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0화>
440. 보고도 알지 못하는
“악마의 눈?”
민정이 당황했다.
“사람……한테?”
“응.”
상호는 곁에 앉아 있는 이츠키를 흘끗했다.
“융합체 같은 거겠지.”
“하지만…… 악마가 아니었잖아.”
“눈만 융합됐다거나. 그건 이제부터 알아봐야겠지.”
셋의 시선이 리주를 향했다.
방 가장자리에 어색하게 서 있던 리주는 시선이 집중되자 움찔하며 문가로 슬금슬금 걸어갔다.
“검, 검사 준비할까요……?”
“예.”
“금방 준비할게요…….”
문이 닫히고 잰걸음 소리가 빠르게 멀어져 갔다.
* * *
“악마가 된 건 아니에요.”
리주가 모니터를 읽으며 말했다.
“악마 인자는 지난번 몸에 들어왔던 그 악마의 것 그대로예요. 체내 농도도 그대로고, 인간의 세포도 그대로……. 같은 이유로, 원래도 완벽한 인간이었을 거예요. 융합체가 아니라.”
“주술의 영역인 거죠?”
“네.”
상호는 대답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츠키의 눈은 개벽 이후에 달라진 것. 몸은 비록 평범한 인간이지만, 차원이 합쳐질 때 무언가가 이츠키에게 겹쳐졌다는 건 분명했다. 아마도 악마의 영혼의 눈.
그게 악마의 인자에 반응해서 새로이 눈뜬 것이고.
‘……그렇지만.’
눈을 똑바로 뜨지는 못한 상태.
고민에 빠진 상호에게 리주가 물었다.
“사카시타 양은 아직 잘 안 보인다고 하던데. 더 잘 보이게 하는 방법을 찾아볼까요?”
상호는 리주를 돌아보며 떨떠름하게 되물었다.
“방법?”
“악마 인자를 더 투여하면…….”
그 말에 상호의 눈에서 불길이 솟았다. 리주는 그 뜨거운 눈빛을 마주하고는 식겁하며 움츠러들었다.
“아, 아니. 그냥 해 본 소리예요…….”
“사카시타를 악마로 만들자고?”
“단순히 인자만 늘린다고 해서 악마가 되지는…….”
“그럼 도로 빼낼 수 있어요?”
“그건 불가능하고…….”
“형수.”
“네?”
“맞을래요?”
“아, 아니요. 그냥, 그냥 해 본 소리였어요…….”
“꿈도 꾸지 마요.”
멀쩡한 사람을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만드는 건 절대로 용납 못 한다. 상호는 리주의 앞에 검지를 세웠다.
“똑똑히 알아둬요. 사람을 상대로 실험하는 건 허락 안 해요. 최후의 방법이 그것뿐이라 해도, 세상 사람들이 정말 싹 다 죽기 전까지는 쓰지 않을 거예요. 꼬우면 나랑 한 판 뜨든가.”
“어어…….”
리주의 눈이 핑핑 돌았다.
“도련님이랑 한 판 뜨자구요? 저는…… 유부녀인데…….”
“…….”
주변 여자들은 왜 다 이 모양인가. 상호는 지끈거림에 이마를 짚었다.
“……어쨌든, 그건 안 돼요. 다른 방법이나 찾아봐요.”
“다른 방법이라면…….”
리주는 상호의 눈치를 보았다. 이번 방법도 뭔가 켕기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그…… 하나 생각난 게 있긴 한데.”
“뭔데요. 말해봐요.”
“사카시타 양의 안구를 적출해서…….”
그 시점에서 리주는 또다시 상호의 눈치를 살폈지만, 상호가 의외로 가만히 있는 것을 보고는 용기를 내서 말을 이었다.
“안구를 적출해서 진짜 악마에게 이식하는 거예요. 우리 편이 되어줄 악마……. 아니면 악마를 만들거나. 악마 융합체한테 이식할 수도 있고…….”
“사카시타의 눈은 성력으로 치료하고?”
“네.”
“……흐음.”
현 상황에서는 나쁘지 않은 방법 같았다.
그러나 간과하고 있는 한 가지 사실은.
“그러다가 악마의 눈이 고장나면?”
“……달리 방법이 있을까요?”
“눈은 두 개긴 하죠.”
시행착오의 기회는 단 한 번.
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알았어요. 본인한테 동의부터 구하고, 허락하면 이식할 악마를 찾아보죠.”
“네.”
리주는 키보드를 좀 더 두드리다가 방을 나갔다.
방의 한쪽에는 검사실로 향하는 문이 있었다. 상호는 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펑퍼짐한 원피스형 환자복을 입은 이츠키가 검사대에 앉아 있었다.
“앗, 역시 선생님. 옷 갈아입으려는 타이밍에…….”
“아니야. 검사는 별것 없었지?”
“그렇습니다.”
“다행이네.”
그는 이츠키의 곁에 앉았다.
“사카시타.”
“네.”
“너는, 네가 지금 보는 것들…….”
상호의 손이 이츠키의 손을 잡았다.
“선이라든가, 빛이라든가, 하는 그런 모든 것들……. 그게 네 인생에서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된다면. 기쁠 것 같아, 별로일 것 같아?”
“……글쎄.”
이츠키는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글쎄입니다.”
“고민돼?”
“그렇습니다.”
이츠키의 눈이 스스로와 상호 사이의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이 선 때문에 아주 많이 곤란했습니다.”
“어떻게?”
“알고 싶지 않았던 것들을 아주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만약 자신한테 자기가 모르는 인연의 실이 있다면, 기분이 어떨 것 같습니까?”
“좋진 않으려나.”
“또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내가 모르는 선이 의외의 인물에게 이어져 있다면……간단히 말해서, 부모님의 옛 연인이나, 짝사랑 상대의 새 이성 친구라든가, 누군가의 불륜 관계…… 같은 것들을 전부 알 수 있게 된다면, 기분이 어떨 것 같습니까?”
“……절대 좋지 않겠지.”
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없어지는 게 좋아?”
“그건 또 아닙니다.”
이츠키가 손을 슬쩍 돌려 상호의 손을 맞잡았다.
“이제는 익숙해졌습니다. 사람이 사람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는 것……. 인연을 볼 수 있다 해도, 그 안에 담겨 있는 그 사람의 인생관과 감정까지 알 방법은 없다는 것. 기묘하지 않습니까.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이 보이는데, 볼 수 없는 것을 훨씬 크게 체감하고 있는 겁니다.”
상호는 잠자코 들었다.
“없어지는 게 좋느냐. 제 대답은 아닙니다입니다. 이 눈이 있기에 저는 절대 사람을 잃어버리지 않고, 악마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아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비록 그 때문에 알고 싶지 않은 것을 알게 된다 해도…… 때때로 흥미로운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제와 이 눈이 없어진다면…… 아주 많이, 허전할 겁니다.”
“그런가.”
“다만 두 가지만 약속해 주신다면, 없어져도 괜찮습니다.”
상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떤 약속?”
“저를 잃어버리면 반드시 찾아낼 것.”
이츠키가 양손으로 그의 손을 잡았다.
“언제나 몇 번이라도, 서로가 어디에 있든. 절 찾아내서 곁에 두는 것이 조건입니다.”
상호는 마른침을 삼켰다.
“……다른 하나는?”
“바람피우지 말 것.”
이츠키가 그의 곁에 바싹 다가붙었다.
얇은 환자복 너머로 가느다란 선이 느껴졌다.
“제가 선을 보지 못해도, 믿을 수 있도록. 제가 허락한 사람들 외에는 마음 주지 말 것. 이 두 가지만 지켜준다면, 제 눈을 드리겠습니다.”
“…….”
이건 대놓고 고백이 아닌가.
아니, 고백을 넘어서 청혼이나 다름없다. 상호는 당황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가만히 이츠키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츠키는 그를 향해 조금씩 고개를 들이밀며.
“여자가 너무 많아서 걱정이십니까?”
“……아니.”
“그러면, 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그것도…… 아닌데.”
상호는 곧 쓰게 웃었다.
“조건 하나만 추가할게.”
“무엇입니까?”
“기한은 내가 죽는 날까지.”
이츠키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냥, 확인하는 거야.”
기한이 100년인지 죽기 전까지인지. 거짓말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확인해야 했다.
상호는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약속할게.”
“일본에서는 약속할 때 혀를 엮습니다. 손가락이 아니라.”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럴 린 없잖아.”
“약속까지 한다면서 왜 그렇게 따지는 게 많습니까. 그냥 같이 기분 좋아지는 겁니다.”
“아니 잠깐……!”
“잠깐이면 충분합니다.”
이츠키가 상호를 검사대에 자빠뜨리는 순간, 문이 벌컥 열리고 민정이 들어왔다.
민정은 이미 몸이 겹쳐진 상호와 이츠키를 보고는 움찔하며 눈을 깜작였다.
“……상호야.”
“……아니야.”
“누나로는…… 부족했니?”
“아니라고…….”
“밖에서 기다릴게. 잘 마무리하고 나와.”
서운한 목소리를 끝으로 문이 쾅 닫혔다. 상호는 닫힌 문을 바라보며 진땀을 흘리다가 이츠키를 돌아보았다.
“……사카시타.”
“네.”
“알고 있었지?”
“물론입니다.”
이츠키가 쪽 소리를 내며 입맞춤하는 시늉을 했다. 특유의 무표정으로.
“저보다 먼저인 분들은 약속의 예외로 해드리겠습니다.”
“……그거 참 고맙네.”
한숨이 푹 나왔다.
“갈아입고 나와. 마지막 검사하러 가자.”
* * *
곤죽이 요동치는 구덩이.
그 한가운데에 유난히 큰 덩어리가 하나 동동 떠 있었다.
“보여?”
“보인다기보다는…….”
상호의 곁에 선 이츠키가 중얼거렸다.
“너무 많아서…… 잘 안 보입니다. 구덩이 전체에서 연기가 피어올라서…….”
“꺼내야겠어?”
“그렇습니다.”
상호는 내공을 뻗어 그 큰 덩어리를 집었다.
사람 팔뚝만한 커다란 살점이 구덩이 옆 땅에 철퍼덕 떨어졌다. 상호와 이츠키는 그 살점을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보여?”
“간신히…….”
이츠키가 눈살을 찌푸렸다.
“작은 점이 보입니다. 정말 아주 작은 점……. 거기서 연기가 새어 나오는 중입니다.”
“그래?”
구멍 너머에 있는 악마의 심장. 이츠키가 보고 있는 것이 영혼의 구멍이 맞다면, 완전히 재생되지 않은 상태라도 죽일 수는 있는 모양이었다.
“베르멜로랑 비교하면 어때?”
“이쪽이 훨씬 작습니다.”
대악마와 악마의 차이일까. 아니면 온전히 재생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상호는 일단 손가락을 들어 초혼강기를 바늘처럼 가늘게 세웠다.
“어딘지 짚어 줄래?”
“여기.”
“이대로 찌르면 되겠어?”
“그렇습니다.”
상호는 살점에 초혼강기를 푹 찔러 넣었다.
그러자 살점이 펄떡펄떡, 꾸물꾸물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아직 뇌라는 게 없을 근육뿐인 몸인데도, 공포에 질린 듯 마구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죽지는 않았다.
“심장에 가까운 건 확실한 것 같네.”
상호는 손가락을 거뒀다.
“어느 방향인지는 안 보이지?”
“죄송합니다. 아무리 봐도 점으로밖에 안 보여서…….”
“아니야. 뭐가 죄송해. 안 보이면 안 보이는 거지.”
악마의 심장에 대한 정보를 확인한 것만으로도 충분한 쾌거다. 상호는 살점을 쫙쫙 찢어서 구덩이에 던지고 옆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대악마를 담아둔 통과 혈석이 놓여 있었다.
“사카시타.”
“네.”
“저기선 뭐가 보여?”
“통에서는 연기…….”
이츠키의 눈동자가 혈석을 향했다.
“저 빨간 돌에서는……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상호는 이츠키의 등에 손을 얹고 혈석을 향해 조금씩 다가갔다.
“가까이서도 안 보여?”
“그렇습니다.”
“……으음.”
구멍이 너무 작은 걸까. 하긴 잡졸인데다가 죽어 있기까지 하다. 어쩌면 이츠키의 눈이 불완전해서일수도 있고.
그러나 상호는 아무래도 지난번의 일이 마음에 걸렸다.
지배의 악마가 왜 혈석을 보고 광소를 터트렸는지.
‘눈을 완성시키고 나면…….’
이놈부터 최우선으로 죽여야겠다.
다른 대악마들보다도 더 먼저. 그는 그렇게 마음먹고 이츠키와 함께 돌아섰다.
어디선가 들려온 달그락 소리를 헛것이라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