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3화>
403. 침입
한 사내가 자동차를 향해 달려갔다.
그 안에는 한 여인이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사내가 차의 뒷문을 열고 들이닥치자 여인이 즉시 차를 출발시키며 사내를 돌아보았다.
‘왜 이렇게 늦었어?’
영혼에서 영혼으로, 언어가 필요 없는 대화.
사내는 얼굴은 무표정했지만 영혼은 툴툴거렸다.
‘차에 치였다.’
‘멍청한 놈. 빨간불이 아니라 파란불에 건너는 거다.’
‘그걸 누가 몰라? 모자란 인간놈이 나한테 달려들었다고. 하등한 저능아 같으니…….’
‘목표를 생각해.’
여인은 운전대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인간이 우리 길을 막을 순 없다고.’
‘두 놈 더 오기로 했잖아. 그놈들은?’
‘소식이 없어. 사고를 당했거나, 들켰거나겠지.’
‘악마 인자 불심검문에 걸렸나. 재수도 없군.’
그때.
콰앙
무언가 육중한 것이 그들의 차를 뒤에서 들이받았다.
‘……하등한 저능아 놈들.’
여인은 운전대에 얼굴을 박은 채로 이를 갈았다.
고개를 들어 보니 앞에는 트럭이 박혀 있고, 뒷유리창 가득히 버스가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완전히 폐차되어버린 자동차.
근처에서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꺄아악!”
“119, 119 불러요! 빨리!”
정작 사고를 당한 두 사람, 아니 두 악마는 멀쩡했다. 신경과 근육만 멀쩡하면 얼마든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기에. 고통 따위는 차단해버리면 그만이니.
여인은 육신의 우두둑거리는 비명을 무시하고 차를 출발시키려 했지만, 당연히 바퀴는 굴러가지 않았다.
두 악마의 시선이 마주쳤다.
‘어떡하지?’
‘내려.’
여인이 눈빛을 번득였다.
계획을 공유한 둘은 그 즉시 자동차에서 내려 행동을 개시했다. 사내는 버스의 앞문으로 당당하게, 여인은 버스의 뒷문으로 슬그머니 들어갔다.
버스의 운전석에는 패닉에 빠진 운전수가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었고, 뒷문에서는 시간에 쫓기는 인간들이 서둘러 내리고 있었다.
다만 내리지 않고 가만히 앉은 이들도 많았다.
‘이놈들은 왜 안 내리는 거야?’
‘정류장까지 걸어가기 귀찮은 거다. 버스가 다시 움직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사내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아직도 멍을 때리고 있는 운전수의 뒤통수를 소화기로 후려쳤다.
퍼억
운전수는 억 소리를 내고 운전대에 머리를 박았다.
창졸지간에 벌어진 일이라 승객들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일시에 얼어붙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내는 운전수를 밀어내고 운전석에 앉았다.
그제서야 승객들이 비명을 지르며 앞다투어 내리려 했다.
“꺄아악! 뭐야, 뭐야!”
“비켜, 아줌마! 빨리 내리라고!”
하지만 뒷문은 곧 닫혀버렸다.
‘서둘러.’
여인은 속으로는 사내를 재촉하고, 겉으로는 당황한 척 호들갑을 떨었다. 원래부터 승객이었던 것처럼.
‘곧 헌터 놈들이 온다. 그 전에 최대한 놈에게 가까이 가야 해. 만약 도착하기 전에 잡히면…….’
‘알아. 내가 잡히고. 너 혼자 인간 사이에 섞여 빠져나간다.’
사내는 그렇게 대꾸하고 버스를 출발시켰다.
버스가 도로를 질주하기 시작하자 승객들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마구잡이로 운전해서 몸이 사방팔방으로 흔들렸지만, 그들의 엉덩이는 접착제를 바른 듯이 의자에 딱 붙어 있었다.
다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귀찮은 놈이 있는 모양인데.’
사내는 거울을 흘끗했다. 거울 속에서는 한 중년인이 비상탈출용 망치에 서서히 손을 뻗고 있었다.
‘선동해.’
그 말에 여인이 빽 소리쳤다.
“지금 뭐 하려는 거예요?!”
중년인은 깜짝 놀라 움찔했다가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여인을 노려보았다. 기습을 하려는데 그걸 소리쳐 알려주다니.
“당신 뭐야? 미쳤어?”
“미친 건 당신이지! 그러다가 어디 잘못 박혀서 다 죽으면 책임질 거예요?!”
“저 새끼 뭐 하는지 못 봤어? 사람 뒤통수를 소화기로 친 놈이라고! 정상이 아니라니까?!”
“그래서 우리 목숨으로 도박을 하겠다고?!”
그 말에 다른 승객들도 뭔가에 홀린 듯 여인의 편을 들었다.
“제발 가만히 앉아 있어요! 뭐 하려고 하지 말고!”
“당신 뭐 헌터라도 돼? 자신 없으면 그냥 경찰 올 때까지 기다려!”
“……쯧!”
중년인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엉거주춤하게 기둥을 잡고 섰다.
인간을 다루는 것은 일도 아니다. 여인은 별 감흥도 느끼지 못한 채 사내에게 물었다.
‘기름은 충분해? 얼마나 걸리지?’
‘충분해. 그런데 놈들이 왔다.’
작은 헬기 소리. 인간의 둔감한 청력으로도 들을 수 있었다.
‘평소보다 빠르군.’
‘아무래도 누가 주술로 우릴 방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얼마나 강한 놈이길래…….’
여인은 이를 갈았다.
‘세를 더 빨리 불렸어야 하는데, 다들 잡혀 가지고는…….’
‘어쩔 수 없지. 있는 대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버스는 가로막는 차들을 밀쳐내며 도로를 질주했다.
* * *
“상호야!”
“상호야, 나 봐.”
예경들이 그를 돌아보았다.
똑같은 표정, 똑같은 말투. 상호를 바라보는 흔들림 없는 눈빛마저도 똑 닮아 있었다.
“내가 진짜야. 보면 모르겠어?”
“이미 알고 있는 거지? 내가 진짜인 거 알지?”
“……으음.”
상호의 입에서 침음이 흘러나왔다.
분명 하나는 악마 새끼. 하나는 그가 사랑하는 사람.
악마 새끼를 예경 취급하는 것도, 예경을 악마 취급하는 것도 싫었다.
착각해서 예경을 죽이게 되는 일은 더더욱.
‘하지만…….’
악마의 이런 반응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은.
알아내기만 하면, 그가 해치울 수 있다.
“누나.”
그는 오른쪽 예경을 바라보았다.
“내가 모를만한 이야기 하나 들려줘봐요.”
“어…….”
오른쪽 예경이 당황했다.
“그런 거…… 별로 없는데…….”
“사소한 거라도 괜찮으니까.”
“……아, 있어. 하나 생각났어.”
“뭔데요?”
“상호 너, 내 자는 얼굴 보려고 항상 나보다 늦게 잤잖아.”
상호의 몸이 움찔했다.
“……네.”
“그때 나도 안 자고 있었어.”
오른쪽 예경이 볼을 붉혔다.
“네 자는 얼굴 보려고……. 그래서, 내가 자는 척해서 네가 내 얼굴 보다가 잠들고 나면, 나도 눈 뜨고 네 자는 얼굴 보다가 잤어…….”
“매일이요?”
“매일.”
상호는 그 말을 듣고 왼쪽 예경을 돌아보았다.
“누나도 그런 거 말해봐요.”
“……없어.”
왼쪽 예경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저놈이 다 말했어…….”
“봐봐, 가짜라서 말 못하는 거야. 상호야!”
“아, 아니야…….”
상호는 둘을 유심히 관찰했다.
방금 질문은 가짜를 판별하려고 던진 질문이 아니었다. 그의 의도는 두 예경의 반응을 관찰하기 위해서.
어느 한쪽도 기억의 내용에 대해서 지적하지 않는다는 것은.
‘내 기억뿐만이 아니라 누나의 기억도 알고 있다는 뜻…….’
같은 기억을 가진 존재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그는 둘을 바라보다가 드러나지 않게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보다 오래 걸릴 것 같았다.
* * *
창밖에서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통통 튀어 다녔다.
누가 온 모양이다. 상호를 주시하고 있던 세희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나빛이 폴짝폴짝 뛰며 팔을 휘두르고 있었다. 소리 없이 입모양으로 ‘세희야~’라고 외치며.
세희는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열었다.
“왜.”
나빛이 허리를 꼬박 숙여 세희의 귀에 속삭였다.
“밥 안 먹어?”
“냉장고에 있는 거 대충 먹으려고.”
“햄버거 사다 줄까?”
“너희 먹을 거면 먹고. 근데 태화는?”
“여기.”
나빛이 밟고 선 보호막 옆에는 태화가 대자로 널브러져 있었다.
세희는 어이없어하며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지금은 점심이 훌쩍 지난 시간. 아무리 늦게 잤다 하더라도 열 시간쯤은 잤을 텐데.
“쟨 아직도 자? 몇 시간을 자는 거야?”
“몰라. 깨울까?”
“깨워. 자다 일어나면 배고프다고 난리칠 게 뻔한데.”
“그럴까.”
나빛은 보호막을 둥글게 둘러 바깥으로 소리가 새어나가는 것을 막았다. 그러자 곧 나빛의 품에서 날아오른 혁구가 태화의 귓가에 다가가 부리를 한 번 들썩였다.
세희는 거기서 어떤 소리가 났을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
태화가 눈을 부릅뜨고 일어나 불을 내뿜었다.
안에서 뭐라 하는지는 들리지 않았으나, 입모양을 보니 대충.
‘아이씨, 왜 깨워! 한창 쌤이랑 들락날락하고 있었는데!’
라는 듯했다.
그런데 또 갑자기 고개를 퍼뜩 들더니, 뭔가 이상한 냄새라도 맡은 개마냥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기 시작했다. 세희는 그게 무엇 때문인지 알고 있었다.
‘……설마.’
그래서 급히 보호막을 두드려, 나빛에게 보호막을 내리라고 손짓했다.
보호막이 내려가자 세희는 태화에게 물었다.
“악마야?”
“어어…….”
태화는 눈살을 찌푸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잘 모르겠어. 뭔가 가까이 오는 것 같기도 하고…….”
“선생님이 어떤 상태인지 알고 있는 거야.”
세희의 눈이 번득였다.
“막아야 해. 아니면 미리 잡든가. 나빛. 넌 태화랑 보호막 치고 그 안에서 절대로 나오지 마. 총을 쏠 수도 있어. 태화 너는 나빛이랑 돌아다니면서 악마가 어디서 오는지 찾아.”
“니는?”
“난 여기 지키면서 교장선생님이랑 부협회장 아저씨한테 연락할 거야. 너희는 악마 찾아. 만약 찾았는데 빙의자가 헌터면 함부로 싸우지 말고 도망치고, 교장선생님이 알 수 있게 뭔가 신호를 보내.”
“응.”
나빛은 자신과 태화의 주변에 보호막을 올리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세희는 그 둘을 바라보다가 창문을 닫고 구석에 놓인 검을 챙겼다.
‘무조건 선생님부터 지켜야 해.’
악마가 몇 놈이 올지, 어떤 방식으로 공격해 올지 모르니. 지금부터는 이 방에서 절대로 나갈 수 없었다.
세희는 나빛이 찾아오기 전처럼 침대 앞에 앉았다. 검을 어깨에 기대어 놓은 채.
몸에서 엷은 기운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무조건…….’
바닥에 앉아 운기 중인 상호를 바라보는 눈에서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가 타오르고 있었다.
* * *
“안녕하세요~.”
건흠은 뒤를 돌아보았다.
복도에서 처음 보는 여인이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나이는 20대 후반쯤. 분위기를 보니 헌터는 아닌 것 같았다.
여인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사람 좋게 웃어 보였다.
“이곳 선생님이신가요?”
“예. 맞습니다. 어떤 일로…….”
“협회 특무5과에서 나왔습니다.”
“특무?”
특무라면 요즘 시끄러운 악마를 잡는다는 부서였던가. 긴가민가해하는 건흠에게 여인이 부연했다.
“저희가 지금 악마를 추적중인데, 이 학교에서 악마 인자가 감지돼서요. 아마 학생 중에 있는 듯한데.”
“으음, 그 학생은 악마 융합체…….”
“아, 그 학생은 물론 저희도 알지요. 다른 학생이에요. 검을 쓰고 머리가 짧은 학생인데…….”
건흠의 표정이 굳었다.
검을 쓰는 학생은 예현여고에 몇백 명이 있고, 그중에 머리 짧은 학생이 9할이었지만, 건흠은 단 한 사람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 아이의 머리에 있던 검은 뿔과 꼬리.
“……아닐 겁니다.”
“그건 뭐, 만나서 검사를 해봐야죠. 일단은 좀 협조해 주실 만한 분을 뵈었으면 좋겠는데…….”
“교장실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래요. 아, 그 전에.”
여인이 손을 내밀었다.
“김지은이라고 합니다.”
악수를 하자는 듯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헌터가 아닌데. 마나의 기운은 코빼기도 느껴지지 않고.
‘일반인인데 협회? 그것도 특무……?’
주술사는 티가 잘 안 나니까 그쪽일지도. 건흠은 고개를 기웃거리며 여인과 악수를 했다.
그때 손바닥에 무언가 날카로운 감각이 느껴졌다.
‘……!’
황급히 손을 거뒀지만, 이미 작은 압정이 손바닥에 구멍을 낸 후였다.
여인의 손에서 피가 주륵 흘러내렸다.
‘이런……!’
악마가 학교에 왔다.
소리라도 질러서 알려야 한다. 하지만 숨을 들이키는 순간 눈앞이 핑 돌고 머리가 아뜩해졌다.
“……윽.”
그가 무릎을 꿇자 저 멀리 복도에서 걷고 있던 학생과 선생들이 의아해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고,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곧 여인이 실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졌고.
건흠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멀쩡하게 일어났다.
‘쉽군.’
그는 쓰러진 여인을 내버려두고 곧장 남교사 숙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