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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여고의 남선생-443화 (443/501)

<443화>

443. 각성

“안 아프겠지?”

작고 하얀 손이 상호의 손을 잡았다.

“수술하는데 마취가 갑자기 풀리거나…… 하지는 않겠지?”

가느다란 손은 가느다랗게 떨리며, 상호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깍지를 꼈다.

상호는 그 손을 양손으로 감싸며 대답했다.

“괜찮을 거야.”

“나 무서워…….”

태화가 흔들리는 눈으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수술은 처음이야…….”

“나도 해본 적 없어.”

상호는 더욱 강하게 태화의 손을 잡았다.

“그래도 잘 될 거야.”

“해본 적 없다며, 어떻게 알아…….”

“내가 옆에서 기도하고 있을게.”

그 말에 태화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같이 들어갈 거야?”

“응. 바로 옆에 있을 거야.”

그는 씩 웃었다.

그때 수술실 문이 열리더니 리주가 고개를 내밀었다.

“준비 다 됐어요.”

“예.”

상호는 태화의 손을 잡고 함께 일어섰다.

“가자.”

* * *

“잘 끝났습니다.”

나이 지긋한 의사가 수술용 도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렇게 성력을 쓰지 않는 수술은 오랜만이라, 조금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수술은 성공했습니다.”

수술대 주변은 깨끗하면서도 너저분했다. 이츠키의 눈을 보관했던 장치와 갖가지 수술 도구 때문에.

상호는 수술대에 누워 있는 태화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직 안 일어났는데 알 수 있어요?”

“시신경에 반응이 있으니까…….”

의사는 도구를 정리하며 고개를 기웃했다.

“잘 안 됐어도 마법사님이 알아서 조정해 줄 겁니다. 솜씨가 좋으시던데. 인체에도 능통하고. 꼭 사람 머리 여러 번 따 본 것처럼…….”

“……하하.”

의사는 농담으로 말했겠지만, 상호는 그게 진실임을 알고 있었다. 의사의 옆에 서 있던 민정과 리주도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정리를 마친 의사는 진땀을 닦으며 밖으로 나갔다. 워낙 오랜 시간 동안 수술을 한 탓에 의사도, 민정도, 리주도 진이 다 빠진 채였다.

상호는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1시를 가리켰던 시침이 이제는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수고했어, 누나. 형수도.”

“으응.”

“네에.”

“마취는 언제쯤 풀려?”

민정이 태화를 내려다보았다.

“중간에 한 번 더 놨으니까, 아마 아홉 시 정도……. 일어나도 제정신은 아닐 거야. 좀 취해 있을걸.”

“그런가.”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확인은 내일 해야겠네. 내가 밥 가져올 테니까 태화 병실로 데려가 줘.”

“으응.”

민정과 리주가 태화를 이동식 침상에 눕혔다. 상호는 그런 둘을 바라보다가 수술실을 나섰다.

‘잘 됐다니까 뭐…….’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그렇게 간단한 일이라면 참 좋으련만. 그는 쓰디쓴 입맛을 다시며 협회 병동 내 식당으로 향했다.

* * *

“……으.”

태화가 눈을 떴다.

병상 옆에 앉아 멍을 때리던 상호는 그 소리를 듣고 태화를 돌아보았다.

“일어났어?”

“으아, 오빠 잘생겨따…….”

“…….”

마취가 덜 깬 모양이었다.

등을 좀 두드려주면 정신을 차릴까. 상호는 태화의 등을 토닥이면서 말했다.

“밥 먹어야지. 배 안 고파?”

“바압……?”

태화의 머리가 취한 사람처럼 빙글빙글 돌아갔다.

“머글래…….”

“그 전에.”

그는 태화의 멀쩡한 눈을 가리고 손가락 세 개를 내밀었다.

“이거. 몇 개야?”

“소시지…….”

“…….”

수술이 잘못됐나.

눈이 안 보여서인지 마취가 덜 풀려서인지 알 수가 없었다. 상호는 침음하며 손을 내렸다.

일단 마취가 다 풀릴 때까지 기다려야 할 듯싶었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우리 쌤…….”

“그래. 평양냉면 먹으러 가자.”

“으응……? 잠깡만, 나 머리가 안 도라가…….”

그는 태화를 부축해서 병실을 나갔다.

* * *

9시면 풀릴 거라던 마취는, 10시가 넘어 식당에 도착할 때에도 풀리지 못했다.

결국 상호는 태화를 하늘에 던졌다가 받아서 강제로 마취를 깨웠다.

“꺄아아아악! 갑자기 왜 그러는데! 홍콩 갈 뻔했잖아!”

“깼냐? 밥 먹자.”

“아니 뭐야 이게! 평양냉면을 왜 먹어! 쌤은 입이 하수구야?!”

“확실히 깼구나.”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협회로 돌아와 베르멜로의 악마의 심장을 확인하려 했으나, 베르멜로가 잠에 든 탓에 그냥 내일 보기로 했다.

상호는 휴게실에 놓인 침대에 태화와 함께 누웠다.

“평양냉면만 파는 가게는 무슨 생각일까?”

“시끄러. 잠이나 자.”

“우씨, 수술 들어가기 전에는 그렇게 두근거리게 해놓구선…….”

태화가 상호를 등지며 이불을 싹 가져가 버렸다.

“쌤이랑 결혼하면 맨날 평양냉면만 줄 거야.”

“해봐 임마. 내가 니보다 밥을 못할 것 같냐?”

“어?”

빨간 눈이 왼쪽, 검은 눈이 오른쪽.

색이 다른 두 개의 눈이 휘둥그렇게 상호를 바라보았다.

“어어? 해보랬어? 결혼한다는 거지?”

“그냥 대꾸한 거지, 짜샤…….”

“치.”

태화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럼 누구랑 할 건데?”

“세희랑.”

“아 씨, 구라치지 마! 당연히 나잖아! 장난치지 말고, 솔직하게!”

“나빛이랑?”

“수녀님한테 이른다?! 어떻게 제자랑 결혼할 생각을 해? 드러워!”

“얌마, 그럼 니는…….”

“나는 동생이잖아! 친한 동생!”

“너도 제자야 임마. 다 똑같이…….”

“퉤.”

다시 돌아눕는 태화를 바라보며, 상호는 쓰게 웃었다.

“눈은 어때. 잘 보여?”

“응.”

태화가 눈을 문질렀다.

“조금 어색하긴 한데, 아프진 않아.”

“혹시 실 같은 거 보여?”

“응. 빛나는 거…….”

다행히 눈의 이식은 성공한 모양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뿐.

“내일 베르멜로 보러 가자. 심장 보이나 보게.”

“응.”

“얼른 자.”

“응.”

태화가 그의 품에 안겨들었다.

* * *

“으…….”

신음소리.

쥐어짜내는 듯한 소리. 상호의 눈이 슬며시 뜨였다.

“으으…….”

품에서 태화가 뒤척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마취 때문에 잠이 잘 안 와서 그러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마에 송골송골 배어난 식은땀을 보고는 그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어디 아픈가?’

상호는 태화의 귀에 조그맣게 속삭였다.

“태화야?”

“으으…….”

깨어 있다면 아프다고 말을 했을 텐데.

아마 악몽을 꾸는 모양이었다.

‘들어가 봐야겠다.’

그는 눈을 감고 태화의 손을 잡았다.

* * *

파스텔톤의 하늘, 솜사탕 향기. 그리고 아이가 그린 듯한 흑백의 건물들.

상호는 주변을 둘러보며 태화를 찾았다.

‘얘가 어디 있지…….’

평소 같았으면 신나게 꿈을 즐기면서 소란을 피우고 있을 텐데. 오늘따라 이 마을이 유난히 조용했다.

무거운 침묵이, 두터운 이불처럼 내려앉은 것 같았다.

“으…….”

그 침묵을 뚫고 작은 신음소리가 들렸다.

건물들 사이. 좁은 골목길. 유난히 어두운 그늘의 속에서 가냘픈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상호는 그 골목을 향해 달려갔다.

“태화야?”

“으……으.”

골목의 그늘 속, 바닥에 쓰러진 태화가 보였다.

온몸에 땀을 비 오듯 흘리며. 눈을 질끈 감은 채 가슴을 부여잡고. 무언가 무거운 것에 짓눌린 듯이, 얕은 숨을 가쁘게 쉬고 있었다.

상호는 황급히 태화의 상태를 살폈다.

“태화야? 왜 그래. 내 말 들려?”

“숨이…….”

태화가 헐떡거리며 간신히 대답했다.

“숨…… 막혀…….”

가느다란 손이 가느다랗게 떨렸다.

상호는 다시금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상할 정도로 짙은 어둠. 보이지 않는 무언가의 압박감이 이 공간을 가득히 채운 게 느껴졌다.

그의 몸에서 검푸른 불꽃이 타올랐다.

화르륵……

불꽃이 그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몰아내자 압박감이 덜해졌다. 상호는 그 틈을 타 태화를 데리고 골목을 빠져나왔다.

밝은 곳으로 나오니 태화의 호흡이 조금씩 편해졌다.

“괜찮아?”

“……응.”

태화가 땀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뭐였어……? 방금 그거…….”

“나도 몰라. 어쩌다 그렇게 된 거야? 잠에 들자마자 그랬어?”

“그게……. 골목에서 뭐가 부르는 느낌이 나길래……. 가봤더니, 갑자기 숨이 안 쉬어져서…….”

“……음.”

무언가가 있다.

상호는 골목을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푸화아악

검푸른 불꽃이 골목을, 건물들을 전부 휘감았다.

불길한 그림자를 드리우던 건물들이 불꽃에 휩싸여 타올랐다. 상호가 불꽃을 거둘 때까지 한참 동안.

그가 불꽃을 거두었을 땐, 어둠 속의 압박감은 사라져 있었다.

‘……없어졌나.’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눈의 주인……이겠지.’

아마도 그럴 것이다.

별것 아닌 악마였으리라. 이츠키는 악마에 빙의되기 전까지는 곤란을 겪은 적이 없으니. 그 빙의된 악마도 강한 놈이 아니었고.

괜찮을 것이다.

이식한 눈에 악마 인자가 조금 묻어있었던 것뿐이리라.

‘……괜찮을 거야.’

그는 태화를 다독이며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 * *

다음 날.

상호는 잔뜩 긴장한 베르멜로와 그 앞에 앉은 태화를 바라보았다.

“보여?”

“응.”

태화가 오른쪽의 검은 눈을 끔뻑였다.

“엄청 잘 보여.”

“어떻게?”

“가슴에 까만 구멍이 있고…… 거기서 연기? 같은 게 막 흘러나와.”

그는 베르멜로를 돌아보았다.

“맞냐?”

“저는…… 본 적이 없어서……. 그래도 아마, 맞겠죠……?”

“그렇긴 하겠지.”

날카로운 눈빛이 베르멜로의 가슴팍을 향했다.

“한번 만져봐도 되냐?”

“……네? 어, 어디를요?”

“당연히 네 영혼이지. 무슨 상상을 하는 거야?”

“그, 그치만, 주인님 시선이 너무…….”

“대기나 해.”

거친 손이 베르멜로의 하얀 가슴팍에 얹혔다.

“어디야. 여기야?”

“아니, 조금 아래쪽.”

“여기가 구멍이야?”

“응.”

“심장은 어느 쪽에 있어?”

“잘 안 보이는데…….”

태화가 눈살을 찌푸리며 베르멜로의 가슴팍을 후후 불었다.

“연기 때문에 잘 안 보여. 우씨, 이 연기 불어도 안 날아가는데?”

“초혼강기로만 가능한 거겠지.”

상호는 손가락에 초혼강기를 뭉툭하게 세웠다.

그러자 기묘하게도, 초혼강기가 베르멜로의 가슴팍에 아무런 저항감 없이 쑤욱 들어갔다. 보이지 않는 공간으로 사라진 것처럼.

“뭔가 보여?”

“아니, 쌤 마나도 어두워서 잘……, 앗! 보인다.”

“이쪽? 이쪽?”

“아니, 조금 위쪽……. 응, 거기.”

초혼강기가 조금씩 길어졌다. 아주 천천히. 꾸물꾸물.

베르멜로는 그에게 가슴팍을 내민 채로 눈을 질끈 감았다.

“살살…… 하셔야 해요…….”

“너 나 못 믿어?”

“믿으니까, 내어드리고 있잖아요…….”

“안 아프게 할게.”

그때 강기 끝에 무언가가 느껴졌다.

몽글몽글, 폭신폭신. 무언가 부드럽게 밀어내는 듯한 느낌.

‘이건가 보네.’

상호는 그 무언가를 살짝 눌러보았다.

“……으긱!”

베르멜로가 몸을 움찔하더니 다리를 갑자기 확 움츠렸다.

눈동자가 잠깐 위로 올라갔다 내려온 것 같기도 했다.

“바, 방금…… 뭐 했어요?”

“살짝 눌러봤어. 어떤 느낌이야?”

“저, 정신이…… 갑자기 확 가버리는 느낌…….”

“맞나보네.”

드디어 완성한 악마의 눈. 하지만 아직 확인해야 할 것이 하나 남았다.

상호는 강기를 빼내며 중얼거렸다.

“이제 다음번엔 죽여봐야겠다.”

“살려주세요……!”

“누가 너랬냐? 봉인해놓은 악마들 죽여야겠다고. 너 아무래도 네가 나를 못 믿는 것 같은데?”

“아녜요, 아녜요……. 주인님 믿죠, 당연히이~.”

베르멜로가 어색하게 교태를 부렸다.

“다 끝내고 나면 같이 외출해요, 헤헤…….”

“아니, 너 이제 쓸모없는데.”

“너무해요……!”

“뻥이야.”

상호는 태화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래도 지금은 바빠. 나중에 올 테니까 잘 지내고 있어. 가자, 태화야.”

“응.”

둘은 베르멜로를 남겨두고 방에서 나왔다.

* * *

“이야아압!”

교실에 쩌렁쩌렁한 기합이 울려 퍼졌다.

“받아라! 홍마안! 이야아압!”

“저 미친 가스나 좀 누가 말리바라. 하루 죙일 저 지랄이고.”

“냅두는 겁니다.”

이츠키가 태연하게 말했다.

“인류의 명줄이 달린 몸이니까.”

“하필 그런 중요한 기 저런 가스나 몸에…… 하이고, 인류 이미 다 망해뿌렀다.”

지윤은 한숨을 쉬다가 이츠키를 돌아보았다.

“니 눈은 괘안나?”

“그렇습니다.”

파내자마자 바로 성력으로 치료해서, 겉보기로는 적출 전과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보이는 것은 천지차이였지만.

“좀 어색하긴 한데…… 개벽 전엔 원래 이 눈이었으니까. 딱히 상관없습니다. 양쪽 시야가 다른 게 많이 거슬리긴 하지만.”

“니도 고생이고마.”

“선생님만큼은 아니니까.”

갑자기 둘의 사이에 태화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받아라! 홍마안!”

“마, 니 혼자 놀으라고! 글고 그 눈까리는 니 원래 눈 아이가!”

“내가 홍마안으로 봤는데 오지윤은 사람이 아니라 돼지더라~.”

“이 썩을 가스나가…….”

지윤의 이마에 혈관이 솟았다.

그때 갑자기 태화가 비틀거리더니 넘어지려 했다.

“머, 머고.”

지윤은 당황해서 태화를 덥석 잡았다.

“혈압은 내가 올랐는디 와 니가 쓰러지노. 괘안나?”

“……으.”

“마, 괘안냐고.”

하지만 태화는 대답하지 못했다. 식은땀만 줄줄 흘릴 뿐.

지윤은 황급히 이츠키를 돌아보았다.

“이츠키, 쌤 어데 있노. 빨리 찾아야 쓰겄다.”

“따라오는 겁니다.”

이츠키가 자리를 박차고 달려 나갔다. 지윤도 태화를 업은 채 그 뒤를 따랐다.

태화가 끙끙 앓으며 흘리는 땀이 지윤의 등에 배어났다.

‘망할 가스나, 왜 갑자기 쓰러지고 X랄이고…….’

바람처럼 달려가는 지윤의 뒤로, 태화의 축 늘어진 꼬리가 맥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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