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여고의 남선생-448화 (448/501)

<448화>

448. 죽음의 길

“죽자사자 싸우지 말고…….”

상호는 진땀을 흘렸다.

“적당히 봐주세요. 어디까지나 대련이니까. 아시죠?”

“알지.”

전혀 모르겠다는 말투였다.

“걱정하지 마요.”

“전력을 다할 생각은 아니신 거…… 맞죠?”

해련의 날카로운 눈빛이 상호를 꿰뚫었다.

“내가 그럴 것 같아 보이나?”

아이를 상대로 전력을 다할 만큼 내가 힘도 없고 양심도 없어 보이느냐, 그런 뜻이었다.

상호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뇨. 혹시나 해서…….”

“걱정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걱정, 하지, 말아요. 강 선생.”

“네에…….”

분명 세희와 대련을 하고 있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상호는 검을 치켜드는 해련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본인 나이의 3분지 1만큼도 안 산 아이에게 자존심을 세워서 어쩌겠다는 건지.

‘싸워서 이겨봤자 더 쪽팔린 일인데…….’

정작 본인은 모르고 있으니.

한편 세희는 조금 긴장한 기색이었다. 여태 상호와 학생들만 상대하다가 처음으로 해련을 상대하게 되었으니 그럴 법도 했다.

상호는 세희를 흘끗하다가 손을 들어 올렸다.

“신호할게요.”

“응.”

“하나, 둘…… 셋.”

해련의 발이 땅을 박찼다.

그보다 아주 조금 더 늦게 세희의 발도 땅을 박찼다. 해련은 세희를 향해서, 세희는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둘의 거리는 멀어지지도 좁혀지지도 않았다.

해련이 손을 앞으로 내질렀다.

콰아아아

폭포 같은 기운이 세희를 향해 쏟아졌다.

강기의 강도는 세희가 위지만, 내공의 양은 해련이 위. 검이 아무리 날카로워도 폭포를 막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윽…….”

장력에 직격당한 세희의 몸이 크게 휘청였다.

해련은 그 틈을 타 달려들어 세희의 어깨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칼날에 황금빛 강기가 두텁게 타오르고 있었다.

카앙

그러나 세희의 호신강기를 뚫지는 못했다.

세희의 몸에서 초혼강기가 피어올랐다. 내공이 많지 않아 두께는 얇았다. 한 치만큼도 안 될 정도로.

하지만 해련은 그 얇은 강기도 뚫을 수가 없었다.

‘……으음.’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눈앞에 두고 나니 꼭 뚫을 수 있을 것만 같아서 포기하기가 쉽지 않았다.

해련은 내공을 뻗어 세희의 두 팔을 붙잡았다.

“……윽!”

세희의 입에서 당황성이 터져 나왔다.

폭주한 다혜와 빙의당한 건흠은 내공의 총량이 많아서 해련과 맞상대가 가능했으나, 세희의 경우는 그렇지 못했다.

해련은 방심하지 않고 세희의 전신을 옭아매었다.

“어때.”

그리고 상호를 흘끗했다.

“계속할 의미가 있을까?”

“아직 끝난 게 아니잖아요.”

상호는 어깨를 들썩였다.

“납득할 수 있는 결정타 정도는 있어야죠.”

그렇게 말한다면야.

해련은 주먹을 쥐어 세희의 복부에 날렸다.

쿠우우……

태산과 같은 기운이 공기를 울리며 철퇴처럼 날아갔다.

천색창염의 초혼강기를 깰 수는 없지만, 발경을 응용하면 강기 내부에 충격을 전할 수 있다.

껍데기가 단단할수록 충격은 고스란히 전달되는 법.

해련의 주먹이 세희의 강기에 닿았다.

‘이겼…….’

……다고 생각한 순간.

세희에게서 뻗어 나온 무언가가 해련의 눈을 찔렀다.

‘무슨……?!’

해련은 다급히 몸을 뒤로 뺐다.

칼은 아니었다. 세희의 팔은 그대로 묶여 있었다. 그렇다고 강기나 강검도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찔린 게 아니었다.

‘……살기라고?’

해련은 어안이 벙벙해하면서 눈을 끔뻑였다. 자신의 눈이 정말로 멀쩡한지 확신할 수가 없어서.

그만큼 명료한 살기였다.

‘어떻게…….’

살기는 기척.

베는 척. 찌르는 척. 어깨만 살짝 움직여도 출수를 예상하게 만들고, 한 걸음만 내디뎌도 돌진을 예상하게 만든다.

경지에 오른 이는 눈동자만 움직이고도 살기를 쏠 수 있으나.

‘고작 스물도 안 된 아이가…….’

해련은 혀를 내두르며 검을 들었다.

그때 세희가 자신을 묶고 있던 기를 기로 찔러서 끊어냈다.

‘……!’

해련의 얼굴이 굳었다.

팔다리가 자유로워진 세희는 이제 수없이 많은 가짓수의 살기를 뿜어냈다.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사선베기, 정면찌르기. 옆구리에, 심장에.

해련은 그 살기를 떨쳐내고 세희의 검로에 집중하려 했다.

‘피해야……!’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이미 달려든 세희가 해련의 검을 베어 넘기고 있었다.

“……아.”

금색 강기가 하늘색 강기에 싹뚝 끊기고.

칼날이 허공을 날아 바닥에 박혔다.

“…….”

멍하니 선 해련에게 상호가 말했다.

“너무 상심하지 마요. 질 수도 있는 거죠.”

“…….”

“나이가 많다고 해서 강한 것은 아닌 법이고…….”

“…….”

해련은 자신의 부러진 검을 내려다보았다.

그때 본관 쪽에서 아이들이 속닥이는 소리가 들렸다.

“교장선생님 세희 언니한테 졌어, 멍.”

“세희 언니 엄청 쎈가 봐…….”

“교장선생님이 생각보다 약하신가?”

“역시 나이는 못 속이는…….”

해련의 고개가 자동으로 휙 돌아갔다.

‘……!’

본관 입구에 선 상호의 반 아이들.

그 가운데에서 하솔이 해련과 세희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으.”

해련의 입에서 얼빠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으으…….”

“교장선생님?”

상호는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한 해련에게 다가가며 당황했다.

“왜…… 왜 그러세요? 괜찮아요?”

“으으으…….”

“저어, 교장선생님……?”

“으으으으……!”

“왜…….”

상호가 해련의 팔을 살며시 잡은 순간.

해련이 상호를 덥석 끌어안고 왈칵 울음을 터트렸다.

“으허허헝……!”

“교장선생님? 아니 갑자기 왜 우세요!”

“몰라! 강 선생이 책임져! 나 학교 못 다녀! 흐어헝헝……!”

“한번 졌다고 뭘 그러세요. 뚝, 뚝. 애들 앞에서 울지 말고…….”

“학생한테 졌는데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녀! 쪽팔리자나! 으흑, 흐헝헝…….”

교장이 되어가지고는 우는 게 더 쪽팔린다는 생각은 못 하는 걸까. 상호는 해련의 등을 토닥이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게 위험하다니까…….’

늙은이가 똥고집 부리다가 당했으니 자업자득이라. 그는 품에서 우는 해련을 달래며 몰래 혀를 찼다.

“그만 울어요. 손녀뻘들 앞에서 쪽팔리게…….”

“흐어엉…….”

“……에휴.”

하얀 와이셔츠가 눈물로 푹 젖어 들었다.

* * *

자기도 강해지고 싶다며 울고불고 달라붙는 해련을 초혼강기 수련이나 열심히 하라고 떼어놓은 뒤, 세희와 수업을 하다가 점심을 먹으러 급식소에 들어온 와중에.

뒤쪽에서 다른 반 아이들이 소곤대는 소리가 들렸다.

“쟤가 걔야?”

“응. 교장선생님 이겼다는 애.”

“강쌤 수제자래.”

그 말에 세희의 콧대가 살짝 높아졌다.

상호는 그 모습을 보고는 쓰게 웃었다.

“수제자래.”

“그럼요.”

세희의 어깨가 으쓱였다.

“당연한 걸 가지고.”

그때 뒤에서 또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강쌤이랑 같은 심법이라는데?”

“응? 진짜? 근데 심법 이름이 뭐야?”

“몰라. 근데 쟤네 반에서도 쟤 한 명만 배운 거래.”

“진짜? 와~. 비밀 심법? 그런 느낌? 부럽다~.”

“쟤가 강쌤 첫 제자랬나? 무예가 중에서?”

“응.”

한 아이가 피식 웃었다.

“운좋네.”

그 말에 세희의 젓가락이 우뚝 멈췄다.

“내가 첫 제자로 들어갔으면 나한테 가르쳐줬을까?”

“닌 안 예뻐서 안 됨.”

“X바련이…….”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를 뒤로한 채.

상호는 굳어 있는 세희에게 나직이 속삭였다.

“신경 쓰지 마.”

“괜찮아요.”

세희도 곧 태연하게 반찬을 집었다.

“부러워할만한 심법이니까.”

노력을 외면하는 아이들의 값싼 질투심일 뿐. 상호는 세희의 등을 토닥이고 식사를 계속했다.

둘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 세희의 등은 대쪽처럼 당당하고 꼿꼿했다.

* * *

세희의 검이 갑자기 멈췄다.

“선생님.”

“응?”

허공에 떠 있던 상호의 강검도 움직임을 멈췄다. 그는 눈을 끔뻑이며 세희를 바라보았다.

“왜?”

“제가 무공 공부를 좀 해봤는데요.”

세희는 골똘히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내공이 완벽하게 같으면, 거리가 떨어진 상태에서도 기의 연결을 통해 내공을 주고받을 수 있고, 전투 도중에도 서로의 내공을 합치거나 나눠서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라던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상호는 피식 웃었다.

“어디서 읽었어?”

“그냥, 이것저것 보다가…….”

“어디까지나 이론일 뿐이야.”

그의 검지가 서로의 검을 번갈아 가리켰다.

“내공이 완벽하게 같을 수는 없어. 아무리 같은 혈도를 지난다고 해도 사람마다 그 길이가 다르고, 크기가 다르고……. 결과적으로 만들어지는 내공은, 심법이 완벽하게 같아도 성질이 아주 조금은 달라질 수밖에 없어. 당장 색깔부터가 다르잖아.”

“그치만 저희끼리는 내공을 주고받을 수 있잖아요.”

“그런 상태에서도 서로의 내공은 구별할 수 있지.”

상호는 검을 치켰다.

“그리고 연수합격이란 것부터가 다분히 과대포장된 면이 없잖아 있어. 실전을 고려하지 않은 허상이 섞여 있단 뜻이야.”

사실은 변명이었다. 다른 이유가 있었다.

세희는 최후의 보루. 그가 실패하면 다음을 대신할 사람. 그렇기에 반드시 지켜야 했고, 그가 혼자서 이겨내지 못할 정도로 위험한 상황에는 애초에 세희를 데려가지 않을 터였다.

그렇기에 그와 세희가 함께 싸울 일은 없을 것이고.

연수합격을 익힐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자, 검술이나 더 배우…….”

그때 한 자락의 기가 상호의 손에 닿았다.

‘……으음.’

이 아이도 한 고집 한다는 걸 깜빡하고 있었다.

상호는 한숨을 푹 쉬고 손의 혈도를 열었다.

“그래. 한번 해 보자.”

“네.”

세희가 씩 웃고 상호에게 기를 밀어 넣었다.

한 번도 시도해본 적 없는 이론의 영역. 상호도 이 내공의 원격 연결이란 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저 깜깜한 길을 걷듯 더듬어 나아갈 뿐.

‘이러면 세희가 나한테 내공을 뻗은 것뿐인데…….’

서로의 내공이 연결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고민하다가 세희의 기를 따라 자신의 내공을 흘려보냈다.

그의 내공이 세희에게 닿는 순간.

“……크읍!”

“흑……!”

둘의 몸이 벼락을 맞은 듯 움찔했다.

순간 시야가 깜빡이며 어지럽게 바뀌었다. 세희를 보는 상호의 시야로, 상호를 보는 세희의 시야로.

둘이 동시에 검을 놓고 쓰러지자 내공의 연결이 끊겼다.

“으…….”

세희가 머리를 부여잡고 바닥을 뒹굴었다.

상호도 머리가 깨질 듯했지만, 간신히 참고 일어나 세희에게 다가갔다.

“세희야, 괜찮……?”

순간, 상호의 머릿속에 어떤 광경이 떠올랐다.

급식소. 뒤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대화.

그리고 곁에서 밥을 먹는 상호 자신.

‘이건……?’

세희의 기억.

그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 허공을 바라보다가, 어느새 일어난 세희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껏 자신에게는 한 번도 향한 적 없는, 순수한 원망의 눈빛.

“……세희야?”

“그런 거였어요?”

세희의 눈엔 눈물이 고여 있었다.

갑자기 무슨 말인가. 상호는 어안이 벙벙해서 눈을 끔뻑였다.

“세희야? 무슨 말…….”

“절 가르치는 게…… 선생님이 사지로 가기 위해서라고요? 제가 강해지는 게 선생님을 죽으라고 내모는 거였어요?”

상호의 머릿속이 멍해졌다.

아마 초혼강기가 연결되면서 영혼까지 연결된 모양이었다. 그때 세희가 그의 생각을 읽어버린 것이다.

돌처럼 굳어버린 그에게 칼날처럼 시퍼런 눈빛이 꽂혔다.

“말해봐요.”

“세희야, 난…….”

“변명하지 말고 대답을 하라고요!”

세희가 버럭 소리쳤다.

“나는 선생님을 도우려고 따라가고 있었는데! 선생님은 내가 필요 없었어요? 아니, 선생님이 죽기 위해 내가 필요했어요? 선생님이 죽으면 내가 쓸데가 있었던 거고, 안 죽으면 쓸데가 없었던 거예요? 난 그냥 대체품일 뿐이에요? 선생님은 대체품을 키우고 있었던 거예요? 같이 싸워줄 제자가 아니라?”

말이 속사포처럼 쏟아져 나왔다.

“좋아요. 대체품 취급하는 것까지는 좋아요. 그런데, 날 가르치는 이유가 나여서가 아니라, 악마를 잡아야 해서, 천색창염의 제자가 필요해서, 그것뿐이었어요? 내가 나였기 때문이 아니었던 거예요?”

“……세희야.”

“말해 봐요, 당장!”

마지막은 비명이 되어 터져 나왔다.

상호는 마른침을 삼켰다. 목이 바싹 말라서. 소리가 갈라져서.

그렇게 힘겹게 낸 목소리조차 변명이었다.

“나는 헌터야. 내 업은 사람들을 구하는 거고. 그 임무를 위해서는 사적인 감정은 배제해야 해……. 그저 가장 확률 높은 방법, 가장 안전한 방법을 택하는 것만이,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인 거야…….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헌터가.”

“그러세요?”

세희가 그를 노려보았다. 죽도록 밉다는 듯.

그리고는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가.

“알았어요.”

땅으로 힘껏 내동댕이치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이딴 심법, 배우지 말았어야 했는데.”

챙그랑……

칼 울리는 소리가 상호의 가슴에 박혔다.

“……세희야.”

그는 세희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세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본관을 향해 달려가 버렸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잡으려면 잡을 수 있었다. 지금도.

하지만 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

같은 길을 가면 같은 결말을 맞는다.

그는 스승이 걸어간 길을 다시 걸어가야 했고, 그 끝에 기다리는 것이 성공일지 실패일지는 알지 못했으나, 자신의 결말이 아이들과는 다른 방향에 있다는 것만은 직감하고 있었다.

그래도 가야 했다.

이 길밖에 없어서.

‘…….’

정녕 이 심법은 스승을 죽음으로 내모는 심법이 될 수밖에 없는가.

상호의 손이 허공을 더듬다가 축 늘어졌다.

‘…….’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세희를 붙잡을 말도, 자신을 다잡을 말도.

그는 세희가 던진 검을 주웠다.

‘……미안해.’

할 말은 그뿐.

터덜터덜, 본관을 향하는 발소리가 교정을 외롭게 떠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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