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여고의 남선생-392화 (392/501)

<392화>

392. 악마 잡는 부대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발신인은 도현. 상호는 핸드폰 화면을 확인하자마자 운동장을 향해 손을 뻗었다.

“얘들아.”

대련 중이던 지윤과 이츠키가 우뚝 멈췄다.

“그만하고 들어와. 초란이, 미진 선생님 불러오고.”

“네.”

“사카시타, 가자.”

“네.”

이츠키가 사뿐히 상호의 품에 안겼다.

이츠키를 안은 채로 땅을 박차고 저 멀리 날아가는 상호. 아이들은 둘의 뒷모습을 멀뚱히 올려다보았다.

“또 둘이만 가네.”

“이츠키랑 화장실 같이 가겠네…….”

“저번엔 점심으로 회전초밥 먹었대.”

“오늘은 돈카츠나 라멘 먹고 오겠네…….”

“므아앙.”

아이들의 입에서 한숨이 푹푹 쏟아져 나왔다.

그래도 악마와 관련된 일이라 어쩔 수 없으니. 아이들은 가만히 앉아서 초란이 미진을 데려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태화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돈까스 먹고 싶다…….”

* * *

“이래서…….”

이츠키가 피범벅이 된 화장실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꼭 화장실에 같이 가야 하는 거였군요.”

“……으음.”

상호는 협회의 감식반이 조사 중인 시체를 내려다보며 침음했다.

대형마트의 화장실 안. 협회가 차마 CCTV를 달지 못했던 곳.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언제 드나들지 모르는, 굳이 CCTV를 둘 필요가 없는 곳.

그런 곳에서 이리도 대담하게 일을 벌이다니.

“빠져나갔겠지요?”

“남아있을 이유는 없겠지.”

이미 마트를 빠져나갔을 것이다.

여기서 지켜보고 있어 봤자 의미가 없다. 상호는 이츠키의 손을 잡고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노란색의 접근금지 테이프를 걷어내고 나와 보니 사람들이 몰려들어 있었다.

“사카시타.”

그는 혹시나 해서 물었다.

“이 중에 있어?”

이츠키는 사람들을 쓱 훑어보다가, 다시 한번 쓱 훑어보고 대답했다.

“없습니다.”

“그렇겠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또 악마를 찾아 돌아다니는 생고생을 해야 한다니. 학기 중에는 이럴 일이 없기를 바랐는데.

그렇지만 여기서 한숨을 쉰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으니.

“가자, 사카시타. 악마 찾으러…….”

“네.”

둘은 마트 출구를 향해 걸어갔다.

* * *

‘씨X랄…….’

상호는 벤치에 앉아 육포를 질겅거렸다.

이츠키와 함께 점심도 굶고 거리를 돌아다녔지만, 결과는 허탕. 악마 빙의자는 이미 저 멀리 도망간 게 분명했다.

‘성질나네, X벌…….’

빨리 잡아서 족쳐버리고 싶은데.

악마를 쫓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옆에 앉은 이츠키가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상호는 육포를 꺼내 이츠키의 손바닥에 놓았다.

“배고파도 참아. 언제 움직여야 할지 모르니까.”

“괜찮습니다.”

이츠키는 그렇게 답하고 육포를 입에 물었다.

삐딱하게 앉아서 험상궂은 표정으로 육포를 질겅거리는 사내와, 다소곳이 앉아서 육포를 오물거리는 여학생. 가만히 있어도 눈에 띄는 두 사람에게 평소보다 많은 눈길이 모여들었지만, 둘 다 아랑곳하지 않고 육포를 열심히 씹었다.

육포 봉지가 비자 상호는 결론을 내렸다.

“태화랑 나빛이 불러와야겠다.”

“또 무작정 돌아다니면서 찾는 겁니까?”

“그럴 수밖에 없어. 마트에 드나든 사람이 한둘도 아니고……. 또 어디서 몸을 갈아탔을지도 몰라. 잠깐 학교 가서 애들 데려오자.”

“저는 준비됐습니다.”

이츠키가 상호의 목에 팔을 둘렀다.

상호는 벤치에서 일어나 땅을 박찼다. 등에 업힌 이츠키의 오금을 손으로 단단히 붙잡은 채.

하늘을 날아가는 그의 입에서는 한숨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 * *

급식소를 꽉 채운 아이들의 수다.

그 사이로 의아해하는 목소리 하나가 툭 튀어나왔다.

“웅?”

태화가 숟가락을 입에 문 채로 눈을 깜작였다.

“우이오 우아애?”

“빨리 따라와. 급해.”

상호는 손을 까딱였다.

“나빛이도 어서 일어나.”

“네…….”

두어 숟가락은 먹었을까, 나빛의 앞에 놓인 식판에는 손도 대지 않은 음식들이 처음 모습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그렇지만 시무룩해하거나 언짢은 티를 내지는 않았고, 의연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상호의 곁에 다가왔다.

태화도 뒤따라 자리에서 일어나자 상호가 앉아 있는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식판 좀 대신 치워 줘. 선생님 급히 갈 데가 있어서.”

“선생님.”

“응?”

세희가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저도 같이 갈래요.”

“……넌 안 돼.”

상호는 고개를 저었다.

세희는 그의 후계.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를 대비한 안전장치.

쓸데없는 위험을 감수하게 할 순 없었다.

“나만 가도 충분해. 세희 네가 도와줄 건 없어. 마음은 고맙지만…….”

“저도 배워놔야죠.”

세희가 작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선생님이 아프거나 하실 수도 있잖아요. 잠깐 힘을 못 쓰게 될 수도 있고.”

“……그럴 수도 있지.”

은호를 말하는 것이다. 급식소라서 대놓고 말은 못 하지만.

그래도 세희를 데려가는 게 맞을까.

상호는 아직 성연이 당했던 순간을 잊지 못했다.

“그래도…….”

“가르쳐 주세요.”

망설이는 그에게 세희의 흔들림 없는 시선이 꽂혔다.

“저도 할 수 있어요.”

“…….”

상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러나 곧 세희의 말이 맞다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은호가 됐을 때 그를 대신해 악마를 잡아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 적임자는, 초혼강기를 쓸 줄 아는 세희.

“……그래.”

상호는 손을 까딱였다.

“세희도 따라와. 같이 가자.”

“……쌤예.”

지윤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라믄 지도 가고 싶어집니더.”

“안 돼. 꼭 필요한 사람만 데려갈 거야. 여럿이 다닐수록 발이 느려져.”

지윤의 발이 느려서라기보다는, 아무리 추적 중이라도 화장실은 가야 할 텐데 사람이 늘어나면 그만큼 시간을 낭비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상호의 손이 지윤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네가 약해서가 아니야. 사람이 적어야 해서 그래.”

“……예.”

“다녀올게.”

그는 지윤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 몸을 돌렸다. 뒤로는 나빛과 태화와 세희가 따르고 있었다.

지윤은 그 모습을 시무룩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눈앞에 누군가 소시지볶음을 들이밀어서 몸을 살짝 뒤로 뺐다.

“아으.”

다혜가 나빛의 식판에서 맛있는 반찬만 골라 지윤의 식판에 덜어주고 있었다.

“아으아으…….”

“괘안데이. 언니야도 묵으라.”

“므앙.”

그래도 다혜는 한사코 양보를 했다.

지윤은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식사를 시작했지만, 급식소 출구를 돌아보는 눈빛에는 희미한 회의감이 깃들어 있었다.

* * *

“뭐야.”

자리에 앉은 도현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잡았어?”

“……아니.”

상호는 고개를 저었다.

“전투복 좀 줘.”

“전투복?”

“응.”

그의 눈빛이 옆을 향했다.

교복을 입은 세희와 태화와 나빛과 이츠키가 소파에 앉아 상호와 도현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다.

“교복을 입고 돌아다닐 순 없잖아. 어느 학교 다니는 누구들인지 다 까발려진다고. 협회 전투복 몇 벌 줘.”

“전투복 입고 돌아다니면 악마가 그거 보고 도망칠 거 아냐?”

“도망치게 해서라도 쫓아야지. 이대로는 아무 소득도 없어. 차라리 눈에 띄게 하는 게…… 사람들이 협조라도 하지.”

촉이 오는 건물이나 가게를 조사하려 해도, 여고생 넷을 데리고 다니니 사람들이 별일 아닌 줄 알고 길을 내어주지 않았다. 급하면 그냥 사람을 옆으로 던지거나 문을 부수거나 하면 되겠지만, 아이들이 교복을 입고 있는 이상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대놓고 특수한 업무 중이라는 것을 드러낸다면, 실랑이도 벌일 필요 없고 관계자 외 접근 금지 구역 같은 곳도 드나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도현이 고민을 했다.

“그럼 아예 부대를 만들까?”

“부대?”

“응. 네가 말한 대로 악마 잡는 부대를 만들어서,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게……. 어차피 지난번 뉴스 때문에 사람들도 악마가 있다는 건 다 알고 있단 말이지.”

“그치.”

“그러면 그런 부대를 만들어서, 우리가 대응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사람들이 안심할 수 있을 거고…… 실제로 너희는 악마를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있잖아?”

“그렇지.”

“그러면 너희 애들한테 급여도 줄 수 있고…….”

도현의 손가락이 딱 소리를 냈다.

“만들자. 부대.”

태화가 기다렸다는 듯이 주먹을 치켜들었다.

“가자! 마빡부대!”

“엥, 왜 마빡이야……?”

“마귀를 빡세게 잡는 부대! 구호는 빡이야! 배에 힘 빡 주고! 눈에 힘 빡 주고! 빡!”

“별로야…….”

“야이씨, 그럼 니가 지어보든가! 한자 잘 안다면서? 잘나신 하나빛 양께서는 뭐가 다르냐? 어?”

“어…….”

나빛이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고개를 퍼뜩 들었다.

“구원부대!”

“꺼져! 사이비 종교 취급받을 일 있냐?”

“으잉…….”

“시끄러, 니꺼는 코미디콘서트 코너 이름 같아.”

“아~ 두 번째 도전자! 천세희 양 모셨습니다아~. 천세희 양! 과연 천세희 양이 생각한 기똥찬 부대명은 뭔가요오오!”

“그런 거 몰라. 그래도 선생님이 뭘 원하시는지는 알지.”

세희가 태화의 꼬리를 잡아끌었다.

“악! 우씨, 이거 안 놔!”

“낭비할 시간 없어. 빨리 갈아입고 출발하자고. 부협회장 아저씨, 어디로 가면 돼요?”

“……2층으로 가면 돼.”

“가요, 선생님.”

“응…….”

세희를 데려오길 잘했다. 태화를 꽉 잡아 주는 것을 보니.

상호는 아이들을 데리고 부협회장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 * *

“아~.”

태화가 툴툴거리며 벨트를 조였다. 엉덩이 쪽 바지 속에서 꼬리의 뿌리 부분이 꼬물거리는 게 보였다.

허리춤 위로 어정쩡하게 반만 튀어나온 꼬리가 축 늘어졌다.

“바지 입기 싫은데…….”

“나중에 맞춤으로 만들어 달라고 할게. 일단 입어. 그리고 발 좀 줘봐.”

“응.”

상호의 앞에 태화가 발을 들이밀었다.

여자 발을 처음 본 것도 아니건만, 새삼스럽게 그의 발과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게 느껴졌다.

‘아직 앤가.’

그는 태화의 발에 부츠를 신겼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검은 가죽이지만, 못을 대고 박아도 안 뚫릴 정도로 질기고 불도 안 붙는, 몬스터에게서 발견한 소재로 만든 협회의 전투화.

전투복과 장갑에도 기본적으로 방검과 방염 기능이 달려 있었다.

“학교에서나 치마 입고 싸우게 해주는 거지, 헌터일 할 때도 치마를 입을 순 없잖아.”

“외않되?”

“입지 마 그냥. 벗어, 벗어.”

“네?”

천으로 된 커튼 너머에서 나빛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벗어요?”

“아니, 아니. 태화한테 한 말이야…….”

“태화 벗기고 계세요?”

“아니…….”

상호는 태화가 신은 장화의 지퍼를 올리고 한숨을 쉬었다.

곧 탈의용 칸막이가 걷히고 전투복을 입은 아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몸에 딱 맞는 검은색 상의와 군복처럼 약간 펑퍼짐한 회색 하의. 검은 장갑과 검은 전투화.

예쁘장한 얼굴만 가리면 제법 특수부대원 느낌이 날 것 같았다.

“이거 써.”

상호는 준비해 둔 모자와 마스크를 내밀었다. 야구모자가 셋, 비니가 하나. 야구 모자 중 하나는 뿔이 들어갈 수 있게 구멍 두 개가 나 있었다.

“나중에 뿔도 숨길 수 있게 만들어야겠다. 나빛이는 머리 묶어서 집어넣고.”

“네.”

나빛이 머리를 묶고 비니를 썼다.

검을 쓰는 아이들, 세희와 이츠키는 허리띠에 검을 채웠다. 그렇게 준비를 마친 아이들은 명령을 기다리는 군인처럼 차렷 자세로 서서 상호를 바라보았다.

태화가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두목! 준비끝났슴드아악!”

“깡패냐?”

“악! 악마를 잡기 위해 악바리가 된 군인임다!”

“진지하게 해, 진지하게.”

“악!”

빨리 출발하는 것이 좋다. 이 순간에도 사람이 죽을 수 있으니.

상호는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당분간 학교 못 갈 수도 있어. 절대 혼자 행동하지 말고. 무조건 둘 이상 붙어 다녀. 화장실 갈 때도. 알았지?”

“네!”

“두목! 그래서 우리 부대 이름은 뭘로 정했슴까!”

“예현부대로 하자.”

“엑, 그건 너무 구리잖아!”

“그럼 태화부대로 할까?”

“너무 예~쁜 이름이라 안 어울려.”

“그럼 좀 덜 예쁘게 바보태화부대로 하자.”

“아이씨!”

그와 아이들은 나란히 서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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