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0화>
460. 수송선을 막아라
“오르커드…….”
민정이 한숨을 쉬었다.
“그걸 또 보게 될 줄은 몰랐네.”
“난 알았어.”
“누나 놀리는 거야?”
“응.”
“얘가…….”
농담을 들어도 민정의 한숨은 얕아지지 않았다.
상호는 소파에 앉아 민정을 바라보며 차를 홀짝였다. 그러다가 자신을 향한 시선을 느끼고 옆을 돌아보았다.
그의 옆에 누운 태화가 담요를 둘둘 만 채로 눈을 깜작이고 있었다.
“야, 빨리 자. 이따 졸리다고 하지 말고.”
“잠이 안 와.”
“그래도 자.”
“안 온다구!”
“눈부터 감고 그런 말을 해, 임마.”
상호의 핀잔에 민정은 그제서야 쓴웃음을 지었다.
“네가 긴장 좀 풀어 줘. 첫 전투잖아.”
“얘도 할 거 다 해봤는데.”
“헌터들이랑 다 같이 싸우는 건 처음이잖아. 잠이 안 오겠지.”
민정의 말에 태화가 눈을 부릅뜨고 상호를 바라보았다.
“맞아! 나 떨려!”
“……정말로 그래 보이네. 어.”
목소리도 표정도 전혀 긴장되어 보이질 않는다. 상호는 한숨을 쉬고 태화를 토닥였다.
“얼른 자. 자장가 불러 줄게.”
“자장가? 아, 민정쌤. 우리 쌤 노래 디게 못 부르는 거 알아요? 전에 섬에 같이 놀러 갔는데…….”
“시끄러, 임마. 누나, 그냥 마법으로 재워 줘.”
“응~, 디스펠하면 그만이…… 쿠울.”
태화는 말을 끝내지 못하고 곯아떨어졌다.
이제야 겨우 둘이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상호는 태화의 이불을 끌어올려 덮어주고 민정을 돌아보았다.
“누나.”
“으응.”
“오르커드는 생물이 아니잖아.”
“응.”
“마나도 안 통하잖아.”
“응. 그런데 이상하지.”
민정이 눈살을 찌푸렸다.
“오르커드가 한반도로 다가오고 있다는 게……. 나도 이해가 안 돼.”
“그 녀석이 잘못 알았던 걸까?”
“모르지……. 일단은 직접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아. 그런데 상호야.”
“응?”
상호가 눈을 끔뻑이자 민정의 시선이 태화를 향했다.
“태화가 겁이 나는가봐.”
“……그런 거야?”
“응. 너한테 의지하는 거야. 소리치고, 장난치고……. 다 무서워서 그래.”
상호는 그 말을 듣고 태화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얘도 나름대로 산전수전 겪어 봤는데. 작전도 해 봤고, 악마 잡을 때도 항상 있었고.”
“작전이 무서운 게 아니겠지.”
“……아하.”
전쟁이 무서운 것이다.
두고 온 아이들은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정작 데리고 온 아이는 전쟁을 두려워한다. 전쟁이 원래 그렇긴 하다만.
상호는 태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알아서 잘 이겨내겠지.”
“네가 도와줘야지.”
민정이 그의 어깨를 찰싹 쳤다.
“너도 예경이가 도와줬었잖아.”
“난 내가 알아서 잘 했어…….”
“누나들은 다 알지. 너 달래느라 예경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니야.”
사실은 맞지만. 상호는 자신이 전쟁 초기에 예경의 품에서 그리도 울었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아서 시치미를 뗐다.
“누나도 얼른 자. 내가 깨워 줄게.”
“아냐.”
민정이 그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네가 자.”
한 자락 몽롱함이 그의 뇌리에 덮였다.
* * *
결국 중간에 깨는 일 없이 숙면을 했다. 작전 2시간 전까지.
자고 일어난 태화는 유난히 말이 없었고, 상호도 묵묵히 준비를 마친 후 태화의 준비를 도와주었다.
그렇게 시간이 되어, 천장이 없는 군용 지프를 타고 작전지역으로 출발하게 된 때가 새벽 2시.
상호는 옆에 앉은 태화를 흘끗했다.
“이어셋 잘 들리지?”
“응.”
태화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확인했자나.”
“계속 확인해. 구형이라 어떨지 몰라.”
둘의 이어셋은 마법공학이 적용되지 않은 재래식 기기였다. 마나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오르커드가 상대였기 때문에.
상호는 자신의 이어셋도 한 번 확인하고 태화의 핸드폰을 슬쩍 넘겨다보았다.
“뭐 해?”
“톡. 애들이랑.”
“다들 뭐래?”
“조심하래.”
태화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쌤. 쌤.”
“왜.”
“어딘지 말해줘도 돼? 나빛이 물어보는데.”
“……안 돼.”
설마 찾아오진 않겠지만, 그래도 불안해서. 상호는 고개를 젓고 핸드폰을 꺼냈다.
메세지를 확인해 보니 세희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어딜 가서 이 시간까지 안 들어오시는 거예요?
‘……으음.’
작전이 좀 길어질 것 같은데.
오르커드는 죽이는 게 아니라 정화하는 것. 단칼에 급소를 찔러 죽일 수 있는 종류의 문제가 아니었다. 초강기로 일일이 마나를 태우는, 일종의 청소 작업이나 다름없었다.
같이 오는 몬스터들이 없었다 해도 아침이 되어서나 돌아갈 수 있을 터였다.
그래서 그의 답장은.
-먼저 자 나 늦게 들어가
-올 때까지 안 잘 거예요
-하루로 안 끝날지도 몰라...
-얼른 와서 재워주세요
-노력해볼게...
[상호야.]
그는 도현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도착했다.]
“어.”
바다가 가까운 산속. 갈라진 도로 위에 지프가 멈췄다.
상호는 지프에서 내려 자신의 검을 쓱 둘러보았다. 예경의 것보다 조금 긴 검. 협회에서 손에 맞는 것을 골라 온 것이었다.
그의 뒤로 지프와 트럭들이 연달아 정차했다.
“지금 어디까지 왔지?”
[곧 올 거야.]
맨 뒤에 있는 차에서 도현이 내리는 게 보였다.
[작업은 저녁에 끝내뒀어. 지금쯤이면…….]
그때 산 너머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콰아아앙
산골짜기가 굉음으로 뒤흔들리자 태화가 움찔하며 상호를 돌아보았다. 조금 겁에 질린 눈빛으로.
“시작이야?”
“아직 아냐.”
간단한 인사일 뿐이었다.
저녁에 헌터들이 미리 설치해둔 지뢰. 카메라와 연결되어 수동으로 격발시키는, 가격은 비싸지만 전투 이후에도 해체가 용이한 물건이었다.
이 역시 마법공학이 쓰이지 않은 재래식 지뢰.
상호는 검을 뽑으며 말했다.
“태화야, 잘 들어.”
“응.”
“넌 지금부터 악마의 기운에만 집중해.”
칼날이 달빛에 시퍼렇게 빛났다.
“여기 있는 헌터들은 강하니까, 악마만 아니라면 네가 다칠 일은 없을 거야. 악마가 느껴지면 반대 방향으로 도망치면서 나를 불러.”
태화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쌤은 어디로 가는데?”
“난 오르커드를 없애야지.”
그는 그렇게 대답하고 도현과 눈을 마주쳤다. 도현은 수호부대원들을 데리고 상호를 향해 걸어오는 중이었다.
“하늘에 민정이 누나 있으니까, 돌발상황이 생기면 누나가 너부터 챙길 거야. 그러니까 넌 악마가 있는지 없는지만 찾아내고, 오르커드에 닿지 않게 조심해.”
“응.”
태화가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호는 태화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돌아섰다. 곁에 다가선 도현과 수호부대원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현이 창을 빙글 돌렸다.
“갈까?”
“가자.”
상호는 검을 뽑은 채로 걸음을 옮겼다.
* * *
음울하게, 느릿하게 기어가는 보라색 구름.
어두운 밤을 배경으로 흐르는 모습이 꼭 우주의 먼지구름을 닮았다. 만약 저 보랏빛 구름이 땅이 아니라 은하수가 흩뿌려진 하늘에서 다가왔다면, 저렇게 놀랍도록 또렷하게 용을 닮은 성운이 있었나 한참을 고민했을 것이다.
누가 봐도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닌. 그리고 실은 저 우주의 것도 아닌.
수많은 몬스터를 거느렸지만 어딘지 외로워 보이는, 보랏빛 구름.
[어때?]
“보고 있어.”
상호는 나뭇잎 사이에 숨은 채로 놈들을 살피며 속삭였다.
“흩어지려고 하지는 않네.”
[오르커드 속에서 싸우려는 건가?]
“그런가봐.”
오르커드의 흐릿한 몸속에는 거대한 몬스터들의 그림자가 빼곡하게 비치고 있었다.
마나를 사용하지는 않으나 육체의 전투력은 탁월한, 지성이 없는 짐승형 몬스터들.
놈들의 노림수는 명백했다.
“우릴 오르커드 속에 붙잡아두려는 거야. 내공이 바닥날 때까지…….”
[큰일인데.]
도현이 침음하자 민정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뭐야, 무슨 일인데?]
[아무리 우리라도 초강기를 몇 시간씩 유지하긴 힘들어. 그리고 나랑 상호 빼고는 이제 겨우 초강기를 만들기 시작한 사람들이라…… 다들 한 시간도 유지하기 힘들 거야.]
[저걸 없애는 데에는 얼마나 걸리는데?]
“세 시간 정도. 단, 몬스터 몇만 마리랑 싸우는 시간 빼고.”
민정의 목소리에 초조한 기색이 섞였다.
[세 시간보다 더 걸린다고? 그럼…….]
“도심지까지 가기에 충분한 시간이지.”
상호는 검과 몸에 초강기를 둘렀다.
저 오르커드가 몬스터를 도시에 운송하는 셔틀버스가 되기 전에 막아야 했다.
“지체할 시간 없어. 형이랑 나라도 시작하자. 수호부대원들은 외곽에서 오르커드만 최대한 제거해보고.”
[그래.]
멀지 않은 곳에서 창을 든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상호도 도현을 따라 뛰쳐나와 오르커드 속 몬스터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촤아악
휘두른 검을 따라 검붉은 피가 튀었다.
바람처럼 내달리며 핏빛 비를 내리는 두 사내. 누르고 검푸른 두 폭풍은 삽시간에 수십의 명줄을 끊어냈다.
키이이익……
카르르륵
베어낸 수보다 더 많은 수의 몬스터들이 달려들었다.
상호에게는 오히려 다행인 일이었다. 놈들이 도망치면서 시간을 끌면 곤란해질 텐데, 지능이 낮고 육체가 강해 공격성만 강한 놈들이라 달려들어 주는 것이 여간 고마운 게 아니었다.
그렇지만 몇만은 그에게도 큰 숫자였고.
오르커드의 크기도 너무 컸다.
‘젠장…….’
크기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높이는 초고층 빌딩보다도 크고, 너비는 축구장 몇십 개는 들어갈 듯했다. 유령처럼 미끄러지는 보랏빛 용의 발바닥 하나가 작은 산 하나를 온통 덮었다.
상호는 열심히 검을 휘둘러 오르커드를 불태웠다.
화륵……
타오르는 보랏빛 구름 속에서 기이한 형태들이 언뜻언뜻 나타났다.
잘린 팔, 무언가의 날개. 반으로 갈라진 해골 등이 마구잡이로 뒤섞인 모습.
아마도 오르커드에게 잡아먹힌 마나의 형태이리라.
‘끝이 없군.’
이대로 가면 도시로 향하는 오르커드를 막지 못한다. 상호는 검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형, 뭐 방법 없어? 재래식 폭탄이라도 떨궈보던가!”
“오르커드가 퍼지기라도 하면 어떡하냐. 지뢰가 한계야. 민정이가 남은 수호부대원들 닥닥 긁어모으고 있대. 좀만 버텨라.”
“……쳇.”
해련이 와도 전세가 크게 바뀔 것 같진 않았다. 오르커드의 규모가 너무 커서.
그는 상황을 비관하면서도 검을 휘두르는 것만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다.
‘세희…….’
아이들을 데려왔다면 어땠을까.
그의 반에는 초강기를 쓸 수 있는 아이가 셋이나 있었다. 세희, 지윤, 다혜.
내공이 많지 않은 지윤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에게 내공을 나눠 받을 수 있는 세희와, 해련보다도 내공이 많은 다혜가 여기에 있었다면.
전세가 달라졌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안 돼.’
애들이니까.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가르치긴 했으나, 전쟁을 시키려고 가르친 건 아니다. 아이들이 전투에 나서는 일은 최후의 최후여야만 했다.
그렇게 다짐하며 검을 휘둘렀지만.
역시 만 마리는 너무 많았다.
콰직……
그는 주먹으로 몬스터의 골통을 부숴버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발밑에 쌓여가는 시체와 끝없이 다가오는 괴물의 물결. 이대로는 오르커드가 도시에 가는 것을 막기 전에 그의 힘이 먼저 다할 터였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놈은 생물이 아냐.’
상호의 날카로운 눈빛이 오르커드의 중앙을 향했다.
‘무언가가 운반하고 있을 텐데…….’
그렇지만 눈을 씻고 찾아봐도 특별한 무언가는 보이지 않았다.
정녕 세희와 다혜를 불러와야 하는가, 불러와도 그 둘이 당하지 않고 오르커드를 막을 수 있다는 보장이 있는가. 그런 심란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던 와중에.
도현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
“야, 상호야.”
“응?”
“저거…… 뭐냐?”
상호는 도현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보랏빛 구름 너머 환한 달 아래, 한 소녀가 황금빛 날개를 펼치고 백발을 휘날리며 떠 있었다.
상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설마.’
역광에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너무도 익숙한 실루엣.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될 그 소녀가 황금빛 창을 들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