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0화>
390. 나의 길을 가련다
“악의란 게 참 무섭지.”
상호는 초밥을 우물거리며 창밖의 먼 산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게…….”
그 말에 회전초밥에서 한 접시를 꺼내들던 이츠키가 잠시 멈칫하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래도 곧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했다.
“그렇습니다. 부모의 내리사랑이 대단해 보일 때도 많습니다.”
“……응?”
무언가 핀트가 안 맞는다. 상호의 당황한 눈이 빠르게 끔뻑였다.
“부모님……이라니?”
“아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응, 악의…… 잠깐만, 뭐라고?”
“아기 말입니다.”
이츠키가 상호를 빤히 바라보며 초밥을 입에 넣었다.
“아기를 위해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것 아니었습니까? 좋은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 악의. 악, 으이…….”
“아, 악의입니까. 난 또 갑자기 아기라길래 뭔 소린가 했습니다. 발음에 주의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한국인이야, 사카시타. 네가 아니라…….”
“따지지 않는 겁니다. 자꾸 그러면 저도 아기를 품는 수가 있습니다.”
“……악의를 품는다는 거지? 발음 잘못한 거지?”
“응애.”
“…….”
상호는 대화를 포기하고 초밥을 입에 넣었다.
이츠키를 위해 온 회전초밥집. 식탁에는 색색의 접시가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2천 원짜리 노란색, 4천 원짜리 파란색, 8천 원짜리 빨간색 등.
‘양이 쥐꼬리만하네…….’
그는 배를 때우기 위해 계란초밥을 우물거리다가 이츠키를 바라보았다.
이츠키는 그를 바라보며 방금 시킨 회를 오물거리고 있었다.
“드시겠습니까?”
“아니, 그냥……. 근데 그거 뭐야?”
“대뱃살입니다.”
“뭐? 아니, 언제 시킨…….”
상호는 당황해서 가격표를 살피다가, 이미 나온 것을 물릴 수가 없어서 한숨을 푹 쉬고 젓가락을 들었다.
“나도 좀 먹자. 그런데 사카시타.”
“네.”
“주술 좀 가르쳐줄 수 있어?”
그 말에 이츠키가 고개를 살짝 기웃했다.
“주술을 배운다고 해서 저 같은 눈을 가질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아니, 알아. 다른 이유야. 그냥 마음을 좀 단련할까, 싶어서…….”
정확한 이유는 심상에서의 단련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였지만, 이츠키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들 터였다. 그래서 그는 적당히 얼버무렸다.
“그냥 이론만 조금 알려줘도 괜찮아. 내가 당장 주술로 뭔가를 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흐음.”
이츠키는 물을 한 모금 마시더니, 상호를 빤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주술의 기본이 뭔지 아십니까?”
“잘 몰라.”
“주술은…….”
접시 하나가 식탁 한가운데에 놓았다.
“무언가를 움직이기 위해 물을 흘려보내는 것과 같습니다.”
접시에는 밥풀이 붙어 있었다. 이츠키는 접시를 비스듬히 기울이고 그 밥풀 위에 물을 부었다.
밥풀은 곧 물에 씻겨 내려갔다.
“어디로 흐르는가, 유향. 얼마나 많이 흐르는가, 유량. 얼마나 빨리 흐르는가, 유속. 이 향과 양과 속이 바로 주술을 이해하는 근간이 됩니다.”
“으음…….”
머리를 긁적이는 상호에게 이츠키가 물었다.
“밥풀을 떼어내려면 물을 밥풀 위로 흘려보내야 합니다. 맞습니까?”
“으응.”
“방향이 틀어지면 헛되이 흐를 뿐입니다. 이처럼 주술을 쓸 때는 목적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또, 물을 너무 적게 흘리면 밥풀이 떨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맞습니까?”
“그렇겠지.”
“바치는 게 적으면 이루는 힘도 약해집니다. 주술을 쓸 때는 무언가를 반드시 바쳐야만 합니다.”
이츠키는 검지로 물컵을 톡톡 두드렸다.
“또, 제가 물을 너무 살살 흘렸다면 그 때문에도 밥풀이 떨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맞습니까?”
“그치.”
“바라는 힘이 약하면 많은 것을 바쳐도 온전히 힘을 내지 못합니다.”
상호는 혜소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정확히는, 혜소가 전해준 영주의 말.
‘바라는 것이 주술이랬어요.’
그는 물었다.
“바라는 힘만 강하면 조금만 바쳐도 큰 힘을 낼 수 있어?”
“그건…….”
이츠키는 대답을 머뭇거렸다.
“거대한 쇳덩이에 물방울을 아무리 세게 쏜다 한들…… 쇳덩이를 뚫을지는 몰라도 움직이지는 못할 겁니다. 또 설령 그게 가능한 일이라 해도…… 만약 실패한다면, 그 바친 것들이 의미도 없이 사라지는 셈입니다. 그래서 주술은 단 한 번에 향과 양과 속을 정확히 계산해서 이뤄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 계산은 어떻게 하는 거야?”
밥알이 접시 위로 굴러 올라갔다.
“밥알을 움직이는 데에는 큰 힘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응.”
“그래서 이 정도만 바쳐도 충분합니다.”
이츠키는 왼손을 살짝 들어 올렸다. 곱고 하얀 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나머지는 뻗어 인을 맺고 있었다.
“약간의 수고를 바쳐서 원하는 바를 이루는 것입니다. 다만 그 계산은 사람마다 달라서, 거동이 불편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바라는 마음이 충분치 않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세상의 기준과 개인의 기준이 항상 일치하진 않잖습니까. 나는 이만큼이면 될 것 같은데, 세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일이 허다합니다.”
“으응.”
“주술이란 건 세상과 약속을 하고 거래를 하는 것인데, 세상은 인간에게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으니…… 결국은 경험으로 자신만의 답을 찾는 수밖에 없습니다.”
“으음…….”
상호는 침음하며 이츠키의 인을 슬쩍 따라 해 보았다.
“그럼…… 주술을 쓰는 거 자체는 어떻게 하는 거야? 바란다고 해서 아무나 쓸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아무나 쓸 수 있습니다. 깨닫지 못한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어떻게 깨달아? 사카시타는 처음에 어떻게 했었어?”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응.”
“눈 감아 보는 겁니다.”
그는 그 말대로 했다.
“눈을 감고…… 내면에 집중하는 겁니다.”
이츠키의 목소리는 최면술사처럼 낮고 부드러웠다.
“향과 양과 속 중에 향과 속, 두 가지가 내면에서 옵니다. 스스로가 무엇을 바라는지, 얼마나 바라는지를 알지 못하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 쓸데없이 많은 물을 버리게 됩니다.”
이츠키의 손이 상호의 눈썹을 스쳤다. 상호는 고개를 살짝 뒤로 뺐다.
그러자 이츠키가 나직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내면에만 집중하는 겁니다. 바깥의 감각은 전부 무시하고.”
“……응.”
“집중이 안 되면 손을 무릎에 붙이고, 식탁에 배를 딱 붙여 앉는 것이 좋습니다.”
그는 그 말대로 했다.
“이제 생각하는 겁니다. 자기가 뭘 원하는지…….”
그는 그 말대로 했다.
원하는 것. 내면의 악마를 죽이는 것.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런 것보다는 소박하더라도 확실하게 주술을 써 보고 싶었다.
그래서, 밥알을 들어 올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하셨습니까?”
“응.”
쪽
“이루어졌습니다.”
‘?’
상호는 어안이 벙벙해서 눈을 끔뻑였다.
코앞에서 이츠키가 손끝으로 입술을 가린 채 물러서고 있었다.
“주술에 소질이 있으십니다.”
“아니, 사카시타, 장난치지 마…….”
“다만 향이 아쉬웠습니다. 바라는 것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다음엔 입술이 아니라 혀를 떠올리면서 주술에 집중하시는 겁니다.”
“그건 네가 바라는 거잖아…….”
“그럼 이번엔 제 주술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이츠키가 상호의 뒤통수를 잡고 확 끌어당겨 입술 박치기를 시도했다. 주술도 뭣도 아닌 그냥 완력으로.
상호는 황급히 이츠키의 입술을 손으로 밀어냈다.
“밖에서 이러지 마……!”
“안에서는 괜찮습니까?”
“안에서도 하지 마……. 애들이 보면 어떡하려고 그러냐…….”
“지금 주술로 제 입술을 가져가놓고 절 탓하시는 겁니까?”
“내가 안 했다고!”
“저도 안 했습니다.”
이츠키가 혀를 쏙 내밀었다.
“제가 주술사입니다. 선생님이 아니라. 방금 일은 선생님이 주술을 쓴 게 맞습니다.”
“……주술사가 아니라 강도겠지.”
입술 강도다, 입술 강도.
어쨌든 이론은 잘 배웠다. 상호는 한숨을 쉬고 마지막 접시를 비웠다.
“가자, 사카시타. 지금 돌아가면 딱 종례할 시간이네.”
“아, 온 김에 뽕을 뽑아야 하는데……. 대뱃살 하나만 더 안되겠습니까?”
“……빨리 가자.”
“잠시만…….”
이츠키가 재빠르게 인을 맺자 상호의 핸드폰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따르르릉
“중요한 전화니까 받고 오시는 겁니다.”
“…….”
꺼내서 확인해 보니, 발신인이 효은.
주술을 이런 데에 쓸 줄이야. 상호는 몸을 돌려 문가를 향해 터덜터덜 걸어갔다.
“……먹고 있어.”
“네.”
이츠키는 태연하게 회전초밥에서 다시 접시를 집어 들었다.
* * *
그날 저녁.
상호는 홀로 본관 옥상에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향과 양과 속…….’
주술의 이론은 이제 알겠다.
그러나 실제로 주술을 어떻게 쓰는지, 또 그것이 심상에서 도움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
그는 운기를 준비하며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향, 양, 속…….’
내면에서 결정되는 것은 향과 속.
원하는 것은, 내면의 악마를 죽이는 것. 나아가 악마가 깃든 모든 이들을 구하는 것.
그것을 얼마나 원하는지는 예경을 향한 마음이 증명한다.
거기에 바칠 것은.
‘……이미 오래전에 바쳤어.’
사람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으니. 그 이상은 줄 게 없다.
더 가져가고 싶다면 배라도 째라. 상호는 마음속으로 엿을 날리며 천천히 심상에 빠져들었다.
온통 검은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화르륵……
그러나 이번에는 그 혼자가 아니었다.
“아하…….”
상호는 무릎을 짚고 일어났다.
“네가 방해하고 있었구만.”
검푸른 불꽃의 거인.
전에 만났을 때보다 꽤나 덩치가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아직도 원망하는 거냐?”
상호는 뒷짐을 지고 거인을 올려다보았다.
옴짝달싹도 못 하던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몸이 자유로웠다.
“그래, 뭐. 많이 당하긴 했지. 충분히 이해해. 마음대로 되는 것 하나 없었고, 지금도 내 일을 해낼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지.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다곤 해도…… 그 사람들이 나만큼 힘든 길을 걷지는 않았지. 그렇지만…….”
그의 손에 강검이 나타나 거인을 겨눴다.
“너도 세희가 있을 땐 쪽팔려서 안 나오는 거잖아?”
그동안 주구장창 운기조식을 해왔지만, 이놈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었다. 항상 세희와 함께였기 때문에.
“너도 알고 있는 거지? 부끄럽다는 거 말이야. 제자들을 위해선 뭐든 할 수 있지만, 제자들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서는…… X같아서 아무것도 해주고 싶지 않다. 이 모순이 너도 느껴지지?”
거인에게서 낮은 울림이 흘러나왔다.
쿠르르르……
“받아들여.”
상호는 입맛을 다셨다.
“X같으면 어쩔래. 애들한테 망한 세상 물려줄 거야? 악마가 사람들 사이를 맘대로 돌아다니고, 사람이 악마를 흉내내서 서로 죽이고 다니는 세상을? 안 되지. 절대 안 돼. 내가 용납 못 해.”
초혼강기 속에서 하늘빛이 일렁였다.
“아이들만 지킨다고 장땡이 아니야. 아이들의 세상을 지키는 거야. 한가롭게 꽃구경을 다니고, 돈까스네 랍스터네 하는 것도 마음껏 먹을 수 있고, 집에서 엄마한테 요리도 배우고, 생존과는 관계없는 운동을 재미로 하고, 눈사람도 부서질 걱정 없이 마음껏 만들어서 늘어놓는 세상…….”
그는 강검을 힘주어 움켜쥐었다.
“설령 그 세상을 나는 못 누리게 되더라도.”
콰아아아……
거인이 울부짖었다. 바로 그것이 문제라는 듯.
하지만 상호는 피식 웃을 뿐이었다.
“이게 옳아.”
망념이 아니다. 아집도 아니다. 눈앞의 거인은 그의 또 다른 본심.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분노와 공포의 그림자였다.
“내 은인들은 모두 이 길로 갔다.”
상호는 검을 들지 않은 다른 손을 들어 올렸다.
“나도 이 길로 갈 거야. 선택해. 같이 가든지, 사라지든지. 난 네가 따라오든 말든 상관없어. 아무리 잡아끌어도 뒤돌지 않을 거니까. 자…….”
펼쳐 내민 손, 검을 겨눈 손.
“결정해.”
상호의 손이 까딱였다.
거인이 상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검푸른 불꽃을 줄기줄기 내뿜고, 천지가 뒤흔들리는 괴성을 지르며.
상호는 강검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래.”
하늘빛 한 줄기가 거인의 몸을 가르고.
푸화아악……
거인은 형체 없는 불꽃이 되어 무너져 내렸다.
“그래야 내 본성답지.”
상호는 사방으로 흩어지는 불꽃을 바라보며 검을 늘어뜨렸다.
이윽고 불꽃이 사그라지고 나타난 풍경은, 끝을 모르게 펼쳐진 대지와 가없는 하늘.
산도 없고, 구름도 없는, 가장 순수한 세상의 모습.
‘이게 원래 모습인가.’
드디어 열렸다. 상호는 강검을 떨어뜨리고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어느새 손에 잔이 잡혀 있었다.
맑게 찰랑이는 물과 함께.
‘쉽군.’
그는 잔을 쭉 들이켜고 아무렇게나 내던진 뒤, 무작정 앞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예경과 악마를 찾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