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여고의 남선생-414화 (414/501)

<414화>

414. 놀이공원

빙의자를 깨우는 작업은 순탄하게 흘러갔다.

물론 겉으로만 그래 보일 뿐, 직접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답답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모르는 사람들 마음속에 일일이 들어가 해답으로 이끌어 주어야 한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서.

다행히 상호와 세희는 사람을 두들겨서 고치는 데에 일가견이 있었지만, 다혜는 마음이 여린 편이라 속도가 많이 느렸다.

그렇게 2.5명이서 열심히 사람들을 깨우던 와중에 희소식이 들렸다.

“되는데요?”

상호를 따라 해보겠답시고 빙의자의 곁에서 잠들었던 성연이 빙의자와 함께 일어나면서 한 말.

그제서야 상호는 확신했다. 악마에게 당한 사람은 타인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고.

덕분에 상호는 성연을 협회에 남겨두고 악마를 잡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악마를 잡고, 빙의자를 깨우고, 깨어난 빙의자들이 집에, 사회에 하나둘씩 돌아가기 시작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공포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혼란은 여전히 남았지만.

그래도 상호와 아이들이 학교로 돌아가기에는 충분했다.

‘좀 늦었나.’

상호는 거울을 바라보며 넥타이를 매었다.

그동안 악마를 잡고 빙의자를 깨운 탓에 잠 시간이 뒤죽박죽이 되어 있었다. 덕분에 시간이 늦어 여덟 시 반. 한창 조례 중일 시간.

그러나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나라 구했는데 좀 늦을 수도 있지…….’

누구도 따질 수 없을 테니까. 혁이든 해련이든, 미진이든 설미든. 수업 시간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아이들과의 약속이기 때문이지 그가 학교에서 잘릴까봐서가 아니었다.

그리고 아이들이라면 당연히 이해해 줄 터였다.

‘그래도 빨리 가야겠다.’

상호는 대충 재킷을 걸치고 창밖으로 뛰쳐나갔다.

교실 앞에 서는 데는 한달음이면 충분했다. 문 안쪽에서는 미진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조례를 하는 모양이었다.

그는 차림새를 슬쩍 둘러보았다. 구두 이상 무. 넥타이 이상 무. 혹시나 싶어 바지 지퍼까지. 역시 이상 무.

그런 후에 문을 열었다.

“미진 씨, 늦어서 미안…… 응?”

상호는 아이들을 보고 당황했다.

여고 교실에 모르는 아저씨가 들어왔다는 듯한 표정. 마치 당장에라도 누구세요, 라고 물을 것 같은 얼굴들.

미진도 잡상인을 보듯이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어떤 일로 찾아오셨죠?”

“아니, 내가 담임…….”

“저희 반 담임은 제자들 버리고 서울로 놀러 갔다가 교통사고로 죽었는데요.”

“내가 언제…….”

나라 구하고 왔더니 놀러 갔다가 죽었댄다. 상호는 진땀을 흘리며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얘들아, 잘 지냈…….”

“누구세요……?”

“…….”

나빛과 태화가 겁먹은 표정으로 서로를 끌어안았다.

“이상한 아저씨…….”

“근데 잘생겼어…….”

“이상한데 잘생긴 아저씨…….”

“개맛있겠다…….”

“…….”

굳어버린 상호를 단비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멍, 언니, 나 저거 잡아줘…….”

“므앙.”

“교실에 묶어두고 키울래…….”

“아웅.”

“…….”

상호는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하지만 이미 아이들이 나빛의 황금색 쇠사슬을 들고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꿈인가?’

악마의 함정은 아닐까. 그는 스스로의 뺨을 꼬집어 보았다.

‘……으악!’

많이 아프다.

꿈이 아닌 건 확실한데. 눈물을 글썽이던 상호는 다가오는 아이들을 향해 팔을 활짝 벌렸다.

“그래. 잡아라 잡아. 니들이 잡는다고 얼마나 아프겠냐…….”

“가랑이!”

“……거긴 잡으면 안돼!”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이 그를 파묻었다.

* * *

“쌤.”

“응?”

상호는 숟가락을 들다 말고 옆을 돌아보았다. 태화가 식판을 내려다보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매점으로 도망친 태화를 잡아서 기어코 급식을 먹이던 참이라, 주변에는 아이들이 없었다.

“5월이잖아.”

“응.”

“가정의 달이잖아.”

“응.”

“근데 왜 스승의 날이 5월에 있어?”

“……응?”

태화의 눈빛에는 확신이 가득했다.

“이건 제자와 스승은 가족이 되어야 한다는 뜻 아닐까?”

“……무슨 소리야, 임마.”

“우리도 3년이나 봤는데 슬슬 진짜 가족이 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해. 진지하게.”

“밥이나 먹어.”

“우씨, 이론적으로 완벽한 논리인데…… 하긴 쌤은 초졸이니까. 이해 못 해도 내가 이해해줄게! 응!”

“이놈의 짜식이…….”

이런 못돼먹은 녀석은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한다. 상호는 숟가락을 내동댕이치고 태화의 양 관자놀이를 주먹으로 꾸우욱 눌렀다.

“너 어른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선생이 초졸이라서 못 배우겠어? 그럼 대졸한 선생님들 반으로 가 임마. 가!”

“아아아아악! 강쌤이 딸친다아아!”

태화는 늘 그렇듯 급식소가 떠나가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상호가 스스로 손을 떼게 하려 했으나, 오늘의 상호는 달랐다.

그는 주먹을 빙글빙글 돌리며 더욱 강하게 관자놀이를 짓이겼다.

“짜식아, 니가 그러면 쌤이 어머나 하면서 그만할 줄 알았어? 넌 진짜 안 되겠다. 오늘 버릇을 고쳐놔야…….”

“아, 알았어! 미안해, 쌤! 어린이날에 어린이 만들어 줄게! 어버이날에 애아빠 만들어 줄게! 그럼 되지?! 아 다 해준다니까! 보채지…… 우븝!”

거친 손이 태화의 입을 틀어막았다.

상호는 주변에서 쏟아지는 경악의 시선을 마주하고 돌처럼 굳어 버렸다. 떡 벌어진 입에서 채 씹지 못한 밥알이 후두둑 떨어지고 있었다.

그때 태화가 그의 손을 떼어내고 빽 소리쳤다.

“알았어알았어! 낳아준다고! 아 진짜 끈덕지네. 아기공장 공장장도 찍소리 못할 만큼 낳아줄게! 그렇게 내가 좋아?! 참나 이쁜 건 알아가지구…… 흥!”

“…….”

“뭐어? 스승의 날에는 쿵떡쿵떡 쿵떡떡 가르쳐준…….”

“……그만해!”

참다못한 상호는 내공으로 밥을 퍼서 태화의 입에 욱여넣었다.

태화는 그제서야 밥을 오물거리며 새침하게 상호를 흘겨보았다.

“이제 쌤은 나한테 안 돼.”

“……너 학교 끝나고 봐.”

“쌤은 초졸이고 난 중졸이니까.”

“야, 초졸이 아니고 중학교 중퇴야. 개벽 전 중학교하고 개벽 후 중학교하고 같을 거 같냐? 너희는 중학교에서도 헌터 일 배우지만 우리는 공부만…….”

“에잉~ 요즘 것들은~ 라떼 이즈 홀스~.”

“……그게 뭐야?”

“쌤 진짜 늙었네.”

태화가 혀를 쏙 내밀고는 다시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근데 쌤.”

“또 뭐.”

“내일 어린이날이잖아.”

“근데.”

“내가 생각을 좀 해 봤는데 말이야.”

“네가?”

“아이씨!”

상호는 명치로 날아드는 태화의 주먹을 막았다.

“뭔데. 말을 해.”

“어린이날이면 애들이 놀이공원 같은 데 모일 거 아냐.”

“그렇겠지.”

“그럼 위험하지 않아?”

“……응?”

눈을 끔뻑이는 상호에게 태화가 말을 이었다.

“그렇잖아. 만약 쌤이 악마라고 생각해 봐. 어린이날에 어린이를 상대로 테러를 한다…… 그것도 사람이 엄청 모인 곳에서. 악마라면 그러고도 남을 것 같지 않아?”

“그럴 수…… 있지.”

악마가 인간의 사정을 봐줄 이유는 없으니.

기쁜 날에 그 상징을 부수는 것이야말로 놈들의 방식에 부합할 터였다.

“충분히…… 그럴 수 있어. 응.”

“그러니까 우리가 가서 지켜야 해!”

태화의 눈에서 불꽃이 타올랐다.

“악마 쉐끼들이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 우리 둘이 가서 잡는 거야!”

“……둘이?”

상호는 눈을 끔뻑였다.

태화의 말이 일리는 있지만, 그래도 에버월드나 라떼랜드나, 그런 곳들은 악마 인자 검사를 하고 있을 텐데.

“너 그냥 네가 가서 놀고 싶은 거 아냐?”

“아니야아아아! 절대 아냐! 모함하지 마!”

절대로 맞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뭐, 휴일인데 못 가줄 것도 없고. 가능성이 있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니.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대신 3학년 다 같이 가는 거야.”

“다 같이 가면 정신없잖아!”

“그럼 가지 마, 임마.”

“스흡…….”

그 말에 태화가 숨을 들이키더니.

“뭐어어어──?! 쌤이 우리 반 애들이랑 한번씩 다…….”

“……야!”

그는 맨손으로 밥을 집어 태화의 입을 향해 휘둘렀다.

* * *

그렇게 가게 된 에버월드.

가는 사람은 태화, 상호. 그리고 나빛.

아무리 그래도 치료할 사람은 필요하지 않겠냐고 설득해서, 간신히 협상에 성공을 했다.

문제는.

“…….”

은호가 됐다.

상호는 헐렁해진 옷을 걸친 채로 멍하니 거울을 바라보았다.

‘……어린이날에 어린이가 되어버렸군.’

휴일이 아니었다면 틀림없이 아이들에게 선물 공세를 받았을 것이다.

어쨌든 꼴이 이렇게 됐으니, 태화와의 약속은 취소.

‘내가 가면 나도 애들도 위험해지니까…….’

이불 밖은 위험하다. 그는 다시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조금 있으면 아이들이 휴일이랍시고 쳐들어올 테니, 그때까지만이라도 쉬기 위해서.

이불 밖에서 펑 소리가 들렸다.

“쌤! 아침밥은 어케 해?”

“안 가.”

“뭐시라?!”

태화가 침대에 달려들어 이불을 들추려 했다. 상호는 필사적으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몸을 웅크렸다.

“안 가 임마. 집에서 쉴 거야…….”

“이 목소리는 은호인데? 쌤, 잠깐 나와 봐.”

“안 간다고…….”

“목소리 깔아도 소용없어!”

결국 태화는 이불을 빼앗아 침대 밑으로 던져 버리고는, 무방비가 된 상호를 끌어안고 침대를 굴렀다.

“은호야아앙~. 누나랑 놀러 가까? 웅? 웅?”

“이 꼴론 못 가.”

“왱?”

“위험하다고, 임마. 이 꼴로 돌아다니면……. 당연히 운전도 못 하고. 갈 거면 세희랑 같이 가.”

“싫어! 걔는 안 돼. 독점 금지야! 유죄야!”

“그럼 못 가는 거고.”

“그럴 줄 알고 플랜 B를 계획해 놨지.”

“……응?”

플랜 B는 또 뭐냐. 네가 그렇게 철두철미한 녀석이었냐. 상호는 어리둥절해서 눈을 깜작였다.

태화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여기서는 코드명 그랜드마더를 쓸 차례군…….”

“……교장선생님이냐?”

“호출! 그랜드마더!”

태화가 핸드폰 화면을 꾹 눌렀다.

해련이 오면 강제로 납치당할 것이다. 상호는 그 즉시 몸을 웅크리고 필사적으로 기침을 했다.

“콜록, 콜록…….”

“쌤 왜 그래? 어디 아파?”

“응, 감기 걸렸나 봐…….”

“그래? 어쩌지…….”

갑자기 바지 속에 태화의 손이 쑥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상호의 눈이 번쩍 뜨였다.

“……야, 임마!”

“팔팔하네~. 아, 교장쓰앵님~.”

[으응?]

통화가 연결된 모양이었다.

어려졌을 때는 정말로 나돌아다니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과 해련에게 어린이 취급받을 테니까. 보나마나 우스꽝스런 모자 씌우고 솜사탕을 한 무더기 들려주고는 귀엽네 나 죽네 하면서 상호의 체내 부끄러움 농도를 치사량까지 끌어올릴 터였다.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태화야, 나 배아파…….”

“괜찮아!”

“뭐가 괜찮아! 내가 아프다는데…….”

“나중엔 내 배가 훨씬 더 아파질걸? 그니까 지금은 쌤이 참아! 놀다 보면 나을 거야. 교장쌤! 저 태환데요, 오늘 바쁘세요?”

“야, 너 설마 미리 말도 안 해두고 지금 약속 잡는 거야? 교장선생님이 얼마나 바쁜…….”

[아니, 한가해. 어쩐 일일까?]

“…….”

제발 바쁘기를 바랐는데. 상호는 베개에 머리를 처박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태화는 신나서 핸드폰에 대고 나불거리고 있었다.

“저 강쌤이랑 오늘 놀러가기로 했는데요, 강쌤이 어려져 가지고 자꾸 안 갈라고 떼쓰는데…….”

[그래?]

다음 순간, 갑자기 창밖에서 희끄무레한 것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흰머리를 드리우며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형체. 상호는 감히 그쪽을 돌아볼 생각도 못하고 태화의 품에 얼굴을 파묻었다.

설마 아침마다 그의 방 창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걸까.

‘귀신은 뭐하나…….’

저 할머니 안 잡아가고.

해련이 창밖에 있단 걸 아는지 모르는지, 태화는 품에 안긴 상호의 등을 토닥이며 깔깔거렸다.

“모지? 쌤이 왜 갑자기 귀여운 척을 하지? 하여튼 교장쌤! 같이 놀러 가요!”

[그럴까~?]

핸드폰과 창밖에서 동시에 들려오는 목소리.

[금방 갈게~.]

“어, 한 시간 후에 출발하기로 했는데. 천천히 나오셔도 돼용.”

[괜찮아~. 내가 가서 강 선생도 씻기고 준비시킬게~. 아침은 먹었니?]

“아뇽.”

[챙겨먹고 있으렴~.]

“넹~.”

통화를 마친 태화가 상호를 흔들며 키득거렸다.

“쌤, 쌤. 교장쌤이 쌤 씻겨준다는데?”

“…….”

“좋겠네~. 교장쌤처럼 미끈한 누나가 씻겨줘서~.”

“…….”

상호의 귀에는 창문이 드르륵 열리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오늘은 날이 아닌가보다.’

아무래도 도망치긴 그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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