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여고의 남선생-381화 (381/501)

<381화>

381. 신입생

일주일 만에 만난 자동차는 더 이상 자동차가 아니었다.

“…….”

낡은 도로 위에 주차해 놓고 떠났던, 지금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박살이 난, 자동차. 아니 자동차였던 것.

상호와 아이들은 고철 더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부서졌네.”

“몬스터들이 부쉈나?”

“왜……?”

“사람 냄새가 났나 봅니다.”

“어떡해요……?”

“……걸어가자.”

그들은 부서진 아스팔트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 * *

수업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

본관에서 기숙사로 가는 길에는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재잘거리고 있었다. 새학기를 맞은 지 일주일, 이젠 신입생들도 각자 마음이 맞는 친구를 찾았을 시기.

그렇게 화사한 공간에.

“……응?”

어둑한 기운이 침범하고 있었다.

기숙사로 향하던 학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 기운의 근원지를 향했다. 교문. 정확히는 교문 너머.

여덟 명의 여학생이 위압적인 패기를 내뿜으며 학교로 다가오고 있었다.

“우왓…….”

“습격이야?”

“야, 야. 눈 마주치지 말고 빨리 가자.”

교정의 학생들은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교문 밖에서 다가오는 학생들의 몰골은 절대 정상이 아니었다. 피가 묻은 옷, 마구잡이로 헝클어진 머리카락, 허리띠가 끊어져서 어깨에 껄렁하게 걸친 검.

누가 봐도 망나니들이었다.

“언니, 다른 학교에서 쳐들어오기도 해요?”

“교복은 우리 교복 같은데…….”

“아니, 쟤들은…….”

지켜보던 학생들 중 한 명이 진땀을 흘렸다.

“상호 선생님 반이야…….”

모를 수가 없었다. 1등을 밥먹듯이 하는 반이니까.

그 말에 1학년 아이들이 당황했다.

“그 잘생겼다는 선생님 반이요?”

“저 언니들은 뭐 하다 온 거예요?”

“모르지, 나도…….”

그때 본관에서 일단의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총 일곱 명. 파란색의 공룡 꼬리가 달린 아이와 강아지 귀가 달린 아이를 포함한 학생들.

“언니!”

“세희 언니! 나빛이 언니! ……어?”

교문을 향해 달려가던 미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언니들? 선생님은?”

“우리 밥 차려 주신다고 마트 가셨어.”

“멍, 수업 어땠어? 재밌었어?”

그 말에 3학년들의 얼굴이 싸늘해졌다.

“넌 우리가 뭘 겪었는지 모르는가 보구나…….”

“다음번엔 단비 너도 같이 가게 될 거야…….”

“자, 잘못했어. 뭔진 몰라도 가기 싫어, 멍…….”

쪼그라드는 단비의 옆으로 다혜가 지나쳐갔다. 다혜는 움찔하며 뒤로 물러나는 아리를 덥석 잡아 신명나게 빨기 시작했다.

그 옆에서 나빛이 이서를 끌어안았다.

“헤헤, 이서야~. 잘 있었어?”

“응.”

“나 보고 싶었어?”

“으응.”

“나도 이서 보고 싶었어, 헤헤……. 그럼 이서도 다음엔 같이 갈까?”

“……아니.”

“뭐어……?”

품에 안긴 나빛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서를 올려다보았다. 이서의 등에 진땀이 줄줄 흘렀다.

“이서는 언니가 안 보고 싶었어……?”

“아니, 그게 아니라…….”

“거짓말하면…… 지옥에 가게 돼, 이서야…….”

“아니, 미안해, 다음엔 같이 갈게…….”

“헤헤헤…….”

목적을 이룬 나빛은 다시 이서를 꼭 껴안았다.

그 옆에서는 다혜가 너도 그래야 한다는 듯 더욱 힘차게 아리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쮸우웅.”

“아, 아파……. 살려쥬어…….”

“난 씻으러 가야겠다.”

“마, 야들아. 이따 밥 같이 묵자잉.”

“멍.”

“살려달라고…….”

“쮸와아아앙.”

아이들은 둘을 버려두고 기숙사로 걸어갔다.

* * *

다음 날 아침.

상호는 침대와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뻗어 있는 아이들을 내려다보았다.

‘…….’

과자와 음료수 캔으로 난장판이 된 바닥. 꼭 한바탕 술판이라도 벌였던 것 같았다.

물론 상호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었다. 저승부대도 길고 힘든 작전을 끝내고 돌아오면 이렇게 먹고 마시곤 했었으니까.

다만 문제는.

‘왜 내 방에서…….’

한숨이 푹푹 나왔다.

오늘도 등교해야 하는 날인데. 또 이러고 있다가 서로 먼저 화장실 가겠다고 싸우는 건 아닌가. 그는 서둘러 아이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얘들아, 학교 가야지.”

“우웅…….”

“일어나서 준비해. 세수하고 밥 먹고…….”

하지만 아이들은 일어날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고개를 들었던 나빛조차도 다시 베개에 얼굴을 폭 파묻었다.

너무 피곤했던 탓일까.

상호는 진땀을 흘리며 세희의 어깨를 흔들었다.

“세희야? 세희야…….”

“조금만 더 잘게요…….”

세희가 웅얼거렸다.

“아직 시간 남아 있어요……. 괜찮아요…….”

“세수하고 밥 먹어야지……. 다른 애들도 욕실 써야 하고…….”

“좀 안 씻어도 괜찮아요…….”

“…….”

자연인이 되어버린 모양이었다.

상호는 목표를 바꿔 나빛의 어깨를 흔들었다.

“나빛아? 너도 이제 일어나야지…….”

“괜찮아요…….”

나빛이 상호의 손을 잡아 뺨 아래를 받치게 했다.

“좀 늦어도 돼요, 헤헤…….”

“…….”

“학교 늦는다고 안 죽어요……. 인생에선 별거 아니에요…….”

정말로 자연인이 되어버린 모양이었다.

다른 아이들을 깨워봐도 몸만 뒤척일 뿐. 결국 상호는 엎어져 자는 태화의 등짝을 찰싹찰싹 후렸다.

“야! 일어나. 학교 가라고!”

“우씨, 왜 나한테만 X랄이야! 나 삐져떠! 얘들 다 일어나기 전엔 안 일어날 거야!”

“빨리 준비해! 지각하면 너만 산속에 버리고 온다!”

“해봐! 해봐! 내가 먼저 늙을 것 같아, 쌤이 먼저 늙을 것 같아? 쌤 늙으면 나도 지게에 지고 가서 산속에 던져놓고 올 거야! 해봐! 빨리 해봐아아아!”

“이 짜식이…….”

검은 머리 짐승은 키우는 게 아니라더니. 길러준 은혜도 모르고 스승을 고려장시키려 한다. 상호는 태화를 번쩍 들어서 욕실로 향했다.

“세수해. 빨리 세수해.”

“변태! 어떻게 제자한테 세수하자는 소리를 할 수가 있어!”

“헛소리 하지 말고 빨리 세수하라고! 너 네 손으로 안 하면 내가 할 거야. 밥도 안 줄 거고. 밥 먹고 싶으면 빨리 네가 일어나서 씻어!”

“꺄아아아악! 쌤이랑 나랑 세수한다!”

“뭐, 뭐?!”

“쌤이랑 뭘 헌다꼬?!”

“므아앙?!”

그토록 깨워도 꿈쩍도 않던 아이들이 태화가 빽 지른 소리에 벌떡 일어나서 우르르 달려왔다.

상호는 욕실 문에 모여든 아이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세수라고, 얘들아. 세수…….”

“이상하다……. 분명 다르게 들렸는데…….”

“내는 색소라고 들었디.”

“전 생수라고 들었습니다.”

“대체 어떻게 들어야 그런…….”

잠결에 다들 잘못 들었나 보다. 그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손을 내저었다.

“너희도 학교 갈 준비해. 난 태화 좀 씻기고 밥 차려 줄게.”

“아 왜! 나 더 잘거야아아!”

“애들 다 일어났다 임마. 빨리 세수하고 밥 먹어. 야, 네 다리로 일어서라고!”

“몰라! 나 이대로 잘꺼야. 걍 이대로 나 들고 다녀!”

“야!”

그때 무언가 누르스름한 것이 상호의 발치에 스쳐 지나갔다.

‘……X바! 깜짝이야.’

그는 놀란 가슴을 추스르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가 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쥐?’

다람쥐.

등의 줄무늬가 선명하고, 꼬리가 도톰한.

“……얘들아?”

“네.”

“누가…… 다람쥐 데려왔니?”

“다람쥐요?”

“다람쥐?”

황급히 달려온 아이들이 욕실 바닥의 다람쥐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와!”

“다람쥐!”

“므아!”

다람쥐를 향해 손을 뻗는 다혜를 세희가 손등을 쳐서 막았다.

“먹는 거 아니야.”

“느아아악!”

“그래? 미안. 근데 언니는 맨날 아무거나 잡아서 먹잖아. 그러니까 언니 잘못이야. 언니가 나한테 미안해해야 돼.”

“므아앙…….”

“그렇지.”

그나저나 이 다람쥐는 누가 데려왔는가. 상호는 다람쥐를 내공으로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누가 데려온 거야?”

“몰라요.”

다들 모르는 눈치였다.

누구 옷에 달라붙어 오기라도 했나. 그와 아이들은 고개를 기웃거리며 다람쥐를 이리저리 살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에게선 필연적으로 나오는 말이.

“귀여워…….”

“아이고, 이 짜슥 겁도 안 나는갑다. 눈을 말똥~말똥하게 뜨고 있노.”

“이거 제가 기를래요…….”

“기숙사는 애완동물 금지잖아.”

한 명이 키우면 다른 사람도 키우게 된다. 상호는 고개를 저었다.

“원래 있던 곳에 놓아주자. 얘도 그걸 바랄 거야.”

“그치만 자기가 따라왔잖아요…….”

나빛이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좋아서 선택한 거니까 이제 무를 수 없어요…….”

“아니, 얘는 원래 숲에서 살던 녀석이고…….”

“제가 도토리 천개 만개 사다 주면 다람이도 좋아할 거예요…….”

“……벌써 이름까지 지은 거야?”

그래도 교칙은 교칙이니. 그는 나빛을 달래서 잘 설득해보려 했다.

“나빛아, 네가 다람……이를 키우면 다른 방 애들이 어떻게 보겠어. 쟤는 키우는데 나는 왜 안 돼? 하면서 너도나도 막 데려다가 키울 거 아냐.”

“그럼 선생님 방에서 키우세요…….”

“응?”

상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나?”

“여기선 키워도 되잖아요…….”

“아니, 선생님은 출근도 해야 하고……. 밤에도 일이 많고…….”

“그럼 낮에는 교실에 데려오세요……. 밤에는 저희가 여기 올 테니까…….”

나빛의 말에 아이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되겠네예.”

“선생님이 키워 주세요.”

“므앙.”

“…….”

애들 밥도 모자라서 다람쥐 밥까지 챙겨야 한다니. 상호는 잠시 눈을 질끈 감고 이마를 짚었다.

하지만 거절했다가는 나빛의 무서운 얼굴을 보게 될 것이 두려워서.

“그래. 키울게……. 키울 테니까 빨리 학교 갈 준비부터 해줘…….”

“네~.”

“밥 줘!”

“그래…….”

그는 한숨을 쉬고 주방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 * *

“꺄아아아악!”

2학년들의 비명이 교실을 시끄럽게 울렸다.

“귀여워어어!”

“어떡해애애! 멍!”

역시나 다람쥐는 아이들에게 인기폭발이었다.

상호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양복 윗주머니에서 고개를 쏙 내민 다람쥐가 잣을 오물거리고 있었다.

“신입생이야.”

그런 설정이었다.

작가는 3학년 아이들.

“이름은 다람이고…… 오늘부터 우리 반, 1학년……이야.”

“다람이는 특기가 뭐예요?”

미래의 질문에 상호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런 세세한 설정은 아이들에게 전달받지 못했는데.

본인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야, 너 특기가 뭐니?’

……라고 물어 봤자, 다람쥐가 대답할 턱이 없고.

결국 상호는 대충 지어냈다.

“무예야, 무예. 무예 신입생.”

“네?”

미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동물한테도 무공 가르칠 수 있어요?”

“……글쎄.”

놀아주고 있는데 갑자기 원론적인 이야기를 꺼내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상호는 손사래를 치며 대충 얼버무렸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너희가 한번 가르쳐 봐. 선생님은 1학년한텐 신경 못 써줄 것 같으니까, 너희가 돌봐 주고 가르쳐 주고…… 잘 할 수 있지?”

“네.”

“근데 그럼…… 누가 가르치는 거예요?”

하솔의 질문에 아이들이 서로를 돌아보았다.

그 시선들은 아이들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멍?”

단비에게.

단비는 당황하며 꼬리와 귀를 축 늘어뜨렸다.

“나, 나 왜? 멍…….”

“너 동물 말 할 줄 알잖아.”

“멍? 내가?”

“너 개잖아.”

“그치만 쟤는 쥔데…….”

“동물끼리 통하는 게 있겠지.”

미래의 말에 단비의 눈이 핑핑 돌아갔다.

“그런……가?”

“응. 네가 한번 가르쳐 봐. 마법을 다람쥐한테 가르칠 순 없잖아.”

“무공은 돼?”

“어떻게 잘 하면 될 수도 있지 않겠어?”

“나는 모르겠어, 멍…….”

단비는 아이들의 시선을 피하며 쪼그라들었다. 자신 없다는 듯이.

하지만 상호는 이미 주머니에서 다람이를 꺼내 단비에게 둥실둥실 날려 보내고 있었다.

“단비가 한번 해보자. 선생님도 도와줄게. 너희도 귀여워만 하지 말고 다 같이 돌보는 거야. 한 명이라도 게으름 피우는 거 보이면 다시 숲으로 돌려보낸다. 알았지?”

“네~.”

그와 아이들은 수업 준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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