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7화>
407. 퇴마수업
심상에서 깨어나 보니 학교가 개판이 되어 있었다.
숙소 앞 땅은 완전히 뒤집어졌고, 본관도 성하지는 않았다. 해련은 만신창이가 되어 치료를 받았고, 건흠은 잠에 든 상태.
그리고 무엇보다 달라진 점은.
“아으.”
다혜의 머리에 난 뿔.
상호는 방바닥에 앉은 다혜를 바라보며 진땀을 흘렸다.
“……다혜야.”
“므아?”
“그거…… 안 불편해? 괜찮겠어?”
“꾸웅…….”
다혜가 입술을 비죽거리더니 뿔을 만지작거렸다.
태화의 것보다 곧고 긴 뿔. 그리고 훨씬 길고 굵은 꼬리. 훨씬 긴 손톱까지. 일상생활을 영위하기에는 너무도 거추장스러워 보였다.
그렇지만 다혜는 곧 우쭐거리는 표정으로 가슴을 활짝 폈다.
“아으!”
“응……?”
“태화보다 멋지니까 괜찮대요.”
“야이…….”
세희의 말에 태화가 발끈하려 했지만, 상호는 태화의 입을 검지로 막고 다혜를 향해 씩 웃었다.
“그래, 그럼 다행이고. 그런데……. 다혜 네가 악마랑 싸웠다고?”
“아으.”
다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희 외에도 악마와 싸울 수 있는 사람이 늘었다는 것은 반길 만한 일이었다. 오늘처럼 상호가 무방비한 날에도 한 명은 지키고 한 명은 악마를 잡으러 다닐 수 있으니.
다만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어쩌다 폭주한 거야?”
“……으아.”
그 물음에 다혜가 움찔했다.
그러나 곧 씨익 웃으며, 별것 아니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아으아으.”
신경 쓰지 말라는 것 같았다.
그때 다혜의 머리에 난 뿔과 꼬리가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손을 감싸고 있던 비늘과 발톱도.
“……므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 있는가 보네.”
“앙냠냠.”
“먹지 마라, 다혜야…….”
방에는 악마와 싸운 아이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나디아와 이츠키를 제외한 3학년 전원이. 상호는 지윤과 은율을 돌아보았다.
“너희도 싸운 거야?”
“예.”
“잘했다. 잘했어. 그런데…… 다음부턴 그러지 마.”
지윤의 눈썹이 꿈틀했다.
“와예.”
“지금 너희가 악마랑 싸우는 건 자살행위야. 너희 나만큼 강기 강해? 세희만큼 강기 강해?”
“야덜도 약하다 아입니꺼.”
지윤이 태화와 나빛을 가리켰다.
“지랑 은율이도 할 줄 아는 기 있어가 싸운 깁니더. 와 야덜만 되고 지덜은 안 되는디예.”
“나빛이랑 태화는 너희처럼 앞에서 싸우는 게 아니잖아. 그리고 얘들도 악마랑 싸우지는 않아. 세희 싸우는 동안 뒤에서 보조하는 거야.”
“지덜도 보조하믄 될 기 아입니꺼.”
상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너희는 최소한의 준비도 안 된 상태야. 오늘은 다행히 잘 끝났지만 다음에도 이렇게 잘 되리란 법은 없어.”
그 말에 지윤이 입을 꾹 다물고 상호를 흘겨보았다. 은율도 좀 더 차분하다 뿐이지 별반 다를 것 없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상호의 말에 둘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러니까 내가 가르쳐 줄게. 이제 다혜도 일할 줄 알게 되면 너희 가르칠 여유가 생길 테니까…….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 줘.”
“……알겠심더.”
지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누군가가 방문을 박차고 상호의 방으로 들어왔다. 상호와 아이들은 의아해하며 문가를 돌아보았다가 당황했다.
“족발!”
나디아가 눈물을 펑펑 흘리며 소리쳤다.
“족발! 족발!”
“나디아……? 족발 먹고 싶어?”
“족발! 나만 족발이다!”
“혼자 먹을 거야……?”
“족바아아알!”
“그래, 그래…….”
상호는 영문을 모른 채 진땀을 흘리며 배달앱을 실행했다.
* * *
“나흘간 휴교하기로 했어요.”
해련이 차를 홀짝였다.
“땅은 정령으로 다지면 된다지만…… 사건의 경위를 조사하고, 안전을 확인하기 전에는 수업을 시작할 수 없겠죠. 그냥 넘어가기에는 너무 큰 사건이니…… 학부모들에게 설명을 해야 할 텐데.”
해련의 시선이 맞은편에 앉은 상호를 향했다.
“악마가 강 선생 때문에 학교로 온 게 맞나요?”
“네.”
상호는 대답부터 하고 고민했다. 거짓말을 하고 싶진 않았기에.
악마가 그를 노리고 찾아온 것은 명백한 사실.
또 그것 때문에 학생들이 다칠 뻔했다는 것과, 건흠이 당했다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제가 제 안에 있는 놈을 없애려고 하니까 온 거예요.”
“그건 어떻게 됐어요?”
“없애는 데에는 성공했어요.”
“그러면 강 선생이 보기에 그놈들이 또 올 것 같아요, 안 올 것 같아요?”
“그게…… 으음.”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의 예상이 맞다면, 그동안 그의 내면에 있던 악마는 다른 악마들과 소통을 하지 못했다. 예경이 놈을 막고 있었기 때문에. 그 때문에 효은과 혜소가 무사했던 것이고.
그러나 한편으로는, 악마들은 그가 은호가 됐을 때만 귀신같이 나타나 세희를 노렸다. 또 이번에도 그가 운기조식에 들어갔을 때를 노렸고.
놈들은 어떤 식으로든 그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알고 있었다.
“아마도…… 이제 다혜가 있다는 걸 알 테니까, 더 이상 안 올 거라고 예상은 합니다만.”
“확신은 없네요.”
“네.”
해련이 고개를 끄덕였다.
“학생이 다친 건 아니지만…… 어쨌든 사건이 있었고. 학부모들이랑 류 이사장은 좋아하지 않을 거예요. 감안해둬요.”
상호는 입맛을 다셨다. 하기사 그들의 입장에서는 받는 것도 없는데 달가울 리가 없을 것이다.
“해고당할까요?”
“글쎄…….”
해련은 그렇게 비관적이지는 않은 것 같았다.
“이곳을 학교로 보느냐, 전쟁에 대비할 헌터를 양성하는 곳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죠. 전자라면 해고할 것이고, 후자라면…… 강 선생을 좀 더 들들 볶게 될지도.”
“……그런가요.”
“난 딱히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네. 혁도 그렇게 꽉 막힌 인간은 아니거든. 그냥 안 된다고 말하는 걸 조금 좋아하는 것뿐이야.”
그건 너무 괴짜 취급 아니냐. 상호는 그 말을 삼키고 잔을 쭉 비웠다.
“이만 가볼게요.”
“벌써 가려고? 또 할 일이 있어요?”
“이제 사람들 깨워야죠.”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츠키를 빨리 깨워야 악마를 편하게 잡을 수 있기도 하고……. 또 건흠 선생님도, 다른 사람들도 가족이 있으니까. 얼른 깨워 드려야죠.”
“그래요, 그럼.”
해련이 씩 웃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한가해지면 한잔하죠.”
“제가 선약이 많아서…….”
“하죠.”
“……넵.”
상호는 쪼그라든 채로 교장실을 나섰다.
* * *
그래서, 다음 날부터 휴교.
“……끄으응.”
아침부터 상호의 입에서는 고통스러운 신음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전날 들이닥친 아이들 때문에 꿈자리가 사나웠다. 처음 잠에 들었더니 태화의 꿈에 끌려 들어가 봉변을 당하고, 간신히 일어나서 태화를 밀어내고 잠에 들었더니 이번엔 지윤의 꿈에 납치당해 몹쓸 꼴을 당했다. 그래서 다시 일어나서 소파에서 잠들었더니 이번엔 그 옆에서 이불 깔고 자던 은율의 꿈으로.
‘왜 자꾸 옷부터 벗기려는 거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소파에서 일어난 그는 주방으로 가서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응?’
뒤에서 누군가 살금살금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발소리가 조금 단단하다. 일단 나빛은 아니고. 무게를 보아하니 세희나 태화도 아닌 것 같고.
아마도 근육이 붙은 지윤이나 키가 큰 은율. 그리고 그 둘 중에서 이런 일을 할 사람은 아마도.
‘지윤이겠지……?’
상호는 잠시 기다렸다가 뒤로 휙 돌아섰다.
“워…… 와아아악!”
“어머, 어머. 애들 깨겠다.”
잠옷을 입은 해련이 그의 입술에 검지를 붙였다.
놀래키려고 했더니 되려 심장이 떨어질 뻔했다. 상호는 덜컥 내려앉은 가슴을 부여잡고 뒷걸음질을 쳤다.
어째 침대에 하얀 머리가 많이 보인다 했다.
“뭐, 뭐예요. 왜 여기…….”
“휴교면 교장도 쉬어야지.”
“아니 왜 여기…….”
“학생들이랑 같이 자는 선생도 있는데 교장이 선생이랑 자면 안 돼?”
“…….”
할 말이 없었다.
해련은 살구색의 굉장히 얇은 원피스형 잠옷을 입고 있었다. 상호는 별생각 없이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가 움찔하며 시선을 돌렸다.
“왜 그런 걸 입고 계신 거예요? 교육자가 교육에 안 좋게…….”
“어머? 여제자들이랑 같은 침대 쓰면서 교육 운운하는 거야?”
“…….”
이런 쪽으로 따지면 할 말이 너무 없다.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상호의 앞에서 해련이 한 바퀴 빙글 돌았다.
“그래서 어때. 어울려?”
“보기에는 어울리는데 나이에는 안 어울려요.”
“아하…….”
해련의 고운 이마에 혈관이 솟았다.
“그럼 벗어라?”
“아니, 그런 말이 아니고…….”
“직접 벗겨 주겠다?”
“아니…….”
상호는 진땀을 흘렸다.
그와 해련의 대화를 들었는지 아이들이 하나둘씩 깨어나기 시작했다. 이불을 걷고 일어난 나빛이 눈을 비비며 둘에게 허리를 꼬박 숙였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응, 그래.”
“…….”
해련은 자연스럽게 인사를 받았지만, 상호는 그러지 못했다.
아이들은 해련을 봐도 놀라지 않고 태연하게 욕실을 들락날락하고, 옷을 훌러덩 벗고 갈아입었다. 다들 이제는 그러려니 하는 듯했다.
“교장선생님, 욕실 저희가 먼저 써도 돼요?”
“응, 응. 괜찮아. 신경 쓰지 마.”
“쌤. 나도 저런 잠옷 사줘.”
“사지 마, 임마. 다 태워버릴 거야…….”
“강 선생.”
“네?”
“나중에 어울리는 옷 좀 같이 보러 가자고.”
“…….”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아침 식사 준비를 했다.
* * *
그날 점심.
상호는 방에서 모두를 내보내고 세희와 다혜, 단 셋이서만 바닥에 마주앉아 있었다.
“오늘부터 너희한테 영혼 수업을 할 거야.”
“므앙.”
“내가 어제오늘 잘 생각해 봤는데…….”
상호의 시선이 세희를 향했다.
“아무래도 세희 네 안에 있는 악마가 우릴 엿본 것 같아.”
세희가 눈살을 찌푸린 채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래서 그런 거였네요.”
“응. 그래서 내가 어려졌을 때 널 정확히 노릴 수 있었던 거야. 만약 그놈을 없앤다면…… 놈들이 우리가 언제 약해지는지 모르게 되겠지. 널 노리는 일도 없어질 거야.”
상호는 이번엔 다혜를 돌아보았다.
“다혜도 마찬가지야. 너한테도 악마 인자가 있으니까. 네 안에 악마가 있는지 없는지 제대로 확인해야 해.”
“아으.”
“근데 내가 너희한테 해주는 게 아니야.”
“아으?”
“너희끼리 해야 해.”
세희와 다혜가 멀뚱히 눈을 끔뻑였다. 동시에 그러는 게 꼭 자매처럼 보였다.
“므아?”
“저희끼리요?”
“응. 너희끼리.”
상호는 둘과 눈을 마주쳤다.
“너희가 영혼 다루는 법을 수련해서, 다른 사람 마음속에 들어가 악마를 없애는 방법을 깨우쳐야 해. 너희가. 직접.”
“으아…….”
“물론 어떻게 하는지는 나도 아직 잘 몰라. 나도 내 안에 있는 놈밖에 안 없애봤어. 최대한 빨리 협회에 가서 알아봐야겠지. 잠든 사람들 상대로.”
“므앙.”
“다만…… 나 혼자만 알고 있다가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그땐 곤란해지니까. 또 나 혼자서 지금 잠든 사람들을 다 깨우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너희한테 가르치려는 거야. 기초만이라도.”
그도 정확히는 몰랐다.
하지만 세희는 이미 상호의 심상에는 왔다갔다 할 수 있으니, 조금 이끌어주면 금방 상호의 경지까지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심법이 다른 다혜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다혜는 오늘 나랑 같이 잘 거야.”
“므앙!”
“말이 너무 야하대요.”
“……잠만 자는 거야. 세희는 운기조식으로도 가능하니까, 세희는 낮에 수업하고, 다혜는 밤에 수업하고. 또 내일은 너희끼리만 자보고. 이런 식으로 하자. 알겠지?”
“네.”
세희도 다혜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이 둘을 가르치고 나면 잠든 사람들을 깨우러 갈 것이다. 상호는 잠에 든 지인들을 떠올렸다. 이츠키, 건흠.
그리고 또 한 사람.
‘곧 간다.’
그는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았다.
“시작하자.”
“네.”
“다혜는 지키고 있어.”
“아으.”
둘은 마주 앉아 운기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