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여고의 남선생-394화 (394/501)

<394화>

394. 마귀를 조지는 부대

대낮의 번화가.

개벽 후로 무기가 흔한 세상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길 한복판에서 칼날을 마주하는 일까지 흔해진 건 아니었다.

한가로이 걷던 인파 속에 파문이 일어났다. 고요한 연못에 돌멩이를 던진 듯.

“뭐, 뭐야? 저 사람…….”

“헌터잖아.”

“근데 왜 칼을…….”

“경찰인가?”

검을 늘어뜨린 채로 서서히 다가오는 사내.

세희는 뽑은 검을 빙글 돌려 자세를 잡으며 속삭였다.

“이츠키.”

“네.”

“저거 악마야?”

“그렇습니다.”

대답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츠키 또한 검을 뽑고 있었기에.

부적이 덕지덕지 붙은 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악마에게 먹힐지 모르겠습니다.”

“물러나 있어.”

세희의 검에서 하늘색 불꽃이 타올랐다.

“죽이지만 않으면 나빛이가 치료해 주겠지.”

“기다려!”

나빛이 손을 뻗었다.

황금색의 반투명한 막이 사내의 주변을 둥글게 둘러쌌다. 동시에 빛나는 사슬이 사내를 묶으러 날아들었고, 뭉툭한 막대들이 주변의 사람들을 바깥쪽으로 밀쳐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제일 현명한 거야!”

“글쎄…….”

세희가 중얼거리자마자 사내가 검을 휘둘렀다. 어딘가 어둑해 보이는 주홍색 강기를 두른 채.

쨍그랑……

“……그렇게 간단해 보이지는 않는걸.”

“으익…….”

간단히 부서져 내리는 방어막. 나빛은 산산이 흩어지는 황금빛을 보며 당황했다.

아이들의 귀에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얘들아! 싸우지 말고 뒤로 빠져. 헌터들이 갈 테니까…….]

그 순간 사내가 옆으로 뛰었다.

슈욱……

시퍼렇게 빛나는 칼날의 궤도는, 한 여인의 손을 꼭 잡고 서 있는 어린 소년에게 향하고 있었다.

세희는 반사적으로 땅을 박차고 검을 길게 내뻗었다.

채애앵

칼의 떨림이 손으로 전해져 왔다.

한껏 후리고 난 징처럼 부르르 떨리는 칼날. 세희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사내의 검을 살폈다.

사내의 검은 멀쩡했다.

“초혼강기랑 비슷한 것 같아요.”

[……그러게.]

“제가 처리해야겠네요.”

[그치만…… 끄응.]

이어셋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는 체념한 기색이 묻어나고 있었다.

[조심해.]

“걱정 마세요.”

세희는 아이와 여인이 피신하는 것을 확인하고 내공을 끌어 올렸다.

물러서면 사람들이 죽는다.

“저 혼자서도 충분하니까.”

아이들과 사내의 주변에 황금색 막이 둘러졌다.

나빛의 방어막이 초혼강기를 버텨낼 순 없다. 세희는 끌어올린 내공을 잠시 잡아둔 채로 아이들에게 소리쳤다.

“너흰 이 주변에 사람들 못 오게 해!”

“명령하지마! 쌤 없으면 내가 대장이야!”

“꺼져! 빨리 길이나 막아.”

“퉤.”

태화가 하늘로 날아올라 손에서 불꽃을 내뿜었다.

끈적한 검은 화염이 길가에, 골목마다 떨어져 다가오는 길을 막았다. 동시에 나빛도 눈을 감고 집중해 방어막을 더욱 넓게 펼쳤다.

세희는 그제서야 내공을 검으로, 몸으로 방출했다.

화르륵……

사람을 상대로 한 실전은 이번이 두 번째.

첫 번째도 사람의 몸속에 들어간 악마였다.

‘이놈은 더 약해…….’

비록 프로 헌터지만, 폭주한 다혜나 해련만큼 강하지는 않을 것이다.

확신을 가진 세희의 검이 사내의 옆구리를 찔러 들어갔다.

“……크흐.”

사내는 피식 웃고는 옆구리를 막는 대신 세희의 목을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

세희는 급히 뒤로 빠졌다.

칼날이 아슬아슬하게 목의 솜털을 훑었다. 그와 동시에 이어셋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조심해! 저놈은 지 몸이 죽든 말든 신경 안 써. 세희 너만 노리는 거야.]

“네.”

그런 놈도 상대해 봤다. 세희는 실습 때 만난 악마를 떠올리며 호신강기를 두텁게 끌어올렸다.

그리고 이츠키를 흘끗했다.

‘마취제.’

눈빛을 알아들은 이츠키가 고개를 끄덕이고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버튼이라고 착각할 만큼 아주 짧은 주사기.

척추와 가까운 곳에 투약하면 그 즉시 전신의 신경을 마비시키고 가사상태에 빠뜨리는 약이 들어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압을 해야 하는데.

‘내 내공으로 허공섭물은 무리고…….’

형태도 없는 마나 따위 가볍게 갈라버리고 짓쳐들어올 것이다.

‘검을 부수고 팔다리를 잘라내는 수밖에.’

세희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 순간 사내가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다.

콰앙

“윽……!”

세희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체급과 근력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지나치게 힘이 강했다. 세희는 자세를 바로잡으며 중얼거렸다.

“뭔가 이상해요.”

[자기 몸이 아니니까 막 쓰는 거야.]

이어셋에서 어린 소년의 침음이 흘러나왔다.

[혈맥도, 근육도…… 이미 한계를 넘어서 무리하고 있어. 서둘러야겠다, 세희야.]

그 말대로 사내의 몸에는 핏줄이 불거지고 얼룩덜룩한 멍이 올라오는 중이었다. 아직 제대로 싸우지도 않았는데.

빨리 재우지 않으면 기본이 사망이고 운이 좋아야 폐인. 세희는 검을 치켜세우며 소리쳤다.

“나빛!”

성창이 사내를 향해 날아갔다.

사내는 가볍게 성창을 부쉈지만, 세희는 그 틈을 타 검을 휘둘렀다. 사내의 팔을 검째로 베어버리기 위해.

번개처럼 날아든 칼날이 사내의 어깨를 파고들었다.

‘베었다.’

……라고 생각한 순간.

사내의 칼날도 세희의 어깨를 파고들었다.

‘……!’

순간 세상이 멈추고, 뇌에서 폭발이 일어나듯 감각이 확장되었다.

칼끝이 근육을 파고드는 감각. 그리고 근육에 칼날이 파고드는 감각. 각각 손끝과 어깨에서 전해지는 느낌이, 마치 스스로의 어깨를 베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조금만 힘을 주면 사내의 팔을 벨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자신의 팔도 날아갈 것 같았다.

‘……칫.’

세희는 검을 거두고 몸을 뺐다. 지금 팔이 날아갔다가는 자신의 목숨이 더 위험할 것 같아서.

‘짜증나네…….’

입에서 뿌드득 소리가 났다.

사내의 몸에는 호신강기가 없었다. 내공의 총량을 10으로 친다면, 사내는 그 10을 온전히 검에만 쏟는 중이었다. 그것도 몸을 강제로 혹사시키며 15, 20만큼을 쥐어짜내서.

여타의 무예가들은 보통 7을 무기에, 3를 호신에 쓰다가 필요할 때 무기의 강기를 거두어 호신강기에 보태지만, 지금 세희는 그러면 안 되었다. 선택지는 오직 둘뿐.

검에 10을 쓰든가, 호신강기에 10을 쓰든가.

“선생님.”

[응?]

“막고 벨까요? 먼저 벨까요?”

[막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

“아뇨.”

무슨 수를 숨겨놨을지 모른다. 세희는 검을 강하게 움켜잡았다.

“역시 먼저 베어야겠죠.”

늘어뜨린 검에서 강기가 맹렬하게 피어올랐다. 강한 바람을 맞으면서도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그들을 가두고 있는 검은 불꽃과 연기 속에서, 하늘빛은 더욱 밝아지고 주홍빛은 더욱 어두워졌다.

세희가 먼저 땅을 박찼다.

콰아앙

대포를 터트리듯 비산하는 흙, 그 반대 방향으로 튀어 나가는 몸. 세희는 간격을 계산해서 사내의 오른 어깨를 향해 검을 찔러넣었다.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는 거리.

하지만 강기를 폭발시킨다면 팔 따위는 간단하게 날려버린다.

‘이제 남은 건……!’

세희의 시선이 사내의 검을 향했다.

어두운 주홍빛 강기를 두른 검은 세희의 검과는 반대 방향으로 날아왔다. 둘 다 같은 오른손잡이라서. 세희의 검은 세희의 오른쪽, 사내의 검은 세희의 왼쪽.

오른쪽으로 검을 찔러 넣는 중이라 왼쪽이 무방비했다.

쉬익……

바람 소리. 언뜻 뱀이 혀를 날름거리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세희는 사내의 칼끝에서 시선을 느꼈다. 그 시선은 세희의 목을, 가슴을, 배를 차례로 핥아 내리며 약한 곳을 찾았다. 일검, 단 한 번의 찌르기로 목숨을 앗기 위해서.

세희는 그 순간 사내의 어깨를 향해 강기를 폭발시켰다.

콰아아앙

땅을 뒤흔드는 폭발음 사이로.

퍼억……

액체를 담은 질긴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비산하는 살점과 피. 그리고 날아가는 검.

세희는 사내의 팔이 날아간 걸 확인하자마자 이츠키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츠키!”

버튼을 닮은 주사기가 허공을 가르며 날아왔다.

부적을 던지며 싸우는 이츠키였기에 방향이 정확했다. 세희는 손안에 쏙 들어온 주사기의 안전캡을 뽑고 사내를 향해 휘둘렀다.

그때 무언가가 시야의 가장자리로 날아들었다.

강기를 날카롭게 세운 손톱.

쉬익……

이번에는 정확히, 세희의 목을 노리고 있었다.

“……크윽!”

세희는 반사적으로 사내를 걷어차고 뒤로 물러났다.

나동그라진 사내는 기이한 움직임으로 일어서더니 비틀거리며 세희에게 다가왔다. 코에서 검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미 육체가 한계를 맞이한 듯했다.

[……세희야.]

“네.”

한 사람의 생명이 경각에 달렸다. 세희는 사내의 다른 팔도 잘라버릴 요량으로 서둘러 검을 치켜세웠다.

사내가 검지를 들어 세희를 가리켰다.

[지탄이다.]

그 말대로 사내의 검지에는 주홍빛 강기가 모여들고 있었다.

무조건 피한다. 세희는 자세를 낮추고 옆으로 뛸 준비를 했다. 쏘는 그 순간까지 기다렸다가 궤적을 확인하고 피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사내가 팔을 굽히더니.

“킥…….”

손으로 총 모양을 만들어, 스스로의 관자놀이를 겨눴다.

검지 끝에 모인 주홍빛 강기가 작은 구슬을 이뤘다.

[잠깐……!]

“큭……!”

두 사람의 입에서 당황성이 튀어나온 순간.

사내의 뒤에서 검은 연기가 펑 하고 터지더니.

“체어샷!”

태화가 사내의 머리를 접이식 의자로 후려갈겼다.

빠아악

안 그래도 이미 죽어가던 몸인데다 호신강기도 없었기에, 사내의 머리는 속절없이 앞으로 튀어 나갔고, 손가락에서 쏘아진 지탄은 허공을 갈랐다.

세희는 그 틈을 타 사내에게 달려들어 뒷목에 주사를 놓았다.

버튼을 가볍게 치자 사내의 몸이 축 늘어졌다.

“나빛.”

“응.”

달려온 나빛이 성력으로 사내를 치료했다.

결국은 아무도 다치지 않고 무사히 끝난 것이다. 사내의 팔을 토막치고 뚝배기를 깨긴 했지만. 세희는 한숨을 쉬고 검을 칼집에 집어넣었다.

태화가 의자를 든 채로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어때? 역시 나밖에 없지?”

“위험했잖아, 멍청아. 함정이었으면 어떡할 거야.”

“응~, 괜히 트집잡쥬? 나없으면 아무거또못하쥬? 할말없쥬?”

“니가 위험했다고, 병신아!”

세희가 버럭 소리치자 태화는 놀란 토끼눈으로 흠칫하더니, 곧 입을 삐죽 내밀고 발그레한 뺨을 긁적였다. 시선은 옆으로 피하면서.

“뭐 어때, 됐으면 장땡이지.”

“뭐가 됐어? 그러다 죽기라도 하면 너 살리려고 고생했던 사람들은 뭐가 되는데. 제발 생각이란 걸 좀 하고 움직이란…….”

[됐다, 세희야.]

상호가 쓰게 웃었다.

[해결했으면 된 거야. 잘했어. 너도 태화도…….]

“선생님! 저는요?”

[응, 나빛이도, 사카시타도…….]

“쌤.”

태화가 바디캠을 얼짱 각도로 들어 올리며 말했다.

“나 부대 이름 좋은 거 생각났어.”

[……여태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웅.”

[뭔데?]

검은 불길이 잦아들자 협회의 헌터들이 현장을 수습하러 달려왔다. 상황이 끝난 것을 확인한 시민들도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며 주변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에서, 태화가 주먹을 치켜들었다.

“마귀를 조지는 부대!”

[……응?]

“마조부대야!”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거리를 울렸다.

아이들과 상호는 그런 태화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틱

“앗, 선생님 통화 끊었어…….”

“우씨, 쌤! 도망치지 마! 맞서 싸워! 마조부대 대장은 부끄러움으로부터 도망치지 않아! 듣고 있지? 듣고 있는 거지?!”

“우리 선생님이 마조이긴 하지요.”

“이츠키, 큰 소리로 말하지 마…….”

세희는 고개를 푹 숙이고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어안이 벙벙해하는 시민들의 시선을 견딜 수가 없어서.

그래서 결국, 친구들의 손을 잡고 황급히 도망치고 말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