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5화>
395. 관심이 필요해
“쌤, 쌤. 이거 먹어봐.”
“아니, 잠깐만…….”
“선생님! 이거, 이거.”
“기다려…….”
상호는 진땀을 흘리며 아이들이 내미는 음식을 밀어냈다.
협회에 마련된 작은 휴게실. 전투복에서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아이들은 상호를 데리고 조촐하게 축하 파티 겸 점심을 먹었다. 소파 앞 탁자에는 밖에서 사온 군것질거리가 변변찮게 늘어놓여 있었다.
나빛이 상호를 무릎에 앉히고 떡볶이를 들이밀었다.
“아~. 하세요. 아~.”
“아…….”
“옳지~. 냠냠 씹으세요. 냠냠!”
“나빛아, 나 스물다섯인 거 알지……?”
“냠냠!”
“냠냠…….”
“아이 착하다~.”
상호는 고개를 푹 숙였다.
악마를 잡은 걸 칭찬하기 위해 사준 음식들인데, 정작 아이들은 그에게 음식을 먹이는 걸 더한 포상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오늘은 어쩔 수 없나…….’
체념한 그에게 태화가 마카롱을 들이밀었다.
“쌤! 쌤! 이거 물고 사진 찍자!”
“얌마, 내가 애냐…….”
“자, 자. 이거 입에 물고! 아니, 다 먹는 게 아니라. 반만 물어. 반은 내밀고. 오케이, 그대로 있어. 김치~.”
“내가 애냐고!”
참다못한 상호가 소리치자 태화가 처연한 눈빛을 지었다.
“난 동생이 있는 게 꿈이었어…….”
“…….”
“영원히 이룰 수 없는 꿈이지만…… 이렇게라도 동생이 있었음 했어…….”
나빛의 눈빛도 덩달아 아련해졌다.
“저도 오빠밖에 없어서…… 동생이 있었으면 했어요…….”
“넌 만들어 달라고 하면 되잖아.”
“넌 그래서 맨날 이서 데리고 놀잖아.”
“으잉…….”
태화와 세희의 협공에 나빛은 속절없이 침몰당하고 말았다.
그 틈을 타 이츠키가 나빛에게서 상호를 뺏어 들었다.
“저는 고향에 두고 온 남동생이 생각납니다.”
“야이씨, 헛소리하지 마! 평생 없었던 나랑 남동생 있는 니랑 비교가 돼?”
“사이가 좋았는데, 떨어진 지 너무 오래돼서…….”
“너 이제 두 달 되어가잖아! 쌤, 이거 봐. 있는 집 년들이 더하다니까! 이리 와, 이리 와.”
결국 상호는 태화의 무릎에 앉혀져 마카롱을 입에 물었다.
‘…….’
대체 왜 마카롱을 입에 무는 것 따위를 찍겠다는 건지.
뚱한 표정으로 마카롱을 물고 있으니 아이들이 그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은호야~.”
“누나라고 해봐, 누나.”
“……누나.”
“나빛이 누나라고 해봐!”
“나빛이 누나…….”
“헤헤헤…….”
그때 휴게실 TV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상호가 흔히 봤던 무거운 뉴스가 아니라, 사회의 가십거리를 다루는 가벼운 뉴스. 발랄한 여자 앵커가 가리킨 자료화면에는 카메라를 피해 도망치는 네 소녀의 실루엣이 띄워져 있었다.
[……이 신원 미상의 헌터들은 마조부대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지칭했는데요, SNS상에서는 이 마조부대라는 단체의 정체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빠르게 소문이 퍼지고 있습니다…….]
“이야~.”
태화가 상호를 꼭 끌어안고 다리를 꼬았다.
“이제 빼박이네? 응? 마조부대 대장님.”
“…….”
상호는 말없이 화면 속 실려 가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아직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사내는 아이들이 어디 있는지 정확히 알고 찾아온 게 분명했다.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또 상호 자신의 상황은 어떻게 알았는지.
그 의문들이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가장 의심이 가는 건…….’
그의 마음속에 살고 있는 놈.
하루빨리 그놈을 없애버려야 할 텐데. 상호는 한숨을 쉬며 아이들이 시키는 대로 검지를 볼에 붙였다.
“일 더하기 일은…… 귀요미…….”
“꺄하하하!”
“은호야~, 은호야~, 까꿍!”
“이 더하기 이는…… 하아…….”
오늘 하루는 영락없이 광대로 살게 될 것 같았다.
* * *
그로부터 며칠 후, 협회의 작은 방.
상호는 탁자에 전투복을 늘어놓았다.
“부대복이야.”
태화가 딴죽을 걸었다.
“마조부대복.”
“그래, 그…… 부대복.”
“마조부대복!”
“내가 앵무새냐?”
“다 때려쳐! 은호 데려와! 우리 귀요미 은호 데려오라고!”
“부대복이야.”
“무시하지 마!”
태화가 뿔로 등을 찔렀지만, 상호는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너희 스타일에 맞게 개량했어. 입어보고 불편한 거 있으면 말해.”
그 말대로 전투복은 조금씩 형태가 달랐다.
태화의 것은 후드에 달린 토끼 귀 같은 부분에 뿔이 들어가게 만들었고, 바지도 꼬리가 나오는 구멍을 뚫고 탄성이 있는 소재로 조여서 속이 안 보이게 만들었다.
이츠키의 것은 부적을 넣을 수 있도록 주머니를 곳곳에 달아 주었고, 애초에 근접전투를 할 일이 없는 나빛에게는 친구들을 보조할 용품을 넣을 가방을 허리춤에 달아 주었다.
그리고 세희의 것은.
“세희야, 여기 봐봐.”
상호의 말에 세희가 장갑을 내려다보았다.
장갑의 관절 부분, 주먹을 휘두르면 상대에게 닿는 부분에 작은 뿔들이 달려 있었다. 마치 너클처럼.
“안쪽에 바늘이 들어 있어.”
상호는 세희와 눈을 마주쳤다.
“저번에 말했던 그 마취제야. 어쩌다가 스치는 정도는 상관없어. 온 힘을 다해서 힘껏 때려야 해. 그래야 바늘이 나와.”
“네.”
“양은 넉넉하니까 검에 발라서 써도 되지만…… 네가 강기를 쓰면 약이 변성될 거야.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쓴다면 호신강기만 두르고, 검을 버릴 생각으로 써야 한다는 거…… 이해했지?”
“네.”
“팔꿈치에도 있고, 어깨에도 있어.”
세희의 전투복은 온통 뿔투성이였다. 손톱보다 작은 뿔들이 어깨, 팔꿈치, 무릎과 전투화 앞쪽에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애들한테도 주사기 있으니까, 이거 너무 의식하면서 싸우지 말고. 싸워 보니까 여기에도 붙어 있었으면 좋겠다, 싶으면 얘기해.”
“네.”
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할게요.”
“그리고 너희 다.”
상호는 전투복 상의를 뒤집어 가슴 부분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작은 기계가 하나 붙어 있었다.
“바디캠이야.”
“되게 야한 부분에 붙어 있는데.”
태화가 눈을 끔뻑이며 가슴팍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화면 옆에 사각지대 빡세게 생기겠는데?”
“……후드에도 이어셋 있으니까, 입고 벗을 때마다 작동하는지 체크해. 벗을 때 귀찮다고 체크 안 하지 말고. 다음번에 입었다가 어, 고장났네! 하고 갈아끼우면 쓸데없이 시간 잡아먹히잖아.”
“네. 근데…….”
세희가 옷을 돌려 등 쪽을 보이게 했다.
“이건 뭐예요?”
등짝에 큼지막하게 프린팅된, 魔 자.
상호는 헛기침을 했다.
“마귀 마 자야.”
“이렇게 클 필요가 있어요?”
“그냥…… 잘 보이면 좋잖아.”
실상은 상호가 제발 무조건 크게 붙여달라고 사정사정한 결과물이었다. 이미 널리 퍼져버린 마조부대라는 이름을 어떻게든 수습하기 위해서. Maso가 아닌 魔뭐시기로 인식되도록.
설명을 마친 상호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아이들을 쓱 둘러보았다.
“지금 갈아입어 봐.”
“네?”
나빛이 전투복을 품에 끌어안으며 얼굴을 붉혔다.
“선생님 앞에서……요?”
“아니, 당연히 난 나가야지…….”
“벗을게요…….”
“……나빛아?”
아직 입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귓구멍에 이어셋이 틀어박혔니, 라는 말은 속으로 삼켰다.
상호는 돌아서서 방을 나왔다.
“갈아입고 나와. 지하에서 간단히 대련해 보자.”
“네~.”
아이들은 옷을 벗고 전투복으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 * *
그날 저녁.
대련을 마치고, 간만에 한가롭게 외식까지 하고 학교로 돌아온 상호는 아이들을 기숙사로 보내고 교무실로 향했다. 이미 수업은 다 끝났지만 미진의 보고를 받아야 했다. 어떤 수업을 했는지, 아이들은 어떻게 지냈는지.
‘보고를 받는 건지, 보고를 하는 건지…….’
또 잔소리나 할 것이다. 그는 입맛을 다시며 문을 열었다.
모두가 퇴근한 교무실에 미진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오우 X바…….’
개쌍욕을 들어처먹을지도 모른다. 상호는 마음가짐을 단단히 하고 만면에 미소를 띠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속담을 떠올리며.
그가 다가가자 미진이 날카로운 눈빛을 쏘았다.
“오늘도 악마 잡고 왔어요?”
상호는 그 말을 듣고 멈칫했다.
‘어라?’
의외로 크게 화나지는 않은 듯하다. 악마에 관련된 일이라 어쩔 수 없다고 여기는지.
상호는 쾌재를 부르며 구라를 쳤다.
“네.”
“애들은요?”
“무사해요. 지금 기숙사에서 쉬고 있어요.”
거짓말이 먹혔을까, 미진은 딱히 의심하는 기색이 없었다. 대신에 미묘하게 책망하는 듯한 눈빛을 상호에게 보냈다.
늦게 온 것 때문은 아닌 듯싶었다.
“이제 뭐 할 거예요?”
“운기조식이요. 당분간 거를 수가 없어서.”
“애들은요?”
“……네?”
눈을 끔뻑이는 상호에게 미진이 재차 말했다.
“애들은 안 보냐고요.”
“어제도 봤는데요, 뭘…….”
상호는 혹시나 싶어 물었다.
“애들 오늘 무슨 일 있었어요?”
“……애들 좀 챙기세요. 맨날 운기조식만 하지 말고.”
미진은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담임이 그 모양이니까 애들이 기운이 없는 거 아녜요.”
“미진 씨 수업이 재미없는 거 아니에요?”
“뭐라고요?”
“아니, 농담인데…….”
머쓱해진 상호는 뒤통수를 긁적이다가 입맛을 다셨다. 미진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짚이는 게 있어서.
“지윤이가 말을 잘 안 들었어요?”
“……아뇨.”
아니라고는 하지만 이미 표정에 드러내고 있었다. 상호의 생각이 정답임을.
상호는 확신을 갖고 물었다.
“지윤이가 틱틱거렸어요? 뭐 던지진 않았죠? 지윤이 화나면 꽃 던지고 폰 던지고 그러는데…….”
“아니라니까요. 지윤이가 선배 같은 줄 알아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니 내가 직접 당한 건데…….’
그 말은 상호의 목구멍 아래서 맴돌 뿐,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미진은 한심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혀를 차고 말을 이었다.
“멍을 계속 때려요.”
“언제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그냥 요즘 계속 그랬어요. 선배가 애들 데리고 협회 가면. 창밖만 보고 불러도 반응이 늦어요.”
“……그래요?”
마음에 두고 있었구나. 상호는 입에 손을 얹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운기조식은 밤에 하고, 일단은 지윤을 만나야 할 것 같았다.
“알았어요. 지윤이랑 이야기해 볼게요. 그런데…… 미진 씨.”
“네?”
“우리 되게 부부 같네요.”
그 말에 미진의 몸이 굳었다.
“……뭐요?”
어이없어하는 눈빛과 같이.
얼이 빠져버린 미진에게 상호는 소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렇잖아요. 밖에서 일만 하다 와서 애들 잘 모르는 아버지랑, 애들 좀 챙기라고 잔소리하는 어머니랑…… 딱 그 꼴인데. 나만 그렇게 생각…… 우왁?!”
키보드가 상호의 면상으로 날아들었다.
간신히 피했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얼굴이 시뻘겋게 물든 미진이 물건을 잡히는 대로 집어 던지며 빽 소리쳤다.
“미쳤나봐! 진짜……. 나가! 나가요!”
“아니, 아니 나는 그냥 느낀 걸 그대로 말했을 뿐인데…….”
“꺼져요 이 쓰레기야. 되도 않는 헛소리 하지 말고!”
상호는 쏟아지는 투척물들을 피해 교무실 밖으로 도망쳤다. 또 입으로 죄를 지어버린 자신을 책망하며.
‘내가 뭔가 말실수를 했구나…….’
그렇게 쳐맞고도 뭘 잘못했는지는 끝끝내 알아채지 못한 상호였다.
* * *
퍼억……
둔탁한 타격음이 체력단련실을 울렸다.
퍼억, 퍽, 퍽……
스트레이트 한 번, 연이어 잽 두 번.
지윤은 목적 없이 기계적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샌드백이 일정한 리듬을 따라 출렁거렸다.
퍽……
친구들처럼 무언가 해내고 싶었다.
퍽……
세상을 구하는 일이나, 좋아하는 사람을 돕는 일 따위를.
퍽, 퍽……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답답한 마음에 무언가와 싸우고 싶어도, 싸울 게 없었다.
‘X발!’
지윤은 초강기를 담아 주먹을 내질렀다.
콰아앙
속절없이 터져나간 샌드백이 바닥에 모래와 천 쪼가리를 흩뿌렸다.
‘아이고…….’
일 났다. 잠시 당황하던 지윤은 곧 입술을 잘근거리며 돌아섰다. 어차피 아무도 못 봤을 테니까.
그런데 문가에 상호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앗.”
“잘 있었어?”
씩 웃으며 다가오는 상호에게, 지윤은 괜히 투덜거렸다.
“웬일로 오셨어예.”
“그냥, 지윤이 너 보려고.”
“악마는 잡으셨습니꺼.”
“아니, 오늘은 전투복 때문에 간 거라서.”
상호는 이번에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지윤의 볼을 살짝 집었다.
“하루종일 안 보니까 지윤이 보고 싶더라. 그래서 보러 온 거야.”
“……뭡니꺼, 그게.”
여전히 툴툴거리는 말투였지만, 이미 볼이 발그레하게 물들어 있었다.
지윤은 상호의 가슴을 툭 치고 품에 슬쩍 기댔다.
“글케 말헌다고 지 맘이 풀릴 줄 아십니꺼.”
“풀린 것 같은데?”
“아입니더. 하나도 안 풀맀심더.”
“입꼬리가 흐물흐물하게 풀려 있는데…….”
상호는 쓰게 웃으며 지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지윤아.”
“……예.”
“친구들이랑 다른 취급 받는다고 너무 서운해하진 마.”
그 말에 지윤이 눈을 내리깔았다.
“서운할 수도 있는 거 아입니꺼.”
“꼭 필요한 사람만 데려간 것뿐이야. 네가 무능해서가 아니야. 유능한 사람 다 데려갈 거면 다혜도 데려가고 교장선생님도 데려갔겠지. 그치?”
“……그래도.”
“그래도 어쩌다가 보니 지윤이 너랑 같이 1학년이었던 애들이 다 들어오긴 했지만…… 우연일 뿐이야. 그렇게 생각해 줘. 절대 지윤이 네가 미워서 그런 게 아니니까.”
지윤은 상호의 손에 얼굴을 비볐다.
“그건 지도 알고 있습니더.”
“그치?”
상호가 씩 웃고 지윤을 꼭 끌어안았다.
“넌 이미 어른이니까, 내가 특별취급하지 않아도 되지?”
“……예.”
가끔은 특별취급 받고 싶지만.
이게 선생님을 돕는 길이라면, 제 욕심 따위는 얼마든지 접어둘 수 있었다.
“걱정 마이소.”
지윤도 상호를 마주 끌어안았다.
“서운한 거 하나도 없으니까예.”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 품에 안기어, 같잖은 원망 따윈 다 잊어버리고.
하루 종일 텅 비어 있던 마음을 이제야 가득히 채웠다.
“간만에 스파링 어떠십니꺼?”
“……패려는 건 아니지?”
“그럴 리가예. 아니믄 레슬링도 괘안심더. 매트 깔까예?”
“서운한 거 하나도 없는 거 맞지……?”
“아니라니까예. 지를 못 믿으십니꺼. 자자, 빨리 누워 보이소.”
“으응, 살살해…….”
“갑니데이~.”
“……으아아아악!”
마조부대 대장의 비명이 체력단련실을 가득히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