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여고의 남선생-470화 (470/501)

<470화>

470. 따로 걷는 아이

‘지윤이가…….’

상호는 창밖을 바라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소문의 주인공은 지윤일 수밖에 없었다. 초강기를 쓰는 까무잡잡한 피부의 짧은 머리 소녀가 지윤 말고 달리 있겠는가.

그런데 하나 이상한 점이 있었다.

‘……왜 자기가 누군지 말을 안 했지?’

그 소녀가 지윤이 맞다면, 자기가 오지윤이라는 사람이고 강상호란 놈을 잡으러 왔다고 말했을 텐데.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그저 기지를 돌아다니며 전투만 돕고 있다니.

‘날 찾는 게 아닌 건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상호는 한참을 그렇게 고민하다가, 이대로는 답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방 안을 향해 돌아섰다.

탁자에 둘러앉은 아이들이 빙수를 퍼먹고 있었다.

“태화야, 이거 뭐야? 팥이 아닌데?”

“초콜릿 녹인 거에 물 탔어. 따지지 말고 먹기나 해.”

“빙수에 넣을 거면 왜 녹였어……?”

“몰라! 씨빡빠야. 팥이 없는 걸 어떡해! 같은 갈색이니까 대충 먹어.”

“맛이 이상해…….”

“쌤! 황금마차 언제 와?!”

없는 살림에 억지로 만든 조악한 초콜릿 빙수. 상호는 그릇에 담긴 갈색 덩어리를 내려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선생님 어디 좀 갔다 올게.”

“우리 떼놓구 싸제 밥 먹으러 가지?!”

“아니야, 임마. 다른 기지에 볼일이 있어서 그래.”

“왜? 다른 기지에 예쁜 여자애라도 있대?”

“됐어 임마. 간다.”

“쌤, 쌤.”

“응?”

문가로 향하는 그에게 태화가 숟가락을 붕붕 흔들었다.

“올 때 아이스크림.”

“보이면 사올게.”

“우린 보이 아니고 걸인뎅.”

“그니까 안 사온다고.”

“아이씨!”

상호는 뒤통수로 날아드는 숟가락을 보지도 않은 채로 잡아내고 문을 열었다.

“다들 잘 지내고 있어.”

“네.”

“다녀오세요~.”

닫히는 문 사이로 아이들의 목소리가 그를 배웅했다.

* * *

“이틀 전까진 있었는데…….”

후덕한 인상의 여자 헌터가 머리를 긁적였다.

“지금은 없어요. 아마 어제 아침에 떠난 것 같은데.”

“……그래요?”

상호는 한숨을 쉬었다.

머리가 짧고 피부가 까무잡잡한 소녀. 소문의 주인공을 찾아 날아서 30분 거리에 있는 기지까지 왔는데 이미 다른 곳으로 떠났댄다.

그래도 일단은 확인을 해야 했다.

“그 애……, 혹시 이렇게 생겼어요?”

그가 꺼낸 핸드폰의 화면 속에서는 지윤이 손가락으로 브이를 만들어 내밀고 있었다. 만면에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띤 채.

사진을 본 헌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 얘예요. 여동생…… 이라기엔 안 닮았고. 애인인가?”

“……아뇨.”

“아아, 아직 썸?”

“아닙니다.”

어쨌든 지윤이 맞다는 건 알았다. 상호는 진땀을 닦으며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어디로 갔는지는 알아요?”

“모르겠네요. 아무도 모를걸요. 말을 안 하고 떠났을 테니까.”

“혹시 애가 말을 잘 안 하던가요?”

“네. 꼭 화난 사람처럼. 누가 물어도 대답 안 하고. 그런데 사진은 되게 귀엽게 찍었네.”

그게 헌터에겐 신기한 모양이었다.

장난을 잘 치던 밝은 아이가 어쩌다 그 모양이 됐을까. 화가 얼마나 났길래.

‘만나면 뭐라고 해야 하나…….’

눈앞이 컴컴해지는 것 같았다.

“혹시…… 누굴 찾진 않던가요?”

“그러진 않았는데……. 아, 그러고 보니.”

헌터가 천장을 가리켰다.

“저기 김씨 아저씨라고 헌터 밥 오래 먹은 사람이 있는데, 그 아저씨한텐 이것저것 물어보더라고요.”

“뭐라고 물었대요?”

“오성철이란 사람 아느냐고, 그렇게 묻더라고요. 그러고 보면 오성철, 오성철……. 어디서 많이 들어 봤던 거 같은데.”

헌터의 고개가 갸웃했다.

죽은 저승부대원들의 이름을 일일이 외우고 다니는 헌터는 없을 것이다. 서도현이나 나효은의 이름을 모르는 헌터는 한 명도 없겠지만.

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고마워요. 더 찾아봐야겠네요.”

“또 보이면 연락할게요.”

“예에.”

그는 몸을 돌려 기지를 나섰다.

* * *

그날 저녁.

저녁을 먹은 후 쉬고 있는 상호에게 지윤에 대한 소식이 들려왔다. 생활관 문을 열고 들어선 도현의 입을 통해서.

“57부대에 있다는데.”

도현이 핸드폰을 빙글빙글 돌렸다.

“갈 거지?”

“가야지.”

상호는 무릎을 짚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날 안 찾더라도 난 찾아가야지.”

“너 애한테 뭐 잘못했냐?”

“내 잘못은 아닌 것 같은데……. 섭섭한 건 이해해.”

자기만 쏙 빼놓고 1기 제자들은 다 데려갔으니. 화가 날 만도 하다.

나갈 준비를 하는 상호를 아이들이 멀뚱히 바라보았다.

“쌤 또 어디 가?”

“응. 오늘 좀 바빠.”

“이번엔 어디 가는데?”

“편의점.”

“우씨, 진짜야?!”

“진짜겠냐?”

“왜 구라쳐!”

불을 내뿜는 태화의 옆에서 다혜와 나빛이 손을 흔들었다.

“아으아~.”

“다녀오세요~. 근데 진짜 어디 가세요?”

“므아.”

“응? 언니 알아?”

나빛의 물음에 다혜가 주먹을 슉슉 내질렀다.

“아으!”

“모르겠어…….”

“느아악!”

이 쉬운 걸 왜 몰라보냐. 니들 친구인데 네가 몰라보면 어떡하냐. 다혜는 나빛이 답답했는지 가슴을 팡팡 두들겼다.

상호는 나빛의 눈이 팽팽 도는 것을 지켜보다가 쓰게 웃고 돌아섰다.

“갔다 올게.”

* * *

“안녕하십니까!”

젊은 청년이 손바닥을 보이며 경례했다.

“부협회장님께 강 헌터님의 안내를 명받은 부기지장 김심석이라고 합니다!”

“……예.”

성실한 목소리가 퍽 부담스럽다. 상호는 경례 중인 청년의 손바닥을 빤히 바라보았다.

‘신삥이구만.’

경례하는 모양도 그렇고, 손에 굳은살도 그렇고.

참전 경험이 없는 건 확실하고, 헌터 경력도 그리 길진 않아 보였다.

‘하기사 상황실 직원이 강하면 그것도 말이 안 되지…….’

그는 입맛을 다시며 기지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애는 어딨어요?”

“상황실에 대기시켜 놨습니다!”

심석이 빠릿빠릿하게 대답했다.

“학생 말고도 다들 모여 있습니다! 강 헌터님을 뵙기 위해서요.”

그 말에 상호의 발이 우뚝 멈췄다.

“김 헌터님.”

“예! 님은 떼셔도 됩니다!”

“혹시 제가 온다고 방송 때렸어요?”

“예!”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당당하게 대답하는 심석.

상호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하이고 X팔…….’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일단 가 봅시다.”

둘은 기지 현관으로 들어가 복도를 걸었다.

살짝 열려 있는 상황실의 문 사이로 헌터들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 꼴을 본 상호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이걸 들어가는 게 맞나?’

망설이는 그의 옆에서 심석이 환하게 웃었다.

“역시 강 헌터님! 이미 알아차리셨군요!”

‘열려 있잖아, 이 새끼야.’

“조촐한 환영식을 준비해 뒀습니다! 자자, 어서 들어가시죠.”

‘한 대만 쥐어박으면 안 되나……?’

상호는 입술을 자근자근 씹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도열한 헌터들이 어색하게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와아~.”

“와~.”

“…….”

뻘쭘해서 죽어버릴 것 같다.

할 말을 잃은 상호의 곁에서 심석이 소리쳤다.

“여러분 강상호 헌터님입니다. 1차 이계대전의 전설이시자 종전을 이끈 영웅이시며 저승부대 출신 최강의 헌터이신…….”

심석의 등으로 상호의 손바닥이 날아들었다.

쫘악

“커헉!”

“고만해, 임마. 너 몇 살이야.”

“죄, 죄송합니다! 스물둘입니다!”

어리니까 눈치가 좀 없어도 봐준다. 강상호(25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어디에도 지윤이 보이지 않았다.

“애는?”

“어라?”

심석이 눈을 끔뻑이다가 자리에 앉아있는 나이 지긋한 헌터를 돌아보았다.

“기지장님, 학생은요?”

“화장실 간다던데?”

아주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상호는 그 즉시 상황실을 빠져나와 여자화장실 쪽으로 향했다.

‘……없네.’

숨소리도, 인기척도 없었다.

‘많이 화났나…….’

얼굴도 보기 싫을 만큼 화가 난 걸까. 그는 한숨을 쉬며 복도를 둘러보았다.

저 멀리 끝에 현관문이 덜렁덜렁 열려 있었다.

쫓으면 잡을 수 있을까.

‘……됐다.’

본인이 만나기 싫다니까. 억지로 쫓아가 잡아봤자일 것이다.

그가 그렇게 여기고 원래 기지로 돌아가려는 찰나.

왜애애애앵──

기지에 사이렌이 울렸다.

“기습이다!”

“1조! 1조 모여!”

상황실에 모여 있던 헌터들이 쏜살같이 빠져나왔다.

부리나케 무기를 챙기는 헌터들과 이어셋을 꺼내는 헌터들. 상호는 그들을 따라가려다가 멈칫하고 통제실로 들어갔다.

“야, 심석이.”

그가 부르자 심석이 차렷 자세로 소리쳤다.

“예!”

“이어셋 하나 줘봐.”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모자도.”

“여기 있습니다!”

심석은 군말 없이 상호에게 이어셋과 모자를 내밀었다.

상호는 이어셋을 귀에 끼고 모자를 푹 눌러썼다. 누군가가 그를 알아보지 못하게.

그리고 이어셋의 버튼을 누르며 상황실을 나섰다.

“상황 설명 한 번만 더 해줘요.”

* * *

자주 있는 소규모 습격이었다.

몬스터들은 인간 기지의 위치와 경계의 정도를 알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작은 공세를 보내왔다. 그것이 악마가 몬스터들을 이용하는 방식이었다. 죽든 말든 끊임없이 갈아넣기.

그래도 도시로 새어나갔다가는 큰 피해가 생길 터라, 헌터들은 습격이 올 때마다 산으로 뛰쳐나가 싸그리 토벌을 해야 했다.

끼에에엑

“흐압!”

산과 산 사이 골짜기에서 헌터와 몬스터가 치고받고 싸웠다.

상호는 그 가장자리에서 직접 나서지는 않고 은근슬쩍 헌터들을 도왔다. 돌을 던져 몬스터의 주의를 끌거나, 내공을 뻗어 몬스터의 공격을 방해하거나.

그러나 강기를 꺼내 몬스터들을 베지는 않았다.

누군가에게 들키면 안 되었기에.

‘……그런데 안 오네.’

이미 떠난 건가.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그때 땅에서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폭은 좁지만, 넓이는 광대한 진동이.

‘이건…….’

이어셋에서 상호의 예상과 똑같은 내용이 흘러나왔다.

[공세가 더 옵니다.]

다급한 목소리였다.

[수가 너무 많아요. 강 헌터님, 강 헌터님 있습니까?]

“…….”

상호는 일부러 대답하지 않았다.

[강 헌터님? 아오……, 어딜 가신 거야?! 일단 다들 후퇴하세요!]

[뭐야, 그놈들 어디까지 왔는데?]

[바로 코앞까지요! 물러나요, 지금 주변 기지에서 지원을…….]

하지만 때는 이미 늦어서, 진동이 서서히 사방으로 퍼지고 있었다.

‘포위 중이군.’

싸우고 있는 헌터는 47명. 주변에 몰려든 몬스터는 어림잡아 3백에서 5백 마리.

S급 헌터 열 몇 명과 나머지로는 상대할 수 없다.

여차하면 나설 준비를 해야겠지만.

‘조금만 더…….’

상호는 검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그 순간 후퇴하려던 헌터들의 앞, 골짜기 위쪽에서. 무언가 거대한 것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새하얀 손.

“……헉.”

헌터들의 몸이 굳었다.

거미처럼 가늘고 긴 손가락들은 산을 짚으며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 하나하나가 사람의 다리만큼 얇았지만, 길이는 웬만한 전봇대보다도 길었다.

툭 치면 부러질 듯했지만, 문제는 그 뒤로 드러나는 본체였다.

쿠르르……

골짜기 위로 드리우는 거대한 얼굴.

눈동자가 있었어야 할 외눈의 구멍 속에는 인간과 비슷한 무언가들이 웅크리고 있었다. 얼굴이 없고, 양서류처럼 피부가 매끈한 영장류 형태의 몬스터들.

상호의 손이 움찔했다.

‘저놈들은…….’

독을 쓰는 몬스터 부족.

전투능력은 대단치 않으나, 가까이서 싸우기엔 위험한 맹독을 지닌 놈들.

심지어는 숨만 쉬어도 곁의 몬스터들을 중독시킬 정도로 위험해서, 공세에 참여하려면 저렇게 독에 내성이 있는 거대한 몬스터 안에 태워서 데려와야 하는 놈들이었다.

호신강기를 두텁게 씌우면 안전하지만, 이곳에 있는 헌터들은 대부분 강기조차도 간신히 만드는 이들.

가까이 오기 전에 통째로 쓸어버려야 했다.

‘별수 없군.’

그는 검을 뽑았다.

거대하고 창백한 얼굴의 입이 쩍 벌어지자 그 안에서 새하얀 실들이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눈은 없지만 시뻘건 혀를 날름거리는 뱀.

뱀과 몬스터들이 그들을 향해 달려오려는 순간.

어디선가 거대한 기운이 상호의 피부를 짓눌렀다.

‘……역시나.’

어느새 골짜기 옆 바위에 소녀가 서 있었다. 전투복을 입고 가방을 둘러맨, 까무잡잡한 피부의 머리가 짧은 소녀.

소녀의 손에서는 상호가 몇 번이고 봐왔던, 혹은 그보다 더 강한 기운이 태풍처럼 휘몰아쳤다.

소녀의 시선이 잠시 헌터들을 향했다.

“…….”

소녀는 찾던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주먹을 들어 올렸다. 골짜기 위 거대한 얼굴을 향해서.

그리고 다음 순간.

콰아앙

눈부신 빛이 골짜기를 가득 채웠다.

“으악……!”

헌터들이 귀를 틀어막고 비틀거리며 무릎을 꿇었다.

땅을 울리던 굉음이 잦아들고 빛이 사그라질 즈음, 다시 몸을 일으킨 헌터들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마주했다.

“……허.”

헌터들의 입에서 얼빠진 소리가 흘러나왔다.

분명 산이 두 개가 있었는데.

그 사이에 얼굴이 있었는데. 이제는 조그만 언덕 두 개 사이로 허허벌판이 펼쳐져 있었다.

“이게 무슨…….”

넋이 나간 헌터들의 시선은 바위 위 소녀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지윤은 주먹에 깃든 기운을 흩어버리고 다시 헌터들을 흘끗했다. 그러다가 몸을 돌려 자리를 뜨려는 순간.

바위 아래에 살아있던 뱀들이 지윤을 향해 달려들었다.

콰직

보이지 않는 힘이 뱀들의 머리를 붙잡아 으스러뜨렸다.

“……!”

지윤은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번쩍 들어, 날카로운 눈빛으로 헌터들을 훑었다.

다들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는 가운데, 한 사내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다.

‘…….’

지윤은 말없이 상호를 바라보다가, 헌터들에게 등을 돌리고 걸음을 떼었다.

그렇게 걷고 걸어서 금방 헌터들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게 네 뜻이라면.’

상호는 지윤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지윤은 그와 따로 움직이고 싶은 모양이었다.

이제 어디 가서 다칠 정도는 아니니.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는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고 모자를 벗었다. 아직도 얼이 빠져 있는 헌터들을 깨워서 돌아가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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