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3화>
493. 복수의 땅
“알파 리자드요?”
예경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게 뭐예요?”
“리자드맨이야.”
대답은 명욱이 했다.
“피부가 희고, 눈이 온통 새까만 놈.”
“강해요?”
“그렇다고 들었어.”
명욱의 시선이 탁자에 둘러앉은 대원들을 쓱 훑었다.
“누구 만나본 사람 있나?”
도현이 말없이 손을 슬쩍 들었다.
“어땠지?”
“칼이 안 들었어요.”
“그때 네가 얼마나 강했는데?”
“그때는 초강기는 못 썼지만…….”
도현은 대원들을 흘끗하고 말을 이었다.
“솔직히…… 지금도 그놈이 여기 있는 사람들보다 더 강한 것 같아요.”
“그 정도야?”
“네.”
그 말에 명욱은 생각에 잠겼고, 예경은 머리를 긁적였고, 대원들은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상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예경이 누나보다 강하다고?”
“물론 내가 예경이랑 싸워 본 건 아니지만…… 느껴지는 마나로는 그랬어.”
“그놈은 지금까지 뭐 하고 있었대? 그렇게 대단한 놈이 있었으면 이미 기지 다 뿌수고 도시까지 달려갔을 거 아냐. 왜 지금은 우리랑 안 싸우고 있는 건데?”
“몰라. 싸우다가 갑자기 돌아가더라.”
“갑자기?”
“응. 그 후로 계속 안 보였는데…….”
상호와 도현은 설명을 구하는 눈빛으로 명욱을 돌아보았다.
명욱의 손에는 종이가 한 장 들려 있었다.
“그놈이 어제 별운부대에서 발견됐다.”
탁자에 놓인 종이에 모두의 시선이 향했다.
종이에는 흐릿한 무언가를 찍은 사진이 크게 인화되어 있었다. 희끗하고, 입을 넓게 벌린, 인간을 닮았지만 인간은 아닌 무언가.
재훈이 눈썹을 까딱였다.
“싸우면 돼요?”
“아니, 일단 한 가지 설명해 둘 게 있어.”
명욱이 민정을 흘끗했다.
“민정. 리자드맨 무리의 습성이 뭐지?”
“리자드맨 무리는…… 일단 서식지는 천차만별이죠. 습지에도 있고, 사막에도 있고…… 단, 추운 지역에서는 살지 못해요. 생긴 대로 냉혈 파충류란 게 정설이에요. 해부해 본 학자들의 말로는.”
“그리고?”
“지금까지 습격해 온 리자드맨 무리, 또 저희가 채취해 갔던 리자드맨의 시료를 분석한 바로는…… 한 무리 안에, 유전적으로 유사한 아종이 늘 둘 이상 있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관측된 아종은 다른 무리에선 다시는 관측되지 않았어요. 그리고 또 아종 간의 번식이…….”
“쉽게 정리해 줘라.”
“무리 간의 합병이 적극적이고요, 그 과정에서 이탈자가 거의 없어요.”
“그래, 그게 중요한 거야.”
“……아직 가설이지만요.”
민정이 중얼거려도 명욱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직접 싸워본 녀석들은 몸으로 알고 있을 거야. 싸울 때 보면 생김새가 딱딱 나눠져 있잖아. 어떤 놈들은 볏이 있고, 어떤 놈들은 이빨이 밖으로 튀어나와 있고. 피부도 다른데 그 모습이 정해져 있지. 인종처럼.”
“그랬죠.”
“민정이 말대로 놈들은 적극적으로 무리를 합친다. 그런데 봐봐. 여기까지 들었으면 뭔가 이상한 게 있지 않아?”
“으음…….”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는 성철 대신 진구가 대답했다.
“그 말대로면 진작에 한 곳에 다 뭉쳐서 엄청 큰 무리가 되었어야겠죠.”
“그렇지. 근데 아니지.”
명욱이 지도를 꺼내 탁자에 펼쳤다.
“생각할 수 있는 건 두 가지야. 우리가 조사하지 않은 지역에 엄청나게 거대한 리자드맨 군락이 있다. 혹은, 리자드맨들이 모종의 방식으로 무리의 개체수를 조절 중이다.”
“모종의 방식이라면…….”
“죽인다는 거지.”
대원들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왜 죽여요?”
“그거랑 알파 리자드랑 뭔 상관이에요?”
“무리가 나눠지지 않고 합쳐지기만 하는데 거대 군집이 없으려면 자기들이 죽인다는 거 아니겠냐. 그리고 리자드맨이 심법을 아는 것도 아닌데, 알파 리자드만한 마나가 모이려면 어떻게 해야겠냐?”
“……죽여서 모았다, 이겁니까?”
“다른 가설 있어?”
“…….”
없었다.
받아들이는 데에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다들 나름대로 이해를 마쳤다. 하지만 아직 의문이 남아 있었다.
효은이 손을 슬쩍 들었다가 탁자에 놓았다.
“그래서 임무가 뭔데요?”
“도현이가 봤었을 때 알파 리자드가 갑자기 돌아갔다고 했지?”
“네.”
“그게 동족을 죽여서 마나를 회복하기 위해서라고 가정하자.”
명욱이 지도를 가리켰다.
“우선은 지금 별운부대 쪽에 와 있는 알파 리자드를 방어조가 쫓아낸다. 가설이 맞다면 우리가 이기지 못하더라도 마나만 다 소모시키면 돼. 그럼 이놈이 자기 부락으로 돌아가겠지?”
“……아마도요.”
“그때 미행조가 미행한다.”
손가락이 지도를 죽 훑었다.
“어딘가에 알파 리자드의 부락이 있겠지. 거기를 타격해서 알파 리자드가 마나를 회복하는 것을 막는다.”
명욱은 눈을 들어 대원들을 바라보았다.
“작전이 어떻게 바뀔진 모르겠지만…… 일단 그놈이 공격해 오는 걸 막는 게 최우선이야. 예경.”
“네.”
“너는 방어조다.”
예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리고 영주. 넌 미행조에 들어갈 수 없으니 당연히 방어조. 효은이도 마찬가지고. 민정이도 기척을 숨기는 건 서투르니까 방어조.”
“네.”
“그럼 여덟 명이 남는군.”
명욱은 잠시 턱을 괴고 고민하다가, 상호와 성철을 가리켰다.
“상호. 성철. 너희는 미행조로 정해 놓을 거다.”
“네.”
“네.”
“나머지 일곱하고 나는 내일 싸워보고 상태가 좋은 사람만 미행조에 합류한다. 미행조 두 사람은 전투에 끼지 말고, 언제든지 쫓아갈 수 있게 대기만 하고 있어.”
“네.”
“그럭저럭 된 것 같군. 혹시 좋은 생각 있나?”
“없습니다.”
이구동성으로 대답하는 대원들 사이로 손이 하나 올라왔다. 다른 대원들보다 조금 작지만 비슷하게 거칠거칠한 손.
명욱과 대원들의 시선이 상호에게 몰려들었다.
“그래, 상호. 말해 봐.”
“저,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응?”
“그 알파 리자드라는 놈. 대장님 이론대로라면…… 무리마다 하나씩 있을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
대원들이 긴장한 눈빛으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상호의 말을 듣고 무언가를 깨달은 듯.
이윽고 명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야.”
“부락 하나 없앤다고 해결될 것 같진 않네요.”
“알파 리자드의 무리를 없애도, 또 다른 무리에 합류해서 회복할 수도 있고…….”
“끄응…….”
침음하는 성철의 옆에서 민정이 머뭇머뭇 입을 열었다.
“저어…….”
“응?”
“파충류한테만 듣는 독이 있거든요.”
그 말에 명욱이 눈을 빛냈다.
“독을 풀자?”
“네. 수원지만 잘 고르면 꽤 효과적으로 수를 줄일 수 있을 것 같은데…….”
“가능한가? 그만큼의 독을 풀 수 있어?”
“음…….”
민정이 상호를 돌아보았다.
“상호 몇 킬로까지 들 수 있어? 전투에 지장이 없는 한에서.”
“20킬로까진 멜 수 있을 것 같네.”
상호는 혀를 쯧 찼다.
“근데 전투하다 터질 수도 있어.”
“둘이서 40킬로네. 그럼 가능해요. 1킬로그램씩 나눠서 수원지 40곳……, 큰 강은 두 개 놓는다 치고. 그러면 그 지역에 있는 리자드맨은 전부 죽일 수 있어요.”
“강이 엄청 커도?”
“500그램만으로 100억 명을 죽이는 독도 있어요. 파충류는 더 민감하고. 정확한 위치에 정확한 양을 놓는다면 충분히 가능해요.”
“그런가…….”
고민하던 명욱은 문득 생각이 났는지 영주를 돌아보았다.
“영주. 오늘 왜 이렇게 말이 없냐?”
“…….”
그때까지 침묵을 지키던 영주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땅에 독을 푸는 건…… 그다지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습니다.”
“효과가 없을 것 같아?”
“아니요, 효과는 있을 겁니다.”
“……그러면?”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생길지도.”
잠자코 듣던 상호의 눈살이 팍 찌푸려졌다.
“또 그냥 느낌이야? 그게 뭔지는 모르면서?”
“땅도 화낼 줄 안다, 상호야. 폭력을 당하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아.”
“한 번쯤은 재수 있는 말 좀 하면 안 돼? 형은 맨날 기운 빠지는 소리만 하더라.”
“자, 자.”
명욱이 박수를 짝 쳐서 주의를 끌었다.
“영주. 그럼 알파 리자드를 막을 다른 방법이 있나?”
“그건 아닙니다.”
“그렇다면 작전대로 하자.”
영주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확인한 명욱은 탁자에 펼친 지도를 접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의는 여기까지. 다들 임무 잊지 마라.”
“네.”
“가서 쉬어. 언제든 출동할 수 있게 준비해두고.”
“넵.”
상호는 대원들과 함께 문가로 우르르 몰려갔다.
방을 나서니 문 옆에서 예경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예경의 곁에 꼭 붙어 서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믿겨져요?”
“응?”
“누나보다 강하다는 게.”
“글쎄…….”
예경은 고개를 기웃거리다가 빙긋 웃었다.
“그럴 수도 있지.”
“전 못 믿겠어요.”
“나보다 강할 수도 있지 뭐. 그래도 그러면 같이 싸우면 되잖아?”
예경이 그를 뒤에서 끌어안고 뱅글뱅글 돌았다.
“우리 둘보다 강할 리는 없으니까~.”
“이번 작전은 따로잖아요.”
“……어라?”
“누나는 가끔 너무 맹해요…….”
상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런 바보 같은 점이 좋다는 낯간지러운 속마음 대신.
둘은 나란히 걸어 둘만의 생활관으로 향했다.
* * *
“……형.”
상호는 멍하니 성철을 바라보았다.
사람이 돌이 됐는데 어떻게 웃을 수 있으랴. 아무리 성철을 만난 게 반가워도 도저히 웃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성철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겉은 달라졌지만, 속은 그가 아는 성철 그대로였다.
“이게…… 어떻게…….”
“석화독이야.”
성철이 무언가를 들어 보였다.
부러진 창의 끝. 물방울 모양의 창날.
“나도 몇 번 써 보니까 알겠더라고. 창에 독이 발라져 있었어.”
“…….”
“독을 풀었다가 독에 당한 거지. 영주 말이 다 맞았던 거야. 푸헐헐…….”
성철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돌멩이가 다닥다닥 붙은 얼굴에서 돌가루가 풀풀 흩날렸다. 상호는 얼이 빠져 있다가 정신을 차렸다.
속에서 갑자기 무언가가 확 받쳐 올라왔다.
“아니 X발, 형! 뭘 웃고 자빠졌어? 미쳤어?”
“아이고, 또 시작이냐. 예경이가 결국엔 못 고쳤구나…….”
“웃음이 나와? 농담이나 할 때야? 대체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왜 안 돌아온 거야?! 형 가족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아?”
그 말에 성철이 눈을 크게 뜨고 몸을 움찔했다.
돌로 이뤄진 눈꺼풀 사이에서 탁한 눈동자가 흔들렸다.
“우리 가족…… 무슨 일 있어?”
“……잘 지내! 잘 지내지만!”
몸은 잘 지냈어도 마음은 잘 지냈을 리가 없다. 상호는 이를 갈며 성철의 양 어깨를 잡았다.
“다들 형이 죽은 줄 안다고! 형 없이 형수님이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지훈이랑 지예는 아빠가 뭐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고! 지성이랑 지영이는 찾아갈 때마다 내가 아빠인 줄 알아! 아니, 애들 이름은 알고 있는 거야?!”
“알지. 이름은 짓고 왔지…….”
성철이 그의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지윤이는?”
“지윤이는…….”
숨이 턱 막혔다.
상호는 화를 쏟아내다가 머리가 어지러워서 비틀거렸다. 성철이 이곳에 살아 있다는 것이, 그것도 웬 돌덩이 인간이 되어 있다는 것이 도통 머릿속에 받아들여지질 않았다.
그러나,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형.”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주먹으로 성철의 가슴팍을 퍽 쳤다.
“왜 안 돌아온 거야, 대체…….”
“미안하다.”
성철이 눈을 감았다.
“그렇지만…… 이 모습으로 돌아가서 뭐하냐. 헌터들한테 칼이나 안 맞으면 다행이지. 가족들하고도…… 이런 모습으론 외식도 뭣도 못 할 테고.”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이 멍청한 양반아!”
“짜식, 바로바로 화내는 건 여전하구만.”
고개를 돌리던 성철의 시야에 눈을 끔뻑거리는 소녀가 들어왔다.
빨간 뿔과 검은 꼬리가 달렸고, 한쪽 눈이 빨간 소녀. 성철은 태화와 눈을 마주치고 똑같이 눈을 끔뻑이다가 상호를 돌아보았다.
“예경이는 어쨌냐?”
“…….”
상호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죽었어.”
“……응?”
어리둥절한 얼굴. 아예 말을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뭐라고?”
“죽었어. 누나.”
“……뭐?”
이젠 이해했는데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싶었다.
성철은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상호를 바라보다가, 이내 단단한 바위 손을 들어 상호의 팔을 잡았다.
“너…….”
“괜찮아.”
상호는 먼 산을 보았다.
“살아있는 사람을 말해주는 게 빠르겠네. 나랑 효은이, 민정이 누나, 도현이 형. 이렇게 넷 남았어. 형 있으니까 이제 다섯이네.”
“다섯…….”
성철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대장님도?”
“응.”
“재훈이도…….”
“다.”
상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성철이 고개를 푹 떨궜다.
다 살아있을 거라고 믿었던 모양이다. 하긴 제일 죽을 뻔했던 자신이 버젓하게 살아있으니, 다른 사람들이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기가 어려울 법도 했다.
그는 성철이 현실을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렸다.
곧 성철이 한숨을 푹 쉬고 고개를 들었다.
“……그렇구나. 그래도 너희라도 살아서…… 다행이지.”
“얼마 전까진 영주 형도 살아있었어.”
“뭐? 그럼 왜……?”
“설명하자면 긴데…….”
안 할 수는 없으니.
“설명해 줄게.”
상호는 입맛을 다시고 입을 열었다.
* * *
“……그래서 그놈 죽이러 아르게스로 들어온 거야.”
“으음…….”
흙바닥에 앉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긴 이야기.
상호의 말이 끝나자 마주 앉은 성철이 침음했다.
“많은…… 일이 있었구나.”
“당연히 많아야지. 몇 년이 지났는데…….”
상호는 혀를 차고 성철의 손을 가리켰다. 정확히는 성철의 손에 들려 있는 물방울 모양의 창날을.
“이제 내가 물을 차례야. 여기서 뭘 하고 있었던 거야? 단순히 몸 때문에 못 돌아왔다기에는…… 여기에 붙박여 있을 이유가 없잖아. 혹시 그거 때문이야?”
“눈치가 빨라졌네.”
성철이 피식 웃으며 손가락 사이에서 창날을 굴렸다.
“그래. 이거 주인 때문이지.”
“…….”
상호는 그 창날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오래전 성철의 호신강기를 뚫고 등에 박혔던 창. 그때의 성철은 분명 초강기를 쓸 수 있는 경지였었다.
그 초강기를 뚫은 창의 주인은.
“알파 리자드가 아직도 있어?”
“응.”
성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오더라. 이 창날을 빼앗으려고……. 그놈한텐 중요한 물건인가 봐.”
그때 옆에서 태화가 웅얼거렸다.
“쌤. 저거 눈이 아파…….”
“눈?”
“응. 막 시려…….”
상호는 태화의 등을 토닥이며 고개를 돌리게 했다.
“저주 때문인가 보다. 눈 감고 있어.”
“응.”
태화가 그의 팔에 얼굴을 묻었다.
그 모습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성철은 둘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상호를 불렀다.
“상호야.”
“응.”
“지윤이는…… 만났냐?”
만나기뿐이랴. 데려오기까지 했다.
하지만 상호는 아직 성철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이 사실을 지윤에게 어떻게 알려야 할지 아직도 고민 중이라서.
“만났지.”
“잘…… 지내드나?”
“잘 지내고 자시고가 아니라……. 끄응.”
그는 한숨을 푹 쉬었다.
“큰딸이 그렇게 궁금하면 돌아오지 그랬어. 도마뱀 놈이랑 놀지 말고.”
“누군가는 잡아둬야 했어.”
성철의 목소리는 확고했다.
“작전에 제일 큰 방해가 될 놈이고…… 한반도에도 제일 큰 위협이 될 놈이었어. 시간이 더 지나도 후회하진 않을 거야.”
“시간을 버린 거지…….”
상호는 툴툴거리다가 눈을 빛냈다.
“형이 보기엔 어때, 그놈. 강해?”
“그러고 보니 넌 그놈 마주친 적이 없구나.”
놈이 저승부대와 싸울 때는 물러나 있었고, 놈이 던진 창에 성철이 맞았을 때는 싸울 생각도 못 하고 도망쳤다. 그래서 상호는 놈을 정면에서 마주쳐본 적도, 겨뤄본 적도 없었다.
“강하지.”
“나보다?”
“그때의 너보단 확실히 강해. 나보다 강한 것도 당연하고. 내가 그놈을 잡아둘 수 있었던 것도 다 이 창하고 재생능력 덕분이야.”
“재생?”
“돌만 먹어도 상처가 나아.”
“……그거 참 다행이네.”
상호의 검지에 강기가 길게 솟았다.
“형, 강기 세워 봐.”
성철도 검지를 들어 강기를 뽑았다.
다음 순간, 상호의 초혼강기가 성철의 강기를 끊어냈다.
“이런 느낌이야?”
“……너도 강해졌구나.”
성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이렇게 그냥 잘려 버리더라. 마나끼리 반발하지도 않고……. 단순한 마나를 넘어선…… 그런 느낌이었어.”
“혹시 형도 그 창을 쓰면 그놈이랑 맞댈 수 있어? 강기를?”
“응.”
“창이 특별한 건가.”
상호는 태화를 흘끗했다.
“주술적인 뭔가가 있나 보네.”
“상호 너도 이제 그런 거 믿냐? 맨날 영주한테 사이비라고 뭐라 하더니…….”
“……나도 옛날하고는 다르다고. 형만 그 시절에 살고 있는 거야.”
“저기…….”
갑자기 태화가 둘의 대화를 끊었다. 상호는 눈을 끔뻑이며 태화를 돌아보았다.
“왜?”
“저쪽에서도…… 똑같은 느낌 나는데.”
태화가 평야 끄트머리를 가리켰다.
무언가가 있었다. 허리까지 오는 수풀 위로 무언가가 우뚝 서 있었다. 허여멀건하고, 등이 굽은, 인간을 닮았지만 인간은 아닌 무언가.
그 무언가가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
상호는 일어나 검을 뽑았다.
“물러나 있어.”
“저놈 강하다, 상호야. 같이 싸워야…….”
“형은 태화 지키고 있어.”
상호의 발이 땅을 박찼다.
놈도 그를 향해 서서히 달리기 시작했다. 뛰는 모양을 보니 도마뱀처럼 역관절을 가진 듯싶었다. 다만 그런 인간과 다른 신체구조 외에도, 이질감을 들게 하는 무언가가 더 있었다.
대리석처럼 창백한 피부 때문도.
동공과 자위를 구별할 수 없는 온통 검은 눈 때문도 아니었다.
‘이놈…….’
상호는 검을 휘두르기 직전에 생각했다.
‘살아있는 거 맞나?’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태화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벌판에 뭐가 서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꼭 시체처럼 생명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기에.
그러나 지금은 전투에 집중해야 했다.
휘두른 칼날에 창끝이 닿았다.
‘……!’
상호의 눈썹이 꿈틀했다.
다시 검을 휘둘러도, 창끝은 늘 칼날을 막고 있었다.
‘이놈…….’
검을 아무리 기상천외한 방향으로 내질러도, 놈은 언제나 그의 검로를 읽고 가장 중요한 순간에 창을 붙여 가로막았다.
첨예한 칼날에 첨예한 창끝을 붙이는 것도 놀랍고, 악마도 아닌 한낱 리자드맨이 초혼강기를 막아내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 무엇보다도 상호를 놀라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그는 리자드맨의 비어있는 왼손을 흘끗했다.
‘창이 두 개였다면…….’
지금 그가 공격하는 만큼의 반격이 리자드맨에게서 날아왔을 것이다.
비전투인원 세 명을 제하더라도 저승부대원 일곱 명을 동시에 상대한 몬스터.
창이 하나더라도, 방심하면 죽는다.
‘하지만.’
상호의 다른 손에서 장력이 뿜어졌다.
아무리 날고 기어도 바늘로 바람을 막을 수는 없는 법. 알파 리자드는 장력이 몸에 닿은 것을 감지하자마자 그 힘을 이용해 뒤로 훌쩍 뛰어 거리를 벌렸다.
그 순간 알파 리자드의 주변에 검푸른 검들이 나타났다.
‘이건 몰랐을걸.’
한 명이 이렇게 많은 검을 다루는 건 본 적 없을 것이다. 상호가 손을 휘두르자 강검들이 폭풍처럼 휘몰아쳐 알파 리자드를 공격했다.
모든 방위에서 덮쳐 들어오는, 피할 수 없는 공격.
전장에서 확신은 금물이나.
‘들어갔다.’
상호는 그렇게 확신했다.
검푸른 칼끝이 하얀 리자드맨을 찔렀다.
슈욱……
그러나 다음 순간, 알파 리자드의 몸이 흐릿해지더니.
콰직
강검들의 움직임이 순간 멈췄다.
평범한 사람들의 눈에는 강검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강검을 조종하고 있는 상호는 그 이상을 느끼고 있었다.
강기의 맥이 전부 끊겼다.
하나도 남김없이.
콰장창……
강검들이 허공에서 박살이 났다.
유리처럼 산산이 부서진 푸른 불꽃. 상호는 그 사이로 날아드는 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창이 닿기 직전 찰나의 순간 정신을 차리고 급하게 검을 들었다.
콰직
검이 부러졌다.
‘……!’
최강의 강기가 뚫렸다.
가로막는 모든 것을 부수고 전진하던 강기가 입장을 역전당했다. 상호는 그동안 자신에게 당했던 이들의 기분을 절절히 체감하며 몸을 뒤로 꺾었다.
창끝이 안대를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윽.’
너무 빠르다.
제비를 도는 와중에도, 이놈이 이미 달려들고 있을 거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상호는 검을 허공에 놓아버리고 양손에서 장력을 발산해 그를 중심으로 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앙……
폭발에서 두 인영이 튀어나왔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상호는 간신히 중심을 잡고 착지해 태화와 성철을 돌아보았다.
“좀…… 많이 쎈데.”
“강하다니까…….”
성철이 부러진 창을 잡고 전투 자세를 잡았다.
“그러게 같이 싸우자고.”
“그 창을 나한테 주는 게 낫겠는데…….”
그때 등 뒤가 소란스러워졌다.
“뭐야, 방금?”
“선생님!”
“강 선생?”
도현과 해련과 아이들, 수호부대원이 뛰어오고 있었다.
상호는 그들을 잠깐 돌아보고 곧바로 알파 리자드를 노려보았다. 빈틈을 너무 크게 놔두면 안 되었기에.
알파 리저드는 새까만 눈으로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이만큼 큰 수적 열세는 무리라고 판단했는지 돌아서서 도망쳤다.
‘……후우.’
상호는 안도와 걱정이 반반 섞인 한숨을 쉬고 돌아섰다.
제일 앞서 달려오던 도현의 발이 제일 먼저 멈췄다.
“뭐야.”
도현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바위 인간이 된 성철을. 상호의 부러진 검을. 그 너머에서 도망치고 있는 알파 리자드를.
“아니…….”
입에서 얼빠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또 한 명, 도현과 정확히 같은 것을 알아차리고 자리에 멈춰선 이가 있었다.
“……어머.”
해련이 입을 가렸다.
어른들의 당황에 아이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해련과 도현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세희도, 나빛도, 은율과 다혜도.
그리고 지윤도.
“쌤예, 그기 누굽니꺼?”
“…….”
“골렘이라예?”
알아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알아봤으리라. 상호는 성철을 돌아보며 잘 떨어지지 않는 입을 떼었다.
“지윤아, 그게…….”
그때 성철의 고개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이게 지금 무슨 뜻인가. 상호는 눈을 부라리고 성철을 노려보았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딸이 눈앞에 있는데 왜 말을 하지 못하게 하는가.
그러나 결국은 말해주지 못했다.
성철의 눈에 고인 눈물을 보아 버려서.
“아……아는 골렘이야.”
“그래예?”
지윤이 머리를 긁적였다.
눈살을 찌푸린 걸 보니 이상한 낌새를 느낀 것 같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돌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쌤은 참 발도 넓습니더. 오크도 알고 골렘도 알고…….”
“뭐 그렇지…….”
상호는 한 발짝 물러나 있는 도현과 해련을 흘끗했다.
둘에게, 또 성철에게 전해 줄 말이 아직 너무 많지만, 지금은 때도 장소도 그리 좋지가 않았다.
“일단…… 다 같이 쉴 곳을 좀 찾죠.”
그는 그렇게 말하며 부러진 검을 주우러 걸어갔다.
* * *
“선생님.”
“응?”
세희가 그의 검을 흘끗했다.
“어쩌다 부러지신 거예요?”
“좀 강한 놈이 있었어.”
상호는 세희의 머리를 슬슬 쓰다듬었다.
그들은 입구는 좁고 안은 넓은 동굴에 들어와 있었다. 오늘은 일정이 그리 고되지 않은 편이었지만, 여로의 피로를 풀 기회가 없었던 일행들은 다들 푹 퍼져서 자거나 서로에게 기대어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상호는 자꾸만 지윤을 훔쳐보는 성철을 흘겨보며 말을 이었다.
“누나도 곤란해했던 놈이야.”
“그놈이 천색창염강기를…… 이겼다구요?”
목소리가 흔들렸다. 그의 말을 믿기 싫은 듯했다.
“최강이랬잖아요…….”
“……그치.”
상호는 턱을 괴고 고민했다.
“최강일 텐데…….”
놈은 어떻게 그의 초혼강기를 뚫었는지.
창에 무언가 특별한 게 있는 건 확실한데. 고민하던 상호의 뇌리에 오래전 명욱이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리자드맨이 심법을 아는 것도 아닌데 마나를 모으려면 어떻게 해야겠냐?’
바로 그거다.
그리고 태화가 알파 리자드의 창을 보고 눈이 시리다고 했던 것도. 단서를 조합한 상호는 어렵지 않게 답을 알아낼 수 있었다.
‘원혼……인가.’
창에 영혼이 깃든 것이다.
초혼강기는 내공에 영혼이 깃든 것. 놈은 영혼이 깃든 창에 마나를 불어넣어 초혼강기를 흉내 내는 것. 하지만 그 원한이 너무도 깊고 수많은 탓에 천색창염강기마저 뚫어버린 것이었다.
‘두 명으로는 부족한가…….’
대악마에게도 통하는 초혼강기가 귀신 들린 창에는 뚫린다니.
검을 만지작거리는 상호의 곁에서 세희가 엷게 한숨지었다.
“그래도 부러진 게 큰사부님 검이 아니어서 다행이네요.”
“그치…….”
상호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무언가를 깨달았다.
“세희야.”
“네?”
“칼 좀 빌려줘.”
세희는 눈을 끔뻑이다가 허리춤에서 검을 풀었다.
“……하긴 이걸 부러뜨리시진 않겠죠.”
예경의 검이 상호의 손에 쥐여졌다.
오랜만에 느끼는 익숙한 촉감. 상호는 검의 손잡이를 두어 번 주물럭거리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
그렇게 부르자 도현과 성철이 동시에 일어났다.
“잠깐 나와 봐.”
상호는 둘을 데리고 동굴 밖으로 나왔다.
바깥은 슬슬 해가 지고 있었다. 동굴 앞을 가리는 나무들 사이로 주홍색 햇살이 비스듬히 내려왔다.
“형.”
셋만 있을 수 있게 되자마자 도현이 성철의 팔을 잡았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이게 어떻게 된 거냐고. 형이 왜…….”
“알파 리자드한테 당했어.”
성철이 부러진 창을 빙글빙글 돌렸다.
“석화독이 몸에 퍼져서…… 이렇게 됐지.”
“석화독? 그런데 어떻게 살아있는 거야?”
“그거야 나도 모르지. 너도 알잖냐. 이 땅 되게 이상한 거……. 마법이거나, 저주거나. 둘 중 하나겠지.”
“그래도…… 사람이 어떻게 돌이 돼? 야, 상호야. 이게 말이 되는 일이냐?”
“…….”
상호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먼 산을 보았다.
사람이 악마와 합쳐지기도 하고. 몸의 색소가 없어지기도 하고. 나이가 멋대로 어려지기도 하고. 용을 먹었더니 용을 닮게 되기도 하고. 죽은 자가 살아 움직이기도 하고.
그 모든 일을 눈앞에서, 혹은 직접 겪어 왔던 그로서는 그나마 받아들이기가 쉬웠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냐.”
상호는 손을 내젓고 둘을 바라보았다.
“그놈을 어떻게 할지 정하고 작전을 조정해야 해. 형이 돌이 됐건, 딸한테 아빠라고 말도 못 하는 머저리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라고.”
“얌마…….”
“놈이 찾아오는 게 일주일에 한 번이라고 했지?”
“보통은 그런데……. 놈도 나도 지칠 때까지 싸웠을 때 기준이라, 오늘처럼 잠깐 싸우고 도망쳤다면…… 당장 오늘 밤 또 올지도 모르지.”
“……그런가.”
그는 검지로 검의 손잡이를 톡톡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원래 계획은 성철의 시신, 혹은 흔적을 하루 동안 수색하고 상호 일행은 마신을 죽이러, 도현 일행은 기지로 복귀하는 것이었는데, 알파 리자드라는 변수가 생겨 버렸다.
놈을 처리해야 할지, 무시하고 마신을 죽이러 가야 할지.
‘일단은…….’
그는 성철을 돌아보았다.
“놈이 노리는 건 그 창을 회수하는 거지?”
“그렇겠지.”
“그렇지만 그냥 줄 순 없고.”
“그치.”
“그럼 오늘 밤 한번 기다려 보자.”
놈의 목적이 창뿐이라면 상호의 작전을 방해하지는 않겠지만, 성철을 한반도로 데려가는 길이 위험해지는데다가 놈이 작전을 방해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었다.
힘을 합칠 수 있을 때 죽여놓는 것이 좋았다.
“불침번은 나랑 성철이 형이 나눠서 서고. 만약 놈이 오면 다 같이 나와서 공격하는 걸로 하자고.”
“놈이 오늘 밤에 안 오면?”
“그때는 난 마신 죽이러 출발할 거야. 더 시간을 끌릴 순 없어. 형들이 알아서 그놈하고 싸워야 해.”
상호는 단호하게 대답하고 엄지로 동굴을 가리켰다.
“형은 딸한테 어떻게 빌지나 생각해 놓으라고.”
“……얌마.”
“아 시끄러. 딸한텐 뭐라 하지도 못하면서 만만한 동생한테나 쫑알대고 있네. 부끄러운 줄도 모르지?”
“이눔의 짜식이…….”
“자식은 지윤이가 형 자식이고. 형이 뭘 잘했다고 누구한테 할 말이 그렇게 많아? 빨랑 들어가기나 해.”
“……끄응.”
성철은 고개를 푹 숙이고 동굴로 터덜터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