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여고의 남선생-378화 (378/501)

<378화>

378. 광기의 산맥

“뭐어?”

태화가 어안이 벙벙해했다.

“쌤은 안 있는다구?”

“응.”

“학교로 돌아간다구?”

“응.”

“제자는 산속에 버려두고 자기 혼자만 돌아가서 치킨 뜯고 뜨신 물로 목욕하면서 띵가띵가 놀겠다구?”

“응.”

“당신의 양심! 어딘가 떨어뜨리지 않으셨습니까!”

“공익광고냐?”

상호는 태화의 이마에 딱밤을 날리고 말을 이었다.

“말한 대로야. 너희끼리 여기서 지내면 돼. 먹고 자고 싸고. 일주일 동안.”

“일주일…….”

나뭇잎 모양 그늘이 드리워진 아이들의 얼굴에 당황이 깃들었다. 하지만 출발하기 전에 한 말 때문에 약한 소리는 하지 않았다.

“일주일 뒤에 데리러 올게. 바로 이 자리로. 그때까지 여기서 버텨. 그리고 만약 어떤 약이 필요하거나, 어떤 물건이 필요하거나 해서 도시에 가고 싶으면, 능력껏 갔다와도 돼. 대신 여기서 도시로 가는 길목에는 내가 있을 거야.”

상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안 들킬 자신 있으면 도전해도 돼.”

아이들은 그럴 생각은 없는 듯싶었다.

설명은 끝났지만 아직 할 말은 남았다. 그는 태화와 이츠키를 향해 손짓했다.

“태화. 사카시타. 둘만 이리 와 봐.”

둘은 그를 따라 다른 아이들에게서 멀어졌다.

아이들에게 들리지 않을 거리가 되었을 때. 상호는 가까이 다가붙은 둘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악마가 올 수도 있어.”

두 아이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응.”

“너희가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 해. 주변에 악마가 오고 있는지, 사람이 다가와도 그게 사람인지…… 절대 의심을 풀지 마.”

상호는 두 손으로 태화의 얼굴을 감쌌다.

“잘 할 수 있지?”

태화가 진지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래.”

그는 손으로 태화의 앞머리를 쓸어 넘기고 옆얼굴을 어루만졌다.

“믿을게.”

“저도.”

“응? 아, 어, 그래…….”

불쑥 끼어든 이츠키도, 상호의 손에 얼굴을 맡겼다.

이제 할 말은 끝. 이 둘이 있으니 악마는 구별할 수 있을 것이고, 세희가 있으니 잡스런 악마는 처치할 수 있을 것이고, 나빛이 있으니 치료도 할 수 있고. 다혜가 있으니 생존도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핸드폰은 이미 다 압수했고.

당부를 마친 그는 둘을 아이들에게 돌려보내고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얘들아, 선생님 간다. 다음 주에 보자.”

“네에에…….”

아이들의 힘 빠진 합창이 나무 사이로 울려 퍼졌다.

* * *

“아~.”

땅바닥에 누운 태화가 코를 훌쩍였다. 몸 위에 외투가 이불처럼 덮여 있었다.

“쌤이 우릴 버렸어.”

“넌 버려졌나 보네. 우린 수업중인데.”

세희는 주변을 경계하며 핀잔을 날렸다.

1학기의 첫날. 3월 2일. 아직 봄보다는 겨울에 훨씬 가까웠고, 아이들이 있는 곳은 한국의 최북단이나 다름없는 강원도 북쪽이었다.

게다가 산속이라서 해도 짧고, 숲속이라서 볕도 잘 안 들고.

바위에 앉은 나빛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추워…….”

“추워는 가을에 허는 전쟁이 추워제.”

“더 추워…….”

누워 있던 태화가 손에 불꽃을 피웠다.

“음~ 난 개꿀~.”

“꺼, 멍청아. 연기 나잖아.”

“퉤.”

태화는 불을 끄고 외투 속으로 몸을 웅크렸다.

불을 피우면 몬스터들이 몰려든다. 그렇다고 이대로 있다가는 나빛과 태화가 얼어 죽을 판이었다. 무예가들은 좀 더 쉽게 견딜 수 있겠지만.

세희는 결정을 내리고 검을 뽑았다.

“집부터 짓자.”

“집?”

“어차피 일주일 동안 머물러야 하잖아. 겨울에 계속 돌아다니기만 할 수는 없어. 집을 지어야 돼.”

“동굴을 찾으면 안 돼?”

“동굴은 도망을 못 가. 선생님이 동굴은 어쩔 수 없을 때만 쓰랬잖아.”

나무 한 그루 없이 허허벌판인 설산이라 어차피 도망칠 데가 없을 때라든가. 쥐 죽은 듯이 숨어 있어야 할 때라든가. 그런 때가 아니면 동굴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그렇게 가르침을 받았다.

세희는 한 아름쯤 되는 나무를 가볍게 썰어버렸다.

쿠우웅……

나무가 땅을 때리며 낙엽과 먼지가 날렸다.

“크게 지으면 안 따뜻해. 우리가 지금 8명이니까, 7명이 간신히 누울 수 있게만 지으면 돼. 보초 한 명은 항상 세워두고. 그러면…… 일단 이런 나무 열 그루만 베어와봐.”

그 말에 태화가 외투에서 쏙 튀어나와 배를 벅벅 긁었다.

“일해라! 무예가!”

“니도 해라 임마. 쳐 누워있기만 할끼가?”

“난 나무를 베는 능력은 없는뒝.”

“니는 들어오믄 쥑이뿐디.”

지윤은 태화를 째려보고는 나디아를 따라갔다.

숲 곳곳에서 나무가 넘어졌다. 무예가들의 검과 강기, 나빛의 성창. 넘어뜨린 나무들은 지윤이 들고 와 한곳에 모아두었다.

나무의 가지를 치던 세희가 태화를 흘겨보았다.

“야, 이태화.”

“응?”

“좀 도와.”

“나 나무 못 벤다니까?”

“마법공학은 배웠잖아. 집 설계나 좀 해봐.”

“해본 적 없는데.”

“누군 이런 거 해본 적이 있어서 이러고 있냐? 벽을 어떻게 세울지부터 고민 좀 해보라고! 밧줄도 없단 말이야.”

“흐음……. 그럼 끼워서 만들어야겠네.”

“그니까 그걸 니가 좀 해! 니 머리가 좋다는 걸 증명을 해보라고.”

“흐으으음…….”

태화는 잠시 고민하다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오케이. 그럼 이 천재께서 멍청이들을 구원해주도록 하지.”

“예, 예. 천재님 제발 얼어 뒤지기 싫으시면 일 좀 해주세요.”

“근데 어떻게 만들지? 야, 일단 이거 좀 잘라봐.”

“이렇게?”

“아니, 여기만 반만 잘라보라고. 그러면 이렇게 맞물리는 거 아냐? 오케이. 그렇게……. 우씨, 이게 아닌데?!”

그렇게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고.

두 초보 건축가는 뚝딱뚝딱 집을 짓기 시작했다.

* * *

그렇게 지어진, 1평짜리 나무집.

“…….”

딱 작은 침대 두 개 크기.

문가에 선 아이들은 좁아터진 안쪽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이거 맞습니까?”

“개집 아이가?”

“일곱 명이 누울 순 있어……?”

“은율이는 다리를 잘라야 눕겠는데?”

“므앙.”

높이도 사람이 서 있을 순 없고, 앉아 있어야 하는 높이.

세희는 안쪽으로 들어가 둘러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충분해. 꼭 바로 누워서 자야 하는 건 아니잖아. 조금씩 기대면 돼.”

“아으아으~.”

다혜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집이 있는 거 자체에 감사하라는 듯이.

아이들은 슬금슬금 들어가 바닥에 앉았다. 일곱 명이 눕기는 힘들어도 여덟 명이 앉아 있기엔 충분했다.

“따뜻하긴 하네.”

“헤헤, 이렇게 앉으니까 수련회 온 거 같애…….”

꼬르르르륵

지윤의 배가 고함을 질렀다.

그 소리를 들은 태화가 코웃음을 쳤다.

“뱃속 거지가 아주 그냥 비명을 지르네.”

“고픈 기를 우짜노? 이기는 배가 비어서 나는 기지, 배고픔 자체는 내가 니보다 잘 참는디.”

“응~. 돼지~.”

“문디 쌔끼가…….”

둘 사이에 세희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먹을 걸 구하긴 해야 돼.”

“므앙.”

“벌레 말고.”

“꾸웅…….”

다혜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방금 나무에서 파낸 애벌레를 내려놓았다.

이츠키가 그 벌레에게서 슬금슬금 물러나며 중얼거렸다.

“겨울에도 돌아다니는 산짐승이 있긴 할 겁니다.”

“겨울잠 자는 거 아냐?”

“그기는 개구리랑 뱀이고. 고라니랑 멧돼지 같은 놈은 돌아댕기제.”

나빛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고라니랑 멧돼지를 잡아먹어야 해……?”

“먹기 싫음 말든가.”

“불쌍하잖아…….”

“어차피 유해조수야. 니 치킨 먹는 것보다 도움된다고.”

“그런 거야……? 그럼 먹을래…….”

“잡아야 먹지, 멍청아.”

“므앙.”

갑자기 다혜가 몸을 일으켜 문 밖으로 나갔다. 세희는 당황하며 그런 다혜의 뒤를 따르려 했다.

“언니? 어디 가게?”

“으아으아.”

“가만있으라고?”

“아으아으~.”

다혜는 그렇게 말하며 방긋 웃더니, 쏜살같이 어딘가로 달려갔다.

대체 어디로 간 걸까. 소변이라도 보러 갔나. 위험에 빠질 사람은 아니긴 한데. 세희는 불안한 마음으로 문가 앞을 서성였다.

다혜가 돌아오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언니?”

세희는 다혜가 손에 든 것을 보고 눈을 끔뻑였다.

“그게…… 뭐야?”

“므아~.”

다혜는 축 처진 갈색 토끼를 자랑스럽게 들어 보였다.

“느아으우아으앙.”

“토끼 냄새가 났다고?”

“아으아으.”

그 말에 아이들이 문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뭘 잡아?”

“토깽이 아이가? 언니야가 잡았나?”

“뭐? 토끼?”

“앗, 진짜 토끼다…….”

나빛의 눈이 흔들렸다.

“불쌍해…….”

“어쩔 수 없습니다. 이것도 선생님 수업이니.”

이츠키는 그렇게 대꾸하고 다혜의 손에 들린 토끼를 내려다보았다.

“어떻게 손질하는지 압니까?”

“으아으아. 꾸웅…… 쭈르르, 끄앙.”

“머리 따고 거꾸로 매달아서 피 빼고 내장 빼고 가죽 벗기고 구워먹으면 된대.”

“므앙!”

“맛있대.”

집 근처에서 손질하면 피 냄새가 날 것이다. 불에 구울 때도 냄새와 연기가 날 것이고.

손질과 조리는 집에서 떨어진 곳에서 해야 했다.

“어차피 이거 하나로는 8명이 다 못 먹어. 연명은 할 수 있겠지만……. 불 피우려면 집에서 멀리 나가야 하니까, 이동하면서 먹을 것 좀 더 찾아보자.”

“응.”

이젠 다른 아이들의 배에서도 꼬르륵 소리가 났다. 다들 토끼가 생전에 얼마나 귀여웠을지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아이들은 나무집에서 나와 세희와 다혜를 따라갔다.

* * *

“느아앙.”

후식으론 딱정벌레가 바삭하니 좋다는 뜻. 세희는 다혜의 옹알이를 무시하고 잔에 담긴 물을 홀짝였다.

태화의 검은 결정으로 만든 잔이었다.

‘그럭저럭 배는 채웠네.’

토끼 고기. 버섯. 먹을 수 있는 풀과 산딸기를 닮은 밍밍한 과일. 다혜와 지윤에게는 충분하지 않았겠지만, 세희의 허기를 달래기는 충분했다.

세희의 시선이 꺼진 모닥불 옆 토끼 내장을 향했다.

“내장으로 멧돼지를 꾈 수 있을지도 몰라. 함정을 만들면 좋겠는데.”

나빛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함정? 어떻게?”

“구덩이를 깊게 파고 그 위에 얇은 나뭇가지를 놓는 거지. 안 보이게 낙엽으로 감추고, 그 위에 저거 내장 놓고.”

“그럼 멧돼지는 구덩이에 갇혀서 죽기만 기다리는 거야……?”

“그 멧돼지도 토끼를 산 채로 씹어먹은 적이 있을걸. 그런 거 굳이 따지려고 하지 마.”

세희는 잔에 담긴 물을 쭉 들이키고 일어났다.

“말 나온 김에 바로 하자. 나빛, 구덩이 파 줘.”

“응.”

황금색 삽들이 땅을 파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도 가만히 있지 않고 함정을 만들 만한 나뭇가지를 찾았다. 길쭉하고 가느다란 것으로.

그런데 갑자기 태화와 이츠키와 은율이 몸을 움찔했다.

“……윽.”

“뭐고. 와 그라노.”

“배가…….”

이츠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배탈이 난 것 같습니다.”

“그래? 난 멀쩡한데…….”

“버섯 때문인가? 언니, 먹어도 되는 거 맞아? 확실해?”

“므, 므앙…….”

“안 먹던 것을 먹어서 그럴지도…….”

태화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마에 진땀이 흐르는 걸 보니 어지간히도 독하게 탈이 난 모양이었다.

“야……. 누구 휴지 있냐?”

“아, 나 있…….”

밝은 목소리로 대답하며 주머니를 뒤지던 나빛의 몸이 순간 딱딱하게 얼어붙었다.

그 모습에 이츠키와 은율도 덩달아 얼어붙고, 태화가 당황해했다.

“뭐야, 왜? 있어 없어!”

“……한 장.”

“뭐?”

“한 장밖에…… 없어.”

나빛의 손에는 휴지 한 장이 달랑 들려 있었다.

“…….”

“…….”

“…….”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태화와 은율과 이츠키의 내장은 침묵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세 아이는 몸을 움찔거리며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이윽고 태화가 손을 내저었다.

“니들이 알아서 해. 난 마법으로 어떻게든 해볼라니까…….”

“애초에 한 장은 있으나 마나입니다.”

이츠키가 중얼거렸다.

“나뭇잎으로 닦아야 할지도. 그런데 잎이 적당한 게 없는데…….”

촉촉하고 부드럽고 넓은 잎은 찾을 수 없었다. 겨울이니까. 있는 것이라고는 전부 좁거나, 거칠거나, 털이 돋은 것뿐.

은율도 맞장구를 쳤다.

“다른 걸 찾아야 할 것 같은데.”

“맞습니다. 뭔가 부드러운 것이…….”

그 순간, 둘의 시선이 같은 곳에서 멈췄다.

“……응?”

나빛은 자신을 향하는 은율과 이츠키의 시선에 당황하다가, 둘의 시선이 자신보다 약간 위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눈동자를 위로 굴렸다.

“뺙?”

연회색 머리카락에 앉은 금색 아기새.

“……얘들아?”

둘의 뜻을 알아차린 나빛의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꾸꾸는…… 그런 데 쓰라고 있는 애가 아니야…….”

“잠깐 빌리겠습니다.”

은율과 이츠키가 나빛에게 서서히 다가갔다. 몸에서 어두운 기운을 풀풀 풍기며.

“금방 끝날 겁니다.”

“얘들아……?”

“미안. 더 나은 대용품이 없어.”

“얘들아……!”

“삐이──. 삐이이…….”

혁구도 무언가 일이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듯 구슬픈 목소리로 울었다. 그러지 말라는 듯이. 그러면 안 된다는 듯이. 나빛도 혁구를 지키기 위해 황급히 보호막을 치려 했다.

하지만 이츠키가 혁구를 잡아채는 속도가 더 빨랐고.

나빛의 입에서 멍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

“갑시다, 도양.”

이츠키가 혁구를 손에 쥔 채로 은율과 함께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나빛은 기겁하며 둘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 안돼! 꾸꾸야!”

“미안합니다.”

“잘 씻겨서 돌려줄게.”

“삐이이…….”

두 소녀는 결국 나무 사이로 사라져 버렸다. 혁구의 가느다란 울음소리를 남긴 채.

세희는 그 참혹한 광경을 차마 마주하지 못해서 고개를 돌려 버렸다.

“꾸꾸야아아아아악!”

나빛의 처절한 비명이 산골짜기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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