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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여고의 남선생-393화 (393/501)

<393화>

393. 저희끼리 할게요

“쿠울…….”

상호의 품에 안긴 나빛이 새근새근 숨소리를 냈다.

“쿠아…….”

상호의 등에 업힌 태화도 코를 골았다.

한 손은 나빛을 안고, 한 손은 태화를 받치는 상태. 상호의 입에서 한숨이 푹 쏟아져 나왔다.

‘에휴…….’

전투복을 입히면 뭐하나. 딱 봐도 어린애들 돌보는 보모 꼴인데.

밤하늘엔 달이 휘영청 떠 있었다. 시간은 늦어 새벽 두 시. 학교에 있는 아이들은 이미 자고 있을 것이다.

상호는 태화를 살살 흔들어 깨웠다.

“태화야, 태화야.”

“우웅……. 왜…….”

“네가 느낌으로 찾아줘야지. 일어나. 조금만 더 찾다가 학교 가자. 가면 푹 자.”

“지금 자야 내일 학교 간단 말야…….”

“내일 학교 안 가도 돼. 출석처리 해 줄게. 눈 뜨고 걸어 봐.”

“웅…….”

태화는 비틀거리며 땅에 내려섰다.

걸어도 걸어도 잠이 덜 깼는지 하품을 하고 눈을 비빈다. 그런 태화를 세희는 못마땅한 눈빛으로 째려보다가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아야! 왜!”

“넌 잤잖아. 난 한숨도 못 잤어. 빨리 정신 차리고 악마나 찾아봐.”

“넌 니가 따라온 거잖아! 왜 나한테 그러는데!”

“선생님 도와드리려고 온 건데 니가 일을 아예 못하게 하잖아.”

“됐다, 됐다 얘들아.”

상호는 둘 사이에 끼어들어 서로를 갈라놓았다.

“오늘은 늦었어. 차라리 내일 일찍 일어나자. 밤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눈에 더 띄니까…… 이제 그만 돌아다녀도 될 것 같아.”

악마를 찾으려면 낮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태화와 이츠키가 더 많은 사람을 보고 악마를 찾아낼 수 있으니까.

어차피 대낮에도 태연히 사람을 죽이는 놈들이니, 평범한 범죄자들처럼 밤에 돌아다니리란 보장은 없다.

“학교 가서 자자.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찾아도 되니까.”

“네.”

“웅…….”

“야, 야. 학교는 네가 날아서 가야지.”

“치이…….”

그는 다시 등에 업히려 하는 태화를 밀어내고, 나빛을 안은 채로 건물 위를 향해 뛰어올랐다.

조용한 밤하늘을 배경으로 네 개의 그림자가 날아갔다.

* * *

다음 날 아침.

‘……아, X발.’

상호는 헐렁해진 옷을 느끼며 X됐음을 직감했다.

악마를 잡으러 가야 하는데 은호가 되어 버렸다. 이 꼴로 아이들과 다녔다가는 짐덩어리만 될 텐데.

그는 옆에서 자고 있는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깨우긴…… 해야겠지.’

악마를 알아볼 수 있는 두 아이가 여기 있으니. 상호가 나서진 못하더라도 다른 헌터들의 도움을 받아 추적을 재개해야 했다. 도현이나, 해련 같은 헌터들.

그래서 일단, 아이들을 흔들어 깨웠다.

“얘들아, 일어나. 일어나…….”

“헤에…….”

무언가가 이불에서 튀어나와 상호의 팔을 잡았다. 하얗고 작은 손.

나빛이 상호를 끌어당겨 품에 안고 배시시 웃었다.

“은호다아…….”

“나빛아……?”

“헤헤헤…….”

“빨리 일어나, 악마 잡으러 가야지…….”

그 말에 나빛이 눈을 번쩍 뜨는가 싶더니, 곧 힘없이 축 늘어져서는 상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그치만……. 선생님이 이래서는…….”

“다른 사람하고라도 잡으러 갈 거야. 일어나, 일어나. 태화, 세희. 일어나. 사카시타.”

“으응…….”

“끄으응…….”

새벽 3시에 들어와 8시에 깼으니 잠이 부족할 만도 했지만, 다행히 아이들은 앙탈을 부리지 않고 곱게 일어나 주었다.

상호는 작은 몸으로 주방에 달려가 간단한 아침을 준비했다.

“얼른 씻고 옷 입어, 얘들아.”

“네…….”

아이들이 하품을 하며 욕실로 우르르 몰려갔다.

* * *

“그러니까…….”

해련이 자신의 무릎에 앉힌 상호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애들이랑 같이 가서 악마 잡는 걸 도와달라고?”

“네.”

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 찾는 건 태화랑 이츠키가 알아서 할 거예요. 상황은 도현이 형한테 물어보면 되고……. 교장선생님은 그냥 곁에서 지켜봐주시면 돼요. 잘 하고 있는지, 실수 안 하는지…… 뭔가 아닌 것 같은 건 바로잡아 주시고.”

“으음…….”

해련이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늘 자상하게 웃던 눈빛에 걱정이 담겨 있었다.

시선이 향한 곳은 세희.

“그치만…… 세희를 꼭 데려가야 하는 거지?”

“네.”

상호가 어려진 지금은 초혼강기를 쓸 수 있는 게 세희밖에 없으니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려면 반드시 세희가 있어야 했다.

도현도, 해련도 세희를 대체할 수 없었다.

“세희는 꼭 있어야 돼요.”

“근데 그러면…… 나까지 같이 가버리면 다혜를 볼 사람이 없잖아. 다혜를 학교에 남겨준 이유가 세희 때문인데…….”

“……아.”

상호는 당황해서 눈을 내리깔았다. 그렇지만 다혜는 반년 가까이 폭주한 적이 없는데.

“……다혜는 이제 폭주 안 할 거예요.”

“백 퍼센트는 아니잖아요.”

해련이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강 선생이 이렇게 된 지금…… 나나 세희, 둘 중 한 명은 꼭 다혜 주변에 있어야 해요. 아니면 다혜도 같이 갈까요? 나랑 이 아이들이랑 같이?”

“아뇨. 교장선생님 말이 맞아요. 백 퍼센트가 아니니까…….”

악마를 쫓다가 다혜가 폭주하면 곤란하니까. 위험요소는 따로따로 두는 것이 옳을 것이다.

납득은 했지만, 다시 고민이 찾아왔다.

“그럼……. 교장선생님이 못 가면…….”

“민정 양을 잠깐 오라고 할 순 없을까?”

“거기도 중요하긴 마찬가지예요. 그럼 남은 사람은…… 형한테 말해 볼게요.”

“그래요. 그런데 강 선생.”

“네.”

“내가 보기엔 세희도 이미 충분히 강한 것 같아.”

해련이 그의 어깨를 잡았다.

“강 선생도 봤잖아요. 세희가 다혜랑 싸우는 거. 난 그 정도면 우리나라에서 세희를 이길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보는데.”

“…….”

상호의 표정이 멍해졌다.

해련의 말이 맞다. 준 X급인 해련을 곤란케 한 게 다혜다. 비록 해련은 살초를 배제한데다가 학교를 지키는 것을 전제로 싸우긴 했지만. 전력으로 싸웠어도 폭주 상태의 다혜를 쓰러트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런 다혜를 쓰러트린 게 세희.

지금 세희의 경지는 전쟁 중기 시절의 상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이들을 믿어 봐요. 이미 충분히 강해요. 난 세희 정도면 적어도 당하지는 않을 것 같아.”

해련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물론 악마가 한 마리일 때 말이지만.”

“……그렇죠.”

상호는 간신히 입을 열어 답했다.

“한번…… 생각해 볼게요.”

“응. 잘 생각해 봐요. 물론 서 부협회장이 도와줄 수 있다면 그게 제일 좋겠지만.”

해련은 씩 웃고 상호를 슬쩍 끌어안았다.

“그럼 강 선생은 오늘 쉬는 건가? 협회 갔다가 여기로 돌아올 수 있겠어요?”

“글쎄요……. 형이 도와준다고 하면 형 대타 뛰어야죠.”

“그런가. 그럼 어쩔 수 없구……. 얼른 일 끝내고 돌아와요. 간만에 회식 한 번 해야지? 수고한 기념으로~.”

“……다녀오겠습니다.”

그는 아이들을 데리고 후다닥 교장실을 빠져나왔다.

* * *

“뭐?”

도현이 눈을 끔뻑였다.

“내가 같이 가달라고?”

“응.”

상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도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뚱한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야, 사령부가 똑바로 굴러가는 게 제일 중요한 거 몰라? 지금 상황 전체를 이해하고 있는 게 나야. 너랑 네 제자들, 민정이, 여기 협회랑 경찰이랑 학회랑 신앙회…… 싹 맡고 있는 게 나랑 협회장님이라고. 그런데 내가 빠지면 어떻게 되겠어?”

“그건 그런데…….”

상호는 쓰읍 입맛을 다셨다.

해련이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아이들만 보내기에는 너무 걱정이 되었다. 정말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닐까 두려워서.

이미 그가 참전했을 때보다 나이가 많은 아이들이었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소중한 그의 제자들이었다.

그래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러면…… 누구 같이 보낼 만한 사람이…….”

“선생님.”

세희가 그의 어깨를 잡았다.

“저희가 할게요.”

“……응?”

상호는 잠시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해 눈을 끔뻑였다가, 곧 세희의 말을 이해하고 당황했다.

“너희끼리만 가겠다고?”

“언제까지고 다른 사람들 도움만 받을 순 없어요.”

세희가 당당하게 말했다.

“학생을 가르치신 이유가 그거잖아요. 혼자서도 잘 하게 만들어주기 위해서.”

“…….”

상호의 눈이 재차 흔들렸다.

“그…….”

한참을 침음하던 그는, 이내 한숨을 푹 쉬고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아. 너희끼리도 할 수 있는 일이긴 해…….”

“괜찮아요.”

나빛이 상호의 머리를 품에 꼭 안았다.

“걱정 마세요, 저희 이제 많이 강해졌으니까…….”

“으응, 걱정 안 할게. 믿고 있을게.”

“헤헤…….”

“그런데…….”

말과는 달리 상호의 눈에는 걱정이 한강처럼 흐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흘러넘칠 듯 넘실넘실, 울먹울먹.

“진짜 너희끼리만 괜찮겠어……?”

“아이씨, 괜찮다니까! 우리가 딱 잡아올게!”

“너 때문에 그래…….”

보다 못한 도현이 손뼉을 짝 쳤다.

“그럼 이건 어때?”

“응?”

“바디캠이랑 이어셋을 줄 테니까, 애들이 그걸 달고 상호 너는 여기서 서포트를 하는 거야.”

“오퍼레이터처럼?”

“그렇지.”

오퍼레이터. 헌터들이 대규모 작전을 펼칠 때, 출동한 헌터들에게 상황을 알려주고 지시를 전하는 일종의 관제사, 교신원.

상황을 그가 알 수 있다면 아이들이 판단을 내릴 때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상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자. 장비는 어딨는데?”

* * *

[선생님~.]

컴퓨터에서 나빛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 보이고 있어요~?]

“응.”

[목소리 계속 들려 주세요~.]

“으응…….”

상호는 헛기침을 했다.

부협회장실에 새로 놓인 책상. 체형에 맞추느라 도현의 책상보다 높이가 아주 낮았다. 그는 그 앞에 앉아 컴퓨터 화면으로 아이들과 같은 시야를 보고 있었다.

“태화야, 집중하고 있지?”

[앗! 개맛있어 보이는 마카롱 발견!]

“……집중해.”

[웅~.]

이래도 안심이 되질 않았다.

그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아이들이 번화가로 들어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빽빽한 인파가 점점 가까워져 왔다.

[어?]

의아해하는 목소리. 멈칫하는 태화의 화면.

상호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태화야?”

[느낌이…… 오는 것 같은데.]

그 말에 바디캠 화면들이 바쁘게 주변을 훑었다.

설마 찾은 걸까. 어제였다면 기뻐했겠지만 오늘은 왠지 불안했다. 상호는 차라리 태화의 느낌이 착각이기를 바랐다.

‘왜 벌써…….’

예감이 좋지 않았다.

“사카시타, 찾고 있어?”

[사람이 너무 많아서…… 구별하기가 어렵습니다. 지금은 안 보입니다.]

“찾아도 잡지 마. 그냥 기다려. 협회에서 지원이 갈 때까지…….”

그때 세희의 바디캠 화면이 한 곳에 고정되었다.

수많은 인파 속, 화면을 향해 똑바로 다가오는 사내.

“……아.”

사내의 허리춤엔 검이 달려 있었다.

상호는 그 사내를 확인하자마자 황급히 소리쳤다.

“얘들아! 뒤로 빠져. 형, 악마 찾았어. 지금 애들 있는 곳으로 빨리…….”

하지만 사내는 어느새 지척까지 거리를 좁힌 후였다.

그때.

[죄송해요, 선생님.]

스피커에서 세희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그냥 기다리진 못할 것 같아요.]

검을 뽑는 팔이 화면을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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