향했다.
"내가 알려 줄게!"
왜인지 그녀의 눈빛이 초롱초롱했다.
종혁은 미심쩍은 눈으로 소영을 보았다.
단순히 떡볶이와 튀김 때문이 아닌 느낌. 형사의 촉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네가? 몇 등인데?"
"나 20등!"
종혁은 다시 박수호를 보았다.
"떡볶이, 튀김 말고 순대랑 김밥도……."
"전교에서 20등이거든! 반에선 2등!"
"……맞아?"
"으응. 소영이 쟤가 우리 반 2등이야. 난 반에서 25등이고."
그건 몰랐다.
쉬는 시간 무리를 이룬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오직 혼자만 있던 박수호.
아이들이 배척한다는 건 일진에게 찍혔다는 것.
43명이 있는 이 반에 그런 학생이 박수호 말고도 2명 더 있었다.
종혁이 벌일 일에 필요한 아이들.
그래서 접근했는데, 상황이 재밌게 돌아가고 있었다.
‘여자라…….’
동성으로서 혹은 누나나 엄마 포지션으로 여성과 왕따 학생들의 입을 열게 만드는 존재가 여경이다.
종혁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너무 똑똑하면 좀 부담스러운데……."
소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떡볶이랑 튀김 2인분씩만 사 주면 예상 문제도 알려 줄게!"
이번엔 박수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종혁과 친해질 기회가 왔는데 허망하게 날아가게 생겼다.
그는 처음으로 용기를 냈다.
"나, 난 떡볶이랑 튀김 1인분이면 돼. 다 알려 줄 수 있어!"
빠직!
"이 씨! 겨우 25등이 잘 가르쳐 줄 수 있어?!"
"이, 있어! 그리고 지금 종혁이에게 필요한 건 비슷한 눈높이에서 기초를 잘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이 아, 아닐까?"
"아오! ……좋아! 그럼 떡볶이 1인분!"
"음료수 하나!"
"야!"
"포기해! 내가 친구 될 거야!"
종혁은 주먹까지 쥔 둘의 모습에 터지려는 웃음을 겨우 참았다.
‘하이고, 귀여운 것들. 파릇파릇하구만?’
"알았어. 둘 다 원하는 만큼 사 줄 테니까 나 좀 제대로 가르쳐 줘. 수호 넌 기초를, 소영이는 예상 문제를. 오케이?"
둘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자존심을 굽히지 않기엔 떡볶이와 튀김의 위력이 너무 컸다.
"좋아, 그럼 학교 앞 분식집으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