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화>
410. 심리치료사와 물리치료사
뒤에서 젊은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잘 되어 갑니까?”
상호는 퀭한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종이컵 두 개를 든 성연이 멀쩡한 모습으로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몇 주 동안 수액만 맞아서 퀭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그는 혀를 차고 난간에 몸을 기댔다.
“아니.”
“난간에 기대면 위험합니다.”
“내가 애냐? 그거 뭐야.”
“커피랑 따뜻한 우유…….”
상호가 커피를 채어가자 성연이 당황했다.
“앗, 그게 제 거였는데.”
“시끄러.”
상호는 커피를 홀짝이며 난간 너머를 내려다보았다.
협회 건물 5층에 마련된 베란다. 그리 멀지 않은 길가에는 사람들이 빼곡하게 걷고 있었다. 해가 조금씩 져 가는 것을 보니 시간은 오후 네다섯 시쯤.
잠에서 방금 막 깨어난 참이라 정신이 흐릿했다.
“생판 모르는 양반 인생사를 파헤치려니까 힘들어 죽겠구만.”
“잘 안 됩니까?”
“될 리가 있나. 애초에 그 양반들은 내가 누군지 몰라. 꿈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인간한테 자기 비밀까지 털어놓을 인간이 어디 있겠냐.”
“계속 말을 걸다 보면 될 겁니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오늘만 해도 16시간을 남의 꿈속에 들어가 있었다. 이젠 더 시도하고 싶어도 잠이 안 와서 어쩔 수 없었다.
상호는 커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우리 반 애도 깨워야 하는데, 더 먼저 죽어가는 사람은 많고. 돌겠다, 아주 그냥.”
“그래도 노력해야지요.”
성연은 씩 웃으며 따뜻한 우유도 상호에게 건넸다.
“이거 먹으면 잠이 잘 온답니다.”
“너나 먹어. 난 커피면 됐어.”
“얼른 자서 사람들 구해야지요.”
어째 목소리가 밝다. 상호는 눈살을 찌푸리며 성연을 째려보았다.
“……너 내가 니 옛날처럼 고생하니까 신났지?”
“그럴 리가 있습니까. 절 뭘로 보는 거예요.”
“개자식…….”
“나쁜 말 쓰면 지옥 갑니다.”
성연은 기어코 상호의 손에 따뜻한 우유를 들려주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베란다에 홀로 남겨진 상호는 언짢은 표정으로 우유를 내려다보다가, 곧 그 뱃속에 탈탈 털어 비워버리고 내공으로 종이컵을 태워 버린 후.
“……개자식.”
다시 빙의자의 심상으로 들어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 * *
“악!”
태화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마조부대! 악마 잡고 복귀했습니드아악!”
“……그래.”
“퇴근해도 되겠습니까아악!”
“으응.”
도현은 진땀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호가 빙의자를 깨우는 동안에는 세희, 태화, 나빛, 이 세 아이가 악마를 추적하고 있었다. 상호는 위험하다며 탐탁지 않아 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어 허락을 해 주었다.
“옷 갈아입고 들어가 쉬어.”
“아싸!”
“선생님은 어디 계세요?”
세희의 물음에 도현은 아래를 가리켰다.
“병동에서 빙의자들 깨우고 있지.”
“가서 뵈어도 돼요?”
“뭐 깨우지 않고 잠깐 보는 정도라면. 가볼래?”
“네.”
“그래, 가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 * *
“참 웃기지.”
도현은 병상에 누운 빙의자와 병상 옆 의자에 앉은 상호를 바라보았다.
상호는 빙의자의 손을 잡은 채로 빙의자의 배에 고개를 처박고 잠들어 있었다.
“물리치료사처럼 생긴 녀석은 심리치료를 하고 있고.”
도현의 시선이 복도 쪽을 향했다. 그곳에서는 성연이 바쁘게 돌아다니며 다친 사람을 치료하고 있었다.
“심리치료사처럼 생긴 녀석은 물리치료를 하고 있고……, 참 꼴이 웃기는구만.”
세희는 가만히 상호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언제 끝날까요?”
“몇 시간 걸릴걸.”
“여기서 기다려도 돼요?”
“기다리게?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는데……. 정 그러면 여기 말고 휴게실 가서 기다려. 부대 휴게실 있잖아. 거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상호 깼을 때 거기로 보낼게.”
“그럴게요.”
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서서 휴게실로 향하는 와중에 한 빙의자가 세희의 눈길을 끌었다. 병상에 자는 듯 누운 고양이상의 소녀.
‘…….’
얼굴이 많이 수척해졌다.
세희는 이츠키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옆에서 나빛이 등을 토닥이자 정신을 차리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 * *
“후우…….”
상호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쏟아져 나왔다.
그의 앞에서는 한 청년의 머리를 마이크로 깨 버린 중년인이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거봐요. 하면 된다니까.”
“헉, 헉…….”
중년인은 마이크를 떨어뜨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중년인은 뉴스를 진행하는 앵커. 청년은 소싯적에 만난 선배 기자. 그는 통계를 조작하자는 선배 기자의 강압을 이기지 못해 거짓으로 뉴스를 지어냈던 기억이 있었다.
쓰러진 청년의 몸이 잿가루처럼 부서져 내렸다.
“이제 나갑시다.”
상호의 말에 중년인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예? 아, 예……. 근데 어떻게?”
“이쪽으로 돌아서요.”
상호는 자신을 향해 돌아선 중년인의 뺨에 싸대기를 날렸다.
쫘아악
중년인은 그 자리에서 뿅 하고 사라졌다. 아마 꿈에서 깨어 병동의 천장을 바라보며 어리둥절해 하고 있을 터였다.
‘나도 나가야지.’
그도 자신의 뺨을 후려쳐서 꿈에서 나왔다.
비몽사몽인 와중에도 감사 인사를 하는 앵커를 뒤로하고, 상호는 의자에서 일어나 병상을 가리는 커튼 밖으로 나왔다.
‘……지치는구만.’
몸은 그만 쉬고 싶은데, 정신은 쉬고 싶었다.
찌뿌드드한 몸을 움직여 우두둑 소리를 내며, 상호는 병동 밖으로 나가 협회 건물 중간에 난 베란다 난간에 몸을 기댔다.
시간은 어느새 열두 시.
거리에는 이제 알코올의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팔자 좋군…….’
그는 취해서 어깨동무를 하고 걸어가는 이들을 내려다보다가, 혹시 누군가한테서 연락이 오진 않았을까 싶어 핸드폰을 꺼냈다.
도현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네 애들 부대 휴게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끝나면 찾아가봐
빙의자를 잡은 뒤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지금은 아마 자고 있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빙의자를 한 명 더 깨워도 괜찮을 듯싶었다. 지금 시작하면 내일 아침에 일어날 테니.
그가 아이들을 확인하기 위해 돌아서려는 그때.
베란다로 들어오는 입구가 열리고 한 소녀가 들어왔다.
“……세희야?”
상호는 눈을 끔뻑였다.
“어떻게 알고 왔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선생님 기척은 느낄 수 있어요.”
“왜 아직도 안 자고…….”
“그냥요.”
세희는 느릿하게 걸어 상호의 곁에 섰다.
아무런 말도 없다. 둘 다 그저 거리를 내려다볼 뿐. 하지만 상호는 세희가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가 말을 걸어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세희야.”
“네.”
“고민이라도 있어?”
기다렸다는 듯이 세희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할 말을 정리하지는 못했는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마음을 망설이게 하는지, 열렸던 입술은 달싹이기만 하다가 이윽고 소리를 내었다.
“저는 왜 선생님처럼 못해요?”
“응?”
“아무리 노력해도 안 돼요.”
세희가 난간에 팔을 올리고 고개를 파묻었다.
“심상에 들어갈 줄은 아는데, 거기에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어두워요. 나 혼자밖에 없어요. 그래서인지…… 선생님이 없을 땐 들어가기가 싫어요.”
그 말을 듣자 짚이는 게 있었다.
과정을 하나 빠뜨렸었던 것이다. 상호는 이야기를 잠자코 들으며 세희의 기색을 관찰했다.
“그런데 언니는 뭐가 많대요. 교실도 있고 친구들도 있고……. 그리고 제 꿈에 들어오기도 하고. 영혼에 관한 건 제가 먼저 알았는데. 심상에도 선생님이랑 훨씬 많이 들어가 봤는데……. 언니가 훨씬 더 잘해요.”
세희가 한숨을 폭 쉬었다.
“왜일까요?”
상호는 세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혜가 부러워?”
“……그런 건 아니에요.”
“그러면 정확히 어떤 감정이야?”
“한심하달까……. 내가, 제가 한심해요.”
질투가 아니라 자책인가.
하지만 그 이유가 아닌 것 같았다. 적어도 상호는 그렇게 느꼈다. 세희의 차가운 눈빛이 거리를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에.
“세희야.”
“네.”
“뭐 보고 있어?”
“사람들이요.”
상호가 세희의 머리를 아무리 쓰다듬어도, 세희의 눈빛은 조금도 누그러들지 않았다.
“그런데 왜 그렇게 화난 눈으로 보고 있어.”
“화나서요.”
“왜?”
“저 사람들은 모르겠죠?”
세희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몰라서 저러는 거겠죠? 자기들 지키려고 누군가가 희생하고 있다는 거…… 알면 저러지 않겠죠?”
“……글쎄.”
“이츠키가 쓰러진 거, 건흠 선생님이 쓰러진 거, 사람들이 다치고 죽은 거…… 전부, 모르는 거겠죠?”
“…….”
상호는 잠시 묘한 기분을 느꼈다. 마치 유체이탈을 한 듯이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느낌.
세희의 마음에 드리운 어둠은, 질투도 자책도 아닌 분노였다. 상호 자신과 정확히 똑같은 종류의 분노.
‘……닮으면 안 되는 부분까지 닮아 가는구나.’
그는 세희를 뒤에서 꼭 끌어안았다.
그가 끌어안자 순식간에 세희의 눈빛이 바뀌었다. 멸시에서 당황으로, 당황에서 부끄러움으로.
“……선생님?”
“지금도 화나?”
“네?”
“나랑 있을 때도 화나?”
“……아니요.”
상호의 손이 세희의 가슴팍에 얹혔다.
두근거리는 맥박이 상호의 손을, 세희의 등을 울렸다. 세희의 것은 빠르게, 상호의 것은 느리게.
그 울림은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같은 박자로 맞춰져 갔다.
“세희야.”
“……네.”
“화가 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못 봐. 너 화난 사람이 거울 찾는 거 봤어?”
“아니요.”
“화난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를 보는 걸 피해.”
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상호는 몸을 숙여 세희와 뺨을 맞대었다.
“나도 그럴 때가 있었어.”
“……알아요.”
세희의 뺨은 용광로처럼 뜨거웠다.
“어떻게 이겨내신 거예요?”
“네 은인들을 생각해봐.”
상호의 허리춤에 찬 검이 세희의 검과 포개어졌다.
“나도 한때는 은인보다 원수가 더 많았어. 은혜보다 원한이 더 많았고. 그런데 알고 보니…… 나는 은혜를 더 많이 받은 사람이더라.”
“…….”
“그 은혜를, 내가 갚을 수 없는 은혜를 받았다는 걸 깨닫고 나면…… 그때부턴 세상이 달라 보여. 우리가 얼마나 희생했는지를 세상이 몰라주는 것 따윈…… 우리가 그분들에게 받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거야.”
상호는 씩 웃고는, 알면서도 물었다.
“세희 너도 은인이 있지?”
그러자 세희가 고개를 돌려 입술로 상호의 뺨을 기습했다. 새삼스레 그런 것을 왜 물어보냐는 듯, 괘씸하다는 듯.
“네.”
“그 사람한테 받은 게 많아? 세상에 베푼 게 많아?”
“받은 거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래, 그런 거야. 세상을 미워할 필요가 없지…….”
상호는 키득거리며 세희를 간지럽혔다. 자책이나 분노 따위는 남지 않도록.
세희는 입을 꾹 다물고 상호의 품에서 버둥거렸다. 소리 내어 웃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세희였기에. 그걸 잘 알고 있는 상호는 더욱 강도를 높여 세희의 옆구리를 손끝으로 문질렀다.
“푸웃……!”
세희의 입술 사이로 숨이 터져 나왔다.
“그, 그만해요, 선생님! 아학……!”
“여긴가? 세희는 여기가 약하구나?”
“으……!”
그때 누군가가 베란다 문을 뻥 박차고 들어왔다. 상호와 세희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본 채로 굳었다.
팔짱을 낀 태화와 황금빛 각목을 든 나빛이 들어서고 있었다.
“잡았다! 성희롱범!”
“아, 아니 무슨 성희롱이야, 임마! 그냥 간지럽힌 거…….”
“현행범이 어디 변명을 해! 명치!”
“명치!”
“커헉! 아니, 나빛아……? 잠깐만, 각목 너무 아파…… 악!”
“성범죄자는 용서하면 안 돼요! 가랑이!”
“으아아아악!”
그날, 협회의 병동은 처음으로 비뇨기 관련 환자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