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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여고의 남선생-436화 (436/501)

<436화>

436. 불지옥

“뭐야.”

상호는 눈을 끔뻑이며 교무실을 둘러보았다.

“에어컨 고장 났어요?”

늘 시원하던 교무실이 오늘따라 후텁지근해서.

설미가 부채를 팔랑이며 한숨을 쉬었다.

“중앙 시스템이 고장났대.”

“사람은 불렀대요?”

“점심쯤에 온다는데…….”

“아이고.”

상호는 쯧쯧 혀를 차며 자리에 앉았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딱히 상관없는 일이었다. 에어컨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살면 되는 것이고, 애초에 그의 교실은 에어컨을 켜지 않으니.

졸지에 혹서기 훈련을 함께 받게 된 다른 반 아이들만 불쌍할 뿐이었다.

‘……음?’

뭔가 좀 미심쩍은데.

상호는 잠시 멈칫했다가 설미에게 물었다.

“왜 고장났는지는 모르죠?”

“응…….”

“……으음.”

괜한 기우일 것이다.

‘점심에 고치러 온다니까…….’

그는 고개를 흔들고 출석부를 집어 들었다.

* * *

“……고쳤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러게…….”

설미가 땀을 뚝뚝 흘리며 부채질을 했다.

“분명 고쳤다고 했는데……. 뭐가 또 잘못됐나…….”

교무실은 여전히 찜통이었다.

사람이 다녀간 건 봤는데. 뭐가 어떻게 고장났기에 제대로 못 고쳤나. 상호는 설미의 부채를 받아 대신 부쳐주며 물었다.

“애들은 괜찮대요?”

“우리 애들은 정령 써서 괜찮아…….”

“근데 설미 선생님은요?”

“내 정령은 다 학교 감시에 쓰고 있어…….”

“다른 반들 소식은 어때요?”

“다 죽어가던데……?”

당연히 그럴 것이다.

측은해하는 상호에게 설미가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며 물었다.

“상호 씨네 반은 괜찮아? 애들이 뭐라 안 해……?”

“저희 애들은 원래 에어컨 없이 지내요.”

“응? 상호 씨네는 원래 고장나 있었어?”

“아니요.”

“나 지금 머리가 안 돌아가…….”

설미는 눈을 팽글팽글 돌리다가 책상에 엎어졌다. 상호는 쓴웃음을 지으며 설미에게 부채를 계속 부쳐주었다.

“아이스크림이라도 먹을래요?”

“사랑해……, 앗.”

축 늘어져 있던 설미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얼굴을 발갛게 물들인 채로.

그러고는 아무도 못 들었단 걸 확인했는지, 다시 고개를 숙이며 조그맣게 속삭였다.

“사랑해…….”

“다녀올게요.”

상호는 교무실을 나와 매점으로 향했다.

그런데 어째 매점에 사람이 없었다. 점심시간 직후에는 디저트를 먹으러 오는 아이들이 꼭 있는데. 요즘 같을 때는 특히 아이스크림.

그는 고개를 기웃거리며 아이스크림 냉동고로 갔다가 당황했다.

“이모님, 아이스크림이 왜 하나도…….”

“그러게~.”

관리인이 한숨을 쉬었다.

“아휴, 업체에서 보내주기로 했는데 아직도 안 와~.”

“있던 건 다 어디 갔어요?”

“요즘은 이틀이면 싹 팔리지~.”

“으음…….”

별수 없다. 상호는 주스를 두 개 사서 매점을 나왔다. 그리고 하나를 까서 마시며 뚱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교무실로 향하는 걸음이 그리 가볍지 못했다.

* * *

그러기를 닷새째.

이제 학교는 서서히 지옥이 되어가고 있었다.

“상호야, 살려줘…….”

설미가 울먹이면서 단추를 하나씩 끌렀다.

“나 잠깐 단추만 풀 테니까 남들 못 보게 앞에 가려줘…….”

“정신줄 잡아요, 누나…….”

상호는 설미의 손목을 잡아 세우고 진땀을 흘렸다.

에어컨이 고장 난 건 본관뿐만이 아니었다. 별관은 물론이고 학년별 기숙사들과 교사들 숙소까지. 덕분에 교내 사람들은 교직원이고 학생이고 구분 없이 다들 미쳐가고 있었다.

멀쩡한 것은 상호뿐.

‘뭔가 방법을 찾아야 할 텐데…….’

수리기사들이 제집 드나들듯 학교에 왔다 갔지만, 고쳐진 것도 잠시일 뿐. 에어컨들은 총파업이라도 한 것 같이 다시 고장 나 버렸다.

이유가 뭘까. 상호가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교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아.”

푹 퍼져있던 교사들이 금방 자세를 고쳤다. 혁이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문가에 서 있었다.

“임 선생. 나 선생.”

“네, 네.”

설미와 다른 정령사 선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혁은 둘을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

“뭐 수상한 거 찾은 거 없어요?”

“네…….”

“정령들도 모르겠대요.”

“그럼 이제 방법은 하나네.”

상호는 혁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는 것을 보고 당황했다.

“……저는 왜요?”

“정령도 못 찾아, 마법도 못 찾아. 그럼 이제 무예가가 찾아야지. 가장 강한 무예가가.”

“아니 무예로 찾긴 뭘 찾아요? 배관 찾게 천장이라도 부숴요?”

“몰라, 짜증나. 알아서 뭐라도 해보라고.”

“그게 무슨…….”

혁은 어이없어하는 상호에게 손을 내젓고 교사들을 돌아보았다.

“학부모들 항의가 쏟아져요, 쏟아져.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범인 찾아내요. 야근 수당 줄 테니까 잠복근무라도 해보고.”

“넵.”

“수고해요.”

그 말을 끝으로 혁은 교무실에서 나갔다.

설미와 교사들은 다시 책상에 푹 퍼져버렸다. 상호는 문가를 째려보다가 설미를 돌아보며 물었다.

“범인이 누굴까요?”

“글쎄…….”

설미는 책상에 얼굴을 박은 채로 대답했다.

“교사 중에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구…….”

“교사 중에요?”

“학생이 이렇게 능력이 좋을 리가 없지 않나……. 난 그렇게 생각해…….”

“……으음.”

듣고 보니 맞는 말 같았다.

상호는 잠시 고민하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런 그를 보며 설미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어디 가……?”

“용의자가 한 명 있어서요.”

“잡으면 한 대 쥐어박아 줘…….”

상호는 쓰게 웃었다.

“노력해 볼게요.”

* * *

“……그래서.”

해련이 부채를 파닥거리며 물었다.

“내가 범인인 것 같다?”

“네.”

상호는 뒷짐을 지고 서서 해련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강검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우리밖에 없잖아요.”

교내에 능력이 되는 사람은 둘인데, 한 명은 자기 자신.

그러면 범인은 뻔하다.

“이론적으로 교장선생님일 수밖에 없어요.”

“흥미로운 가설이네.”

해련이 어깨를 으쓱이며 얼음이 든 커피를 홀짝였다.

해련은 조금 얇은 재질의 하얀 민소매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그 옆으로 나온 팔의 피부가 거의 옷만큼 하얗고 뽀얬다.

상호는 해련의 옷을 빤히 바라보았다.

“많이 더우셨나 보네요.”

“좀 남사스럽나? 그래도 뭐, 이 모습 볼 사람은 강 선생밖에 없는걸.”

“교장실에 아무도 안 와요?”

“노크도 없이 벌컥벌컥 열어젖히는 건 강 선생뿐이지. 그런데 강 선생.”

“네?”

“정말 여자 몸을 스스럼없이 보네.”

너무 빤히 봤나. 상호는 시선을 피하며 헛기침을 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좀 이상한 게 있었다.

“흉터는 다 어디 갔어요?”

“지웠지. 언제까지고 긴소매만 입을 순 없잖아. 나도 여름엔 짧은 거 좀 입어보려고.”

이제 보니 바지도 짧은 양복 반바지였다.

“등에 있는 거 딱 하나만 기념으로 남겨놨는데. 볼래?”

“……아뇨, 됐어요. 벗지 마요.”

상호는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범인이 아니란 말씀이시죠?”

“내가 왜 우리 손녀를 힘들게 하겠어?”

“…….”

말하는 걸 보니 아직 모르는 모양이었다. 하솔은 에어컨 고장 나기 한참 전부터 혹서기 훈련을 받고 있었다는 것을.

“근데 정말 교장선생님 말고는 없는데…….”

“난 오히려 강 선생이 의심스러운걸. 강 선생이라면 에어컨 따위 필요없다면서 다 부쉈을 것 같은데.”

해련의 날카로운 눈빛이 상호를 꿰뚫었다.

“강 선생이 한 거 아냐?”

50% 정도는 맞는 말이었다.

그래도 그가 저지르지는 않았다. 상호는 손사래를 치다가 머리를 긁적였다.

“진짜 저 아니에요. 진짜. 근데 그럼 대체 누굴까요? 에어컨을 고장낸 게 강검이 아니라면…….”

“흐음…….”

곰곰이 고민하던 해련이 입을 열었다.

“강 선생.”

“네.”

“강 선생네 반에 그 커다란 로봇 가지고 있는 애 있지 않던가?”

“있죠, 미래…….”

순간 상호의 머릿속에 벼락이 쳤다.

‘……로봇!’

로봇.

기계 장갑에 오만 가지 기능을 넣어다니는 미래라면, 개미만한 초소형 로봇도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개미만큼은 아니더라도 풍뎅이 정도라면 분명히.

경악에 굳어 버린 상호에게 해련이 피식 웃었다.

“잡았나 보네.”

“……아직은 모르죠.”

그러나 상호도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마법도 아니고, 무예도 아니고, 정령도 아닌. 공학이라는 분야의 교내 최강자. 미래.

어떤 의미에서는 범인이 교사일 거라는 설미의 말이 맞은 셈이었다.

‘학생 수준이 아니니까…….’

당장 가서 확인해 봐야겠다. 상호는 황급히 교장실 문을 빠져나왔다.

뒤에서 해련이 손을 붕붕 흔들며 소리쳤다.

“다음에 흉터 보러 와~.”

“안 와요!”

그는 바쁘게 교실을 향해 달려갔다.

* * *

역시나.

상호가 복도 창문으로 몰래 들여다본 교실에서는, 아이들이 미래의 자리에 둥그렇게 모여 무언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화면이 달린 게임기.

……처럼 생긴 원격 제어 리모컨.

“잘 되고 있나?”

“응.”

미래가 조종간을 바쁘게 움직이며 말했다.

“전선을 더 튼튼한 걸로 갈아끼우긴 했는데…… 나한텐 뭐, 식은 죽 먹기지.”

“니만 믿는디.”

지윤이 미래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래 좋은 훈련을 우째 우덜만 받노. 다른 아덜도 맛봐야제.”

“맞아.”

“우린 학교를 도와주고 있는 거야, 멍.”

“…….”

상호의 이마에 진땀이 흘렀다.

더 알아볼 것도 없이 범인 확정이다. 전교를 불지옥으로 몰아넣은 범인이 그의 반 학생들이었다니.

“야, 그거 나도 조종해볼래.”

“안돼, 언니가 만지면 고장나.”

그는 창문을 살짝 두드렸다.

“우씨, 살살도 안되냐? ……어?”

창가를 돌아본 아이들의 몸이 굳었다.

상호는 묘한 기시감을 느끼며 창문을 열었다.

“……얘들아.”

“……멍.”

“설명이 좀…… 필요할 것 같은데.”

아이들은 은근슬쩍 리모컨을 가렸다. 잔뜩 당황한 표정으로.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아이들의 눈동자에서 불꽃이 화륵 타올랐다.

“선생님 잘못이에요!”

“……나?”

“선생님 때문이에요! 선생님이 그랬잖아요! 이렇게 하는 게 진짜 헌터라고!”

“므아!”

다혜까지 항의하듯 주먹을 붕붕 휘둘렀다.

교실로 들어온 상호는 진땀을 흘리며 양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그래, 선생님이 너무했어. 근데 얘들아, 그렇다고 다른 반까지 피해를 주면…….”

“이건 피해가 아니에요! 훈련이에요!”

“이게 피해면 선생님이 저희한테도 피해를 준 거예요!”

“아니 그니까 잘못했어, 내가 잘못했는데…… 다른 반 애들은 원하지 않았잖아…….”

“원한다! 다들! 강한 헌터!”

“느아아!”

상호는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그래, 선생님이 다 잘못했어, 너희도 화낼 만해……. 그치만 이거 하난 알아줘, 인내심을 기르는 것도 헌터의…….”

“그치만 선생님도 수녀님 계실 땐 매일밤 달리셨잖아요.”

“쌤도 화나면 그냥 막 들이받잖아. 미친개였다매.”

“…….”

세희와 태화의 말이 상호의 심장을 찔렀다.

상호는 눈물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너희 말이 다 맞아…….”

“그럼 이제 에어컨 켜도 돼?”

“응…….”

“아이스크림 먹어도 돼?”

“으응…….”

“아싸아!”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하이파이브를 하고는 상호에게 와락 안겨들었다.

“쌤 최고~. 싸랑해~.”

“으응……. 근데.”

상호는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눈을 끔뻑였다.

“혹시 매점에 아이스크림 떨어진 것도…… 너희야?”

그 말에 나빛이 환하게 웃었다.

“네.”

“……나빛이 너야?”

“저랑 미래가요.”

“어떻게……?”

“납품업체를 매수했어요.”

이게 무슨 소리냐. 상호의 눈앞이 아찔해졌다.

“아니, 그러면 어떡해. 이모님은…….”

“걱정 마세요. 아주머니께도 넉넉하게 챙겨 드렸어요.”

“…….”

“연기를 잘하시더라구요.”

아이들이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상호는 확실하게 깨달았다. 이 아이들이 전교를 불지옥으로 만든 이유는, 상호 자신이 먼저 교실을 불지옥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또 그의 업보였던 것이다. 그는 땀투성이가 된 아이들을 끌어안고 고개를 푹 숙였다.

“빙수…… 사줄게…….”

“우왓! 진짜?! 비싼 거 시켜도 돼?”

“망고빙수, 멍…….”

“그래, 시켜. 과일빙수든 뭐든 시켜…….”

“아싸~!”

아이들은 깔깔대며 그를 어깨에 업고 교실을 나섰다.

꽃상여처럼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채 들려 가는 상호의 얼굴에는,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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