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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여고의 남선생-472화 (472/501)

<472화>

472. 뜨거운 제자

“……그러니까.”

상호는 탁자 맞은편에 앉은 두 제자를 바라보았다.

“부모님은 허락을 안 했는데…… 그냥 무시하고 왔다고?”

“네.”

은율이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셋이 있는 곳은 기지 1층의 조그만 방. 상황실 요원들을 제외한 모두가 잠에 든 시간이라 바깥이 고요했다.

그는 눈을 질끈 감고 침음했다.

“그럼…… 네가 여기 왔다는 건 알고 계셔?”

“모르세요.”

“사카시타는?”

“저는 딱히 말 안 했습니다.”

이츠키가 어깨를 들썩였다.

“굳이 말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

“……으음.”

요 뜨거운 효녀들 같으니.

그나저나 은율은 몰라도 이츠키는 이곳에 있으면 안 되는데. 그는 곤란함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이츠키를 바라보았다.

“사카시타.”

“네.”

“네 한쪽 눈에 세상의 반이 달려 있어.”

두 개의 악마의 눈에 세상이 반씩 걸려 있다. 그걸 이츠키는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근데 넌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곳으로 찾아온 거야. 네가 직접 걸어서.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 있어?”

“그렇습니다.”

이츠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싸우러 온 겁니다.”

“왜?”

“지켜야 하는 게 있으니까.”

이츠키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모두 지키거나. 모두 잃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선생님이라면 잃는 것이 두렵다고 안 싸우시겠습니까?”

“…….”

상호는 입을 다물었다.

하고픈 말은 많았다. 헌터는 싸우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고. 더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방법을 찾아 나가는 것이 헌터라고. 도망치는 것도 때로는 헌터의 방식이 될 수 있다고.

그러나 차마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

단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릴 수 있다면.

그렇게 살려낸 사람이 누군가에겐 이 세상의 전부라면.

“……그래.”

그렇다면 거기에 세상 반쪽쯤은 걸 수 있을 것이다.

“너희가 같이 싸우는 건…… 나도 좋아. 납득했어.”

상호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집에 말은 했어야지. 너희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다른 사람들이 뒤처리를 하게 되잖아. 너희가 정말로 떳떳하면 부모님을 설득시키고 왔어야 하는 거야.”

“어른들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

그냥 억지가 아닌가.

이츠키를 협회나 학교에 감금시켜 둬야 할까. 진지하게 고민하는 상호에게 은율이 조그맣게 말했다.

“저희 부모님은 헌터세요.”

“……그렇지.”

“말했다간 여기까지 따라오실지도 몰라요.”

“글쎄…….”

이미 다른 기지에 있을지도 모른다.

은율의 말이 맞았다. 은율이 부모에게 참전하겠다는 말을 했다면 그들은 딸을 잡으러 온 기지를 싸돌아다녔을 터였다. 애지중지 키워온 독녀니까.

‘그렇다고 몰래 와버리면…… 끄응.’

그는 이마를 짚었다.

오늘 일이 많았던 탓에 머리가 아팠다. 지금은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기가 힘들 듯했다.

어차피 이 애들을 야밤에 돌려보낼 수도 없으니.

“일단…… 일단 자자. 자고 일어나서 이야기하자.”

그가 한숨을 쉬자 은율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죄송해요.”

“아냐. 너희가 왜 왔는진 알아. 나도 그랬고…….”

상호는 손사래를 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활관으로 가자.”

* * *

그렇게 둘을 씻으라고 보내고, 은율은 나빛의 침대를, 이츠키는 세희의 침대를 같이 쓰게 했다. 태화와 다혜는 잠버릇이 안 좋은 편이라.

그래서 푹 자고 일어났더니.

“우웅…….”

옹알거리는 나빛을 품에 안은 은율이, 간절하게 도움을 청하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나빛이 눈물을 글썽이며 은율의 품에 얼굴을 비볐다.

“엄마…….”

“…….”

은율이 다시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차라리 잠꼬대가 심한 아이의 곁에서 자게 하는 게 나았을까. 그렇지만 이렇게 되어 버린 이상 어쩔 수 없다. 상호는 은율에게 다가가 조용히 속삭였다.

“깰 때까지 그대로 있어 줘.”

“네……?”

“나빛이가 어제 마음고생이 심했어서 그래. 꿈이라도 좋은 꿈 꾸게 해줘.”

“네에…….”

은율이 어색하게 나빛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나빛이 헤실헤실 웃으면서 은율에게 더욱 깊게 안겨들었다.

“엄마아…….”

소리를 들었을까. 아이들이 하나둘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가장 가까운 침대에 누워 있던 세희가 몸을 일으켜 눈을 비비다가, 곁에 누운 이츠키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 경기를 일으켰다.

“……힉!”

다른 쪽 침대에서는 태화와 다혜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은율과 이츠키를 바라보고 있었다.

“쌤. 나 이상한 게 보여.”

“느아아…….”

“쉿.”

상호는 입술에 검지를 붙였다.

“나빛이 깰라. 조용히 나가자.”

“얘들 언제 왔어?”

“어젯밤에. 나빛이랑 은율이는 여기 있어. 이츠키는 우리랑 밥 먹으러 가자.”

“네.”

상호와 세희, 태화, 다혜, 그리고 이츠키는 조용히 방을 나섰고.

은율만 나빛과 남아 잠꼬대를 받아주었다.

“엄마…….”

“…….”

은율은 말없이 나빛의 등을 토닥였다.

* * *

“그러고 보니 선생님.”

이츠키가 밥을 먹다 고개를 들었다.

“오양은 어디 있습니까?”

“글쎄.”

상호는 어깨를 들썩였다.

“모르겠어.”

“저희보다 훨씬 먼저 출발했는데.”

“만나긴 했어.”

그 말에 세희와 태화가 눈을 깜작였다.

“만나셨어요?”

“근데 왜 안 와?”

“몰라. 나한테 화났거나…… 혼자 싸우고 싶은가 보지.”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상호는 손사래를 치고 이츠키와 눈을 마주쳤다.

“사카시타.”

“네.”

“네가 왜 참전하고 싶은지는 알겠어. 그런데…… 그거랑 네가 여기서 생존할 수 있는가는 다른 문제야.”

상호의 손가락이 다른 식탁을 가리켰다.

“어제도 사람이 죽었어.”

이츠키는 묵묵히 들었다.

“네가 아무리 싸우고 싶어해도…… 그럴 실력이 없다면 여기 있어서는 안 돼. 사카시타. 네가 은율이보다 약한 건 알지?”

“네.”

“냉정하게 네 실력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해?”

“A급…….”

이츠키의 눈동자가 옆으로 슬쩍 굴러갔다.

“……중위권?”

“그건 주술까지 포함한 거야? 순수하게 전투만 따져 봐.”

“그러면 하위권? 잘 모르겠습니다.”

“너 미진 선생님 이길 수 있어?”

“미진 선생님은…… 조금 어려울지도.”

“그러면 B급이라 치자.”

미진의 실력은 A급 상위권이지만, 이츠키의 실력으로는 이곳에 있는 가장 약한 A급 헌터들에게도 이기기 힘들 터였다.

“여기 B급 헌터가 얼마나 있을 것 같아?”

“모르겠습니다.”

“없어.”

이곳은 전투가 잦은 최전선. 이곳에도, 근처 기지에도 B급 헌터는 없었다. 있어봤자 상황실 요원 정도.

상호는 이츠키를 가리켰다.

“단 한 명도 없어, 사카시타. 그런데도 헌터 한 명이 어제 죽었어. 앞으로 더 죽겠지. 그런데도 네가 나라면 너희를 여기 둘 수 있겠어?”

“……그래도.”

“그래도가 아니라…….”

그때 상호의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꺼내 보니 미진에게서 전화가 오고 있었다. 미처 확인하지 못한 문자 수십 통과 함께.

상호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

[지금 뭐 해요?]

“밥 먹고 있었…….”

[좀 빨리 받으라고!]

핸드폰에서 호통이 튀어나왔다.

[애들이 없어졌어요!]

“그래요?”

[뭘 태평하게 그래요야! 애들이 안 보인다고! 보나마나 당신 따라간다고 나간 게 뻔하잖아!]

“아이고 어떡해. 그래도 뭐 그럴 수 있죠.”

[아니 그게 무슨……, 당신이 그러고도 담임이야!]

“그래서 누구누구 없어졌는데요?”

[은율이, 은율이랑 이츠키랑……. 거기 헌터들한테 말 좀 해봐요! 지금 경찰에 신고하고 있…….]

“학교 안에 잘 찾아봤어요?”

[없다니까!]

“그렇겠죠.”

상호는 핸드폰을 영상통화로 바꾸어 이츠키를 비췄다.

“여기 있거든.”

이츠키가 특유의 무표정으로 손가락 브이를 들어 올림과 함께, 약간의 침묵이 흐르고.

울분에 찬 비명이 식당을 울렸다.

[죽을래! 당신 진짜──!]

“미안. 오랜만에 미진 씨 화내는 게 듣고 싶어서.”

[나가 죽어! 이 변태 새끼! 은율이도 거기 있어?!]

“예.”

[진짜…….]

미진은 한숨을 쉬고는.

[죽어버려요, 그냥.]

그 말을 끝으로 통화를 끊었다.

간만에 놀려 먹으니 맛이 꽤나 좋았다. 평소처럼 얻어맞을 일도 없고. 상호는 피식 웃으며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그러나 웃는 것도 잠시뿐. 다시금 현실의 문제를 당면하고 나니 한숨이 푹푹 쏟아져 나왔다.

“봐봐. 미진 선생님도 걱정하시잖아.”

“오양은 그냥 보내줬는데.”

“지윤이는 강하기도 하고 잡는다고 잡을 수가 없으니까 그러지. 너희는 미진 선생님의 걱정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고.”

“그러니까…… 저는 너무 약하다, 그런 뜻입니까?”

“응.”

이츠키가 그와 눈을 마주쳤다.

“그럼 후방에서 싸우는 건 어떻습니까?”

“……글쎄.”

지금 전방은 쥐새끼 한 마리 빠져나가지 못하게 경계 중인 상태. 뒤쪽으로 새어나가는 몬스터는 한 마리도 없으니, 후방의 헌터라 함은 언제든지 전방에 충원될 헌터들을 달리 이르는 말이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전방에서 경험을 쌓고 강해지는 게 나을 듯도 했지만.

“사카시타.”

상호는 시선을 조금 내리깔았다.

“잘 들어.”

“네.”

“네가 얼마나 강한지. 또 얼마나 중요한지. 아니면 얼마나 싸우고 싶어하는지. 그런 거 다 상관없이. 너는 헌터 학생이야. 그치?”

이츠키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렇습니다.”

“난 헌터 선생이고. 그치?”

“그렇습니다.”

“네가 헌터라면 여기서 싸우는 게 맞아.”

그의 시선이 천천히 올라와 이츠키와 눈을 맞췄다.

“그러려고 너흴 가르쳤어. 하지만 너하고 난 학생과 선생이기도 해. 선생이라면 학생을 전쟁으로 내모는 일은 해서는 안 되고. 맞지?”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만약 네가 날 선생으로 여긴다면. 내 학생으로 남을 거라면…… 참전하지 말고. 학교로 돌아가 줘.”

그 말에 이츠키의 눈이 흔들렸다.

“……그러니까, 그 말은.”

“응.”

“참전하면, 더 이상 제자로 여기지 않겠다는 뜻입니까?”

“응.”

선생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으니까. 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싸우고 싶다면, 나랑 연을 끊어줘. 나랑 아무것도 아닌 사이가 되는 거야. 죽더라도 날 원망하지 말고. 내가 죽더라도 그러려니 해. 그게 조건이야.”

“선생님.”

“응.”

“제 눈을 드리기로 했을 때 걸은 조건은 뭐가 되는 겁니까?”

이츠키의 목소리에 약간의 노기가 깃들었다.

“약속의 내용은 기억하십니까?”

약속. 상호는 아차 싶었다.

“……응.”

“읊어 보는 겁니다.”

그래도 내용은 기억하고 있다. 그는 시선을 돌리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절대 너를 잃어버리지 말 것.”

“그런데도 그런 말을 하십니까?”

이츠키는 이제 화가 난 얼굴이었다.

항상 무표정하던 소녀가 평범하게 화를 내는 모습이, 상호에게는 유난히 두렵게 다가왔다.

“좋습니다. 난 싸울 겁니다. 이제 선생님이랑 저는 뭣도 아닌 겁니다. 한쪽 눈은 그냥 드린 셈 치겠습니다. 대신 다른 쪽 눈은 받아갈 생각 하지 않는 겁니다. 알겠습니까?”

“……사카시타.”

“처음부터 말하지 그랬습니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이츠키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약속 지킬 생각 없다고. 그냥 눈이 필요했던 것뿐이라고…… 그렇게 말하지 그랬습니까.”

“잠깐만, 사카시타…….”

“성도 부르지 마는 겁니다.”

이츠키는 눈물을 훔치며 톡 쏘아붙였다.

“아무 사이도 아닌 주제에.”

그러고는 식당 밖으로 달려 나가버렸다.

상호와 그 곁에 남은 아이들은 식당 문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선생님.”

세희가 이츠키의 수저와 식판을 정리하며 물었다.

“왜 그러셨어요?”

“…….”

“저희한테는 그냥 원망하지 말라고만 했으면서, 이츠키한테는 왜 연까지 끊어야 한다고 하신 거예요?”

“……그래야 했어.”

이츠키는 약하니까.

헌터는 오직 자신만의 순수한 의지로 싸워야 한다. 거기에 타인과의 사사로운 정 따위가 끼어들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사랑일지라도.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는 후회하게 되어버린다.

그 헌터가 약자라면 더더욱.

“얼마나 강한지에 따라 지킬 수 있는 게 달라지니까…….”

자신을 지키는 것도. 타인을 지키는 것도. 약속을 지키는 것도.

이곳은 힘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곳이기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식판과 이츠키의 식판을 들었다.

“먼저 갈게.”

“네.”

“아으…….”

세희는 떠나는 상호를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대쪽처럼 꼿꼿한 등을, 당당한 걸음을.

그러나 고개를 내려 다시 식사를 시작하려는 순간, 터덜거리는 발소리가 귀에 닿았다.

‘…….’

오늘따라 밥맛이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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