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1화>
441. 구멍 좀 보자
“뭐야.”
태화는 밑을 내려다보며 눈을 깜작였다.
이츠키가 태화의 가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것도 바로 코앞에서.
“왜. 좀 커졌냐?”
“…….”
반응은 돌아오지 않았다. 개소리라도 들었다는 듯.
태화는 뽐내듯이 양 허리에 손을 얹고 흉곽을 부풀렸다.
“부럽냐? 엉? 하긴 내 유전자가 우월하긴 하지~.”
“…….”
“빼빼 마르기만 한 애들과는 차원이 다른 볼륨감이랄까~.”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츠키가 점점 가슴에 가까이 다가오자 태화는 얼굴을 붉히며 가슴을 가렸다.
“아니 뭔데. 야. 말 좀 해봐. 왜 그렇게 빤히 보는데?”
“…….”
“야!”
그때 이츠키가 갑자기 태화의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꺄악! 변태다!”
“아, 잠깐만 가만히 있는 겁니다.”
“저리 꺼져, 변태야! 으아악 미친 레즈년이다!”
“아니 잠시만 가만히 있어 보라고입니다.”
“꺄아악!”
태화가 비명을 질러도 아이들은 절대 관심을 주지 않았다. 각자 하던 일에 계속 집중할 뿐.
“꺅! 꺅! 야, 천세희! 이 미친년 좀 말려봐! 얘 갑자기 왜 이래!”
“잠깐이면 됩니다. 잠깐……. 좀 가만히 있는 겁니다.”
“어딜 만져, 변태야! 브라는 왜 내리는데!”
“마.”
보다 못한 지윤이 나섰다.
“고마해라, 마. 아침부터 와 그래 소란이고.”
“야, 도와줘! 이 미친 크레이지 싸이코 레즈가 날 벗길라 그래!”
“하이고……. 알았다. 도와주께.”
지윤은 태화의 양 손목을 잡았다.
“야아아아! 이거 안 놔?! 꺅!”
“후딱 끝내라.”
“감사합니다.”
“꺅! 꺅──!”
이츠키의 손이 태화의 앞섶을 확 풀어헤쳤다.
그러나 어디를 둘러봐도 검은 연기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매끈하고 하얀 살결이 보일 뿐.
“역시 이양은 악마보단 사람에 가깝나 봅니다.”
“뭐라는 거야, 색갸! 내 슴가는 악마적이라고!”
“지랄 좀 고마해라, 하이고…….”
“지랄은 얘가 했잖아! 야! 니들 나한테 왜 그래?! 내가 잘못했어? 얘가 잘못한 거잖아!”
“그래그래. 느 말이 다 맞다.”
“돼지년아! 사람이 말하면 진지하게 들어!”
이츠키는 불똥이 다른 곳으로 튀는 틈을 타 교실을 빠져나왔다.
* * *
“없었어?”
“그렇습니다.”
이츠키는 교무실 자리에 앉은 상호를 바라보았다.
“가슴팍을 확인해 봤는데 없었습니다.”
“다른 곳도 확인해 봤어?”
“다른 곳이라면……?”
상호가 겸연쩍게 웃었다.
“꼭 가슴팍에 있으리란 보장은 없잖아. 구석구석 다 확인해 줘.”
“……구석구석이라 하시면, 머리부터 발끝까지입니까?”
“응.”
“……하아.”
이츠키의 입에서 드물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상호는 그 모습을 보고 이츠키의 손을 토닥이며 달랬다.
“부탁해, 사카시타. 내가 할 수는 없잖아.”
“선생님이 제가 어떤 오해를 받는지 아셔야 하는데.”
“미안해. 그래도 너만 할 수 있는 일이야. 태화한테 잘 설명하면 되잖아. 응?”
“……알겠습니다.”
이츠키는 고개를 푹 숙였다.
“대신…… 이번 건이 끝나면 제 나름대로의 대가를 청구하겠습니다.”
“대가……?”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니까.”
“아아. 알지, 알지…….”
세상만사가 다 그런 법이다. 주술이든 뭐든 간에.
상호는 살짝 웃었다.
“그럼 부탁할게.”
* * *
그래서.
“이양.”
“응?”
이츠키는 옷을 갈아입다 말고 태화를 불렀다.
태화는 꼬리 때문에 옷을 갈아입지 않았다. 다리를 꼰 채로 자리에 앉아서 느긋하게 핸드폰을 보고 있을 뿐. 저러다 아이들이 나갈 때 느적느적 따라 나가는 것이 주된 패턴이었다.
옷을 반쯤 벗은 이츠키를 본 태화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둘이서만 할 얘기 있으니까, 나가지 말고 잠깐만 기다리는 겁니다.”
“……왜?”
조례 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을까. 태화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너 나랑 이상한 거 하려고 그러지?”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벌써 눈이 맛이 갔는데! 야, 천세희! 니 친구 관리 안 해?!”
“뭔데 또.”
세희는 둘을 돌아보았다가 신경을 끄고 다시 검을 찼다.
“알아서 해결해. 남의 취향에 이래라저래라 할 생각 없어.”
“야! 니 그러다 얘한테 고백받는다?!”
“오늘은 니가 받게 생겼는데?”
“아아아아아악!”
둘의 대화를 들은 이츠키의 눈 밑이 씰룩였다.
“그런 거 아니니까 일단 남아 보는 겁니다.”
“싫어! 내가 니 뭘 믿고 그래야…….”
태화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이츠키가 꼬리를 덥석 잡았기 때문에.
“……으기익!”
“다 나가는 겁니다.”
이츠키의 스산한 눈빛이 아이들을 훑었다.
“당장.”
“……으응.”
아이들은 부리나케 교실을 나섰다. 세희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머뭇거리다가, 이내 아이들을 따라 복도로 나갔다.
이츠키는 교실 문이 닫힐 때까지 기다렸다가 태화를 돌아보았다.
“이양.”
“제발 살려주세요…….”
태화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저 사랑하는 남자가 있어요…….”
“자꾸 그러면 저도 참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제발 참아주세요…….”
이츠키는 태화가 도망치지 못하게 꼬리를 꽉 잡았다.
“오해하지 말고 잘 듣는 겁니다. 이양.”
“응…….”
“사정이 있어서 이양의 몸을 확인해야 합니다.”
악마 융합체에게도 악마의 심장이 있는지, 없는지.
더 정확히는, 악마 융합체의 영혼이 인간 쪽인지, 악마 쪽인지.
“이양의 몸에 악마의 구멍이 있는지 확인할 겁니다. 그러니까 옷을 다 벗는 겁니다.”
“……다?”
“다. 싹 다.”
태화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런…… 설정이야?”
“…….”
순간 이츠키의 눈이 위로 확 돌아갔다.
이제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이츠키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꺼냈다.
그 무언가를 본 태화의 눈동자가 당황으로 물들었다.
“……어?”
부적.
빨간 글씨가 쓰인 노란 종이가 태화의 이마에 철썩 붙었다.
“……으? 으?!”
“이양이 잘못한 겁니다.”
이츠키는 굳어버린 태화의 단추를 끄르며 낮게 중얼거렸다.
“내 진심을 알아주지 않았으니까…….”
“……!”
태화는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혀까지 굳어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츠키가 태화의 치마를 내리려는 그때.
드르륵
교실 문 열리는 소리.
문가를 돌아본 이츠키는 태화를 벗기던 자세 그대로 굳어 버렸다. 부적이라도 붙은 것처럼.
“……이츠키?”
세희가 문가에 서 있었다.
세희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츠키와 태화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지금…… 뭐 하는 거야?”
“……그게.”
이츠키는 설명을 하려 했지만, 바람처럼 달려온 세희가 태화의 이마에 붙은 부적을 떼어버렸다.
태화가 옷을 허겁지겁 주워 입으며 왈칵 울음을 터트렸다.
“야! 이 미친 레즈가 나 덮칠라 그랬어!”
“아니, 그게 아니라…….”
“이츠키.”
세희는 태화의 몸을 가리며 이츠키를 돌아보았다.
그러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
“일단 수업 가자.”
“아니, 세희. 내 말 좀 들어 보는 겁니다. 선생님이…….”
“아니야. 괜찮아. 이해해. 그럴 수 있어.”
“그게 아니라, 진짜로 사정이…….”
“가자.”
“아니…….”
이츠키가 손을 뻗었지만, 세희는 태화를 데리고 부리나케 교실을 나갔다. 묘한 눈빛으로 이츠키를 돌아보면서.
남겨진 이츠키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미치겠네, 정말.’
한 명은 설명을 들어도 착각하고, 한 명은 아예 들어주질 않으니.
답답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나도 남자 좋아한단 말이야…….’
이츠키는 한숨을 쉬며 터덜터덜 문가를 향했다.
* * *
그 후로는 기회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도. 점심 시간에도. 세희가 태화의 곁에 꼭 붙어서는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금도 둘은 교실 자리에 딱 붙어 앉아 있었다.
이츠키는 복도 창문에서 교실을 들여다보았다가, 세희가 자신이 있는 쪽을 돌아보자 슬그머니 몸을 숙였다.
‘어떻게 확인하지?’
옷을 싹 벗겨야 하는데.
아무래도 부위를 나눠서 하나하나, 조금씩 확인해야 할 것 같았다.
‘몸통은 아까 확인했고…….’
팔이나 다리도 확인했고.
남은 것은 발, 머리카락 속, 그리고 국부. 이츠키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슬그머니 손을 들어 인을 맺었다.
오줌을 마렵게 하는 저주 정도는 아주 간단하게 할 수 있었다.
“……아.”
태화가 다리를 살짝 꼬았다.
“야, 나 화장실 좀 갔다올게.”
“같이 가줘?”
“됐어. 슬쩍 갔다오면 되지…….”
검은 연기가 펑 하고 터졌다.
동시에 화장실 앞에서도 똑같이 검은 연기가 터졌다. 이츠키는 그 연기를 확인하자마자 화장실을 향해 달렸다.
태화가 세 번째 칸의 문을 여는 중이었다.
‘잡았다.’
태화가 안에 들어가 문을 잠그기 직전.
이츠키는 문을 확 밀었다.
벌컥
“……어?”
그리고 안으로 번개같이 들이닥쳐서, 태화의 이마에 부적을 붙였다.
태화는 치마를 올리다 말고 굳어 버렸다.
“으……?!”
“이양.”
성공이 코앞이다.
이츠키는 태화의 치마를 그대로 걷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오해하지 말고 잘 듣는 겁니다.”
“으……!”
“나도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시킨 겁니다.”
차분한 목소리와는 달리 손길은 상당히 다급했다. 누가 오기 전에 일을 처리해야 했기 때문에.
이츠키의 검지는 이제 속옷에 걸쳐져 있었다.
“이양의 몸에 악마의 구멍이 있는지 확인할 겁니다.”
“아으……!”
“그 구멍 아니니까 착각하지 마는 겁니다.”
하지만 그곳도 살펴야 하는 게 사실이었다. 정말 구석구석까지 확인해 달라고 부탁받았으니까.
이츠키는 심호흡을 했다.
“다시 말하지만…….”
“어으으으……!”
“정말로 내가 원해서 하는 일 아니니까…… 제발, 제발 착각하지 마는 겁니다.”
그리고 태화의 속옷을 내리려는 순간.
뒤에서 스산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츠키?”
이츠키는 흠칫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세희가 목검을 들고 서 있었다.
“이건 옳지 못한 일이야, 이츠키.”
“……내 뜻이 아닙니다.”
“알아. 혼란스러운 거. 나는 네 취향을 존중하지만…… 그래도 이런 방식은 잘못됐어. 선생님이 보셨다면 분명히 막으셨을 거야.”
그 선생님이 시킨 건데.
이츠키는 입술을 깨물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래도 나는…… 해야겠습니다.”
“……그래.”
세희가 목검을 겨눴다.
“내가 더 이상 선도부 일은 하지 않지만…… 그래도 이 학교를 다니는 일원으로서. 최선을 다해 널 막겠어.”
“…….”
제발 그렇게 비장하게 말하지 말아줬으면. 안 그래도 남의 가랑이를 확인해야 하는 게 쪽팔려 죽겠는데.
이제서야 알 것 같았다. 상호가 왜 자꾸 눈을 질끈 감으며 이마를 짚는지.
‘선생님…….’
이츠키도 눈을 질끈 감았다.
‘우리 반 애들, 확실히 이상합니다…….’
나중에 한번 꼭 안아주기라도 해야겠다.
어쨌든 지금은 눈앞에 쓰러트려야 할 적이 있다. 이츠키는 양손의 검지와 중지 사이에, 그리고 약지와 소지 사이에 부적을 끼워 꺼내 들었다.
“갑니다.”
“들어와.”
세희가 목검을 까딱이는 순간.
이츠키는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 * *
결과는 당연히 대패.
이츠키는 밧줄에 꽁꽁 묶인 채로 교무실에 던져졌다.
“쌔애애애앰!”
태화가 사이렌처럼 빽빽대며 상호를 향해 달려갔다.
“쌤! 쌤! 쌔애애애앰!”
“야, 야. 누가 교무실에서 그렇게…….”
“쌤! 나 어떡해? 어떡해?”
“뭔데 임마. 뭔데.”
“레즈들이 나한테 막 달려들어! 어떡해? 어떡해? 나 이제 학교도 맘대로 못 돌아다니겠어! 내가 너~무 예쁜가봐! 같은 여자가 봐도!”
“……뭐라는 거야, 임마.”
“진짜 이 미모를 어쩜 좋아? 어떡해? 어떡하냐구!”
팔을 붕붕 휘두르며 난리를 치는 태화의 옆에서, 세희가 이츠키를 내려다보았다.
“강간범을 잡았어요.”
“…….”
“화장실에서 범행 중인 걸 현장검거했어요. 아무래도 선생님이 남자를 가르쳐주셔야 할 것 같아요.”
“세희야, 여기 교무실이야……!”
주변에서 교사들의 묘한 시선이 몰려들었다. 상호는 쩔쩔매며 교사들에게 손사래를 쳐 보이고는, 아이들을 향해 몸을 숙이며 속삭였다.
“내가 시킨 거야, 세희야. 내가 사카시타한테 태화 몸 좀 봐달라고 그랬어.”
“네? 그게 정말이었어요?”
세희는 당황하며 이츠키의 밧줄을 풀었다.
“미안해, 이츠키. 난 네가 진짜 그거인 줄 알고…….”
“……괜찮습니다.”
이츠키는 옷을 툭툭 털었다.
“앞으로는 제 말을 좀 믿어주는 겁니다.”
“응…….”
“그러면 이제…….”
태화를 향한 이츠키의 눈동자에서 불꽃이 일렁였다.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응?”
“벗으라고입니다.”
이츠키가 달려들자 태화가 기겁하며 뒤로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어느새 세희가 꼬리를 붙잡고 있었다.
“야, 이거 안 놔?! 야! 꺄아악!”
“내가 도와줄게. 야, 빨리 벗어.”
“얘들아? 여기 교무실…….”
“꺄아아악!”
* * *
확인 결과. 태화의 몸에는 악마의 구멍이 없었다.
그 과정을 다 지켜보게 된 상호의 얼굴은 10년쯤 더 늙어 있었다.
“……사카시타.”
“네.”
“꼭 그렇게 과격한 방법을 써야…… 했을까?”
“설득이 통하질 않았습니다.”
이츠키는 상호의 옆에 앉은 채로 막대과자를 오독오독 먹었다.
“이양처럼 멍청한 사람한텐 어쩔 수 없는 겁니다.”
“그런가…….”
상호는 진땀을 흘렸다.
“……근데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야?”
종례는 한참 전에 끝냈는데. 왜 기숙사에 안 가고 있는지.
그 물음에 이츠키가 그를 흘겨보았다.
“선생님 때문에 이상한 소문이 나지 않았습니까.”
“응? 아아……. 미안해. 그래도 뭐 별거 아니잖아?”
“저한텐 별것입니다.”
이츠키는 그렇게 대꾸하고는 상호의 무릎에 앉았다.
다시금 교사들의 묘한 시선들이 몰려들자 상호는 당황하며 이츠키의 등을 살살 밀어냈지만, 이츠키는 오히려 그의 품에 쏘옥 안겨들었다.
“사카시타? 여기 교무실…….”
“대가를 청구하겠다 말씀드렸습니다.”
“그치만 교무실……!”
“그래서 하는 겁니다.”
이츠키가 혀를 쏙 내밀었다.
“소문은 소문으로 덮어야 하니까.”
상호의 이마에 진땀이 줄줄 흘렀다.
“이건 소문이 아니라 추문이야, 사카시타……. 나 짤려…….”
“제 알 바 아닙니다.”
“사카시타……!”
“우왓, 다리가 세 개~.”
“……큰소리로 말하지 마!”
“흐흥.”
세상만사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 이츠키는 실쭉 웃으며 막대과자를 오독거렸다.
고양이처럼 품에 안긴 채. 고양이처럼 입꼬리를 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