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3화>
383. 선생님 지금 뭐 하시는
“그거 들었어?”
교무실에 속닥이는 소리가 퍼졌다.
“강 선생님 다람쥐랑 얘기한대.”
“다람쥐? 웬 다람쥐?”
“미진 선생님이 봤는데, 주차장에서 다람쥐랑 이야기하고 계셨대…….”
“어머, 진짜?”
“강 선생님 의외로 귀여운 면이 있나봐~.”
재잘거리는 이들의 정체는 신입 교사들.
올해는 유난히 신입생들이 많았다. 아마 효은이 홍보대사를 뛰었던 일과 상호의 사건 때문일 터였다. 태화의 요튜브도 은근히 한몫한 것 같기도 했고.
그래서 혁이 반의 개수를 늘렸고, 재작년의 상호처럼 1학년들만으로 편성된 반이 여럿 생겼다. 그래서 그 반들을 맡을 교사들도 여럿이 필요했다. 그렇게 임용된 것이 다섯 명. 바로 담임을 맡는 신입도 있고 부담임으로 들어가는 신입도 있었다.
여러모로 작년과는 달랐다.
‘요즘 미진 씨 기분이 나빠 보이던데…….’
상호는 자리에 앉은 채로 입맛을 다셨다.
미진은 더 이상 막내가 아니다. 순서로도 실력으로도 미진은 담임이 될 이유가 충분히 많았다. 아니, 정확히는 미진은 이미 담임이 되었어야만 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어떤 이유로 미진은 상호의 반에 부담임으로 남게 되었다.
그게 미진에겐 아주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선배.”
그래서일까, 뒤에서 상호를 부르는 미진의 호칭은 이전보다 많이 짧아져 있었다.
상호가 뒤를 돌아보자 미진이 그의 양복을 가리켰다.
“주머니에 그건 뭐예요?”
“다람쥐요.”
“이렇게 질문받으려고 들고 다니는 거죠?”
“네?”
“그거 핑계로 여자 꼬시려고 들고 다니는 거잖아요.”
“……아니요. 애들이 키우자고 해서.”
“뻥치지 마세요. 아침에 주차장에서 줍는 거 다 봤어요.”
“진짜거든요…….”
마음 넓은 내가 이해해 줘야지, 상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파티션 너머를 흘끔했다.
“새로 온 선생님들이랑은 잘 지내요?”
그게 역린이었던 모양이었다.
미진은 상호를 팩 째려보더니 말없이 입술을 잘근거렸다. 그 모습이 꼭 ‘쟤들은 담임인데 왜 나는 아직도 네 뒤치다꺼리나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라는 듯했다.
상호는 그저 억울할 따름이었다.
‘아니 내가 뭐 못 물을 걸 물었나…….’
그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리는 상호의 귀에 신입 교사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 봐. 오늘도 둘이 꼭 붙어 있네.”
“그거 들었어? 미진 선생님이 부담임으로 남은 이유……. 사실은 미진 선생님이 교장선생님한테 말씀드린 거래. 계속 강 선생님이랑 일하고 싶다고…….”
“응? 나는 강 선생님이 남아 달라고 부탁했다고 들었는데…….”
“둘 다인 거 아냐?”
“그런데 두 분 다 애인이 따로 있다던데?”
“어머, 어머…….”
유언비어가 날개를 달고 퍼져나가고 있었다.
당연히 둘 다 사실이 아니었다. 상호가 남아 달라고 한 적도, 미진이 남겠다고 한 적도 없다. 아마 해련이 맘대로 결정한 일일 터.
물론 상호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성격은 좀 안 맞지만 똑 부러지고 일 잘하는 사람이 도와준다면야. 다만 직장에서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미진에게는 전혀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조례 시간이 되자 상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갈게요. 이따 봐요.”
“예.”
미진은 상호가 일어난 자리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상호가 문가를 향해 멀어지자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상호는 그 모습을 흘끗하고 교무실 문을 나섰다. 양복 주머니를 갉으려 드는 다람을 손가락으로 톡톡 막으며.
닫히는 문 사이로 신입 교사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근데 그거 알아? 강 선생님 나보다 어려.”
“어머, 언니보다? 그럼 나랑 동갑이네? 나보다 세 살은 많은 줄 알았는데…….”
“동안인 줄 알았더니 분위기가 늙은 거였구나. 근데 그럼 결혼도 딱히 안 급하겠네?”
“그치…….”
“몬스터는 맨손으로도 때려잡지만 다람쥐한텐 말을 거는 남자……. 밤에는 어떨까?”
“다람쥐를 좋아하는 건가?”
“다람쥐 잠옷을 사 볼까…….”
* * *
“얘들아──.”
상호는 교실로 들어서며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다람이 데려왔어.”
“우와!”
나빛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디서 찾으셨어요?”
“주차장 구석에서 고양이들이랑 싸우고 있더라.”
그 말에 단비가 고개를 퍼뜩 들었다.
“누가 이겼어요?”
“잘 싸웠는데 다람이가 졌어.”
“멍…….”
“다람이도 강해지고 싶어하는 것 같더라.”
상호는 다람을 꺼내서 단비의 책상에 놓았다.
“한번 보자. 얼마나 의지가 있는지.”
그와 아이들의 시선이 다람에게 집중되었다.
다람은 뒷발로 서서 가만히 단비를 바라볼 뿐이었다. 저번처럼 도망치려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멍…….”
단비도 책상 가장자리에 손을 얹고 고개를 낮춰, 다람과 눈높이를 맞췄다.
“멍.”
“찍.”
태화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답했어! 얘들 통하는 게 있나봐!”
“그냥 반응한 거 아니야?”
미래가 눈을 끔뻑이다가 단비를 돌아보았다.
“다시 해 봐.”
“멍.”
“찍.”
“멍멍!”
“찍찍.”
교감은 확실히 된 것 같았다. 상호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잘 가르쳐 봐. 말 잘 알아듣는 똘똘한 놈인 것 같으니까…… 응?”
주머니에서 울리는 핸드폰 벨소리.
발신인을 확인한 상호는 당황하며 교실 구석에 가서 전화를 받았다. 이 전화는 안 받을 수가 없었다.
“뭐야, 왜.”
[…….]
“급한 일이야? 나 지금 조례 중이야. 급하든 안 급하든 간에 빨리…….”
[……야.]
핸드폰 너머에서 효은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얘가 또 왜 우나. 덜컥 겁이 난 상호는 아이들을 한 번 흘끗하고는 다급히 교실 문을 나서려고 했다.
“뭐야, 우는 거야? 왜 그래. 무슨 일인데. 잠깐만 기다려, 지금 당장 갈…….”
[너 다람쥐랑 이야기해?]
‘……!’
그는 문을 열던 자세 그대로 굳어 버렸다.
[막 다람쥐 목소리가 들리고 그래? 네가 말하면 다람쥐가 대꾸해줘?]
“아니, 아니 그게…….”
[뭐가 아니야! 미진이한테 다 들었어. 너 주차장 지나가다가 갑자기 다람쥐한테 말 걸고 그랬잖아아아!]
빽 튀어나온 소리가 교실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깜짝 놀란 아이들이 숨을 멈추고 상호를 바라보았다.
상호의 등에 진땀이 흘렀다.
“아니, 야. 그거는 애가 고양이한테 맞고 있어서…….”
[애? 애? 너 다람쥐가 애야? 완전 사람 취급하고 있잖아!]
“야, 너 개 키우는 사람 못 봤어? 애 취급할 수도 있지! 말도 좀 걸 수 있는 거고……. 반려 다람쥐가 있으면 안 돼?”
[반려? 반려어? 너 다람쥐랑 결혼할 거야? 다람쥐가 너한테 같이 살자고 꼬시든?! 야, 다람쥐는 말 못해! 정신차려!]
“그걸 누가 몰라! 아오…….”
상호는 답답해서 가슴을 퍽퍽 두드렸다.
“다람쥐 내가 키우는 것도 아니야! 애들이 키워 달라고 해서 키우는 거야. 미진 씨 말만 믿지 말고 내 말도 좀 들으라고!”
[내가 왜? 다람쥐랑 대화하는 놈 말을 뭘 믿고 들어야 하는데? 너 애초에 그런 놈 아니었잖아. 야. 강상호.]
효은이 코를 훌쩍였다.
[약 받아.]
“……아니 안 미쳤다니까!”
[처방전 받아서 찍어 보내. 쓰레기통에 버리지 말고 애들 앞에서 먹어. 전화해서 확인할 거야.]
“아니 다람쥐 목소리가 들리는 게 아니라고!”
[으헝흐어헝…….]
전화 너머에서 울음소리가 멀어져 갔다.
뒤이어 혜소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어, 혜소야. 아이고, 너라도 거기 있어서 다행이다. 걔 좀 잘 달래 봐…….”
[다람쥐는 말 못 해요.]
“…….”
[저도 세 살 때까지는 동물이랑 말이 통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까 그냥 제 상상이었어요.]
“…….”
[저는 그래도 아저씨의 순수한 면을 본 거 같아서 좋아요.]
“……그래.”
졸지에 뇌가 순수한 놈 취급을 받아 버렸다. 상호는 한숨을 푹 쉬고 말을 돌렸다.
“잘 지내고는 있어……?”
[네. 저는 다 만족해요. 근데 고모는…….]
“고모는?”
[가끔 마당에서 감나무한테 말을 걸어요.]
“…….”
자기 이야기였구나.
상호가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혜소가 그의 생각을 읽은 듯 말을 이었다.
[그래도 고모는 나무가 대답 못 한다는 건 알고 있어요. 아저씨처럼 바보는 아니에요.]
“나도 바보 아니야…….”
[많이 외로워 보이니까 자주 좀 오세요. 할머니랑 집 비워 드릴게요.]
“아니…….”
[근데 둘만 있으면 뭘 하시는 거예요?]
“……몰라도 돼.”
상호는 너덜너덜해진 목소리로 간신히 말했다.
“혜소야, 아저씨 수업하러 갈게…….”
[네.]
“끊을게…….”
그렇게 통화를 끊고 뒤를 돌아보니, 아이들이 그에게 걱정 어린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선생님…….”
나빛이 울먹거렸다.
상호는 양손으로 손사래를 치며 애써 웃어 보였다.
“아냐, 아냐. 괜찮아. 너희가 일부러 다람쥐를 데려온 것도 아니고……. 이렇게 될 줄 알고 키우자고 한 것도 아니잖아. 괜찮…….”
“약 드세요……?”
“응?”
상호의 몸이 다시 굳었다.
“……아니, 안 먹어.”
“근데 왜 수녀님이 선생님한테 약 먹으라고 해요……?”
“그건 걔가 착각해서…….”
전혀 믿는 기색이 아니었다. 더욱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는 걸 보니.
“선생님…….”
“……으응.”
“이제 안 숨기셔도 돼요…….”
“뭐를……?”
“약이 필요하신 거죠……?”
지윤과 태화의 눈도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쌤예……. 전쟁 이제 끝났습니더.”
“미안해, 쌤. 난 쌤이 그런 줄도 모르고……. 이제 잘 때 방해 안 할게.”
나디아와 이츠키와 다혜도.
“마음 아파? 그래서 먹어? 수면제 같은 거?”
“수면제라면 저한테 몰래 먹여도 용서해 드리겠습니다.”
“아으아으.”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상호는 고개를 푹 숙였다.
“선생님 약 안 먹어. 마음이 아프긴 한데……. 그래도 괜찮아. 괜찮으니까 우린 수업이나 하자…….”
“네.”
아이들이 옷을 갈아입으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에휴.”
점심시간. 상호는 교장실 소파에 팔을 걸치고 푹 늘어졌다.
“학교 일은 아무리 해도 편해지질 않네요.”
“어머, 이제 3년차라고 베테랑인 척 하는 거야?”
해련이 차를 따르며 웃었다.
“오늘은 또 무슨 일로 이렇게 힘들었을까?”
“똑같죠 뭐. 애들이랑, 미진 씨랑……. 착각하고 몰아붙이고…….”
“그래도 강 선생 미진이 좋아하잖아? 그래서 일부러 강 선생 부담임으로 남겨 놨는데~.”
“그거 때문에 더 힘들어요…….”
“그럼 다른 선생이 새로 들어오는 게 나았을까? 그치만 미진이만큼 예쁜 여선생이 없던데~.”
“아니, 선생한테 외모를 왜 따져요……. 일만 잘하면 됐지. 뭐 그렇게 따져도 미진 씨가 제일 나은 건 사실이긴 한데…….”
“이러네저러네 해도 결국 예쁜 여자 좋아하네~.”
“됐어요, 애인 있는 거 뻔히 알면서…….”
상호는 혀를 차고 해련이 내민 잔을 받아들었다.
그때 어디선가 작은 소란이 들렸다. 교장실 창문 밖, 상호의 반이 있는 방향에서.
곧 창틀 위로 작은 그림자가 고개를 쏙 내밀었다.
“찍.”
다람이었다.
또 쳇바퀴 수련을 견디지 못하고 자유를 찾아 하산했나 보다. 상호는 쓴웃음을 지으며 창문을 열어 다람을 붙잡으려 했다.
그런데 해련이 다람을 보고는 흠칫하더니.
“……쥐!”
펄쩍 뛰어 상호에게 달라붙었다.
“쥐! 쥐! 꺄악!”
“다람쥐예요.”
“그러니까 쥐잖아!”
“놀란 척 하면서 껴안는 거잖아요. 다 알아요. 교장선생님이 쥐를 왜 무서워해요. 옛날에 다 봤으면서.”
“난 양갓집 규수라서 쥐 같은 거 안 보고 자랐어…….”
해련이 울먹이며 몸을 떨었다.
손녀와 조모가 꼭 닮았다. 상호는 입맛을 다시며 창문을 열었다.
“헌터면서 뭘 무서워해요. 귀엽기만 하구만.”
“열지 마! 왜 열어!”
“이거 저희 애들이 키우는 다람쥐라서…….”
그때 다람이 상호의 손을 타고 쪼르르 달려가 해련의 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하얀 양복 속으로.
해련이 기겁하며 양복 외투를 벗어던졌다.
“꺅! 꺅!”
“잠깐만 가만히 있어 봐요. 잡아 줄게요……. 내공 꺼내지 마요! 애 죽으면 저도 애들한테 죽으니까!”
“꺄아악!”
상호는 해련을 붙잡고 몸 구석구석을 손으로 훑었다. 이놈이 워낙 천방지축이라서 다치지 않게 잡기가 힘들었다.
“아니 얘가 어딨지……. 잠깐만요, 단추 몇 개만 풀게요.”
“빨리, 빨리 잡아 줘……. 꺄아악! 등! 등!”
“좀 벗겨야 될 것 같은데…….”
“꺄아아악! 흐엉헝헝…….”
그의 손에 붙잡힌 해련이 발을 동동 굴렀다. 상호는 그런 해련을 붙잡고 블라우스를 풀어헤치다가 창가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1학년들이 멍한 표정으로 교장실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단비, 미래, 가은, 그리고 하솔.
“…….”
“…….”
그런 와중에도 해련은 발버둥을 쳤다.
“꺅! 꺅! 싫어, 싫어! 으헝헝…….”
뭐가 싫다는 건지 주어를 붙여 줬으면 좋으련만.
해련이 비명을 지를수록 상호의 머릿속은 점점 하얗게 표백되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