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여고의 남선생-459화 (459/501)

<459화>

459. 전초전

여행이 끝나는 날.

지윤은 짐을 옮기다 말고 펜션을 돌아보았다.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하이고…….”

“왜, 가기 싫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태화가 핀잔을 주었다.

“그럼 여기 살아. 대게도 실~컷 먹고 좋겠네.”

“이 가스나는 툭하믄 쌤허고 내를 띠놓을라카네. 니는 그래 자신이 없나. 내는 니가 있든 읎든 쌤 자빠뜨릴 자신 있…….”

“얘들아~.”

상호는 다 들었지만 못 들은 척 아이들을 불렀다.

“짐 다 옮겼으니까 차에 타. 너희 짐도 확인하고.”

“예.”

“배고팡.”

“가면서 사줄게.”

셋은 차로 향했다.

* * *

“쌤.”

“응.”

“나 기분이 이상해.”

태화가 우동 면발을 호로록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들이 있는 곳은 휴게소 식당. 아이들에게 점심을 먹이기 위해 들어와 막 식사를 시작한 참이었다.

상호도 영 기분이 묘했다.

“나도야.”

그는 TV를 흘끔하며 대답했다.

그때와 인원이 거의 같다. 딱 두 명만 빼고. 상황도 판박이였다. 그때는 음식이 나오기 전이었지만.

둘의 대화를 들은 세희가 눈살을 찌푸렸다.

“재수없는 소리하지 말고 밥이나 먹어.”

“와 씨, 쌤. 들었어? 쌤보고 재수없대. 쌤 애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거야?”

“너한테 말한 거야, 멍청아.”

“이거 봐! 쌤보고 멍청이래!”

“그만 싸우고 밥이나 먹어.”

상호는 한숨을 쉬며 밥을 한술 떴다.

그때 TV의 화면이 바뀌었다. 화기애애한 스튜디오는 푸른 바탕으로. 연예인들은 회색 양복을 입은 사내로.

사내가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긴급 속보입니다.]

‘……X벌.’

느낌이 좋지 않았다.

하긴 좋은 뉴스를 속보로 내보낼 리가 있겠냐마는. 그 내용이 너무도 쉽게 예상이 된다는 게 문제였다.

보나마나.

[오늘 오후 1시경, 아르게스 접경 지역에 몬스터들이 집결하는 것이 괴렵협회를 통해 확인되었습니다.]

모두의 얼굴이 굳었다.

[집결한 몬스터들의 규모는 최소 수만 마리인 것으로 추정되며, 군 관계자는 몬스터들의 공격에는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나, 공격이 시작될 거란 사실은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확실하면 확실한 거지, 확실한 것으로 보이는 견해는 뭐야.”

태화가 중얼거렸다.

긴장을 풀어보려고 한 말이었겠지만, 그 누구도 거기에 대꾸하지 않았다. 맞장구도 핀잔도 돌아오지 않자 태화는 상호의 눈치를 보며 젓가락을 만지작거렸다.

상호는 핸드폰을 확인하고 해련과 눈을 마주쳤다.

“연락이 없네요.”

“협회도 발견하자마자 방송국에 알린 거겠죠.”

그 말을 하기가 무섭게 상호와 해련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상호의 것에 뜬 이름은 도현. 해련의 것은 류혁. 둘은 벌떡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며 전화를 받았다.

“어, 형.”

[놈들이 오려는가 보다.]

도현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차분했다.

[지금 어디야?]

“애들이랑 여행 왔다가, 이제 학교로 돌아가려고 했어.”

[준비하는 대로 와. 그리고 태화도 데려와야겠다.]

“알았어.”

상호는 짤막하게 대답하고 통화를 끊었다.

옆을 돌아보니 해련은 아직 혁과 통화 중이었다. 분위기를 보니 빨리 끝나진 않을 듯싶었다. 그래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은 바빴다. 가족에게 전화를 하거나, 바쁘게 식당을 나서거나. 아비규환이거나 아수라장은 아니었다. 공포에 질려 평정을 잃은 사람도 있긴 했지만, 아직은 정신줄을 잡은 사람이 더욱 많았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의 얼굴에서도, 초조한 빛은 숨길 수 없었다.

“선생님…….”

나빛이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상호의 손을 잡았다.

“큰일인……거죠?”

“응.”

“저희는 어떡해요……?”

“너흰 학교로 가야지.”

상호는 세희의 따끔한 시선을 못 본 척 흘려넘기며 대답했다.

“학교로 가서 미진 선생님 말대로 해. 부모님이 데리러 오면 부모님 따라가고.”

“선생님은요?”

“선생님은 협회로 갈 거야. 태화랑.”

“저희도 같이 가고 싶어요…….”

나빛이 그의 손을 잡은 손에 꼬옥 힘을 주었다.

“저희도 싸울 수 있어요. 같이 가요…….”

“안 돼.”

“사람은 누구나 싸워야 하는 때가 온다고 하셨잖아요…….”

상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학교로 가. 너희 차례가 아니야. 일단은 상황을 파악하는 게 먼저고, 그다음은 헌터들 차례야. 너희 차례는 그다음이고. 그러니까 학교 가서 선생님들 말 들어.”

“구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구해야 해요.”

“나빛아, 그건 맞는 말이지만 지금은…….”

“전 구할 거예요.”

나빛이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헌터라고 안 다치는 게 아니잖아요. 사람들이 다치는데 가만히 있을 순 없잖아요. 그 누구도 다치게 않게 할 거예요. 제가 가서 한 명이라도 더 구할 수 있다면, 따지지 말고 그냥 가는 거예요.”

“…….”

“싸워야 할 때가 왔어요, 선생님…….”

지금이 아니면 대체 언제가 싸울 때냐. 나빛의 눈빛은 그렇게 따지고 있었다.

상호는 반박할 논리를 찾지 못해 입만 뻐끔거리다가 다른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미진 선생님 말 잘 듣고 있어.”

“……선생님.”

“나는 전쟁을 해 봤지? 그러니까 너희를 가르치고 있는 거고. 일단은 선생님 말대로 해. 너희가 필요하면 그때 부를게.”

“쌤도 모르고 시작하지 않았습니꺼.”

“그건 내 주변에 전쟁을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지.”

“느아!”

“다혜도 안 돼. 넌 헌터들하고 소통이 안 되잖아.”

“꾸웅…….”

급해도 대답은 꼬박꼬박 한다. 아이들은 그런 상호를 바라보며 말없이 착잡한 눈빛을 보냈다.

특히 나빛은 배신당했다는 듯 상처받은 표정이었지만, 상호는 그런 아이들의 눈빛을 묵살하고 미진과 설미를 보았다.

설미는 자신의 반 아이들을 챙기느라 핸드폰을 귀에서 떼지 못했고, 미진은 방금 막 통화를 끝낸 참이었다. 아마도 담욱과의 통화.

“미진 씨.”

“네.”

“애들 잘 부탁해요.”

미진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혁과의 통화를 마친 해련이 핸드폰을 내리고 상호를 보았다.

“버스는 내가 운전할게요. 출발해요. 애들은 걱정하지 말고.”

“……그럼.”

상호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선생님……!”

무어라 말하려는 나빛을 세희가 가로막았다.

“다녀오세요.”

“……응.”

상호는 살짝 웃어 보이고 태화에게 따라 나오라는 손짓을 했다. 태화는 고뇌가 가득한 눈빛으로 먹다 남은 우동을 내려다보다가, 결국은 큰맘 먹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당에서 나온 둘은 하늘로 날아올랐다.

“어느 방향이야?”

“이쪽.”

그는 태화와 함께 협회로 향했다.

* * *

“여기가 놈들이 모인 곳.”

도현이 부협회장실 벽에 걸린 지도를 짚었다.

“예상 위험도는 S 250.”

몬스터는 저마다 체급도 강함도 달라서, 머릿수로 세는 것은 실질적으로 큰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헌터들끼리 쓰는 표기법이 위험도.

S급 헌터가 250명 필요하다는 소리였다.

“그중에 악마가 얼마나 섞여있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우리 둘 다 나서야 한다는 거네.”

전국의 S급을 닥닥 긁어모아도 2백이 될까 말까. 그 2백이란 숫자도 재야의 고수와 A급 최상위권까지 포함시켜 후하게 계산한 결과값이었다.

그러므로 몬스터의 위험도가 S 250이라면, X급의 참전이 불가피하다는 뜻.

상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S 250이라고? 그렇게 많아?”

그가 한창 전쟁 중이었을 때는 해봤자 S 50이거나 100이었는데. 아무리 몬스터가 한국에만 몰려든다고 해도 전초전의 숫자로는 지나치게 컸다.

놈들도 인간의 전력을 알고 싶을 텐데.

이번 공격으로 확실한 타격을 입힐 자신이 있는 걸까.

“뭔가 노림수가 있을 것 같네.”

“맞아.”

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르커드가 있었어.”

“……!”

오르커드. 그 단어에 상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소파에 가만히 앉아 있던 태화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뭐 하는 놈인데?”

“놈이 아냐.”

상호는 낮게 중얼거렸다.

“몬스터가 아니거든.”

“그러면……?”

“현상이야.”

“현상?”

태화가 눈을 끔뻑이자 상호 대신 도현이 부연했다.

“마나를 침식하는 마나야. 마나의 바이러스라고 할까……. 역병 같은 거지.”

“역병이요?”

“겉으로 보기엔 보라색 연기야. 대체로 드래곤의 모양인데…… 그 안에 모든 생물의 모습이 있어. 설명하기 힘든데…… 어쨌든 생긴 건 그렇다 치고. 중요한 건, 접촉한 대상의 마나를 감염시켜서 못 쓰게 만들어.”

“감염……?”

태화의 눈동자가 핑핑 돌아갔다.

“마나가 감염된다고요? 어떻게?”

“자세한 건 우리도 몰라. 다만…… 확실한 건, 그렇게 감염된 마나는 다시는 못 되돌린다. 마법으로도, 성력으로도 치료 못 해.”

도현의 말을 상호가 이었다.

“마법사도 체내에 마나가 있지?”

“응, 시동마나.”

“그게 다 못 쓰게 되는 거야. 돌처럼 굳어 버린다고 생각하면 돼. 나 같은 무예가들은 체내에 마나가 많아서, 조금은 굳어도 완전히 폐인이 되어버리진 않아. 하지만 마법사들은 체내 마나가 적어서…… 약간만 감염돼도 마법을 못 쓰게 되어버려.”

“……그 정도야?”

태화가 어안이 벙벙해했다.

“치료…… 아, 치료는 못 한댔지. 그럼 그걸 어떻게 쓰러뜨려?”

“초강기로 태워버려야 돼.”

오직 초강기만이 감염되지 않고 오르커드를 태워 없앨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초혼강기가 아닌 초강기로도 충분해서 상호와 세희가 아닌 다른 이들도 오르커드에게 대항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인원들이 나라에 몇 되지도 않는 준 X급의 헌터들이라는 것.

상호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골치 아픈데…….’

오르커드는 현상. 누군가의 명령을 받지 않는다.

그럼에도 오르커드를 조종할 수 있다면, 인간에게 극도로 크나큰 위협이 될 것이 분명했다. 목숨을 빼앗지는 않으나 전사를 재기불능으로 만들어 버리는 위험한 비대칭전력.

상대할 수 있는 이도 초강기를 쓸 수 있는 자로 한정되어 있으니.

‘약한 자는 죽이고, 강한 자는 끌어낸다…….’

전초전의 선봉장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다고 할 수 있었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것은.

“형.”

“어.”

“오르커드는 조종할 수 없다고 하지 않았어?”

“방법을 찾았겠지.”

도현이 어깨를 들썩였다.

“놈들도 전쟁을 한다면 최선을 다해 전략을 짜낼 테니까.”

“그거야 그렇겠지만…… 오르커드는 영혼도 없고 마나도 안 통하는데.”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냐. 중요한 건 몬스터들이 오르커드를 데리고 진격해온다는 거지.”

“……하긴.”

상호는 더욱 신경질적으로 눈살을 찌푸리며 입술을 잘근거렸다.

안 그래도 까다로운 놈인데 악마까지 섞여 있다면 곤란해진다. 상호의 참전은 이미 확정이고, 태화도 데려가야 하는데.

오르커드란 것이 마법사에게는 너무도 위험했다.

“진격 속도는?”

“하루 안에 도시에 도착해. 그러니까 작전은 오늘 밤이지.”

지도 앞에 서 있던 도현이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러니까 내려가서 쉬고 있어. 민정이도 좀 있으면 온대.”

“그래.”

대답하는 동안에도 상호는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영혼도 없고 마나도 안 통하는 녀석을 대체 어떻게 조종하는지.

그러나 고민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고.

일단은 민정이 오면 이야기해 보는 것이 좋을 듯했다.

“태화야, 가자.”

“응.”

둘은 자리에서 일어나 부협회장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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