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1화 (1/837)

<회귀 경찰의 리셋 라이프 1화>

프롤로그

부우웅.

깜깜한 새벽, 서울을 빠져나가는 차 안.

190cm의 큰 키를 가진 48세의 깡마른 중년인 최종혁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안 돼, 이렇게 가면 안 돼."

손으로 닦아 내지만 눈물은 하염없이 흘렀다.

지이잉!

최종혁은 더듬더듬 귀에 손을 가져갔다.

-어디신데요! 지금 다 바쁜데!

2000억대 무기명 채권 위조 사기.

현재 지능범죄수사대 전부가 매달리는 사건이다.

청와대에서도 모니터링을 하는 사건이었는데, 얼마 전 일당을 일망타진하며 사건이 종결될 예정이었다.

……갑자기 새로운 존재가 튀어나오지만 않았다면.

단순 연락책인 줄 알았던 놈이 총책임자였다.

게다가 모두를 속인 그놈 뒤에는 어떤 세력이 있었다.

어떤 이들을 만났다는 증언들. 범행 수법과 연락 체계가 치밀했다.

거기다 윗선에서 압력이 들어왔다.

경찰청장마저 움직이게 만드는 세력.

-곧 감찰에서 등에 칼을 꽂을 텐데 팀장이란 사람이!

그럴 것이다.

하지만 지금 종혁에겐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크흡! 현석아."

-왜요!

"엄마가 죽었단다."

-……내 말 단디 들으소! 지금 갈 테니까 이상한 생각 말고!

20살 꽃다운 나이에 아버지와 결혼해 힘들게 살아오신 어머니.

"자식이라고 하나 있는데! 해 드린 것도 없는데! 죽었다고!"

십대에는 운동.

이십대부턴 경찰 일 때문에 뵙지 못한 어머니.

48년 동안 생일 한 번 챙겨 드리지 못한 어머니.

손발 부르터 가며 자식새끼를 뒷바라지한 그런 어머니를 종혁은 버렸다.

성공하고 싶어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어서.

그동안 외면했다.

그럼에도 아들이 먼저라며 다독이던 어머니가 죽었다.

‘바쁘니까 전화하지 마요!’

‘운동 중이에요!’

이럴 줄 알았다면 따뜻하게 말할걸.

한 번씩 찾아뵙고 맛있는 것도 사 드릴걸.

종혁은 이제야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흐아아아악!"

-정신 차리라고, 좀! 사고 나니까 갓길에 차 세우고! 야, 최종혁! 이 씨발놈아!

끼기긱!

그는 갓길에 차를 세웠다.

"끄으윽! 흐어억!"

-운전대에서 손 떼고 지금 위치 문자로 보내소! 안 보내면 형님은 나한테 죽어!

전화가 끊겼지만 종혁은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울었을까.

종혁은 고개를 뒤로 젖혔다.

"흐우, 후우."

그는 더듬거리며 박스에서 담배를 꺼냈다.

26년 전, 22살 순경 생활 때 위의 3분의 2를 도려내며 몸이 이렇게 쪼그라든 이후 잘 피지 못한 담배.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겨우 한 대씩 무는 담배.

부르릉!

앞에 덤프트럭이 서 비상등을 켰지만, 종혁은 무시하며 담배를 물었다.

치익!

"쿨럭! 쿨럭!"

쿵쿵쿵!

"이봐요! 괜찮아요? 도와 드려요?"

종혁은 신경질적으로 손을 저었다.

"정말 괜찮아요?"

빠아앙!

종혁은 클랙슨을 눌렀다.

"에이, 걱정돼서…… 어? 어? 어?"

‘왜?’ 고개를 뒤로 돌린 종혁의 눈이 커졌다.

이쪽을 향해 달려드는 커다란 그림자.

부아아아앙!

꽈아앙!

‘컥!’

그렇게 정신을 잃었다.

*  *  *

"……뻔했잖아! 신호 기다리라니까!"

‘무슨…… 소리지?’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에 종혁은 겨우 눈을 떴다.

마약을 한 것처럼 몽롱해진 정신을 붙잡고 주변을 둘러봤다.

몸과 부서진 차가 붙어 있다.

아니, 차가 몸을 먹었다.

‘천벌인가…….’

천륜을 외면한 불효자에게 하늘이 내린 벌.

그렇게 자책하던 그때, 목소리가 이어서 들려왔다.

"살았나? 아, 곧 죽겠네."

간신히 보이는 틈 사이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누군가.

"그러게 덮으랄 때 덮었어야지. 그러면 제 어미도 죽지 않았을 텐데."

‘뭣?’ 이어진 말에 희미해지던 정신이 순간적으로 또렷해졌다.

어머니의 죽음.

그것이 자신과 연관이, 자신이 쫓던 놈들과 연관이 있다는 말인가?

눈을 부릅뜬 종혁은 그를 보려고 했다.

하지만 고개가 돌아가지 않았다.

‘안 돼. 이 새끼 봐야 하는데!’

파사삭!

팔뚝이 들어와 블랙박스를 뜯어냈다.

‘손목에 문신, 나무 냄새…… 목소리는 젊지 않고…….’

"됐어, 철수해."

부르릉!

덤프트럭 두 대가 떠나는 소리가 귀에 울렸다.

곧 조용해진 고속 도로 위.

종혁의 두 눈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미안해요. 죄송합니다. 어머니…… 보고 싶습니다…….’

그의 눈이 스르륵 감겼다.

1. 회귀

빠악!

"……주, 죽은 거 아냐?"

"모, 몰라!"

주저앉은 종혁은 눈을 깜빡였다.

삐이-!

이명이 울리는 귀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고개를 든 그는 다시 눈을 깜빡였다.

2미터 높다란 담벼락이 양옆으로 세워진 좁은 골목길과 10명의 바지통 줄인 교복 입은 학생.

그리고 손에 든 각목.

"뭔가 낯설면서 낯설지 않은 상황인데."

담벼락 위에 꽂힌 깨진 유리병들이 추억을 자극한다.

움찔!

"봐! 살아 있잖아!"

"야 이 씨발, 최종혁!"

"……아."

종혁은 그제야 아주 오래전의 기억을 꺼낼 수 있었다.

무제한급 유도 유망주였던 그가 몰락했던 악몽 같은 사건.

1997년 17살 봄, 이곳에서 검지와 팔꿈치 인대가 끊기면서 유도 인생이 끝났다.

"주마등이네."

옛날과 똑같은 상황이다.

가끔씩 악을 지르며 깨는 악몽 같았던 날.

‘내가 이때 다치지만 않았다면.’

어쩌면 메달리스트가 됐을지도 모르고, 경찰이 아니라 유도 코치나 감독이 됐을지도 몰랐다.

뭐가 됐든 최소한 20살 순경이 되고 22살에 지원을 나갔다가 칼에 찔려 위의 3분의 2를 도려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사건으로 인해 강력계에 가게 됐지만, 험악한 범죄자들과 조직 생활에서 살아남기 위해 160kg에서 65kg으로 쪼그라든 몸을 움직여 온갖 격투기를 익히고 남들보다 수십 배 공부하고 노력했다.

결국 노력 끝에 지능범죄수사대의 팀장이 됐지만 그때의 한이 남았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이게 정말 주마등이라면, 이런 놈들이랑 놀아 주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이라도 더 보고 싶은 얼굴.

그 얼굴을 보러 가야만 했다.

‘엄마.’

종혁의 눈빛이 또렷해졌다.

"어이구."

땅을 짚고 일어난 종혁은 정수리에 손을 올렸다.

피가 흥건한 손바닥을 본 그는 헛웃음을 지었다.

"씨부럴. 달건이나 뽕쟁이 새끼들도 아니고 이런 고삐리 새끼들 때문에 선지를 다 뽑네."

강력반, 마약반, 광역수사대, 지능범죄수사대.

경찰 생활만 28년이고, 형사 생활만 26년이다.

아무리 주마등이라지만, 팀원 강현석 경감이 보면 최소 1년은 놀릴 터다.

"개새끼야! 네가 그렇게 잘났냐!"

"운동부면 운동부답게 모른 척하라고!"

‘맞아. 그랬지.’ 이 당시 불의를 보고 넘기지 못했던 그는 학우들의 삥 뜯는 일진들의 행태를 참지 못했다.

그러다 결국 이 사단이 났다.

종혁은 한숨을 내뱉었다.

"어이, 꼬꼬마들. 서로 피 봤으니까 이 정도에서 끝내는 게 어떠냐? 그럼 이 아저씨도 여기서 끝낼게."

그렇게 말했지만 종혁은 알고 있다.

글렀다는 걸 말이다.

이 시절의 십대들은 미래와 다르게 깡이 좋았다.

청룡 쇼바 장착한 오토바이 정돈 타고 다녀야 일진 축에 껴 주던 살벌한 90년도.

역시나였다.

"지랄! 뒈져!"

"어휴."

‘음?’ 종혁은 휘둘러지는 각목을 빤히 봤다.

‘뭐가 이렇게 느려?’

굼벵이가 기어 오는 것 같은 속도.

종혁 그 자신의 몸이 움직이는 것도 매우 느렸다. 마치 모두가 이상한 시간 속에 갇힌 듯했다.

‘내 동체 시력이 이렇게 좋았나.’

고된 경찰 생활에 일찍 노안이 왔기에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뭐든 땡큐지.’

이 당시 머리를 맞은 후 정신이 없어 이리저리 발악하다가 검지와 팔꿈치 인대가 끊겼다.

종혁은 각목을 휘두르는 놈의 팔을 휘감아 안쪽으로 파고들며 허리를 튕겼다.

부웅! 뻐억!

"컥!"

"오, 한 판."

그가 생각해도 완벽히 깔끔한 한 판이었다.

사람을 넘기는 감각조차 없는 소름 끼치는 한 판.

느려진 시간이 이걸 가능케 했다.

일어선 종혁은 게거품을 문 친구를 보고 하얗게 질리는 일진들을 보며 목을 좌우로 꺾었다.

"꼬마들아, 이게 특수 상해에 살인 미수인 건 아냐? 무기까지 들었으니 그지 같은 소년법이라고 해도 9, 10호 처분이다?"

"뭐, 뭐라는 거야!"

"뭐긴 뭐야. 다 뒤졌다는 거지."

종혁은 사납게 이를 드러내며 성큼 발을 내디뎠다.

쿵!

그러자 일진들이 한 발 물러섰다.

거대한 호랑이가 다가오는 듯한 공포가 그들의 몸을 잠식했다.

종혁은 입꼬리를 올렸다.

‘지금!’

종혁은 돌연 몸을 돌려 땅을 박찼다.

목표는 등 뒤에 있었던 집의 문 옆 담벼락.

일진들 따위에게 낭비할 시간이 없다. 얼른 어머니를 만나야 했다.

"뭣?! 자, 잡아!"

"후웁!"

타악!

점프를 한 순간, 다시 시간이 느려졌다.

담벼락을 두 번 찬 종혁은 눈을 동글게 떴다.

‘오?’

왜인지 담벼락 너머가 보이고 있다.

‘허. 이때 내 피지컬도 이렇게 좋았나?’

종혁은 담벼락 끝을 잡았다.

그의 몸이 날랜 맹수처럼 가볍게 담벼락을 넘었다.

"야, 이 개새끼야!"

"너 내일 뒤졌다, 진짜!"

종혁은 담 너머에서 들리는 소란에 씩 웃었다.

"아무리 넘으려고 해 봐라, 넘어지나."

3미터 높이는 날고 기는 빈집털이범들도 어려운 높이다.

몸을 돌리던 종혁은 흠칫 놀랐다. 마당에 긴 생머리 안경을 쓴 소녀가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고. 미안합니다, 학생. 저놈들은 신고해 버리세요. 그럼!"

종혁은 재빨리 이 집의 뒤를 향해 몸을 날렸다.

"아, 저기!"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종혁은 무시했다.

‘지금 갑니다, 어머니.’

다시 담을 넘어 도로로 나온 종혁은 지금쯤 어머니가 계실 곳을 향해 달렸다.

"저기 봐!"

"학생! 괜찮아요?"

들리는 말을 모두 무시하며 도착한 곳은 지하철역 입구였다.

20미터 가까이 천막들이 늘어서 있다.

이 시기 어머니는 이른 아침 출근하는 사람들을 위해 거리에서 어묵과 김밥을 팔고, 낮부터 저녁까진 떡볶이와 튀김을 팔았다.

그렇게 힘들게 번 돈으로 종혁을 키웠다.

두근두근.

다시 시간이 느려졌다.

느릿한 시간을 헤엄치며 한 천막 앞에 선 종혁의 눈이 떨렸다.

스무 살 어린 나이에 자식을 낳자마자 남편을 사고로 잃은 후 힘들게 살아오신 어머니.

무시하고 외면한 놈이 뭐 그리 좋다고 우리 아들, 우리 경찰 아들 하던 어머니가 살아 계셨다.

그의 눈앞에서 생생하게.

훨씬 더 젊고 예쁜 모습으로.

종혁은 이를 악물었다.

"어서 오세…… 아들?"

"어, 엄마."

떨리는 손으로 천막을 걷고 안으로 들어간 종혁은 어머니의 얼굴에 손을 가져갔다.

고작 서른일곱 살, 꽃이 만발할 나이임에도 거칠고 푸석한 얼굴이 그의 심장을 도려냈다.

털썩 종혁은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들, 갑자기…… 피, 피?!"

"끄흑!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해요."

만나면 꼭 하고 싶었던 말.

종혁은 울음을 토해 냈다.

"아들-!"

*  *  *

짜악! 짝!

"아 따가!"

"내가 차라리 때리라고 했지, 처맞으라고 했어?!"

등짝이 터졌지만, 종혁은 웃었다.

‘정말 살아 계신다.’

주마등이 아니다.

아픔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회귀.’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있을 법한 일.

그러나 믿을 수밖에 없다.

젊어진 어머니의 모습.

그리고 마찬가지로 젊어진 자신의 육체.

185cm, 140kg으로 다시는 가질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피지컬의 몸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몸이 어떻든 상관없다.

어머니와 다시 만나고, 다시 살 수 있게 되었다.

그저 하늘에 감사할 뿐이었다.

"웃어? 지금 웃음이 나와?!"

짝! 짝!

"악! 윽!"

"아주 더 맞아야 돼!"

"어머님, 그렇게 때리시면 봉합하기 힘듭니다."

의사의 말에 손을 거둔 그녀는 거구의 아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복권을 사야 하나.’

웬일로 노점상에 찾아온 것도 모자라 끌어안고 통곡을 한 아들.

얻어맞고 정신을 잃은 사이 꿈에서 엄마가 죽었더랬다.

15살 사춘기 이후 데면데면해진 아들의 귀여운 모습을 너무 오랜만에 보자 그녀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우리 아들 사춘기가 드디어 끝났나 봐, 도철 씨.’

죽은 남편이 도와준 것 같아서 그녀는 기뻤다.

하지만 아직은 긴장을 놓지 말아야 했다.

"다 됐습니다. 당분간 머리 감지 마세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병원 응급실을 나온 고정숙은 종혁을 보았다.

"먼저 들어가. 나도 곧 들어갈게."

움찔!

종혁은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같이 가요."

고정숙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정말 뭔 사고를 쳤는데? 합의금 많이 나와?"

아들이 이 정도 맞았다면, 상대는 묵사발이 났을 것이다.

"나도 이제 진짜 고등학생이에요. 왜 사고를 쳐. 일부러 맞은 거 보면 몰라?"

"맞은 게 자랑이다. 정말 왜 이러는데? 낯설어, 아들."

"효도하려고."

앞으로 계속.

다시 살게 된 삶.

어머니를 위해 살겠다고 종혁은 다짐했다.

‘그리고 그 새끼 잡아야지.’

어머니를 죽인 놈을 잡아야 했다.

아니, 죽여야 했다.

그의 두 눈에 살기가 들어차기 시작했다.

‘치밀한 새끼들.’

무기명 채권 위조 사기뿐만 아니라, 종혁 본인을 죽인 수법이 잔인하고 치밀했다.

아마 이런 범행이 한두 번은 아닐 것이다. 5년, 10년, 어쩌면 그 이전부터 이렇게 해 왔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대담하면서 세밀할 수 없었다.

이런 놈들을 잡기 위해선 높은 자리에 올라가야 했다.

지능범죄수사대 팀장 정도가 아니라 경찰청장.

아니면 서울 대검 검사.

예전처럼 순경으로 시작하는 게 아니라 무조건 경찰대나 한국대 법대를 가야 했다.

‘경찰대건 한국대 법대건 무조건 간다!’

종혁은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진짜 왜 이러지?"

"누가 우리 예쁜 여사님 낚아챌까 봐."

"얼씨구?"

그렇게 두 모자는 어느새 어두워진 밤거리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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