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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여고의 남선생-415화 (415/501)

<415화>

415. 오월의 서리

“헤헤헤…….”

나빛이 옆에 앉은 상호의 손을 조물거렸다.

운전석에는 해련. 조수석에는 태화. 뒷좌석에는 나빛과 상호. 뒤에 앉은 둘의 손은 가운데에서 빈틈없이 포개어져 있었다.

“헤헤헤헤…….”

“…….”

“헤헤헤헤헤…….”

“……나빛아?”

상호는 자꾸 진땀이 났다.

“왜 웃기만 하는 건지…… 물어봐도 되는지 물어봐도 돼?”

“우헤헤헤…….”

“…….”

뭐가 그리 좋을까.

조수석에서는 태화가 무언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네모나고 핸드폰보다는 좀 더 큰 무언가.

상호가 앞자리를 기웃거리려는 순간, 태화가 그 무언가를 상호에게 들이밀었다.

“안녕하세요옹~, 구독자 여러분들~.”

캠코더.

“존잘쌤 요튜브예요~. 오랜만!”

“……야.”

“누나한테 야가 뭐니? 여러분~. 오늘은 존잘쌤 동생이랑 에버월드에 가려고 해요~. 어때요? 쌤 동생 어때요? 너무 귀엽지 않아요?”

“생방이냐?”

“녹화야.”

태화가 캠코더 옆으로 나와 상호를 바라보았다.

“요즘 영상을 못 올려서 구독자 증가세가 떡락했어. 쫌만 더 하면 실버렌즈인데…….”

“그게 뭔데…….”

“은호를 올리면 증가세가 화성까지 떡상할 거야!”

“아동착취야, 임마.”

상호는 캠코더의 전원 버튼을 꾹 누른 뒤.

“아악! 쌤!”

태화를 무시하고 해련을 돌아보았다.

“교장선생님, 교장선생님도 뭐라고 해 보세요. 이게 맞아요? 학생이 하라는 수련은 안 하고 요튜브 따위나…….”

“그치만 나도 구독자인걸~.”

“…….”

사방이 적이다.

이쯤 되면 차라리 궁금해진다. 오늘은 어떤 처참한 꼴을 당하게 될지. 상호는 어차피 반항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날은 좋네…….’

옆으로 내어준 손을, 나빛이 방글방글 웃으며 계속 고물거리고 있었다.

“헤헤헤…….”

* * *

‘오우…….’

상호는 입고 있는 펭귄 인형옷을 내려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생각보다 더 강력하군.’

머리에는 후드. 소매에는 손을 빼는 부분이 없이 펭귄 손. 아래로는 바짓가랑이가 없어서 뒤뚱뒤뚱, 아장아장 걸어야 했다.

그 모습을 본 나빛이 어쩔 줄 몰라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우와, 우와……, 은호야…….”

“…….”

“펭귄처럼 울어 줘, 헤헤헤…….”

“……펭귄이 어떻게 우는데?”

“으음~. 글쎄요……. 펭펭?”

“펭펭…….”

“헤헤헤…….”

군것질거리를 사러 갔다가 돌아온 태화도 상호를 보고는 눈을 반짝였다.

“이거야, 이거! 이건 골드렌즈감이야! 자, 이거 들어!”

“안 먹어. 임마.”

“요즘 방송메타는 음식과 아기와 동물이야! 네가 이 츄러스를 들면 전투력이 두 배로 오른다고. 요튜브의 신이 되는 거야!”

“안 먹는다고!”

“은호야…….”

“응? 나빛이 왜?”

“츄러스 들어 주세요…….”

“…….”

결국 상호는 추로스를 들었다.

참 신기한 것이, 바깥에서 무언가를 손에 들고 먹는 것만으로도 사람이 더 어려 보일 수가 있다니. 그는 추로스를 우물거리며 해련을 돌아보았다.

해련은 태화의 캠코더를 들고 카메라맨을 자처하는 중이었다.

“아이구 강 선…… 우리 은호~. 아유 이뻐라~.”

“…….”

상호의 시선이 캠코더에 꽂혔다.

지금 이런 수모를 당하는 것이야 잠깐이니 참을 수 있지만, 저 캠코더 속 내용물이 요튜브에 올라가 두고두고 살아남는 것은 사절이었다.

어떻게든 저걸 잡아서 부숴버려야 하는데.

‘기회를 노려야…….’

일단은 열심히 뭔가를 해 보자. 그러다 보면 기회가 올 것이다. 상호는 추로스를 입에 욱여넣고 아이들의 손을 잡았다.

“놀이기구나 타러 가자.”

“오올, 적극적인데. 은호 이런 데 처음 와봐?”

“아니, 나빛이랑 와 봤는데.”

“왜 나만 빼놓고 놀러 다니는데! 그리구 나빛이 누나라고 해야지! NG야, NG! 컷! 첨부터 다시 찍어!”

“편집해, 임마.”

그와 아이들, 해련은 놀이기구 앞으로 다가갔다.

인기가 꽤 많은 초대형 롤러코스터. 마법과 정령을 이용해 안전과 스릴을 동시에 잡았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트랙 구조물 위로 마법의 불꽃이 치솟자 탑승객들의 비명도 함께 터졌다.

‘이 몸으로 타려니 괜히 무섭네…….’

몸이 정상일 때는 저것보다 더한 것도 탈 수 있지만, 지금은 내공이 없다 보니 외나무다리를 눈 감고 건너는 것마냥 가슴이 선뜩했다.

‘그래도 뭐, 교장선생님이 같이 타니까…….’

위험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는 아이들과 해련을 데리고 줄에 섰다. 어린이날 놀이공원의 줄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길었지만, 마법을 이용한 놀이기구들은 이전보다 탑승 인원도 많고 회전율도 좋았다.

그래서 줄의 맨 앞까지 거의 다 도착했는데.

앞에 있던 여자 직원이 상호를 보더니, 고개를 기웃거리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뭐지?’

애꾸눈은 못 타나. 상호는 하나 남은 눈을 끔뻑이며 가만히 직원을 바라보았다.

그의 앞에 다가온 직원이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저기, 이 친구분은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스물다섯.

“열 살이요.”

“아아, 그럼 같이 키를 좀 재볼까요?”

키 제한이 있는 모양이었다.

상호는 직원의 안내를 따라 눈금이 그려진 판때기 앞에 섰다.

“132센티네요.”

롤러코스터의 신장 제한은 135cm.

기술이 발전해도 안전은 타협하지 않는구나. 상호는 입맛을 다시며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나는 못 타는…….”

“아, 그리고 고객님도…….”

직원이 해련을 바라보며 난색을 표했다.

“65세 이상은 이용이 불가하셔서…….”

“…….”

시종일관 사람 좋게 웃고 있던 해련의 미소가, ‘65세 이상’이라는 단어에 크게 흔들렸다.

“내가 65세……로 보여요?”

“그게 이용권이…….”

직원이 양 손바닥을 펴서 해련의 팔을 가리켰다.

해련의 손목에는 주변의 그 어느 누구와도 다른 색의 이용권이 차여 있었다. 눈에 아주 잘 띄는 초록 형광색.

“어르신들 전용으로 만들어진 거라서……. 여기서는 탑승이 불가하세요. 고객님께서 아무리 정정하시더라도 심혈관 질환이라든가, 그런 건강 같은 부분을 저희가 다 알 수는 없으니까…….”

“…….”

그러니까 한마디로 할머니 인증서.

경로할인 받겠다고 신분증 꺼낼 때 알아봤다. 상호는 돌처럼 굳어버린 해련의 손을 살살 잡아끌었다.

“할머니. 저희는 빠져서 기다려요.”

“…….”

“할머니?”

우두둑

해련의 손에서 관절 꺾는 소리가 났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 세월을 이길 수는 없다는 것을 떠올렸는지, 고개를 축 늘어뜨리고 상호와 함께 줄에서 벗어났다.

“강 선생…….”

“네?”

“나 늙어 보여……?”

“늙어 보이지는 않지만 늙었잖아요.”

“그래…….”

해련의 눈동자가 상호를 위아래로 훑었다.

“조만간 몸보신 좀 해야겠네…….”

“……지금 하면 범죄인 거 알죠?”

“고령자는 법원에서 알아서 선처해 주거든.”

“그건 오늘내일하는 사람들…… 끄응.”

상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해련과 함께 벤치에 앉았다.

주변에는 사람이 많았다. 가족, 연인, 친구. 다만 평소의 상호라면 한가롭게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겠지만, 지금 상호의 신경은 온통 해련의 손에 들린 캠코더를 향하고 있었다.

“교장선생님.”

“응?”

“그거 잠깐만 주세요.”

해련은 별 의심 없이 그에게 캠코더를 넘겨주었다.

상호는 캠코더를 이리저리 둘러보는 척하며 생각에 잠겼다.

‘이걸 지금 떨어뜨린다고 못 잡을 사람이 아니지…….’

옆에 있는 사람은 그런 사람이었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 해련 몰래 데이터 칩이나 배터리를 빼낼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며 캠코더를 둘러보는데 해련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강 선생.”

설마 속마음을 들켰나 싶었다.

‘……켁!’

그러나 해련이 꺼낸 말은 완전히 딴판이었다.

“강 선생이 쓰는 강기 있잖아.”

“네?”

“악마한테 먹히는 강기.”

상호의 눈이 끔뻑였다.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꺼내는지.

“네. 초혼강기요.”

“그거 세희도 쓰는 거지?”

“네.”

“어떻게 얻는 거야?”

그는 얼마 전 건흠이 빙의당했을 때 해련이 크게 당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 이전에 다혜가 폭주했을 때도.

더 강해져야 할 필요성을 느낀 것이리라.

“영혼을 담는 거예요.”

“그건 아는데, 그걸 어떻게 하는 거야?”

“그건 잘 설명하기 힘든데…….”

상호는 펭귄 옷 소매에 갇힌 손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냥…… 느낌이 팍 하고 올 때가 있어요. 우리가 검기를 처음 만들었을 때처럼…….”

그때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검기를 만드는 것은 내공. 초혼강기를 만드는 것은 영혼. 그러면 검기를 만들기 전에 기감을 먼저 깨치듯이 초혼강기를 만들기 전에 영혼을 먼저 느껴야 할 것이다.

예경이 상호의 심상에 나타났듯이.

해련의 심상에도 그가 나타난다면.

‘근데 그 말은…….’

상호의 이마에 식은땀이 배어나왔다.

‘지금 말하기엔…… 영 좋지 않을 것 같네…….’

몸보신을 시켜 드리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농후하니.

그는 일단 말을 아끼기로 했다.

“……다음에 한번 도와드려 볼게요.”

“응? 그니까 그 도와준다는 게 어떻게 하는 거야?”

“지금은 말 못 해요. 지금은…….”

“으음. 뭐 그렇다면 그런 줄 알게요.”

해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우리도 같이 탈 수 있는 놀이기구를 찾아야겠네. 뭐 좋은 거 없을까?”

“글쎄요, 애들도 좋아할 만한 게…….”

주변을 둘러보던 상호의 눈이 순간 반짝였다.

“……있는 것 같네요.”

그는 입가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 * *

[네에~, 안내원의 안내를 따라 한 보트에 열 분씩 탑승해주세요~.]

상호와 아이들, 해련은 보트 위에 올랐다.

동그랗게 둘러앉는 형태의 보트. 인공 강을 타고 흘러가며 물의 정령과 동물 등의 볼거리를 보고, 덤으로 옷도 젖는 놀이기구, 버뮤다 익스프레스.

상호가 꼭 타보고 싶다고 졸라서 타게 된 것이었다.

“쌤. 쌤.”

“응.”

“쌤 이런 거 좋아했어?”

“환장하지.”

“몰랐네…….”

태화가 좌석에 앉았다.

좌석은 2인용이 다섯 개. 태화와 나빛과 해련은 각각 따로 앉아 상호를 빤히 바라보았다. 누구랑 같이 앉을 거냐는 듯.

상호의 답은 정해져 있었다.

“아 쌤! 어디가! 나한테 와야지!”

“헤헤헤…….”

상호가 다가오자 나빛이 활짝 웃었다.

다만 상호가 나빛을 택한 이유는 누구를 더 좋아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저 나빛의 반응속도가 제일 느리기 때문에.

‘이건 기회야…….’

상호의 손에는 아직 캠코더가 들려 있었다.

그는 속마음을 들키지 않게, 자연스럽게 나빛의 곁에 앉아 방수포를 덮었다. 어른이었으면 배까지 왔을 방수포가 어깨까지 올라와 있었다.

곧 바닥이 움직이며 보트를 인공 강에 띄웠다.

“우와, 은호야. 간다, 간다, 헤헤헤…….”

“우씨, 벌써 젖었어.”

태화는 눈살을 찌푸리고는 상호에게 손을 내밀었다.

“쌤, 캠 줘.”

“이거 끝나면 줄게.”

“지금 찍어야 된단 말이야. 빨리 줘!”

“물 다 젖는다, 임마……. 가만히 앉아 있어.”

상호가 노리는 게 바로 그것이었다. 물.

그는 캠코더를 꼭 쥐고 때를 기다렸다. 태화와 해련의 주의가 다른 곳을 향해 있을 때를.

캠코더를 물에 빠뜨리기 위해서.

‘태화가 뭐라고 떽떽거리긴 하겠지만…….’

밝은 아이니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더 좋은 걸로 사준다고 하면 될 일이고.

‘대충 던졌다가는 교장선생님이 잡는다.’

덩크슛을 꽂듯이 아예 물에 처박아야 했다. 그러려면 모두의 시선을 피해야 할 터.

때마침 강물이 솟구쳐 올랐다.

“우와.”

투명하게 빛나는 나무와 꽃.

마치 유리로 만든 숲에 들어온 것 같았다. 물의 정령이 만들어낸 그 광경에 태화와 나빛, 심지어 해련까지 눈길을 빼앗겼다.

상호도 잠시 홀릴 뻔했지만, 그는 곧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 목적을 떠올렸다.

‘기회다!’

캠코더를 든 손이 강물을 향해 내리꽂혔다.

텀벙……

“어?”

“응?”

“엥?”

아이들이 소리가 난 곳, 상호의 옆을 보았다. 상호도 모르는 척 옆을 돌아보았다.

물에 빠진 캠코더가 꼬르륵 가라앉고 있었다.

“앗…….”

아이쿠 손이 미끄러졌네.

한 번의 실수가 있었다. 하지만 내 탓은 아니다. 꽃들에 비친 물빛이 너무 아름다워 그랬다. 상호가 그런 변명을 장전하고 태화를 돌아보는데.

‘……어라.’

태화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원망 가득한 눈빛으로 상호를 노려보면서.

태화를 만난 후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표정.

상호의 심장이 덜컥했다.

‘……X됐다!’

오월의 뜨듯한 공기 속.

한 사내의 뒷목에 서리가 내려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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