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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여고의 남선생-447화 (447/501)

<447화>

447. 나아감

봉인소는 완전히 철수를 했다.

더 이상 악마를 봉인할 필요도 없을 뿐더러, 이제 악마들도 상호가 자신들을 죽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 앞으로는 전면전이 아닌 이상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터였다.

그래서 봉인소에 있던 모든 설비와 인원을 빼내고, 모두가 협회 본부로 돌아온 날의 저녁.

상호와 태화와 민정과 베르멜로는 도현의 집무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러니까.”

도현이 그들을 둘러보았다.

“악마가 합체를 했다고?”

“그렇게 알아들어도 되고.”

상호는 굳이 바로잡지 않았다. 그렇게 이해해도 딱히 상관없을 것 같아서.

“중요한 건 놈들이 갈라섰다는 거지.”

“그것까지도 함정이라면?”

“그건 앞으로 알아봐야겠지. 근데 아마 아닐 거야. 만약 그게 다 함정이라면…….”

그의 시선이 베르멜로를 향했다.

“이 녀석이 스파이란 거겠지.”

“네?! 그게 왜 그렇게 되는데요?!”

“대악마들에 대해 알려준 건 너니까. 그치만 악마의 심장에 대해서 알려준 것도 너지. 그러니까 넌 스파이가 아닐 거야. 아무리 그래도 자기들을 죽이는 방법까지 알려주면서 함정을 팔 리는 없으니까.”

“그럼요…….”

베르멜로가 한숨을 폭 쉬었다.

그런 베르멜로의 옆에서는 민정이 뚱한 표정으로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상호는 그런 그녀를 불렀다.

“누나?”

“그 녀석들, 서로 싸우는 것 같았지?”

“응.”

“왜 싸우는 거지?”

“……응?”

“동료가 강해지면 이득이잖아.”

민정이 눈살을 찌푸렸다.

“개벽 때 찢겨져 죽었다는 불사의 악마의 힘을, 기만의 악마가 얻은 거잖아. 그게 왜 서로 싸울 이유가 되지?”

“……글쎄.”

상호는 눈을 끔뻑이며 베르멜로를 돌아보았다.

“너희도 누가 더 출세하면 배 아프고 그러냐?”

“아뇨, 그런 건 아닐 텐데…….”

“그러면.”

상호와 민정의 눈이 마주쳤다.

“기만의 악마라는 놈이…….”

“마신을 배신하려는 거겠지.”

불사의 힘을 얻었기 때문에.

어쩌면 마신의 힘을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불사의 힘을 흡수한 것처럼.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상대해야 할 놈은 그 셋뿐인 거지. 야성, 신비, 지배. 이미 다 상대해본 놈들이고. 그럼 별것 없겠지.”

“저어…….”

“응?”

베르멜로가 손을 살짝 들었다.

“대악마들은…… 마신과 연결되어 있어서, 마신이 강해지면 같이 강해지고, 마신이 약해지면 같이 약해져요. 그러니 그 녀석들도…….”

“마신이 회복할수록 점점 더 강해진다?”

“네.”

상호는 턱을 괴었다.

“마신만큼 강한 건 아니잖아?”

“그렇긴 한데, 각자가 맡은 영역에서는…… 정확히 마신만큼 강해요. 야성의 악마는 마신만큼 육체가 강하고, 신비의 악마는 마신만큼 마법과 주술을 잘 쓰고…….”

“그래도 마신보다 강한 건 아니잖아?”

“……그건 그렇죠.”

“그걸로 충분해.”

마신과도 한 번 싸워 봤으니.

여섯 놈이 다 합체해도 마신이 한 마리 더 생기는 것뿐이다. 게다가 그중 두 놈은 이미 탈주했으니 그럴 일도 없고.

그런데 베르멜로는 고개를 저었다.

“봉인 직후에는 마신도 약해져 있었어요. 이쪽 세계로 넘어오기 전에는 더 강했고……. 아마 주인님을 이길 수 있단 확신이 생기기 전까진 회복에 전념할 거예요.”

“더 강해진다고……?”

상호는 검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좀 약해진 감은 있긴 했다. 그러나 봉인 전에 만났을 때보다 개벽 전이 더 강했단 말을 들으니 쉽게 믿기지 않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때 도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잠깐만, 얘들아. 악마를 죽이는 방법이 뭐라고?”

“악마의 눈으로 악마의 심장을 찾아서, 영혼을 담은 마나로 공격한다고.”

“그럼 마신은 왜 예경이랑 널 무서워했던 거야?”

“내가 초혼강기를…….”

상호는 대답하려다가 말문이 막혔다.

그의 의문을 도현이 먼저 말했다.

“봉인 전에도, 봉인 후에도 악마의 눈은 없었잖아. 그런데 봉인 직후에 마신을 만났을 땐 예경이가 자기를 죽일 수 있었다는 것처럼 말했거든. 너랑 싸우다가 도망친 것도 그렇고…… 이상하잖아.”

“……그렇지.”

순간 상호의 머릿속에 베르멜로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다른 놈들은 하루면 회복해서 돌아다니는데 마신이란 놈이 몇 달씩 누워있는 것도 그렇고. 그럼 역시…….”

“역시?”

“인간 태생……이 아닐까.”

그 말에 베르멜로의 눈동자가 어지럽게 흔들렸다.

“그런…… 거예요? 정말로?”

“그게 아니고서야 설명이 안 되잖아. 그놈, 자기 악마의 구멍이 어딨는지도 모르는 거 아니야?”

“저는 마신이랑 싸워본 적이 없어서…… 그런 건 알아볼 기회가…….”

“확실해.”

상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허공을 째려보았다.

“그놈은 자기 악마의 구멍이 어딨는지도 모르고, 자기 심장이 구멍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도 모르는 거야. 그래서 재수없게 구멍에 찔리는 순간 바로 뒈져 버리지 않을까, 겁이 나서 그렇게 사렸던 거고.”

“……그런.”

어안이 벙벙해하는 베르멜로를 내버려두고, 민정이 상호를 바라보았다.

“그럼 더 알 수가 없어지는데. 그놈은 그럼 불사가 아닌 거야? 대악마가 마신만큼의 능력이 있는 거면 불사의 악마의 능력은 어디서 온 거야?”

“이름만 불사인 거지.”

상호는 태화의 심상에서 죽였던 악마를 떠올렸다.

이상할 정도로 강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단순무식했던. 다른 악마들처럼 음험한 계략을 꾸미지 않고, 마치 뇌가 없는 듯이 본능대로만 움직이던 악마.

아마 한 번 찢겨 죽었던 불사의 악마가 악마의 눈을 얻고 불완전하게나마 부활했던 것 같았다.

그렇지만 다시 그들에게 죽었고.

그 힘은 기만의 악마에게 넘어갔다.

“죽긴 죽는 것 같아. 이미 죽었고. 벨.”

“네.”

“불사의 악마에 대해 뭐 아는 거 없어?”

“글쎄요, 생명력이 강하다는 것밖에…….”

옆에서 가만히 듣던 태화가 핀잔을 날렸다.

“우와, 진짜 아는 게 없네.”

“뭐, 뭐?! 나이도 어린 꼬맹이가……!”

“팩트잖아. 화내면 아는 게 생겨? 불사의 악마니까 잘 안 죽어요~ 하는 건 나도 말하겠다. 내 말이 틀려?”

“으……!”

베르멜로는 이를 악물다가 눈물을 글썽이며 상호를 돌아보았다.

“주인님! 얘 좀 혼내주세요!”

“맞는 말인데?”

“네에?! 저한테 왜 그러세요……! 이거 왕따예요!”

“그래서 악마들한테 돌아가겠다고?”

“……아뇨!”

“그냥 여기서 맛있는 거 먹고 사는 게 좋지?”

“네!”

“그럼 그냥 살아.”

“네!”

베르멜로는 언제 화냈냐는 듯 환하게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쌍으로 세웠다.

상호는 혀를 차고 도현을 돌아보았다.

“다음번에 놈들이 쳐들어올 땐 총력전이 될 거야.”

“대비해야지.”

도현이 상호와 눈을 마주쳤다.

“아니면 우리가 먼저 치든가. 그 편이 더 맞겠지.”

“……그치.”

“뭔가 더 준비해야 할 게 있어?”

“있어.”

세희의 수업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초혼강기는 다혜도 쓸 수 있고, 앞으로도 사용자가 늘어나겠지만, 천색창염의 후인은 오직 세희 하나뿐.

다만 천색창염이 악마를 죽이는 데에 꼭 필요하다고는 상호도 장담하지 못했다.

그의 욕심일 뿐일지도 몰랐다.

“준비되면 그때 말할게. 형은 헌터들한테…….”

상호가 말하고 있는 와중에 방문이 벌컥 열렸다.

“여보오~.”

간드러지는 콧소리와 함께.

“정리 다 끝내고 왔어용~. 오늘은 그동안 못한 만큼 마구마구…….”

교태를 부리며 들어서던 리주는, 소파에 앉은 모두를 발견하고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엑.”

“하아…….”

도현이 이마를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님들 있잖아, 여보.”

“죄, 죄송해요……. 다들 간 줄 알고…….”

“안 되겠네.”

문가로 걸어간 도현은 리주의 허리를 끌어당기며 속삭였다.

“잘못을 했으면 혼나야겠지?”

“네, 네에…….”

“씻고 있어. 애들 보내고 들어갈 테니까.”

“네…….”

리주가 집무실의 옆방으로 후다닥 뛰어 들어갔다. 소녀처럼 뺨을 발갛게 물들인 채. 상호와 민정, 그리고 태화는 얼이 빠진 채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도현이 그런 그들을 돌아보며 헛기침을 했다.

“으흠!”

상호는 눈치껏 일어났다.

“태화야, 빨리 나가자.”

“으응…….”

“야, 벨. 뭐해. 일어나라고.”

“네, 넵.”

넷은 도현의 집무실에서 황급히 도망쳐 나왔다.

* * *

“무슨 일 있으셨어요?”

“응?”

상호는 눈을 끔뻑이며 옆을 돌아보았다.

곁에 누운 세희가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표정이 안 좋아요.”

“으응, 그런 건 아니야.”

그는 쓰게 웃으며 세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확인할 건 확인했고, 결과도 좋았어. 약간 할 일이 많아져서 그래.”

기만의 악마 건이 골치가 아프긴 했지만, 어쨌든 악마도 죽여봤고, 나름대로 많은 정보를 얻게 되었다. 대악마와 마신에 대한 정보들을.

그런데 세희의 눈빛이 어째 싸늘했다.

“그게 아니라요.”

“……응?”

“꼭 누구한테 쥐어짜여서 피곤해하는 표정인데요.”

“……아냐.”

“다른 여자 냄새도 나고요.”

“…….”

“누구예요?”

“……누나.”

도현과 리주의 애정행각을 본 민정이 덩달아 달아올라서는, 상호에게 우리도 하자고 졸라대서 결국 해버린 것이었다.

처음에는 어제 이미 하지 않았느냐고 튕겨보려 했으나, 민정이 슬픈 눈빛을 지으며.

‘상호한테 나는 엔조이구나. 하는 날이 정해져 있는…….’

……라며 터덜터덜 돌아서는 통에, 덥석 붙잡고 2차전을 치르게 되었다.

상호는 고개를 베개로 돌려서 눈을 가렸다.

“선생님 피곤하다. 먼저 잘게…….”

“선생님.”

“응?”

세희가 그의 곁에 바싹 다가붙었다.

약간은 더운 숨이 그의 어깨에 소복이 내려앉았다.

“이제 다시 바빠지시는 거예요?”

“우리는 그렇겠지.”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넌 아직 더 강해져야 돼.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고……. 내일 일찍 일어나서 대련 한 번 하고 학교 가자.”

“네.”

둘은 잠에 빠져들었다.

* * *

콰아앙

폭음이 교정을 울렸다.

이른 아침부터 누가 이렇게 난리를 부리는가. 그렇지만 범인이 누구인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늘 그렇듯이.

해련은 커피를 홀짝이며 창밖을 보았다.

‘기운도 좋지.’

운동장에서 두 개의 강기가 격돌하는 것이 보였다. 하나는 하늘색, 하나는 검푸른 색.

검푸른 색이 하늘색을 집어삼킬 듯이 밀어붙였다.

‘내공이 저렇게나 차이가 나는데…….’

이길 수 없는 게 당연하지 않나.

내공의 반을 나눠주기에는 주전자가 아직 작고, 나눠준다 해도 주둥이가 좁아 많은 양을 쏟아낼 수 없다. 그래도 다루는 기운을 보니 계속 크기를 늘리고는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상호에 비해서는 턱없이 부족했고.

해련 자신에게 비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뭐, 나랑 비교하는 것 자체가 미안한 일이려나.’

해련은 쓴웃음을 짓고 잔을 쭉 비웠다.

교장실을 나와 운동장으로 다가가니 상호가 세희에게 손바닥을 뻗으며 검을 내렸다.

세희도 검을 멈추고 해련을 돌아보았다.

“좋은 아침입니다.”

“안녕하세요.”

“으응, 좋은 아침.”

해련은 손을 살짝 흔들었다.

“멈추지 말고 계속하지 그랬어요. 신경 쓸 필요 없는데.”

“위험하니까…….”

“응?”

상호의 말에 해련의 미소가 일순 흔들렸다. 꼭 하수의 안전을 걱정하는 말투가 아닌가.

그러나 그녀는 곧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웃어넘겼다.

“에이, 나 정도 되면 구경하다 당하지는 않지.”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요.”

“…….”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무인으로서의 자존심을 박박 긁는 말. 해련의 이마에 혈관이 솟았다.

“어머, 내가 시퍼렇게 두 눈 뜨고 있는데…… 눈먼 강기에 맞으면 어쩌냐, 그런 뜻이야?”

“네.”

상호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교장선생님 초혼강기 못 막잖아요.”

“…….”

“제 것도, 세희 것도.”

해련의 손에서 우두둑 소리가 났다.

“내가 세희도 이길 수 없다…… 그런 말인가?”

“네?”

상호가 눈을 끔뻑이며 당황했다.

“그렇게까지는 말하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한번 보여줘야겠네.”

해련은 검을 뽑았다.

“세희야.”

“네.”

“한 판. 괜찮을까?”

“네.”

세희의 대답은 거침이 없었다.

“한 수 가르쳐 주세요.”

세희의 검에서 하늘색 불꽃이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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