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여고의 남선생-384화 (384/501)

<384화>

384. 뒤섞인 영혼

“상호 씨.”

설미가 파티션 옆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아직도 많이 남았네.”

“……예에.”

상호는 책상 구석에 산더미처럼 쌓인 초콜릿을 흘끗했다.

받은 시기는 이틀 전 화이트데이.

준 사람은 그의 반 3학년들과 신입 교사들, 그리고 다른 반의 이름 모를 학생들.

그중에 2학년들의 것은 없었다.

‘오해를 단단히 샀나 보군…….’

그는 초콜릿을 하나 집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교장실에서의 사건, 아니 사고 이후로 2학년들은 그를 조금씩 피하며 거리를 두었다. 조례 때 봐도 인사하고 끝. 수업할 때도 조언만 듣고 끝. 복도에서 마주칠 때도, 급식을 먹을 때도, 종례를 할 때까지도.

아마 교장이자 누군가의 조모인 유부녀를 덮치려 했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상호의 시선이 초콜릿 무더기를 향했다.

‘이 초콜릿을 다 먹는 게 빠를까, 오해가 풀리는 게 빠를까…….’

당뇨에 걸리는 게 더 빠를 것 같기도 하다. 그는 초콜릿을 열심히 씹으며 꾸역꾸역 뱃속으로 집어넣었다. 받은 물건을 누구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걸 언제 다 먹냐…….’

쓰디쓴 입맛이 초콜릿의 달콤함마저 잊게 했다.

* * *

그 많던 초콜릿도 다 먹어 바닥을 드러낼 무렵.

퇴근해서 숙소로 돌아오니 세희가 소파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아.”

현관에서 들어오는 그를 발견한 세희가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오셨어요.”

“응. 태화는? 웬일로 얘가 없냐.”

“언제 또 산에 끌려갈지 모른다면서 디저트 카페 갔어요.”

“그렇게 먹고 또 다이어트한다고 밥 안 먹겠지…….”

상호는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걸치고 세희를 돌아보았다.

“밥 먹었어?”

“배 안 고파요.”

“그럼 운기조식 하고 잘까?”

“네.”

세희가 이불을 쓱 밀어 정리하고 그 위에 가부좌를 틀었다.

요사이에는 다행히 별 사건이 없어 교육에 온전히 집중하는 중이었다. 학교에선 대련, 방과 후엔 운기조식.

다만 이 운기조식은 내공을 늘리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단순히 축기가 목적이었다면 또 애들이랑 아르게스 쪽에 던져놓고 시켰을 테니.

그에게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시작하자.”

상호는 세희의 앞에 앉아 눈을 감았다.

운기를 시작하자 금방 심상 속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눈을 감아도 보이는 시야,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느껴지는 근육의 움직임.

진짜가 아니지만 진짜인 두 번째 감각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캄캄하네.’

그는 심상 속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암흑. 예경을 만나던 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

곧 뒤이어 나타난 세희가 그의 곁에 다가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늘도 해요?”

“응.”

상호는 바닥에 앉아 손을 살짝 들어올렸다. 세희도 그 옆에 무릎을 꿇고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상호의 손에 희미한 연기가 잡혔다가 사라졌다.

“잘 안 되네.”

“뭐였어요?”

“찻잔.”

세희의 손에도 희끄무레한 형체가 스쳤다.

“뭐였어?”

“이불이요.”

“졸려?”

“아뇨, 같이 누우려고.”

“하하…….”

상호는 계속 무언가를 만들어내려 노력했다.

심상을 다루는 힘. 영혼의 힘. 그가 심상을 찾아올 때마다 예경이 보여줬던 그 힘을 얻으려는 것이었다.

‘누나는 어떻게 한 건지…….’

예경을 만날 때면 항상 공간이 있었다. 그의 집, 그의 방, 그리고 세희의 방.

그의 최종적인 목표가 바로 이 심상에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다. 만약 이 어둡고 공허한 심상을 한정된 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면, 예경을 만날 수도 있고 악마를 잡기도 쉬워질 테니.

그는 예경을 돕겠단 일념으로 집중했지만, 손에는 희미한 그림자만이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질 뿐이었다.

‘죽은 사람은 힘이 더 강한가?’

상호는 아주 오랫동안 고민하고, 뭔가를 만들어 보려고 노력하다가, 이내 한숨을 푹 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이만 하자.”

“저는 조금 더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시간이 늦었어. 내일 학교 가야지.”

한 시간 정도 지난 것 같지만 바깥에서는 서너 시간, 많으면 여섯 시간까지 걸렸을 터였다. 퇴근이 6시였으니 지금은 최대 12시.

그는 세희의 어깨를 두드렸다.

“일어나자.”

“네.”

둘은 눈을 감고 함께 심상을 빠져나왔다.

* * *

그날부터 상호와 세희는 학교가 끝나면 꼭 상호의 방에서 함께 운기조식을 했다. 저녁 먹을 시간부터 잠에 들 시간까지.

열흘이 넘는 시간 동안 수련을 하다 보니 나름대로 감이 잡혀서, 이제는 작은 종이컵 정도는 흐릿하게나마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걸로 뭘 할 수는 없었지만.

상호는 종이컵을 허공에 흩어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쯤 하고 일어나자.”

“네.”

둘은 심상에서 깨어났다.

둘이 운기조식을 하는 날에는 아이들이 방에 오지 않았다. 둘이 집중하는 모습을 보고는 방해하지 않으려고 그냥 돌아간 모양이었다.

상호는 그런 아이들이 고마웠지만, 한편으로는 요즘 아이들이 세희를 질투하는 것 같기도 해서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았다.

그래도 필요한 일이니.

그는 시계를 보아 통금 시간이 지난 것을 확인하고 세희에게 말했다.

“얼른 자자. 먼저 씻어.”

“네.”

세희가 욕실로 걸어갔다.

상호는 욕실에서 흘러나오는 물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TV를 보았다. 운기조식을 막 끝낸 참이라 몸은 개운했지만, 정신은 계속 깨어 있던 차라 빨리 잠에 들고 싶었다.

그러고 보면 요즘은 잠에 들 때 자꾸 꿈에 세희가 나왔다. 예전에도 예경의 인도를 받아 서로의 꿈을 들락거리기는 했지만, 요즘은 찾아오는 횟수가 그때보다 훨씬 잦았다. 예경이 없는데도.

아마 운기조식을 끝내자마자 바로 잠에 들다 보니 영혼이 더 쉽게 섞이는 모양이었다.

‘오늘도 나오려나…….’

꿈에서 만나면 뭘 하고 놀까. 할 이야기도 이젠 없는데.

상호는 눈을 끔뻑거리며 TV를 보다가, 세희가 욕실에서 나오자 씻으러 들어갈 준비를 했다.

그렇게 씻고 나온 뒤에는, 이미 이불 속에 들어간 세희의 옆에 누워, 품으로 다가와 누운 세희의 머리 아래에 팔을 받치고.

눈을 감아 잠을 청했다.

* * *

“……으음.”

상호는 침음하며 눈을 떴다.

상당히 난해한 꿈이었다. 세희를 만나서 함께 들판에 누워 토닥토닥 가볍게 몸장난을 치는데, 갑자기 달려온 누군가가 칼로 둘을 썰어 상반신과 하반신을 바꾸어 붙이는 꿈이라니.

도저히 해몽이 되질 않았다

‘꿈은 반대라더니만. 그럼 내 상체가 세희 하체랑 이어지는 게 아니라 내 하체가 세희 상체랑 이어지는…… 아니 뭔 소리야.’

그는 한숨을 쉬고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어째 몸의 감각이 이상했다. 몸이 지나치게 가벼웠다. 팔다리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하늘거리고, 또 한편으로는 바람이 든 풍선처럼 둥실거렸다.

게다가 다리 사이는 뭔가 허전하고. 또 가슴 쪽에서는 뭔가가 찰랑이고.

등에서는 털 같은 무언가가 피부를 간질거렸다.

‘뭐지……?’

은호가 됐을 때와는 느낌이 다른데. 상호는 고개를 기웃하며 몸을 내려다보았다가 무심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으꺄아아악!”

세희의 목소리로.

난데없이 울려 퍼진 비명소리에 세희도 화들짝 놀라 상호의 몸으로 눈을 떴다.

“……어?”

그리곤 당황하며 자신의 근육질 몸을 내려다보았다.

“뭐, 뭐예요? 선생님……?”

굵직한 남자 목소리.

몸 바깥에서 들리는 자신의 목소리. 꼭 녹음기로 다시 듣는 것처럼 어색했다.

상호는 지금 들어와 있는 세희의 몸을 얼이 빠진 채로 멍하니 더듬거리다가, 무언가 말랑한 것을 느끼고는 기겁하며 손을 거뒀다.

“세희야……?”

“선생님……?”

서로의 목소리로, 서로가 서로를 불렀다.

이게 무슨 괴상망측한 일인가. 경황이 없었지만 그래도 하나는 알았다.

지금이 8시, 당장 출근해야 한다는 것.

“세……세희야.”

“네…….”

“일단 학교 가자…….”

“네…….”

둘은 허둥지둥 서로의 옷을 찾아 입었다.

* * *

“세, 세희야…….”

당황해하는 소녀의 목소리.

“밑이 허전해…….”

“치마는 원래 그래요.”

굵직한 사내 목소리.

“여고니까 괜찮아요. 보인다고 안 죽어요.”

“조금 더 긴 건 없을까……?”

“저희 반에서 초란이 빼고 제가 가장 길어요.”

“그래……? 그래도…… 너무 허전해…….”

“속바지는 입으셨어요?”

상호의 몸에 들어간 세희, 상호-세희가 세희-상호의 치마를 슬쩍 들췄다.

세희-상호는 기겁하며 황급히 치마를 내렸다.

“세희야!”

“뭐야, 이거. 속바지가 아닌데요?”

“내 드로즈야……. 여자 거 입기는 좀 그래서…….”

“잘하셨어요. 근데 그거 입었으면 괜찮지 않아요?”

“조금 헐렁해……. 팬티만 입고 돌아다니는 것 같고…….”

제일 조이는 것을 입었는데도 세희와 그의 체구 차이 때문에 몸에 딱 달라붙질 못했다.

상호는 조마조마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방금 세희가 그의 치마를 들춘 걸 누가 보지는 않았을까. 만약 그랬다면 그 누군가는 상호가 제자를 성추행했다고 착각할 터였다.

실제로는 그가 제자에게 성추행을 당한 거지만.

“세희야, 치마 함부로 들추지 마…….”

“뭐 어때요. 제 몸인데. 그리고 여고라서 괜찮아요. 남자들도 지퍼 내리고 튀잖아요.”

“선생님이 제자한테 그러면 깜빵행이야…….”

상호는 세희의 고운 입술에서 가느다란 한숨을 폭 쏟아냈다.

“잘 할 수 있겠어? 선생님 흉내…….”

“네. 저는 다 알죠.”

세희가 상호의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 일은 미진 선생님한테 다 떠넘기고, 뒷짐 지고 애들 대련하는 것만 지켜보면 되잖아요. 아무도 눈치 못 챌 거예요.”

“정확하네. 슬플 정도로…….”

겸연쩍어진 상호는 얇게 헛기침을 했다.

“다혜는 대련 시키지 마. 위험하니까. 선생님이 같이 놀아주고 있을게.”

“네.”

“호칭은 다 외웠지?”

“네. 설미 선생님은 둘만 있을 땐 누나. 미진 선생님은 미진 씨. 교장선생님은 교장선생님…….”

“그렇지.”

“선생님도요?”

“응. 사카시타가 아니라 이츠키.”

세희는 똘똘하니까 알아서 잘 할 것이다. 문제는 상호 자신.

그나마 다행인 건, 세희에겐 가족이 없고 친구뿐이라는 것. 실수 좀 해도 큰일이 나지는 않을 터였다.

‘오늘만은 우리한테 가족이 없다는 게 다행이네…….’

상호는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세희의 등을 토닥였다. 손이 좀 높게 올라가야 한다는 게 다소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너도 걱정하지 마. 나도 너희 어떻게 지내는지는 다 알고 있으니까.”

“다 알지는 못하실걸요.”

세희가 쓰게 웃었다. 상호가 평소에 그러는 것처럼.

닮은 둘이니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상호는 약간의 자신감을 얻은 채로 본관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강상희와 천세호는 그렇게 나란히 걸었다.

* * *

“왔냐?”

태화가 문을 열고 들어온 상희를 향해 샐쭉하게 눈을 흘겼다.

“어제도 쌤이랑 운기조식 하고 있더라?”

“……으응.”

상희는 은근슬쩍 시선을 피하며 대충 흘려 넘겼다. 자신이 상호라는 걸 들킬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사내가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쪽팔린 일이라서.

그런데 그게 평소의 세희와는 너무 달랐던 모양이었다.

“뭐야.”

태화가 눈썹을 치켰다.

“너 무슨 일 있어? 왤케 힘이 없냐?”

“그냥…….”

상희는 계속 대충대충 얼버무렸다.

“졸려서 그래.”

“닌 졸리면 짜증내잖아. 나한테만.”

“그랬나? 몰라……. 그냥 졸려.”

“이 새끼 왜 이러지? 오늘 이상한데……. 너 그날 얼마 안 지났잖아. 잠깐만, 야.”

태화가 휘둥그렇게 뜬 눈을 끔뻑이며 상희의 얼굴을 양손으로 붙잡았다.

“너 X발 쌤이랑 했냐?”

“……아니야!”

“아니야? 그럼 애가 왜 맛이 갔지?”

“그러게 말입니다.”

곁에서 듣던 이츠키도 상희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끄응.’

영혼을 볼 수 있는 아이. 상희는 이츠키라면 알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이츠키가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조금…… 귀여워진 것 같습니다.”

“므아앙.”

“그러게.”

은율이 검지로 상희의 볼을 꾹꾹 눌렀다.

“평소보다 훨씬 더 귀여워진 것 같은데…….”

“이것 보는 겁니다. 눈을 마주치질 못합니다.”

“얘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귀척을 하지……?”

“아으아으.”

상희는 주변에 몰려든 이츠키와 은율과 태화와 다혜를 피해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진땀을 흘렸다.

그 모습을 본 지윤이 한마디 했다.

“아를 와 괴롭히노. 피곤한가 본디 걍 냅두라.”

“아니 애가 맛이 갔다니까? 봐봐.”

태화가 상희의 볼을 쭉 잡아당겼다.

“내가 이러면 패드립이 자동으로 튀어나와야 하는데 안 한다니까? 얘 이상해! 자판기 고장났어! 어이, 주인장!”

상희는 볼을 붙잡힌 채로 이리저리 흔들리며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세희야……. 너 학교생활을 대체 어떻게 해온…….’

“사람이 가끔 저기압일 수도 있제. 니는 생리할 때 제일 X랄 염병하는 시끼가 아가 잠깐 맛갔다고 그래 씨부리노.”

“아니! 8백 며칠 동안 이런 적이 없었다니까? 이거는 분명히 쌤이랑 뭘 한 거라고! 너 쌤이랑 밤에 뭐했어. 빨리 불어 이뇬아!”

“안 했어…….”

그때 다행히도 교실 앞문이 열리며 세호가 들어왔다.

“선생님 왔다. 다들 앉아, 앉아.”

출석부로 교탁을 툭툭 두드리는 모습이 제법 상호와 닮아 있었다.

“별일 없었지? 뭐야, 이태화. 빨리 앉아.”

“쌤! 얘 좀 봐봐! 얘 이상해! 쌤 얘랑 뭐 했어 어제?”

“별거 안했는데. 그냥 같이 잤어.”

“별거잖아! 아니, 동거잖아! 어라, 별거가 아닌 게 맞네? 어쨌든! 같이 자면서 뭐했어! 똑바로 말해!”

태화의 생떼에 세호는 제법 능숙하게 대처했다. 굳이 상호를 흉내 내지 않아도 평소부터 태화를 상대해 왔기에 딱히 어려울 것이 없었다.

“응, 니가 생각하는 거 다 했고, 오늘도 할 거야. 내일도 할 거고. 근데 너한텐 안 해줄 거야. 평생.”

“아아아아악! 왜 그래! 왜! 쌤 3분카레잖아! 하루에 3분만큼도 투자 못해?! 잠깐만, 야 천세희. 너 쌤이 3분카레라서 충격받아가지고 맛 간 거 아냐?”

상희는 그 말에 자기도 모르게 욱해서, 지금 자신이 누구 몸에 들어와 있는지도 잊어버린 채 본심을 말해 버렸다.

“야, 쌤은 한번 하면 두세 시간은 기본…… 흡!”

그러다가 자신의 입에서 세희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을 깨닫고는 기겁하며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말은 이미 튀어나와 버렸고.

“……뭐?”

아이들이 멍한 눈으로 상희를 돌아보았다.

“했어?”

“했다고?”

“멍?”

상희는 백짓장처럼 창백해진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어찌나 놀랐는지 손까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선생이라서 입에 붙어버린 3인칭 화법이 이런 데서 문제가 될 줄이야.

“아니, 아니. 운기조식…… 말하는 줄 알았어.”

“아…….”

“그래……?”

하지만 아이들의 눈빛에는 어느새 희미한 적의가 깃들어 있었다.

“그런가 보네…….”

“운기조식이라는디 머……. 믿어 줘야제.”

“피곤하다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므아…….”

단단히 오해를 산 모양이었다.

이러다간 자신의 실수로 세희가 따돌림을 당할지도 모른다. 상희는 황망한 마음에 발을 동동 구르며 필사적으로 손사래를 쳤다.

“아니야, 아니야……. 진짜 아니야, 나 진짜…… 진짜 운기조식 말하는 줄 알았어…….”

그 모습을 본 이츠키의 코에서 갑자기 코피가 주륵 흘러내렸다.

“이츠키?! 코피……!”

“아 죄송합니다. X나게 귀여워서 그만…….”

“응……?”

당황하는 상희의 볼을 태화와 다혜가 잡아당겼다.

“아니 X바 얘가 왜 이렇게 귀여운 척을 하지? 너 진짜 뭐 잘못 먹은 거 아냐?”

“우아으앙.”

상희는 진땀을 흘리며 교실 앞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상희 못지않게 당황해서 돌처럼 굳어버린 세호가 서 있었다.

세호는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헛기침을 했다.

“선…… 아니, 세희 놀리지 말고. 수업하자, 수업. 옷 갈아입고 잘 준비해서 나와.”

“네.”

아이들이 한목소리로 대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 보면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상희는 세호가 나가자마자 옷을 벗기 시작한 아이들을 피해 문가로 달려갔다.

뒤에서 나빛이 물었다.

“세희 어디 가?”

“화…… 화장실.”

아이들과 같이 옷을 갈아입을 순 없으니, 잠시 화장실로 피신했다가 아이들이 옷을 다 갈아입고 나가면 그때 갈아입으려는 생각이었다.

복도로 나가 보니 세호가 앞서서 걸어가고 있었다. 이따금씩 마주치는 아이들에게 살짝 웃어 보이며.

‘세희는 내 흉내 잘 내네…….’

정작 자신은 세희 흉내를 못 내는데 말이다. 상희는 자신이 세희에 대해 잘 몰랐던 것 같아서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쨌든 세호를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조례도 능숙하게 잘 마쳤고.

‘이따가 칭찬해 줘야겠……?’

상희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세호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흠칫했다.

세호가 자연스럽고 당당한 걸음으로 태연하게 여자화장실에 들어서고 있었다.

“……우와아아아악!”

아마 세희도 맛이 간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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