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9화>
399. 눈을 감다
머리가 복잡하지만, 일단은 눈앞의 상황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할 터인데.
‘대체…….’
이해할 수 없는 악마들의 행동과, 효은에 대한 걱정 때문에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상호는 핸드폰을 꺼내려다가 멈칫했다.
‘지금 전화한다고 결과가 달라지진 않는다.’
그렇다면 아이들을 우선해야 할 것이다. 그는 마이크에 대고 물었다.
“태화, 사카시타. 찾고 있어?”
[찾았습니다.]
이츠키의 화면이 중년의 여인을 포착했다.
[보이십니까? 지금 일부러 못 본 척 하고 있습니다.]
“……헌터는 아닌 것 같은데.”
[잡으면 되겠습니까?]
“잡자.”
그 말에 태화가 버튼형 주사기를 꺼냈다.
[빨랑 재우자고.]
[야, 잠깐만…….]
[뭐가. 저기 저 아줌마 맞잖아. 넌 맨날 니가 다 하려고 하더라? 걍 거기서 손가락이나 빨아. 한방에 끝낼 테니까.]
[야!]
검은 연기가 펑 하고 터졌다.
같은 곳을 향하고 있던 바디캠 화면들 중 하나에 여인의 뒷모습이 나타났다. 그리고 휘둘러지는 주사기.
그러나 다음 순간, 태화의 화면이 크게 뒤흔들렸다.
콰아앙
다른 화면들에서는 태화가 뒤로 날아가고 있었다. 상호는 깜짝 놀라서 의자에서 튕기듯 펄쩍 뛰었다.
“야, 태화야!”
[끄응…….]
몸을 일으키는 것을 보니 크게 다치지는 않은 듯했다.
갑자기 일어난 폭발에 거리를 걷던 사람들이 혼비백산하며 달아났다. 평화롭던 거리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저희가 쫓아낼 필요는 없겠네요.]
화면에 나타난 세희의 손이 검의 손잡이를 향했다.
[싸우면 되나요?]
“……으응.”
상호는 한숨을 푹 쉬었다. 태화가 다치지 않아서 안도한 것이기도 했고, 여인이 일반인이 아니었다는 것에 대한 한탄이기도 했다.
“처리해줘.”
[네.]
세희가 검을 뽑았다.
* * *
텅 빈 거리.
저벅……
세희는 여인을 향해 걸어갔다.
마법사와의 실전은 겪어 본 적 없다.
‘그래도…….’
나름대로 자신이 있는 이유는, 마법으로는 초혼강기를 쓰지 못하니까.
그때 이어셋에서 상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심해. 저번보다 더 준비해왔을 거야.]
“네.”
[숨어있는 놈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카시타는 태화 데리고 뒤로 빠지고, 나빛이는 하늘에서 상황 보면서 세희 도와줘.]
“네!”
나빛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세희는 검에 강기를 두르며 여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펑
여인이 검은 연기와 함께 사라졌다.
사람의 마법이 아닌 악마의 마법. 목표를 놓친 세희는 허공에 검을 휘두르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늘에서 나빛이 소리쳤다.
“세희야! 저기!”
건물 위로 성창이 날아갔다.
세희는 그 성창을 따라 몸을 날렸다. 하지만 여인은 다시 순간이동으로 거리를 벌리며 다른 건물의 옥상에 나타났다.
세희와 나빛이 여인을 쫓으려는데, 상호의 목소리가 둘을 붙잡았다.
[잠깐만.]
“네?”
[수상한 냄새가 나네.]
세희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여인을 노려보았다. 여인에게서는 싸우려는 의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유인하는 건가요?”
[그런 것 같다. 미치겠네, 마법을 쓰는 빙의자라…….]
머리를 벅벅 긁는 소리가 들렸다.
[일단 뒤로 빠져. 뭘 준비했을지 몰라. 누군지는 확인했으니까 뒤는 헌터들한테 맡기고 너희는…… 뭐야, 저거?]
세희도 보았다.
여인이 밧줄로 묶어놓은 아이를 보란 듯이 들어 올리고 있었다. 재갈이 물린 아이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한 채 겁먹은 눈으로 세희와 나빛을 바라보았다.
[……준비를 철저하게 했구만.]
상호가 침음했다.
[더 쫓으면 안 될 것 같은데…….]
“그치만…….”
[알아. 안 쫓을 수도 없지. 태화야, 일어날 수 있겠어?]
[응.]
[그러면 너랑 나빛이가 쫓아. 그쪽으로 헌터들이 갈 거야. 웬만하면 싸우지 말고 쫓기만 해. 더 위험한 곳으로 유인당하고 있다는 거 잊지 말고. 사카시타는 마법사를 쫓기에는 발이 느리니까, 세희가 지키면서 따라가.]
“네.”
세희는 몸을 돌려 건물 아래로 뛰어내렸고, 이츠키의 곁에 있던 태화가 나빛을 향해 솟아올랐다.
세희는 태화의 옆을 스칠 때 작게 속삭였다.
“나대다가 다치지 마.”
태화는 날아가다 말고 멈칫하더니, 이미 멀리 떨어진 세희의 등에다 대고 콧방귀를 뀌었다.
“너나 잘하세요.”
그러고는 나빛과 함께 여인을 쫓아 날아갔다.
세희는 검을 집어넣고 이츠키에게 손짓했다.
“가자, 이츠키.”
“네.”
둘은 골목을 달려 태화와 나빛을 뒤쫓기 시작했다.
세희는 이츠키의 뒤에서 달리며 보조를 맞췄다. 이츠키도 평범한 사람들보다는 훨씬 발이 빨랐지만, 하늘을 나는 아이들이나 세희를 따라잡기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아이들과의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츠키.”
보다 못한 세희는 이츠키의 팔을 잡았다.
“업혀.”
“괜찮겠습니까?”
“너 정도는 업을 수 있어.”
이츠키는 군말 없이 세희의 등에 업혔다.
자기 몸무게만한, 어쩌면 그보다 조금 더 나가는 무게였지만 세희는 전혀 힘들어하는 기색이 없었다.
세희의 발이 땅을 박차자 둘의 몸이 하늘로 치솟았다.
[조심해, 세희야.]
옥상에서 건너편 옥상으로 뛰는데 상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츠키가 발이 느리다는 걸 알고 있을 수도 있어.]
현 상황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은, 빙의자를 정확히 특정해낼 수 있는 이츠키.
세희도 잘 알고 있었다.
“조심할…….”
게요, 라고 말을 하려는 순간.
옆 건물의 옥상에서 총성이 울려 퍼졌다.
타아앙
‘……!’
세희는 이츠키를 끌어안고 황급히 몸을 낮췄다.
경공을 하던 중이라 날아가던 속도 그대로 건물 옥상에 처박혔지만, 호신강기를 둘렀기에 바로 일어나서 벽 뒤에 몸을 숨길 수 있었다.
그런데 품에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으.”
코로 흘러드는 피비린내. 세희는 멍한 눈으로 이츠키를 내려다보았다.
이츠키의 어깨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박힌 것 같습니다…….”
이츠키가 숨을 헐떡였다.
“좀…… 많이 아픈데…….”
[사카시타? 세희야, 무슨 일이야?!]
“총에 맞았어요.”
세희는 떨리는 손으로 이츠키의 상처를 확인했다. 손톱만한 구멍에서 피가 울컥울컥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해요……?”
[지혈부터 해, 세희야. 치료는 나중에 할 수 있어.]
“지혈…….”
창백한 낯빛. 평소답지 않게 허둥대는 모습.
세희는 황급히 주머니를 뒤졌다.
“붕대, 붕대가…….”
[이츠키 주머니에 있을 거야. 상의 왼쪽 주머니. 찾았어?]
“네…….”
[꽉 묶어. 꽉. 괴사해도 나중에 치료하면 돼. 피가 아예 안 통하도록 온 힘을 다해서 묶어.]
상호의 침착한 지시에 세희도 간신히 마음을 다잡았다.
붕대로 매듭을 짓고 다시 한번 당겨서 압박하려는데, 총성이 들렸던 쪽의 옥상에서 누군가 뛰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쳇…….”
세희는 곧바로 몸을 일으키며 검을 뽑았다.
“이츠키, 네가 묶을 수 있겠어?”
“……괜찮습니다.”
이츠키가 혼미한 눈빛으로 몸을 웅크렸다.
“일단 싸우, 싸우고 오는…….”
“조금만 기다려.”
지금은 싸울 수밖에 없다. 세희는 옥상에 착지하는 이를 향해 검을 겨눴다.
근육질의 사내.
세희의 것과 비슷한 곤색의 전투복을 입고 있었다.
[헌터 경찰이다.]
상호가 중얼거렸다.
[대인무술의 전문가야. 방심하지 마라, 세희야.]
“네.”
세희는 사내와 이츠키의 사이에 섰다.
함부로 달려들 순 없었다. 사내의 손에 들린 권총 때문에. 눈앞에서 쏘는 총 정도는 호신강기로 막으면 되지만, 함부로 달려들었다가 총알이 빈틈을 파고들어서 이츠키를 향해 날아간다면.
그것까지 막아줄 수는 없었기에, 세희는 달려들지 못했다.
‘총을 먼저 치워야 해.’
세희의 검지와 중지에 내공이 모였다.
다음 순간, 벼락같이 내뻗은 세희의 손에서 두 줄기 지탄이 쏘아져 나갔다.
조준이 서툴러서 하나는 애먼 곳으로 날아갔지만, 다른 하나는.
퍼억
권총을 정확히 관통해서 부숴버렸다.
사내는 그 즉시 권총을 버리고 허벅지에 달린 칼집에서 칼을 뽑아 역수로 쥐었다. 50cm가 간신히 넘을 것 같은 짧은 칼.
세희는 가은의 검술을 떠올렸다.
[조심해.]
상호가 초조한 듯 속삭였다.
[나도 대인무술을 전부 알고 있는 건 아니야. 너한테 가르쳐주지 못한 게 있을 수도 있어.]
스승은 몬스터를 상대해온 것이지 사람을 상대해온 게 아니다. 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할게요.”
그리고 사내를 향해 달려들었다.
[조심한다며…….]
상호가 침음했지만, 세희의 귀에는 닿지 않았다.
총이 없으니 두려울 것도 없다. 세희는 사내를 향해 검을 휘둘러 들어갔다.
카아앙
짧은 검이 세희의 검을 빗겨내고 안으로 파고들었다.
검이 짧기에 빗겨내기까지의 시간도 짧다. 평범한 인간이 상대였다면 빗겨내든 말든 그대로 베어버렸겠지만, 지금 싸우는 것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악마.
사내는 몸통으로 날아드는 세희의 검을 무시하고 세희의 배를 향해 칼을 찔러 넣었다.
그렇지만 세희에게도 계획이 있었으니.
타악
세희는 땅을 박차고 몸을 뒤로 빼는 동시에,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검을 휘둘러 사내의 팔을 날려버렸다.
촤아악……
피보라가 일었다.
[세희야, 죽이지 않게 조심해.]
“지혈하면 되잖아요.”
살려만 놓으면 상관없지 않냐는 뜻. 하지만 세희의 눈은 사내를 죽여버릴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킥…….”
사내는 킬킬거리며 남은 팔로 검을 꼬나들고 세희를 향해 휘둘렀다. 잘린 팔에서 뿜어진 피가 세희를 향해 흩뿌려졌다.
세희는 검풍을 일으켜 피보라를 걷어내고.
퍼억
은근슬쩍 날아드는 사내의 발차기를 팔꿈치로 찍어 버린 뒤, 사내의 남은 한 팔도 단칼에 베어 버렸다.
마무리는, 명치에 정권.
“흐읍!”
퍼억
장갑에 달린 뿔 속의 바늘이 사내의 옷과 살갗을 뚫고 들어갔다.
“크으…….”
사내는 어떻게든 균형을 잡으려고 비틀거렸지만, 인체에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약물까지 어찌할 순 없어서.
얼마 가지 않아 눈을 휙 뒤집고 쓰러졌다.
[……잘 싸우네.]
상호가 얼떨떨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야 가장 강한 사람에게 가장 강하도록 교육받았으니까. 세희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검의 피를 털어내고 칼집에 집어넣었다.
[어서 지혈하…… 잠깐만, 사카시타?]
“네?”
이츠키는 왜 부르시는 걸까. 뒤를 돌아보려는데 갑자기 다리에 힘이 탁 풀렸다.
‘어?’
세희는 바닥에 철퍼덕 엎어졌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고개를 들 수도 없었다. 간신히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시야의 끄트머리에 누군가가 보였다.
이츠키.
어느새 칼을 꺼내 들고 있었다.
“이……츠키?”
등에서 무언가가 팔랑이는 것이 느껴졌다.
세희는 그게 부적이라는 것까지만 이해했다. 그 이상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게 왜 붙었는지, 언제 붙었는지.
그리고 누가 붙였는지.
“너……?”
[사카시타?]
“…….”
이츠키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으…….”
눈동자를 옆으로 한껏 굴리느라 눈이 찢어질 것 같았다. 세희는 진땀을 흘리며 이츠키와 눈을 마주쳤다.
텅 빈 눈빛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피가 튀었나?’
그랬을 것 같진 않은데. 거리도 너무 멀고 총상도 작다.
그때 세희의 눈에 부서진 권총의 파편이 들어왔다.
‘총알……!’
총알에 악마의 피를 묻혀 놨던 것이다. 세희는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이를 갈았다.
어쨌든 지금은 이츠키가 아닌 악마. 그녀를 죽이려는 악마에 불과했다.
‘크……으……!’
어떻게든 몸을 움직여 보려 했지만, 부적 때문에 근육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사카시타? 사카시타! 야, 이츠키!]
상호의 외침을 무시하고, 이츠키가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다.
후웅……
옥상의 바람이 검을 지나치며 낮게 울었다.
하늘을 향해 치켜든 검이 시퍼렇게 빛났다. 세희는 그 빛이 내려오는 것을 무력하게, 그저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몸이 도저히 움직이질 않아서.
‘X발……!’
세희가 눈을 질끈 감는 순간.
“……희.”
이츠키의 입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세희…….”
그러고는 움찔거리며, 몸을 바들바들 떨더니.
팔을 위로 뻗은 채로 손가락만을 움직여 검을 떨어뜨렸다.
채앵
“나…….”
이츠키는 덜덜 떨리는 손을, 뻣뻣하게 굳은 팔을 간신히, 억지로 움직여 주머니로 가져갔다.
주머니에 들어갔다가 나온 손에는 버튼형 주사기가 들려 있었다.
“믿고…….”
늘 무표정하던 눈에 두려움이 스쳐 지나갔다.
세희는 멍하니 그 눈을 바라보았다.
“어……?”
“있겠습니다…….”
이츠키가 뒷목에 주사기를 대고 버튼을 탁 쳤다.
소녀의 몸은 실 끊어진 인형처럼 아래로 무너져 내렸다. 손이 축 늘어지고, 무릎이 접히고, 상체가 앞으로 굽고.
그렇게 세희의 곁에 쓰러졌다.
“이츠키?”
“…….”
“이츠키…….”
반응은 돌아오지 않았다.
세희는 잠에 빠진 듯한 이츠키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그제서야 움직이기 시작한 팔을 들어 이츠키의 뺨을 쓸었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두려움의 눈빛.
‘……무서웠구나.’
다시는 깨어날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세희 자신을 위해서 악마를 밀어내고 스스로의 의지로 잠에 빠졌다.
자신이라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나는…….’
세희는 고개를 흔들었다.
쓸데없는 고민이다. 이미 일어난 일이니까.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명백했다.
‘이츠키.’
미안해서 가슴이 저미고, 고마워서 목이 메었지만.
“꼭 깨워줄게.”
그 말만은 분명히 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