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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여고의 남선생-424화 (424/501)

<424화>

424. 나 이거 키울래

“민정쌤~.”

“…….”

민정은 할 말을 잃었다.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드는 아이들. 그 옆에서 시선을 피하는 상호. 그리고 그 뒤의 거대한 그림자.

웬 곰 같은 놈이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었다.

“……상호야.”

“응.”

“저거…….”

“잠깐만 들어가게 해줘.”

가까이 다가온 상호가 한숨을 푹 쉬었다.

“안에서 말해줄게.”

“……으응.”

그들은 아이들과 곰을 데리고 봉인소로 들어갔다.

* * *

“누나.”

상호는 스스로의 미간을 엄지로 꾹꾹 눌렀다.

“어떻게 좀 해봐…….”

민정이 어깨를 들썩였다.

“나라고 뭐 방법이 있겠니.”

“애들 내 말은 안 듣는단 말이야. 누나가 뭐라고 좀 해봐. 저걸 진짜로 도시에 데려갈 순 없잖아…….”

“생각을 바꿔 봐. 몬스터를 키우면 안 된다는 법은 없잖아?”

“누나까지 그러기야?”

잘 아는 사람이 말리기는커녕 부추기려 한다.

창밖에서는 꾸웅이 지윤에게 놀이를 빙자한 구타를 당하고 있었다. 올라타는가 싶더니 그대로 수플렉스를 먹인다. 상호는 그 꼴을 지켜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안 돼.”

“그냥 곰 하나 키운다고 생각하면 어때? 벌써 꽤 잘 지내는 것 같은데. 몬스터라서 못 믿는 거야?”

“아니. 몬스터도 통하는 놈은 통하지.”

그 말에 민정이 빙긋 웃었다.

“너도 참 많이 달라졌다.”

“뭘 새삼스럽게…… 이건 한창 전쟁할 때도 이미 알고 있었어.”

“그래서, 그러면 왜 안 된다는 거야?”

“저놈을 어디서 키워…….”

학교에는 학생들이 있다. 아직 실전경험이 없는 하급생들도 있고, 애초에 전투가 뭔지도 모르는 신앙인 학생들도 있다. 그런 곳에 몬스터를 데려갈 수는 없고.

또 협회에 데려가자니 짐덩어리 하나 던져주는 꼴밖에 안 되고. 정작 꾸웅을 데려온 아이들은 잘 보지도 못하게 되어버릴 테고.

또 여기 봉인소에 두자니, 이곳은 지금 나라에서 제일가는 초특급 위험지역. 몬스터라는 변인요소를 두기에는 너무 부담이 크고.

그럼 남은 곳은 해봤자 나빛의 집뿐인데.

‘……어머님한테 혼나겠지.’

혼나기뿐이랴. 고소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유해조수 방생에 딸 절도죄까지 묶어서.

그래서 결론은, 저놈을 놓을 곳이 없다. 뭐 저놈을 못 데려가는 이유가 그것 하나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상호는 손사래를 쳤다.

“나 못해. 나 저거 못 키워.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나한테 왜 그래. 애들한테 말해야지.”

“누나가 애들 좀 혼내줘. 응? 내가 누나 평소에 해달란 거 다 해주잖아…….”

“네가 애들 담임이지 내가 담임이니.”

민정이 살짝 웃었다.

“그래도 의미가 있을지 몰라. 사람하고 몬스터가 잘 지낼 수 있다면……. 또 그걸 사람들한테 보여줄 수 있다면. 사실 언젠가는 이뤄져야 할 일이잖아. 몬스터를 멸종시키기는 어려우니까.”

“몬스터들한테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이겠어?”

“지금 앞에 있잖아.”

민정의 턱짓에 상호는 창밖을 돌아보았다.

지윤이 기술에 당해 앞으로 엎어진 꾸웅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고 있었다.

“너도 알잖아. 전쟁을 일으킨 건 악마. 몬스터는 이용당했을 뿐……. 사람들도 이젠 알 준비가 되었지.”

민정이 상호의 등을 토닥였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안 되면 그때 방법을 찾는다. 그게 우리 방식이잖아.”

“…….”

최선이 뭘까. 과연 아이들에게 몬스터를 키우게 하는 게 최선일까.

전쟁에서 목숨을 걸고 싸워왔던 것은 어쩔 수 없었기 때문. 그때는 민정의 말대로 최선을 다하기가 쉬웠지만, 오늘 이렇게 어쩔 수 있는 일들을 마주하게 되면 오히려 도망칠 방법을 찾게 되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일단 하루만 묵으면서 생각해볼게.”

“그래. 그렇게 해.”

민정이 빙긋 웃었다.

* * *

산 좋고 물 좋고 공기도 좋은 곳.

봉인소 주변의 자연은 청정 그 자체였다. 도로도 없고 밭도 없고. 오랫동안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살아 숨쉬는 곳.

그곳에서 제일 잘 살아가는 건 다름 아닌 벌레였다.

“와씨, 쌤! 쌤! 이거 봐. 나방이 X발 무슨 쌤 꼬치만해!”

“얌마, 니가 뭘 알아. 보면 얼마나 봤다고…….”

“하긴 힘을 해방한 모습은 본 적 없긴 하지.”

태화는 키득거리고는 나무에 붙은 나방에게 작은 돌을 던졌다.

나방은 거대한 날개를 펼쳐 태화에게 날아들었다. 무슨 새라도 되는 것마냥 푸드덕 소리를 내면서.

“꺄아아악! 잘못했쪄! 미안! 미안!”

“천벌이다 임마.”

“아 씨, 쫌 도와줘! 왜 쪼개고만 있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나빛이 한마디 했다.

“태화 넌 좀 혼나도 돼. 왜 생명을 함부로 괴롭혀.”

“니가 나한테 할 말이냐?!”

“왜? 나랑 꾸꾸는 태화 좋아하는데. 그치, 꾸꾸야~.”

“뺙?”

혁구가 금시초문이라는 듯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들의 옆 공터에서는 세희가 호신강기를 두른 채 꾸웅을 패고 있었다. 처음에는 분명 스파링이었던 시합은 어느새 일방적인 구타가 되어 있었다.

퍽 퍽

“어디 비겁하게 이빨을 쓰려고 들어. 어? 어?”

“마, 세희야. 고마해라. 강냉이 다 날아가뿐다잉.”

“사람한테 입질하는 버릇은 제대로 고쳐놔야지. 얜 곰이니까 서열을 잡으려면 두들기는 수밖에 없어.”

“하이고~. 야가 곰통령이 되어뿔라고 이러나.”

“꾸어엉…….”

꾸웅은 별 반항도 못 하고 처맞기만 했다.

꼴을 보니 완전히 X밥 몬스터. 아이들을 걱정할 필요는 딱히 없을 듯했다. 상호는 아이들과 꾸웅이 노는 모습을 멀거니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꾸웅이 주변을 쓱 둘러보더니 어딘가로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쟤 어디 가냐?”

상호가 눈을 끔뻑이자 나빛이 대답했다.

“밥 먹으러 가는 거예요.”

“밥?”

“네. 슬슬 밥때라서.”

일주일 동안 데리고 살았다더니 그새 통하게 된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이야말로 저놈의 곰을 떼어놓을 기회. 상호는 살짝 웃으며 나빛을 곁으로 끌어당겼다.

“나빛아, 그런데 있잖아.”

“안 돼요.”

“…….”

“꾸웅이 데려갈 거예요…….”

작업을 치기도 전부터 거절당했다.

그래도 포기하기엔 이르다. 상호는 더욱 밝게 웃으며 나빛을 살살 끌어당겨 아이들이 듣지 못하게 돌아섰다.

“나빛아. 나빛이는 집이 좋지?”

“꾸웅이 집은 산이라고 하실 거죠?”

“…….”

“집은 원래 만드는 거예요……. 사람도 원래는 동굴에서 살았지만 집이 더 편하듯이요.”

“……그렇구나.”

왠지 나빛이 똑똑해진 기분이 들었다.

“그치만 그건 꾸웅이한테 알맞은 집을 지어줄 수 있을 때 이야기가…… 아닐까?”

“돈으로 안 되는 건 없어요…….”

“…….”

“저는 돈으로 학교도 살 수 있어요…….”

나빛이 범처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선생님도 사드릴까요……?”

“아니…….”

“저는 선생님이 지금 받는 월급을 일당으로 주면서 하루종일 다람이랑 꾸웅이만 돌보게 해드릴 수 있어요…….”

“근데 네 돈이 아니잖…….”

“제 이름만 대도 돈 빌려줄 은행이 수십 곳은 돼요…….”

“…….”

왠지 나빛이 무서워진 느낌이 들었다. 상호는 쩔쩔매며 손등으로 진땀을 닦았다.

“그래도 나빛아. 꾸웅이 집은 어디다 만들게?”

“학교 뒷산이요…….”

“그 쪼매난 곳에 곰을 키우자고? 안 돼, 나빛아. 쟤도 답답해서 스트레스만 받을 거야.”

“제가 산책 시켜줄게요…….”

“……지윤아, 지윤아.”

그가 지윤을 향해 손짓하자 지윤이 빠르게 다가와 나빛의 옆에 섰다.

“와예?”

“너희 정말 저거 데려갈 거야?”

“그치만 쟈가 지를 따라오는디…….”

지윤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버리고 가믄 헌터가 죽일 기 아입니꺼.”

“정말 키우고 싶으면 키울 수는 있어.”

상호는 둘의 눈을 바라보았다.

“방법은 그때그때 찾으면 어떤 식으로든 찾아지겠지. 지낼 곳도, 산책도, 먹을 것도……, 돈을 쓰든 마법을 쓰든.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거야. 그런데 그거랑 저 녀석이 그걸 원하는지 안 원하는지는 다른 문제야.”

지윤과 나빛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네.”

“목숨보다 자유를 원하는 게 야생동물이야. 너희는 너희가 정말 그 이상의 무언가를 저 녀석한테 줄 수 있다고 생각해? 다람이는 요구하는 게 적어서 얼마든지 우리가 이뤄 줄 수 있어. 그치만 저 녀석은 몬스터야. 너흰 저 녀석이 앞으로 뭘 원하게 될지 알 수 있어?”

“……모르겠심더.”

“그렇다는 거야.”

언제 탈출해서 사람을 공격할지 모른다. 그게 현실이다. 이상적인 모습만 보면서 일을 벌였다간 낭패를 당하게 된다.

상호는 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희가 저 녀석이랑 친해진 건 알겠지만…… 현실이 그렇다는 거야. 저 녀석은 여기서 사는 걸 더 좋아할걸.”

“……그러믄.”

지윤이 눈을 반짝였다.

“저 짜슥이 따라오믄 되는 겁니꺼?”

“……응?”

“지들이 도시로 가믄서 꾸웅이가 어데까지 따라오는지 보는 깁니더. 중간에 돌아서믄 보내주는 기고, 계속 따라오믄 키우는 기고. 어때예?”

나빛이 활짝 웃으며 손뼉을 쳤다.

“그러면 되겠다! 선생님, 어때요? 네? 네?”

“……내가 실은 말을 안 했는데.”

상호는 그동안 차마 말하지 못했던 진실을 실토했다.

“너희 어머니들한테 죽을까봐 그래…….”

“괜찮아요! 저희가 지켜 드릴게요!”

“그러면 딸 도둑놈으로 찍힐까봐 그래…….”

“언제는 아니었심꺼?”

“…….”

결국 그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그래. 그렇게 해보자. 대신 저 녀석이 중간에 돌아가면 미련없이 놔 주는 거야.”

“네!”

“약속이야.”

“네!”

아이들이 환하게 웃었다.

* * *

“벨.”

어두운 방의 문이 열렸다.

베르멜로는 문을 열고 들어온 사내를 돌아보았다가 당황했다.

“그으…… 저기.”

“뭐.”

“못 본 새 많이 늙으셨네요…….”

상호의 얼굴은 며칠 사이에 폭삭 늙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혀를 차고 문을 닫았다.

“사실 이 방은 바깥과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

“저, 정말요……?”

“뻥이야, 등신아. 그걸 믿냐.”

“…….”

꼼짝없이 믿었다. 그동안 시청해온 인간의 역사 때문에.

베르멜로는 진땀을 흘리면서도 약간의 기대감을 품고 물었다.

“저기…… 주인……님?”

“뭐.”

“혹시 오늘도…… 헤헤.”

상호는 그 말뜻을 알아듣고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니 먹을 것 갖다주는 빵셔틀이냐?”

“아, 아뇨! 그게 아니고…….”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나봐? 그 케이크.”

“……네에.”

베르멜로가 고개를 끄덕이자 상호의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원래는 할 짓이 없어서 협박 겸 취조 겸 회유나 할까 해서 찾아온 것이지만. 그는 베르멜로의 앞에 쪼그려 앉아서 눈높이를 맞췄다.

“벨.”

“네.”

“산책 한번 갈까?”

베르멜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

“산책 말이야. 밖에 나가보고 싶지 않아?”

상호는 엄지로 등 뒤를 가리켰다.

“이런 데 누워있기만 하면 재미없잖아. 신선한 공기나 마시면서 이야기 좀 해보자고. 악마에 관한 이야기든, 너에 관한 이야기든……. 어때?”

“……좋아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베르멜로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다가 자신에게 팔다리가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당황했다.

“그, 근데 주인님. 이러면 산책을 할 수가…….”

“왜 못해?”

“걸을 수가…….”

“누가 너보고 걸으래?”

그 말에 베르멜로의 시선이 상호의 얼굴을, 이어서 그 아래 넓은 품을 향했다.

베르멜로는 뺨을 살짝 붉히며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그, 그러면 역시…….”

“뭐.”

“안아서……?”

“뭔 소릴 하는 거야?”

상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당연히 휠체어 타야지.”

“휘, 휠체어요? 그게 무슨 물건…….”

“지금 너한테 딱 어울리는 물건. 어쨌든 산책 간다는 거지? 휠체어 가져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네에…….”

베르멜로가 고개를 푹 숙였다. 좋다 말았다는 듯이.

상호는 그녀가 왜 그러는지는 이해하지 못한 채로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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