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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여고의 남선생-451화 (451/501)

<451화>

451. 집단가출

그날 이후로 세희는 수업을 빠지지 않았다.

이전처럼 성실하게. 아니 이전보다 더 맹렬하게. 검을 휘두르는 세희의 기세는 날이 갈수록 날카로워졌고, 실력도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다.

목표가 생긴 것처럼.

상호는 그런 세희의 모습이 그저 대견하기만 했다.

“그래서.”

해련이 차를 홀짝였다.

“이제는 강 선생의 몇 퍼센트 정도?”

“으음…….”

몇 퍼센트라. 상호는 턱을 괴고 고개를 기우뚱했다.

세희의 내공의 그릇은 이제 상호의 30% 정도. 내공이 나오는 길은 50% 정도. 반응속도는 70%, 임기응변은 40%, 검술은 80%.

종합하면.

“이제 한…… 30퍼센트? 그쯤이요.”

아직은 세희 세 명이 와도 상호가 쓸어버릴 수 있었다. 한 다섯 명쯤이면 곤란할까. 30%도 조금은 높게 쳐준 감이 있었다.

그런데 해련이 눈가를 씰룩였다.

“내가 강 선생의 30퍼센트만도 못하다고?”

“네? 아, 아뇨. 그게 아니고…….”

큰일 났다. 상호는 진땀을 흘리며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황급히 말을 고쳤다.

“30퍼센트! 30퍼센트가 부족하다고요. 그러니까 70퍼센트인 거죠. 교장선생님도 아마 그쯤…….”

“능구렁이처럼 잘도 빠져나가네, 강 선생.”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인 상호에게 해련이 입을 삐죽였다.

“뭐 어쨌든, 강 선생.”

“네.”

“방학은 어떻게 할 거예요?”

“방학이요?”

지금은 7월 초. 방학은 아직 2주는 남았다. 벌써부터 계획을 짜기엔 너무 이른데.

게다가 상황도 그리 여유롭진 않았다.

“글쎄요, 저는 일단 세희 가르쳐야죠.”

“그래도 쉬는 날은 있을 거 아냐.”

“그것도 상황 봐가면서 쉴 수 있는 거지……. 딱히 정해놓진 않았어요. 왜요. 무슨 일인데요?”

“아니 그냥, 강 선생이 놀 수 있는 날 일정 맞추려고 그랬지.”

해련이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많이 바쁜가 보네.”

“바빠야죠.”

“그래도 내가 도와주면 시간이 좀 나지 않을까?”

“네?”

그는 눈을 끔뻑였다.

“어떻게요?”

“내가 심법이나 강기를 가르칠 순 없겠지만, 칼 대 칼은 가르칠 만하잖아?”

해련이 씩 웃었다.

“강 선생이 다른 일로 바쁠 땐 내가 세희 가르쳐 줄게. 그러면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길 거 아니야.”

“아니 그래도…….”

상호는 고개를 기우뚱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교장선생님이 세희를 가르쳐요?”

그럴 시간이 되겠냐. 또는 교장이 학생 하나를 편애해도 되겠냐. 그런 의미를 담아 물은 것이었다.

그런데 해련은 다르게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강 선생.”

해련이 쥔 찻잔 손잡이가 쩌저적 갈라졌다.

“지금 내가…… 세희한테 칼로도 밀린다는 거야?”

“네? 아뇨, 아뇨! 그런 말이 아니라…….”

다행히도 그때 수업 종이 울렸다.

하늘이 돕는구나. 상호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이만 수업 가볼게요.”

“…….”

“세희 이야기는 나중에 해요!”

교장실 문이 쾅 닫혔다.

해련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입술을 삐죽이다가, 한숨을 폭 쉬고 금이 간 찻잔을 홀짝였다.

‘내가 그렇게 약한가…….’

각설탕 하나가 둥실 떠올라 찻잔에 퐁당 빠졌다.

* * *

7월 첫째 주. 1학기의 기말고사.

3학년이 된 후로 거의 잊고 살았지만, 그래도 신경을 아예 안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상호는 자리에 앉은 아이들을 쭉 둘러보았다.

“우리 1학년 없지? 혹시 있어? 내가 1학년이다, 하는 사람 손 들어 봐.”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다들 익숙하지? 그치만 익숙하다고 해서 긴장을 풀란 말은 아니고. 내 최선이 어디까지인가, 똑바로 확인하고 오는 거야. 알지?”

“네.”

“그래. 가자.”

상호는 교실 가운데서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아이들이 다가와 그의 손에 손을 겹쳤다. 2학년도, 3학년도. 시험을 보지 않는 세희와 다혜도.

태화가 핀잔을 날렸다.

“야, 니랑 언니는 시험도 안 보면서 왜 끼어?”

“1등 기운 좀 받아가라고.”

“참나, 나보다 성적 딸리면서…….”

태화는 혀를 차고는, 손무더기의 제일 위에 놓인 은율의 손등을 짝 내리쳤다.

“자! 아자! 가자! 이기자! 파이팅!”

“멍, 파이팅!”

“근디 와 니가 하노?”

“파이팅~.”

나빛이 방실방실 웃으며 상호에게 손뼉을 내밀었다.

“선생님, 선생님도요. 파이팅~.”

“으응.”

상호는 씩 웃으며 나빛과 손뼉을 마주쳤다.

“파이팅.”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복도로 나와, 시험 준비가 한창인 운동장으로 향했다.

* * *

“실환가?”

둥실둥실 날아온 태화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게 말이 돼? 내가 떨어졌다고?”

“그러게 방심하지 말았어야지.”

상호는 허공에 뜬 채로 혀를 찼다.

“네가 얼마나 강하든 상대가 얼마나 약하든 방심하지 마. 사람은 바늘 하나로도 죽는다.”

“우씨, 쌤이 스파링을 똑바로 가르쳐 줬으면 이길 수 있었는데…….”

“듣고 있냐?”

전혀 듣는 기색이 아니었다.

운동장에서는 나빛이 학살을 벌이고 있었다. 상호는 나빛의 상대로 올라온 무예가 학생을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나빛이도 시험에서 빼야 하나…….’

칼이 닿지 않는 곳까지 날아올라 멀리서 성창만 날려대는 모습이 천사보다는 차라리 악마에 가까웠다.

평범한 3학년은 이기어검을 쓸 수 없으니, 마법사가 아니면 나빛을 이기기 힘들 것이다. 무예가에겐 무리라고 봐도 될 터였다.

두 명 정도를 제외하면.

상호는 그 두 명을 내려다보았다.

콰앙

굉음이 경기장의 결계를 울렸다.

흙먼지가 내려간 곳에는 지윤이 주먹을 앞으로 뻗고 있었다. 그 앞의 상대는 검을 놓치고 결계에 처박힌 참이었다.

더해서, 그 옆으로는.

촤악

칼이 소녀를 베었다.

보호 마법 덕분에 정말로 베이진 않았지만, 승패를 가르기에는 충분했다. 은율은 가볍게 뒤돌아서 태연하게 납도를 했다.

“므앙.”

상호의 옆에 떠 있던 다혜가 무어라 옹알거렸다.

“느아으으~.”

“언니는 4학년이잖아. 잘난 척 하지 마.”

“꾸웅…….”

다혜는 세희에게 한 소리 듣고는 어깨가 쪼그라들었다.

별 탈이 없으면 저 셋 중에 한 명이 1등을 할 것이다. 상호는 3학년 아이들을 보고는 딱히 걱정을 하지 않았다.

한편 2학년 경기장에서는.

[아니! 64등 하겠다니까요!]

“학생, 아무리 그래도…….”

[데이터만 쌓게 해주세요! 이겨도 진 걸로 하면 되잖아요! 패자전에서도 다 진 걸로 할 테니까!]

미래가 한 시간째 교사와 입씨름을 하고 있었다.

어지간하면 포기할 법도 한데. 하긴 저런 열정이 있으니 저기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이다. 좀 괴짜 같긴 해도.

나머지 아이들은 별다른 문제 없이 경기중이고.

상호는 운동장을 쓱 둘러보다가 세희를 돌아보았다.

“수업하러 갈까?”

그 말에 세희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운동장은 쓰고 있으니, 꾸웅이 살고 있는 뒷산으로 가야겠다. 그는 세희에게 뒷산을 가리키며 그쪽으로 가자고 말하려 했다.

그런데 태화가 툭 끼어들었다.

“지금 가면 안 될 텐데.”

“응?”

“몰라. 알아서 해. 근데 추천은 안 해.”

“……무슨 소리야?”

영문 모를 소리를 한다.

어쨌든 이대로 시간을 썩히는 것보다는 수업을 하는 게 나을 것이다. 상호는 세희의 등을 두드렸다.

“뒷산으로 가자.”

“므앙!”

“다혜는 오고 싶으면 와. 근데 대련은 안 시킬 거야.”

“꾸웅…….”

“가자, 세희야.”

“네.”

둘은 경공으로 날아 뒷산으로 향했다.

* * *

그날은 별일이 없었다.

수업 잘 하고, 집이 반파되어 상심한 꾸웅을 달래고, 학교로 돌아와 아이들의 성적을 확인한 후, 수고한 기념으로 학교 앞 상가에서 다같이 밥을 먹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상호는 교실 문을 열었다가 크게 당황했다.

“……응?”

세희가 휑한 교실에 홀로 앉아 진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다.

“세희야? 애들은……?”

“모르겠어요…….”

“문자는…… 해봤어?”

“아무도 안 봐요…….”

무언가 사건이 터졌다.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수습해야 한다. 상호는 황급히 핸드폰을 꺼내 단체 문자 방을 확인했다.

-얘들아?

메세지를 보내자마자 옆의 숫자가 15에서 14로 줄어들었다.

-다들 어디 갔어...?

이번에는 숫자가 줄어들지 않았다.

아마 단체로 삐진 척 씹으려는데 한 명이 무심코 확인해버린 모양이었다. 높은 확률로 나빛, 혹은 단비. 아니면 태화.

머릿속에 어떤 목소리가 자동으로 재생되었다.

‘아, 선생님 문자 왔다~.’

‘하이고 이 가스나야, 톡 읽지 말라 캤제!’

‘으이잉…….’

대충 이런 상황이 아닐까.

어쨌든 빨리 찾아서 훈계를 하든 용서를 빌든 수습을 해야 한다. 상호는 울상을 지으며 기감을 넓혀 아이들을 찾으려 했다.

그때 누군가가 교실 문을 두드렸다.

“상호야…….”

빼꼼 열린 문으로 설미가 고개를 들이밀고 있었다. 꼭 상호처럼 당황한 표정으로.

상호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직감했다.

“……저희 반 애들이 있어요?”

“응…….”

설미가 울상을 지었다.

“조례하고 수업해야 하는데…… 교실 뒤에 앉아서 나가질 않아…….”

상호는 이마를 짚었다.

얘들이 또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일단 가보죠.”

상호와 설미, 세희는 복도를 달려 설미의 교실로 향했다.

뒷문을 드르륵 열어보니 정말로 아이들이 죽치고 앉아 있었다. 설미네 학생들의 황당해하는 눈빛은 덤.

상호는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얘들아?”

“누구세요?”

나빛이 눈을 깜작였다.

“저희는 모르는 분인데…….”

“아니, 장난치지 말고……. 우리 교실로 가서 얘기하자. 응? 방해되잖아…….”

“저희는 교실이 없어요…….”

아이들이 거지마냥 쪼그려 앉아 서로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교실도 없구…… 시험 봐주는 선생님도 없어요…….”

“그러면 미진 선생님, 미진 선생님 있잖아, 응? 미진 선생님 교실로 가자…….”

“그분은 교무실에 할 일이 많으세요…….”

“아저씨예.”

지윤이 굳이 아저씨라는 단어를 씹어 내뱉듯 말했다.

“빤때기 좀 잘났다고 그래 굴지 마이소.”

“내가 왜…….”

“지들이 을마나 노력했는지는 봐야 될 기 아입니꺼. 아, 아입니다. 아재가 누구라고 지들 시험을 봐예. 뉜지 모르겄는디 걍 갈길 가이소. 울 학교는 잡상인 출입 금집니더.”

“아으!”

다혜도 지윤과 함께 손을 털레털레 내저었다.

시험을 안 봤다고 뿔이 난 모양이었다. 하지만 세희와의 수업도 만만찮게 중요한데. 그렇다고 마신과 관련된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하기는 싫고.

상호는 태화와 다혜에게 너희는 알지 않느냐는 눈빛을 보냈다.

“뭘 그렇게 그윽하게 봐! 그래도 소용없어!”

“므아?”

모르는 듯했다.

아이들에게 소홀했던 건 인정하지만, 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그걸 아이들에게 말해줄 수가 없으니.

상호는 눈물을 찔끔 흘리며 두 손을 들었다.

“알았어, 미안해. 다음부턴 안 그럴게…….”

“누구신데예.”

“그 말을 어떻게 믿어요……?”

“아니 정말로……. 교장선생님이 세희 수업 도와주신다고 했거든? 그니까 이제 세희 검술 대련은 교장선생님한테 맡기고, 내가 너희도 신경 쓸게……, 응? 그러니까 교실 가자…….”

“약속이에요.”

“약속입니더.”

“그래, 그래…….”

아이들은 그제서야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바닥에서 일어났다.

“또 올게요~.”

“잘 쉬다 갑니다~.”

“……으응.”

교실을 나가는 아이들에게 설미가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다.

상호는 아이들과 함께 복도를 걸으며 손끝으로 이마를 꾹꾹 눌렀다.

‘방학에 어떻게든 시간을 만들어야겠구나…….’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니.

시험을 안 봐줬다고 남의 교실을 점거하고 꼬장을 부리는데, 방학에 같이 안 놀아줬다가는 어떻게 될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이번에는 바다로 가볼까.’

2학년 아이들과는 못 가봤으니까.

가서 하룻밤 정도는 지내고 올 수 있을 것이다. 해련이 검술 수업을 도와줘서 자투리 시간을 모은다면.

‘어디가 좋은지 알아봐야겠다.’

어느새 그의 머릿속에도 아이들과 놀 생각이 스며들고 있었다. 마신에 대한 걱정은 잠시 잊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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