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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여고의 남선생-400화 (400/501)

<400화>

400. 작은 손

“……이츠키.”

나빛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병상을 내려다보았다.

병상에는 이츠키가 잠에 빠진 듯 눈을 감고 있었다.

“괜찮을까요?”

“우리 하기에 달렸지.”

상호는 이츠키의 손을 잡은 채로 중얼거렸다.

총을 쏠 줄은 몰랐다. 총에 맞을 줄도 몰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머리에 맞지는 않았다는 것.

총알을 빼서 검사해 보니, 역시나 악마의 인자가 검출되었다.

“어차피 모두 구해야 해. 한 명 늘어난다고 달라지진 않아…….”

하지만 그 한 명이 이츠키라는 게 문제였다. 심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악마를 잡으려면 이츠키가 있어야 하는데.

‘……어떡하면 좋으니.’

상호는 착잡한 눈빛으로 이츠키를 바라보았다. 눈을 감고 고요히 누워 있는 모습이 꼭 태화 때를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또 걱정되는 사람.

“세희도 너무 자책하지 말아.”

“……네.”

말과는 달리 얼굴엔 자책하는 기색이 가득했다. 수심의 그림자가 잔뜩 드리운 게.

상호는 손을 높이 들어 세희의 등을 토닥였다.

“네 잘못 아니야. 숨어서 쏘는 총은 피하기 힘들어. 총알은…….”

“총알은 총성보다 빠르다.”

세희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총구화염을 보고 반응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항상 총구화염을 확인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공격받을 위험이 있다면, 미리 감지할 수 있도록 항상 기를 주변에 펼쳐둬라…….”

세희의 눈이 감겼다.

“다 알고 있었어요.”

“……공격받을 줄 몰랐으니까.”

“어쨌든 방지할 수 있었어요.”

세희의 말에 상호는 입을 닫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제일 힘들어하는 건 세희일 터. 복잡해진 일을 처리해야 하는 건 상호였지만, 그는 눈치껏 말없이 세희의 등만 토닥였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어쨌든 이츠키는 죽지 않았고, 총을 쏜 빙의자도 치료했고, 마법을 쓰던 빙의자도 포획했고 인질도 구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상호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빨리 찾아가 봐야겠네.’

그의 머릿속을 읽은 것처럼 행동하는 악마들.

그리고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된 효은과 혜소.

‘내일 저주 풀리는 대로…… 바로 찾아가 봐야겠다.’

상호는 아이들 몰래 엷은 한숨을 내쉬었다.

* * *

그날 저녁.

평소보다 훨씬 조용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아이들이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을 때. 핸드폰에 도현의 전화가 걸려왔다.

상호는 침음하며 전화를 받았다.

“뭐야, 형. 오늘은 이제 못 간다고 했잖아.”

[알아 임마. 누굴 금붕어로 아냐.]

“그럼?”

[전화 왔어.]

핸드폰 너머에서 희미한 벨소리가 들려왔다.

[네 제자 핸드폰으로.]

“…….”

상호의 몸이 굳었다.

아마도 학부모. 이츠키의 부모님.

“……꺼 버려. 배터리 다 된 척.”

[그래도 되는 거냐?]

“…….”

될 리가 있나. 부모가 자식을 걱정해서 전화하는데.

함부로 무시했다가 어떤 오해가 생길지, 어떤 비극이 생길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이 애 일본인이지? 받아보지 그래. 통역할 사람 데려올게.]

“……아니.”

상호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중얼거렸다.

“지금 통화할 상태도 아니니까. 어린애가 장난친다고 생각할 거 아냐. 그냥 내가 알아서 할게.”

[그래. 그럼 꺼둔다.]

핸드폰 너머에서 벨소리가 멎었다.

[내일 가지러 올 거지?]

“아니, 내일은 나 볼일이 있어서. 어차피 이츠키 없으면 빙의자 못 잡으니까…… 내일 하루는 쉬어야겠어. 애들한테도 쉬라고 했고.”

[그래. 그럼 쉬어라.]

“응.”

그 말을 끝으로 통화가 끊겼다.

‘몹쓸 짓을 하는군.’

상호는 눈을 질끈 감았다.

‘면식도 없는 놈을 믿어준 학부모인데…….’

겁쟁이같이 도망이나 치고 말이다. 그는 한숨을 쉬고 침대에 철퍼덕 엎어졌다.

곧 깊은 잠이 찾아와 그를 어딘가로 이끌었다. 심상인지, 꿈인지 모를 곳으로.

“쿠울…….”

어린 코에서 새근새근 숨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 * *

“할머니네?”

태화가 눈을 끔뻑였다.

“혜소랑 수녀님 있는 곳?”

“응.”

상호는 그의 방 식탁에 둘러앉아 아침을 먹는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혼자 갔다 올 거야. 너희는 학교 지키고……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일이 생기면 알려 줄 테니까, 그땐 협회로 가서 아저씨 말 들어. 셋이 절대 떨어지지 말고. 협회 건물 안에서도. 알았지?”

“네…….”

나빛이 밥을 깨작이다가 물었다.

“그런데 어쩐 일로 가시는 거예요?”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

효은과 혜소가 악마에게 당했는지, 무사한지.

태화를 데려가면 더 확실하게 알 수 있겠지만, 태화까지 데려가버리면 학교와 협회에 너무 큰 공백이 생긴다. 악마를 감지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은 있어야 했다.

“내일 아침 일찍 돌아올게. 점심 저녁 잘 챙겨 먹고.”

“웅.”

태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대화를 하는 와중에도 세희는 한마디 없이 밥만 꼭꼭 씹고 있었다. 눈길을 밥그릇에 고정시킨 채.

상호는 손을 뻗어 세희의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세희야.”

“아, 네.”

“갔다올게.”

“네.”

세희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곧 식사를 마친 그들은 외출 준비를 마치고 창문으로 나와서, 서로에게 손을 흔들며 본관으로, 교문으로 향했다.

교문 근처에 다가간 상호의 몸이 쏜살같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 * *

날아서 20분 만에 도착한 바닷가 마을.

평소였다면 경치를 구경하면서 느긋하게 왔겠지만, 걱정이 마음을 보채다보니 자연스럽게 발이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노파의 집 마당에 착지한 상호는 신발을 벗고 마루로 올라섰다.

“계세요? 할머니?”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인기척도 없는 것이 뭔가 이상하다. 선뜩한 침묵이 칼날처럼 가슴을 저몄다. 다가서는 걸음마다 한 꺼풀씩.

그는 문을 열어 안을 둘러보았다.

“혜소야?”

굳이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었다. 집에 인기척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악마가 이미 다 죽여놓고 떠났을지도 모른다. 상호는 눈을 부릅뜨고 집을 샅샅이 훑었다. 장롱 속, 마루 밑.

그러다가 닫힌 안방 문이 보였다.

‘설마…….’

이 뒤에 무엇이 있을까.

절대로 보고 싶지 않았던 무언가가 놓여 있진 않을까.

그래도 확인하기 위해서, 상호는 떨리는 손으로 안방 문을 열었다.

‘……없네.’

아예 아무도 없었다.

안도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대체 다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다 같이 마실이라도 나간 건가.

아니면 인질로 잡힌 걸까.

‘찾아야 돼…….’

그렇게 중얼거리며 핸드폰을 꺼내 효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받지를 않았다.

결국 상호는 집을 나와 마을 쪽으로 뛰어갔다.

‘응?’

저 멀리 펼쳐진 갯벌에서 어민들이 무언가를 캐는 게 보였다.

그중에 유난히 날씬한 여인 한 명과, 그 옆의 세숫대야에 앉은 아이 한 명.

상호는 그 둘을 발견하자마자 전속력으로 돌진했다.

콰과과과……

효은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뻘에서 파낸 물고기를 들어 올렸다.

“야, 혜소야. 이거 생긴 거 봐라. 이게 짱뚱이? 망둥이? 뭐랬더라?”

“고모, 고모.”

“응?”

“이상한 게 오는데요.”

혜소가 손을 들어 효은의 뒤쪽을 가리켰다.

효은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가, 갯벌을 가르며 달려오는 상호를 발견하고는 얼이 빠져 버렸다.

“……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코앞까지 다가온 상호가 효은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상호는 효은을 덥석 끌어안고 갯벌에 철퍼덕 엎어졌다.

“꺄아악! 야, 미친놈아! 갑자기 뭔 X랄이야!”

“다행이다, 다행이다…….”

“뭘 다행이야! 꺼져!”

환하게 웃는 상호의 면상에 뻘을 가득 쥔 손이 날아들었다.

* * *

“그래서.”

효은이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며 마루에 앉았다.

“우리가 걱정돼서 왔다고?”

“어.”

그 옆에는 같이 씻고 나온 상호가 앉아 있었다. 무릎에 혜소를 앉힌 채. 세숫대야에 담긴 게를 툭툭 건드리며.

“악마한테 공격받은 건 아닐까 해서……. 괜한 걱정이었나 보네.”

“악마가 아니라는 확신은 어떻게 하는데?”

“악마가 뻘이나 파고 있진 않겠지. 당했으면 이미 옛적에 당했을 테고……. 근데 너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손에 뻘이 다 묻어 있는데 전화를 어떻게 받냐?”

“난 되는데.”

“딸도 허공섭물로 치지?”

효은은 콧방귀를 뀌고 상호를 표독하게 째려보았다.

“그럼 그냥 그것만 확인하려고 온 거야?”

“응?”

“그냥 악마한테 당했는지만 확인하려고 온 거냐고.”

어째 뭔가 꼽다는 투다.

상호는 멍하니 눈을 끔뻑이다가, 그치고는 나름 재빠르게 눈치를 까고 입을 털었다.

“당연히 너 보고 싶어서 오기도 했지. 그래서 보자마자 딱 안아 줬잖아.”

“참나…….”

“니도 좋아 가지고 얼굴 빨개졌드만 뭐.”

“빡친 거지, 새끼야! 뻘로 젓갈을 담가놓고는…….”

“어이구~. 그러세…….”

상호가 손으로 효은의 볼을 잡아당기자 효은이 눈을 부릅뜨고 상호의 따귀를 갈겼다.

쫘아악

“……왜!”

“개새끼야, 다 씻고 나왔더니 게를 만지고 그걸 또 사람 얼굴에 문질러? 니는, 니는 맞아야 돼. 닐 때릴 사람이 없으니까 그렇게 대가리가 멍청한 거라고!”

“아야야……. 아파! 야, 나 오늘 기분 별로 안 좋아…….”

“어쩌라고.”

“악! 혜소야, 고모 좀 말려 봐…….”

“어쩌라구요.”

“악!”

상호는 뺨이 터지도록 신나게 맞았다.

* * *

그날 저녁. 달이 담벼락 위로 슬금슬금 올라올 무렵.

“혜소야.”

상호는 큰방에 앉아 있는 혜소를 마루로 불러냈다.

아장아장 걸어 문지방을 넘어온 혜소가 상호의 곁에 앉았다.

“왜요?”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물어보기 전에 먼저 알려줘야 할 게 있었다.

“혜소 뉴스에 아저씨랑 언니들 나온 거 봤니?”

“마조부대요?”

“……봤구나.”

상호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츠키 언니가 악마한테 당했어.”

그 말에 혜소가 움찔하더니, 흔들리는 눈빛으로 상호를 돌아보았다.

목소리도 눈빛처럼 떨리고 있었다.

“……많이 다쳤어요?”

“몸은 무사해. 정신은 아니지만…….”

“어쩌다가요?”

“총에 맞았는데 총에 악마의 피가 묻어 있었어. 그때 하필이면 내가 어려져 있어서…… 나 대신 세희가 같이 있었는데, 세희가 약간 방심한 사이에 공격당해서…….”

상호는 그렇게 말하다 말고 혜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실수하지 않는 인간은 없다. 알지?”

“네.”

혜소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재워 둔 거예요?”

“응.”

“어떻게 깨워요?”

“그걸 지금부터 알아내야 돼.”

상호의 눈빛이 혜소를 꿰뚫을 듯 바라보았다. 그만큼 흔들림이 없었다.

“이츠키가 그랬어. 너랑 그분은 태양처럼 빛이 난다고. 난 그게 영혼의 힘 때문이라고 생각해.”

“영혼의 힘이요?”

“악마를 물리칠 수 있는 힘이야.”

혜소가 숙연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싸우면 되나요?”

“아니, 널 시키진 않을 거야. 넌 예닐곱 살 어린애고, 그분이 너한테 그런 싸움을 맡겼을 리 없어.”

상호의 표정은 결연했다.

“내가 해야 돼. 네가 도와줘.”

“……무슨 말인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혜소는 눈을 내리깔았다.

“제가 뭘 해야 하는 건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그치만, 이게 제 할 일이라면, 거사님이 안배해 둔 제 인연이라면…….”

작은 손이 큰 손 위에 얹혔다.

“당연히. 힘닿는 데까지 도와드릴게요.”

“그래.”

그 손 위에 다른 큰 손이 얹혔다.

“고맙다.”

“그런데 방법은 알고 계신 거예요? 방법을 찾는 방법……. 감은 잡으신 건가요?”

“아, 그거는…….”

그는 시계를 슬쩍 보고 말을 이었다.

“잠을 같이 자야 돼.”

“……네?”

혜소가 눈을 끔뻑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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