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8화>
458. 특별한 날의 전날
“므아앙.”
다혜가 돗자리에 문어를 던졌다.
돗자리 위에는 이미 다혜가 잡아온 해산물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광어, 고등어, 거대한 조개, 성게, 해삼, 게, 그 외에도 이름 모를 여러 해산물들.
상호는 문어가 게를 공격하는 것을 내려다보며 침음했다.
“……다혜야.”
“아웅.”
“이걸 다…… 손질해 달라고?”
“므히히~.”
먹을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은지, 다혜는 헤실거리며 손으로 브이를 그렸다.
그러고는 다시 바다를 향해 달려갔다.
“아으으아~.”
“아니 다혜야, 이미 충분히 많은…….”
“오늘 저녁은 해산물 파티래요.”
세희가 무심하게 말했다.
육해공에서 손질하기 제일 힘든 게 물에 사는 놈들인데. 상호는 돗자리에 놓인 해산물을 아이스박스에 담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래도 해련과 설미가 도와주지 않을까.
마침 설미가 다가와 그의 주변을 기웃거렸다.
“상호야, 뭐해?”
“다혜가 잡아온 거 챙기고 있어요.”
“잡아온 거? ……윽.”
아이스박스 안을 들여다본 설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꼭 벌레 따위를 보는 것처럼.
왜 이러는 걸까.
‘설마…….’
상호는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안감을 무시하며 물었다.
“왜 그래요?”
“내, 내가 이런 거 좀 무서워해…….”
“손질 같은 것도 못 해요?”
“응…….”
“……먹을 순 있죠?”
“으응…….”
“그럼 됐어요.”
헌터가 왜 해산물 따위를 무서워하냐, 라고 묻고 싶었지만 설미는 피를 볼 일이 많지 않은 정령사였다.
그는 애써 웃었다.
“괜찮아요, 저랑 교장선생님이 하면 되죠.”
“미진이는? 미진이도 무섭대……?”
“아뇨. 미진 씨는 아직 몰라요.”
“그럼 내가 한번 물어볼게. 그리구 나두 밥 같은 건 할 줄 아니까…….”
“고마워요.”
아이스박스의 뚜껑이 닫혔다.
그는 그렇게 아이스박스를 지키고 서 있었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다혜는 바다에서 나오지 않았다.
큰 걸 잡겠다고 깊은 바다까지 들어간 건 아닐까.
아니면 다른 데에 정신이 팔렸다가 해파리나 바다뱀에게…….
‘……설마.’
상호는 황급히 모래사장을 가로질러 바다에 뛰어들었다.
해변 가까운 곳에서 놀고 있는 사람들을 지나, 푸르고 진한 물속으로. 몸을 물결치듯 움직여 잠영으로 빠르고 깊게 내려갔다.
다행히 다혜는 바위 사이에서 무언가를 캐는 데 삼매경이었다.
‘휴우…….’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다혜의 곁으로 다가갔다.
다혜는 바위에 붙은 전복을 덥석덥석 떼다가, 가까이 흘러온 물결을 느끼고 상호를 돌아보았다.
“우웅?”
상호는 손짓 발짓으로 뜻을 전했다.
‘그만하면 됐어. 먹을 건 그만 잡자.’
“꾸웅…….”
‘부족하면 사 줄게.’
다혜는 입술을 삐죽이다가 해변을 향해 헤엄을 쳤다.
어쨌든 다혜가 무사하다는 건 확인했고. 이제 해변으로 돌아가 저녁 식사 준비를 하러 가면 된다. 상호는 입맛을 다시고 다혜의 뒤를 따르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바위 사이에서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하얀 미역.
아니, 하얀 실.
‘……?’
하얀 실이 모여서 하늘거리고 있었다.
말미잘이라기엔 모양이 이상한데. 잘 알려지지 않은 희귀한 생물일까. 하긴 바다에는 신기한 생물들이 많으니.
상호는 고개를 기웃거리며 강기를 뻗어 그 하얀 실을 톡 건드려 보았다.
‘뭐지……?’
건드려도 반응은 없고.
그냥 미역 같은 건가 보다, 그가 그렇게 여기고 돌아서려 하는 순간.
하얀 실 아래에서 사람의 얼굴이 쑥 올라왔다.
‘……!’
무감정한 눈빛과 음산하게 올라간 입꼬리.
해련이 바위 뒤에 숨어 상호를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바다의 푸른 빛을 받아 귀신처럼 창백해진 얼굴로.
“쿨럭…….”
상호는 입에 머금은 공기를 토해내며 황급히 수면으로 올라갔다.
기분 탓일까. 발목에 자꾸 무언가가 휘감기는 것 같았다. 미역 같기도 하고, 머리카락 같기도 한 게.
그를 바다 깊은 곳으로 잡아끄는 것 같았다.
‘으악……!’
하마터면 오줌을 지릴 뻔했다.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치며 빠져나온 상호는 전속력으로 헤엄을 쳐서 다혜를 추월했다. 깜짝 놀란 다혜가 ‘므아?!’ 하고 놀라는 것도 알아채지 못한 채.
그리곤 바다를 뛰쳐나와 모래사장에 엎드려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허억……!”
“아으? 으아, 아으아…….”
“으, 으, 헉…….”
심장이 가슴 밖으로 탈출하려고 했다. 여긴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고 소리치며.
상호는 귀신에 홀린 듯한 표정으로 바다를 돌아보다가, 해련이 쫓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맥이 빠져 모래사장에 철퍼덕 쓰러졌다.
“으…….”
“므아? 아우아웅…….”
“선생님, 괜찮으세요?”
“선생님……?”
달려온 아이들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으며 그의 등을 토닥였지만, 상호는 모래에 얼굴을 처박은 채로 일어나지 못했다.
해련의 스산한 미소가 뇌리에 박혀서.
‘저녁은 나 혼자 차리겠구나…….’
그런 예감이 들었다.
* * *
결국 손질은 혼자 했다.
다혜가 잡아온 게 워낙 많아서, 전부 손질하고 요리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고, 덕분에 손질하다가 요리하다가, 아이들이 집어주는 음식으로 간신히 끼니를 때웠다.
그렇게 전쟁 같은 저녁이 지나간 후.
“산책 갈래요?”
해련이 그를 불렀다.
낮에 있었던 일 때문일까. 시체도 못 찾게 수장시키려는 건 아닐까. 상호는 일단 핸드폰을 꺼내서 세희에게 바로 전화할 수 있도록 잠금화면을 설정해 두고 해련을 따라나섰다.
파도 소리가 밀려오는 바닷가를 함께 걷는데, 돌연 해련이 물었다.
“저번에 갔던 건 어떻게 됐어요?”
“……그게.”
그는 해련에게 아르게스에서의 일을 설명했다. 새로 생긴 땅은 바다 밑 땅이 올라온 거였고, 그 정체는 아르게스를 골렘으로 만든 것이었다고.
이야기를 다 들은 해련이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그냥 자연현상이길 바랐는데.”
“확률은 낮았잖아요. 세상에 별일이 다 있다지만.”
“나이가 들면 그런 쪽으로 상상력이 늘지. 말도 안 되는 일을 하도 많이 봐서…… 젊은 애들한텐 당연한 게 우리한텐 하나하나 신기한 거니까. 현실감각이 없어지는 거지.”
해련의 입술 사이로 한숨이 새어나왔다.
“화산 때문이길 바랐는데.”
“이렇게 가까운 곳에 그만큼 큰 화산이면 전쟁보다 더 무서울걸요.”
“그런가? 어쨌든, 전쟁 준비라……. 당장 오늘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겠네요.”
“그렇게 가까울까요?”
“개벽 당일, 기억해요?”
그 말에 상호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세상도 인생도 송두리째 뒤바뀐 날.
“……잊을 수가 없죠.”
하루를 꼬박 잔 사람이 아니고서야.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는 날. 눈이 안 보이는 사람도, 귀가 안 들리는 사람도. 어쩌면 둘 다인 사람도 기억할 수밖에 없는 날이었다.
특히 그에게는 더더욱.
회상에 빠진 그에게 해련이 되물었다.
“그럼 그 전날은 기억해요?”
“전날이요?”
상호는 눈을 끔뻑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평범한 하루였겠죠?”
“그랬겠죠.”
“기억에 남은 날의 전날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아요.”
말장난 같은 말을 하며, 해련은 한가롭게 해변을 걸었다.
“세상이 바뀐 날의 전날도, 오늘처럼 평범한 날이었던 거야. 우리야 바다에 놀러왔으니까 기억을 하겠지만…… 아니었다면 그냥 평범한 날이었겠지. 우리한테도, 세상한테도……. 전쟁은 꼭 그런 날의 다음 날에 찾아오는 법이고.”
“…….”
문득 세희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당장 내일 전쟁이 일어난다면, 나를 데리고 가겠느냐.
“교장선생님.”
“응?”
“만약 하솔이가 스스로 참전하겠다 하면, 참전하게 놔둘 거예요?”
“……으음.”
고민하던 해련은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나는 보내고 싶진 않아요.”
상호는 그 말을 되뇌었다.
“싶지는 않지만?”
“내가 보내지 않는다고 해서 그 아이가 안 갈 게 아니니까. 정말로 자기 뜻이 있는 사람들은 부모한테서 도망쳐서라도 뜻을 이루잖아요? 하솔이가 마음을 먹었다면 내가 말려 봤자겠죠.”
해련이 그와 눈을 마주쳤다.
“세희는 더더욱 그럴 거고.”
“……그렇겠죠.”
뭐 때문에 묻는지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확실히 세희라면 그가 데려가지 않는대도 어떻게든 참전할 것이다. 무조건. 분명히. 그러지 않을 아이가 절대로 아니었다.
상호는 걸음을 멈추고 수평선을 돌아보았다.
“그러면 교장선생님은 오늘부터 준비하실 거예요?”
“그래야지.”
“학교는 어떻게 하죠?”
“류 이사장이랑 말해봐야지.”
해련이 상호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휴교를 하진 않을 거예요. 헌터를 양성할 곳은 계속 필요하니까. 그렇지만 선생들은 상당수가 차출될 테고…… 수업도 좀 달라지겠죠. 합반을 하던가.”
“옛날 생각나네요.”
상호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많은 게 다르겠지만…….”
“그때보다 헌터의 수는 훨씬 많이 늘었죠. 가장 강한 헌터들은 전쟁에서 만들어졌지만…… 강 선생 반처럼 잘 배우는 후배들도 있으니까.”
“놈들은 이제 한국만 공격할 거예요.”
“괜찮아.”
해련은 어깨를 으쓱였다. 딱히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강 선생이 우리 편이잖아.”
밑도 끝도 없는, 그러나 그만큼 깊은 신뢰.
상호는 솔직히 그런 기대가 부담스러웠지만, 그래도 그 마음은 모르는 바가 아니라 토를 달지 않았다.
그는 다시 걸음을 옮기려다가 꽤 먼 곳까지 걸어왔다는 것을 깨닫고 당황했다.
“교장선생님, 슬슬 돌아…….”
터억
“……응?”
돌아서려는 그의 손목을 해련이 덥석 붙들었다.
해련의 입꼬리가 스산하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어디 가?”
“저, 저희 너무 멀리 온 것 같아서…….”
“강 선생이 데려온 거 아니야?”
해련이 그의 곁에 찰싹 달라붙었다.
“이렇게 어둡고 한적한 곳까지 데려왔으면…… 역시 그럴 생각인 거지?”
“……네?”
가게의 불빛도, 도로의 가로등 빛도 닿지 않는다. 주변에 사람조차 없는 바닷가의 외진 끄트머리.
상호의 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 일단 돌아가죠.”
“강 선생이 데려왔으면서 왜 시치미를 떼? 밀당? 이거 밀당이라는 거지?”
“저 소변이 좀 급해서…….”
“싸.”
“……네?”
“바다에 싸면 되잖아.”
해련이 그를 은근히 갯바위 뒤 구석진 곳으로 밀어붙였다.
“사실 뻥인 거 다 알고 있어.”
“아니, 진짜 지릴 것 같…….”
“내가 안 마렵게 만들어 줄게.”
가느다란 손가락이 옷 아래로 들어와 그의 배를 쓸었다.
“다 강 선생 잘못이야.”
“네?”
“이런 빨래판을 훤히 내놓고 다녔잖아. 그래놓고 아닌 척 산책만 하려고 하다니……. 자, 자. 이쪽으로 와.”
“이거, 이거 하솔이한테 들키면 어쩌려고 그래요! 이거 안 놔요?!”
“하솔이는 삼촌이 갖고 싶대…….”
“아니……!”
밤의 어둠에 두 남녀의 그림자가 겹쳐지고.
철썩철썩 치는 파도가 둘에게서 나는 소리를 가렸다.
* * *
펜션에 들어서자 아이들이 거실에 둘러앉아 있었다. 어지러이 놓인 트럼프 카드를 보니 무언가 게임을 하고 있었던 듯했다.
단비가 귀를 쫑긋하며 고개를 들었다.
“멍, 선생님 왔다.”
“하이고, 쌤예, 어데 갔다 이제 옵니꺼. 어라, 얼굴이 반쪽이 됐네예.”
“꼭 빨아먹힌 것 같습니다.”
“……아니야.”
하마터면 빨아먹힐 뻔했지만, 다행히 직전에 도망칠 수 있었다. 상호는 한숨을 쉬며 아이들 옆에 앉았다.
“뭐 하고 있었어?”
“쌤은 말해도 모를걸. 최신유행 게임이라.”
“뭔데, 어떻게 하는 건데. 알려줘봐.”
“봐봐. 한 장을 뽑아가지구…….”
뒤따라 들어온 해련이 샐쭉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지만, 상호는 일부러 못 본 척 아이들과 카드게임을 했다.
해련이 한숨을 폭 쉬었다.
“애들 빨리 씻고 자게 해요, 강 선생. 내일도 있잖아. 논다고 늦게 자면 더 못 노는 거야.”
“에이, 조금만 놀다 자죠, 뭐…….”
“강 선생도 얼른 자고.”
“네, 네.”
보나마나 문을 따고 들어오려는 것이다. 상호는 그런 해련의 속셈을 눈치 채고 대충대충 건성으로 대답했다.
“이거 이렇게 겹치면 돼?”
“응. 뭐야, 쌤 좀 치네. 같이 해볼래?”
“내가 공부를 안 했어도 머리는 좋아, 임마. 해봐. 한번 해봐.”
“오케이.”
태화가 그와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벌칙은? 인디언밥?”
“멍, 인디언밥 식상해…….”
그때 이츠키가 손을 살짝 들었다.
“인디언밥을 거꾸로 하는 건 어떻습니까?”
“응?”
그게 무슨 말이냐. 아이들과 상호의 눈이 끔뻑였다.
“거꾸로?”
“선생님 누워 보는 겁니다.”
“나?”
무슨 짓을 하려는 걸까. 느낌이 수상한데. 상호는 고개를 기웃거리며 일단 바닥에 바르게 누웠다.
별안간 아랫배보다 더 아래쪽에 이츠키의 손이 날아들었다.
“……으아아아악!”
“이렇게 때리는 겁니다.”
“우왓, 이거 좋다.”
“이걸로 하자, 헤헤…….”
“아니, 아니……! 나빛아? 얘들아……?”
“꼬우면 쌤도 우리한테 해. 됐지?”
“아니…….”
“시작!”
“제발…….”
오늘도 아이들을 이길 순 없었다. 말로도, 게임으로도.
그래도 마음은 편했다. 잊을 수 있어서. 어제 세희와 했던 말도, 오늘 해련과 했던 말도 잠시 마음 한켠에 치워둘 수 있어서.
그렇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근심과 걱정 따위는 전부 날려버리고, 세상이 뒤바뀌는 날이 적어도 오늘은 아닐 거라 믿으며.
아이들에게 두들겨 맞았다.
“인디언~밥!”
“으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